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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도시 기록보관소

판타지 달의 그림자

2005.06.15 16:34

아메바 조회 수:37 추천: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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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가를 리듬감 있게 두들기는 소리에 나는 깨어났다. 잠에서 깬 직후의 몽롱한 정신이 내 몸을 뒤덮었다. 나는 눈을 비비면서 창문을 보았다.

전파가 끊긴 TV화면 같은 창 너머가 날씨를 말해주고 있었다. 새벽인가 했더니 여느 때와 같은 아침이다. 하지만 방 안은 불을 켜야 할 만큼 어둡다.

“월요일… 인가.”

실질적인 한 주의 시작이군. 평소 같으면 교복을 챙겨 입으며 학생의 운명에 절규했겠지만, 지금의 내겐 요일의 구분이 필요 없었다. 다음 일요일까지는 언제나 자유니까. 짧은 방학에게 감사를.

나는 이불 밑에 들어가 있는 발끝을 내려다보았다. 아무렇게나 구겨진 이불의 모양에 뭔가 의미라도 있는 것처럼 그 선 끝을 따라가던 내 시선은 결국 흐지부지되어 멈추었다. 나는 짧지만 깊은 생각에 잠겼다.

오늘도… 그 바보 같은 짓을 반복해야 하는 걸까?

“….”

사실, 어제의 일은 다분히 충동적이었을 뿐이다. 세야의 말에 생긴 반발이라고 할까, 가만히 있자니 견딜 수가 없어서 뛰쳐나온 것이지, 스스로도 별로 납득하지 못했던 게 사실이었다. 그리고 그런 충동들이 늘 그렇듯이, 하룻밤 자고 나면 마치 다른 사람처럼 깨끗이 잊어버리는 것이다. 물론 연을 의심해야 한다는 생각을 그런 충동들과 함께 도매금으로 치부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어제처럼 그녀를 찾아야겠다는 결심은 별로 들지 않는다.

그리고 세파티와의 일도 있다. 아직까지 그녀가 정확히 말하고자 한 게 뭔지는 이해되지 않지만, 내 행동에 뭔가 회의감이 든 것은 사실이었다. 하루 종일 시간 낭비한 이유도 있지만. 나는 세파티의 말을 떠올렸다.


‘암시라는 건 말야, 건 사람이 아니면 풀기가 정말 어려운 거야! 게다가 시현한테 걸린 건 악질이라서 풀고자 하는 의지 자체를 방해해버려! 부탁이니까, 생각을 해! 자기가 왜 연을 믿고 있는 지 생각이나 해보라고! 원숭이 같은 짓만 하지 말고!’


…마지막 문장까지 떠올릴 필요는 없었잖아?

어쨌든 그 생각만 하면 머리가 검어지고 흙탕물 속에 가라앉는 기분이다. 사고가 느려지면서 그 중간 중간을 무언가가 잘라내는 듯한 기분. 토막 난 생각들은 의미가 되지 못하고 짜증나는 두통의 원인이 되어 내 머리를 고통스럽게 만들 뿐이다.

제기랄… 나보고 어떻게 하란 말이야.

-투둑 투둑 투둑

모서리에 맺힌 빗물이 아래로 떨어지며 소리를 낸다. 나는 불투명한 겉창문을 열었다. 잿빛 구름이 햇빛을 걸러내며 색을 잃어버린 도시가 눈앞에 드러났다. 배수로로 쏟아지는 끝없는 물줄기를 보면서, 나는 뜻 모를 중독성을 느꼈다. 한참을 그 야릇한 광경을 보고 있던 나는 눈을 떼고 화장실로 걸어갔다. 좀 씻고, 그 다음 일을 생각하자….

“—.”

잠깐만.

난 창가로 돌아왔다. 비 오는 아침거리, 지나다니는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많은 것 또한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아까 전 보았던 모습을 금세 찾을 수 있었다. 아니, 사람이 많았다 해도 가능할 일이었다.

그녀는 이 폭우 속에서도 우산을 쓰지 않았으니까… 저 초록머리 여자는!

초록머리 여자는 금세 창가의 시야에서 벗어나버렸다. 나는 놀란 눈을 두어 번 깜빡였다. 설마… 다른 사람이겠지. 어제도 겪어보았지만, 초록색 머리는 별로 희귀한 종류가 아니다. 하지만… 그 때 연못에 빠졌을 때의 연과 지금 빗물 속에 젖어있는 저 여자의 모습은 묘하게 대치되어 보였다. 그러고 보니 그땐 밤이라서 잘 몰랐지만 옷차림도 비슷한 것 같은데.

아니, 생각해보면 연이 이 앞을 지나고 있을 이유가 전혀 없잖아. 착각하지 말라고. 나는 고개를 절래절래 저으면서 화장실로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세 걸음쯤 걸었을까?

“제기랄!!”

우당탕! 마침 자면서 입었던 옷도 평상복으로 봐줄 만한 옷이다. 거울에서 머리와 얼굴 상태를 대충 확인한 나는 샌들에 맨발을 억지로 구겨 넣고 큰 우산을 쥔 채 집에서 총알같이 튀어나갔다.

“헉… 헉….”

반바지지만 아래쪽은 금방 젖어버렸다. 무시무시하게 퍼붓는 비 때문에 우산을 조종하기가 조금 버겁다. 연처럼 보이던 여자가 간 곳으로 뛴 나는 금세 갈림길을 만났다. 우산 가를 따라 흐르는 수 개의 물줄기를 두른 나는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어디냐? 어디야?

-찾았다. 상당히 먼 거리였지만, 내 시력은 놀랄 만한 능력으로 우산 없이 걷는 여자의 뒷모습을 포착해냈다. 하하, 빌어먹을. 사흘째, 아니 나흘째인가? 지금까지 이렇게 오랫동안 이상 상태가 계속된 적은 없었다. 이러다가 반작용으로 한 일주일쯤 앓아눕는 건 아닌가 모르겠다.

하지만 내 능력은 여자를 찾아내는 데까지는 쓸모가 있었지만, 추적은 달랐다. 무리하게 속도를 높였다간 미끄러지거나 누굴 들이박을 확률이 크고, 뛰어올라 쫒자니 보는 눈이 너무 많다. 가로막는 사람들을 밀치는 충동을 수도 없이 느끼면서 나는 의미조차 불분명한 추적을 계속했다.

여자는 사라질 듯 말 듯 하면서도 어김없이 내 시야 안에 들어왔다. 그러면서도 거리는 좀처럼 좁혀지지 않으니 미칠 노릇이다. 귀신이라도 쫒는 것 같군. 하지만… 어쩌면 그 비현실적인 상황이 상대가 연임을 뒷받침하는 증거일지도 몰라. 그녀 역시 평범한 인간은 아니니까.

차도? 표시등 따윈 필요 없다. 그까짓 것, 차가 오기 전에 먼저 지나가버리면 되니까. 나는 기다릴 것도 없이 횡단보도를 가로질렀다. 나를 아슬아슬하게 비껴나간 차가 경적을 울렸지만 난 신경 쓰지 않았다. 놓쳐버릴 것만 같은 저 뒷모습, 저것 외에 내게 신경을 돌려야할 곳은 어디에도 없다.

초록빛, 초록빛, 초록빛. 제길, 초록색 머리를 가진 사람들이 저주스러워지는군. 머리색 외에는 연과 어떠한 공통점도 없는 사람들을 비켜가면서, 나는 내가 보고 있는 초록빛을 찾기 위해 갖은 애를 다 써야 했다. 정말로 보이는 것은 그것뿐이다. 정말로 들리는 것은 내 발소리뿐이다. 나머지는 그저 빈 자리를 메우기 위한 장식에 지나지 않았다. 그 순간 내게 필요한 의미는 극적으로 축소되었다.

천천히 다가오고 있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그리고 나는 그녀를 따라잡았다.

여자는 멈춰 섰다.

“…….”

나는 가쁜 숨을 골랐다. 빗속에서 식은 공기는 내 입김을 안개로 바꾸었다. 난 이제 거의 신경 쓰지 않고 있던 우산을 아래로 떨어뜨렸다. 오목한 우산 안쪽을 빗줄기가 때리며 요란한 소리를 낸다.

투두둑 툭 투두둑 투툭.

어느 샌가 사람이 텅 비어버린 적막한 거리에서, 숨쉬고 있는 인간이라곤 그녀와 나뿐이다. 6미터의 장막이 여자의 모습을 부옇게 흐린다. 이 거대한 도시에서… 시가지 안쪽인 부분이 이렇게 조용해질 수 있다니, 꿈을 꾸고 있는 기분이다. 그래, 이것은 꿈속의 풍경이라고 보는 것이 옳았다. 퍼붓는 물속으로 녹아버릴 것 같은 흐릿한 윤곽들. 이 거짓말 같은 빗속에서 현실은 경계를 잃고 환상과의 접점을 만들고 있었다.

쏴아아아아아.

샤워기를 틀어놓은 것 같은 소리 속에서, 여자는 몸을 돌렸다. 조금은 슬픈 듯한 표정이 얼굴에 스친다. 나는 입을 다물었다. 여자는 떨리는 목소리로, 하지만 분명하게 말했다.

“시현 씨.”

쏴아아아아아.

“…연 씨.”

툭. 나는 검정빛 우산을 그 자리에 버려두고 연에게로 다가갔다. 연은 자신도 모르게 물러나려는 듯 했지만, 그녀는 고개를 가로젓고는 바닥에 분명하게 발을 디뎠다. 나는 그런 그녀의 앞에서 멈춰 섰다.

내 목소린 떨리지 않을까.

“연 씨. 세야란 사람… 아니, 파수꾼을 만났어요.”

연은 피로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저 눈은… 모든 걸 알고 있는 눈이다. 하지만 나는 계속 말했다. 말할 수밖에 없었다. 내 입에서는 흰 입김이 흘러내렸다.

“그녀는 당신이 거짓을 말했다고 했어요. 그 자연체는 사실은 파수꾼이고… 자연체인 당신을 제거하려 했다고. 당신은 날 이용해 그런 파수꾼을 없애버린 거라고.”

실제로 그렇게 말하진 않았지만, 모든 걸 종합해보면 그런 결론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내가 지금까지 끊임없이 부정해왔던 결론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 대답을 본인에게서 듣고 싶었다.

연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 여린 체구로 묵묵히 나를 올려다볼 뿐이다.

“정말인가요?”

연은 대답하지 않았다. 나는 그녀를 다그쳤다.

“정말인가요? 연 씨.”

쏴아아아아아.

연은 눈을 감았다. 그녀의 이마를 타고 물줄기가 흘러내렸다. 그 중 일부는 속눈썹에 맺혔다가 곧 볼을 타고 떨어졌고, 그 모습은 마치 눈물을 흘리는 것처럼 보였다. 혹시 저 중 일부는… 뜨겁지 않을까?

연은 눈을 뜨면서 나를 살짝 밀어내었다.

“시현 씨. 미안해요…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나오라는… 표시인 건가? 나는 연이 밀어낸 쪽으로 한 걸음 물러났다. 연은 내가 있던 자리로 한 걸음 나섰다. 찰박, 하고 발 디딘 곳의 물이 불규칙한 파문을 그렸다.

쏟아지는 비속에서 시야는 극히 제한되어있다. 도시를 타넘어 가는 구렁이처럼 군데군데 도사린 안개들은 쉽게 사라질 것 같지 않았다. 내 시력으로도 사람의 흔적은 보이지 않는 상태. 이 밀도 높은 도시에서 이런 일은 불가능할 텐데-.

연은, 허공에 대고 말했다.

“이제 나오시죠. 시현 씨를 쫒아왔다는 걸, 알고 있어요.”

어? 그건 무슨 말이야? 당황한 나는 연의 눈길이 닿은 곳을 좇았다. 한 건물의 옥상, 사람 따윈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아래로 다시 시선을 돌린 나는 놀라게 되었다. 아까까지만 해도 비어있던 도로, 그 한가운데에는 한 남자가 서 있었다.

마찬가지로 우산은 쓰지 않은 상태. 본래의 얼굴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물을 잔뜩 먹어 내려앉은 머리칼 사이로 언뜻 보이는 눈빛이 살벌하기 그지없었다. 더운 여름에도 긴팔을 입고 있던 남자는 한쪽 손을 주머니에 찔러 넣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나는 세야의 말이 떠올랐다. 오른손을 항상 주머니에 넣고 있는 남자…. 설마 그 자가? 그렇다면 저 자도 마도사란 말인가?

남자가 입을 열었다. 꽤 먼 거리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목소리는 잘 들렸다. 거리가 지나치게 조용한 탓도 있겠지만.

“대단하군. 100미터 이상의 거리에서, 아우라까지 모두 숨기면서 미행했는데- 그걸 알아채셨다? 생각보다 대단한 존재인가보군. 당신.”

연은 별로 놀라는 기색이 없이 대꾸했다.

“당신들의 방식을 알고 있었던 것뿐이에요. 당신들 마도사들은 정돈된 아우라를 보여선 안 된다는 강박관념을 가지고 있죠. 그래서인지 누군가를 추적할 때는 항상 아우라를 감추더군요. 저는 인간을 볼 때 아우라만으로 파악하지 않아요. 다른 오감을 모두 이용하죠. 때문에 당신을 찾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어요. 차라리 아우라를 숨기지 않았다면 알아채지 못했을 것을.”

“아우라가 없는 인간은 없기 때문이다… 라는 건가?”

“그래요.”

“글쎄, 그건 모르는 일이지.”

“무슨 뜻이죠?”

“그냥. 옛날 생각이 나서.”

남자는 사나운 눈빛치고는 한가로운 소리만을 계속하고 있었다. 나는 저 남자가 나타난 이유를 추리해내기 위해 애썼다. 하지만 그러기엔 내가 알고 있는 사실이 너무 적었다.

남자가 다시 말했다.

“경험이 많은 것 같군. 위배자. 이게 처음인가? 몇 년이나 도망 다녔지?”

“11년 정도.”

연의 대답을 들으며 나는 몸이 식는 것을 느꼈다. 11년… 그 말은, 세파티가 말했던 내용과 너무도 비슷했다. 뿐만이 아니다. 마도사를 당신들이라고 지칭하는 것은… 그녀 자신이 마도사가 아님을 시인하는 셈이다. 그렇다는 것은?

연, 당신 설마?

“좋아. 11년이라… 위험한 마녀시군. 하지만 이 도시에서 뭔가 꾸미려고 한 건 실수한 거야. 난-.”

“-상징성을 지니고 있다고 말하려는 건가요? 그럴 테죠. 200년을 넘게 살아온 지고한 악마도 당신을 쉽게 굴복시킬 순 없겠죠. 하지만 그건 악마에 한해서일 뿐이에요. 저에겐 그런 상징성이 통하지 않아요.”

“너무 앞서나가는 거 아니야? 당신이 8년 전의 일에 대해서 대충 알고 있다는 건 짐작했어. 그렇지 않다면 굳이 이 장소에 올 이유가 없겠지. 이 도시의 상징성을 가지고 뭔가를 꾸미려는 건가?”

연은 대답하지 않았다. 남자는 계속 말했다.

“하지만, 외부에 알려진 건 극히 일부일 뿐이지. 내가 「      」를 어떻게 소멸시켰는지 알고 있나? 아우라에 관해선 아무 것도 모르던 소년이 어떻게 243년을 살아온 전설적인 악마를 소멸시켰을까? 가르쳐주지. 그건 정기였어. 내 팔에 이 도시의 정기를 감은 나는 녀석의 배에다 내 팔을 꽂아 넣었다. 이 오른팔은 그 때의 흔적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지. 그 상징성의 의미를 알겠나? 난 내 팔을 매개로 이 도시의 정기를 끌어올 수 있다는 말이야. 최고의 악마조차 소멸시킨 힘을 네가 어떻게 막아낼지 궁금하군.”

라… 뭐라고? 남자는 알아듣기 힘든 이름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연의 얼굴은 파랗게 질렸다. 그녀는 내가 그랬던 것처럼 뒤로 조금 물러났다. 멀리서 남자의 얼굴이 자신만만하게 바뀌는 것이 보였다. 그러나 그 것은 잠시, 연은 쓴웃음을 지어보였다.

“…거짓말쟁이.”

남자는 조금 찌푸린 상으로 바뀌었다. 연은 냉소를 버리지 않은 채로 말했다.

“멋지게 속아줄 뻔 했군요. 상징성이 모든 걸 해결해줄 수 있을 리가 없잖아요. 당신이 말한 바로 그 「      」도, 조약의 상징성을 깨뜨렸던 타락한 파수꾼이었는데. 정기를 사용한 대가가 그 팔 하나뿐이었다면 당신은 운이 좋은 거예요. 당신은 정기를 사용할 수 없어요. 절대로.”

남자는 대꾸하지 않았다. 이제 대화의 주도권은 연에게로 넘어간 것처럼 보였다. 연은 한 팔을 조금 펼쳐보였다.

“당신이 왜 공격하는 대신 별 뜻 없는 말들을 풀어놓는 지는 대충 짐작이 가는군요. 평온의 파수꾼을 기다리는 건가요? 조약에 명시된 것은 아니지만, 문제가 생길 경우에는, 연관된 파수꾼이 그 지역의 마도사와 협력하는 것이 관행화되어 있으니까. 하지만 오판이에요. 마도사 씨. 아직 미숙하군요. 왜 이 곳에 사람이 없다고 생각하죠? 전 각국을 떠돌아다니면서 사장될 뻔한 마술들을 많이 얻을 수 있었지요. 그 중에는 결계를 만드는 도구들도 꽤 많더군요.”

“…뭐야?”

“결계는 하나만 있는 게 아니에요. 그 속에는 항천사결계도 포함되어 있지요. 그런 알량한 도구로 파수꾼 같은 강력한 정신체를 막는다는 건 무리긴 하지만, 저 역시 평온의 존재. 약간의 시간제한을 두는 대신 충분한 강도로 결계를 칠 수 있었어요. 아마도 그 파수꾼은 지금쯤 외곽에서 결계를 깨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을 테죠. 시현 씨를 들여보내야 했기 때문에, 당신처럼 비정상적인 아우라를 가진 마도사까지 막을 수는 없었지만.”

남자는 경악한 것처럼 보였다. 나는 그가 말을 더듬는 것을 처음으로 보았다.

“항천사결계… 그렇다면 너… 천사가 아니야?”

“네.”

“말도 안 돼. 네가… 평온의… 평온의 자연체라고?”

마지막 보루가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나는 신음 소리를 속으로 삼키면서 연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얼굴은 승기를 잡은 자 답지 않게 싸늘하게 굳어있었다. 연… 왜 그런 표정을 짓는 거죠? 혹시 나 때문인가요? 날 속였다는 걸 시인해야 하기 때문에 그런 표정을 짓는 건가요?

그렇다면 그런 표정 따위 거둬요! 아무리 슬픈 눈을 하고 아무리 죄책감 쌓인 얼굴을 하여도, 당신이 날 이용했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어! 그런 값싼 행동으로 당신을 속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차라리 나를 짓밟아!

그러나 연의 표정은… 그저 슬플 뿐이었다.

“자연체 따위가 이 정도의 마술을 구현해낼 리가 없어! 게다가… 평온의 자연체는 평온의 아우라만을 갖기에 평온의 자연체인 거다! 인간 외에 두 아우라를 모두 가질 수 있는 자는 없어! 그런 자연체가, 어떻게 혼돈의 아우라를 가질 수 있는 거지? 그건 존재의 근원까지 부정하는 결과야! 이 세계의 밖에서도 허락되지 않은 존재라고!”

“-하지만, 전 이렇게 살아있어요.”

연은 자신의 가슴에 손을 얹었다.

“그것도 부인할 수 없는 건, 마찬가지겠죠.”

쏴아아아아아아.

굳어있는 청중들의 반응은 한 가지뿐이다. 쏟아지는 물. 하지만 복잡한 도시의 형태는 물을 쪼개고 쪼개서 수천수만 종류의 소리를 만들어내었다. 그러나 그 물소리가 주는 감정은 모두 같았다.

도시는 울고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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