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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도시 기록보관소

판타지 달의 그림자

2005.06.14 05:21

아메바 조회 수:134 추천: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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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 3.

어제까지의 날씨는 거짓말처럼 사라지고 우중충한 구름이 하늘을 대변했다. 창가에서 그 처량한 모습을 보던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모처럼의 일요일인데 이건 너무한다.

나는 식탁 위에 놓인 조간신문을 집어 들었다. 과연 신문은 내 예상을 넘지 못했다. 이상 기후의 징조라고? 더 판단해볼 필요가 있다는 전문가의 조언이나, 폭풍과는 다르다는 조사 결과도 일부 쓰여 있었지만, 제목부터 저런 식으로 지어놓으면 결국은 믿게 되어있다. 보나마나 인터넷에서 초자연 현상이니 뭐니 해서 시끌거리다가 곧 잠잠해지겠지. 이 나라에서 관심이 되는 화제는 정치, 경제, 스포츠 정도뿐이다. 태풍이 아닌 이상 자연 재해는 금방 안녕이라고. 정말 멋진 시스템이다. 나는 콧방귀를 뀌며 신문을 도로 던져놓았다.

자, 이제 뭘 할까나…? 어제 하루 종일 놀았더니 오늘은 영 내키지 않는군. 좋아! 공부나 하자. 쩝, 이런 생각 하자니 쑥스럽군. 자지나 않으면 좋겠다. 나는 책상에서 아무 책이나 골라잡고 읽기 시작했다.

절반쯤 읽었을까, 벨 소리가 멋지게 나를 방해했다. 방해라는 말이 적합할까 몰라. 어차피 반쯤은 더위 속에서 잠들고 있었으니까. 그건 그렇고, 이 시간에 찾아올 만한 사람은 없는데. 이모넨가? 나는 붕 떠버린 머리를 긁어내리며 현관으로 나갔다.

“예, 나가요.”

문을 열고나서 나는 당황했다. 낯선 얼굴이다.

타는 듯한 붉은 머리를 위로 틀어 올린 여자였다. 운세에 여복이라도 터졌나? 왜 어제부터 못 보던 여자들이 줄줄이…. 키도 여자치곤 상당히 커서 나와 근접하다. 그리고 옷차림은… 확인할 수 없었다. 이 더운 날씨에 저런 앞치마를 차려입고 나타난 저의가 뭘까. 혼란스러워하는 내 앞에서 그 여자는 생긋, 하고 직업적인 미소를 짓더니 장갑 낀 손을 들어올렸다. 인사 대신인가.

“안녕하세요? 공원 일 때문에 조사차 나왔습니다. 신문 보셔서 알고 계시죠?”

“아, 예.”

나는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긴 하지. 그런데 말이지, 신문에까지 날 만큼 늦었는데 이제 와서 조사 같은 건 왜 하는 건데? 게다가 우리 집은 공원에서 꽤 먼 편이라구? 물론, 넓게 보자면 걸어서 반시간도 안 되는 거리니 가까운 편이긴 하지만, 조사 나올 정도는 아닌 거 같은데. 숨 가쁘게 돌아가고 있는 내 머리 속과는 무관하게, 여자는 유창하게 다음 말을 뽑아내었다.

“혹시 어제 오전 1시경에 거대한 폭음이나, 그 외 폭발에 수반될 만한 현상을 겪으신 적이 있으신가요?”

“아아. 중간에 잠이 깨긴 했지만 무슨 일인지는 기억나지 않아요.”

귀찮아진 나는 적당히 둘러대었다. 이렇게 뒷북치는 조사야 별로 중요한 것도 아니겠지. 상부에 보고할 증언 정도는 벌써 확보해 두었을 거고, 이 쪽은 그냥 머릿수 채우기밖에 안 될 것이다. 눈치가 있다면 알아서 하겠지.

하지만 여자는 작별 인사를 하는 대신 내게 묘한 눈웃음을 지어보였다. 그 짓궂은 표정에 나는 뭔가 잘못되었다고 느꼈다. 잘못을 저지르다 들킨 어린애 심정이라고 할까? 그리고 실제로 켕기는 게 있기 때문에 더 섬뜩하다. 이 여자, 설마 뭔가 알고 있다는….

여자는 들어올렸던 손에서 검지만을 세우고는 좌우로 까딱거렸다.

“아, 아, 아. 거짓말은 나쁜 거겠죠, 시현 군? 그 정도의 지식은 유치원에서도 체득할 수 있는 거예요.”

나는 하마터면 펄쩍 뛰어오를 뻔했다. 뭐야? 이 여자가 내 이름을 어떻게 알지? 우편함이 바깥에 나와 있는 것도 아닌데. 나는 가슴이 두근거렸다. 여자는 내 동요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반대 손을 들어올렸다. 거기에는 뭔가 묵직해 보이는 봉지가 있었다.

“으쌰. 꽤 무겁네. 빨리 들어봐요.”

정신적으로 충격을 받고 있던 나는 반대도 못하고 봉지를 순순히 받아들었다. 이상한 쓰레기들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런 봉지를 내게 억지로 떠맡긴 여자는 그 안에서 내용물들을 하나 둘씩 꺼내보였다.

“자, 봐요. 이건 시현 군 지문이 묻은 보도블록. 이건 시현 군 지문이 묻은 제방 조각, 그리고 이건 시현 군의 피가 묻은 옷자락, 그리고 이건 또….”

툭, 툭, 툭. 봉지가 가벼워질수록 내 발 밑에는 쓰레기가 수북이 쌓여갔다. 나는 여자가 줄줄 읊어대고 있는 목록에 얼이 빠질 지경이었다. 이 여잔 대체 누구지? 누군데 어제 일을 그렇게 상세히 알고 있는 거야? 지금 하고 있는 짓은 또 뭐고? 마침내 봉지는 다 비워졌고 대신 내 앞에는 공원에서 들고 왔을 이상한 조각들이 작은 산을 만들었다. 이마를 과장되게 닦아 보인 여자는 허리에 손을 얹었다.

“휴, 됐다. 마지막으로….”

여자는 앞치마 안으로 손을 넣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거짓말처럼 그녀의 손에서 끌려나오는 물건을 보고 나는 얼어붙었다.

그 것은 끝이 날카롭게 갈린 창살이었다. 마찰로 인해 녹아내린 흔적이 뚜렷하다. 그렇게 뾰족하게 된 끝부분은 충격에 의해 부서져나간 지 오래였다. 그 것이 무엇인지는 명백했다. 나는 창백해진 얼굴을 여자에게 돌렸고 여자는 별 표정 없이 그 창을 쓰레기 더미 위에 매정하게 떨어뜨렸다. 창살은 딱딱한 바닥 위를 구르며 요란한 소리를 내었다. 따그랑 땅 땅.

“정말이지, 다른 건 다 넘어간다고 쳐도 이건 너무 위험한 증거에요, 시현 군. 지문도 뚜렷하게 남아있고 창이 치고 간 자리도 그대로 있어요. 뭐, 지금은 제가 부셔놓았으니 상관없겠지만.”

나는 한동안 말을 만들어내지 못했다. 바닥에 떨어진 창살을 뚫어지게 쳐다보던 나는 여자에게로 그 시선을 돌렸다. 여자는 빙긋거리며 그런 내 모습을 흥미 있게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더듬거리며 굳어버린 입술을 떼었다.

“누굽니까…? 당신.”

여자는 기다렸다는 듯이 발랄하게 말했다.

“네. 저는 이 근방을 담당하고 있는 평온의 파수꾼인 세야라고 합니다. 이런 말이 좀 우스울지 모르겠는데, 잘 부탁해요.”

이름은 중요하지 않았다. 평온의 파수꾼? 농담이라도 이 나라 행정부에 그런 직책이 생겼다는 소리는 듣고 싶지 않아. 그래. 이건 그 그림자와 같은 이상한 세계의 연장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고 보니 연에게 얼핏 평온이란 말을 들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파수꾼이란 말은 완전히 생소한 단어였다. 도대체 뭐하는 사람이지?

세야는 허공에 대고 손을 튕궜고, 그러자 바닥에 떨어져있던 쓰레기들은 도로 봉지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눈앞에서 벌어진 일에 내가 넋이 나가있는 사이 세야는 내 어깨를 장난스럽게 밀었다.

“자, 좀 놀랐죠? 우리 들어가서 얘기해요.”

나는 거절할 의욕이 나지 않았다. 나는 반쯤 멍해있는 상태로 그녀를 집안으로 안내했다. 잠시 후 우리는 식탁을 사이에 두고 마주앉게 되었다. 그리고 내가 난생 처음 보는 사람에게도 자연스럽게 접대를 하는 것은 오랜 습관으로 굳어진 결과라 할 수 있겠다.

“물 드실래요?”

“괜찮아요.”

…그렇게 내 습관을 깨버린 세야는 반쯤 일어났던 내가 다시 자리에 앉기를 기다렸다. 내가 엉거주춤한 자세로 세야를 보자, 그녀는 다시 한 번 크게 미소를 짓더니 양손바닥을 짝 소리 나게 맞춰서 주위를 환기시켰다.

“자, 시현 군. 시현 군은 제가 별로 반갑지 않은 거 같으니 단도직입적으로 물을게요. 왜 혼돈의 파수꾼을 죽였죠?”

…….

조금 이해하는 데 시간이 걸렸다. 나는 두 눈을 깜빡이다 천천히 말했다.

“그, 그야 그게 날 죽이려고 하니까….”

“시현 군.”

세야는 엄한 표정을 짓고는 내 말을 딱 끊어버렸다.

“그 녀석이 파수꾼치곤 좀 멍청했다는 걸 인정해요. 하지만 파수꾼은 파수꾼! 적어도 공격해야 할 대상과 그렇지 않은 대상 정도는 구분할 수 있다고요. 그런 파수꾼이 시현 군을 죽이려 했다는 것은, 시현 군이 그에 상응하는 일탈 행위를 저질렀다는 걸 자인하는 것밖에 되지 않아요. 솔직히 밝히시죠? 시현 군. 시현 군은 미성년자니까 협회에서도 큰 처벌은 내리지 않을 거예요. 아, 혹시 파수꾼을 죽인 게 겁이 나서 그러세요? 뭐, 그럴 만도 하지…. 그래도 너무 걱정 말아요. 시현 군도 알고 있겠지만, 이번 파수꾼은 워낙 미묘한 상황 위에 있는 터라 강경 조치는 없을 거예요. 적어도 협회에서 제명당하진 않는단 거죠. 자, 그래도 고백 안 할래요?”

…오해하고 있어. 뭔지는 몰라도 이 여자 엄청나게 오해하고 있어. 식은땀이 폭포수처럼 난다면 바로 이런 때 나야 할 것 같았다. 자자, 정리해보자. 정리. 그러니까 어제 내가 족친 그 시꺼먼 녀석이 파수꾼이란 건데, 그 녀석은 죽이면 안 되는 녀석인가 보다. …생각해보면 세상에 죽여도 되는 녀석이 어디 있겠냐만은, 나는 정당방위였다고. 게다가 연의 말을 들어보면, 그 자연체란 게 그렇게 대단한 존재는 아닌 거 같던데? 나는 멍하게 손을 들었다.

“저기요. 질문이 있어요.”

“뭔데요?”

“파수꾼이 뭐죠?”

세야는 잠시 할 말을 잃은 듯싶었다. 그녀는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나를 쳐다보았다. 제길, 부담된다.

“에? 무슨… 시현 군. 파수꾼에 대해서 몰라요?”

“전혀.”

“…그러면, 이 세계의 밖에 대해서는요? 아니, 적어도 아우라 정도는….”

“듣기는 했어요.”

“들었다고요? 맙소사. 듣는 거로 끝날 문제가 아닌데.”

어라. 뭔가 실수했나. 세야의 얼굴은 굉장히 진지해졌다. 그녀는 식탁 위로 상반신을 내밀고는 내게 바싹 붙었다. 그 심문하는 듯한 태도에, 나는 나도 모르게 의자를 뒤로 슬금슬금 빼고 있었다.

“시현 군. 아우라 다룰 줄 알아요?”

“몰라요.”

“마도사는 뭔지 알아요?”

“…대충은.”

“그럼 아는 사람 중에 마도사가 있나요?”

연을… 아는 사람에 집어넣기는 조금 그렇군.

“없어요.”

“그렇다면 관련된 책자나 마술 도구를 얻은 건가요?”

“아닌데요.”

세야는 내 대답을 듣고는 알 수 없는 소리를 중얼거리며 자기 자리로 쓰러지듯 돌아갔다. 그녀는 고개를 절래절래 저으면서 이마를 감쌌다.

“오, 이런… 미안해요. 시현 군. 제가 멋대로 지레짐작해서 헛소리를 지껄였네요. 부탁이니 지금까지의 얘기는 잊어주세요. 알았죠?”

“잊…으라고요?”

“아, 아니지. 내 정신 좀 봐. 미안해요. 단단히 기억해두세요. 그럼, 일단 어제 일에 대해서 물어볼게요.”

“…….”

이 아가씨, 횡설수설하는구만.

“시현 군이 어제 새벽에 검은 물체를 본 건 확실하죠? 푸들처럼 생겼는데 덩치가 산더미만한 거요. 그러니까… 그림자에 비유하면 가장 적당할 거 같은데.”

…그림자에 비유하는 건 정확했어. 하지만 푸들은 확실히 아니었어.

“맞아요. 온 몸에 가시가 나 있었죠.”

“네! 바로 그거에요. 그게 혼돈의 파수꾼이죠. 그럼, 역시 시현 군이 그 파수꾼을 죽인 건가요?”

“무슨… 파수꾼이 자연체인가요?”

세야의 얼굴에는 당혹감이 스쳤다. 그녀는 내게 되물었다.

“파수꾼이 자연체라고요? 누가 그런 소리를 해요?”

“아, 아니… 그냥 물어보는 거예요.”

뭔가 불길한 예감이 든 나는 연의 일을 얼버무렸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뭔가 섬뜩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말이 맞지 않잖아. 어떻게 된 거야? 세야는 내 상태를 눈치 채지 못했는지 별 느낌 없이 말했다.

“시현 군은… 어떻게든 이 세계의 밖에 대해 들은 적이 있는 모양이지만, 지식이 완벽하지는 않은 것 같군요. 간략하게 설명을 해드리기 전에, 말해드릴 게 있어요. 원래라면 전 필요한 정보만을 듣고 시현 군의 기억을 지울 생각이었어요. 이 세계의 밖은 이 세계의 사람들에게 알려져서는 안 되는 곳이니까. 하지만 시현 군의 아우라가 정상이 아니기 때문에 함부로 손댈 수가 없군요. 그러니, 여기에 관해선 함구해주세요. 어차피 얘기해도 믿을 사람은 없을 테니까.”

나는 타성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세야는 간단히 말했다.

“좋아요. 먼저, 자연체는 세계의 정기에 인간의 의지가 개입되어 만들어진 찌꺼기에요. 그리고 파수꾼은 천사와 악마가 만들어낸 조약의 상징물이고요. 때문에 파수꾼은 천사가 아니면 악마가 되지, 자연체는 절대 될 수 없어요. 자연체 따위가 파수꾼이 되었다간 이 세계의 밖은 둘째 치고라도 마도사 협회가 발칵 뒤집어질 걸요.”

“조약?”

“네. 불가침 조약이죠. 이 세계에 어떠한 해도 끼치지 않겠다는 조약. 그런 게 있다는 것만 알아두세요.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니까.”

“그럼 천사와 악마는….”

“이 세계의 밖에서 만들어진 정신체예요. 인간의 정신에서 기인했다는 건 자연체와 같지만, 그 외의 것은 전혀 다른 존재들이죠. 아무튼! 시현 군은 아직 제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어요. 시현 군이 파수꾼을 죽인 게 확실한가요?”

나는 머리 속에서 계속해서 엉키는 세야의 말 때문에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했는데 계속 말을 시키지 말란 말이야! 뭐라고 대답해줘야 할지 떠오르지도 않잖아. 차분히 생각해. 그러니까, 에, 정상이 아닌 녀석들 중에는 마도사, 또 천사랑 악마, 그리고 자연체가 있다. 그리고 파수꾼은 천사와 악마만 될 수 있다. 판단 끝. 하지만 내가 대답할 내용에 도움이 되는 건 하나도 없었다. 나는 다소 풀이 죽은 어투로 사실만 간략히 말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런 것 같아요.”

“…….”

세야는 잠시 생각에 잠긴 듯 했다. 턱을 괸 채 살짝 고개를 돌린 모습은 조각처럼 보일 정도다. 하지만 나에겐 그런 아름다움도 인간답지 않은 것을 증명하는 것처럼 보여, 좋게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자연체라면 모를까… 파수꾼을 맨몸으로 죽인다는 건 불가능하죠. 시현 군. 시현 군은 이 세계의 밖과 무관한 사람인데도, 아우라를 써서 혼돈의 파수꾼을 죽였어요. 그리고 그건 다른 자의 도움이 없으면 불가능해요. 아우라를 다룰 수 있고, 이 세계 밖의 지식이 있는 자! 그렇죠?”

“…….”

“긍정으로 받아들이죠. 혹시 시현 군을 도와준 사람, 팔 한 쪽이 부자연스러운 사람 아니었나요? 항상 오른팔을 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남자.”

“아니에요.”

“그럼요? 누가 시현 군을 도운 거예요?”

세야의 거듭된 질문에 나는 다소 불쾌해졌다. 어쨌든 세야는 우리 집에 예고도 없이 찾아왔다는 점에서 벌써 거슬리는 요소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도 자꾸만 심문하는 태도로 사람을 몰아붙인다면 기분이 좋을 리 없다. 나는 다소 퉁명스럽게 반응했다.

“그런 건 왜 묻는 거죠? 당신도 파수꾼이기 때문인가요? 파수꾼이 대체 뭐하는 존재이길래?”

“파수꾼은 문자 그대로 파수꾼이에요. 이 세계에 상주하면서 조약에 위배되는 일을 막고, 일이 벌어질 경우에는 해결해야 합니다. 그런 파수꾼이 활동 도중에 시현 군에게 죽었어요. 전 시현 군이 뭐라고 생각할까요?”

나는 입을 꾹 다물고 세야를 노려보았다. 하지만 세야는 그런 내 눈빛에는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았다. 그녀에게는 뭔가 노련한 분위기가 느껴진다.

“시현 군. 이 일은 시현 군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중요해요. 시현 군은… 아우라의 상태로 봐서, 8년 전에도 이 도시에 있었던 것 같군요.”

“!!”

민감한 부분이 건드려지자 나는 조금 흔들렸다. 세야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말을 꺼냈다.

“그 정도는 시현 군을 도와준 자도 지적했을 테죠?”

“그게… 지금 이 상황에서 중요합니까?”

“아주 중요해요. 그렇지 않다면 그 자가 시현 군을 이용할 필요가 없을 테니까.”

“뭐라고요? 이용?”

“네. 이용입니다. 그렇게밖에 생각할 수 없어요. 조약은 이 세계의 밖에 관한 것입니다. 이 세계의 밖을 아는 자가 아니면 위배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해요. 아마도 파수꾼이 노렸던 건 시현 군이 아니라 시현 군을 도운 그 자였을 테죠! 그리고 그 자는 상징성을 가진 시현 군을 이용해 대신 파수꾼을 처리한 거고! 제가 감지하지 못한 걸 보면 혼돈의 존재였거나, 아니면 타락한 마도사였겠죠. 시현 군에게 죽은 그 아이는, 능력이 신통찮았지만 그만큼 위배자를 찾아내는 감각이 예민했으니까.”

“…….”

“아닌가요?”

“…….”

“아닌가요? 시현 군.”

나는 거듭되는 충격에 아무 말도 꺼내지 못하고 있었다. 입 밖으로 꺼내고 싶은 말은 목젖까지 와 닿은 뒤로는 나가는 것을 거부하고 있었다. 맴도는 말을 도로 아래로 집어넣은 채, 나는 어제 일을 더듬었다.

그림자는 나와 연이 함께 있던 식탁을 습격했다.

나는 그림자의 공격이 아니라 연의 고함 소리에 먼저 반응했다.

공원에서 그림자는 연을 먼저 공격했다.

나이프를 꽂은 직후 그림자는 연에게로 접근하려 했다.

숲에서 그림자가 뛰어올라 후려쳤던 것은 내가 아닌 연이었다.

마지막으로 그림자가 호수를 가르고 돌진하던 때, 내 옆에는 연이 있었다….

“시현 군?”

아니야.

그럴 리 없어.

“아니야. 거짓말이야.”

“시현 군.”

추격당하는 건… 내가 아니었어?

그 그림자가 습격했던 게… 연이었다고?

그렇지 않아.

오해일 뿐이야. 오해라고… 연이 나를 속일 리가 없잖아. 연이 나를 속일 이유가 없잖아!

“시현 군.”

연이 세계에서 일탈한 존재야? 존재해서는 안 될 죄인이라고? 그럴 리가 없어! 연은 마도사야! 단지 아우라를 다룰 줄 아는 것만 빼면, 나와 하나도 다를 게 없는 평범한 인간이라고!!

나에게 자꾸 의심하길 요구하지 마! 단 하루만의 꿈에 진실이랍시고 추악한 의미를 덧칠하지 말란 말이야!! 어째서야? 어째서 나는 이 정도의 추억조차 남겨놓지 못하는 거야?

차라리 내가 진실을 기만하겠어! 내가 현실에게 등 돌리겠어! 날 그냥 이대로 살 수 있게 내버려둬! 이미 절망 따윈 내 인생에 가득 쌓였으니까!!

“시현 군!!”

콰창!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의자가 그 기세에 나동그라지며 거친 소리를 내었다. 나는 숨을 몰아쉬며 세야를 노려보았다.

세야는 질린 표정으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나는 사납게 말했다.

“나가요.”

“시현 군….”

“나가요! 내 집에서 나가!”

“시현 군. 진정해 봐요. 이건-.”

“듣기 싫어요! 협조하지 않겠어요. 당장 여기에서 나가줘요!”

“시현 군! 시현 군은 어쩌면 암시에 걸려있는 걸지도 몰라요! 차분히 마음을 다스리고….”

“그만해요!!”

참지 못한 나는 억지로 세야를 집 밖으로 몰아내었다. 세야의 힘은 겉보기와 달리 강했지만 나를 이겨내진 못했다. 난, 여전히 강해져 있었다. 세야는 간신히 저항하다가 결국 문 밖으로 밀려나왔다. 나는 문을 잠가버렸다.

세야가 포기하지 않았는지, 벨소리가 요란스럽게 귀를 울렸다. 빌어먹을, 시끄러워! 나는 벨에 연결된 선을 뽑아버렸다. 그러자 조금 뒤, 이번에는 문을 쿵쿵 두들기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넌더리를 내며 현관의 덧문, 내 방문을 모두 닫아버리고 침대 속에 웅크렸다.

그 장벽들조차 모두 뚫어버린 문소리가 내 귀를 울렸다. 나는 이불을 잔뜩 뭉쳐 그 안에 머리를 파묻었다. 뜨거운 입김을 되먹으며 나는 귀를 세게 막았다. 그 문소리가 더 이상 들리지 않을 때까지. 계속, 계속, 계속…!!

소리가 그쳤다.

나는 천천히 머리를 빼었다. 얼마나 오랫동안 있었는지 숨이 가쁘고 얼굴이 뜨겁다. 갑자기 현기증과 함께 구토기가 올라왔다. 나는 화장실로 달려가 세면대에 대고 헛구역질을 했다.

“우우욱! 우욱… 욱….”

역류한 위액이 목구멍을 할퀴었다. 그 쓰디쓴 자극은 나를 못 견디게 했다. 나는 입을 손으로 틀어막았다. 괴롭다. 괴로워서 미칠 것 같다.

세면대의 곡면을 타고 혼탁한 액체가 구멍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 위에 투명한 눈물을 떨어뜨리며, 나는 소리 없이 절규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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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보다 늦었군요. 인터넷이 잘 안 되서..
3일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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