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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도시 기록보관소

판타지 무한정다각면체환상곡

2005.06.22 09:19

misfect 조회 수:119

extra_vars1 어둠의 아라크네 빛의 거미줄 
extra_vars2 전주[prelude](1) 
extra_vars3 14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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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포트가 불 위에 올려져 있다. 투명한 포트의 용기 안은 훤히 들여다보인다. 단지 공간 자체의 채광이 그리 좋지 못해, 그래서 그 안에 담긴 물이 그토록 암울하고 또한 묵직해 보일 뿐이다.
그것을 보고 있자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 이것 역시 물, 구체적으로는 물방울 얘기다. 그건 언젠가는 끓어오른다. 당연하면서도 놀라운 진리 아닌가. 직접 열을 가하지도 않은 수면의 물방울까지도 언젠가는 열을 받고 끓어오르리라는 것은. 하지만 그 전까지 물방울은, 수면 위의 물방울 하나는 지금 자신에게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지 못할 것이다. 용기 아래선 시뻘건 불꽃이 물도 태우고, 그것을 가둔 용기도 태우고 마침내 스스로마저 형체 없이 태워 없애버릴 듯이 이글거리지만 수면 위에 떠 있는 물방울 하나는 알지 못한다. 머무르면 머무르는 데로, 흐르면 흐르는 데로 물방울은 스스로를 떠맡긴 채 자신이 어떤 처지에 놓일 것인가를 생각해보지 않는다.
하지만 결국 그 물방울 역시 타 없어지고 말테지. 저 시뻘건 불꽃 속에서, 나도 잃고 너도 잃고 시간도 잃고 공간도 잃은 그 속에서. 물방울은 결국 자줏빛 수증기로 변하여 끝없는 허공으로 날아가 버릴 테지.
미소를 짓는다. 커피포트의 투명한 표면도 일그러지고 뭔가 왜곡돼 보이는 미소를 짓는 사나이를 희미하게 비춘다. 무력한 백수 사내가 웃고 있다. 덜떨어진 바보가 웃고 있다. 이도 저도 아무것도 아닌 내가 웃고 있다. 아, 차라리 이런 웃음만으로도 마음 한 편이 탁 트이기만 한다면. 그렇기만이라도 한다면. 그런다면…….얼마나 좋을까 둘이서 손을 잡고쯤에서 정신이 바짝 들었다. 포트는 이제 막 끓기 시작했다. 그리고 핸드폰은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이제 막 얼마나 좋을까를 아련하게 흘리는 여가수의 음성을 마구잡이로 내던진다. 세상에게는 과거의 노래지만, 내게는 현재의 노래이자, 내가 직면했던 최후의 미래였다. 그 노래가 끝남과 함께 내 시간대에서 미래란 것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스스로가 과거의 것으로 머물러버렸다고나 할까. 다행스럽게도 그 마지막 시대에도 휴대전화는 존재해 있어, 이렇듯 연락해 주는 사람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내가 확인한 상대방의 번호는 그리 반갑지만은 않은 번호였다.
내키지는 않았지만, 전화를 받아든 채로 기계적으로 안부부터 물었다.

- 형님, 오래간만인데요. 예, 잘 계시죠. 형수님께선 별 일 없으시고요? 저야 뭐…….

묵직하고도 끝이 분명한 전화 저 편의 목소리는 나직하고 느릿하며, 잔뜩 움츠러든 이쪽의 목소리와는 이미 다른 차원의 것이다. 키도 이쪽보다는 머리 하나 차이로 크니까 보이는 세상도 틀림없이 다르겠지. 게다가 평소 발을 디디고 있는 발판도 내 것보다 최소 70m은 더 위에 있으니 말이다. 지금도 아마 내 머리로부터 한 70m정도 위에 깔린 최고급 양탄자 위에 버티고 서서 이 축복받은 도시를 내려다보며 통화를 하고 있을 것이다. 퇴근시간은 꽤 지났지만, 그런 자리에 계신 분들이야 그런 건 그리 중요하지 않으니까.
분명 친형제인데도 우리 둘의 입장은 엄청나게 달랐다. 아버지는 전화기 저 편의 인간 부류들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남겨주었다. 전화기 이편의 인간에게는 반면 아무런 것도 남겨주지 않았다. 자취방 하나와 자질구레한 가구, 돈 얼마 정도? 더구나 그 이유가 당신께서 한 씨 종가 사람이셨고, 일가의 미신을 지독히도 싫어하셨으며, 내가 용띠이기 때문이라면? 다른 이유 같은 건 없이 오로지 순전히 그런 이유 때문이라면?
생각이 너무 길어져서 몰두를 하다 보니 상대방이 부르고 있는 것도 알지 못했나 보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상대방은 연신 여보세요를 연발하고 있었다.

- 죄송해요, 잠시 뭐 좀 하느라…….아뇨, 큰일은 아니고 물이 다 끓어서요.

실제로는 이미 다 끓은 물을 이제 내리면서도 태연스럽게 이런 말을 할 수 있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조금 늦긴 했지만, 커피와 프리마, 설탕이 가루 상태로 이미 잔뜩 휘저어져 섞여 있는 컵 안에 더운 물을 부었다. 그 순간에, 더운 물에 커피와 프리마, 설탕의 혼합물이 녹아들어가는 그 짧은 순간에, 실제인지 착각인지 모를 커피 향은 정말로 황홀하다.
내가 전화기 저 편의 남자와 같아질 수 있는 순간이 있다면 바로 물을 따랐을 때, 진한 첫 커피향이 막 올라오는 것을 맞는 그 순간이 아닐까. 아니, 이쪽이 오히려 한 수 위가 되는 순간인지도 모르지. 저 쪽은 예쁜 비서가 타줄 테니까.
하지만 이 황홀감과 우월감은 아주 잠깐 뿐이었다. 게다가 오늘은 더욱 짧았다. 상대방이 불현 듯 던진 한 마디가 도화선이 되어 나의 황홀감과 우월감을 폭죽 터트리듯 허공에 날려 버린 것이다. 깨끗하게 전해져오는 이 불쾌감, 허탈감, 불안감…….난데없이 한여름에 더운 물 세례를 받는 커피 가루와 프리마, 설탕의 기분이란 게 이런 걸까.

“산소요? 제 차례요? 벌써 그렇게까지…….”

이럴 때면 시간이 유난히 빨리도 흐른다는 생각이 든다. 선산에 부모님의 묘가 들어간 이후로 선산에 있는 묘지의 성묘는 우리 형제자매가 해마다 돌아가며  맡고 있다. 그것이 드디어 막내인 내게까지 온 것이다. 위로 형 둘과 누님 한 분까지 둔 이 막내에게까지…….
벌써 그렇게나 흘렀는지요. 당신께서 가신지…….그렇게 한 번 되뇌어보지만, 그렇다고 해서 별반 감흥이 있는 것은 아니다. 아버지께서 살아계신 동안 나는 줄곧 다른 형제들과 비교만 당하고 구박만 받았다. 그런 내게 어떤 감흥이 있겠는가. 감흥이란, 아버지의 업적을 물려받은 이 전화기 너머 배부른 자식에게나 있는 것이다. 배부른 사람이니까 한동안 연락마저 끊고 지내던 동생까지도 아쉬운 소리 해가며 부르는 게지.
그런 생각을 하자니 도리어 차분해지고 맥이 풀렸다. 어쩔 수 없는 일에 대해서는, 인간은 쉽게 체념해버리는 법이다.

“선산이 어디 라셨죠. 네. 그랬죠…….한 이 삼일 정도로 생각하면 되겠죠. 네, 네. 알겠습니다. 아뇨, 바쁜 일 없으니까 출발할게요. 네, 들어가세요. 네.”

꽤 넓은 선산을 둘러보는 데는 아무래도 시간이 걸린다. 주변에 민박이라도 알아봐야 하나. 하지만 그 주변엔 마을도 있고, 어떻게든 될 성도 싶다.

“그럼 슬슬 준비나 해 볼까.”

오래간만에 생기가 도는 목소리에 회답하는 사람은 물론 없다. 그저 시선이 머무르는 거실 한가운데에 수북이 쌓인 비디오테이프며 싸구려 만화책, 소설책 따위만이 있을 뿐. 이것들도 반납을 한 번에 해버려야겠지.
짐을 챙기는 움직임은 꽤나 분주하게 또 한참 동안 지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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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칼트 이야기를 폭파시킨 이유는...제가 게으른 탓도 있지만, 중간 부분쯤에 완전히 엉망으로 쓴 부분을 발견해 버린 탓이 큽니다. 모순점이 너무 많더군요.
결국 제 처음이자 유일한 기사와 마법사의, 그것도 장편의 판타지는 결국 실패로 끝나버렸습니다. 꽤 공을 들였는데도 말이죠...
결국 원론으로 돌아와 버렸습니다. 현대 세계라는 배경으로 다시 돌아올 수밖에 없었네요.
그래도 꾸준히 읽어주신 분도 계신데...기대에 부응 못해 드려 죄송스럽습니다.

모든 연금술사... 이후로는 변변한 히트작이 나오지 않네요...이번에는 다시 한번 재도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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