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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도시 기록보관소

판타지 Fate [Prologue]

2005.06.30 22:46

SoranoChki 조회 수:29 추천: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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팍, 파악.
삽을 힘차게 발로 밟아서 깊숙히 박은다음, 어렵지 않게 퍼내어 흙을 반대쪽으로 던
져버렸다. 땡볕 아래에서 이런 정원 손질을 하기는 정말 어려운 일이지만, 나로서는
단순한 시종인 관계로 마다할만한 처지가 아니다. 물론 세리스 아가씨가 아신다면
놀라시면서 그만두라고 하시겠지만.

보통, 시종은 하녀나 하인과는 달라서 철저히 자신의 주인의 일만을 책임지는것이
보통이다. 딱히 다른곳에 신경쓸 여유도 없거니와, 또한 다른곳까지 신경쓰기엔 정
신이 없는것도 그 이유중 하나일 것이다. 하지만, 아가씨는 다른 분들과는 달리 시
종을 이리저리 달달 부려먹으시는 분이 아니여서, 왠지 자유 시간이 많아 요즘에는
하인들과 하녀들을 도와 정원일을 하고 있다.

몇 번 더 삽으로 흙을 퍼내다가, 문득 불길한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몇일 전에 만났던 그 사람. 단순히 미친 사람이라고 하기에는 느낌이 꺼림직
했다. 낯익던, 그리고 익숙한 감정, 게다가 나의 정체를 아는 데스타인 인이 아닌 사
람 이라니...

"엔티, 뭐하는거야."
"아, 네."

하인 아주머니의 꾸중에 나는 다시 삽으로 흙을 퍼내기 시작했다. 이곳에는 커다란
정원수를 심는다고 해서, 열심히 땅을 파내는 중이다. 검술을 익히기 위해 훈련해
두었던 근력은 이런 때에 도움이 된다. 물론, 단순히 흙을 파내기 위해 검술을 익힌
건 아니지만 말이다...

한 동안 계속 땅을 파다 보니, 갑자기 정문 쪽에 시끌시끌한게 느껴졌다. 마침 이마
에 맺힌 땀도 닦을 겸, 삽을 땅에 팍, 꽂아 세우고 손등으로 땀을 씻어내며 허리를
펴서 정문을 바라보니, 무언가 분명히 소란스러운 모양이다.

"아주머니, 무슨 일이죠?"
"으음?"

잔디를 돌보시던 아주머니도 허리를 두드리시며 일어나시더니 정문을 바라보신다.
잠시, 우리는 아무런 상황도 알 수가 없어 물끄러미 바라보고만 있을뿐, 더이상 아
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순간.
콰아아앙-

"에엣?"

난 놀라버린 목소리로 뒤로 주춤, 물러섰다. 동시에, 정문이 부서지면서 몰려드는
병사들. 처음에는 도적떼인지 알았는데, 복장을 보니 라이베리아 국가의 정식 군병들
이였다. - 사실 라이베리아 중심 도시에 도적떼 따위가 있을리도 없지만 -

뭐, 뭐야, 정말.
나는 잠시 당황한 얼굴로 주춤 한번 더 뒤로 물러섰다. 아주머니도, 조금 겁에 질리
신 얼굴로 정원 한가운데에 행렬하고 있는 병사들을 바라보고 계신다.

"개리그 세이버! 메시야 왕령에 대한 반역죄로 즉결 처분한다! 순순히 죽음
을 받아들이라!"

뭐어어엇-?!
말도 안돼! 반역죄라니? 어째서! 난 그런것 전혀 들어본 적도 없고, 아니, 어째서?
개리그 님을 많이 뵙지는 못했지만 인자하시고 반역죄를 도모하실만큼 탐욕스러우신
분도 아니다... 이건... 이건 무언가 잘못되었어!

"꺄아아아아악-!"
"으아아악-!"

비명소리...
순간, 정원에서 일을 하고 있던 하녀와 하인들이 병사들의 창에 피를 흩뿌리며 쓰러
지고 있었다. 나는, 그 자리에 공포에 질려버려 굳어버린듯 서 있다가...

...세리스 아가씨!
문득, 그녀의 이름이 떠올라 나는 바로 자리를 박차고 뛰어갔다. 병사들은, 이 집안
의 모든 사람을 죽이라는 명령을 받았는지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살해하고 있었다.
...말도 안돼, 이런 일이... 있을 수 없어!

탁탁탁...
급히 계단을 두 세칸씩 뛰어 올라, 세리스 아가씨의 방문을 벌컥 열었다.

"아가씨!"
"엔티, 무, 무슨 일이야? 지금 무슨 일이..."

세리스 아가씨는 겁에 질리신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계셨다. 나는, 더이상 지체할
시간이 없어 나는 아가씨의 서랍에 보관해두신 나의 검 - 이름이 새겨진 - 을 집어
든 후, 아가씨의 손목을 잡고 급히 뛰기 시작했다. 어떻게든, 이곳에서 절대로 빠져
나가야 한다. 설사, 내가 죽는다 하더라도. 나는, 그녀의 나이트니까!

"무례를 용서하세요! 하지만 지금은 설명할 시간이 없습니다!"
"에, 엔티..."

조금 힘겹게, 나에게 손을 잡히신채로 따라오시면서 나의 이름을 겁에 질리신 목소
리로 중얼거리셨다. 어쨌든... 지금은, 빠져나가는것만을 생각해야해...

나는, 뛰어 올라왔던 계단을 다시 내려가 급히 뒷문을 열어 젖혔다. 정문쪽에서부터
병사들이 치고 들어왔기에 앞쪽으로 나가는건 자살 행위다.

"이쪽으로."
"으, 으응..."

아가씨를 모시고 나는 다시 급히 뛰기 시작했다. 정원은 상당히 넓어서 빠르게 이
곳을 빠져나가기에는 어려움이 많았다. 더구나, 세리스 아가씨는 나처럼 빠르게 뛰
실수가 없으셨다.

"거기 서라!"
"치잇..!"

앞을 가로막는 병사의 수는 셋. 나는 혀를 차면서 검을 뽑아 들었다. 생전 처음으로
쥐어보는, 진검의 차가운 감촉. 섬뜩한 금속의 빛은 내 눈을 어지럽히면서, 나의 정
신을 어지럽게 했다. 단 한가지, "아가씨를 구해야 한다" 라는 것을 제외하고는.

카아앙-
한 명이 찔러들어오는 창을 검날로 미끄러뜨리며 위로 튕겨내고 돌파하면서 목을 날
려 버렸다. 동시에, 옆구리로 찔러들어오는것을 검을 세워 막아내고 위로 쳐올려 자
세를 흐트러뜨린다음 역시, 목을 날려 버렸다. 무언가 다음 행동을 해야 한다는 생
각따위는 없었다. 단지, 모든것은 본능에 의해 팔과 다리, 그리고 몸이 움직이는것
뿐이였다. 적어도, 그 순간에는.

촤아아아아악-
마지막 병사의 몸에서 피보라가 일고, 따뜻한, 하지만 역한 냄새의 피가 내 온 몸을
적셨다. 그러나 어떻게 할 새도 없이, 시야 확보를 위해 눈 근처만을 손등으로 슥슥
닦아낸 후, 나는 다시 손을 내밀어 아가씨의 손을 쥐고 뛰기 시작했다. 이 지옥과도
같은 곳을 우리는, 빠져나가야만 했다.

"저기 도망간다, 잡아!"

치잇!
눈에 띄어버린건가. 이대로 된 이상... 정면 돌파 뿐.

"가로 막지 마라!"

파카앙- 촤아아아악-
눈앞에서 흩어지는 피보라를 뒤로 한채로, 나는 아가씨의 손을 잡고 정신없이 뛰고
있었다. 그 순간, 모든것은 천천히 흘러가는것만 같았다. 시간도, 영상도, 그리고
내 사고(思考)도.

순간... 엄청난 살기를 느끼면서, 나는 움찔 해 버렸다. 이제까지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묵직한 느낌, 그리고 날아오는 무언가!

퍼억-

"에, 엔티이!"

털썩...
크... 크으으으윽!

"흐음, 생쥐가 있었군. 의외로 잘 싸우긴 했다만."
"...네... 녀석..."

극심한 고통에 나는 입조차 제대로 떨어지지 않았다. 단지 살기에 충만한 눈빛으로,
내 앞을 가로막고 서 있는 한 녀석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녀석의 무기인, 스피어
는 - 무언가 좀 더 특별한 것 같았지만 제대로 보지 못했다 - 완벽하게 나의 왼쪽
어깨를 관통해 지나갔다. 더구나... 그 창에 실린 힘은 대단한 것이여서 내 몸조차
붕 떠서 뒤로 쳐박혀 버렸다...

극심한 고통이라는 비명을 내지르는 왼쪽 어깨를 무시한채로, 나는 자리에서 일어섰
다. 그리고 떨어뜨린 검을 다시 오른손에 강하게 쥐면서, 나는, 녀석에게 달려들었
다. 절대 강자(强者). 나 따위와는 상대도 안될만한 자라는건 나도 알고 있다. 하지
만 이대로 물러서 버리면...  어차피 퇴로는 병사들로 인해 막혀 있다. 이 정도의
상처를 안고 물러서서 다른 병사들을 뚫고 도망가기도 벅찬 것이다.

"아가씨는... 절대로 손 끝 하나 건드릴 수 없어..."
"호오, 시종 주제에 말이 많군."
"나는... 나이트다... 그녀의... 세리스 아가씨의..."

허억... 허억...
고통으로 인해 호흡이 가빠온다. 끝없이 상처에서 흘러내리는 피는, 마치 나의 의지
인것처럼 조금씩 새어나가면서 머리가 텅 비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한 가지만은
절대로 잊을 수 없다... 세리스 아가씨를 이대로... 절대로!

"엔티!"

와락...
달려들려는 나를, 뒤에서부터 아가씨가 감싸안아 달려가지 못하게 했다. 나는, 의아
한 얼굴로 세리스 아가씨를 돌아보았고... 아가씨는, 물방울 맺힌 눈동자를 들어,
간절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계셨다. 그리고, 천천히 고개를 가로젓는 그녀.

"그만해... 나는... 괜찮으니까... 나는..."
"...아가씨, 하지만."

나는 부드럽게 나를 감싼 아가씨의 팔을 풀고, 가볍게 미소를 떠올렸다. 그리고, 나
는, 성당에서 서약식을 할 때의 그 때가 떠올랐다. 살짝 얼굴을 붉히신 채로, 미소
를 떠올리시던 세리스 아가씨가.

"저는 아가씨의 나이트... 아가씨의 안전을 위해 목숨을 바친다고 맹세했습니다."
"엔티... 하지만..."

아가씨는 안타까운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셨다.
우리 주위의 모든 고함과 비명 소리는, 하나의 침묵으로 우리를 탁하게 감싸고 있었
다. 나에게는, 단지 아가씨의 얼굴과, 아가씨의 음성만디 들릴 뿐이였다.

"...간다."
"...좋아. 이름 정도는 주고 받을까. 주인을 위한 그 충성심이 마음에 들었다."
"엔티 레이필드. 세이버 가문의 장녀, 세리스 아가씨의 시종 겸 나이트다."
"제림 슈나이더. 메시야 왕국의 장군이다. 지금 이곳의 지휘관이지."

씨익, 하고 미소 짓는 그의 미소는 명백한 살기와 더불어, 비웃음이 베어 있었다.
나는, 가볍게 숨을 고르면서, 두 손으로 검병 - 검의 손잡이 - 를 단단히 그러쥐었
다. 절대 방심할 수 없는... 아니, 절대 이길 수 없는 상대. 하지만, 나는 이겨야만
했다. 그렇지 않으면, 죽음은 피할 수 없다.

"와라."
"...간다!"

파앗.
땅을 박차고, 있는 힘을 다해 정면을 향해 뛰어갔다. 순식간에 가까워지는 그에게
서, 거대한 위압감을 느꼈지만, 나는 그것을 떨쳐내면서 검을 휘둘렀다.

차카앙-
허공에 불똥이 튀어오르며, 나의 검과 상대의 검이 튕겨오른다. 급히 검을 수습하고
몸을 움츠리며 방어 자세를 취하는것과 동시에 오른쪽 발을 뻗어 그의 가슴으로 파
고들면서 검을 찔러넣었다!

파캉-
으읏...!

"어리숙하군..."

퍼어어억-
...!

"엔티이이이이-!!"

...어깨쪽을 무언가 비집고 들어오는걸 느끼는것과 동시에, 화끈함이 온 몸으로 퍼
져나가고 곧 그것은 무서운 고통으로 화하여 온 몸을 구석구석 태우고 있었다. 그러
나 그것도 잠시... 온 몸의 힘이 빠지면서, 나는 천천히 몸이 무너져가고 있음을 느
꼈다...

안돼... 일어나...! 이대로 쓰러지면... 세리스 아가씨를...
쓰러져 가는 몸을 저주하면서, 어떻게든 바로 서려 했지만, 신체는 나의 의지를 명
백히 배신하고 있었다. 손가락 끝에조차 힘이 들어가지 않아, 꼼짝도 할 수 없다...

이대로 쓰러질 수 없어... 아가씨를...
지켜야 하니까...

.
.

이건, 무엇일까?
또다시 그 때와 같이, 어둠속에 묻혀버린채로, 나는 물끄러미 어둠만을 바라보고 있
다. 온 몸의 감각은 여전히... 아무것도 없다. 단지, 생각만이 존재할 뿐.

아니, 어둠이 아니다.
어둠인듯 하면서도, 하얀 색과 뒤섞여 버린, 흑백과 같은 영상이 눈앞에 번져나가듯
이 스쳐지나가고 있다. 소리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다. 단지, 무언가 싸우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 뿐.

피가 흩어지고, 목이 날아오르며, 팔과 다리가 떨어져 나간다.
잔인한 그 장면을, 아무 생각없이, 나는 가만히 선 채로 그것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아니, 어쩌면 생각하고 있었을 뿐일지도 모른다.

순간.
아가씨의 앞모습이 흐릿하게 나타났다. 미소를 떠올리신채로...

그리고, 누군가가 칼을 휘두른다!
세리스 아가씨는, 피를 허공에 흐트러뜨리시면서... 쓰러 지셨다.

누가 그리하였는지는 보이지 않았지만, 검은 분명히 나를 상대했던 장군의 것.
끔찍한... 말도 되지 않아... 이럴 수가 없어!!

흠짓.
눈을 뜨기도 전에, 나는 손가락 끝에 돌아온 감각으로 내가 정신을 차렸음을 알 수
있었다. 조금씩, 오른손 끝을 움직이면서 서서히 감각이 돌아오게 하고 있었지만...
그와 더불어 무시무시한 고통이 내 몸을 함께 덮치고 있었다.

...하지만.
눈을 뜨고 싶지 않아.

두려웠다.
과연, 눈을 뜨면 어떤 일들이 눈 앞에 펼쳐질지, 너무나도 두려웠다. 그 중에서 무
엇보다도, 세리스 아가씨를 뵙기가 두려웠다...

차라리, 영원한 깊은 잠에 빠지기를 원하면서, 아니면 전에 있었던 일들이 모두 꿈
이기를 간절히 빌면서 나는... 오른 주먹을 꽉 쥐었다.

주먹을 쥐기 위해 오므린 내 손에, 무언가가 잡혔다. 부드럽고, 매끈한 손. 나는 의
심할 것 없이, 그것이 아가씨의 손이라는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아직 따뜻하다는 것이 나의 가슴을 뛰게 하고 있었다.

설마... 설마.
나는, 천천히 눈꺼풀을 밀어 올렸다. 첫번째로 시야에 보인것은, 어두운 회색빛 검
은 하늘. 당장이라도 비가 쏟아질것만 같은 그 하늘을 바라보면서, 나는, 천천히 상
체를 일으켰다.

욱신.
왼쪽 어깨에서 전해지는 극심한 고통에 나는 나도 모르게 얼굴을 찡그렸다. 살짝 고
개를 돌려 어깨를 바라보니, 꽤나 깊은 상처가 난 채로, 피에 흠뻑 젖어 붉게 물들
어 있었다. 지금은 거의 검은 빛으로 변해버렸지만...

나는, 오른손에 쥐어져 있는 아가씨의 손을 놓치 않은채로,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
시키며 천천히,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렸다. 사실, 어깨 상처를 먼저 살폈던것은, 진
정 아가씨의 모습을 보기가 너무 두려웠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
...아가씨.

스윽.
나는 가볍게 아가씨의 손을 잡아 올렸다. 힘없이 올라오는 손은, 붉은 피에 물들어
있다. 그리고... 내가 쥐고 있던 손을 제외한 곳은... 싸늘히 식어 있었다.

...세리스 아가씨.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아가씨를 바라보았다. 피에 물들으신채로, 하지만 가지런히
누워계신 세리스 아가씨의 모습을... 나는...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어째서, 웃고 계신거예요.
나는 그 말을 중얼거리면서... 이를 악 물었다. 당장이라도 울음이 터져나올 것만
같았다. 입안이 짜릿짜릿하고, 눈은 매웠다... 머릿속은 텅 비어버린것처럼 아무런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고 세상은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 나,  세이버 가문의 장녀, 세리스 세이버는 지금부터 엔티 레이필드를 나의 하나  
  뿐인 기사로 임명하노라. 나는 그에게 보호받을 권리가 있으며 그는 나에게 충성  
  할 의무가 있기에 이것을 묻나니, 엔티 레이필드, 그대는 나에게 충성하겠는가?"
- ...아가씨.
- 다시 한번 묻노니, 엔티 레이필드, 그대는 나에게 충성하겠는가?
- 아, 네, 세리스 아가씨.

...영화처럼, 한순간 머릿속에 전에 있던 서약식이 스쳐지나갔다.
툭, 투둑. 두 개의 따뜻한 물방울이, 아가씨를 앞에 두고 무릎꿇고 앉아 있는 나의
두 주먹 위에 떨구어 진다. 그리고, 그것도 잠시, 물방울은 많아지더니, 그것은 곧
빗줄기가 되어 차갑게 쏟아지고 있었다...

- 세리스 세이버, 귀하는 엔티 레이필드를 나이트로 받아들이시겠습니까?
- ...네.
- 엔티 레이필드, 귀하는 세리스 세이버를 보호할 의무로써 그녀의 안전을 위해 목  
  숨을 바칠 각오가 되어 있습니까?
- ...네.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어요 아가씨...
당신을 보호해야 할... 목숨을 바쳐 보호해야 할 나는 이렇게 살아남아 버렸고...
당신은 싸늘하게 식어 버리셔습니다... 나는... 이 못난 저를... 저는.... 아가씨
를.... 사랑했는데... 그것을...

"아가씨... 세리스 아가씨..."

쉬어버리고 갈라진 목소리...
내 귓가에는... 비가 쏟아지는 소리만이 머물고 있을 뿐이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나의 고함은, 어두운 하늘속으로 스러지듯 사라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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