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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도시 기록보관소

판타지 Fate [Prologue]

2005.06.29 05:54

SoranoChki 조회 수:28 추천: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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쏴아아아아아-
나는 방  안에서 들려오는 - 정확하게 말하면 샤워실 - 물소리를 들으면서, 두 손으
로  아가씨의   갈아입으실  옷을 받쳐 든채로 문에 등을 맞대고 서 있었다. 어차피
시종으로서의  기본적인 의무는 주인을 모시는 거라서, 이런 일을 한다 하더라도 별
로 딱히 나쁜 기분이 들리는 없다.

잠시 아무생각없이, 그렇게 선 채로 물끄러미 천장을 올려보았다. 아가씨의 방은 역
시 내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크고 - 나는 이제 시종이기 때문에 간호 받던
그  화려한 방을 쓸 수 없다 - 또 아름답기도 해서 잠시 이렇게 바라보기만 해도 왠
지 기분이 좋아진다.

달칵.
가벼운  문소리와  함께, 하얀 손만이 내 앞으로 뻗어왔다. 물론, 문에서 등을 돌린
상태이기에  아가씨의  모습을 볼 수 있을린 없다. 나는 가볍게 아가씨의 손에 옷을
쥐어드리고는,  문득 생각이 난 것이 하나 있어 잠시 주저하다가, 조금 어렵게 입을
열었다.

"아가씨."
"응?"

그 동안 페이 아가씨에게 받은 그 검을 사용하지 않고 연습을 위해 목검만 사용했기
에 이제야 생각난거지만, 검에 새겨져 있는 내 이름에 대해서는 상당히 궁금한 점이
많았다.

"저어, 전에 페이 아가씨가 검을 하나 주셨는데요."
"응...?"

사락, 사락.
몸의 물기를 닦고 계신지 가볍게 천의 스치는 소리가 귓가에 들려온다. 얼굴을 돌려
볼 용기는 없었지만 아무튼 아가씨의 모습이 머리에 떠올라버려 나도 모르게 얼굴을
잔뜩 붉히고 말았다.

"아, 엔티. 목이 붉어졌어."
"아, 아... 그건."

얼굴  뿐만이 아니라 목까지 붉게 물들은 모양이다! 설마 아가씨가 눈치 채버리는것
은... 아무튼 무언가 변명을 해야 하는데 머릿속이 복잡해 지는 바람에 무엇을 말해
야 할 지 조차 혼란스러웠다.

"그... 그, 페이 아가씨가 검을 하나 주셨어요..."
"그건 이미 말했어."

뜨끔.
무언가 할 말을 찾다 보니 아까 했던 말을 또 해버린 모양이다.

"아, 네. 그런데 그 검에 제 이름이 새겨져 있어서..."
"...에?"

아가씨의 놀란 대꾸가 들려오고, 그것 때문인지 몸을 닦는 소리가 멈추었다. 그러나
곧 아무말 없이 몸을 마저 닦으시고 옷을 입으시는지 다시 사락 거리는 소리가 들려
오지만 여전히 말은 없으셨다.

"그 이름, 어떻게 쓰여 있는데?"
"음각으로 파여 있고 금빛으로 쓰여져 있습니다."
"아... 페이, 정말."

세리스  아가씨는 한숨섞인 목소리로 중얼거리신다. 무언가 곤란한 것이 있다는것은
분명했지만 과연 그것이 무엇인지 역시 내가 알 턱이 없다.

"돌아봐도 괜찮아."
"아, 네."

슥 하고 고개를 돌려보니, 아직 머리칼엔 물기가 남아이는 아가씨가 가슴에 있는 리
본을 메고 계셨다. 아까 내가 들고 있어 잘 개어져 있을때는 몰랐지만, 아가씨가 입
으신  드레스는  굉장히 아름다운 것이였다. 역시 나 같은 평민은 꿈도 꾸지 못했던
아름다운 문양과 장식이 달려 있다. 물론, 그것보다도 더욱 아름다운건 역시 아가씨
셨지만.

"그 검, 아직 주어선 안되는건데..."
"...?"
"그  검은, 내가 엔티를 정식으로 내 기사로 인정할 때 하사하는 검이야. 보통은 시
종과 기사는 따로 두지만 - 보통 시종이 기사만큼 강할 수 없으니까 - 나는... 엔티
가 내 기사가 되어주었으면 했거든. 그래서 미리 준비해 둔건데..."
"하지만, 저같은 미천한 신분이 어찌 아가씨의 기사가..."

나는  한쪽  무릎을 꿇고 황급히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내가 느끼기에도 내 목소리
는, 이상하리만큼 떨리고 있었다. 세리스 아가씨는 나를 이 정도로 생각해 주셨던것
인가. 왠지 가슴이 뜨거워져 왔다. 그리고, 순간적으로 떠오르는, 이곳에 와서 처음
으로 눈을 떴을때 보았던 아가씨의 따뜻한 미소.

"손을..."

세리스 아가씨의 한마디와 함께, 고개를 숙이고 있는 내 눈 앞에, 아가씨의 흰 손등
이  내밀어졌다. 나는 아가씨가 말씀하신 뜻을 알 수 없어 고개를 들어 아가씨를 잠
깐 바라보았지만 곧 무엄하다는 것을 깨닫고 다시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괜찮아, 손을 잡아줘."
"...이렇게 말입니까?"

나는  부드럽게 아가씨의 손을 두 손으로 감싸쥐었다. 이미 아가씨에게 양해를 구했
기  때문에, 나는 눈을 들어 아가씨를 바라보았다. 세리스 아가씨는, 잔잔한 미소를
입가에 떠올리신채로, 살짝 눈을 내리깐채로 나를 바라보고 계셨다.

"나,  세이버 가문의 장녀, 세리스 세이버는 지금부터 엔티 레이필드를 나의 하나뿐
인 기사로 임명하노라. 나는 그에게 보호받을 권리가 있으며 그는 나에게 충성할 의
무가 있기에 이것을 묻나니, 엔티 레이필드, 그대는 나에게 충성하겠는가?"
"...아가씨."

잠시,  말문이 막혀버렸다. 설마 그것을 이렇게 지금... 나는 잠시 흔들리는 눈동자
를 감추지 못한채로, 잠시 아무말도 하지 못했다.

"...다시 한번 묻나니, 엔티 레이필드, 그대는 나에게 충성하겠는가?"
"아, 네, 세리스 아가씨."

얼떨결에  대답한  내 대답에 세리스 아가씨는 풋, 하고 고개를 돌려 입을 가리시곤
웃음을 터뜨려 버리셨다. 나는 무언가 실수한 것 같아 당황한 얼굴로 그녀를 올려보
자 세리스 아가씨는 눈웃음을 지우지 못하신채로 미안하다는 표정으로 입을 여신다.

"미, 미안. 하지만, 엔티. 지금은 좀 더 엄숙하게 선언해야 하는거야."
"...네?"
"으응,  엔티는  아직 기사로서의 수업을 받지 못했으니 모르는것도 무리가 아니지.
괜찮아, 그 대답으로."

부드러운  아가씨의 목소리에 나는 부끄러움에 조금 얼굴을 붉혀 버렸다. 그런것 조
차  모르면서 아가씨의 기사가 되겠다고 멋대로 선언해 버리다니... 나는 고개를 푹
숙인채로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미안,  좀 더 사람들이 많은곳에서 멋지게 선언해야 하는데. 사실 기사를 정하는건
우리  가문 사람들에게 있어 대단히 중요한 행사이고, 또 중요한 날이야. 하지만 엔
티가 이미 검을 받아버려서, 미루는것도 좋지 않을 것 같고."
"...감사드립니다."

그녀의 따뜻한 배려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숙이며 대꾸했다.

"아, 미안, 엔티, 그런데... 손이 조금."
"앗, 죄, 죄송합니다."

나는  황급히 손을 놓았다. 하지만 아가씨의 손은 내가 너무 꽉 쥐어서인지 붉게 물
들어 있어 아가씨에게 죄송스러운 마음을 감출 길이 없었다. 급히 고개를 더욱 숙이
며 용서를 빌었지만, 아가씨는 단지 따뜻한 미소로 괜찮다고 말씀해 주실 뿐이였다.

그  후 아가씨는 나에게 간단한 심부름을 부탁하셨는데 - 절대 부탁이다. 다른 분들
의  명령과는 달리. - 페이 아가씨에게 갖다드릴 물건들을 건네주셨다. 세리스 아가
씨가  건네주신건 몇 권의 책이였는데, 그 순간 아가씨는 무언가 생각이 나셨다는듯
다시 책장에 가셔서 몇 권의 책을 더 골라 오셨다.

"아까 준 것은 말했듯이 페이에게 전해주고, 지금 내가 주는것은 엔티에게 빌려주는
것들이야. 엔티는 아직 글을 잘 모르니까, 공부 해 두는것이 좋을거라 생각해. 검술
과 함께 하는것이라 힘들겠지만, 조금만 더 노력해줘."
"네, 아가씨."

나는  기쁘게 대답하고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아가씨의 따뜻한 배려가 그대로 마음
에  와 닿는것 같아 매우 즐거웠다. 나는, 데스타인 마을에서 사람들의 접촉조차 힘들
었기 때문에 글을 잘 알 턱이 없었다. 그런 나를 위해 아가씨는 따로 책들을 빌려주
시는 것이였다. 나는 다시한번 깊이 감사드린 뒤, 아가씨의 방을 나섰다.

"에엣- 교양 과목?!"

페이 아가씨의 방에 노크를 하고 들어가 책을 건네드리자마자 페이 아가씨가 당황한
높은  목소리로 외치신 말은 바로 그것이였다. 물론 나는 세리스 아가씨가 건네주신
책들의 표지조차 보지 않았기에 - 적어도 페이 아가씨에게 건네드려야 하는것들은 -
교양에 관련된 것이였는지 조차 알고 있지 않았다.

"아아- 정말 싫다니까. 교양따위 배우고 싶지 않은데- 그 선생도 싫고."
"하지만 세리스 아가씨가 따로 배려해 주시는것이니까요."

나의 말에 페이 아가씨는 나를 잠시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흥, 하고 코웃음을 치시더
니 비꼬는 말투로 입을 여신다.

"뭐,  그래. 엔티는 세리스 언니를 좋아하니까 언니가 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지 좋
아보이겠지, 안그래?"
"무슨 그런 말씀을..."

나는 곤란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그러나 페이 아가씨는 더 이상 그것에 대해 신경쓰
고  싶지 않은지 풀썩- 하고 침대에 몸을 던져 누우시더니 휘휘 손을 흔드시며 내게
말했다.

"알겠으니까 가봐."
"...네."

나는  가볍게  고개를 숙이고 페이 아가씨의 방을 빠져나왔다. 아직 손에 남아 있는
책  다섯  권. 분량은 결코 적은 편은 아니지만, 한시라도 빨리 읽어보고 싶어 나는
급한 발걸음으로 내 방을 향했다. 조금 황급히 걷는 나를 의아하게 바라보는 시종들
도  있었지만 그런건 무시하고, 허겁지겁 내 방으로 들어가 책을 책상위에 내려놓고
한 권을 집어 들었다.

"...[메시야 왕국의 역사], 인가."

가볍게  그 이름을 중얼거리고서는, 딱딱한 표지를 넘겼다. 생각보다 훨씬 빽빽하게
적혀  있는 글들은, 보기에 조금 곤란해 보이기는 했지만 나름대로 열심히 읽어내려
가기 시작했다. 어떻게 해서든, 아가씨의 배려를 헛되게 해서는 안되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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