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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도시 기록보관소

판타지 Fate [탈출]

2005.07.04 05:03

SoranoChki 조회 수:29 추천: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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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티씨가 더 강하다고!"
"아냐, 루아즈씨가 더 강해!

...뭐지, 저건. 나는 길드 내의 바에서 술잔을 기울이다가 버럭 들려온 목소리에 힐
끔 고개를 돌렸다. 비단 누군가 고함을 질렀다는 사실이기보다는, 나와 루아즈의 이
름이 그 토론에 들어갔기 때문일 것이다. 어찌되었든 누군가 나의 이야기를 한다는
건 흥미로운 사실임에 틀림 없다.

사실 내가 있는걸 알고 저렇게 싸울리가 없다. 어차피 앞으로 이 길드에서 오랜 시
간동안 생활 할, 아직 훈련생들인 꼬마 아이들. 대략 15-16 세 정도 되었을까. 왠지
옛날의 나 자신이 생각나서, 나도 모르게 쓴웃음을 떠올려 버렸다.

다른 사람들도 그저 아이들의 말다툼에 다들 쓴웃음을 떠올릴 뿐, 딱히 그 토론에
끼어드려 하지 않는다. 사실 길드내에서 누가 가장 강하다, 아니다를 가리는건 꽤나
까다로운 일 중 하나다. 그 과정에서 누군가의 자존심을 뭉개버릴 수도 있고, 혹은
자만심에 빠져들어 스스로의 마음가짐을 망칠수도 있으니까. 그러나 그보다도 자신
의 주변에 흘러다니는 소문이 더욱 상황을 어렵게 만든다.

"무슨 이야기를 하고들 있는거냐."

스윽.
나는 가볍게 두 꼬마 녀석의 머리위에 손을 얹으며 물었다. 갑작스럽게 불쑥 나타난
나 때문에, 더구나 그 사람이 바로 자신들이 입에 담고 있던 그 사람이라는데에 더
욱 놀라버린 모습이다. 잠시 당황하는 모습으로 어쩔줄 몰라하며 나를 바라보던 중,
왼쪽에 있던 꼬마가 입을 연다.

"에, 엔티씨!"
"...?"

무언가 물어볼까 말까 강렬히 고뇌하는 표정이 얼굴에 역력하다. 이 녀석이 바로 아
까전에 루아즈보다 내가 더 강하다고 했던 녀석이다. 나는 별다른 표정없이 그 녀석
을 내려보자, 꼬마는 용기를 얻었는지 두 주먹을 꾹 쥐며 묻는다.

"엔티씨는, 저희 블루 시드(Blue Seed) 길드 내에서 최강이시죠?!"
"......"
"겨우 21세의 나이에 블루 시드의 S 랭커가 되셨잖아요? 더구나 절대로 물러서시지
않고 덤비는 모든 적들을 베어나가시는게 정말 대단하시다구요!"
"...곤란해, 그런 말은."

나는 가볍게 녀석의 머리를 좀 더 강하게 헝크러뜨리며 대꾸했다. 이미 길드 내에서
문제가 되었던 사실이였지만, 솔직히 나는 암살자로서 실격일지도 모른다. 암살이
아닌 정면 대결을 하는 암살자 따위라니... 웃기지도 않는 일이다.

"하지만, 엔티씨는 너무 모습을 드러내셔서 추적 받기도 쉽기 때문에 결국 길드에까
지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구요."

루아즈 녀석을 변호하던 꼬마 아이는, 나를 바로 앞에 두어서 인지 그리 자신감 있
는 목소리로 말하지 않지만 자신의 의견을 또박또박 전한다. 그 의견의 이유도 그럴
듯해서, 나는 싱긋 웃으면서 가볍게 고개를 끄덕여 버렸다.

"확실히 너의 말대로군."
"하지만, 엔티씨는 그런 추적 따위도 뿌리칠 수 있는 대단하신 분이라서 괜찮아!"
"...그건, 너무 과찬인걸."

흐음, 하고 가볍게 신음을 흘리면서 나는 대꾸했다. 그런 나의 말에 나를 응원하던
녀석은 에에, 하면서 조금 풀죽은 목소리로 대꾸했다. 내가 맞장구 쳐주지 않아서
그런건가. 뭐, 그게 꼬마 아이들의 생각이겠지만.

"어- 이, 엔티씨, 꼬마 아이들이랑 그만 놀고 한 잔 하죠."

테이블에 앉아 있던 한 녀석이 가볍게 술잔을 들며 나를 부른다. 물론 나로서는 잘
알고 있는 녀석은 아니지만, 같은 길드 소속이라는 동료 의식으로 술 한잔 나누는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나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몸을 돌려 테이블로 가
려던 순간, 나를 응원하던 꼬마가 급히 말을 한다.

"에, 엔티씨!"
"...?"
"저, 저어-"

무언가 또다시 우물쭈물하면서, 말을 꺼내지 못하는 꼬마. 나는 다시 몸을 완전히
돌려 그 꼬마를 물끄러미 바라보자, 꼬마 녀석은 다시 자신 있는 얼굴로 입을 열어
말을 잇는다.

"에, 엔티씨의 검, 꼭 한 번 보고 싶었어요!"
"...내 검을?"

나의 말에 꼬마는 크게 고개를 끄덕인다. 나는 잠시 흠, 하고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가 허리에 고정시켜 놓은 검의 고정핀을 풀고 벨트를 끌러서 녀석에게 검집채로 넘
겨 주었다. 꼬마는 내 검을 받아들고는 정말 신나는 얼굴로 이리저리 돌려보고 있
다. 그러다가, 갑자기 시선을 한 곳에 고정한다.

"아, 엔티 씨의 이름이네요?"

검에 음각으로 새겨져 있는 나의 이름을 발견한 모양이다. 숨겨져 있는것도 아니라
서 그리 찾기 어려운건 아니지만, 나는 쓴웃음을 떠올리며 손을 내밀어 검을 돌려달
라는 표현을 했다. 꼬마도 눈치가 있어서 검을 나에게 돌려주며 꾸벅, 깊게 머리를
숙여 인사를 한다.

"존경하고 있어요, 엔티씨. 저도 꼭 엔티씨 같은 사람이 될겁니다!"
"...기대하지. 이왕이면 나 정도는 능가해줘."
"아, 네, 네에! 감사합니다! 제 이름은 "슈란" 이라고 해요."

꾸벅, 하고 다시 깊게 머리를 숙이는 녀석을 뒤로 한채로 나는 아까 나를 부른 녀석
의 테이블로 가서 털썩 주저 앉았다. 도적의 전형적인 모습인 머리에 두건을 두른
그 녀석은, 입에 이쑤시개를 문 채로 우물거리며 입을 연다.

"역시, 엔티씨는 적어도 길드 내에서는 어딜가도 유명인이군요."
"...별로 신경쓰지 않아."

나는, 무의식적으로 검집에 음각으로 새겨져 있는 내 이름을 엄지 손가락으로 문지
르며 전해지는 그 익숙한 감촉을 느끼고 있었다. 조금 마음이 불안해지면, 언젠나
나오는 습관이다. 검집에 새겨진 이름을 만지작 거리는건.

"저도 검을 한 번 보아도 괜찮겠습니까?"
"안돼."
"에- 차갑잖아요, 엔티씨. 꼬마 아이들에게는 보여주셨으면서."

녀석은 툴툴 거리면서도, 입가에 떠올라 있는 미소를 잃지 않는다. 왠지 능글능글
한, 낙천적인 성격이랄까. 그리 나쁜 성격은 아니지만 이런 타입은 얼굴에 표정을
드러내지 않는 차가운 사람보다 더 성격을 알기가 힘들다. 때문에 경계할 필요도
있는건 당연한거고. 나는 녀석이 건네주는 맥주잔을 받아들며 그 잔에 맥주를 채워
넣기 시작했다.

"전의 일은 멋지게 처리하셨더군요."
"......"

나는 녀석의 말에,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는걸로 대답을 대신했다. 사실 맥주를 마시
고 있던 중이여서 그럴 수 밖에 없었지만. 녀석은 잠시 나를 흥미롭다는 얼굴로 바
라보더니 묻는다.

"아무튼, 그런 식으로 일을 처리하시는데도 별다른 사고도 없이 일들을 성공하시키
신다니 신기할 따름입니다."
"......"
"루아즈씨와 비교될 만도 하지요. 그 분도 길드내 S 랭커이시고, 엔티씨와 더불어
최강의 해결사 중 한명이니까요. 뭐, 물론 나이야 엔티씨가 더 적으십니다만."

녀석은 나의 대꾸 없이도 피식피식 웃으면서 말을 잇는다. 마치 혼자서 말하고 혼자
웃어버리는 상황이다. 뭐, 그리 신경쓰지 않지만, 나는 나의 목젖을 시원하게 적셔
줄 맥주만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요즘 길드를 탈퇴하실거라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헛소리야."

나는 딱 잘라 말했다.
전의 임무 성공으로 길드 마스터와 루아즈에게서 페이 아가씨의 행방을 쫓는 일을
정식으로 허락받았기에 더이상 은밀하게 진행시킬 필요도 없고, 솔직히 이곳만큼 뛰
어난 정보망을 가진 길드도 찾아보기 힘들기에 일단은 이곳에 머물기로 했다. 페이
아가씨를 찾는다면 물론 이야기는 달라지지만 말이다.

"그런가요? 흐음, 하여튼 저희로서도 S 랭커를 잃는다면 그것도 문제지요. 손실이기
도 하구요."
"...하고 싶은 말은?"
"이야- 이렇게 차갑게 나오지 마시라구요."

녀석은 능글맞은 미소를 떠올리며 대꾸했다.
나는 컵을 기울여 맥주를 마시면서 녀석을 흘겨보듯 노려보았지만, 녀석은 별달리
상관치 않는 얼굴이다. 확실히, 무언가 할 말이 있는듯이 보이긴 하지만.

"저번의 임무 성공으로 보상 대신 다른걸 받으셨죠?"
"......"

별달리 대꾸할 말이 없다.
그리고, 그리 말을 퍼뜨려서 좋을 일도 없기에 나는 입울 다물었다.

"페이 세이버, 그녀의 행방을 말입니다."
"...너, 정체가 뭐야."

날카롭게 눈을 뜨며 녀석에게 묻자, 그는 아하핫- 하고 가볍게 웃음을 터뜨리곤 곤
란한 목소리로 입을 연다.

"이곳, 블루 시드의 중간 정보원이죠."
"...그래서?"
"일단 상부로 보고가 된 후 엔티씨에게 그 결과가 가겠지요."
"...혹시, 그녀를 찾은건가?"

나의 물음에, 녀석은 싱글싱글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인다.
...확실히, 길드 차원에서 나서니 사건의 해결이 빠르군. 하지만.

"어디냐."
"이런, 상부 보고가 먼저 입니다. 이미 보고는 했으니 얼마 후에 그 결과가 갈테니
걱정 마십시오."

녀석의 느긋한 말에 나는 잠시 녀석을 날카롭게 노려보았다.
그러나 그는 주눅든 모습 없이 여유있게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가야겠군."

드르륵.
가볍게 의자를 뒤로 밀며 자리에서 일어나 구석의 통로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어두
컴컴해 보이는 그 통로의 끝의 비밀문 너머에는, 현재 내가 속해 있는 블루 시드의
길드 마스터, 패터른이 버티고 앉아 있다. 보고가 갔다면 벌써 갔을것이 뻔한일.

직접 물어보는것이 빠를것이다.
나는 그렇게 결정하고 어두운 복도속으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
.

어두운 통로를 따라 쭈욱 이동하던 중에, 역시나 삼언한 경계의 제지를 몇 번 받긴
했지만 그들은 나인것을 금방 알아채고 길을 터주었다. 몇 번의 검사를 거치고 다시
한번 불빛 하나 없는 통로를 지나, 겨우 도착하게 된 곳은 바로 이곳, 길드 마스터
페터른이 머무르는 방의 문 앞이다.

이곳을 올때마다 생각하는것이지만, 녀석은 이곳까지 오는 길을 까다롭게 만들어 놓
았다. 사실 전(前) 길드 마스터 페이튼 씨는 항상 자신의 길드원들과 지내며 항상
함께 했지만, 지금의 녀석은 꼭꼭 숨어 있는것이 전부다. 뭐, 확신은 아니지만 페터
른 녀석이 페이튼 씨를 제거했다는 의심은 여전히 떨칠 수가 없으니까. 그리고 혹시
나 그것이 사실이라면, 녀석이 숨어지내는것은 더욱 더 설명이 잘 된다. 혹시라도
있을 암살을 대비하기 위해서겠지. 그것도 내부로부터의 암살을.

개인적으로 녀석이 가장 겁내하는것은 다름아닌 나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것도 그
럴것이 나는 페이튼씨에게 직접 훈련을 받았고 - 그것은 루아즈도 마찬가지만 - 그
를 몹시 따르던 녀석 중 하나이기에, 녀석은 항상 혹시라도 자신을 어찌 할 지 모른
다는 불안감에 휩싸인듯한 모습이였다. 솔직히 이 길드 내부에서 나를 막을 수 있는
자는 몇이나 될까.

항상 목에 칼이 들이밀어져 있는듯한 기분이겠지. 나는 잠시 그런 생각을 하면서 피
식 웃어 버렸다. 나에게 그런 공포를 느끼는건가, 페터른 녀석은.

끼이익.
가볍게 문을 열자, 그 안에는 언제나 깔끔한 방이 하나 있고, 그리고 그 한 가운데
에 책상앞에 앉아 있는 페이른 녀석을 보면서 나는 가볍게 혀를 찼다. 작전 참모로
서는 머리가 좋아 훌륭한 녀석이지만, 절대적인 리더쉽이 없어서 길드 전체를 이끌
기엔 부족함이 많은 녀석이다. 지금도 책상위에 무언가를 펼쳐놓고 사업 구상을 하
던 모양인지 잔뜩 종이가 널부러져 있다.

"아, 엔티. 왔군."
"안녕하십니까."
"그래서, 용무는?"
"보고가 올라왔다고 들었습니다. 페이 세이버에 대한."

나의 말에 페이른은 가볍게 미소를 머금는다. 절대로 친절한 미소는 아니다. 하여튼
녀석은 두 손을 깍지낀채로 아무말 없이 있다가 천천히 입을 연다.

"분명히."
"알려 주십시오."
"그 전에 한가지 묻지. 만약 그녀의 행방을 알게 된다면, 어찌할 생각이지?"

그의 날카로운 물음에 나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지금 이 상황은, 그리 좋은 느낌은
아니다. 분명히 나를 감싸고 있는 살기가 사방에 충만해 있는 것이다. 나의 대답에
따라 그것은 사라질수도, 혹은 더욱 강렬해 질 수도 있다. 하지만.

"떠날 생각입니다."
"...그런가. 마음을 바꾸진 않겠지?"

녀석의 물음은, 마음을 바꾸도록 권유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바꾸지 않도록 다시
한번 다짐을 받아두는 형식이었다. 즉, 내가 다시 이 길드에 들어오는것을 원하지
않는다는 것을 명백히 드러내는 말이였다. 나는 잠시 물끄러미 그를 보다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돌아오지 않을겁니다."
"그런가..."

그는, 웃음을 떠올렸다. 보기에도 역겨운듯한, 그런 미소를 입꼬리를 치켜 올리며
짓고 있었다. 동시에, 나는 강렬한 살기를 느끼면서 허리를 완전히 꺾었다.

파카앙-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허공을,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나의 은발 머리칼을 몇 가닥
베어낸 단도는 바닥에 둔탁한 소리와 함께 꽂혔다. 나는 천천히 여유있게 허리를 고
추세워, 나를 공격한 자를 바라보았다.

"...결국, 제거하겠다는건가."

나는 나를 둘러싸고 있는 수 명 너머로 여전히 책상에 앉아 있는 페터른에게 차가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더 이상 길드 마스터에게 예의를 갖출 필요는 없겠지. 만약
내가 진다면, 살아남을 수 없을것이고, 만약 내가 이긴다면 이곳을 떠나니까, 어떤
상황이든간에 그의 역겨운 얼굴을 마주보지 않게 된다. 왠지 마음에 드는걸.

...그것보다도.
어둠속에서 베어나오는듯이 소리없이 나를 둘러싼 넷을 천천히 살펴 보았다. 확실히
나를 제거하기에는 부족함이 없는 녀석들이긴 하다. 둘은 S 랭커, 나머지 둘은 A 랭
커들이다. 그리고 S 랭커 중의 한 명은, 루아즈 녀석 이다.

"이런식으로 실력을 겨루게 되다니 말이야."

스윽.
가볍게 검날을 훑으면서, 여전히 장난스런 얼굴로 대꾸하는 루아즈. 녀석의 너절한
턱수염은, 깨끗이 다듬어져 있다. 별로 신경쓸만한 상황은 아니지만, 녀석이 면도를
하는건 녀석과 지낸 수 년 동안 거의 처음 보는 일이였다.

"이곳에서 뛰쳐나가 적이 되는 S 랭커를 그냥 둘 순 없겠지. 아깝긴 하지만."

페터른은 재수없는 목소리로 그렇게 입을 열었다. 나는, 나를 둘러싼 네 명을 무시
하듯 책상에 앉아 있는 그를 향해 날카로운 눈빛을 쏘아붙였다. 그러나 나의 그런
시선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는다는듯이, 페터른의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운 오른손이
천천히 허공을 향해 올라갔다. 그리고, 그것을 아래로 내리는 순간.

차카앙- 카카앙-
연속적인 금속의 타격음과 함께, 나는 나를 향해 달려드는 네 개의 검을 모두 튕겨
내었다. 세 명은 그 반동으로 인해 주춤, 하면서 뒤로 물러서지만 역시 루아즈는 별
충격없이 나에게 바짝 붙으며 검을 휘두른다.

급히 몸을 움츠리며 방어자세를 취하고 뒤로 물러서지만, 녀석은 정확하게 나의 스
텝을 따라 밟으며 거리를 좁히지도, 벌리지도 않았다. 일단 목숨을 위해서라면 이곳
에서 빠져나가는것이 우선이겠지만, 그렇게 되면 페이 아가씨의 소식은 전혀 알 수
가 없다.

카앙-
뒤에서부터 암습 해오는 녀석의 검을 위로 튕겨 올린후 팔꿈치로 얼굴을 찍어 버린
다. 아윽, 하는 가벼운 신음 소리와 함께 나가 떨어지는 녀석을 보아줄 시간도 없이
눈앞에 육박해 오는 다섯개의 단검에 집중할 수 밖에 없었다.

카앙- 캉- 타앙-
허공에 불똥이 튀어오르면서 다섯개의 단검을 어지러히 튕겨낸다. 그리고 생각할 여
유도 없이 옆에서부터 치고 들어오는 녀석의 검을 몸을 회전시켜 피해냄과 동시에
검 역시 넓게 휘둘러 회피를 위한 공간을 확보해 둔다.

순간적으로, 빠른 움직임과 함께 눈 앞으로 육박해 오는 루아즈!

콰앙-
크, 크윽! 벽에 멋대로 밀어붙여져 버리다니! 벗어나야 하는... 아?

덜커덩.
털썩-

뭐, 뭐야.
나는 갑작스럽게 찾아온 어둠에 당황하면서 바로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동시에 들
려오는 루아즈의 목소리.

"뛰어, 멍청아."
"지금, 뭐가 어떻게 된거야?"
"길드 마스터의 비상 탈출로다. 벽에 숨겨진건데 내가 일부러 이쪽으로 몰아붙인거
야. 빨리 가자구. 더이상 노닥거릴 시간이 없어."

어둠에 빠르게 눈이 익숙해지면서, 길게 난 통로를 따라 나는 루아즈와 함께 달리고
있었다. 멋대로 울려버리는 소리에 귀가 멍할 지경이지만, 지금은 그런걸 따질 때가
아니다.

"루아즈, 어째서 이런 짓을?"
"...마음에 안든다고, 저 녀석은. 페이튼씨가 훨씬 나아."

녀석은, 이제는 깔끔하게 다듬어진 턱을 만지작 거리면서 웃음으로 꾸했다. 뭔가
허전한 느낌이겠지, 저 녀석도. 나는 가볍게 웃고는 다시 정면을 바라보며 정신없이
뛰고 있었다.

"이걸로 블루 시드는 한 명이 아니라 두 명의 S 랭커를 잃는군."

루아즈 녀석의 장난스런 말투에 나는 별다른 대꾸를 하지 않았다. 딱히 별로 그런걸
따질 상황도 아니지만서도, 이제 눈 앞에 막다른 벽이 보였기 때문이다. 나는 그것
이 점점 다가옴에 따라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중이 였는데, 루아즈 녀석은 거의 벽
에 다다렀음에도 불구하고 뛰는 속도를 늦추지 않기에 나도 그저 뛰고만 있었다.

"우랴아아아앗-!"

콰아아아아앙-
바, 바보같잖아! 녀석은 달려가던 힘을 실어 발로 벽을 걷어 차니 콰앙- 하고 부서
져 나간다. 잠시 어리벙벙하게 있었는데, 알고보니 그것은 벽이 아니라 나무판이였
다. 그것을 알게된건 벽이 생각보다 얇았다는 사실 때문이였지만. 어찌되었든 우리
가 나온곳은 다름아닌 낡은 집 안이였는데, 이 폐가는 바로 골목으로 연결되어 있어
탈출하기에는 최적인 듯 싶었다.

"자, 잠깐."

나는 가볍게 입을 열고 몸을 돌렸다. 나의 의외의 행동에 루아즈는 깜짝 놀라면서
내 어깨를 붙잡는다.

"왜그래?"
"페이 세이버에 대한 정보를..."
"그건 내가 가지고 있어."

피식, 웃으면서 품에서 종이 한 장을 꺼내드는 녀석. 나는 잠시 어리벙벙하게 녀석
을 바라보다가 홱, 하고 그것을 낚아 챘다. 무엇보다도 급한 일은, 페이 아가씨의
정보를 아는 것이였기에.

"그것 참, 고맙다는 말 정도는 하라구."
"아아, 고마워."
"성의 없기는."

쩝, 하고 입맛을 다시면서 툴툴 거리던 루아즈는 벽에 기댄채로 풀썩, 하고 자리에
주저앉는다. 그리 힘들어 보이는 기색은 없지만 말이다.

"...아가씨가, 이 곳에?"
"아아. 조금은 의외라고 할까. 나도 처음엔 놀랐다만."

녀석은 그렇게 대꾸하면서 주머니를 뒤적거린다. 녀석은 언제나는 아니지만 담배를
자주 피워대는 녀석이였고, 나는 그것을 몹시 싫어했다. 아무튼, 지금은 그런걸 따
질 상황은 아니기에 나는 종이를 가볍게 구겨쥐며 물었다.

"넌 어떻게 할거지?"
"글쎄. 당분간은 동행할 지도 모르겠군. 혹은 아니던가."
"대답이 애매하잖아."

나의 곤란한 물음에 루아즈는 풋, 하고 웃으며 담배를 입에 물고 불을 붙인다. 추적
이 오는것을 걱정하지 않는것은 아니지만, 그리 신경쓰일것도 없다. 나와 루아즈가
함께라면 말이다. 그 점이 바로 우리를 이런 여유 속에 있게 해 주는 것이겠지만.

"가자."
"갈건가?"
"아아. 엔티라는 녀석은 혼자 버려두면 항상 칭얼거리면서 울먹여서 말이야."
"...멋대로 말 하지 말라고."
"녀석."

씨익, 웃으면서 루아즈는 내 머리에 턱, 하고 손을 올려 놓는다. 인정하고 싶진 않
지만 녀석은 나보다도 키가 더 크다. 그것도 조금 많이. 나도 작은 편은 아닌데, 루
아즈는 거인이라고 불리기에 손색이 없을정도로 키가 몹시 큰 편이였다.

"그럼, 가 볼까."

툭, 하고 어깨를 치고 먼저 골목으로 나서는 루아즈의 뒷모습을 보면서, 나도 조금
바쁜 발걸음으로 녀석의 뒤를 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