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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도시 기록보관소

판타지 흑마법사

2005.07.03 05:20

야스 조회 수:81 추천:2

extra_vars1 방랑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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짹짹- 짹-

아침이 밝았다. 나는 언제나 이렇게 아침을 맞이할 때면 제발 이제까지의 모든일이 꿈이기를 소원한다.

그리고 눈을 뜨면 언제나와 같이 익숙한 통나무집의 지붕과 조금 지저분한 방이 보이고 문 밖에선 맛있

는 아침식사 냄새가 나기를 바랬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생기라고는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 차가운 돌 벽과 천장. 침대는 오래되어 삐그덕 거리면서 간신히 버티

고 있었으며 방 밖으로 나가는 철문은 녹이 슬어 움직일때 마다 끼이익 거리며 소름끼치는 소리를 낸다.

그렇게 방문을 나서 부엌까지 가면 여전히 정체를 알 수 없는 음식들이 놓여있다. 하지만 맛은 썩 괜찮

은 편이기에 나는 녹색의 물과 함께 음식들을 먹는다.

아침식사가 끝나면 스승은 아주 의례적으로 내게 질문을 던진다.

"수련 성과는 있느냐."

"예."

그리고 그것으로 끝이었다. 처음 이곳에 오게 되었을때만 해도 2,3년간은 거의 하루종일 혹사당하다 시

피 흑마법의 개요와 이해. 그리고 이론과 실전등을 배워야만 했는데 너무 오랜 세월이 지나 날짜조차 새

어보기 힘든 시간이 지난 지금에 이르러서는 철저한 개인 수련만이 있을 뿐이었다.

대체 그때로부터 얼마나 시간이 지난 것일까. 대략 10년은 족히 넘었으리라 생각된다. 물론 전적으로 나

의 주관적 생각이긴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나는 내 나이도 모른다. 하지만 사실 몰라도 된다는 생각이

든다. 어차피 죽을때 되면 죽게될 인생. 한해 한해 꼬박꼬박 챙겨서 자신의 죽을날만 기다리는 짓 만큼

바보같은 짓도 없을것이다.

나는 내 방으로 돌아와 책을 편다. 하지만 이내 덮어버린다. 별로 책의 글자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글자는 읽히되 내용은 읽히지 않는다. 이러할 때는 차라리 쉬는편이 도움이 된다. 하지만 가만히 앉아있

자니 그것도 못할짓이다 싶어 창문을 연다. 삭막한 모래바람이 휑하고 불어오는 벌판. 오로지 끝없는 황

무지만이 펼쳐져 있는 곳이다. 나무도, 풀도 그 어떤 생물도 살지 못하는 죽음의 땅. 특별히 더운 것도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추운것도 아니며 서늘한것도, 따뜻한 것도 아니다. 그저 아무런 공기의 흐름이

느껴지지 않는 땅이다. 모든것이 죽어있고, 시들어 버린 땅. 가끔씩 휑-하니 불어오는 터벅한 모래바람

만이 이곳에도 시간이라는 것이 흐름을 알려준다.

창의 난간에 기대어 가만히 밑을 내려다 본다. 아득하니 보이는 지면이 일렁이는듯 하다. 나는 이곳이

마왕의 성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어릴적 누구나 한번쯤은 상상해보았을법한 마왕의 성. 휑하니 풀한포

기, 물웅덩이 하나 없는 황량한 들판에 어울리지 않는 유난히 차가워보이는 돌로 만들어진 성. 아니, 성

이라고 부르기엔 뭣한...탑이라는 표현이 정확하다. 밤이되면 박쥐라도 날아들것 같은 음습함에, 사람을

억지로 밀어내는 듯한 불쾌함까지. 영락없다. 마왕의 성이다.

잠시 바깥을 바라보며 엉뚱한 공상에 빠져있던 나는 창문을 닫고 마법에대해 다시 공부를 재개한다. 나

는 나의 스승이 왜 나를 살려주었는지 알고 있다. 그리고 그가 왜 나를 이곳까지 데려와 아무런 말도 없

이 마법을가르치는 가도. 그는 느끼고 있는 것이다. 자신의 그 저주스러운 인생의 종지부를 찍어줄 마침

표가 바로 나라는 것을. 흑마법사는 함부로 자살할수 없다. 그것은 명백히 자신이 계약한 마족과의 계약

위반이기에. 만일 계약 위반일시에는 흑마법사 최악의 말로라고도 할 수 있는 일이 발생한다. 바로 영혼

의 계약이다. 지금은 인간의 육신을 입고 마족과 계약을 한다해도 이 육신이 사라지는날 계약도 끝이다.

하지만 자살을 하여 계약이라도 위반할시에는 육체의 계약이 아니라 영혼의 계약이 성립되어 버리는 것

이다. 영혼에 매인 악마의 목줄은 결코 놔주는 법이 없으며 그렇게 악마의 낙인이 찍힌자는 그 마족이

소멸하기 전에는 결코 자신도 편안해 질 수 없었다. 그것을 우리는 영혼의 계약. 즉, 영원한 종속 이라

고도 부른다.



불타오르는 마을, 죽어가는 사람들, 추악한 오크들. 그 위에 보이는....피빛 로브의 사내.

벌떡-

"헉.....헉....."

되풀이 되는 꿈. 되풀이 되는 원한. 되풀이 되는 죽음.

그 피빛 로브의 사내가 죽지 않는한. 결코 이 꿈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반드시 그

를 죽여야만 한다. 그렇지 않다면 지금 내 꿈속에서 맴돌며 편안히 가지 못하는 이 원혼들의 마음을 달

래줄 길이 없다. 그렇다. 그것 뿐이다. 그것만이...나도 편하고 그도 편하고 사람들도 편할수 있는....

길이다. 그렇게 생각하자 마음이 한결 편해진다. 마치 한군데 어그러져서 돌아가고 있지 않던 거대한 괘

종시계의 톱니바퀴들이 이제서야 서로들 맞물려 돌아가기 시작하는듯 하다. 그동안 너무 시간을 지체했

다. 더이상 지체할수도 없다. 그를 죽이지 않는한. 이 꿈은 계속될 것이다.

차가운 달빛이 비수를 머금은듯 날카롭게 내 방을 내려 비춘다. 나는 그 스산한 달빛아래 마법진을 그린

다. 마치 분분한 꽃잎들이 흩날리듯 달빛을 받아 빛나며 떨어지는 마법 가루들. 그것을 뿌리며 나는 조

금 멍한 생각이 든다. 그리고 마법진이 완성되어 감에 따라 마법이 가루들이 엉겨붙기 시작한다. 마치

끈적끈적한 피들이 서로 엉겨붙듯이 그렇게 엉겨 붙는다. 그리고 곧이어 이어지는 거대한 마력의 몸부림

.

두두두두두

성이 떨린다. 땅이 흔들리고 하늘이 진동한다. 공기의 흐름이 미묘하게 바뀌고 있다.

"소환괴수 오우거!"

부웅-

빛이 나며 마법진이 발동된다. 그리고 이내 모습을 드러낸 거대한 괴수 오우거 5마리.

성인남성 두배는 됨직한 거대한 키에 덩치는 어마어마하다. 등에는 각각 무식할정도로 거대한 배틀엑스

를 하나씩 차고 있었으며 삐죽이 나와있는 송곳니는 칼보다 날카롭다. 오크와 같이 짙은 녹색의 피부는

아주 질긴 가죽으로 되어있어 화살도 튕겨낼것 같았고 온몸에 울퉁불퉁한 근육들이 칼도 막아낼것 같다.

"크오오오오!!"

오우거 다섯마리의 밤하늘을 찢을듯한 포효소리. 듣는이에게 공포를 준다는 오우거 피어다. 나는 묵묵히

그들을 바라보다가 명령을 내린다.

"가라. 가서 그를 죽여라."

"크아오오!!"

다시한번 크게 포효한 그들은 배틀엑스를 뽑아들고 덩치가 안맞는 문을 부수고 밖으로 나간다. 그리고

온갖 물건들을 다 부수며 스승의 방으로 간다. 간단한 수인을 맺어 다크울프를 불러낸 나는 그것의 목덜

미에 올라타서 그들의 뒤를 따른다.

"크오오!!"

콰앙-

스승의 방문을 부수고 들어가자 그곳에는 스승이 편안한 자세로 앉아서 기다리고 있었다. 다만 평소와는

달리 피빛로브와 자신의 어깨까지 오던 지팡이를 가지런히 탁자위에 오려둔채.

"크오오!"

한마리 오우거가 배틀엑스를 높이 든다.

순간 스승의 눈매가 살짝 떨린다 싶더니 이내 너무도 허무하게. 그렇게 견고해 보이던 사람이 너무도 허

무하게 목이 베어져버린채 스르르 넘어진다.

털썩-

말라붙어 뼈밖에 없이 너무도 초라한 한 흑마법사의 최후. 그는......어째서 흑마법사가 되었던 것일까.

이렇게 될줄 알았다면.....대체 어째서.

오우거들을 돌려보낸 나는 탁자로 간다. 그곳에는 언제라도 좋게 준비해 두었던듯 곱게 개켜진 피빛로브

와 지팡이 그리고 묵직한 가죽주머니가 있었다.

나는 다크울프에서 내려 일말의 죄책감도, 거리낌도 없이 로브를 펼친다. 그리고 입는다. 한 흑마법사의

제자로서 그의 유품을 물려받는 것이다. 로브를 뒤집어 쓰고 지팡이를 든 나는 가죽 주머니를 열어본다.

그곳엔 색이 조금 바랬지만 금화 20개와 은화 5개 그리고 동화 15개가 들어있었다. 그냥 조금 무거울 정

도의 무개일것인데 왜일까. 지금 나에게는 이것이 너무도 무겁게 느껴진다.

주머니를 잘 갈무리 한 나는 지팡이를 짚으며 다크울프의 등에 올라탄다. 그리고 천천히 탑을 벗어나서

무작정 길도 없는 곳으로 하염없이 가기 시작한다. 아무런 목적지도, 이유도 없는 나의 방랑이 시작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