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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도시 기록보관소

판타지 흑마법사

2005.07.02 05:53

야스 조회 수:57 추천:1

extra_vars1 스승과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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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이 불탄다.

금방이라도 비를 뿌릴듯 묵직한 구름아래로 보라빛 연기들이 일렁이고 나무로 만들어진 집들이 건조한

소리들을 내며 타들어 간다. 불길은 뱀의 혀를 낼름거리듯 조금씩 조금씩 마을을 삼켜가고 있었다.

날카로운 여인의 비명소리, 미친듯이 울어대는 아이들의 울음소리, 비쩍 마른 나무가지가 부러지듯 죽어

가는 노인들. 젊은 사내들은 곡괭이, 삽 등을 가지고, 달려드는 오크에게 저항을 해보인다. 하지만 그도

잠시. 일반 성인 남성의 두배정도는 되는 그들 오크의 힘에 속절없이 무너진다. 마치 거대한 물살을 거

스를수 없이 터져 나가는 둑과 같이.

2m는 될법한 큰 키. 딱 벌어진 어깨. 송곳니는 유난히 날카롭고 피부는 짙은 녹색빛을 띄는 오크들. 그

들의 거대한 검은 인간의 나약한 뼈와 살을 바수고 들어왔으며, 그들의 선홍빛 선혈을 마신다. 차가워진

심장은 무참히 오크들의 발에 밟히우고 아녀자 들은 육중한 남성 오크들에게 겁탈당한다.

날카로운 여인의 비명소리, 미친듯이 울어대는 아이들의 울음소리, 비쩍 마른 나무가지가 부러지듯 죽어

가는 노인들. 그리고 그들을 무참히 학살하는 오크.

그들 위에는 짙은 피빛의 로브를 걸친 한 사내가 무심한 눈길로 서 있었다. 조금의 흔들림도, 파문도 없

이 조용히 죽어가는 인간들을 바라보는 한 사내. 나는 피를 뿌리며 죽어가는 인간들 속에서도, 해같이

뜨거운 불길 속에서도 그 사내를 보았다. 그리고 눈이 마주쳤다. 소름끼칠듯 마치 온갖 종류의 파충류가

내 온몸에 더덕더덕 붙어 있는듯한 느낌. 스르르 기어가는 느낌. 그리고 한마리 뱀이 서서히 나의 목을

감아간다. 그리고 붉은 혀를 낼름거리며 말한다.

'죽어.'

'죽어.'

'죽어.'

나는 그 느낌에 참지 못하고 오줌을 지린다 비릿한 무언가가 내 다리를 타고 흘러 내려갔고 나의 하체는

나를 지탱할 힘이 더이상 없는듯 스르르 풀린다. 그리고 주저앉았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계속해서 그 사

내의 눈에서 시선을 땔 수가 없다. 아니 때려해도 땔 수가 없다. 내 눈이. 아니, 내 온몸의 신경이 그에

게로 향해져있다. 나의 감각기관들을 통해 들어온 그의 시린 눈빛은. 중추신경을 타고 흘러가 나의 뇌를

마비시키고 그로인해 온 몸이 마비된다. 꼼짝도 할 수 없는 느낌. 분명히 감각은 있는데 가위라도 눌린

듯 움직여 지지 않는다. 그리고 극도의 공포. 그 공포심 속에서 나는 아무것도 생각 할 수가 없었다. 하

지만 공포가 극에 다달으면 그것이 희열이 된다고 했던가. 나는 온몸의 긴장이 풀린채 오줌도 지리고 똥

도 지린채, 그런채로......나는 웃고 있었다.

아득해져가는 정신...... 뻔뻔스러운 육체의 고통. 그리고.... 무감각한 나의 감정.



벌떡-

"헉.....헉....."

일어나보니 온 몸이 식은땀으로 축축하다. 가슴은 무언가가 옥죄어오는 듯 하고 머리속은 세찬 풍랑이

한바탕 휘저어 놓은듯 멍하니 아무런 생각을 할 수 없다. 무언가 차가운 느낌. 온 몸에서 소름이 돋을

정도로 현실적인 꿈. 나는 또 한번 그때의 꿈을 꾼 것이다. 내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은 나의 어렸던

시절 그때의 꿈을.

"......"

입밖으로 소리내어 욕이라도 한바탕 미친듯이 해본다면 나의 이 답답한 가슴이, 어지러운 머리속이 탁-

하고 풀릴것도 같은데. 스승님에 의해서 철저히 교육되고 세뇌되어버린 나의 이성은 그런 나의 욕망을

저지한다. 그랬다. 흑마법사에게 있어서 불필요한 감정은 독이었다. 철저한 감정의 배제. 그것만이 미치

지 않고 흑마법사로 살아갈수 있는 방법이었다.

더이상 잠이 오지 않아 침대에서 일어난 나는 창가로 가서 걸터 앉는다. 그리고 창문을 열어 땀을 날려

버린다. 온 몸이 땀으로 흠뻑 젖어 있기에 감기에 걸릴수도 있겠지만. 별로....개의치 않는다. 아니, 차

라리 걸린다면 다행일지도 모르겠다. 혹시 병이라도 걸린다면 나는 이 몸뚱아리가 나의 몸이라는 것을

느낄수 있을지도 모른다. 내 몸이 내 것이 아닌듯한 느낌. 그것은 내가 대 마족. 루시퍼와 계약하고 나

서부터 였다.

손을 들어 흐붓한 달빛에 비춰본다. 실핏줄이 다 들어나 보일듯 창백한 피부. 나는 그 손을 보며 살짝

이빨에 넣고 깨물어 본다. 그리고 그 순간 찌릿하고 고통이 온다. 분명 나의 손가락에서 나느 고통이다.

하지만 고통은 느끼되 살아있는 것 같지는 않다. 어째서 였을까.....어째서 이렇게 되 버린 것이었을까

. 하기야 그 원인을 찾는다는 것 자체가 우스운 일이다. 누구보다 내가 제일 잘 알고 있지 않는가. 그

원인을. 하지만 나는 애써 부인하며 모르는 척 할 뿐이다. 지금은 생각하지 않는다.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그 자가 시키면 시키는데로. 가르치면 가르치는 대로 하는 꼭두각시가 되어줄 뿐이다. 그

렇다. 지금은......

나는 잠시 달빛을 바라보다가 다시 침대에 눕는다. 아무래도 오늘 밤은 꽤나 길어질것 같다.



온 마을이 불타버렸다. 온 마을 사람들이 불타버렸다. 모든 것들이 다 불타 버렸다. 다만 하나, 나만을

제외하고.

나는 이상한 각도로 접혀진 다리가 아프다 못해 무감각해 진것을 느끼지도 못한채 하염없이 모든것이 새

까만 가루가 되어버려 흩날리고 있는 마을을 바라본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눈물이 나오질 않는다. 똥,오

줌은 나의 의사와 상관없이 몸의 근육이 풀려 질질 싸댔는데, 이상하게도 눈물만큼은 흘러나오질 않는다

. 이상한 일이다. 그렇게 하염없이 마을을 쳐다보고 있자니 머리가 아프다. 왜 머리가 아픈지는 모르겠

다. 그냥 머리가 아프다. 깨어질듯이 아픈가 하면 또 멀쩡하다. 그리고 또다시 아프다가하면 멀쩡하다.

대체 이게 무슨 기묘한 통증이란 말인가.

하지만 나의 생각은 이어지지 못한채 한 사내로 인해 제지를 받았다.

내게 다가온 그 사내는 핏빛의 로브를 걸친 사내. 그 사내가 로브를 젖혀 얼굴을 드러낸다. 그러자 평범

한 햇빛에 비춰진 사내의 앙상한 얼굴이 보인다. 정말 있는 것이라곤 뼈하고 가죽밖에 없는 사내. 살이

라곤 조금도 없었다. 마치 해골에 가죽만 뒤집어 씌어 놓은듯한 얼굴 모형에 커다란 눈동자 두개만이 디

룩디룩 굴리고 있었고 볼은 마치 거대한 분지처럼 깊이 패여져 있어서 밥이나 제대로 먹을수 있을까 싶

다.

"......"

사내는 아무말 없이 나를 바라본다. 나 역시 사내를 아무말 없이 바라본다.

"따라오너라."

그리고 제멋대로 어디론가 향하는 사내. 나는 영문도 모른채 어기적 거리며 사내의 뒤를 따라갔다. 나의

뒤로는 감색빛 하늘이 나와 사내의 그림자를 길게 늘어뜨린다.

그리고 그것이 나와 스승의 첫 만남 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