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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도시 기록보관소

판타지 존재하지 않는 신의 비망록

2009.09.20 09:39

ArQu 조회 수:478 추천:3

extra_vars1 신으로의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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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에 드러누워 올려다 보는 하늘은 정말 높다.


하늘이 높다는건 항상 알고 있지만, 이렇게 바라보게 되면 그것을 실감하게 된다.
바람이 불어온다. 어느 나비의 날개짓일까. 바람에서 향기가 뿜어져 나온다. 바람은 판게아를 모조리 씻어버릴듯이 오랜기간동안 불어온다. 신들의 숨결이 흘러간다. 내리쬐는 빛을 조금씩 가리기도 하면서 천천히흘러간다. 그 무엇보다 깨끗하고 맑다. 그래서 신들의 숨결이라 하는것일지도 모른다. 어느새 숨결이 멈추었다. 나비의 휴식. 판게아에 또다시 고요가 찾아온다.


일어날까...? 일어나자. 누웠던 자리에서 일어나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죽은자들을 보고있으면 정말 다양한 생각이 든다. 고통스러운 얼굴로 죽은자들도 있고, 어리둥절한 얼굴로 죽은자들도 있다. 당황스러운 얼굴, 모든걸 포기한 얼굴. 간혹 쾌락을 느끼는 얼굴도 있다. 하지만 모두가 사견(死犬)에게 끌려갈것이다. 사견은 죽은자들을 먹어치울것이고, 죽은자들의 기억들은 모두 사견의 뱃속에서 소화될것이다. 그리고 죽은자는 배출구를 통해서 다시 판게아로 돌아올것이다. 죽은 이후의 사람들에 대해서는 내가 상관할바가 아니다.
 


신들의 숨결은 계속 흘러가고 있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이전에 알렉산더라는 황제가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나는 무릎을 꿇었고, 그 손에 키스했다. 알렉산더는 만족했고, 나에게 검이라는것을 건넸다. 그 검을 받아든 나는 어느새 "방랑자 버나드 C. 나그네" 가 아닌 "알카트라즈 제6장군 버나드 C. 나그네" 가 되어있었다. 알카트라즈의 2급기사단 비상(飛上)이 나에게 맡겨졌다. 나는 알카트라즈의 제6장군이고 2급기사단 비상의 대장이며 알렉산더황제의 부하인, 버나드 C. 나그네 라고 한다.


 


누워있던 내게 카츠가 나에게 술잔을 건넸다. 나는 받아들었고, 곧바로 들이켰다. 식도를 타고 흘러내리는 술이 나를 나른하게 만들어준다. 기분이 좋다. 아서에게 또 한잔 받아서 들이킨다. 한번의 전투가 끝난 다음의 술은 나를 끝없이 기분좋게 해준다. 카츠 크리오드 는 비상의 부대장이다. 그가 나에게 말을 건넨다.
 


" 내일이면 황도로 돌아가겠군요. "
 


황도. 알렉산더가 거주하고있는 '황제의집'이 있는 알카트라즈의 심장부. 정식명칭 카트로니 시티.
 


" 그렇겠지. 살아남은 비상들은 지금 잘 쉬고 있나? "
 


나는 기사단 비상을 그냥 비상이라 지칭한다. 그게 훨씬 편하니까.


" 네. 잘 쉬고 있습니다 "
 


며칠전의 승전. 불리하다고 판단되었던 그 전투는 지금 내 앞에 있는 카츠와 리하르트 덕분에 승리할수 있었다. 카츠의 두뇌와(카츠가 두뇌라고는 하지만 완력또한 무시할수없다) 리하르트의 완력은 나에게 큰 도움이 되고있다. 비상의 또 다른 부대장 리하르트 오렌스. 대낫의 달인이기도 한 그는 나와 같은 방랑자 출신이다. 전투가 힘들었던 만큼 난 이례적으로 음주를 허락해놓은 상태다.
 


" 그래 ... 자네도 전투로 인해서 힘들었을텐데 이제 가서 쉬게나 "
 


" ... 편히 쉬십시오 "
 


카츠는 밖으로 나간다. 그러고보니 카츠는 나를 대장이라 지칭하지 않는다. 말을 할때도 두서없이 할말만 한다. 무슨이유인지는 잘 모르겠다. 하긴, 그런것에 신경쓸만큼 난 세심하지 않다.


 


며칠전의 전투는 꽤나 위험했다. 전투라 생각되었던것이 너무 간단히 끝난 이후에 완전히 안심해버린 나는 그 자리에서 만족해버렸다. 조금 쉴 생각으로 벌렁 드러누워 있다가 일어나서 주위를 둘러보던 나는 까맣게 몰려오는 라트비아의 기사단과 군대을 발견했고, 그때부터 처절하게 싸워야 했다. 전력의 절반을 데리고 모종의 임무를 띠고 적진 뒤편으로 갔던 카츠와 리하르트가 때마침 돌아오지 않았다면 나는 죽은목숨 이었으리라(카츠의 말에 따르면 적진에는 아무것도 없었다고 한다). 그때 라트비아의 기습으로 인해서 100명에 육박하던 비상은 지금 20명정도밖에 남지 않았고 비상과 함께 데리고 왔던 2000명의 병사들은 300명도채남지 않았다. 이기긴 했지만 희생이 너무나도 컷다.


 


" 대장 ! 혼자 거기서 뭐하는거요 ! "


우렁찬 소리. 리하르트다. 덩치는 그렇게 큰편이 아닌데, 기백은 엄청나다. 우리의 피해는 다 잊었다는듯이 그저 쾌활하기만 하다.


" 생각좀 하고 있었네만 "


" 혼자서 청승떠는게 자랑입니까 ?! 어서 나와서 같이 놀자구요 ! "


내가 아는 리하르트 다운 행동.  결국 리하르트에게 끌려서 밖으로 나간 나는 비상들과 어울려서 술을 마실수밖에 없었다.


 


내일이면 황도, 카트로니 시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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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주 멋진 전투였다고 들었다. 버나드. "


 


알렉산더는 전투에 대한 이야기부터 꺼냈다. 물론 인사치레에 불과한 말이다. 전투당시, 누군가 우리를(여기서 '우리' 는 비상과 알카트라즈군, 라트비아군 모두를 포함한다)관찰하고 있지 않았던 이상, 그 전투가 멋진전투 였는지 말 그대로 지저분한전투 였는지 알 방법이 없다. 물론 나는 전투라는것을 지저분한것으로 보고있다. 그것이 정말로 멋지든, 멋지지 않든.
 
" 모두가 폐하와 '존재하지 않는 신' 의 은총 입니다 "


 


인사치레에는 인사치레로 대답해주는것이 예의라는 지론을 가진 나로서는 식상한 대답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알렉산더는 거의 전멸에 가까운 타격에 대해서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아마도 질것으로 확실시되었던 전투를 이기고 돌아온 덕분이리라. 약간의 질책을 각오했던 나로서는 허탈해지지 않을수 없었다.



황도에 들어선 비상과 병사들은 시민들로부터 열렬한 환영을 받을수 있었다. '승리자' 라는 수식어가 가져다준 회복제. 지금은 전시 지만 최전방과는 거리가 한참 떨어져있는 카트로니시티의 시민들은 아직 '싸움'이라는것에 대해 잘 모르고 있으리라. 그것이 어떤것인지 안다면 우리는 아마도 환영이 아닌 비난을 받았을 것이다. 실제로 최전방의 제국민들에게 우리는 그리 좋은 대접을 받지는 못했다. 카트로니시티의 시민들에게 '전쟁의 승리' 라는것은 '제국의 승리' 이지만 최전방의 제국민들에게 '전쟁의 승리' 라는것은 '소속국가의 변화 혹은 유지' 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전투를 자주 지켜봐왔다.



황도에 들어선 나와 비상은 '황제의집'이 아닌 '신의거주지'로 불려가야했다.


꽤 오랜시간동안 지속되어 오고있는 이 전쟁은 이른바 '신들의 싸움'. '존재하지 않는 신'의 대변자라 자처하는 알카트라즈와 '하잖은것들의 신'의 대변자라 자처하는 라트비아 의 종교전쟁 이다. 명분은 '이교도를 향한 신들의 분노로 말미암은 신탁 ' 이지만(이것은 정말 그럴듯한 명분이다) 실제로 파고 들어 보면 땅따먹기에 불과한 전쟁. 하지만 명분이나마 '신탁' 에 의한 전투를 치루고 온 우리를 '신의거주지'에서 거주하고있는 '신의사자'들이 모른채 할수는 없었을 것이다.
'신의거주지' 로 불려간 우리는 제1사자의 치하와 함께 축복을 받았고 (이때, 리하르트는 참여하지 않았다. 자신은 무신론자라고 하면서) 짧은시간동안 머무르다가 '황제의집'으로 발길을 돌려야했다.



'황제의집'에서도 특별한일은 없었다. 알렉산더의 인사치레를 받아넘기고, 정치자들의 축하의말을 들었을 뿐이다. 새로운 임무 따위는 떨어지지 않았다. 알렉산더도 양심이 있다면 이제 막 힘든 전투를 끝마치고 돌아온 전투자에게 또다른 임무를 내릴수는 없었을 것이다. 대신에 나와 비상은 일시적인 휴식을 명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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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른한 오후. 신들의 숨결은 계속해서 흘러간다.
황도로 돌아온지 4일이 지난 오늘. 4일동안 귀찮은 일들이 많이 있었다. 모두가 힘들다고 했던 전투를 이기고 돌아온 제6장군에게(덕분에 정치적인 위신도 많이 올라간) 없던 볼일이 생긴 정치인들의 방문. 정치인는 머리와 혀를 잘 굴리면 출세하고 전투자는 몸과 검을 잘 굴리면 출세한다는 말을 확실히 실감할수 있었다. 그런것도 이제는 뜸해졌는지 오늘은 방문자가 없다. 덕분에 난 편하게 휴식을 취하고 있다.


 


시의 외곽에 있는 작은 주택. 내가 살고있는 곳이다. 물론 알카트라즈에 있는 13명의 장군 중에는 척 봐도 '높은사람의 집' 이라는 생각이 드는 거대한 주택에서 살고있는자도 있다. 하지만 난 이런 작은 주택이 맘에 든다. 내 혼자 힘으로 청소를 할수있고, 시덥잖은일에 하인을 부르지 않아도 되는 작은주택. 물론 기분이 내키면 그냥 훌쩍 떠나버릴수도 있다는 장점이 가장 맘에든다.


 


아, 나비가 날개짓을 시작했다. 약간은 서늘하다.


 


카츠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 황도에 들어온후 '황제의집'에서 헤어지고 난 후 한번도 만나지 못했다. 헤어지기전에 이제는 무엇을 할것이냐고 물어보니 '마법의 연구' 라고 대답했다. 물론 미친소리다. 그 똑똑하고 이성적인 녀석이 판게아에 마법이라는것이 존재한다고 믿을리가 없다. '존재하지 않는 신의 비망록' 이라는 책에 마법이라는 알수없는 힘이 기재되어있다고 알려진 후에 마법이라는걸 연구하는 할짓없는 사람들이 한때 늘어난적이 있었지만 지금은 거의 사라진 상태다. 카츠는 아마도 지금쯤 '책모음터'에서 이런 저런 책을 보고 있거나 검을 휘두르고 있을것이다.


 


리하르트는 ... 글쎄, 잘 모르겠다. 나만큼이나 방랑벽이 심한 녀석이라서 지금쯤 어딘가를 돌아다니고 있을지도. 하지만 찾을려고 마음먹으면 못찾을것도 없는 녀석이다. 엉덩이에 걸치고 다니는 그 커다란 대낫은 너무나도 눈에 띈다.
 
"잠깐 실례하겠습니다."


 


누군가 찾아왔다. 무슨일일까. 난 고개를 슬쩍 돌려서 방문자를 살폈다. 신의사자다. 신의사자가 나에게 찾아올만한 이유가 있었던가? 모르겠다.


 


"무슨 일이신지 ...?"


 


신의사자는 척 보기에도 사람 좋아보이는 미소를 머금고 있다. 지금까지의 경험에 의하면 어떤 신의사자던지 저런 표정을 짓고 나를 바라보고 있으면 귀찮은 일이 생긴다.


 


"제1사자 님께서 잠시 들려달라고 요청 하십니다."


 


역시. 나의 생각은 적중했다. 하지만 내색할수는 없는일. 나는 알았다고 대답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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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 조금 쓸려고 하다가 귀찮아서 집어치웠던거... 뭐, 또 귀찮아 지면 집어치우것지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