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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도시 기록보관소

판타지 위터시즘 크로니클

2009.04.14 18:23

웨건 조회 수:634 추천:1

extra_vars1 CHAPTER 1 . Lowest Place of the C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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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 라팔다 에윈데일(1)


 


 


 


 



갈색 로브를 뒤집어 쓴 노인이 숙박계에 자신의 이름을 써 넣고 있을 무렵 브리짓 에윈데일은 수양딸 때문에 슬슬 짜증이 치밀어 오르는 것을 느꼈다. 어째선지 이유는 잘 알 수 없었지만 브리짓은 라팔다만 보면 심사가 뒤틀렸다. 그녀는 라팔다에게 빗자루를 쥐어주며 머리를 쥐어박았다.


 


 



"얘, 또 놀고 있구나. 그렇게 놀기만 해서는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아. 이 분을 따라가서 방 안내 해 드리고 청소도 해! 알겠어?" 브리짓은 소리를 지르며 라팔다를 꾸중하고 싶었지만 인간 노인이 미소를 지은채로 자신을 지긋이 보고 있다는 것을 알고 그렇게 할 수 없었다. 이상한 노인네였다. 무언가 거절을 할 수 없게 만드는 힘이 있는 것 같았다. 방금 전에도 그랬다.


 


 



브리짓은 고급 여관 드라우닝 엘프의 안주인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남편처럼 하플링으로서, 그다지 교육을 받고 자란 여자는 아니었다. 그녀의 남편 킴보 에윈데일은 배게 안에 들어있는 거위털이 가짜라는 확실한 증거를 잡고 베개 제조업자와 담판을 지으러 간 참이었다. 그리고 할 일 없이 노닥거리는 수양딸-즉 자신의 남편의 전부인의 딸내미 라팔다와 자신만 이 여관에 남아있었다. 그리고 브리짓은 라팔다와 단 둘이 남게 되면 으레 그렇듯 기분이 매우 나빠져 있었다. 그녀로서는 다른 다섯 수양딸과 달리 정해준 혼사처로 시집을 가려들지 않는 라팔다가 못마땅했던 것이다.


 


 


 


"방 하나 있소?"
그때 문이 열리며 한 손에 등불이 달린 지팡이를 짚은 한 노인이 들어왔다. 체구를 봐서는 인간인 듯 했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돈이 그렇게 많아 보이는 부류가 아니라는 사실이 중요했다. 드라우닝 엘프는 고급 여관이었고 왠만한 돈으로는 들어올 수 없었다.
"죄송하지만, 방이 다 찼거나 남은 방은 정리가 안 되어 있는데요. 다른 곳으로 가 보시는게 좋을 것 같습니다만." 브리짓은 허름한 노인의 옷차림을 보고 그렇게 말했다. 방이야 남아 있었지만 이런 거지에게 줄 방은 없었으니까 거짓말은 아니었다.
"죄송하지만, 이름을 말씀해주시겠소?" 노인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그 순간 어째선지 브리짓은 숨이 탁 막히며 생각을 할 수 없게 되었다. 브리짓은 바보같이 눈을 끔뻑거렸다. "에, 뭐라고요?"
"이름을 말씀해주시겠소?"
노인은 침착하고 참을성있게 되풀이했고 브리짓은 잠긴 목으로 대답했다. "브리짓, 브리짓 에윈데일이에요. 그게 뭐 어떤가요?"
"브리짓 양. 정리가 되지 않은 방이라도 괜찮으니 내 주지 않겠소?"
"그건……좀 곤란한데요." 브리짓은 말 끝을 흐렸다. 이상하게 생각을 정상적으로 할 수가 없었다. 마치 꿈을 꾸는 것 처럼 몽롱한 기분이 들었다. "우리 여관은 좀……비싸거든요. 손님은 돈이 그렇게 많으신 것 같아 보이지 않는데, 다른 여관을 찾아가보시는게 어떨까요?"
그녀는 얼굴을 찌푸리고 고개를 절레절레 털었다. 왜 자신이 생각한 말을 그대로 내뱉고 있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어째서 이 여관이 그렇게 비싼거요?" 노인은 부드럽게 물었다. 브리짓은 멍청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건……우리 여관은……서비스가 훌륭하거든요. 청결하고. 잘 정리되어있고, 맛있고 몸에 좋은 음식들로 식사를 대접하지요……원하시면 사시사철 따뜻한 물로 목욕도 하실 수 있고요. 그래서 비싼거에요."
"그럼 내가 정리 되지 않은 방에 묶고, 값 싸고 건강에도 별로 안 좋은 음식을 먹고, 목욕도 하지 않고, 청결에도 신경쓰지 않는다고 하면 어떻소? 그럼 방 값이 비쌀 이유가 없어지는 것 같지 않소?"
브리짓은 가만히 서 있다가 간신히 대답했다. "그건……그런 것 같기도 하네요."
"거기다가 내가 만약에 스스로 방 정리를 한다고 하면 어떻소?"
"하지만 손님에게 그런 일을 시킬 수는 없어요!"
"괜찮아요, 괜찮아. 싸게 묶게 해 준다면 그 정도는 당연하지. 그리고 내가 아주 끝내주게 초콜렛 머핀을 구울 줄 안다오." 노인은 눈을 찡긋해 보였다. "그것도 방 가격에 도움이 되오?"


 


 


 


그리고 어찌저찌 이야기가 이어졌는데 결과적으로 그는 무료로 묶게 되었다. 브리짓은 자세한 대화내용까지는 기억나지 않았다. 그저 손님에게 청소나 요리를 시킬 수는 없다고 강력하게 주장했던 것만 희미하게 기억났을 뿐이었다. 싸게 묶는 대신에 그가 이런 저런 잡일을 도와주겠다고 제의했고, 자신이 거절했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저 노인은 아무런 일도 하지 않고 무료로 고급 여관에 묶게 된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한 일이었다. 브리짓은 교육을 받지 못했을 뿐이지 멍청한 여자는 아니었던 것이다.


 


 


 


브리짓이 빗자루를 수양딸 라팔다 에윈데일에게 쥐여주자 라팔다가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저, 저는 오늘 할 일이 있는데요." 하지만 말과는 다르게 그녀는 빗자루를 받아들었다.
브리짓은 냉담하게 말했다. "그까짓 쓸모없는 바느질 따위 그만두어라. 세상은 유용한 게 제일이야. 대체 병아리나 예쁜 을 수 놓을 수 있는게 무슨 재주라는 거니?"
물론 그건 재주다. 게다가 라팔다는 꽤 훌륭한 바느질 솜씨를 갖추고 있었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 브리짓은 그렇게 교육을 잘 받은 여자는 아니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그녀에게 있어서 중요한 건 오직 실용성이었다. 궁핍한 어린 시절을 보낸 브리짓은 삶에서 아름다움을 찾을 만한 여유를 가져본 적이 없었다.


 


 


 


사실 라팔다는 정말 할 일이 있었고 그건 바느질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었지만, 자신의 항변이 새어머니의 기분을 더 나쁘게 할 거라는 사실을 알고있었다. 그녀는 풀이 죽어서 대답했다. "네. 알겠어요." 그녀는 빗자루를 들고 터덜터덜 발걸음을 옮겼다.
"가만히 서 있지 말고 지팡이를 들어드려야 할 것 아니니?"
브리짓이 쏘아붙였다. 라팔다는 머뭇거리다가 노인을 향해 양손을 내밀었다. 늙은이는 대답대신 눈썹 사이에 깊은 골을 만들었다. 케인에 달려있는 등불이 한층 더 강하게 불타올랐다. "아니, 이건 그냥 내가 드는게 좋겠구나. 얘야, 그냥 방으로 안내하렴."
"청소 다 하고 다시 나한테 오거라! 설거지거리가 잔뜩 남았어. 그것 말고도 할일이 참 많다. 게으름 부릴 시간은 없어."
뒤에서 고함치는 브리짓의 목소리를 뒤로하고 라팔다는 그를 비어있는 방 중 하나로 안내했다.
"따라오세요. 이쪽이에요."
노인은 라팔다 뒤를 따라갔다. 계단을 올라가 2층 방 문앞에 서서 라팔다는 기운없이 열쇠로 문을 열었다. "잠시만 기다리세요. 최대한 빨리 청소를 끝낼게요."
"아니다, 얘야. 이미 충분히 깨끗한 것 같구나."
라팔다가 시무룩하게 말했다. "브리짓 마음에 들 정도로 충분하지는 않을 거에요." (라팔다는 브리짓이 듣지 않는 곳에서는 항상 "브리짓"이라고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1층에서 브리짓이 고함치는 소리가 들렸다. "라-팔-다! 보나마나 뻔해, 또 대충 청소하고 있는거지? 애가 왜이렇게 게으른 지 몰라." 그리고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쿵쿵 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브리짓이 자신의 감이 맞는지 확인하기 위해 올라오고 있었다. 라팔다는 어쩔줄 모르고 허둥지둥거렸다. 노인은 가만히 라팔다의 어깨에 손을 얹어서 그녀를 침착하게 만들었다.


 


 



노인은 라팔다의 손에서 빗자루를 뺏어들어 방구석 멀리 던졌다. 그리고는 라팔다를 방 안으로 밀어넣었다. 그리고 가라고 손짓했다. "가라, 얘야. 창문을 넘어서 해야 할 일을 하러 가거라. 그렇게 높지 않으니 다치지는 않겠지?"
인자한 목소리였다. 마치 마법같은 목소리였다. 라팔다가 멍하니 노인을 쳐다보며 생각하기를 마치기도 전에 문이 닫혔고, 라팔다는 혼자서 손님이 묶기로 한 방에 멍청히 서 있었다. 문 밖으로 이제서야 달려온 브리짓과 노인의 대화소리가 들렸다.
"라팔다 얘가 또 게으름 부리고 있는건 아닌지 확인하러 왔어요. 틀림없어요, 천성이 게으른 애라니까요? 아무리 혼을 내도 소용이 없다니까요."
"라팔다라면 그 소녀 말씀이오? 걱정마시오, 성실하게 방안에서 청소하고 있으니까. 얼마나 열심인지 날 들여보내지도 않는구려."
라팔다는 브리짓이 자신에게 친절하게 대해준 노인에게 소리라도 지를까봐 조마조마했다. 브리짓이 자신에게 막 대하는 건 아무렇지 않았다. 브리짓이 자신을 미워하는 만큼 아빠가 자신을 사랑해준다고 믿었으니까. 하지만 라팔다가 신경쓰는 사람이나 라팔다에게 신경 써 주는 사람에게 브리짓이 소리지르며 험하게 대하는 건 전혀 다른 문제였다. 라팔다는 울상이 되어 가만히 문 밖의 소리를 들으려고 애썼다. 브리짓은 곧잘 라팔다를 매질하기도 했기 때문에 노인의 말대로 달아나는게 안전할 것이라는 건 스스로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브리짓이 그 못되먹은 성질을 이기지 못하고 나를 감싸려는 노인에게 화를 내며 떼밀기라도 한다면-


 


 


 


"그것보다 초콜렛 머핀이라도 내오는 게 어떻겠소?" 태평스러운 노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우악스러운 브리짓에게 음식 주문까지 시키다니! 병아리 눈꼽만한 참을성도 없는, 우악스럽기 짝이 없는 브리짓에게 저런말을 했다면 싸리빗자루로 몇 대나 두들겨 맞을지……라팔다는 바닥에 굴러다니는 빗자루를 집어들었다. 이걸 휘둘러서라도 저 할아버지를 구해낼 작정이었다.
하지만 놀랍게도 그 깐깐한 브리짓이 순한 양처럼, 어딘가 얼빠진 목소리로 "아, 네."라고 대답하고 1층으로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뭐가 뭔지 알 수 없었다. 다시 문이 열리고 갈색 로브를 뒤집어 쓴 노인이 방 안을 들여다보았다.
"좀 있으면 금방 가지고 올거다. 그 전에 얼른 달아나려무나."
‘브리짓이 음식 심부름을 했다고?‘ 라팔다는 고개를 끄덕였다. ‘브리짓이?‘ 그리고 감사의 인사를 한 후에 쏜살같이 창문을 타넘고 1층으로 뛰어내렸다. 그녀가 향하는 곳은 에드워드 위터시즘 경의 고물상이었다. 잽싼 동작으로 안전하게 1층으로 착지한 그녀는 달리며 자신이 뛰어내린 동그란 창을 한번 흩어보았다. 정말 이상한 할아버지야, 그녀는 그냥 그렇게만 생각했다. 인상이 참 좋은 할아버지였어.


 


 


 


"정말 이상한 소녀야."
노인은 빙그레 웃었다. "가라, 아기새야. 늙은 노움에게 수수께끼의 답이 되거라."
노인의 말을 들은 케인이 몸을 떨며 다시 한번 작게 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