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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도시 기록보관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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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도 안 돼!”

  인간이라 생각되지 않는 움직임에 또 한 번 경악하면서 검은 로브는 재빨리 품에서 단검을 꺼냈다. 그리고 양손으로 단검을 들어 크림슨의 일격을 막았다. 크림슨은 이상하게도 나무 검집 째로 장검을 휘둘렀다.


  손목이 저리는 강격! 검의 크기 때문인지 검집을 끼운데다가 한손으로 휘둘렀음에도 어마어마한 위력이었다. 크림슨의 완력을 몸소 체험한 검은 로브는 힘에 못 이겨 바닥으로 추락했다. 머리가 흙바닥에 꽂히기 직전, 검은 로브는 간신히 몸을 틀어 안전하게 착지했다. 검은 로브는 2격을 대비해 다시 양손으로 단검을 잡았지만, 크림슨은 여전히 담 꼭대기에 올라서 있었다. 검은 로브는 그제야 크림슨이 왜 나무 검집 째로 장검을 휘둘렀는지를 알 수 있었다.


  “목검?”


  크림슨이 가지고 있던 장검은 2m 길이의 기다란 목검이었던 것이다. 자세히 보니 손잡이와 가드 또한 같은 적갈색의 목제품. 이 목검은 하나의 목재로 완벽하게 깎아 만든 듯했다. 크림슨은 담 꼭대기에 올라 목검을 한번 휘두르며 말했다.


  “당신의 정체를 밝히세요. 그러지 않으면 힘으로라도 말하게 하겠습니다.”


  “흥, 할 수 있다면 해봐!”


  검은 로브가 날카롭게 쏘아붙이며 단검을 오른손 역수로 쥐었다. 하지만 사지가 후들거리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검은 로브는 두려웠다.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이 남자가. 인간 같지 않은 힘과 몸놀림. 이길 수 있을까? 무리가 아닐까? 그렇다면 자신은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걸까? 도망쳐야 하는 것 아닐까?


  검은 로브는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이건 자신의 첫 임무. 절대로 물러설 수는 없었다. 상대의 무기는 목검 한 자루. 승산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은 명예로운…….


  “하앗!”


  검은 로브가 기합과 함께 다시 한 번 담벼락을 올랐다. 잽싸게 크림슨의 발치까지 오른 검은 로브는 왼손을 담 꼭대기에 걸친 채 오른손에 든 단검으로 크림슨의 발목을 노렸다. 크림슨은 뒤쪽으로 짧게 점프해 단검을 피했다. 그 틈에 재빠른 동작으로 담 꼭대기에 올라선 검은 로브가 품에서 비수 하나를 꺼내 던졌다. 오른손에 든 단검의 반 정도 되는 크기의 비수였다.


  크림슨은 목검의 끝을 오른쪽 하단으로 향한 검세를 했다. 그리고는 아래에서 위로 목검을 휘둘러 비수를 쳐냈다. 하늘로 솟구친 목검. 검은 로브는 큰 움직임으로 비어버린 크림슨의 복부를 노리고 뛰어들었다. 그러나 크림슨은 2m에 달하는 목검의 무게를 이용해 그대로 한 바퀴를 회전한 뒤, 다시 목검을 들어 검은 로브를 왼쪽 하단으로 내리쳤다. 검은 로브는 단검을 입에 물고 밑으로 뛰어내려 담의 오른편에 매달렸고, 크림슨의 장검은 왼편의 허공을 갈랐다. 검은 로브는 곡예와 같은 움직임으로 벽을 타고 크림슨의 등 뒤로 올라갔다. 둘 다 대단한 균형감각의 소유자였다.


  검은 로브는 단검을 바로잡아 크림슨의 등을 좌에서 우로 내리그었다. 그러나 크림슨은 몸을 비틀어 가볍게 단검을 피하며 뒷발차기로 검은 로브의 턱을 올려붙였다. 불안정한 위치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깔끔한 킥이었다. 거기다 검은 로브의 턱을 부수지 않을 정도로의 힘 조절을 하는 예리함까지 보였다.


  “크윽!”


  외마디 신음과 함께 비틀거리던 검은 로브는 담 반대편의 거리를 향해 점프했다. 날은 이미 어둑어둑해져서 나다니는 사람은 찾을 수 없었다.


  수도 같은 거대도시에는 마법 가로등이 있어 밤에도 많은 사람들이 돌아다닌다. 하지만 많은 발전을 이루었다 해도 아직 대도시의 축에도 들지 못하는 알테르에선 집안에서 태우는 등불과 자경단원들의 횃불이 밤을 빛내는 전부였다. 사람들이 마음대로 나다닐 수 있을 리 없다.


  담벼락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한 여관 간판에 매달린 검은 로브는 3층 발코니를 넘어 지붕 위로 올라섰다. 크림슨은 이번에도 단 한 번의 도약으로 검은 로브의 앞에 내려섰다.


  “너는 도대체 무슨 괴물인거냐?”


  “저를 쓰러뜨린다면 가르쳐드리지요.”


  “쳇!”


  검은 로브가 혀를 차며 품속에서 비수를 3개나 뽑아들어 한꺼번에 던졌다. 크림슨은 무거운 목검으로 쾌속의 칼놀림을 보이며 3개의 비수를 연달아 쳐냈다. 또다시 날아드는 3개의 비수. 요란한 소리와 함께 다시 비수들을 쳐낸 크림슨의 밑으로 검은 로브가 파고들었다. 첫번째 비수를 던진 시점부터 검은 로브는 크림슨을 향해 질주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정확한 타이밍에 도착한 검은 로브의 단검이 크림슨의 심장을 노리고 찔러 들어왔다. 그러나 이미 검은 로브의 움직임을 예상한 크림슨이 한 발 앞서 그의 머리에 미들킥을 날렸다. 검은 로브가 낮게 파고든데다가 둘 사이의 신장 차가 워낙 큰지라 미들킥으로도 충분했다.


  검은 로브는 단검을 뺄 틈도 없이 어깨를 올려 미들킥을 막아냈다. 그러나 크림슨의 각력에 못 이겨 검은 로브는 단검을 놓치며 옆으로 튕겨나갔다. 사람 하나쯤은 발차기 한방으로도 쉽게 날려버릴 정도로 크림슨의 힘은 무시무시한 것이었다.


  “으아악!”


  다행히 뼈는 부러지지 않았지만 그에 필적하는 고통을 느끼며 검은 로브는 몸부림쳤다. 하지만 조금도 쉴 틈이 없었다. 크림슨의 목검이 곧바로 쇄도해 들어왔기 때문이다. 검은 로브는 재빨리 몸을 굴려 수직으로 날아드는 목검을 피해냈다. 굉음과 함께 파란 지붕의 파편들이 검은 로브에게 튀었다. 소매로 얼굴을 가려 파편을 막은 뒤, 검은 로브는 힘겹게 일어섰다. 또다시 달려드려는 크림슨을 비수로 저지하며 검은 로브는 빠르게 뒤로 빠졌다.


  무기인 단검은 크림슨보다도 멀리 떨어져있었다. 주우려고 달려들었다간 꼼짝없이 당할 것이다. 결국 단검은 포기하기로 한 검은 로브는 지친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는 무게를 줄이기 위해 자신을 나타내는 대명사인 로브를 벗어던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