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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도시 기록보관소

판타지 The Magic

2007.07.11 19:03

Rei 조회 수:628 추천: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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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가 치료를 받고 몸을 회복하는 데는 꼬박 석 달이 넘게 걸렸다. 얼마나 지독하게 고문을 했던지 온갖 방법을 동원해서 치료를 했지만 가망이 없어 보여 포기 할까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꾸준히 치료를 하자 차도가 있어 포기하지 않고 완전히 고쳐놓았다.
아무튼, 레이는 페이스리스의 꽤나 귀중한 재산이 될 것이다.
의식을 회복한 레이는 몸을 일으켜 조금 움직여 보았다. 약해진 근육이 비명을 질렀지만 레이는 무표정하게 몸을 점검했다. 예전에 박살나서 고쳤던 팔도 웬일인지 정상이 되었고, 뼈가 잘못 붙어 절뚝거리던 다리도 온전해졌다. 여러 가지 동작을 하며 몸을 점검 하던 도중 한 명의 남자가 치료실로 들어왔다.
『몸은 움직일만한가?』
슐리아시스말. 당연히 레이는 알아듣지 못했다.
『아차차, 넌 이르니아말 밖에 모른다지. 좋아 '몸은 움직일만하냐?'』
『예』
『괜찮은 모양이군? 좋아. 따라와.』
그는 복잡한 지하통로를 자유롭게 움직이며 레이를 이끌었다. 한참을 오르락내리락 하며 도착한 곳은 지하에서 만들어 진 것이라곤 생각 할 수 없을 넓이의 훈련실 이었다. 네 가지 영역으로 나눠진 곳에는 이미 여러 명의 사람들이 뭔가를 하고 있었다.
『앞으로 여기서 지내면서 이것저것 배우게 될 꺼다.』
레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완전한 인형이 돼 있을 테지만 뭐, 불손한 마음을 먹는 다던가 반항을 한다던가 하면 다시 한 번 세뇌실에서 그 늙은이랑 정겨운 시간을 갖게 될 꺼다.』
레이는 세뇌실에서의 기억을 떠올렸다. 고통스러운 기억이었지만 아무런 감정이 생기지 않았다. 단지 그런 사실이 있었을 뿐이다.
『자, 그럼 당장 시작해 볼까?』


사내의 이름은 하즈웬. 꽤나 이름을 날렸던 암살자였다. 지금은 은퇴해서 후배를 가르치고 있지만 지금도 간혹 살벌한 살기를 풍기기도 했다.
레이는 하즈웬이 시키는 그대로 행동했다. 거의 모든 페이스리스의 암살자가 세뇌실에서 정신제압을 당하지만, 스스로 자원한 경우에는 비밀을 누설하지 못하도록 금제를 걸어 두는 것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특별히 고문 같은 것은 당하지 않는다.
레이와 같이 노예로 팔려온 사람들은 페이스리스에 복종 하도록 하는 충성심도 박아 넣지만 레이의 경우는 인성과 자의식을 거의 완벽하게 말살시켜 페이스리스에 대한 복종심만 새겨 넣은 생인형(生人形)이었다.
따라서 하즈웬은 레이를 가르치는 것이 엄청나게 재미가 없었다. 배우는 속도는 빨랐지만 무언가 스스로 생각해서 움직이는 것이 없었다. 하지만, 절대 게으름 피우지도 않고 하즈웬이 지시에만 몰두 한 레이는 이 년이 지났을 무렵 페이스리스의 거의 모든 암살기술을 익혔다.
은밀하고 신속하게 움직이는 이동술. 주변 지형을 이용해서 몸은 숨기는 은신술. 맨손으로 상대를 암살하는 기술. 인체의 급소 등등.
레이의 움직임은 간결하고 군더더기가 전혀 없었다. 하즈웬 스스로도 괴물을 만들어 냈다고 생각할 만큼 완벽했다. 애초에 왜소하고 신체적으로 발육이 덜 되었지만 이 부분은 좁은 통로를 통과 할 수 있는 강점뿐이었다. 약점 따윈 존재하지 않았다.
하즈웬이 모든 교육을 마쳤다고 보고한 그 다음날 바로 임무가 주어졌다. 목표는 미로스 백작가의 첫째딸과 백작부인 암살. 의뢰인은 백작의 후실. 기한은 이주.
목표는 레이가 익히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자신이 팔려간 그곳의 아가씨와 어머니. 하지만 복수를 한다거나 하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단지 가장 신속하고 흔적 없이 처리할 수 있는 방법들을 모색했다.
레이는 출발하기 전 종아리 까지 길어버린 머리카락을 허리부분까지 잘랐다. 평범한 옷차림을 하고 단검과 갈고리 달린 밧줄 같은 도구만 가지고 출발했다.
로스트 빌에서 미로스 백작령의 끄트머리까지 나흘이 걸렸다. 큰 나무위에 올라가서 보니 저 멀리 미로스 백작의 성이 보였다. 레이는 밤이 될 때 까지 나무 위에서 시간을 보냈다. 해가지고 농민들 모두 저마다 집으로 돌아간 후 레이는 조심스럽게 나무에서 내려왔다.
어두워진 주변을 이용하여 그림자에 녹아들어 신속하고 조용히 미로스 백작의 성으로 달렸다. 경비병들이 성벽 위를 움직이며 감시를 하고 있었다. 레이는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게 성 전체를 한 바퀴 빙 둘러보았다.
'후문, 경비병이 적다.'
레이는 경비병이 적은 곳을 확인 한 뒤 틈이 생길 때 까지 끈질기게 기다렸다. 밤이 깊어지자 졸음을 참지 못하는 경비병들이 생겼다. 창대나 성벽에 기대어 꾸벅꾸벅 졸기 시작하자 레이는 조심스럽게 밧줄을 걸고 성벽을 타고 올라갔다. 밧줄을 회수 한 뒤 성벽에서 정원으로 내려갔다.
정원을 가로지르는 동안 풀 소리가 들렸지만, 다른 사람이 알아 챌 만한 소리가 아니었다. 레이는 도착 전에 확인한 대로 첫재딸이 있는 방을 찾아 낸 뒤 발코니에 밧줄을 걸었다. 밧줄이 단단히 걸린 것을 확인 한 뒤 밧줄을 타고 올라갔다.
조용히 문을 열고 들어가자 커다란 침대 한복판에 아가씨가 자고 있었다. 레이는 소리 없이 침대 옆으로 다가가 아가씨의 머리를 양손으로 쥐었다. 아가씨는 차가운 손이 자신에게 닿지 놀라서 잠에서 깨었다.
『너 누구...』
목소리가 높아지려는 찰라 레이의 손이 힘껏 목을 비틀었다. 우두둑! 뼈가 어긋나는 소리가 들리며 아가씨는 그대로 절명했다. 레이는 얼굴 없는 남자가 새겨진 은화 하나를 아가씨 옆에 던져두고 복도로 나갔다.
기름칠이 잘 된 문은 소리 없이 열렸다. 레이는 아가씨의 방에서 왼쪽으로 두 번째 백작부인이 있는 방으로 걸어갔다. 문이 잠겨있었지만 문제 될 것은 없었다. 철사를 기묘하게 구부려 깔짝거리자 찰칵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잠긴 문이 열릴 때 난 소리는 조용한 성 안에서는 큰 소음이었지만 깊은 잠에 빠진 사람들은 눈치 채지 못했다. 레이는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백작과 백작부인이 있는 침대로 걸어갔다. 밤새 격렬한 정사를 치른듯한 흔적이 남아 있었다.
레이는 허리춤에 차고 있던 단검을 뽑아 백작부인의 입을 틀어막고 재빠르게 목을 찔렀다. 낮은 신음소리가 들렸지만 백작은 깨지 않았다. 레이는 아가씨와 마찬가지로 은화 한 개를 옆에 던져두고는 밖으로 나갔다.
성에 들어 올 때와 반대의 순서로 성 밖으로 빠져나갔다. 성 밖으로 나와 성벽끄트머리에 걸려있는 밧줄을 아래에서 흔들자 성벽에 걸려있던 갈고리가 풀리며 밧줄이 스르륵 내려왔다. 레이는 밧줄을 회수 한 뒤 재빠르게 백작령을 벗어났다. 아무런 흔적은 남기지 않았다. 첫 암살로는 믿기 힘들 정도로 완벽했다.
레이는 쉬지 않고 꼬박 이틀을 걸어 로스트 빌로 귀환했다.


레이가 떠난 아침 미로스 백작령이 발칵 뒤집혔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것 같았던 백작의 첫째딸이 목뼈가 부러진 채로 죽었고 백작부인은 백작의 바로 옆에 누워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목에 단검이 꽂혀 죽었다. 그 둘의 옆에는 얼굴이 없는 남자가 양각된 은화가 하나씩 발견 되었다.
페이스리스
그 악랄하고 은밀한 암살자가 다녀갔다는 증거는 은화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백작은 슬픔에 잠겼지만 자신을 갖가지 방법으로 위로 해 주는 후실에게 마음을 빼앗겼다. 백작의 후실은 백작부인의 장례가 끝난 다음날 정실로 승격되었다. 그리고 그녀의 딸과 아들은 미로스 백작령의 공식적인 후계자가 되었다.


레이는 곧장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 확실히 이틀을 쉬지 않고 걸은 것은 미친 짓이었다. 밧줄과 단검을 작은 책상위에 놔두고 신발도 벗지 않은 채로 침대에 드러누웠다. 눈앞이 어지러웠다. 레이는 한번 크게 심호흡을 한 뒤 죽은 듯이 잠이 들었다.
『기대 이상이군.』
하즈웬인 빙긋 웃었다. 확실히 기대 이상이다. 12살 밖에 되지 않은 꼬마가 해낼 일이 아니다. 어린아이를 이용하는 방법은 음식물에 몰래 독을 타거나 하는 것 정도인데, 혼자서 완벽하게 암살을 해냈다.
『괜찮은 물건이죠. 일류암살자에 싸이킥. 이거 황제도 죽일 수 있겠군요.』
하즈웬의 말에 뒤돌아 앉아 있던 남자가 피식 웃었다. 페이스리스의 총수. 그는 자신의 정면을 남에게 보여준 적이 없다. 조직의 이름에 걸 맞는 남자다.(다들 남자일거라고 생각한다.) 그의 얼굴을 아는 사람이 없으니 얼굴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 아닌가?
『그럴지도 모르지. 음, 좋은 장난감일수록 조심해서 다루는 법이니까. 일단은 충분히 쉬게 놔둔 다음 일에 내보내. 조심해서 다루지만 저런 것의 능력을 쓰지 않는 것도 멍청한 짓이지.』
하즈웬은 사나운 미소를 지었다. '좋은 장난감' '저것' 확실히 총수는 레이를 인간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단지 페이스리스에 속한 뛰어난 도구 일뿐. 아니, 그에게는 자신을 제외한 모두가 도구일지도 모른다.
『보고 끝났으면 가봐.』
『예.』
페이스리스의 지부는 슐리아시스 전역에 거미줄처럼 퍼져있다. 페이스리스에 의뢰 하는 법은 아무도 모르지만, 누군가 의뢰는 하고 분명히 대상자는 죽는다. 이상한 일이다. 사실 알고 보면 이상할 것은 없다. 페이스리스는 그 존재를 알고 찾아오는 몇몇 특별한 사람을 제외하곤 먼저 다가간다. '누군가 죽었으면 좋겠다!' 입버릇처럼 이런 말을 중얼 거리는 사람이 있으면 어느새 그에게 다가가 손길을 내민다.
확률은 반반. 은밀하게 다가가서 의뢰를 받으면 목숨값을 받는 즉시 일에 착수한다. 대상은 쥐도 새도 모르게 죽는다. 간혹 미끼를 무는 경우도 있다. 귀족원이나 황제파에게 페이스리스 같은 암살자들은 골칫거리다.
하지만 미끼를 뿌렸던 자는 반드시 죽는다. 몇 번이고 시도를 해 보았지만, 페이스리스의 꼬리하나 잘라 내는 정도에 만족해야 했다.
페이스리스는 밤의 신이다. 밤의 신사. 밤의 황제를 자처하는 도둑들도 페이스리스의 암살자에 비할 바가 못 된다. 그만큼 은밀하고 잔혹하게 밤을 지배하는 자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