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창조도시 기록보관소

문학 (구창도 완결 릴레이) [Tialist] 07~10

2006.11.22 02:21

아란 조회 수:4209 추천:1

[Tialist] 007 : 동북아시아
글쓴이 : 다르칸


어두컴컴한 독방. 조용한 지하실..근실을 위한 독방엔 단 한 줄기 빛만이 스며들어왔다.

"미..란아"

뚝. 어디서 생겨났는지 모를 이슬 한 방울이 그 어두 속 소년의 뺨을 타고 떨어졌다.
.
.
.
13 : 30 제주도 서귀포.

"전 함대 일 함대를 향해 함포사격 개시하라!"

콰앙. 콰앙-! 화염이 솟아오르고, 숨막히는 화염에 몸서린 안개가 시야를 가렸다. 그럼에도 거대한 전함들은 계속해서 포구에서 불을 내뿜었다. 이제 막 용이 사라졌고, 완충지대가 사라지자, 두 국가는 서로에게 이를 드러냈다.
수년간 결코 헛되이 국력을 낭비하지 않고 쌓아올려 막대한 군사력과 재력을 모아놓은 대한민국.
수백년에 걸쳐 엄청난 재력을 쌓아올리고 세계순위에 드는 해양력을 손에 거머쥔 일본.
수 천년의 원환이 쌓인 두 나라는 서로를 향해 날카로운 발톱을 연심 휘둘렀다.

"전 함대-! 하픈 미사일 발사 준비!"

철컹. 사령함으로 보이는 항공모함에서 퍼진 파동은 각각 함선에서 소리가 되어 스피커를 때렸다. 그리고 거대한 미사일들은 그 날카로운 끝을 보이고, 미사일 발사구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곳은 바다다-! 대지에 트론을 내려서게 할 수는 없어'

그나마, 트론의 모습이 인간형이기 때문에 바다에서는 그 위력이 현저히 감소된다. 게다가 그 장갑 역시 무적이 아니기에 집중 화포를 당하면 트론은 가볍게 으깨어진다. 그러나 육지가 된다면, 전차의 수배의 속도로 뛰어다니며(그것도 자유롭게) 우라늄탄과 같은 탄두를 난사한다면, 문제는 달라진다. 이 바다를 저 일본군이 건널 수 없게 해야한다.

"각자 목표설정 후 발사하라-!"

이준 사령의 목소리가 스피커를 타고 들어가. 하픈 대함 미사일은 일제히 레이더의 깜빡이는 일본 함선을 향해 날아갔다.
콰르릉. 천둥소리와 같이 적의 함선 중 하나가 부셔졌다는 신호음이 들렸다. 이제 사방에서 그와 같은 소리가 들렸다.

"함포 각개 발사!"

쾅 쾅 쾅! 다시 한 번 포탄들이 비를 이루며, 적 함선들을 향해 날아가 꽃혔다. 림팩(태평양 해군 군사훈련)에서도 최고 수준의 명중률을 자랑하는 한국해군의 저력이 나왔다.

"사령-! 끝도 없이 밀려들어옵니다"

"드디어..끝나는가?"

한국의 약점은 바로 물자. 일본의 강점은 우수한 병기들이었다. 실력과 천성의 차이랄까? 열대를 맞춰도 다시 열 대가 들어오면 그만이다. 한국해군이 얻을 수 있는 것은 약간의 시간..그것 마저 일본의 자랑이라는 북해 항공모함 전단이 도착하면, 끝날 것이다.

"제길!"

탁자를 거세게 내리쳤다. 저 어마어마한 숫자의 함선들도 막기 힘든 판에 항공모함에서 떠 오르는 공격기들이 투하하는 폭격은 가히 공포일 것이다. 지금 이준 사령이 타고 있는 것 역시 항공모함이라고는 하나, 겨우 10대 내외를 그것도 구형 전투기만이 있다. 일본의 신형 전투기들을 상대하기엔 역부족일 것이다. 그나마 이준 사령은 히든카드랍시고 그 전투기들을 사용치 않을 뿐.

'그래도 얼마의 시간을 끌겠지'

이준 사령은 참모군을 내쫓을 듯 보내고 쇼파에 몸을 묻었다. 깍지를 끼고 무릎을 꼰 채 그의 눈은 자신의 조국 대한민국의 본토로 향해 있었다.

"대한민국 만세"

이준 사령은 자신의 죽음 예감하고, 오기 전에 두고 온 아들내미가 생각났다.
.
.
.
이틀 뒤. 한국에서 급보가 도착하자 커텔은 아카라의 석방을 윤허했다.

철컹. 굳게 닫힌 철문이 열리고 그곳에선 어깨까지 길어진 머리카락으로 싸늘한 시선을 지닌 소년이 나왔다. 한 껏 성숙해진 듯한 아카라의 모습에 직원들은 흠칫 했으나, 임무는 임무. 그를 커텔에게 데리고 갔다.
지잉. 금속음과 함께 열린 커텔의 사무실엔 탁자에 앉아 자신을 바라보는 커텔과 그 옆에 서서 묵묵히 탁자만 바라보는 카렌티어스가 있었다.

"왜 꺼내셨죠?"

"한국이 위급하다. 드로우와 함께 서울로 가라"

잠시의 적막. 이것을 깬 자는 소년이었다. 유난히 그의 블루블랙의 머리카락은 싸늘한붕위기를 풍겼다.

"가겠습니다. 그럼 이만"

지잉. 금속음과 함께 사라진 아카라를 보며, 커텔의 눈은 슬그머니 그늘졌다.

"그녀의 아들이란 말인가? 정말 똑같군"

한 때의 망상인가. 그리움인가? 커텔은 잠시 자신의 연인을 기억해내고 카렌티어스를 바라보았다.

"네 형제는 어떠냐?"

"아카라는 문제 없습니다 '그것'을 진행하는 데는 말이죠"

"아무리 그래도 네 형제다"

"숙지하겠습니다"

카렌티어스는 잠시 싸늘하게 커텔을 바라보곤 그 눈을 거두고 몸을 돌려 문을 향해 다가갔다. 지잉. 문이 열리고 카렌티어스의 모습 마저 사라졌다.

"카렌티어스, 아카라. 너희 모두 내 아들이다..."

커텔의 안경에 문득 서리가 끼었다.
.
.
.
부르르릉. 조용한 엔진음과 함께 풀발한 트럭은 그다지 흔들림도 없이 육중한 몸매를 이끌고 한반도를 향했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낯설지 않았다. 워낙 백두산을 좋아했기 때문에 그 설원에서 미란이와 함께 노는 것이 좋았던 그는 커텔의 양자라는 직책까지 꺼내들고 자주 백두산으로 가곤 했었다.

'미란아'

차창 멀리 시베리아의 혹한 사이에 보이는 것은 미란이의 손짓일까? 아카라는 블루블랙의 약간 붉어진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벌써 염색을 할 때가 된 건가? 그래..나는 존재해선 안되는 아이...아카라는 재빠르게 넘어가는 광경을 조용히 지켜 보았다. 그것은 주마등처럼 흩어 지나가는 자신의 모습과 같았다. 죽어버린 어머니, 미란이, 유박사님, 커텔, 카렌티어스와 맨 처음 만남. 드로우에 올라탈 때, 맨 처음 용을 물리쳤을 때 그리고...미란이가 죽는 모습..
이미 차가 달리는 속도만 400km를 넘기고 있었다. 어마어마한 속도로 사라지고 나타나는 광경에 추억에 잠기던 아카라의 손이 문득 굳게 다물어져 피를 쏟아냈다. 얼마나 꽉 지었는가...이것은 복수심인가?

"!"

한강 근교를 넘어서고 있는 시점에 아카라의 눈동자는 초점이 잃었다. 이곳저곳에 깊게 파인 대지의 흉터와 핏자국, 핏물 벌겋게 염색이라도 한 듯한 한강의 모습과 폐허가 되어버린 한 나라의 수도의 모습. 전쟁이란 것.

끼이익. 귀를 울리는 브레이크 소리와 서서히 차의 속도가 출어드는 것이 느껴졌다. 벌써 도착한 것인가? 아카라는 열리는 문을 바라보고 있었다. 흑발 꽁지머리를 한 청년이 다가와 손을 내밀어.

"안녕하신가? 대한민국 육군소령 김해준이다"

"아, 예"

아카라는 갑작스런 해준의 몸짓에 놀라 그의 손을 잡고 몸을 일으켰다. 잠시 버엉해진 분위기에서 깨어날 때 쯔음 해준은 다시 그의 손을 잡고 이끌었다.

"이곳은 폐허다 모두들 피난을 가 버렸지. 평양으로, 남은 것은 우리 영예로운 국군 뿐이다 아카라군이라고 했나?"

빠르게 수두룩하니 쌓이는 말을 보며, 아카라는 무심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아카라는 다시 해준의 손에 이끌려 한강둔치에 도착했다.

"지금 이 서울을 방어하는 것은 수도방위군이다. 그리고 상대편은 트론 다수와 함께 110식 돌격전차 다수를 이끌고 진격 중이다. 다만 우리의 굳센 저항으로 인해 잠시 진격을 멈춘 대치상태이다. 이 내륙에서 트론을 당할 것은 트론 밖에 없다"

끄덕. 더 이상 아카라는 해준을 상대하는 것이 피곤해졌다. 어쩌면, 이곳에 용이라도 잇지 않을까 해서 온 것인데 그의 바램은 너무 컷던가? 인간과 인간들의 대참사 속에서 아카라는 해준이 하는 말을 들었다.

"너는 전투에 임할 것이다 앞으로 3시간 남았군. 저들의 기습 예상시간이"

"예?"

자신은 저렇게 사람들을 죽이고, 피를 흘리게 하고 대지에 상처르 주어야 하는 건가? 그가 바랬던 것은 미란을 잊을 정도로 격하게 싸우고 싶은 것이지. 살생이 아니다. 대체 왜 자신이 이곳에 온다고 한 거지? 무슨 짓을...

"그렇지만!"

"자네가 이곳에 온 것은 자청으로 인해서라고 알고 있네"

"저는 이곳에 용이..."

"용이 없다던가? 그런가?"

"트론은 사람을 죽이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닌. 살리기 위함이 아닌가요?"

아카라의 한 마디. 그 마지막 한 구절에 김해준 소령의 눈이 착 가라앉았다.

"사람과 사람의 싸움. 너는 우리편이고 이쪽의 사람들을 구하는 트론이고 저쪽의 트론은 저쪽의 사람들을 구하고 돕기 위해 싸우는 것이다. 그리고 트론은 병기야"

"그치만..."

그 소년의 마지막 말은 묵살되었다.
.
.
.
동경. 천황의 집무실.

"그런가? 트론이 도착했다고?"

"그렇습니다 헤이카"

피직. 시가에서 불꽃과 함께 담배연기가 피어올랐다. 천황이란 자의 얼굴에 희미히ㅏㄴ 미소가 감돌았다.

"분명 아카라와 카렌티어스라고 했겠지?"

"그렇습니다"

천왕은 일어섰다. 그의 모습은 아직 어둠에 가려 보이질 않았으나, 그의 하얀 이는 어디선가 새어들어오는 햇빛을 받아 반짝이고 있었다.

"복수를 해주마 내 딸을..잃은 복수를 말이다 JS 1, 2, 7 식을 보내라"

"하잇 덴노 헤이카 만세! 덴노 헤이카 만세!"

"키키키키킥"

시가는 천천히 타들어가고 있었다.
.
.
.
콰앙. K2전차의 포구에서 포탄이 날아갔다. 이어서 K9 자주포의 주포 역시 발포가 시작되었다. 그들의 임무는 다가서는 일본군을 막는 것.
콰앙. 신형이라는 이른바 110식 돌격전차들이 단단해 보이는 몸체로 빠르게 돌진하며, 대포를 쏘대기 시작했다. 130mm의 거대한 주포 덕분에 110식에 맞은 한국전차는 무참히 부셔져내렸다.

퉁퉁퉁퉁. 어디선가 등장한 헬기들은 헬파이어 대전차 미사일을 쏴대기 시작했고, 명중된 미사일의 화력으로 인해 돌격전차와 갖가지 일본군의 전차들은 고철로 변했다.

"와아아아-!"

국군의 함성도 잠시 그것은 곧 포음에 묻혀버리고 이어서 수십의 폭격기들이 나타나 일본군을 쑥밭으로 만들어버린 뒤에 일본진영에서 나타난 전투기들에 폭격기들은 하나 둘 씩 추락했다. 이어서 공중전은 전투기들의 난사전으로 바뀌고, 땅에선 헬기의 지원을 받지 못 하는 K-2전차들이 자주포와 함께 힘겹게 일본군을 막고 있었다.

한강 이북의 사령차는 바쁘게 돌아가고 있었다. 이곳 저곳에서 오퍼레이터들이 올리는 격추, 명중, 격파, 피해 상황들이 속속드링 김해준 소령의 귀에 꽃혔다. 이어진 한 마디.

"현재 좌표 003, 089 에 적 트론 발견! 1식으로 판별"

"좌표 003, 088 에 적 트론 발견! 2식으로 판병"

"좌표 004, 088 에 적 트론 발견! 7식으로 판별"

세 오퍼레이터가 동시에 외친 한 마디에 김해준 소령의 연신 감겨있던 눈이 떠졌다.

"연락병. 트론 출격을 명령하라"

"옛!"
.
.
.
전투가 일어나기 2시간 전, 한강 둔치.

"사람은 어째서 싸우는 걸까?"

저 멀리 아득히만 보이는 남산의 모습은 흡사 백두산같은 인상을 보여주었다. 그 이유는 저 위에 떠 있는 먼지구름들이 안개를 만들어 남산과의 거리를 늘려 보이는 것 때문일 것이다. 탁. 누군가의 따뜻한 손이 다가왔다.

"참 아름답지? 5000년이란 세월을 사람들과 함께 버텨온 산이지"

소년, 아카라는 고개를 돌려 목소리의 주인공을 찾았다. 약간 붉은색이 혼합된 적갈색 단발 머리카락을 지닌, 소년이 서 있었다. 그 소년은 희안하게 생긴 옷을 입고 있었는데. 걸치적 거릴 만큼 펑퍼짐한데다가 목 둘레와 배가 검게 칠해져 있었고, 배의 검은 것은 띠 같았다. 그리고 왼쪽 가슴엔 태극기와 주먹이 어울져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그 한국인에게 상당히 잘 어울렸다.

"나는 태랑. 신형 트론 '무휼'의 파일럿이다"

파일럿인가? 그렇다면 나리아스의 소모품인가? 그러나 아카라는 입을 열지 않았다. 그것이 상처가 될 것이기 때문에..

"으음, 그 눈은 내가 양성된 파일럿이라고 보이는 것 같은데? 미안하지만 나는 동화율 S급의 장병이야"

양성된 파일럿이라..쓰레기보다는 그나마 순화된 표현이라고, 아카라는 생각해보고 다시 고개를 돌려 남산을 바라보았다. 아직도 산은 변하지 않았고, 그 소년은 추억에 잠겼다.

"이런, 세계최고의 파일럿이 어떤지 보러 왔는데...영 풀이 죽어있구나"

털썩. 태랑이라는 소년은 아카라의 옆에 주저 앉았다. 그의 눈은 조심스레 가라앉아 진중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너도 양성된 파일엇이 아니지? 네 이야긴 자주 들었어. 아버지..아니, 대령님이 자주 말씀해 주셨거든"

"아버지??"

아카라는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태랑을 바라보았다. 그것을 보던 태랑은 멈칫, 웃음을 보였다. 너도 관심이란 게 있구나? 그 소년은 고개를 돌려 아카라에게서 눈을 떼 한강의 파란 물결을 보고.

"그는 내 양아버지야...내가 어렷을 때, 아마 7살 때 어머니와 아버지 일가가 돌아가셨고, 고아원에서 굴러다니던 나를 데리고 오신 분이 지금의 양아버지지...그 분은 철저한 군인이시라 호되게 맞은 적도 있었고, 꾸중을 들은 적도 있었어. 그러던 어느날 내 동화율이 S급이라는 것을 안 아버지는 나를 군대에 입대시키셨다. 대학이라면, 특차입학 정도 될까?"

잠시 나즈막한 한숨이 새어나온 뒤에 소년은 다시 말을 이었다.

"나는 이제 아버지를 위해 싸우고 있지, 아카라라고 했나? 나와 한 판 붙어보지 않겠어?"

자리에서 일어난 태랑은 웃으며, 벙쪄있는 아카라의 몸을 일으켰다. 그러나 오래가지 않아 아카라는 마음을 다잡았다. 어차피 미란이를 잊기 위해 싸우기 위해 온 거잖아. 좋겠지...

"자, 너에게 선수를 주지. 덤벼라"

적의가 드러나는 태랑의 변함에 아카라는 약간 놀라면서도 조심스럽게 발을 옮겼다. 모든 파일럿들은 무술과 체술을 훈련받는다. 그렇기 때문에 아카라는 전혀 꿇릴 것이 없었고, 오히려 호승심시 솟구쳤다.
파앗. 아카라가 발을 디뎌 무릎으로 태랑을 노리고 들어갔을 때.

"아카라 뭐 하나?"

아카라는 뭔가가 섬뜩하게 자신을 향해 올라서는 것과 동시에 자신의 뒤에서 익은 목소리가 부르는 것을 느꼈다. 카렌티어스...미란이를 죽게 만든 녀석. 지금 피어오르는 것은 분노...차갑게 식어버린 이성.

"뭐지? 카렌티어스"

"출동이다"

방긋. 태랑을 향해 돌아본 아카라는 그의 웃음을 보았다. 그리고 마침 아까 자신을 향해 섬득하게 들이대던 것을 기억해냈다.



- 아카라. 네 앞의 다리를 넘어가면 그곳에 세 기의 기체가 모두 있다. 기종은 1식, 2식, 7식으로 판명되었다.

아카라는 대답치 않고 다리로 대지를 디뎠다. 그 다음에 이어서 드로우는 먼지를 일으키며, 재빠르게 다리 반대편으로 넘어갔다.
타타타타. 갑작스럽게 다가오는 총탄들을 직감한 아카라는 제비를 돌아 자리를 피했고, 자신이 있던 자리가 움푹하게 패인 것을 볼 수 있었다.

- 오랜만이지?

귓가에 익은 목소리. 고개를 돌리자 눈에 들어오는 것은 전보다 더욱 날칼워진 일본도를 어깨에 둘러맨 붉은 색 기체. JS 7식이었다. 그 뒤를 이어 나타나는 것은 백색의 켄타우르스처럼 4족 보행을 하는 1식 진무. 날렵하게 생겨서 등에 십자 표창을 매고 있는 2식 아마테라스.

- 동화율 77% 진무, 동화율 100% 이상 7식 사무라이, 동화율 60% 이상 2식 아마테라스. 모두 강적이다 아카라. 크로킹한다

아카라는 이미 위험을 직감하고 있었기에 기분과는 상관없이 크로킹을 허락했다. 곧 들이닥치는 묘한 기분과 함께 확 트이는 넓은 시야와 자신의 몸처럼 각인되는 드로우의 기체.

- 각오해라! 꼬맹이!!

- 와타나베!!

와타나베..? 7식 파일럿의 이름인가? 아카라는 미처 고민할 겨를도 없이 날아드는 일본도를 올 때 들고 온 듀거 란스로 막았다. 이어서 허리를 노린 일본도에 아카라는 듀거 란스를 세워 막아냈다. 채앵. 강맹한 금속음이 전신을 울렸다.

- 저게 크로킹이라는 건가? 대단한데?? 확실히 동화율이 100%정도 되어 보이네?

- 켕. 저런 움직임이라니!! 와타나베. 협공한다!!

와타나베라고 불린 7식의 파일럿은 아무말 없이 감작스레 일본도를 늘어뜨렸다. 그리고 천천히 뒤로 세 기체가 나란히 서서 아카라는 노려보았다. 찰나의 시간 동안. 그리고 이어진 협공.
투타타타타타타-. 진무의 양 어깨와 말과 같은 하체 골반에 달린 50mm 주포는 사정없이 포탄을 내뱉었다. 이어서 일본에 단 하나밖에 없다는 1급 병기인 트라이 건은 수천개의 총탄을 쏴대고, 진무의 가슴과 흉부에는 거대한 구멍이 열려 길게 앞으로 뻗어졌다.

- 크하아아-. 이게 바로 대 우주전으로 개발된 레이져 스플랙스 건이다.

서기 2010년에 박차가 가해지던 우주개발과 더불어 미합중국은 앞으로 있을 우주전쟁에 대비하여, 태양력을 응축, 발사할 수 있는 레이져 스플랙스 건을 개발한다. 그 개발의 종착역은 그로부터 15년 뒤인 2025년 성공적으로 개발된 이 기하학적 파괴력을 자랑하는 병기는 용의 등장과 함께 폐기처분이 될 위기에 놓여 값싸게 일본으로 넘어가 진무의 최강 화력무기로 이용된다.(원리는 B모 엔터테이너먼트의 S모라는 게임의 야마토포와 동일함) 물론 이 병기는 지구에서 사용할 경우 본래 능력의 60할 밖에 발휘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 파괴력은 수만도의 열과 함께 상대를 철저하게 녹여버릴 정도로 대단하다. 단점이랄 것은 그 태양력을 응축하는데 걸리는 시간.

'아카라-! 절대 태양력을 축적하게 해선 안된다 진무를 공격해!'

카렌티어스의 다급한 외침이 울렸다. 그러나 그것은 여의치 않고, 갑자기 달려든 7식이 일본도는 듀거 란스를 거칠게 휘어쳤다. 깡. 쇠를 치는 육중한 소리에 휘청한 아카라는 재빠르게 몸을 돌려 뒤에서 날아드는 표창을 받아쳤다.

퍼버벙. 듀거 란스에 부딪힌 표창들은 폭발을 일으켰고, 기체엔 피해가 가질 않았으나 시야를 방해했다. 스르릉. 매섭게 등을 노리고 들어오는 바람을 가르는 일본도를 아카라는 듀거란스를 휘둘러 튕겨내고 다시 날아오는 표창을 피해 공중제비를 돌았다. 타타타타타타. 태양력을 축적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진무의 병기는 전혀 기죽지 않고 드로우를 노렸다.

- 하핫. 어떤가? 닌자는 표창이 주무기지.

슈슈슉. 표창이 다시 날아왔다. 아카라는 표창을 피하다가 날아오는 총탄을 듀거 란스로 그어버렸다. 더 이상은 힘들었고. 마지막 순간이 다가왔다.

- 크하하핫-! 자 그만 죽어버려라-!!!!

아득하게 새 하얗게 변하는 세상. 아카라의 눈에 비치는 것은 한 아이의 울음이었다. 누구인지 어디에 사는 아이인지도 모를 아이가 주저앉아 울고 있다. 거인들의 싸움 가운데 앉아. 이대로 있으면, 아이는 죽는다! 아카라의 뇌리에 각인 된 피바다가 떠올랐다. 미란이의 죽어가는 모습. 피바다가 된 한강과 주검으로 쌓아올려진 산.

- 안돼에-!!!!!

아카라는 몸을 날려 그 아이를 몸체로 감쌌다. 그리고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
.
.
쿠과가가강. 콰르르릉! 천둥 번개라도 치는 듯한 소리와 함께 아카라는 눈을 떳다. 여긴 어딘가? 아이? 땅? 그렇다. 아직 그의 목숨을 붙어 있었다. 어찌된 영문인지? 아카라는 고개를 돌렸다. 그곳엔 플라즈마 자기장 베리어를 펼치고 있는 이지스의 모습이 있었다.

- 에릭!

- 헤헷, 미란이를 위해서라도 죽으면 안돼지. 그렇지?

그렇게 웃는 것도 잠시. 에릭의 이지스는 더 이상 견디지 못 하고 사이오닉 자기장 발생장치가 달린 양 어깨가 으스러져 나가고 그것도 모자라 불어닥치는 열의 후폭풍에 나가떨어졌다.

- 에릭-!!

- 아앗..온 몸이 쑤시는 것 빼곤 괜찮다구

아카라는 조심스럽게 그 아이를 잡았다. 그리고 그 아이를 이지스 옆에 내려놓고 몸을 돌렸다. 그의 눈엔 약간의 살기마저 돌았다.

- 으음, 더 이상 레이져 스플랙스 건을 쓸 수는 없지만, 아무리 그래도 우리들의 협공을 당할수 있을 거라 보나?

사실 아카라도 멈칫했다. 그러나 대범한 듯 움직였고, 아직 저 셋은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 했다. 아무리 날고 기고 동화율이 높으면 뭘 하는가? 자신보다 저 아마테라스는 수배 더 빠른데다가 진무의 병기는 무시무시하고, 동화율 100%, 자기 자신의 몸과 똑같이 운용할 수 있는 7식까지. 사실상 이길 확률은 없다.
콰앙. 아마테라스가 가장 먼저 아카라를 향해 달려들었다. 꽈앙. 그러나 아마테라스의 가벼운 몸체는 아카라의 드로우에 닿지 못 했다.

- 헤헷, 아마테라스-! 시모노 중령! 오랜만이지?

- 커헉! 태랑!!!

상당히 친숙한 듯 아마테라스의 시모노 중령은 태랑의 존재를 알아보았다. 그도 그럴 것이 태랑의 트론인 '무휼'은 하얀색이 일색인 모습이었고, 게다가 가슴에 새겨진 태극 무늬와 그 특유의 민첩한 몸놀림은 인상적이었다. 솔직히 아카라가 한강에서 봤을 태랑의 모습과 그다지 다른 것도 없었다.

- 하핫. 3대 1은 불공평하잖아? 도와주러왔지.

- 고..마워

아카라는 머뭇거리며, 고마움을 표시했다. 무휼은 손을 한 번 흔들어 보이고는 그대로 아마테라스를 향해 튀어갔다. 그리고는 연속으로 빠른 발차기를 걸었다.

- 아잣, 돌려차기! 휘어차기! 찍기! 홰축!! 제비날치기!!

무휼은 발의 끝이 뾰족했다. 상당히 예리하게 그것은 손톱 역시 비슷했는데. 그 이유를 확연히 알 수 있을 정도로 기술은 발과 양 팔을 이용하고 있었다. 특히 홰축의 경우엔 한 발로 디디고 몸을 360도 돌려 발 뒤꿈치로 적의 안면을 가격하는데. 무휼의 날카롭게 튀어나온 뒤꿈치의 날은 아마테라스의 기체 여기저기에 상처를 내놓았다.
샤앙. 날아드는 일본도의 날카로움에 드로우에 탄 소년은 더 이상 저 무인들의 싸움을 관람할 여유가 사라졌다.

- 자아, 아직도 너는 2 대 1이다!!

타타타타. 이번에 날아드는 것은 1급 병기인 트라이 건. 비록 강력한 자력이 발생되는 곳에선 다른 전기기기처럼 그 효력이 확연히 떨어지지만, 이렇게 트론 대 트론이거나 액체형의 용, 파충류과의 용들을 상대할 때는 아주 적절하고 확실한 화기가 아닐 수 없었다. 드로우는 몸을 굴려 총탄을 피했다. 그에 이어져 일본도가 날아들자 듀거 란스를 가로로 놓아 막아 튕겨낸 다음 순간에.

- 으랏차아-!

듀거 란스의 기능은 바로, 검강이라 불리는 것들. 나노 테크놀러지 분야의 천재 놀 테이너 박사가 개발한 기능으로써 나노 단위의 미세한 입자들이 검강을 거는 순간 듀거 란스의 주위에서 미친들이 회오리쳐 닿는 물건을 보이지도 않는 단위로 갈라버린다.
파가가강. 그러나 장인이란 자의 손을 거친 와타나베, 7식의 일본도는 검강에도 당당히 맞서고 있었다. 게다가 나노 태풍을 뚫으면서 서서히 들어오기까지 한 것을 보면, 그 일본도의 간결함과 단단함이 어느 정도인지 추측하기 어려울 정도가 되었다.
퍼엉. 간신히 일본도를 다시 나노 태풍 밖으로 밀어내자 이번엔 50mm 철망탄이 진무의 포신을 타고 날아왔다. 쿠구궁. 비록 직접적 피해는 없었으나, 철망탄으로 인한 그늘 덕에 드로우는 7식의 기습을 피할 수 없었다.

- 아아앗-!!

동화란 것. 그런 것이 100%가 넘어가면, 트론의 기체는 신체의 일 부분이 된다. 즉 고통도 공유하게 된다는 것...아카라는 어깨를 뚫고 들어오는 일본도의 섬뜩한 고통에 몸부림치며, 모든 힘을 내쏟아 듀거 란스를 휘둘렀다. 콰르릉 콰릉! 나노 태풍에 타격을 당한 7식의 어깨 역시 완전히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비록 그 입자들이 나노 단위로 쪼개져 있으나, 육안으로는 그 입자들을 구분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보기에는 그대로 '사라져' 버린 듯 한 것이다.

- 크허억!

와타나베 역시 100%의 동화율을 보이는 자. 어깨가 송두리째 사라지는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뽑혀나가는 일본도의 섬뜩함에 더욱 고통스러운 아카라는 가까스로 진무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더 이상 무거운 기체를 감당할 만한 힘이 남아있질 않았다.
.
.
.
땅거미가 지는 때에 붉게 타오르는 석양을 바라보는 블루블랙의 소년이 있었다. 그 소년의 머리카락이 약간 붉은 것이 노을 때문인지 아니면, 원래 그런 머리였던지는 알 수 없었다.
이 주검들은 내가 그런 것인가? 그런가? 왜 사람들은 싸우는가? 소년은 나즈막히 독백을 읆고 있었다. 자신이 구한 것은 그 때 그 어린아이 하나 뿐이었단 말인가? 일본의 군세가 물러간 지금 이 대한민국이란 나라의 수도는 주검으로 산을 쌓고 피가 강물을 이루어 흐르고 있었다.

"왜...대체 사람들은 왜 싸우지?"

그 소년은 그것에 대한 궁금증을 떨쳐낼 수 없었다. 또 하나 뇌리에 각인된 풍경과 자신이 사랑한 소녀의 모습이 문득 그리워졌다.

"미란아. 너라면..어떻게 할까? 웃어줄까? 위로해 줄까?"

소년은 고개를 약간 들었다. 문득 태랑이란 녀석이 생각났다. 소년은 그를 생각해내고는 그에게 질문을 걸었다.

"태랑아. 왜 사람들은 싸우는 걸까? 왜 모두가 서로 미워할까?"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이 자리에 없었으니까. 그 소년의 뺨에선 이슬이 타고 내려왔다. 그 이슬은 서서히 굵어져 이윽고 소년은 눈물을 쏟아내 서럽게 울었다. 무어가 그렇게 서러운 건가.

누군가 노래를 읆는다.
.
.
.
아카라는 또 석양을 바라보고 있었다. 마음이 아파...저렇게 여린 아이인데 나는 아무것도 해줄 수 없어...내가 용안을 가졌는데 뭘 어쩌라는 건가? 이따위 용안. 너 하나 살펴주지 못 하는데 뭐하러, 그래. 어머니가 돌아가실 때도 이 따위 용안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도 못 했어.

"왜...대체 사람들은 왜 싸우지?"

괴로운 거니? 니가 저 사람들을 모두 죽였다고 생각하고 있는 거야? 또 그런 자괴감에 빠질 거니? 나는 언제나 저 멀리 서서 너를 바라볼 뿐이고 너는 또 멀리 가 버릴 거니? 한 발자국 다가서서.

"미란아. 너라면..어떻게 할까? 웃어줄까? 위로해 줄까?"

또...그 아이를 생각하는 거야? 미안해..너무 미안해서 아무런 말도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지금 너를 바라봐 주는 것 뿐 이야. 아니, 어쩌면 말야 나는 널 증오했는지도 몰라 시기하고 질투하고 친구들 사이에 쌓여 사는 너를 보며.

"태랑아. 왜 사람들은 싸우는 걸까? 왜 모두가 서로 미워할까?"

태랑..아까 그 파일럿인가? 그래? 다행이야. 새로운 친구가 생겼구나, 아카라. 뒤를 돌아보지 말아라 아직 너에게 나는 차가운 원수로 남아 있어야 해. '그것'이 실행되기 전까지 말이야 그렇지만, 대답해주고 싶어. 네 잘못이 아니라고! 그렇다고, 그렇지만 나는 지금 너에게 아무런 말도 건네 줄 수 없어. 미안해 다만, 이렇게 너를 지켜봐 주는 것 밖에는 해줄 수 없어
.
.
.
또, 우는 구나.



- 강물이 모두 바다로 흐르는 그 까닭은
언덕에 서서
내가
온종일 울었다는 그 까닭만은 아니다.

밤새
언덕에 서서
해바라기처럼 그리움에 피던
그 까닭만은 아니다.

언덕에 서서
내가
짐승처럼 서러움에 울고 있는 그 까닭은
강물이 모두 바다로만 흐르는 그 까닭만은 아니다.



그는 언젠가 어머니에게 들은 노래와 같은 시를 읆었다.


====================================================================================================================


[Tialist] 008 : 잠깐의 휴식
글쓴이 : 영원전설


  아카라는 언덕에서 그의 뺨을 부드럽게 어루만져주는 산들 바람을 맞으며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앞에는 인공적으로 거칠게 만들어진 듯한 조그만 언덕에 [미란]이라 새겨져 있는 나무 푯말이 꽂혀 있었다.  

  "..  형편없네.  너의 무덤.  이렇게 밖에 만들 수 없다니."

  그는 흙 범벅이 된 손으로 움켜지고 있었던 한 움큼의 민들레꽃을 무덤 앞에 놓았다.

  "하지만 적어도 이런 것이 너를 좀더 편안하게 할 수 있다면 좋겠어."

  시체조차 담겨있지 않은 그녀의 무덤은 말없이 그를 바라만 봤다.  그러나 아카라는 들어주는 사람이 없다는 사실을 망각한 체 주저 없이 입을 열었다.

  "기억하지, 여기?  가장 노을이 잘 보이는 곳.  허락이 될 때마다 여기로 왔잖아.  우리가 바깥 세상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었던 유일한 곳.  그러고 보니..  우리가 트론에 타기 전 알고 있었던 세계는 여기와 기지, 그리고 CAGE뿐이었네.  그래서 그때 너는 항상 희망에 찬 눈빛으로 나에게 말했지.  '다른 세상도 저 해 지는 노을처럼 아름다울 꺼야'...  라고 했었나.  그때 난 뭐라고 대답했는지 잘 모르겠지만 말야, 지금 난 이곳이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보여.  내가 이제까지 본..  다른 세상은 너무나도 더러우니까.  너무나도 더러워서 역겨워 질 정도야.  우리의 가장 소중한 사람을 죽인..  너를 죽인 용들이 아직도 세상을 휘 젓고 다닌 데도 인간은 아직도 서로를 죽여.  살아남기 위해서란 명분아래.  강물은 피로 흐르고 땅은 온통 고철과 건물 덩어리 천지야.  하늘은 불타는 대지에 의해 영원한 회색으로 변색되어서 해라는 것은 찾아 볼 수도 없어.  그저 처참한 주변을 조금 밝혀주는 빛 덩어리일 뿐.  하지만 변질 되어버린 그곳을 생각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나도..  생각해 보지 못했어.  왜 일까.  이렇게 여기 있으면 이 자연이 너무나도 좋은데 말야."

  무덤 위를 쓰다듬는 아카라의 푸른 눈동자는 조금 젖어 있었다.  역시 소중한 자의 무덤 앞에 감정을 추스르는 것은 무리일까.  

  "넌 좋지 않았던 거야?  왜 탔어야 했어.  왜 날았어야 했어.  왜 싸웠어야 했어.  모두들 그렇잖아.  모두들 자신이 살기 위해서 발버둥치잖아.  왜 너는 죽어야만 했던 거야.  살고 싶지 않았어?  넌 특별해?  모든 사람들이 그렇잖아.  살고 싶다고.  살기 위해 용을 죽이고, 서로를 죽이고...  그리고 너를....  납득하지 못하겠어.  진리가 아니었단 말이야?  실기 위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것이?  왜 그럼 모든 사람들은 그렇게 하고 너는 그러치 않았어?  그 많은 사람들이 서로가 살고 싶어 짓밟고 베고 부시는데, 넌 왜 남을 위해 죽었던 거야..  누구도 뭐라고 하지 않았을 거잖아.  자신이 살고 싶어서 그러는 것을 누구도 뭐라고 하지 않았을 꺼야.  내가 있고 닥터 유가 있는데 그 누가 뭐래.  믿지 못했던 거야?  내가 그 용을 죽일 수 있다는 것을 믿지 못했던 거야?  내가 지켜내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거야?  너를?"

  조금 전만 해도 상당히 가라앉았던 아카라의 목소리는 이윽고 가둬 두려 했던 온갖 감정들을 쏟아내었다.  절망, 고통, 분노, 후회...  이런 상태이니 아카라가 자신이 뱉어내는 말 틈의 모순을 보지 못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자신은 무언가를 위해 희생할 수 있지만 미란이는 못한다니.  불행 앞에 인간은 객관적일 수밖에 없는 것인가.  그가 앞에 놓여져 있는 그의 물음에 대한 답을 보지 못한 것은 자명한 일이었다.  미란이가 왜 죽었어야 했는지, 누구를 위해 죽었어야 했는지.

  "모두가 싫다.  모두가 싫어.  너를 타게 만든 카렌티어스도 싫고 그것을 허락해준 아버지도 싫어.  너를 죽게 만든 용도 싫고 너를 죽게 만든 트론도 싫다.....   그리고 너를 지켜주지 못한 나 자신도...  싫어..."

  무덤 앞에 꿇어앉은 체 아카라는 결국 오열했다.  미란의 무덤은 그런 그를 그저 말 없이 받아들일 뿐이었다.

********************************************************************************

  그는 가만히 천장만을 바라보았다.  하얀 천장인가.  왜 하얀 색일까...  뭐, 그런 건 관계가 없는 걸까.

  "이제 많이 좋아진 것 같네, S-X03.  자네의 체력도 대단하군.  이런 상처들을 계속 입었는데도 완쾌가 되다니."

  칭찬인지 뭔지.  감정이 들어있지 않은 의사의 목소리와 눈동자는 에릭에게 그 무엇보다도 아팠다.

  "네."

  "뭐, 그래도 한 며칠만 안정 차 누워 있는 게 좋겠군."

  의사는 의자에서 일어나 문으로 걸어가면서 말했다.  그리곤 갑자기 피식 웃었다.

  "용이 나타나기 전 까진 말이지."

  무언가 의미심장한 말을 내뱉으며 나가는 의사를 그는 참 재수 없는 인간이라고 에릭은 생각했다.  뭔가 생각해 주는 척 하면서 저런 말투란.

  "하긴, 우린 소모품이니까."

  용과의 싸움을 위한 소모품.  그와 미란은 그 이상도 아니고 그 이하도 아니었다.  그들에겐 과거가 없으며 미래도 없었다.  그들은 가진 것 없는 자들..  이용당하는 자들..
  그렇게 생각해 왔다.  그래서 의욕도 없었다.  그저 살고 싶다는 마음에 적당히, 그들이 자신에게서 원하는 만큼 만 해왔다.  살아있지만 죽었던 나날들.  그래.  미란을 만나기 전 까지었다.

  '아..  거기 있는지 몰랐어.  미안.'
  
  바닥에 뻗어 있던 그를 밟아서 넘어진 미란의 첫 인사였다.  

  '..  별로. 신경 안 써.'

  무의식적으로 그는 미란이 바닥에 널부러뜨린 종이 중 하나를 집었다.  거기엔 웬 동그라미 세 개와 뾰족뾰족한 송곳들이 그려져 있었다.

  '아, 이거, 내가 그린 거야!!  어때?!  잘 그렸지, 잘 그렸지?!"

  도대체 무엇을 그린 건지 도무지 이해가 가질 않았다.  고로 잘 그렸다는 생각이 들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그의 입에선 전혀 엉뚱한 말이 튀어나왔다.

  '..  응.'

  '아, 역시, 역시!!  난 그림에 소질이 있나봐!!  모두 다 잘 그린 데!!  어때?  너도 그려 줄께!!'

  '..  그래.'

  풋.  에릭은 힘없이 웃었다.  그때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기억하고 싶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때부터 자신의 무언가가 바뀌었던 것 같았다.  생기랄까.  특히 미란이 트론의 파일럿으로 채택되었을 때는 미친 듯이 엄청난 속도로 시뮬레이션의 싱크로율을 높였다.  무엇 때문이었을까.  무엇이 그를 그렇게 만들어 버린 것일까.

  "..  이젠 상관없겠지."

  상관없다.  그녀는 죽었다.  용에게 녹다운 되어서 기절해 있는 동안 그녀는 죽었다.  눈물도 나지 않았다.  아카라가 카렌티어스에게 내 뿜었던 감정 같은 거, 그에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그의 마음 한 구석이 시리도록 허전했을 뿐이었다.

  "..  뭐가 트론의 S급 파일럿이란 거냐.  뭐가 최강의 방패냐.  그 누구도 지켜주지 못하는 방패가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이냐.."

  그러고 보니, 한번 제대로 막은 적이 있긴 하다.  바로 병원신세를 지기 전, 일본과의 싸움에서 그 죽음의 빛에서부터 아카라를 막아 주었었다.  그리고 그때부터 그의 텅 빈 마음속에 슬픔이란 감정이 차들어 오기 시작했다.
  만약 자신이 아카라를 막아 준 것처럼 미란을 막아 줬더라면 그녀는 죽지 않았어도 됐었을까.

  "미안해..  정말 미안해...."

  그는 생전 처음으로, 녹슨 톱니바퀴를 힘겹게 움직이며 돌아가는 머리와 마음에 고통을 느끼며 침대에 자신의 몸을 맡겼다.

******************************************************************************

  카렌티어스는 떨리는 손으로 플라스틱 병에 있는 알약들을 한 움큼 쥐어 마치 과자를 먹듯 자신의 목구멍에 넘겨버렸다.  병에는 'pain killer(진통제)'라고 써져 있었다.

  '젠장...'

  그는 머리를 움켜잡으며 책상에 앉았다.  도저히 그 일이 뇌리에서 잊혀지지 않았다.  도대체, 왜, 이제까지 그들이 소모되는 것을 끊임없이 본 그가, 그 하나의 죽음에 이렇게 떠는 것일까.

  '괜찮아. 카렌티어스. 어차피 CAGE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전부... 소모품이잖아..'

  그래, 소모품이다, 소모품!!  어차피 전장에서 날아가는 총알처럼 던져지는 그런 생물들이란 말이.....  

  '... 만약에 이게 꿈이라면... 하지만 꿈일 리가 없겠지.  적어도 내가 아니기 전에 모두를 기억한 채로... 그런 꿈을 꾸고 싶어...'

  그의 속에서 목구멍으로부터 무언가가 차 올라왔다.  급히 그의 방에 있는 개인 화장실로 달려간 카렌티어스는 이내 변기에 구역질을 해대며 위액을 토해냈다.  이미 그의 뱃속은 텅 비었으리라.  
  버튼을 눌러 물을 내린 그는 힘없이 옷을 벗고 욕조에 들어갔다.  조금 후, 자동적으로 맑고 뜨거운 물이 그의 몸을 씻으며 내려갔다.

  '하지만 그건 씻기지 않는군.'

  벌써 C-X31이..  아니, 미란이 죽은지 몇 주가 지났다.  크로킹한 상태에서 트론이 자폭하면서 생긴, 온몸을 전율시킨 혼의 상처..  게다가 미란이 한말은 그의 어머니와 겹치면서 고통에 의해 거의 미쳐 가는 상태가 되었다.
  아니, 하긴 이 세상 모든 것이 이미 미친 것이겠지.  한 생명을 소모품으로 치부시키는 인간의 모습.  용의 공격에도 꽃 피우는 인간의 욕망.  그로 인해 벌어지는 무의미한 살생.

  '..  마치, 이 모든 것들이 미란의 죽음을 시작으로 일어나는 것 같다.'

  수건으로 대충 자신의 몸을 감싼 체 그는 침대에 누웠다.  그렇게나 토해대는 데, 힘이 있을 리가 없었다.

  '넌...  이 용안으로 대체 무엇을 할 수 있지?'

  미래를 볼 수 있는 능력.  코어 컨트롤 링크 시스템 제어.  크로킹...  하지만 그 모든 것도 한 생명을 구할 순 없었다.  용안을 얻기 전이나 얻은 후나 그것은 변함없었다.  
  무력했다, 자신이.
  그리고 인간을 그렇게 밖에 할 수 없게 만든 세상이 무력해 보였다.

  "아프다.."

  머리가 아파 왔다.  배가 아파 왔다.  목이 아파 왔다.  눈이 아파 왔다.
  그리고 자신의 어머니가 죽은 이후 처음으로..
  마음이 아파 왔다.

******************************************************************************

  "아.."

  그녀는 이곳에서 아카라를 발견해 조금 놀란 감이 없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자연스럽게 고개를 돌려 그녀를 맞이했다.

  "..  안녕하세요, 닥터 유."

  "..  의외네.  여기서 널 본 적은 없는 것 같은데."

  아카라와 미란의 작은 무덤에 다가가며 그녀가 말했다.  아카라는 조그마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  어차피 우리들은 갈 데가 많지 않으니까요."

  하긴, CAGE에서 자라고 나온 아이들의 세상은 좁다.  특별히 제재를 가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주변에 널린 것은 무너진 건물과 전투의 잔해, 그리고 차가운 본부이니.
  그녀는 미란의 무덤 앞에 앉았다.  주변에 자란 잔디들이 마치 침대 마냥 최대한으로 푹신하게 그녀를 받쳐주었다.

  "..  용이 나타나기 이전엔 말이야, 이런 곳이 많이 있었어.  물론 그때도 인간들은 서로 죽였지만, 그래도 이렇게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곳이 누구에게나 존재했었지.  안식처..  그 때는 이런 생존을 위한 걱정 따위, 거의 하지 않았어.  지금에 비하면..  행복했지."

  그녀 역시 아카라처럼 무덤 앞에서 조용히 얘기를 꺼냈다.  다른 점이 있다면 그녀의 얘기를 듣는 사람이 있다는 것 뿐.

  ".. 딸과 남편을 잃은 후, 맹목적으로 매달렸어.  용을 죽이기 위해.  모든 것에 손을 댔다.  강철의 거인서부터 거짓 생명에까지.  내 행복을 앗아간 그들을 용서할 수 없었어.  다시 돌려 받을 수 없는 이상, 내가 할수 있는 일이라곤 그들에게 최대한으로 고통을 주는 일.  내가 받았던 충격과 고통을 그들에게 되돌려 주는 일.  그것뿐이었어."

  그녀는 자신의 긴 머리를 생각 없이 쓰다듬었다.  무의식적으로 신경이 쓰였던 걸까, 자신이 하는 말들이.

  "..  그 때 미란이가 있었다.  내 딸이 자랑스러워하던 긴 생 머리에 내 딸처럼 환하게 웃는 모습으로.  혹시 몰라.  내가 생각도 않고 그리운 나머지 만들어진 생명이었을 지도.  하지만..  정말 반가웠다.  다시는 잃고 싶지 않았어.  소모품으로서의 가치가 없는 게 무슨 상관이야.  나한텐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치를 가지고 있는 소녀였는데."

  그녀는 그저 하늘만을 바라보는 듯한 무덤덤한 표정의 아카라를 바라보았다.  별로 대답을 바랄 수는 없는 상태인 것 같았지만 그녀는 물었다.  묻지 않고 서는 견딜 수 없었기에.

  "..  이기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아?  한 생명을 살리기 위한 이유치고는."

  아카라가 입을 열었을 때도 그는 하늘에서 눈을 때지 않았다.  마치 무엇인가를 찾고 있는 듯한 모습.

  "..  인간이란 이기적인 생물이란 것이죠.  어떤 것이든 자신을 만족 시킬 때만 무언가를 할 수 있는.  무언가를 지키는 것도..  자신이 상처받기 싫어하는 행동일 뿐."

  아카라는 일어섰다.  마치 시간이 멈춰 있었던 듯, 그리고 다시 시간을 돌리는 듯.  자신의 슬픔에 마침표를 찍으려는 듯.  하지만 닥터 유는 움직이지 않았다.

  "..  저는 CAGE에 돌아가겠습니다....  여기에 계속 계실 것입니까?"

  "..  응.  조금만 더.  내게 주어진 이 시간이 방해받을 때까지만 이라도."

  아카라는 잠시 서 있다 이내 발걸음을 돌렸다.  뺨을 타고 내려오는 눈물을 삼키는 그녀를 뒤로 한 체.

***************************************************

   커텔은 담배를 깊이 빨아들였다.  그가 연기를 뱉었을 때는 대량의 회색 연기가 피어 나오면서 죽어 가는 듯 주변과 동화되었다.

  '마치 지금의 우리와 같군.  안전한 곳 속에서 바깥으로 나왔을 때 사라지는 것은.'

  그는 담배를 재떨이에 지진 후 서류를 둘러봤다.  그 중에선 C-X31과 이카루스에 대한 종이도 있었다.

  "아쉽군.  정말 아쉬워."

  한번의 전투로 동시에 트론과 엘레멘탈 코드를 각성한 파일럿을 잃은 것은 유라시아 지부에서 보기엔 타격이 너무나도 컸다.  뭐, 그래도 아직 2대의 트론이 더 있고 S급 파일럿들도 대기하고 있지만..

  "많은 상처를 주고 갔구만, 그 소모품."

  하지만 계산 적으로 본다면 은 큰 손해는 아니었다.  케찰코아툴루스라는 강적을 맞아, 고작 한대의 트론으로 본부를 지켜냈다는 것.  그것은 큰 수확이었다.  하지만 이래나 저래나 그들이 트론이 부족하다는 것은 그 나름대로 문제였다.
  그는 자신의 손을 바라보았다.  그의 오른손 약지 손가락에는 조금 빛이 바랜 듯한 간단한 금색 반지가 껴져 있었다.

  "..  당신은 나를 피도 눈물도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가?"

  그는 조그맣게, 마치 비웃는 듯 웃었다.  피나 눈물 같은 거, 이미 그때 다 뿌렸다.  그에겐 이제 더 이상 소중한 사람은 없다.  지켜야 될 것은 없다.  모든 것은 그의 체스 말.  그가 이기기 위해, 살아남기 위해 던져버리는 미끼, 방어벽.
  지금와서 양심 같은 것을 느낀다는 것 자체가 더 웃긴 것이다.  어차피 인간이란 자신을 위해 사는 것.  무엇보다도 지킬 것 없는 자에게 자신만큼 소중한 것은 없었다.  남을 위한다란 것은 위선이다.  어차피 자신이 상처 입기를 원하지 않기에 그런 것 뿐.

  '..  뭐, 어디서나 한 명쯤은 자신의 목숨을 바쳐 많은 것을 구하는 일도 있지만..'

  C-X31이 한 것처럼.  
  얼마나 바보 같은 짓인가.  자신의 몸을 버리면서 까지 남을 살린다니.
  아니면 마음의 상처가 더 두려웠던 걸까.  그 것 역시, 누군가를 잃는 다는 두려움에 빠져 생각 없이 자신을 희생한 것인가.
  
  "..  쓸데없어.  모든 것이.  살아남는 것 이외엔."

************************************************************

  "이지스는 어떤가?"

  "잘 사용하고 있어.  대단하더군.  레이저 스플랙스 까지 막아내는 그 방어력이란."

  커텔의 칭찬에 하메디스 R 라디안의 영상은 기분이 좋은 듯 웃었다.  전혀 비밀이라던 지 그런 것은 없는, 그저 친분 있는 사람들의 담보였지만 주위에 영상을 보이게 하기 위한 어둠은 이 둘의 대화를 강조하는 듯 보였다.

  "아아, 그렇지.  하지만 이지스는 우리에게 있어 알파 모델일 뿐이야.  우리는 아직도 이지스를 토대로 한 타입-B를 건조하고 있지."

  "이런, 이런, 이런.  '모두 알다시피 우리지부의 트론은 다른 지부들에 비해 가장 수가 적고 또한 성능 역시 낮아 아프리카에 출몰하는 용을 처리하기에도 힘든 처지이다'란 말은 다 거짓말이었구먼."

  커텔의 말에 하메디스의 영상은 머리를 긁적이며 난감한 듯 말했다.

  "기억력도 좋구만.  하지만 수가 적다는 건 사실이라고."

  "뭐, 우리 보단 났겠지.  이젠 두 대밖에 없다고.  슬슬 보급을 해야 되는데 말야.."

  "흐음.  하지만 직접 건조하는 게 오히려 더 빠를 거야.  요즘 각 지부가 정신없잖아.  일본의 공격도 그렇고.  유럽은 지금 베헤모스란 용 때문에 신경이 날카롭다고.  아, 용에 대해서 얘기하니 그게 생각나는군."

  라디안의 생기 어린 목소리가 급격히 어두워 졌다.  커텔은 갑작스런 그의 변화에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

  "용?  그게 왜."

  "요즘 미국이 시끄러워.  계속적인 일본의 공격에 강경파들이 그걸 깨우자고 난리라는데."

  "그것..?!"

  그는 자신의 뒷골이 아파 오는 것을 느꼈다.  설마, 깨운 다는 것은..

  "레비아탄(Leviathan)을 말하는 건가?"

  "..  직경 1.5km를 육박하는 해룡.  예전에 호주 옆의 로드하우 섬을 가라 앉히고는 세상의 주목을 받은 괴물중의 괴물.  생각나지?"

  어찌 생각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티아리스트 이후 세계의 바다를 주름잡은 악마.  세계가 그것을 죽이려고 또 얼마나 많은 돈을 퍼부었는가.  결국엔 죽이지도 못하고 잠시 잠재운 것 밖에는 하지 못했지만..  

  "그래.  하지만 믿기 힘들군.  그런 짓을 생각하다니."

  "글쎄.  그만큼 일본측의 북해 항공모함 전단이 강하다는 뜻도 되겠지.  하와이를 점령당한 이상 그레이스도 곤욕을 치르는 모양이야.  그런 걸 생각한다 한들 이상한 것도 아니지.  요번 전쟁으로 그것에 약을 투입하지 않은 지도 며칠 됐는데 말이야."

  "..  영국이 가만있지 않을 꺼야."

  "그렇지.  그것이 그레이스가 제기하는 문제야.  하지만 위험해.  점점 그들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으니까."

  커텔은 잠시 가만있다가 자신의 주머니에서 담배와 라이터를 꺼냈다.  라이터에서 태어난 불꽃은 어두웠던 주위를 환하게 비추며 라디안의 영상을 조금 흐릿하게 굴절시켰다.

  "...  이봐, 라디안.  내가 지금 뭘 생각하고 있는지 알아?"

  "음?"

  "지금 상황에서 이루어 질 수 있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생각하고 있었어."

  "최악..?"

  머리가 아픈지 커텔은 한 손으론 미간을 누르며 말을 이었다.

  "서쪽의 레비아탄과 동쪽의 베헤모스가 동시에 움직인다.  일본은 계속 진출해 결국 한국을 점령하고 중국과 싸움.  미국은 미국대로 그레이스가 물러나고 강경파인 딘 J. 레인벌그가 대통령으로 출마, 국가 연합에 탈퇴를 선언한다.  어때?"

  "..  쓸데없는 상상을 하는 군, 커텔.  정말로 그런 일이 한꺼번에 벌어질 거라고 생각하는 건가?"

  "..  뭐, 일 퍼센트의 가능성이라고 해두지.  하지만, 정말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말야.."

  그는 정말로 걱정인 듯 한숨을 푹 쉬었다.  라디안 역시 얼굴이 약간 일그러져 있었다.

  "..  그땐 정말로 인류가 멸망할지도 몰라."


====================================================================================================================


[Tialist] 009 : 유리카, 소멸
글쓴이 : 아란


“망할 년 같으니, 우리가 이카루스를 제작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고생과 시간을 들였는데, 그것을...”

“어이, 어이 진정하라고. 어차피 지난 일이잖아.”

“야, 너도 고생 무지하게 했잖아? 근데 그걸 한 미숙한 불량품이 멋대로 다루다 펑 날렸는데 잘도 진정하겠다.”

“누가 진정한다는 거야. 그 망할 불량품이 아직 살아있었으면 말이지, 똑같이 펑 터트리고 싶은 건 나라고.”

두 기술자의 대화, 그리고 그것을 우연히 듣게 된 아카라는 순간 울컥하여 달려들려고 했다. 그러나 하지 않았다. 그래봤자 돌아오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그리고 이미 이런 소리를 하는 작자들이 여기 두 기술자뿐만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프로브 사령관님에 명령을 어기고 멋대로 몰다가 이카루스를 날렸대.’

‘하아, 뭐 그 정도밖에 안되는 불량품에게 이카루스를 맡긴 게 어찌 보면 실수지. 덕분에 아까운 이카루스만 날려먹었잖아.’

아카라는 울분을 참으며 더 이상 두 기술자가 미란이를 욕하는 것을 들을 수 없었기에 돌아서서 가려고 했다. 그러나 그때 아카라의 귀를 찌르는 한 소리가 있었다.

“아카라 란 녀석 말이야, 어머니가 그 유명한 티아세리스 박사님이라고 했지, 참.”

“나도 그렇게야 들었지만, 도대체 그 녀석 아버지가 누구래?”

“몰라. 별 이상한 소리가 다 있지만, 확실히 커텔 사령관님은 아니란 거지.”

아카라는 복도를 지나쳐가며 두 기술자가 했던 말들을 생각했다.

‘그러고 보니, 어머니는 아버지에 대해 단 한마디도 이야기 하신 적이 없다. 내 친아버지는 누구지?’

자라오면서 어머니인 티아세리스에게 이런 저런 이야기를 듣긴 들었지만, 아버지에 대해 단 한마디 언급도 없었다. 어머니가 언급하지 않았기에 막연히 아버지에 대한 생각이나 관심 역시 없이 살아온 그였다. 그리고 이내 마음을 다잡은 듯 한마디 내뱉었다.

“이제 와서, 그런 거 상관없잖아. 어차피, 어디에도 내가 존재할 곳이 없는 걸.”



“제발, 제가 갈게요. 그러니까 지나만은, 제발.”

Cage에 건물로 들어선 아카라의 두 눈에 비친 건 어머니를 너무도 닮은(것이 아카라 입장에선 이젠 역겨워진) 카렌티어스였다. 여전히 카렌티어스는 무미건조한 회백색 눈으로 자신 앞에 무릎 끓고 애원하는 연갈색 머리카락에 어디서 주운 건지 모를 커다란 안경을 쓰고 있는 한 소녀를 내려보고 있었다.(물론 그 눈에 비치는 건 없겠지만.)
무릎 끓고 있는 소녀에 옆에는 연갈색의 단발머리에 갈색 눈동자를 지닌 소녀가 어찌할 줄 몰라 하고 있었다.

“안됐지만, A-X48은 마크 06 시엘(Ciel)에 파일럿으로 적합하지 않다. 만약 적합했다면, B-X49를 데려갈 이유가 없다. 하지만, 아쉽게도 A-X48은 시력이 좋지 않다. 시엘은 중장거리 포격 임무를 맡는 트론이다. 상황에 따라서는 저격까지 해야 하지. A-X48이 아무리 급은 B-X49보다 높아도, 그 눈으로 정확한 사격은 할 수 없다.”

“그, 그치만... 지나는... 심장이 약하단 말이에요... 제발...”

A-X48이라 불린 소녀는 옆에 있던 소녀인 지나, B-X49를 데려가지 말아달라고 계속 카렌티어스에게 사정했다. 카렌티어스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곧 결단을 내린 듯 말하였다.

“만약, 마크 03 드로우나 마크 05 이지스의 파일럿 자리가 공석이 된다면 제 1순위로 A-X48을 데리러 오도록 하지.”

그리고 울면서 계속 사정하는 A-X48을 내버려 둔 채 카렌티어스는 지나, B-X49에 손을 잡고 끌고 가기 시작했다. 계속 울며 사정하는 A-X48에 두 눈에 저 멀리서 지켜보고 있는 아카라의 모습이 보였다. 이내 A-X48은 아카라에게 달려가 붙잡으며 애원했다.

“아카라, 제발 카렌티어스를 말려줘!! 부탁이야!! 지나는 내 동생이나 마찬가지란 말이야!!”

울면서 매달리는 A-X48을 내려보는 아카라는 이내 무너져 내리며 그 자리에서 울부짖기 시작했다.

“나에게 뭘 어쩌란 말이야!! 나더러 뭘 어쩌라고!! 나한테 그만한 힘이 있었다면, 미란이가 그것을 타지 않아도 되는데, 나한테 어쩌라는 거야!! 나에겐 아무런 힘이 없어... 없다고...”

아카라는 아무것도 바꿀 수 없는 자신을 질책하며 울부짖고, 역시 A-X48이라 불린 소녀도 눈물 흘리고 있었다. 그 소녀 역시 미란이 일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용이 인간들 뜻대로 움직일 거라 생각했나? 바보 같으니. 용이 훨씬 교활하다는 것을 모르는군. 뭐 상관없지. 이번 일로 딘 J. 레인벌그와 그를 지지하는 강경파에게는 매우 큰 타격일 테니까. 오히려 그레이스만 재미 봤군.”

커텔에 말대로 레비아탄에 대한 보고서에 주요 피해 상황은 일본 북해함대가 괘멸했다는 것과 덤으로 북해함대가 점거하고 있던 하와이 제도 침몰, 미 해군 함대 역시 침몰, 덤으로 미국 영토에 속하는 여러 섬과 제도 침몰, 심하게는 미 서해안 지대까지 해일을 일으켜 싹쓸이 한 것 등등... 오히려 일본이 아니라 자신을 깨운 미국에 신나게 피해를 주고 있는 해룡이었다. 어떻게 보면 미국이 자신에게 한 짓에 대한 화풀이 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덕에 커텔은 자신이 생각했던 최악의 시나리오가 확실히 틀려먹었다고 자신하게 되었다. 일이 이렇게 되었으니 레비아탄을 깨우자고 주장했던 강경파에 리더 딘 J. 레인벌그에 입장은 보통 난처한 게 아니게 되었을 뿐더러, 오히려 미국민들에게 욕을 먹고 있었다.
그레이스는 이때를 놓치지 않고 연설을 하여 딘 J. 레인벌그를 막바지까지 몰아붙였고, 현재 딘 J. 레인벌그는 거의 제기 불능이라 할 정도로 조용히 지내는 상황이다.

“역시, 일왕 독재 체제는 모든 국민들의 뜻이 아니었군. 하긴, 원래 정치에 관심 없는 국민들이었으니 몇몇 강경파가 투표 조작하는 것쯤 일도 아니겠지.”

일본인들 대다수는 전쟁을 싫어한다. 아니 대다수의 인간들 중 누가 전쟁을 좋아할까?
하지만, 그럼에도 전쟁은 수없이 벌어져왔다. 그 전쟁들은 대부분이 그렇듯 위에 정치하는 소위 윗대가리들에 이익을 위해 벌려져 왔던 것이 대부분이었다. 국민을 위해서란 것은 좋은 포장일 뿐이다. 결국은 자신들의 국제적 입지와 승리함으로써 얻게 될 각종 이득을 노린 것일 뿐이다. 승리하면 영웅이라 불리고, 패배하면 인간쓰레기라 불리는 세계이다.
아마 히틀러가 2차 세계 대전에서 승리했다면, 그 누구도 히틀러를 악인이라 하지 않고 영웅이라 칭하며 칭송하고 다녔을지도 모른다. 침략하는 입장은 그렇다치고, 방어하는 입장에 경우에는 어느 정도 국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기도 한다. 이유는 거의 다 간단해서, 자신의 가족과 재산을 지키기 위해서(또는 애국심으로 참전하기도 하지만)가 대부분.
자기 집에 도둑이 침입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듯, 같은 이유였다.(물론 다른 이유도 존재하나)

“훗, 얼마 안 있으면 곧 일본은 알아서 무너지겠군. 결과는 원래 주인인 국민들에 승리겠지.”

커텔은 단말기에서 나오는 화면에 새로운 메시지가 온 것을 보고 확인한 뒤 메시지를 닫으며 말하였다.

“그러고 보니, 반 황제파에 참전하기 위해 오는 용병단이 있었던 것 같은데, 오늘 오는 건가? 일본 정규군에 눈을 피하기 위해 이곳 유라시아 본부를 거쳐 갈 속셈인거 같은데, 뭐 상관없지.”

단말기에는 일본 열도 곳곳에서 벌어지는 일왕 친위대와 반 황제파간에 전투와 국민들에 반전, 일왕 일인 독재 반대 시위와 그것을 무력 유혈 진압하는 것들을 다룬 보고서가 띄워져 있었다.



“좌표 X330, Y230 부근에 용 출현!”

유라시아 지부에 메인 룸은 여기저기서 오퍼레이터들에 각종 보고가 날아들기 시작했다.
대형 PDP에는 어느 새 출격한 검은 거인, 마크 03 드로우와 푸른 거인, 마크 05 이지스, 그리고 이번에 새로이 출격하게 된 진녹색에 거인, 마크 06 시엘이 보였다.
그리고 3기에 트론은 이내 당연하다는 듯(카렌티어스의 지시에 따라) 용에게 공격을 시도하기 시작했다. 이지스는 먼저 용에게 공격을 가해 도발하여 자신에게 달려들게 만든 뒤, 양 어깨에 장비된 판넬을 전개하여 만들어 낸 쉴드로 용에 움직임을 묵었다.
그 틈을 타 시엘은 양 어깨에 장비된 K-11A2와 양 허리에 장비된 레일건을 쏴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렇게 흠씬 두들겨 맞는 용을 어느새 다가온 드로우가 듀거 란스를 용에 코어에 박아 넣었다.

“목표 완전 침묵.”



“내가 언제 이렇게 강했지?”

이제까지 싸우면서 이렇게 용을 쉽게 이긴 적이 없었던 아카라였기에 너무 쉽게 쓰러지는 용을 보고 한심해서 하는 소리였다.

‘아카라 아쉽지만, 네가 강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당했다. 우리가 상대한 용은 상대가 우리에 전력을 알아보기 위해 보낸 가짜이다. 진짜 본체는 아직 드러나지 않았다.’

카렌티어스에 말에 아카라는 그런가하는 표정을 지으며 말하였다.

“모든지, 쉽게 되는 게 없구만. 하긴 아무래도 상관없겠지. 적이 강한 던 말던, 나나 에릭이나 지나나, 그저 네 지시대로 움직여주기만 하면 그뿐이니까. 마치, 꼭두각시처럼.”

아카라는 그런 말을 한 채 듀거 란스를 가짜에 코어에서 빼내며 정비하고 있었다.

‘녀석이 온다. 준비하도록.’

“말 안 해도, 이미 눈앞에 있다고.”

가짜용에 시신은 어디로 사라진 채로 어느새 진짜 본채, 즉 진짜 용이 그 모습을 3기에 트론 앞에 드러내었다. 그 모습은 용이란 지칭이 어울리지 않는 진흙질에 날개 달린 지네 모습이었다. 갈수록 깨는 모습에 질렸다는 듯, 아카라는 한 소리를 내뱉으며 듀거 란스를 들고 용에게 달려들었다.

“그래, 어디까지나 명칭은 용이겠지. 어차피 생긴 모습 같은 건 아무래도 상관없는 거니까.”

‘아카라 조심해!!’

카렌티어스에 외침에 아카라는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어조로 말하였다.

“상관없잖아. 내가 다치던 죽던, 넌 트론만 멀쩡하면 되잖아. 소모품은 많잖아. 뭘 조심해야? 아 그렇군. 조심하긴 해야지. 트론이 망가지면 곤란하니까.”

아카라가 조종하는 드로우는 시엘과 이지스의 지원 포격을 받으며 단숨에 진흙질에 날개 달린 지네 모양에 용에게 드로우에 빠른 발로 달려들었다. 그리고 드러난 용에 푸른 코어에 듀거 란스를 박아 넣으려 했다.

촤촤촹.

그러나 듀거 란스는 코어에 박히지 않았다. 그 전에 용에 진흙질 팔에 붙잡히고 말았다.

콰장창.

용은 그대로 듀거 란스를 부숴버렸다. 그리고 듀거 란스를 포기하고 그대로 뒤로 빠지려던 드로우는 그러기도 전에 용에 꼬리에 휘감기고 말았다. 용은 드로우를 으스러뜨리려는 듯, 있는 대로 힘을 주며 드로우에 압박을 가하기 시작했다. 그 고통에 아카라에 얼굴이 일그러졌지만, 곧 상관없다는 듯 말하였다.

“크윽... 그래, 이번엔 내가... 큭... 사라질 차례였던 거군...”

콰직.

아카라의 눈앞에 정체불명에 보라색 트론이 형태가 다른 듀거 란스를 휘두르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동시에 드로우를 압사시킬 기세였던 용에 진흙질 꼬리는 잘려나가며 드로우와 함께 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 그와 동시에 이내 주황색의 트론이 트론 전용 기관소총을 쏴대며 용을 공격하였고 용은 단숨에 주황색 트론에게 달려들었지만 그때를 노렸다는 듯, 보라색 트론이 용에게 단숨에 달려들어 그 코어에 듀거 란스를 박아 넣었다. 그리고 듀거 란스가 벌어지면서 그 중앙에서 에너지포가 나갔다. 푹 고꾸라지는 용을 뒤로하고 보라색 트론은 용에게서 벗어났고, 곧 용은 폭발하였다.

“정체불명의 트론의 파일럿께 고합니다. 소속과 이름, 그리고 무슨 목적으로 이곳에 온 건지 순순히 대답해 주셨으면 합니다.”

카렌티어스는 그 두 정체불명에 트론에 파일럿에게 메시지를 날렸다. 그리고 메시지를 날린 뒤 얼마 지나지 않아 답변이 들어왔다.

“여어, 카렌티어스 군인가?”

남자의 목소리에 카렌티어스는 순간 멈칫했다. 익히 알고 있던 목소리였다. 그리고 그 목소리에 주인공은 다시 말하였다.

“뭐, 좋아. 네 아버지께 이미 비밀 메일을 보낸 것이 있긴 하지만, 다시 소개하지. 소속은 알트 아이젠, 이름은 시라카와 유우키. 그리고 옆에 보라색 트론에 파일럿은 셰나. 이정도면 되려나? 아님 부하들 다 소개해야 하나?”

자신을 시라카와 유우키라 밝힌 남자에 말에 카렌티어스는 안심했다는 듯, 눈을 감았다, 뜨며 말하였다.

“아버지가 안다면, 더 이상 들을 것도 없겠군요. 오랜만입니다. 유우키 씨.”



“뭐, 목적이야 잘 아실거라고 생각합니다. 그쪽 입장에서도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니지 않습니까?”

시라카와 유우키라는 20대 후반에 건장한 일본인 청년에 말에 커텔도 입을 열었다.

“손해 보는 건 확실히 아니지. 자네 입장에서는 일인 독재에 멋대로 선량한 국민들을 전쟁터로 내보내는 조국을 해방시킬 수 있겠고, 국가연합 입장에서는 일본이 전쟁을 그만둠으로써 전쟁에 들이는 물자와 인력을 그만큼 용을 쓰러뜨리기 위해 쓸 수 있어서 나쁠 것 없지.”

“송구스러운 말씀이긴 합니다만, 유라시아 지부에서 저희 용병단 알트 아이젠에 도움을 줄 수 있다면 어떤 종류의 도움이든 받고 싶습니다만.”

유우키가 굳은 얼굴로 조심스럽게 커텔에게 말하자, 커텔이 대답하였다.

“레비아탄 때문이겠지. 그렇지 않고서야 자네 성격상 남에게 민폐를 끼치는 부탁을 할 리가 없지 않나?”

“잘 아고 계시는 군요. 저로서는 레비아탄이 언제까지 일본 열도를 놔둘 거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조국을 빠른 시일 안에 일왕 독재체제에서 해방시키려는 겁니다.”

“허나, 함부로 나설 수도 없는 처지라서 말이야. 아무리 자네가 시라카와 시즈미에 유일한 오빠라 해도, 그것만으로 지원해주기엔 최근에 사정이 안 좋아서 말일 새.”

“후우, 뭐 잘 알아들었습니다. 역시 남에 손을 빌릴 수는 없겠지요. 그저 건투만 빌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그럼 이만.”

유우키는 커텔에게 거수경례를 한 뒤 뒤돌아서서 커텔에 사무실에서 나갔다.
커텔에 사무실에서 나간 유우키는 곳 익숙하다는 듯, 어딘가로 방향을 틀어 나리어스 유라시아 본부 건물을 나섰다. 그곳에는 그리 많지는 않지만, 묘비가 몇 개 있었다.
그리고 한 묘비에 무릎 끓고 앉아 있는 카렌티어스에 모습 역시 있었다.
유우키는 카렌티어스를 보자 반갑다는 듯 다가가며 말하였다.

“여어, 카렌티어스 군, 오랜만이군.”

“유우키 씨도 여전하시군요.”

카렌티어스는 자신의 옆에 앉으며 말을 건네는 유우키를 돌아보지 않은 채 대답하였다.

“여전히, 시즈미가 죽은 게 자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건가?”

유우키는 카렌티어스 앞에 있는 묘비를 보며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하였다.
그리고 카렌티어스는 여전히 묘비를 바라보며 대답하였다.

“아니오. 잊지 않기 위해 저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겁니다.”

“그런가? 많이 강해졌구나. 5년 전에 처음 볼 때만 해도 여렸던 녀석이, 지금은 몰라보게 강해졌어. 하긴 시즈미가 없었으면 지금에 너도 없었겠지.”

유우키에 말에 카렌티어스는 시라카와 시즈미, 즉 유우키에 여동생이자, 자신에겐 친누나 이상이었던 그리고 전 세계 최초의 트론 파일럿이기도 했던 그녀를 떠올렸다.



‘아이는 아이답게 놀아야지, 벌써부터 궁상떨면 못 쓴다고.’

언제나 어머니를 내손으로 죽인 것에 대한 죄책감과 감당하기 힘든 제어가 안돼는 용안에 고통 받던 그 시절에 카렌티어스에게 트론의 파일럿에 스스로 자원해서 왔다는 시라카와 시즈미는 누나나 같은 존재였다. 성격은 좀 괴팍하고 열혈끼 다분했지만, 오히려 그녀에 그런 점이 아직 10살이었던 카렌티어스로 하여금 조금이나마 아이답게 해주었다.
그리고 그녀가 처음으로 타게 된 트론 마크 03 드로우가 폭주하여 제멋대로 날 뛰었을 때, 10살에 카렌티어스는 그저 그녀를 구하고픈 마음에 용안에 비친 시설로 단숨에 향했고, 아무것도 모르는 시스템(그것이 코어 컨트롤 링크 시스템 룸이었다는 건 나중에 알았다.)들을 그저 용안에 비치는 대로 조작하여 드로우에 폭주를 정지시키고 시즈미도 구해내게 되었고, 덤으로 카렌티어스 자신에겐 자신이 있어야 할 위치를 찾았다는 것과 그로 인해 아버지에 관심을 조금이나마 받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 후에 나날은 언제나 출몰하는 용을 시즈미의 정신과 크로킹하여 일체화되어 싸워오던 일상. 뭐든 쉽게 되는 일은 없다지만, 그래도 살아남았고 이런 일상이 언제까지 계속되리라고 믿고 있었다. 적어도 그때에 카렌티어스는 결코 자신이 본 것을 부정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날은 왔다.
그리고 그날은 마침 드로우를 날 잡아 정비하는 날이었기에 드로우는 출격 할 수 없었다.
용은 인간이 만든 방어시설을 우습게 파괴하고 계속 진격해 왔고, 시즈미 그녀는 그녀의 의지로 테스트용 트론 마크 옐로우를 타고 싸웠다. 그녀에 그간 전투 경험은 테스트용 트론이라곤 믿기기 힘든 성능을 내며 용을 제압해 버렸고, 그리고 이겼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용에 코어를 부쉈다고 방심했던 것이 지금에 카렌티어스와 유우키 앞에 있는 묘비가 그 결과물이었다.

‘헤에 이런... 나 당해 버린 거 같네...’

시즈미가 탄 테스트용 트론에 곳곳엔 코어가 파괴된 용에 촉수 같은 것이 찔러 들어가고 있었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미 용안으로 본 카렌티어스였다. 부정하고 싶던 그 장면이 카렌티어스에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거였다. 시스템 스크린 좌측 아래에는 D.C.S(Disintegrate Core System)의 승인 코드 요청이 들어와 있었다.

‘시즈미 누나... 어째서... 이런 짓을...’

‘... 만약에 이게 꿈이라면... 하지만 꿈일 리가 없겠지. 이대론 왠지 내가 아니게 될 것 같애. 점점 기억들이 사라져가... 그럴 바에는 어차피 끝이 뻔하다면... 차라리 모두를 기억한 채로... 나 스스로 내 삶에 끝을 내겠어... 이해해... 주겠지... 카렌티어스...’

‘... 흑... 누나는... 상당히... 이기적이군요...’

‘미안... 해...’

어린 카렌티어스는 승인을 할 수 밖에 없었고, 그리고 시즈미는 용과 함께 소멸했다.
그리고 그녀가 소멸할 때 죽을 정도에 고통 역시 어린 카렌티어스에 심신에 두고두고 지워지지 않는 또 다른 상처로 새겨졌다.



‘비슷해.’

셰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낡은 로켓(안에 사진 같은 것을 넣을 수 있는 목걸이)에 뚜껑을 열어서 사진을 확인해 보았다. 사진에는 3살 정도 되어 보이는 소녀와 부모로 보이는 남여가 있었다. 그 중 여자는 훨씬 젊긴 하지만, 분명 유 박사와 비슷했다.

‘하지만, 모르지. 내게 기억은 없으니까. 어쩌면 그렇게 믿고 싶을지도 모른다.’

셰나는 로켓에 뚜껑을 닫으며 유 박사에 연구실에 들어가려던 발을 돌려 다른 곳으로 갔다.

“저, 저기.”

“내게 뭔가 용건이 있나?”

셰나는 머뭇머뭇 거리는 아카라에 푸른 눈동자를 바라보며 무뚝뚝하게 말하였다.

“... 당신들은 일본에 자유파에 가담하기 위해 간다고 들었는데...”

“할 말은 그것 뿐 인가? 그럼 더 들을 것도 없겠군. 난 가겠다.”

아카라가 쭈뼛대며 하는 말에 지겹다는 듯 셰나는 오렌지 빛 단발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뒤돌아서서 가기 시작했다. 셰나에 그런 행동에 당황한 아카라는 앞뒤 가리지 않고 말을 내뱉었다.

“저, 저도 당신들을 따라 갈 수 있습니까?”

“그건, 내 상관이 관할하는 문제이다. 네 의지 따윈 아무래도 소용없다.”

“그러나 일단 내 상관에게 대려다 주겠다. 모든 건 내 상관인 유우키 님이 정할 문제다. 따라와라.”

아카라는 그렇게 셰나에 뒤를 따라 유우키가 묵고 있다는 방에 들어서게 되었다.
셰나는 유우키를 보자마자 거수경례를 하였다. 그리고 아카라를 데리고 온 이유에 대한 짤막한 보고를 한 뒤 유우키에 말에 따라 다시 한번 거수경례를 하고 아카라를 놔둔 채 유우키에 방밖으로 나갔다. 물론 유우키에 방문을 지키고 있는 거지만.

“그래, 아카라 에르나 군이라고 했나? 자네에 대해서는 이미 들었지만, 도대체 무슨 바람이 불었길래 용이랑 싸운다는 그나마 맘 편한 일을 놔두고 네 손에 몇 명이 될지 모를 무고한 인간에 피를 묻힐지도 모르는 전쟁터에 따라오려는 그 이유가 ‘꼭’ 듣고 싶군.”

“여기 사령관과의 관계 때문에 그러는 겁니까?”

유우키에 말에 아카라는 조금은 차가운 어조로 물었다. 아카라에 물음에 유우키는 허탈한 웃음을 터트리며 말하였다.

“대충 알긴 아는구만. 확실히 여기 민폐 끼칠 순 없다고. 안 그래도 여기 파일럿이 부족하다고 들었는데, 내가 그 전력을 함부로 데려가면 곤란하잖아. 하지만,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난 도대체 왜 네가 용과 싸우는 일을 버리고 전쟁터에 제 발로 따라 오려고 하는지 그것을 먼저 묻고 있으니까. 그 이유를 먼저 이야기 해줘야 하는 게 순서 아닌가? 아카라 에르나 군.”

유우키에 착 가라앉은 어찌보면 날카로운 말에 아카라는 빙빙 돌리지 않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였다.

“이곳이 아니라면 어디든 좋습니다. 단지 그 이유 뿐 입니다.”

당돌한 아카라의 말에 유우키는 질렸다는 듯 한숨을 내쉬며 다시 말하였다.

“이봐, 말 빙빙 돌리지 않는 건 좋지만, 정작 내가 듣고 싶어 하는 이유가 아니잖아? 그러니까, 왜 이곳이 아니면 좋다는 건지, 그 이유를 이야기 해보라니까.”

“지킬 게 없으니까요. 유일하게 지켜야 했었던 미란이도 카렌티어스 때문에 죽고... 미란이 때문에 목숨을 건진 주제에 오히려 그깟 트론을 잃은 것 하나만 가지고 뭐라 하는 같은 인간을 소모품 취급하는 이딴 곳, 더 이상 지킬 필요가 없으니까...”

아카라는 이내 평정심을 잃고 무너져 내린 채 맘 내키는 대로 튀어나올 말들과 감정을 추스르느라 애쓰고 있었다. 그런 아카라를 보면서 유우키는 고민하는 듯 눈을 감은 채 한동안 고심하다 말을 꺼내었다.

“정말로 그것 때문에 네 손에 피를 묻힐 자신이 있다는 건가?”

“...”

“후 좋아. 정 우리를 따라 가고 싶다면, 내일 새벽 5시 정각에 내 방에 와라. 물론 기다리진 않을 거야. 온다면, 데려 갈 거고, 안 오면 그냥 갈 거니까.”

“감사합니다...”

아카라는 어느 새 들어온 셰나에 부축을 받으며 유우키에 방을 나서기 시작했다.
그때 유우키에 방을 나서는 아카라에 등 뒤로 유우키에 외침이 들렸다.

“아카라 군. 너무 카렌티어스를 미워하지 말라고. 그 녀석은 네가 모르는 아픔을 마음속에 담아두고 사는 외로운 녀석이니까.”

물론 아카라는 그다지 귀담아 듣지 않았다. 지금에 아카라에 심정으로는...



“하아, 지금쯤 난리 났을 거 같은데 말야.”

유우키는 큰일 났다는 듯한 어조로 한숨을 내쉬며 자신의 기체, 보라색 트론(트론 메가세리움 알파)을 정비하며 말하였다.

“저 때문이군요.”

“이런 아카라 군, 거기 있었나?”

유우키는 아카라를 발견하자 정비하던 것을 그만두고 내려와 아카라에게 말을 건네었다.

“뭐, 아카라 군을 멋대로 데려와 버렸으니, 지금쯤 유라시아 지부가 난리야 좀 났겠지. 뭐.”

“그렇게 큰 난리는 나지 않을 겁니다. 카렌티어스에겐 저 말고도 대체할 소모품이 얼마든지 있을 테니까.”

“하아, 것 참. 카렌티어스, 그 녀석은 네가 모르는 고통을 마음속에 품고 사는 녀석이라고 말해도 못 알아듣겠지만, 사람을 겉으로 드러난 행동만으로 판단하면 안 된다고.”

“그 녀석 때문에... 미란이가...”

아카라는 부르르 떨며 말을 흐렸다.
덕분에 유우키는 더 말을 꺼내려다 말아버렸지만.
그러나 곧 아카라는 마음을 추스르고 이내 유우키에게 말하였다.

“메가세리움 알파에 정비를 도우려고 왔지만, 제가 할 일은 없는 거 같군요.”

“뭐, 굳이 스스로 할 일을 찾을 필요는 없어. 솔직히 말해 너 하나 낀다고 해도 별로 작전에 이롭다거나 그런 건 없거든. 하지만, 조금이나마 네가 이런저런 잡일을 해주는 덕분에 작전 진행 속도는 조금 빨라진 것 같더군.”

“저, 이런 말 하긴 그렇지만... 이 전투는 언제 끝나는 거지요?”

“곧 끝나. 이미 오사카 성을 제외한 나머지 지역은 반 황제파, 아니 자유파에 승리로 끝났다. 이제 오사카 성에 짱 박혀 있는 일왕만 처리하면 되는데 확실히 엘리트만 모여서 그런지, 오사카 성 전투는 진전이 별로 없어. 녀석들이 개발한 7기에 트론이 아니다 이젠 6기지 참, 하여간 그것들이 오사카 성을 지키고 있고, 하지만 확실한건 일왕과 전쟁에 미친놈들이 도망갈 곳이 없다는 거지. 하여간 이 전투에 우리 알트 아이젠이 최전방에 나서게 되어서 메가세리움 알파를 다시 한번 정비해 두는 거야. 셰나는 셰나 나름대로 메가세리움 베타를 정비하고 있을 테고, 다른 부하들도 자신에게 배치된 양산형 트론과 병기들을 정비하고 있겠지.”

“그렇군요.”

“뭐 이 전투가 언제 끝나냐고 물었지. 오사카 성을 함락시킨다면 사실상 내전은 끝나고 다시 일본은 자유주의 국가가 된다. 물론 국가연합에 다시 참전 할 테고 말이야. 어쨌든 앞으로 3시간 뒤에 작전이 개시될 거야. 녀석들이 먼저 선공을 해오지 않는다면 모르지만, 선공을 해온다면 그때부터 쉴틈 없어지겠지. 그럼 쉬어두라고.”

콰콰쾅.

투투투투투투.

밤 2시를 기점으로 자유파의 공격으로 오사카성 전투가 시작되었다.
왕당파도 이 전투에 모든 것을 건 듯, 여느 때보다도 매우 치열하고 격렬하게 서로를 죽이고, 죽이고 있었다. 그렇게 서로를 죽고 죽이는 짓도 어느새 전투 개시 된지 5시가 되어가고 있었다. 무려 3시간이나 지속되었건만, 전투는 끝날 기미를 보이고 있지 않았다.

“여기 탄약과 의료병 지원!!”

“적 트론 포착되었습니다!! JS 7식으로 판명됩니다!!”

“JS 7식은 내가 맡겠다!! 너희들은 잔챙이들을 맡아!!”

이곳저곳에서 피 터지는 싸움. 아카라의 눈에 비친 전쟁터란, 트론에 타서 볼 때보다 더욱 비참한 것이었다. 차라리 트론에 타고 있다면, 사람이 폭탄 하나에 가볍게 고깃덩이가 되는 것을 보지 못하련만, 불행히도 지금에 아카라는 트론에 타고 있지 않았다. 아카라의 역할은 그 전장에서 일종에 보급병과 의료병에 역할이었다. 물론 단시간에 배운 응급처치법과 각종 정비법이긴 했지만, 전쟁터에서는 간단한 작업이라도 능수능란하게 하기 힘들다.
그런 면에서 아카라는 일등 의료병 & 보급병이었다.

“조금만 참으세요!! 곧 괜찮아 질꺼에요!!”

아카라는 포탄에 다리가 뭉개진 한 병사에게 모르핀(마약의 일종)을 주사하며 소리쳤지만, 사실, 곧 괜찮아 질꺼라고 아카라 자신도 장담도 못하고 있었다. 그저 할 수 있는 일은 고통을 줄여주고 피를 빨리 멎게 해주는 것 뿐. 아카라는 해오던 대로 능수능란하게 붕대를 묶고, 뭉개져서 덜렁거리는 다리를 현장에서 (이젠 익숙해진)절단해 버렸다.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말이다. 전쟁터에서 조금이라도 머뭇거리면 언제 포탄이 날아올지 알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이 정신없는 전쟁터에서 어차피 회복 불능이 된 다리나 팔을 달고 도망가기에는 심각하게 지장이 간다. 차라리 잘라버리는 것이 여러모로 나은 것이다.

“아카라 군. 이젠 상당히 능숙해졌군.”

“그런 말할 여유가 없잖습니까? 조세핀 팀장님.”

“하긴, 여유가 없겠지. 빨리 이 환자를 데리고 전선을 이탈하자고.”

아카라는 자신이 응급처치한 병사를 조세핀 팀장과 같이 부축하며 안전한 곳으로 이탈하고 있었다. 물론 총탄과 포탄은 여전히 튀었고, 저 멀리에선 트론끼리의 접전도 벌어지고 있었다. 밤이기 때문에 난데없이 레이저 스플렉스가 날라 올 일은 없다. 그렇다곤 해도, 이쪽이 가지고 있는 트론은 알트 아이젠 소속에 트론 2기와 코어가 없는 조잡한 양산형 트론 10기뿐이다. 코어가 없는 양산형 트론과 코어가 있는 트론에 파워는 하늘과 땅 차이일 만큼 엄청난 스펙 차이가 있었다. 그래도 없는 거보다는 나은 거였다.

“엄마!! 아빠!! 어디 계세요!!”

아카라의 귀에 얼핏 들린 엄마, 아빠를 찾는 아이에 목소리에 자신도 모르게 그 목소리가 들린 곳으로 고개를 향하고 있었다. 옆에서 조세핀 팀장이 뭐라 소리치는 것이 들렸지만, 그러나 아카라의 두 눈에 비친 것은 부모를 찾아 방황하는 아이에게 날아오는 포탄이 날아가는 모습이었다.

“어서 피해!!!”

아카라는 외침과 동시에 뛰쳐나가려고 했지만, 조세핀 팀장과 다른 병사들에 붙잡는 바람에 그러지는 못하였다.

콰쾅.

다행이도 그 아이에 머리 위로 포탄이 떨어지기 전에 어디에서 발사된 탄환에 격추되어 파괴되었고 그것을 보던 아카라는 내심 안도하였다.

한편 트론 끼리에 전투에서는 유우키에 메가세리움 알파와 셰나에 메가세리움 베타에 콤비 플레이로 숫자와 성능차를 이겨내고 일본 트론 1식, 2식, 4식을 차례대로 K.O시키고 있었다. 물론 전투 불능으로만 만들 뿐, 코어를 부수지는 않는 것이다.

“내가 녀석의 다리를 노리겠다. 셰나는 놈의 머리를 노려.”

“알겠다.”

유우키에 명령에 셰나는 간단히 대답한 뒤, 남은 일본 트론 5식에 공격을 들어갔다. 그리고 유우키에 공격에 5식에 다리가, 그리고 셰나에 공격에 머리가 날아간 채 그 다음은 양산형 트론들이 달려들어 포박하였다.

“아무리 천황 친위대라고 해도, 트론만 제압하면 별 볼일 없지. 이제 남은 건 6식과 7식이다.”

어둠이 점점 개이고 있었다. 전투 개시는 밤 2시에 개시되었지만, 해가 뜨고 있는 걸로 봐서 대충 6시, 7시는 되어가고 있는 듯 했다. 오사카 성을 지키는 친위대도 점점 사기가 떨어지는 듯, 아니면 물자가 떨어지는 듯 총성이 멎는 곳이 생겨가고 있었다.
바로 그때, 저 하늘에서 갑자기 푸른 유성 같은 것이 그대로 오사카 성을 향해 떨어져 내렸다.

콰콰콰쾅.

엄청난 질량의 충돌로 인해 오사카 성과 그 주변은 충격으로 거대한 크레이터가 형성되었다.

“도대체 무슨 일인가!!”

“유우키 대좌님!! 요, 용입니다!!”

“뭐!! 설마, 레비아탄?”

유우키는 급작스러운 사태에 대피를 하며 날아온 부하에 전갈에 멈칫하였다.

“아닙니다!! 식별 결과, 레비아탄이 아닌 전혀 다른 용입니다!!”

“타입은!!”

“신종 젤라틴 질 용입니다!!”

“제기랄!! 일왕 패거리는 그럼 전멸인가?”

“아, 아마도 전멸일 겁니다. 오사카 성에서 일왕 일당이 탈출을 시도한 흔적은, 땅굴도 시도하지 않았으니까...”

유우키는 부하의 보고를 얌전히 듣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결론은 전투는 자유파의 승리다. 갑작스런 승리이긴 했지만, 이제 용만 쓰러뜨리면 모든 건 끝나는 것이다. 오사카 성이 사라짐으로써 일왕 친위대는 무조건 자유파의 항복함과 동시에 바로 자유파의 승리를 안겨준 푸른 젤리질에 가오리처럼 생긴 용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아직 넉다운 되지 않은 일본 트론 6식과 7식이 유우키와 셰나의 메가세리움과 함께 용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아... 아...”

오사카 성이 날아가는 것과 동시에 용에 공격은 아카라의 눈앞에서 부모를 찾아 방황하던 한 아이를 소멸시켜버렸다. 아카라는 이내 곧 근방을 둘러보다 아무렇게나 쓰러져 있는 양산형 트론을 발견하고 단숨에 탑승하였다. 기존에 그가 타던 트론과는 달리 신경접속이나 이런게 없었기에 전혀 고통이 없었다. 그대로 아카라는 그 양산형 트론을 몰아 푸른 젤리질에 가오리 모양의 용에게 양산형 트론에 부착되어 있던 기관소총을 쏴대며 돌진하기 시작했다.

“결국 따지고 보면, 모든 건 용 때문이야. 어머니도, 그리고 미란이란 존재가 태어나게 만든 것도 결국 용 이었어. 바보같이, 모든 결말에 해답은 용이었는데...”

그렇게 곱씹으며 그 푸른 젤리질에 가오리 모양의 용에게 기관소총을 쏴대며 양산형 트론을 돌진시켰다. 그러나 용에게 먹힐 턱이 없었다. 오히려 자신을 향해 기관소총을 쏴대며 돌진하는 양산형 트론이 귀찮았는지 단숨에 그 큰 몸으로 아카라가 조종하는 양산형 트론을 덮쳤다. 그리고 양산형 트론을 젤리질에 몸속에 집어넣었다. 이내 양산형 트론의 조종석에 그 용에 몸 성분 요소인 듯한 젤리질이 가득 차며 양산형 트론을 조종하던 아카라 역시 젤리질에 파묻혀버렸다.

“이번엔 내가 사라질 차례인가?”

아카라는 마음을 다 잡은 듯 조용히 중얼거렸다.

“상관없겠지. 나 같은 거 사라진다고 해서, 슬퍼할 사람은 없으니까.”

아카라는 자신의 몸이 녹아들어가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눈앞이 흐려지는 것 같았다.
아카라를 흡수해버린 용은 공격을 멈추고 그대로 저 하늘로 다시 사라져 가기 시작했다.
본격적으로 용과 싸우려고 준비하던 유우키들을 허탈하게 하면서. 하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곧 일본 열도를 덮쳐 들어가는 사상 최악의 해룡 레비아탄의 공격이 시작된 것이다.



‘이건 설마?’

카렌티어스의 용안에 또 무언가가 보였다.
아카라가 푸른 용에게 흡수되어 사라지는 것이 생생하게 보였다.

“설마... 그럴리가... 아카라 그 녀석이 용에게 당할리가...”

카렌티어스는 애써 부정하고 있었다. 그 때 유라시아 지부에 긴급 사태를 알리는 붉은 사이렌이 울려퍼졌다. 카렌티어스도 곧 다른 생각할 겨를도 없이 바로 코어 컨트롤 링크 시스템으로 향했다.

“일본이 국가연합에 다시 가입하기를 희망하고 있습니다.”

“그와 더불어, 한국과 미국에 대한 전쟁을 중단한다는 선포와 함께, 임시 정부 수립 발표와 유라시아 지부에 지원 요청을 하였습니다만.”

한 오퍼레이터의 보고에 커텔은 아무도 모르게 씨익 웃었다. 그리고 곧 입을 열었다.

“일본에 출현한 용은 2마리라고 보고를 들었다. 용에 대한 정보는?”

“그게 아이러니하게도 자유파의 승리를 안겨준 가오리 모양의 신종 젤리질 용은 갑자기 상공으로 사라져버렸고, 그리고 그 다음으로 일본을 덮친 용은 바로, 그 최악의 해룡, 레비아탄 입니다.”

커텔은 레비아탄이란 말에 살짝 인상을 구겼다.
확실히 되는 일이 없다고 생각한 그였다. 하지만 아무리 레비아탄이라고 해도 그것에 봉인을 풀 수는 없었다. 그것은 커텔에게 있어 히든카드였다.

“일단 트론 마크 03 드로우와 트론 마크 05 이지스, 트론 마크 06 시엘과 한국 지부에 무휼을 일본에 지원 보내도록.”

“그것이 트론 마크 03 드로우의 파일럿이, 현재...”

한 오퍼레이터가 땀을 뻘뻘 흘리며 보고를 하자, 커텔은 너무도 당연하다는 듯 말하였다.

“아카라가 없으면, A-X48을 드로우에 태워서 보낸다.”

“아, 예.”



타타타타탕.

어느 새 도착한 유라시아 지부에 3기의 트론(A-X48이 조종하는 마크 03 드로우, S-X03(에릭)이 조종하는 마크 05 이지스, B-X49(지나)가 조종하는 마크 06 시엘)과 한국지부에서 지원 온 트론 1기(무휼, 파일럿 천태랑)와 JS7식과 6식, 메가세리움 알파와 베타는 레비아탄을 향해 연신 할 수 있는 한 강력한 공격을 감행하였다.

“이제 와서!! 이제야 조국을 자유 국가로 만들었는데 이대로 침몰할 수는 없다고!!”

유우키에 절규나 다름없는 외침과 여전히 레비아탄을 향해 포격은 계속되었지만, 레비아탄의 그 커다란 몸집에 별로 타격이 없어 보였다.

‘마크 06 시엘은 클래식 플렉시온 건너를 사용한다.’

‘마크 03 드로우와 마크 05 이지스는 플레어 건너 사용을 임시로 허가한다.’

클래식 플렉시온 건너나 플레어 건너나 그 위력은 일본 트론 1식이 사용하는 레이저 스플렉스에 비해서 위력은 5분의 1 수준(플레어 건너는 7분의 1)에 위력을 지니고 있지만, 그러나 무지막지한 병기라는 건 사실이었다. 거기다 플레어 건너는 아직 내부 테스트조차 거치지 못 한 채 바로 실전에 투입된 위험한 무기였다. 그만큼 사태가 심각하다는 것, 레비아탄의 전적 상 레비아탄에 습격을 받은 섬치고 안 침몰한 섬이 없었기 때문에 이런 무기들에 사용이 허가 될 수밖에 없는 거였다.
레이저 스플렉스를 쓸 수 없는 지금 이들 무기들이 현재로서는 조금이나마 덩치 큰 레비아탄에게 타격을 줄 확률이 높았기에 말이다.

콰앙. 콰앙. 콰앙.

3기에 트론이 동시에 발포한 플레어 건, 클래식 플렉시온 건너는 동시에 레비아탄에 머리에 명중하였다. 하지만, 약간 그을린 상처만 주었을 뿐, 거의 타격을 주지 못하였다.
오히려 레비아탄을 자극한 꼴이 되었다. 이내 레비아탄은 화가 나는 지 자신을 공격한 트론들을 향해 날카로운 꼬리를 휘둘렀다.

‘전원 모두 회피!!’

카렌티어스에 지시도 소용이 없었다.
레비아탄의 최고의 무기는 그 덩치였기 때문에 아무리 카렌티어스의 지시를 받고 카렌티어스와 크로킹한 상태의 트론이라고 해도 피할 수가 없었다.
피하지 못한 채 그대로 두동강 나면서 카렌티어스에게 연달아 파일럿들의 고통이 전달되었다.

‘큭...’

알트 아이젠이 보유한 2기의 트론 메가세리움들도 움직일 수 있었던 일본 트론 6식과 7식 역시 두동강 난 채로 뒹굴고 있었다.

“크윽... 제기랄!!”

유우키는 조종간을 내려치며 고통을 삭이고 있었다.
그런 유우키의 맘을 아는지 모르는 지 레비아탄은 다시금 섬 침몰 공작을 다시 시작하고 있었다.



“어쩔 수 없군. 유 박사. 그것에 봉인을 푼다.”

“예에?”

유 박사는 커텔에 말에 놀란 표정을 감출 수 없었다.
그것이라면 바로 커텔의 친 딸이자 카렌티어스의 여동생인 유리카 N 프로브와 트론 마크 02 스카디를 말하는 것이었다.

“하, 하지만, 트론은 몰라도, 그 애는 당신의...”

“괜히 살려두었다고 생각하나? 그런 녀석은 애초에 죽었어야 했다. 그나마 트론 마크 02 스카디를 유일하게 다룰 수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 쓸모가 있기에 살려 둔 것 뿐.”

유 박사는 잠시 뭔가를 생각하다 곧 입을 열었다.

“하지만, SS-X00은 인간을 매우 증오하는데, 어떻게 설득하실 생각이죠? 설마 무릎 끓고 애원할 것도 아닐 테고, 당신 스타일대로라면 협박을 할 것 같은데.”

“아무래도 상관없다. 그 녀석이 우리에게 협조만 하게 만들면 그 뿐이다.”

“알겠습니다.”

유 박사는 자리를 떴다.
그리고 곧 엘리베이터를 타고 어떤 암호 코드를 입력하고 인증을 거친 뒤 그곳으로 단숨에 이동하였다. 그렇게 이동한 곳에는 한 캡슐이 있었다. 그 캡슐을 감싸는 벽만 수십 개는 될 듯싶었다. 그 벽들을 유 박사는 카드 한 장으로 단숨에 해제시켜버리고 단숨에 시스템을 조작하여 모든 작업을 단 1단계로 마무리 지은 뒤 마지막 인증을 한 뒤 캡슐을 개방하였다.
개방된 캡슐에서는 진홍색 액체가 흘러나와 금새 바닥에 퍼져나갔다. 그리고 그곳엔 야위디 야윈 한 소녀가 있었다. 블루블랙의 가슴까지 오는 머리카락이 수분으로 인해 몸에 바싹 달라붙어 야윈 모습을 더욱 강조하고 있었다. 소녀에 초점 없는 회백색 눈동자가 있는 얼굴에는 갑작스런 상황에 이곳저곳을 경계하는 살의가 담긴 표정이 지어져 있었다.
10살에 소녀가 지니기엔 너무 섬뜩하고 살의가 가득한 표정이었지만 유 박사는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그리고 소녀에게 다가가며 말하였다.

“SS-X00은 이 시간부터 봉인에서 해제되어 트론 마크 02 스카디에 파일럿으로 싸우게 되었다. 부탁 따윈 하지 않아.”

유 박사가 소녀를 SS-X00으로 지칭하자 소녀는 발끈하며 있는대로 살의를 담으며 유 박사의 목소리가 들린 곳을 향해 소리쳤다.

“SS-X00이라 부르지 마!! 나에겐 오빠가 지어준 유리카란 이름이 있어!!”

“그래, 그래 유리카 N 프로브. 나도 이런 역할은 싫어.”

“N 프로브 란 것 붙이지마!! 유리카는 유리카야!!”

유 박사가 소녀를 다시 유리카 'N 프로브'라 지칭하자 소녀는 다시금 살의와 증오를 한껏 담아 냅다 소리쳤다. 유 박사는 유리카가 프로브란 이름에 맹렬하게 증오를 가질 수밖에 없는 것을 조금은 알고 있었다. 그 아버지인 커텔을 증오하는 것이라는 것. 어떻게 보면, 유리카에게 고통스런 삶을 준 건 카렌티어스 일지도 모른다. 차라리 그때 리에 N 프로브와 같이 죽어버렸다면 고통스런 삶도 없을 것이었다.

“그래, 유리카라고 부를게,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어.”

“크크크. 당신들에겐 시간이 없겠지. 당신들이 당신들의 적과 싸우다 죽던 말던 나 상관 안 해. 오히려 당신들이 죽어가고 파멸해 간다는 사실이 너무나 즐거운 걸. 이 손으로 하지 못 한다는 게 미치도록 아쉽단 말이야!!”

아직 10살이라면 어린 아이다. 그 만한 나이에 섬뜩한 소리를 아무렇게나 할 정도로 라면 그 증오심에 깊이란, 헤아리고 싶지 않았다.

“단지 어머니가 동화되었다는 것만으로 날 죽이려고 했던 그 인간이 파멸한다고 생각하니 너무나 기뻐서 뛰고 싶단 말이야!!”

유리카가 말하는 그 남자는, 친 아버지인 커텔 N 프로브를 말하는 거였다.
친 아버지라곤 하지만, 실상 커텔은 리에 N 프로브와 결혼만 했지, 거의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그녀와 사이에서 태어난 카렌티어스에게도 거의 관심을 가지지 않았으며, 자기 부인이 용에게 침식 동화되어 아들에게 살해당하는 사태가 되었을 때도, 단지 용이라는 말 하나 때문에 왔을 뿐 이었던 남자였다. 그리고 용에게 동화된 리에에게서 태어난 아이, 유리카 역시 동화된 어머니에게서 태어났다는 이유로 죽이려고도 했던 남자였다.
카렌티어스의 만류와 간곡한 부탁이었는지 커텔은 유리카를 잠시 동안 인큐베이터에 보냈지만, 얼마 안 있어 유리카를 지금에 캡슐에 봉인해 버렸다. 그 전에 유리카의 두 눈을 평생 세상을 보지 못하게 망가뜨린 채로. 유리카가 아버지를 증오하는 건 그럴 수밖에.
이해할 수 없는 건, 그 당시에는 갓난 아이였을 유리카가 어떻게 그 일들을 기억하는지 조금 의아했지만, 누군가가 이야기 했을 수도 있지만, 그런 것을 이야기할 누군가는 사실없었다.

“유리카, 네가 하는 말을 다 들어줄 시간은 없어. 지금쯤이면 트론 마크 02 스카디에 영구동결도 해제되었을 꺼다. 너는 그 마크 02 스카디에 타서 일본 열도를 습격한 레비아탄이란 1.5Km란 사상 초유의 해룡과 싸우게 될 거야.”

“흥, 날 스카디에 태우면 제일 먼저 이곳부터 박살 날 걸. 아하하하, 이곳을 내 손으로 부숴버린다는 생각을 하니 너무 좋아!!”

10살의 아이라곤 믿기기 힘든 증오와 살의가 담긴 독설. 그러나 유 박사는 싫은 역할을 할 수 밖에 없는 자신을 한탄하며 그 아이를 움직일 수 있는 히든카드를 꺼내들었다.

“네가 우리를 해치고 이곳을 파괴하면, 더 이상 ‘카렌티어스’ 군이 너를 지켜주지 못하게 돼. 그 뿐만 아니라, 네가 그렇게 좋아하는 ‘카렌티어스’ 군의 기대를 저버리는 게 되어버리겠지.”

순간 유리카의 얼굴 표정이 그대로 굳어버렸다. 유리카의 표정이 굳던 말던 유 박사는 하던 말을 계속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넌 카렌티어스의 눈이 아니면 이 세상을 전혀 볼 수 없잖아. 자기 앞도 분간할 수 없고, 태어나서 지금까지 그 캡슐 속에서만 생활했기 때문에 두 다리는 제 역할을 하지 못하지. 운동을 하지 못해 그저 툭 건들면 무너질 정도로 네 몸은 약해. 그리고 결정적으로, 네 몸 곳곳엔 소형 마이크로 폭탄이 설치되어 있어. 네가 혹시라도 말을 듣지 않을 경우, 커텔 사령관님의 지시로 설치한 것이지.”

“이, 이익...”

유리카는 커텔이란 말에 얼굴이 분노로 일그러지고 있었다. 분노로 인해 그녀의 야윈 온 몸이 사시나무처럼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그런 유리카의 모습을 애써 바라보며 유 박사는 말하였다.

“이제 우리가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겠지. 우리가 하는 말을 잘 들으면 언제나 네가 잠꼬대처럼 중얼대던 일들이 실현될 확률은 그 만큼 높아질 거야.”



“아버지. 설마...”

카렌티어스는 뭔가 익숙한 느낌에 커텔에게 직접 통신을 연결했다. 커텔은 카렌티어스에 말에 대답해 주었다.

“곧 있으면 일본 열도에 트론 마크 02 스카디가 도착하게 될 것이다. 녀석이 주어진 임무이외에 행동을 하지 못하게 해라.”

커텔에 의연한 대답에 카렌티어스는 살짝 이를 악물며 대답하였다.

“알겠습니다.”

통신을 끊으며 카렌티어스는 중얼거렸다.

“역시... 유리카를 내 보낸 거였군.”

-오빠아~

중얼거리는 카렌티어스에게 익숙한 목소리에 통신이 들어왔다.
그 목소리가 누구의 목소리인지 잘 알고 있는 카렌티어스는 이내 마음을 가다듬고 대답하였다.

“유리카 구나. 잘 할 수 있겠니? 상대는 사상 최악의 해룡 레비아탄이다. 크기부터 1.5Km나 되는 놈이야.”

-괜찮아. 괜찮아. 오빠를 곤란하게 하는 적이라면 내가 다 갈기갈기 찢어줄게. 2번 다시 오빠야를 곤란하게 하지 않게.

어떻게 보면 섬뜩한 말이었지만, 카렌티어스는 신경 쓰지 않고 유리카에게 말하였다.

“조금이라도 위험해지면 바로 도망쳐도 상관없다.”

-에 괜찮아. 오빠. 나 당하지 않을 거니까.

“앞을 본다면 당하지는 않겠지. 유리카, 아직 앞이 보이지 않니?”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하지만, 크로킹을 하면 내가 다치면 오빠도 다치잖아. 그래서 싫어. 그냥 눈만 빌려줘. 그럼 나머진 내가 다 알아서 할게.

“그러지.”

카렌티어스와 유리카는 동시에 두눈을 감았다. 그리고 두 눈을 떴을 때 유리카의 회백색 눈동자는 어디로 가고 카렌티어스의 적색의 용안으로 바뀌어 있었다. 카렌티어스의 용안은 변함이 없었지만, 좀 더 빛나고 있었다.

“내가 보이는 것이 보이는가?”

-응 보여!! 너무 아름다워!! 이게 바다라는 거야!! 저게 하늘이고!!

“그래, 내 발밑에 한없이 펼쳐져 있는 푸른 것들이 바다고, 네 머리위에 펼쳐진 푸른 공간이 하늘이야.”

-헤에, 그럼 저건 오빠를 곤란하게 하는 적이네.

“벌써 도착한 것인가?”

-아직 멀었지만, 정말 오빠를 곤란하게 할 정도로 몸집이 큰 가봐. 찢어발기는데 더없이 좋을 정도로 말이야.

“유리카, 알겠지. 녀석, 레비아탄을 쓰러뜨리는 것이 목적이다. 절대 다른 사람이나 시설은 건들지 마!”

-응.

그렇게 남매의 대화는 끝나갈 무렵엔 벌써 트론 마크 02 스카디를 운송하던 서포트 무인 전투기들은 일본 열도에 거의 도달하고 있었다. 이내 도착해서는 트론 마크 02 스카디를 홀연히 상륙시키고 후다닥 사라져 버리는 서포트 무인 전투기들을 바라보던 유리카는 이내 섬 침몰 작업을 계속하는 레비아탄을 바라보며 단숨에 달려들었다. 그것을 보던 다른 트론들, 트론 메가세리움 알파의 파일럿인 유우키는 냅다 소리쳤다.

“이봐!! 소용없다고!! 그렇게 무식하게 달려들었다간!!”

유우키의 외침도 소용없이 유리카가 조종하는 스카디에 단숨에 높이 점프하여 레비아탄에 꼬리에 표면 가죽을 잡았다. 그리고 놀라운 힘으로 잡아 뜯어 당기기 시작했다.

쿠워어어~

레비아탄은 아픔에 비명을 지르며 자신의 가죽을 잡아 뜯고 살을 마구, 마구 파헤치는 스카디를 꼬리를 마구 흔들어 내던지려고 했다. 그러나 쉽게 떨어지지 않는 스카디를 결국 레비아탄은 그대로 꼬리로 단숨에 말아 으스러뜨리려고 했다.

“크크... 어디 날 으스려뜨리려면 해봐!! 해보라고!! 그전에 네가 당하겠지만!!”

유리카는 자신만만하게 말을 하였고, 그리고 이내 레비아탄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순식간에 레비아탄은 비명을 지르며 자신의 꼬리를 이빨로 물어뜯어 끊어버렸다.
잘린 부분에서는 적색의 용혈이 분수처럼 뿜어져 나왔다. 그리고 놀랍게도 잘린 꼬리는 감싸고 있던 트론 마크 02 스카디에게 순식간에 흡수되어버렸다.

“저, 저런 말도 안돼는!!”

유우키는 순간 자신의 두 눈을 의심해야 했다. 스카디의 움직임이야 파일럿의 동조율이 좋아서 빠를 수는 있다.(유리카의 동조율은 크로킹 없이 200%)
그러나 방금 전 용에 꼬리를 흡수 동화한 것은 어떻게 설명해야 한다는 말인가?
용이 인간을 침식 동화 흡수하는 것은 수도 없이 봤어도, 트론이 용을 역으로 동화 흡수하는 것은 여지껏 단 한번도 본 적이 없었다.
레비아탄은 자신을 향해 미친 듯이 달려드는 스카디를 보며 뒷걸음질치며 바다로 도망가며 냉기의 브레스를 쏘았다.

“유리카 피해!!”

카렌티어스의 외침에 스카디는 단숨에 옆으로 회피했지만, 약간 타이밍이 늦었는지 스카디의 오른팔은 브레스에 날아가고 말았다.

“유리카 괜찮아?”

크로킹도 코어 컨트롤 링크 시스템에 링크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카렌티어스는 유리카가 느끼는 고통을 느낄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 고통이 클 거라고 생각한 카렌티어스는 유리카에게 말하였다.

“괜찮아. 오빠. 이정도 고통, 그 동안의 고통에 비하면 너무 간지럽거든!!”

유리카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순식간에 스카디의 잘린 오른팔은 그대로 재생되어버렸다. 그것을 지켜보는 유우키는 질렸다는 듯 말하였다.

“젠장, 저 신형, 보통이 아닌데. 도대체 파일럿이 누군지 참 궁금하네. 이거.”

그리고 스카디는 이내 두 동강 난 채로 쓰러져 있는 트론 마크 06 시엘 전용의 클래식 플렉시온 건너를 집어 들었다. 스카디의 손과 클래식 플렉시온 건너의 손잡이가 마주치자 이내 스카디의 손에서 검붉은 액체가 흘러나오더니 클래식 플렉시온 건너의 손잡이에 닿아 그대로 클래식 플렉시온 건너를 스카디의 팔의 일부로 동화해 버렸다. 이내 주변에 떨어진 플레어 건너도 마찬가지로 동화하여 팔의 일부로 만들어 버린 뒤 그대로 도망가는 레비아탄을 향해 연달아 쏘기 시작했다.

콰앙, 콰앙.

다른 트론들이 사용할 때와는 포격음부터 건너에서 날아가는 에너지 빛깔부터 뭔가 크게 다른 에너지가 레비아탄에 명중 하였다.

꾸웨에에에에

다른 트론들이 쓸 때는 그저 약간 그을린 상처만 주었던 것이 스카디가 사용할 때는 아주 그 커다란 레비아탄을 여러 조각을 내어버렸다. 유우키들이 경악하는 것을 뒤로 한 채 여러 큰 조각으로 으스러진 레비아탄의 몸뚱이는 그대로 아무렇게나 바닥을 굴렀다.
그리고 스카디는 이내 동화하여 몸의 일부로 만든 클래식 플렉시온 건너와 플레어 건너를 도로 동화를 풀어 바닥에 떨어뜨린 채, 이번엔 JS7식의 일본도를 집어 들어 역시 똑같이 동화한 뒤 단숨에 달려들어 아직 코어가 파괴되지 않아 살아있는 레비아탄의 몸뚱이로 달려들었다.

“유리카, 무슨 짓을 하려는 속셈이지?”

조심스럽게 묻는 카렌티어스에게 유리카는 빙긋 웃으며 대답하였다.

“레비아탄 밖에 못 죽이잖아. 그러니까 그냥 죽이기 조금 아쉬워서. 좀 놀아도 되지?”

“마음대로 해. 속이 편할 때까지 말이야.”

“고마워. 오빠.”

유리카는 그 통신을 끝으로 부들부들 떨고 있는 레비아탄의 머리가 달린(코어도 있는) 몸뚱이로 동화한 일본도를 쥐고 올라섰다. 그리고 이내 레비아탄의 겁에 질린 커다란 눈을 일본도로 쑤시기 시작했다. 레비아탄은 그 고통에 마구 비명을 질러대었지만, 유리카는 재밋다는 듯 계속 쑤시고 박아대기 시작했다. 레비아탄의 수염을 한손으로 잡아 뽑고, 일본도를 레비아탄의 입안을 쑤시고, 그것을 보던 유우키는 굳은 표정으로 이렇게 중얼거렸다.

“마치, 어린아이가 잠자리에 날개를 뜯으며 즐거워하듯이 똑같이 하고 있어.”

유우키의 말대로 였다. 유리카는 단순히 쑤시고 찌르고 이렇게 하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하며 각종 무기들을 박아대고 있었다. 레비아탄은 이미 비명을 지를 기운도 다 빠진 듯 비명을 지르지 않았다. 다만 망가지지 않은 한쪽 눈에 눈물을 그렁그렁 달며 제발 그만 죽여 달라는 듯한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흥, 맘에 안 들어.”

유리카는 레비아탄의 남은 눈마저 일본도로 푹 쑤셔버렸다.

“유리카, 이젠 그만 죽이도록 해.”

보다 못한 카렌티어스가 나서서 유리카를 말렸다.
유리카는 카렌티어스에 말에 빙긋 웃으며 말하였다.

“응, 어차피 이제 질려가던 참이었거든.”

유리카는 스카디를 조종해 단숨에 레비아탄의 코어에 일본도를 깊이 박았다. 일본도를 쥐고있는 스카디의 두 팔이 코어 속에 잠길정도로. 그리고 순식간에 레비아탄은 스카디에 흡수 동화되어버렸다.
그것이 사상 초유의 해룡 레비아탄의 최후였다.
어쨌든 일본은 구해졌고, 그 후 일본은 한국과 미국에 전쟁 보상금을 혹독히 치렀지만, 일본 국민들은 전쟁을 멋대로 일으킨 대가라고 생각하며 불평하지 않았다. 그리고 정식으로 출범한 일본 정부는 곧 한국에 일제 시대 때 벌였던 일들(위안부, 생체 실험, 강제 노동자 등)을 공식적으로 사과하고 역사왜곡 역시 사과하며, 독도가 한국 땅이라는 것을 인정하였다. 그리고 아직 살아남은 일왕의 일가친척이나 전쟁을 주도했던 강경파들을 모두 전쟁 범죄자로 처벌하고 국가연합에 다시 가입하는 둥, 일본은 다시 일어서려고 하고 있었다.
하지만, 커텔에게 그것보다 귀찮은 일이 생겼다.
국가연합 측에서 트론 마크 02 스카디에 대한 해명을 요구한 것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공식적인 보고에서는 트론 마크 02 스카디는 폭주 사태 때, 유라시아 지부 옛 본부 시설과 함께 폐기처분한 것으로 보고 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옛 본부 시설의 폐기처분은 확실했지만, 트론 마크 02 스카디가 보고서와는 달리 여전히 가지고 있었고, 그 엄청난 위력에 ‘왜 보고하지 않았나’란 해명을 국가연합이 긴급 주최한 회의에서 해야 했다.
하지만, 커텔은 그 회의에서 자신을 변명할 카드들을 무수히 준비해두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별 문제 될 것은 없었다.

‘내가 본 것이 거짓일 거라고 믿고 싶다. 아카라 넌 지금 어디 있지?’

카렌티어스는 유리카를 마중 나가며 생각했다.


====================================================================================================================


[Tialist] 010 : 크레타 섬의 광풍
글쓴이 : 다르칸


어둡고 그늘진 방. 다수의 '인간'으로 보이는 이들이 커텔 N 프로브를 감싸고 있었다.

"어째서 거짓부렁을 한 것 인지 설명할 수 있겠소?"

"..."

커텔은 아무런 행동르 취하지 않고 침묵으로 일관했다. 그 중 덩치가 커 보이는 이가 깍지 낀 손으로 금속의 ㄱ 자 물건을 들어올려 커텔에게 겨눴다.

"우리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은 전 인류를 위한 일이다. 지금 네가 하고 있는 짓은 인간이란 존재를 쓸어버릴 수도 있단 말이다. 이대로 침묵으로 일관할 경우 유라시아 지부 통수권자의 자리는 우리에게 넘긴 것으로 간주하고 쏘겠다"

"후우-."

커텔은 주머니를 뒤적거려, 담배 한 갑을 꺼내 입에 물었다. 피지직. 발간 담뱃불과 함께 연기가 피어올라 커텔의 눈을 밝게 만들어 주었다.

"어쩔 수 없었습니다. 레비아탄의 경우 우리가 어쩔 수 없었기.."

탕-! 경쾌한 총성이 커텔의 미간을 찌푸리게 만들었고, 총을 들고 있던 거구는 하얀 이를 드러냈다.

"그 따위 변명을 들으려고 우리가 친히 이곳에 온 게 아니다! 어째서 마크 02를 소멸시키지 않았나!"

"그것은 그녀의 유산이 아닙니까?!"

"..."

일 순간 그녀란 말이 튀어나옴으로써 그들은 침묵을 유지했다. 그것을 깬 것 역시 커텔이었다.

"후우-. 죄송하지만, 당신들도 제가 그것을 파괴하지 않았다는 것 쯤을 알고 있지 않으셨습니까? 그리고 남의 이목이란 것도 있을 텐데요?"

"국가연합 말인가?"

끄덕. 커텔은 조용히 고개를 숙였고, 거구의 사내는 짜증난다는 투로 자신의 아래 놓여있는 상당히 비좁아 보이는 소파에 몸을 기대었다.

"후우-. 알겠네...그렇지만, 가끔은 우리가 모르는 것도 있다는 것을 알아두시게"

"예"

"다음이란 건 없어. 다음엔 우리의 군대가 자네의 자리를 이 총으로 쏘아 버릴 걸세. 알겠나?"

"명심하겠습니다"

커텔은 그대로 몸을 일으켜, 밖으로 나와 버렸다. 밝은 빛이 쬐어지자. 그의 입엔 잠시 미소가 걸렸다.

"유산이라...흥, 버러지 같은 놈들"
.
.
.
레비아탄 사건이 종결된 지 일주일 뒤, 태평양의 거의 가운데 부분 심해.

- 크크큭. 내 아이를 그렇게 죽여버린 건가?

푸른색의 길다란 몸체를 지닌 것은 하얀 이빨을 들어냈다.

- 아아, 이 레비아탄님이 고작 저런 티아리스트 님의 발끝에도 못 미치는 쓰레기에 질 것 같다고 생각했나!

그 푸른색 길다란 것은 뭔가 모를 분노를 한 듯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것은 대지도 마찬가지였고, 그것이 지진인지 아니면, 그 푸른 것의 분노인지도 알아볼 수 없을 정도였다.

- 베히모스..베히모스!!

그 푸른 것의 앞엔 이윽고 그것보다는 작지만, 그래도 터무니없이 거대한 코끼리의 형상을 한 것이 나타났다. 그러나 그것은 환상인지 흐릿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 나의 분신을 걸레조각으로 만든 저 쓰레기를 보았나?

- ....

베히모스는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고, 다만 그 푸른색의 레비아탄의 본체를 응시했다.

- 그 고통과 전율은 나 역시 느낄 수 있었다! 크아악!

- 감히 티아리스트님의 파편을 쓰레기라고 부르다니, 좀 더 수양을 쌓아야 겠군.

레비아탄은 베히모스를 바라보면, 으르렁 거렸고 그 눈엔 살기만이 감돌았다.

- 크르릉! 상관없어. 우리가 그분께 명받은 일은 티아리스트님의 육체를 찾아가는 것이다

- 그것에는 심장 역시 포함되어 있다.

레비아탄은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고 몸을 돌렸다. 그 움직임 하나하나에 대지가 진동하고 있었고, 베히모스는 잠시 코웃음을 친 뒤 자신의 환영을 없앴다.
.
.
.
지중해 중심 크레타 섬.

베히모스는 자신의 환영을 이용해 레비아탄과 잠시 대화를 나눈 뒤에 자신의 주변에 포진한 트론들을 바라보았다.

- 하아암. 재미있군

- 나는 프랑스의 오랜 전통 있는 귀족가의 기사. 세릴마리온이다! 자, 덤벼라

가장 먼저 덤비는 것은 그 세릴마리온인지 뭔지 하는 백색의 나이트 모형의 트론이었다. 그것을 바라보던 베히모스는 눈살을 찌푸렸다.

- 으으음, 그 따위 천둥 벌거숭이 같은 고철로 대체 뭘 하겠다는 거지?

베히모스의 입장으로선 난처할 수 밖에 없었다. 자신이 직접 나서기엔 너무 하찮은 상대. 그렇다고 약한 녀석들을 보내자니, 또 이길 것 같지도 않았다.

- 헬 하운드.

헬 하운드라는 말이 크레타 섬의 거대한 레어에서 퍼져 나가자. 그 레어는 서서히 붉은 빛을 띄며, 빛나기 시작했다. 크르릉! 크르릉! 그 붉은 벽에서 나타나는 것들은 이마에 적색 원뿔모형의 코어를 지닌 흑색 개 모형의 용들이었다.

- 크르륵. 부르셨습니까?

- 저 떨거지 좀 처리해라.

고개를 숙여 묵례를 한 헬 하운드들은 곧 날카로운 송곳니를 들이대며, 일단의 트론부대를 향해 달려들기 시작했다. 몇몇 트론들은 총이나 검으로 헬 하운드의 이마에 꽃혀 있는 코어를 부숴 버리려고 했으나, 코어는 상상을 뛰어넘어 총탄이나 검을 오히려 역으로 부숴버렸다.

- 이..이런 괴물같은!

- 크르르륵! 몰랐나? 우린 괴물들이지.

헬 하운드 중 가장 덩치가 크고 강력해 보이는 녀석은 재미있다는 투로 백색의 기사에게 달려들었다. 프랑스의 트론 05베타 로즈딘이었다.
곧 열에서 열하나 되는 헬 하운드들의 공격에 수십의 트론들은 순식간에 전멸해 버리고 헬 하운드들은 오랜만에 트론의 코어를 흡수해 포식을 하게 되었다.

- 헬 하운드!

- 크르! 예.

베히모스는 잠시 크레타 섬의 레어 밖으로 몸을 빼 동쪽으로 보이는 곳을 향해 섰다 아직 그는 임무를 위해 움직일 수 없는 상황이지만, 그렇다고 티아리스트의 코어 파편을 지닌 녀석이 맘대로 뛰놀게 하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또한 레비아탄에게 맡기자기 다 뒤집어 버릴 분위기.

- 동쪽으로 가서, 티아리스트님의 파편을 지닌 건방진 놈들을 날려버려라. 그리고 그 심장 파편은 꼭 가져오도록.

- 크르륵! 예!

곧 헬 하운드들이 다시 벽을 붉게 만들며, 사라지자. 베히모스의 입가엔 살그머니 미소가 피어올랐다. 회색의 거대한 코끼리의 이마 정 가운데 있는 흉측한 검붉은 눈은 동쪽의 태양을 노려보고 있었다.
.
.
.
유럽의 EU연맹은 현재 심각한 난관에 종착되어 있었다. 그들은 지중해를 끼고 무역으로 큰 이익을 남기기 때문에 지중해를 사용하지 못 할 경우에 대한 피해가 막심해지고, 이른바 백수들이 늘어나 경제에 심각한 위험이 생기게 된다.
지금 EU는 그런 문제에 직면하고 있었으니, 베히모스로 인해 전혀 지중해를 사용할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로 인해 아프리카나 타 국가와의 무역은 현재 완전 동결된 상태.

"이게 말이나 된다고 생각하오?"

"그렇소이다!"

독일의 리센부르트 통령은 한참이나 침을 튀겨가면, 연설하고 있었다. 이번 독일에서 열린 회의의 안건은 베히모스의 처분과 지중해의 사용불가로 인해 생긴 경제타격 및 비인간형 트론의 개발에 대한 안건이었다.

"이 의회의 회장으로써, 제가 한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영국의 프라인스 여왕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옆의 총독이 있었으나, 현재 영국의 상태는 일본과 비슷하게 서서히 옜 군왕주의로 돌아가고 있었기 때문에 총독은 최고의 가신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애매한 자리가 되었다.

"비인간형 트론에 대한 이야기는 제가 제시했고, 또 그에 대한 지식이 가장 해박한 것 역시 저 입니다. 그리고 이번 지중해 사건에 대해서도 최소한의 피해를 입고 있는 나라 역시 저희 영국이지요"

여왕은 잠시 고개를 돌려 창가 밖으로 비치는 지중해의 아름다운 모습을 감상하던 여왕은 다시 입을 열었다.

"어떻게 보나, 비인간형 트론의 전투력이 인간형 트론에 비해 압도적인 것은 사실입니다, 다만 어쨌거나 그 운용은 인간이 해야하기 때문에 인간이 비인간형에 대한 적응이 가장 문제되는 것이지요. 저는 우선 그것이 100% 폭주할 거라고 생각치 않습니다"

"그렇다면, 여왕폐하께서는 어떻게 하실 작정이십니까?"

유라시아의 통수권자로 이번 회의에 참가한 커텔은 언제나와 같이 깍지를 끼곤 턱을 그 위에 올려놓았다.

"비인간형의 연구가 완료될 경우 그것으로 베히모스를 잡거나 봉인하는 것이 어떨런지?"

여왕의 이야기에 각 국가의 통수권자들은 고개를 숙였다. 그것을 누가 생각하지 않았는가? 혹은 그것을 말해주길 기다린 이들도 있었다. 기어코 이탈리아의 무탈라닌 통령이 일어섰다.

"그것은 너무 성공 확률이 희박하오. 우선 여왕폐하께서도 이야기 하셨듯이 폭주률이 무려 70% 이상 입니다! 저로썬 도저히 뭐라고 할 말이 없을 정도입니다. 게다가 비인간형 트론들이 아무리 강력해도 양산형으로써 양산할 수 없을 것은 당연한 이야기가 아닙니까? 게다가 봉인이라구요? 그것을 우리가 시도해 보지 않았습니까? 멍청한 레비아탄이 아닙니다! 지모에 능수능란하고 교활한 놈이란 말입니다! 게다가 얼마나 강합니까? 현재 존재하는 용들 중 최강입니다. 어쩌면 레비아탄을 능가할지도 모른단 말입니다!"

"레비아탄은 이미 소멸했습니다"

커텔은 자신있게 대답했다. 허나, 모든 통수권자의 눈은 전혀 탐탁치 않았다.

"커텔 N 프로브! 이곳은 우리의 정치권이올시다! 어째서 그대가 이런 곳에 있는지 이해할 수 없겠군요! 러시아 대표인 코를룬스 대통령 각하는 어디 계시는 거죠?"

커텔은 눈을 감았다.

"그 분은 현재 바쁘신 관계로 그 분과 안면이 있는 제가 왔을 뿐입니다"

유난히도 스웨덴 하베스터 통령은 마음에 들지 않는 다는 투로, 고개를 돌리고 안건을 진행시켰다.

"그렇지만, 아시듯이 베히모스는 헬 하운드라거나, 드워프(인간형 용. 거대한 신체에 유난히 강력한 파괴력을 자랑하는 망치나 도끼를 들고 다닌다. 북구신화의 등장하는 요정) 같은 막강한 수하들도 대동하고 있습니다"

커텔은 감았던 눈을 지긋이 뜨고, 지겨움에 물을 한 잔 삼켰다. 더러운 정치가들...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분명 지금 비인간형 트론은 성공률만 제외한다면, 충분히 도전할만한 종류의 것이나, 그 막대한 비용 덕분에 이 통수권자들은 그것을 꺼려하는 것이다. 심지어 그것을 제안한 영국 여왕 역시 자신들이 비용을 대겠다는 말을 하지 않으니.

"으음, 그렇다면, 우선은 용병들을 고용해서 베히모스와 싸우게 한 뒤의 EU의 모든 트론들을 움직여 크레타 섬을 무너뜨려 파묻어 버리는 것은 어떻습니까?"

모두의 눈이 뜨여졌다. 정작 발언자인 에스파냐 스트로든 통령 역시 놀란 눈치,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우리 만약을 대비해 우리 EU 연맹의 협력국들이 돈을 모아 비인간형 트론 제작에 찾수해 보죠. 그 비용의 30% 저희 그리스가 대도록 하겠습니다"

예로부터 부의 국가 그리스의 하리탈로든 통령은 만약의 조치까지 취해주었다. 이어서 커텔 역시 입을 열었다.

"만약 비인간형 트론들이 폭주할 경우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각자 본국의 모든 트론들을 코레타 섬 파괴 작전에 쓸텐데?"

"..."

모두의 말문이 막혔다. 그들은 솔직히 돈이 문제였지 그 비인간형 트론의 폭주율이 문제가 아니었기 때문에 그러 것은 생각치 않고 있었다.

"저희 유라시아 지부의 트론과 아프리카 지부의 일부 트론이 폭주를 대비해 대기해 드리겠습니다. 물론 무료는 아닙니다만"

이어서 커텔과 그 통수권자들은 서로가 어째서 이 자리에 있는지를 알 수 있었고, 그 비용에 대한 탁상공론을 거듭했다.



수천년 신의 이름 아래 유럽의 정신적 지주로써 바로 전 부터는 메카닉의 총 본산으로써 조재하는 신의 땅 바티칸 제국의 교황정.

"영국 여왕"

"예, 교황 성하"

"트론 부대는 얼마나 모였소?"

"예, 러시아의 저격용 양산 트론 24기 그리고 코어가 붙은 대격용 트론 5기와 이탈리아의 대격용 트론 3기와 양산형 30기, 에스파냐에서 양산형 44기와 대격용 6기, 독일에서 대격용 6기와 양산형 60기, 저희 영국에서 양산형 70기와 대격용 6기 등 유럽 각지의 동맹국ㅇ서 보내온 대격용 트론이 총 79기, 양산형 트론 344기 이며, 아프리카 용병과 일본 등 세계 각지에서 온 용병들의 대격용 40기, 양산형 110기 입니다."

"좋소. 우리 바티칸의 12 사도들을 사용해도 좋소"

사도들...수천년을 자랑하는 그들의 진보적 문명의 집합체라 불리는 현재 세계 톱 클래스의 트론부대 중 하나이다. 심혈을 기울여 만듬에도 불구하고, 독실한 광신도들의 노력과 오랜 세월 모아 놓은 재력으로 인해 12기의 대격용 트론이 존재한다. 그 중 1사도 베드로는 붉은 색의 최강이라 불리우는 트론인데다가 그 파일럿 역시 조잡한 유전자 조작 파일럿이 아닌, 천재라 불리는 동화율 100%의 알렉산더 안데르산 신부였다.
.
.
.
트론 대기소. 거의 수백기에 달하는 그야말로 한 대륙이 소유할 수 있는 최정예 트론들의 모임은 용병들로 하여금 눈이 휘둥그레지게 만들었다.

"우와아아-!"

붉은 머리카락의 15세 가량 되는 소녀는 휘둥그런 눈으로 연신 멋지게 칠해지고 날렵하고, 육중하기도 하며, 휘황찬란한 국가소유 토른들에 정신이 팔려 있었다. 리샤 발렌타인, 대만 용병인 그녀의 눈엔 모든 것이 신기했다. 비록 자신이 파일럿이라도.

"리샤! 그만 좀 해"

"헤헤, 응"

리샤의 등을 감싸준 것은 포근한 금발의 여인. 풍만한 가슴에 약간 불편하기도 하지만, 리샤는 프렌데 언니가 좋았다. 엄마 같아서 일까? 회백색의 눈을 지닌 여인은 리샤의 손을 잡아 자신들의 트론이 있는 곳으로 데리고 갔다.

'Balrantain'

자신의 성이 멋지게 써져 있는 분홍색의 귀여워 보이는 트론은 용병들 사이에선 보기도 힘들다는 대격용 트론이었다. 고로 동화율이란 것이 필요한 트론인 것 이다.

"발렌타인! 잘 싸우자"

소녀는 싱긋. 귀여움이 어울리는 미소를 지었다.
.
.
.
크레타 섬 부근. 그리스에서부터 출발한 일단의 항공모함 전단들의 모습은 위용을 자랑했다. 다섯 척의 중형 항공모함엔 전투기 대신 트론들이 나열되어 있었고, 그를 호위하는 이지스함은 날카로운 센서를 번떡였다. 이어서 그 뒤를 따르는 대형 구축함과 프리깃함 위엔 함포와 미사일 발사대 대신 트론들이 있었다. 그 아래에 스크류를 움직이며, 전진하는 독일의 국기가 파도에 부대끼며, 펄럭이는 잠수함들은 특수한 고리로 트론들의 허리를 묶어 고정시켜 놓았다.

- 치직. 여기는 제우스! 여기는 제우스! 헤르메스 나와라!

- 치직. 여기는 헤르메스! 잘 들린다.

암호명 헤르메스 군단을 이끄는 네모 함장은 길게 입가에 있는 수염을 만지작 거렸다.

- 우리는 이대로 크레타 섬에 상륙해 티폰을 저지하겠다!

- 알겠다. 곧 지원하겠다.

- 라져.

네모 함장은 이 '라져'라는 말을 좋아한다. 그런 말을 들으면, 모든 것이 술술 풀릴 것 같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네모 함장은 모든 잠수함에 신호를 보내 크레타 섬를 햐해 방향을 틀었다.
이제 잠수함들에 묶여있던 국가소유의 트론들은 섬의 밑둥 뿌리를 파괴해 무너뜨릴 것이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육지가 아닌 물 속에서 힘을 잃을 베히모스를 12사도들이 봉인 하는 것.
네모 함장의 눈에 저절로 힘이 들어갔다.

"전 함정에 알린다. 트론 파일럿들은 준비하도록"
.
.
.
철컹. 크레타 섬의 북부에 상륙한 이들은 용병단들이었다. 특히나 그곳의 중간지점을 맡은 리샤는 자신의 기체 발렌타인을 다독거리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곧 자신들은 최강이라는 용을 상대하기 위해 움직일 것이다.
철컹 철컹.. 크르르르.  뭘까? 산짐승일까?? 산짐승이 용이 있는 곳에 있을 리가..! 리샤의 상상과 추측이 난무한 뒤에 떠오르는 것은.

'베히모스의 부하들!'

- 흐응! 오랜만에 신사거리인가?

- 흐응! 재미있군!

  우렁차게 갖가지 수다를 떨며, 나타난 이들은 온 몸이 털로 더부룩한 거인들이었다. 한 손에는 망치를 들거나 도끼를 들고 있었고, 얼굴 부분의 털들 사이로 보이는 흉측해 보이는 눈은 섬뜩하기까지 했다.

- 으아아앗! 쏴아!!!

투타타타타타! 누군가의 외침을 시작으로, 수백여기의 트론들의 손에 잡혀있는 병기들에선 일제히 총탄이나 포탄들이 날아가기 시작했다.

- 흐응 흐응! 그런 건 통하지 않아!

그 드워프들은 각자 자신들의 병기로 총탄 따위를 막아내며, 앞으로 뛰어나와 트론들의 목이나 허리를 뭉게버렸다. 아무리 도끼라도 저렇게 두꺼우면, 나무도 자르지 못 할 것이기에.

- 꺄아아악!

리샤는 다행히도 바닷가에 있었다. 그래서 인지 드워프들이 달려드는 숫자는 적었으나, 드워프들과 직접 닿는 이들은 참혹했다. 유난히 짧아 보이는 팔과 다리로 열심히 병기를 휘두르는 드워프들의 손에 죽어나간 트론이 이미 태반이었다. 겨우 드워프들의 숫자는 20이 조금 넘을 뿐인데 말이다. 그렇지만, 리샤에게 불행은 찾아왔다. 한 드워프가 혀를 기다랗게 내밀고 자신에게 다가오는 것이 아닌가?

- 꺄아아악! 오지 마아!!

첨벙 첨벙. 리샤는 자기도 모르게 뒷걸음을 쳤다. 푸쉭푸쉭. 그리고 바닷물에 발을 담근 드워프는 사라지고 없었다. 계속해서 재생하려 했으나, 대지를 가르고 약하게 하는 것은 물인 듯. 드워프는 계속해서 녹을 뿐. 단지, 병기들 만이 천천히 녹아내리며, 온전한 모습을 취하고 있었다.

- 아아! 물을 뿌려요! 드워프들은 물에 약하다구요!! 그리고 약해진 틈으로 병기들을 부숴요!

프렌데는 오직 천천히 녹을 뿐 사라지지 않는 병기를 부숴버리자 완전히 분해되 버리는 것을 보자. 모두에게 알렸다. 그제서야, 용병들은 물을 날러 뿌리고 병기를 부숴버리는 등으로 간신히 드워프들을 처치했으나, 용병단의 150기의 트론 중 60기 이상이 파괴되거나 움직일 수 없게 되어 버렸다.

- 어쩔 수 없어요! 계속 가야합니다! 나머지 파일럿 분들은 쉬세요.

프렌데는 일사천리로 대열을 맞추어 곧 베히모스의 레어로 모두를 인도하고 있었다. 그것을 보는 리샤는 괜시리 흐뭇했다.
.
.
.
크레타 섬의 남부 바다. 그 속에 길다란 줄로 서로의 몸을 잇고 잠수함을 탄 모형으로 각자 기다란 포신을 등에 메어 육중해 보이는 섬의 뿌리를 조준하고 있었다.

- 크큭. 괴물놈들 작살을 내주마! 자! 모두!! 신호가 올 때 가지 조준대기하라!

알렉산더는 웃고 있었다.
.
.
.
간신히 레어에 당도한 트론들은 저 압도적힌 신체를 바라보며, 차마 입을 다물 수 없었다. 거의 500m에 달하는 높이와 흉측하게 솟은 이마 정 중앙의 거대한 눈과 길게 늘어난 코 사리오 비치는 날카롭고 기다란 상아. 그리고 거대한 다리들...

- 오, 이제 오셨나? 한참이나 기다렸지.

- 뭐?!

- 이제 잠시 여흥을 즐기고 저 바다 속의 친구들에게 가봐야하니까 말야.

- !!

저 영악한 놈은 지금 자신들의 모든 작전을 꿰고 있는 것인가?! 그러나 용병단도 절대 꿇리지 않았다. 그들은 곧 각자의 완전무장을 저 괴물에게 조준하고, 발사했다.
투타타타! 콰광! 포성과 총성이 터지고, 베히모스는 그것을 즐겼다. 이마의 눈이 빛나며, 포탄과 총알을 자신의 주인에게 돌려주거나, 날아드는 트론을 서로에게 칼질을 하게 하거나 하는 재미있는 놀이 말이다.

- 에엥, 뭔가? 벌써 끝난 거야?

한 30분 쯤을 놀았던가? 베히모스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리고는 재미없다는 표정을 지어버렸다. 그런 그의 눈에 뜨이는 붉은 기체.

- 하나 남았...호오, 이런 공포라니..나까지 섬뜩해지잖나? 그만 좀 무서워하지?

- 흐윽, 흑!

리샤의 울음소리는 스피커를 넘어 베히모스의 귀에도 들렸다. 입가에 걸린 미소. 그는 재미있는 것을 생각했다.

- 인간이 용과 융화된다면 말이다. 재미있지 않나??

서서히 다가오는 베히모스는 거대했다.
.
.
.
이틀 뒤 원정을 더난 함정 중 네모 함장과 12 사도 트론 만이 돌아왔다. 그러나 그 기체 역시 반파된 상태로 간신히 손가라 하나를 움찔 하는 경우.
게다가 파일럿들 역시 정신질환을 앓고 있었다. 유일하게 알렉산더 안데르센 신부는 온전한 정신으로 오로지 '리샤 발렌타인'을 회치며, 복수의 화신이 되었다.

국가소유 트론 연합을 패퇴시킨 것은 작은 소녀였다. 리샤 발렌타인.

파일럿들의 입에서 나온 이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