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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도시 기록보관소

예전에 잠시 유행했던 우스갯 문장이 있다.


 


간단한 문장이다.


 


 


"친구 집에 놀러갔는데 친구는 없고 친구 누나가 자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얼른 들으면 그저 온라인에 떠도는 우스갯소리로 여길 수 있지만


세밀히 들여다보면 놀라운점 하나를 찾을 수 있다.


 


저 길지도 않은 문장 속에는 "친구" 라는 단어가 무려 세번씩이나 나온다.


 


본래 같은 단어는 맨 첫머리에 한번만 언급이 되고 이후에는 "그것" 혹은 "그", 다르게는 대상을 표현할 수 있는 다른 별칭으로 바꿔 칭하게 되고, 행여나 같은 단어가 다시 쓰여질 시에는 문장이 어색해지고 심지어 그 문장이 속한 문단 전체의 질이 떨어지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어떠한 문단에 속한 말도 아니고, 그저 간단한 한 문장에 불과한 저 말 속에는 "친구" 라는 단어가 세번씩이나 나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장이 전혀 어색하지 않다. 아니, 어색하지 않을 뿐 아니라 3개의 "친구"라는 단어중 하나라도 빠지게 되면 오히려 어색해지는 현상을 볼수 있다.


 


한번 실험을 해보자.


맨 처음 단어 만을 "친구"로 남겨놓고 그 뒤에 단어들을 "그"로 바꾸어 보기로 한다.


 


 


"친구 집에 놀러갔는데 그는 없고 그 누나가 자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문법상 틀린말은 아니다. 소위 글 좀 공부했다고 자부하는 사람들은 문장에 전혀 하자가 없다고 주장할지 모르지만 우리같이 배우지 못한 99%의 서민들은 아무래도 저 말이 이상해보일 수 밖에 없다.


 


그 이유는 저 말이 "우스갯소리" 라는 전제를 가지고 있기 때문인데, 그 때문에 문장이 가지는 의미 보다는 사용되는 단어의 친숙함을 무의식중에 우선적으로 보게 된다. 문법상 하자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친구"를 "그"라는 문학상에서 사용되는 간접적인 대명사를 사용함으로써 친숙함을 떨어뜨리는 것이다. 우리가 실제로 친구를 칭할때 "친구"라고 하거나 그 이름을 말하지, "그"라고 말하지는 않잖은가.


 


따라서 저 문장에 대해 아예 모르거나, 온라인에서 떠도는 우스갯소리라는 시각을 완벽하게 떨쳐버리지 않는 한, 세번씩이나 사용되는 "친구"라는 단어는 모두 버릴 수 없는 단어가 되어 버린다.


 


어떻게 이런 말이 가능할까?


 


그 이유는 3개의 "친구"가 전부 다른 특정 대상을 꾸며주는 단어이기 때문이다. 가운데에 쓰인 "친구"는 말하는 이의 친구 자체를 칭하므로 대명사가 될수 있지만 첫번째와 세번째는 "말하는 이의 벗"이라는 의미를 함축하여 담아두고, 그 뒤에 이어져 오는 "집"이나 "누나"를 꾸며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차라리 형용사에 가깝다.


쓰인 의미가 각기 다르기 때문에 어느 하나라도 생략할 수 없고, 자연히 문장이 어색하지 않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다른 실험을 해보자. 하나씩 친구라는 단어를 생략해보는 것이다.


 


 


문장 1 : "집에 놀러갔더니 친구는 없고 친구 누나가 자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흔히 글 맨 처음에 "집"이라는 말이 나오면 읽는 이는 말하는 이의 집을 우선적으로 떠올리게 된다. 그런데 그러한 "집"이라는 단어가 연상시키는 이미지와 곧장 뒤에 이어지는 "놀러갔더니"라는 말은 읽는 이를 당혹스럽게 할 뿐이다. (자기 집에 놀러간다니?) 일단 맨 처음 나오는 "친구" 라는 단어는 생략할 수 없어 보인다.


 


 


문장 2 : "친구 집에 놀러갔더니 는 없고 친구 누나가 자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이건 문법 자체가 에러다.


물론 이 경우에는 "친구"를 "그"라고 표현할 수 있다. 충분히 가능하다. 그러나 그에 관해선 이미 위에서 언급한 바 있으니 친구를 "그"라고 말하는 것이 왜 어색한가를 우리는 알고 있다.


 


 


문장 3 : "친구 집에 놀러갔더니 친구는 없고 누나가 자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누나를 꾸며주는 "친구"는 그나마 좀 무리해서라도 생략이 가능해 보인다. 말하고 있는 장소는 "친구의 집"일 것이고, 말하는 이는 "친구"를 찾고 있으니 뒤이어 나오는 "누나"는 (어찌보면 당연히) 친구의 누나일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읽는 이의 추측일 뿐이다. 말하는 이가 자신의 누나를 말한 것이었다면 어쩔 것인가?


말하는 이와 그의 벗이 친구인 만큼 그들의 누나들도 충분히 친구가 될 가능성이 있고, 그렇다면 공교롭게도 그때 마침 말하는 이의 누나가 그녀의 친구인 "친구"의 누나의 집에 놀러와 잠깐 눈좀 붙이고 있을 수도 있는 일이 아닌가.


그렇게 되면 결국 말하는 이와 읽는 이의 해석이 엇갈려 오해가 만들어 지고, 맨 마지막에 등장한 "누나"의 존재는 그 소속을 잃어버린다. 반대로 문장에서 말하는 바와 같이 말하는 이는 친구의 누나를 말한 것인데 읽는 이가 말하는 이의 누나인 것으로 잘못 해석해버려도 마찬가지다.


운 좋게 말하는 이와 읽는 이의 해석이 "친구의 누나로구나"로 일치한다면 그것만큼 다행스러운 일도 없겠지만, 저러한 문장의 해석을 운에 맡기는 법이 세상에 어디 있는가?


 


 


한때의 우스갯소리로 온라인에 떠돌던 이 문장은 똑같은 단어 3개를 각각 다른 의미로 사용하고, 또 같은 말을 세번이나 반복하게 만드는 데도 전혀 어색함이 없는, 기교한 문장이었다. 문법 상으로는 얼마든지 "그"라는 말로 생략할수도 있었던 것을 네트워크 시대의 "온라인 유머"라는 카테고리를 방패로 삼아 그마저도 불가능하게 만들어 버린 놀랍고도 치밀한 문장이다.


 


그러나 이러한 말장난으로 문법이 어쩌니 문학이 어쩌니 하며 깊게 따지고 들어갈 생각은 없다. 따지고 들어가봐야 아는것도 별로 없고, 우스갯소리 하나를 가지고 별소리를 다 한다는 말도 듣고싶지는 않다.


본문에서 다룬 우스갯소리에 불과한 문장을 다른 우스갯소리로 한번 볶아본 글이라고 여겨주길 바랄 뿐이다.


 


 


-by Cha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