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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창도 인물 사전 : 시라노

2006.08.07 19:51

아란 조회 수:508 추천:1

Savinien Cyrano de Bergerac (1609.7.11~1655.11.?)


 


 


 


『그대 믿음으로 편지를 읽어주오.


이 편지는 내영혼의 육신,


잉크는 사랑으로 상처입은 마음에서 흐르는 피.


 


 


그대 향기로운 숨결과 함께 이 글을 읽어주오.


그대의 다정한 음성이 단어들을 어루만질 때,


내 사랑의 상처는 비로소 치유되어질 것이오.


 


 


내 손가락들이 흘러간 자리 위에 그대의 키스를 남겨주오.


연약한 미풍과 작은 빗방울들이 나뭇가지를 떨게 하듯,


이 보잘 것 없는 글귀들이 그대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면...』


 


 


- 시라노 드 벨쥬락, 서간에서 발췌-


 


 


프랑스 파리 출생. 시인, 철학자, 희곡작가, 풍자 - 환상 소설가, 검객, 근위기병대 대장.


 


띄어난 재능과 재치에도 불구하고 그의 생전에는 대부분의 희곡들이 무대에 올려지지 못했으며,몇몇 작품들은 출판금지를 당하기도 했다. 그래서 그의 최고걸작으로 꼽히는 희곡 '달세계 연대기'는 그의 사후 1657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연극으로 상연 될수 있었다. 가스코뉴 지방의 명문 벨쥬락 가의 성 '르 샤토 드 벨쥬락'에서 태어난 그는, 당시 최고의 권력을 휘두르던 콩테 드 기슈 공, 발데르 백작 등과 정적관계에 있었으며 갑작스런 그의 죽음도 사고가 아닌 암살이었다는 추측이 높다. 그의 문학적 평가는 그의 사후에 훨씬 높아졌지만 일반에게는 아직도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그러나 숨낳은 작가들, 특히 상상력을 필요로 하는 표현주의, SF, 풍자작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 그의 영향을 받았음을 인정하는 작가들로는 프랑스의 우화소설가 라 퐁텐느, 공상과학소설의 아버지로 알려진 환상작가 쥴 베르느, 영국작가 조나단 스위프트 등이며 동시대의 몰리에르와, 좀더 후기에는 코르네유의 '르 시드(Le Cid)'가 벨쥬락의 서사시 '위대한 추방자들'의 싯구들을 노골적으로 인용, 삽입 하기도 했다. 기실, 조나단 스위프트의 '걸리버 여행기'는 벨쥬락의 소설 '달세계 여행기'로부터 영감을 얻은 작품이며 쥴 베르느에게 준 영향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베르느 스스로가 주장하듯, 진정한 문학사상 첫 SF 작품은 시라노 드 벨쥬락의 '달세계 여행기'로부터 영감을 얻은 작품이며 쥴 베르느에게 준 영향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베르느 스스로가 주장하듯, 진정한 문학사상 첫 SF 작품은 시라노 드 벨쥬락의 '달세계 여행기'중 도입부, '달로 가는 불마차'이다. 여기서 말하는 '불마차'는 놀랍게도 오늘날의 로켓의 기본구조를 세밀히 소개하고 있으며, 쥴베르느는 이것을 각색하여 후에 '달나라 탐험'이란 중편 소설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것은 그의 문학적 업적의 일부에 지나지 않으며 인간의 자유의지를 가장 중요시하는 사상은 실존주의 철학과, 앙드레 말로와 로망 롤랑(창세기전 3 롤랑의 모티브.)의 사상 등에 영향을 끼쳤다. 또한 알렉상드르 뒤마의 '삼총사'의 달타냥 모델로도 유명한 총사대장이며 제독 쿠르틸즈 드 상드라 백작과 함께 기사시대를 대표하는 인물이었다. 검술의 명인으로, 그와 1대1로 검을 맞대서는 이길 수 있는 기사가 없었다 한다. 그의 정적 중 한명이었고 검술에 있어서 유일하게 호적수가 될만 하다던 필립 드 그랑 뷔유 후작(후에 기슈 공 휘하의 육군 원수가 된다)조차 그와 겨루어서 이겨본 적이 없었다고 한다. 또한 캐리커쳐에도 능해 남아있는 그의 초판본 책과 편지들을 보면 간결한 선의 재치있는 풍자화 - 그 자신까지 우스꽝스럽게 희화화시켜 그려놓은 -들을 많이 볼수 있다.


 


여러 가지 면에서 볼 때, 이전 시대의 다 빈치, 미켈란젤로, 마키아벨리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할만큼 다재다능하고 다방면에 있어서 천재성이 번뜩이던 인물이었다. 그러나 그런 그가 왜 지금에 이르러서는 앞의 인물들만큼 그 재능과 업적을 인정받고 있지 못하며, 일반에게 제대로 알려져 있지도 못하는가?


 


그것은 일단 그의생전 격변기의 정치적 상황 안에서 그가 취했던 극단적인 반골성향에도 원인이 있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그가 당시에 최고의 권력가엿던 기슈 공의 정책에 공공연한 반대의사를 내보인 정적이었으며 그의 풍자시, 희곡들 역시 기득권 층을 겨냥하고 있던 것들이었다. 때문에 그의 시집들 대부분은 원고채로 불태워지기가 일쑤였으며 희곡들은 상연되지도 못한채 사장되어버린 것들도 많았다. 때문에 그의 시집 중에서 온전히 남아있는 것은 활발한 저작활동에도 불구하고 얼마 없다. 그나마 그의 친구이며 문학적 라이벌이었던 몰리에르가 필사본 시집 몇 권을 소중히 감춰두지 않았더라면 영영 햇빛을 못볼 뻔 한 것들이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같은 인물이 그 시대의 권력층에 영합하여 활동한 것에 비하면 너무나 대조적인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빅토르 위고가 저술한 '프랑스 문학사사'만을 보더라도 그의 이름은 몰리에르,코르네유,프랑소와 비용과 함께 기사시대를 이끌었고 현대문학에도 그 영향력이 중대한 문인으로서 당당히 올라있다. 그의 거의 결벽증적이라고나 할만큼 타협과 복종을 모르는 성품, 약자와 서민들에 대한 한없는 애정, 반(反)영웅주의, 자유사상 - 그는 그 시대에 벌써 언론의 자유와, 언론의 시장 경쟁을 주장햇다 - 등으로 권력층에 대항했다. 이런 성품 탓인지, 그는 일생 독신이었고 개인적인 친구라 부를 수 있는 사람도 극히 적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그와 동시대에 그를 가장 높이 평가했던 사람은 다름아닌 그의 풍자와 비판의 집중적인 표적이 되었던 기슈 공작이었다. 그는 시라노의 사망 전 몇 년간 여러차례 비밀리에 위험을 경고하기도 하고 자기측의 암살모의 정보를 시라노 측에 몰래 흘리기도 하여 그의 생명을 연장시키는데 일조했다. 기슈 공이 벨쥬락에 대해 자신의 살롱에서 이렇게 논평한 것은 유명하다.


 


"나는 점점 더 유연해져 가고, 그는 점점 더 완고해져 간다. 그러면서 나는 점점 더 높이 올라가고, 그는 점점 더 고립되어 간다. 내가 온갖 호사속에 몸을 던질 수록, 그는 점점 더 초라해져 간다. 그러나 나는 때때로 그가 부럽다. 그는 진정으로 자유로운 사람이다. 바보들은 그를 보고 자기들처럼 되지 않는다고 비웃지만 그는 자신이 바보가 되기를 원치 않을 뿐이다. 내 주변에 있는 이들은 나의 권력을 두려워 하지만 나를 사랑하지는 않는다. 심지어는 그의 적까지도 그를 사랑한다. 그 자신이 그것을 모를 뿐이지. 그를 고독한 자라 일컫지만 그와 나 둘 중에서도 누가 더 진정으로 고독한 인간인가?"


 


그러나 그를 아끼는 사람들 - 심지어 그와 적대적 관계에 있던 사람들까지 포함해서 - 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1655년 11월의 어느 추운 날 저녁, 파리의 한 살롱에서 자작시를 낭송하고 돌아오던 중 의문의 사고를 당해 길바닥에 쓰러진다. 그 즉시 근처 수도원의 내의 한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곧 숨을 거두었다. 전해지는 말에 의하면 그는 숨이 끊어지기 직전 큰소리로 미친 사람처럼 웃어대며 부르짖었다고 한다.


 


"이제야 저 달나라로 가는구나! Mere(빌어먹을)!! 난 항상 전쟁터에서 적의 칼에 쓰러지길 바랬는데 이런 하찮은 방법으로 도둑고양이처럼 떠나게 되다니!"


 


그는 이렇게 '시적으로'파란만장했던 자신의 삶을 마감했다. 그리고 1897년, 그의 시와 희곡, 그의 드라마틱한 인생에 매혹된 수많은 인물들 -특히 문인들- 중의 한사람이었던 극작가 에드몽 로스탕에 의해 부활했다. 바로 불멸의 희곡 <시라노 드 벨쥬락>의 탄생이었다. 그러나 그 낭만적이고 감성적인 인물묘사 뒤에는 시대와 타협하지 않고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길을 갔던, 진정 기사다운 기사이며 '정의를 위한 진리, 진리를 위한 정의'(그의 서사시 "위대한 추방자들"의 일절)를 주장한 지식인이었던 벨쥬락의 참 면모가 숨어있는 것이다. 그는 평생동안 수 많은 편지들을 써서 서각작가로도 알려져 잇는데, 저작물들은 많이 소실되었지만 서간들은 거의 다 남아있기 때문이다. 특히 로스탕의 희곡 속에서도 인용되는 애절한 사랑의 글귀들은 모두 그의 편지 속에서 직접 발췌한 것들이다.


 


불행히도 그의 작품들 중 우리나라에 정식으로 번역, 출판된 것들은 없다. 환상문학 전문 출판사를 표방하는 <황금기지>에서 '달세계 여행기'를 번역할 계획을 세워두고 있으며, 대학의 어문학부에서 프랑스 전공자들이 원문시를 교재로 사용하고 있는 정도이다. 에드몽 로스탕의 희곡 <시라노 드 벨쥬락>은 국립도서관의 예술자료실이나,예술의 전당 내 영상자료원 지하,희곡 보관실에 가면 찾을 수 있다. 그에 관한 자료들은 빅토르 위고, 로망 롤랑이 쓴 문학사 관련 서적에 많이 있다.


 


연극과 영화로 인하여 시라노 드 벨쥬락의 매력적인 캐릭터가 널리 알려져 있는데 프랑스의 남자배우라면 누구나 선망한다는 이 역활은 적어도 15년 이상의 연기경력이 있는 사람이 아니면 소화해낼 수 없다고 한다. 이 역을 맡아 무대에 오른 사람중 유명한 이들은 프랑스의 필립 느와레,호레 페러,데렉 쟈코비,제라르 드빠르듀 등인데 호세 페러는 1950년 흑백영화 <시라노>의 타이틀롤 역시 맡아서 그해 오스카 남우주연상을 수상했으며, 제라르 드빠르듀는 1991년에 영화화된 컬러판 <시라노>에서 열연으로 칸느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나의 노트 위에


나의 책상과 나무 위에


모래 위에 눈 위에


나는 그대 이름을 쓴다


 


 


내가 읽은 모든 책장 위에


모든 백지 위에


돌과 피와 불꽃과 재 위에


나는 그대의 이름을 쓴다


황금빛 조각상 위에


병사들의 창과 칼날 위에


제왕들의 왕관 위에


나는 그대의 이름을 쓴다


 


 


숲과 바다와 평야 위에


새둥우리 위에 금작화 나무 위에


내 어린 시절 메아리 위에


나는 그대의 이름을 쓴다


 


 


밤의 경이 위에


일상의 흰빵 위에


조용하게 혹은 격렬하게 흘러가는 시간들 위에


나는 그대의 이름을 쓴다』


 


 


- 시라노 드 벨쥬락, 역시 서간에서 발췌-


 



(출처 : '창세기전 외전 '서풍의 광시곡', 시라노 번스타인, 체사레 보르자' - 네이버 지식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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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