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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도시 기록보관소

dest21c 다락위의소피아

2007.04.29 10:20

Evangelista 조회 수:3440 추천: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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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월면식물생태학




방학이 가까워 오는 어느 초여름 아침, 소년이 잠에서 깨어났을 때 그의 침대 옆에 한 명의 천사가 누워 있는 것을 발견했다. 천사는 매우 아름다워서 소년은 세수를 하고 머리를 감고 아침을 먹고 옷을 갈아입고 학교에 가야 한다는 것조차 잊어버린 채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했다. 그러다가 문득 눈치 챈 것은 그 천사가 여자라는 것이었다. 주위를 보아 아무 일도 없었다는 것은 분명하지만 다시 한 번 보니 어째서 이 사람, 아니 천사가 자기 옆에서 잠을 자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바보 같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더 이상 고민하지 말기로 하고 소년은 거실로 나갔다. 그리고 아침을 먹고 씻고 다시 방으로 올라와(그때까지도 천사는 그저 자고 있었다) 교복으로 갈아입고 학교로 ‘출근’했다.


중학교는 세상에서 가장 멍청한 장소였다. 적어도 그는 그렇게 생각했다. 자신보다 성적이 좋은 녀석이 없다는 것은 이유가 아니었다. 왜냐하면 성적이라는 ‘줄 세우기’마저도 그에게는 멍청한 제도적 압박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쉬는 시간에는 멍청히 앉아 있기 일쑤였다. 그러니까 결론적으로 그 상황에선 그조차도 멍청한 톱니바퀴 축에 같이 끼어서 돌아가고 있었다는 게 맞겠다.


점심시간에 동생이 불렀다. 그들은 이란성 쌍둥이였다. 개괄적으로 보면 닮았지만 자세히 보면 닮지 않은, 그런 형제였다. 반이 틀렸고 생각하는 것도 틀렸기에 학교에서 자주 만나러 다니는 편은 아니었다.


“방금 엄마한테서 전화가 왔는데.”


그렇게 동생은 입을 열었다.


“형 방에 이상한 게 있다던데.”


그 여자 얘기로군 - 하고 그는 생각했다. 모든 일에 감각이 무딘 것은 장점이라면 장점이었다. 일단 동요는 하지 않기 때문이다. 동생은 어머니에게서 들은 예의 여자에 대해 신이 난 듯 떠들고 있었다. 소년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래서 어쩌라고? - 입을 열면 나올 말은 그것뿐이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된 거야, 그거?”


“내가 어떻게 알아.”


“엄마 화났어. 벌써 여자 끌어들이고 노느냐고. 생각해 보면 형이 그렇게 눈에 띄는 짓을 했다는 것도 웃기긴 하지만. 그래서. 그런 거야?”


“일어나 보니까 옆에 있었어. 어디서 날아 들어왔나 보지.”


“날아 들어와?”


그러면서 동생은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날개가 달려 있으니까 그렇게 아니면 어떻게 들어왔겠냐? 동생 역시 멍청한 톱니바퀴라고 생각하면서 소년은 속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대체 뭐가 그렇게 웃긴 거냐. 그렇게도 생각했다.


“서클 없으면 집에 갈 텐데. 보고 싶다.”


네놈 돌아오기 전에 없애 주마. 마지막으로 소년은 그렇게 생각했다.


동생이 돌아가고 나니 왠지 피곤함을 느꼈다. 그렇다. 지금쯤이면, 점심시간 종료 십오 분 전. 그 계집애가 나타날 때다. 최근 소년은 계속 이 시간 즈음해서 그 여학생을 기다린다. 분명히 이 쪽으로 오기 때문이다. 오해를 피하기 위해서 말하자면, 습관적인 조우에 대한 무의식중의 막연한 기대심리 이외에 그에게 그녀에 대한 관심은 전혀 없다고 해도 상관없다. 그렇다면 그 습관적인 조우라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이제부터 설명하게 될 것이다. 마침 그녀가 나타났으니까. 반갑게 걸음과 달림의 중간 정도 속도를 유지하면서.


그리하여 소년은 언제나 고민하게 되는 것이었다. 다른 녀석들과 달리 누군가가 자신을 좋아한다는 알 수 없는 기분 좋은 우월감과 함께 어른적인 마인드를 유지하고 싶어 하는 내면의 거부감 사이에서 말이다. 그리고 일단 그는 결국, 여학생을 자기에게서 떼어 놓는 방편을 택했다. 어차피 또 내일 이 시간이면 이렇게 되겠지만 말이다.


하교 후에 집에 가는 길에 어머니에게서 전화가 왔다. 생각했던 것보다 화가 나지는 않은 것 같았다. 그랬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전혀 침착하지 못했다. 그 여자의 정체를 몰랐기 때문이기도 했고 지금 어머니와 그 여자가 어떻게 되었는지 전혀 짐작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괜히 쿨한 척 하지 말고 아침에 어떻게든 쫓아내 버릴 걸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생각하기가 귀찮았으므로 (이것마저도 그는 어차피 지난 일 후회해 봐야 상관없다고 정당화시켰다) 더 이상 고민하지 않았다.




여기서부터 재생하세요☆ (Come Down - The Pillows)


 


사실 고민을 했어야 했다. 물론 그렇다 해도 지금부터 우리가 보려 하는 이 이야기가 전혀 달라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최소한 계속해서 그에 대해 생각을 했더라면 그렇게까지 놀라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 여자와 관련해 무슨 일이 벌어져도 어느 정도 대처할 수 있었어야 했다. 너무 잊기 위해 노력을 한 나머지 자신이 바보 취급하는 다른 멍청이들보다 더욱 멍청하게도 집에 들어섰을 때 그 여자가 거실에서 어머니와 함께 뜨개질을 하는 것을 보고 부자연스럽게 경악하고 말았던 것이다. 어머니가 물었다.


“왜 그러니?”


이 말을 들었을 때 뭔가 잘못 돌아가고 있다고 그는 생각했다. 재빨리 여자를 쳐다보았다. 날개가 없었다. 분명히 아침에 보았던 그 날개가 없었다. 그리고 옅은 블론드로 빛나던 머리카락이 검은 색으로 바뀌어 있었다. 그래 놓고 보니 얼굴이 서양인과의 혼혈인 다른 아름다운 사람들처럼 보이는 것이었다.


“너 벌써 잊어버렸니?”


어머니가 다시 한 번 물었다.


“사촌 누나잖니? 이모 딸. 엄마 언니 딸.”


“나한테 이모가 있었어?”


그리고 경솔한 말을 한 것을 깨달았다. 뭔가 술수가 부려지고 있는 이상 그 질문은 정말로 바보 같은 것이었다. 그것이 짜고 자신을 놀리기 위해 하는 것이든 진짜로 뭔가 속임수가 행해진 것이든 간에 말이다.


“넌 어떻게 이모를 잊어버리니?”


“아냐. 생각났어.”


그렇게 얼버무렸다. 그리고 다시 여자를 보았다. 해죽해죽 웃고 있었다. 그 예쁜 미소가 정말로 얄밉게 느껴졌다. 마음 같아서는 한 대 때리고 싶었다. 이번에도 내면의 소리가 어른스럽지 못하다고 말하지 않았다면 그는 정말로 뭔가 집어 들고 후려갈겼을 지도 모른다.


“이모. 전 얘 데리고 얘기 좀 하고 올게요.”


여자가 말했다. 긴장했으나 그녀를 따라 올라갔다. 어디로 가나 했더니 자기 방이었다. 여자는 그를 먼저 들여보내고는 따라 들어온 후 문을 잠갔다. 그 상황에서도 소년은 침착하려 애썼다. 대체 이 사람이 날 데리고 뭘 어쩔 생각인 걸까?


“일단 걱정하지 마. 네가 미친 것도 아니고 내가 네 외사촌도 아니고 너한텐 이모가 없으니까.”


달리 할 말이 없었기 때문에 소년은 가만히 그녀를 응시했다.


“좀 장난 쳐놨으니까 애써서 내가 상관없는 사람이라고 불어 넣지 마. 그랬다가 잘못 혼란스러워지면 어머님 정신이 이상해질 수도 있어. 동생도 마찬가지고. 아버님도 마찬가지지. 알겠지?”


여자는 히죽 기분 나쁘게 웃었다.


“믿으라고?”


“못 믿겠으면 지금 당장 내려가서 내가 생판 남이라는 걸 필사적으로 설득해 봐. 거짓말인지 아닌지는 그 다음에 보기로 하고.”


소년은 잠시 고민했다. 속고 있는 것 같기는 한데 저 말이 사실이라는 증거가 없듯 거짓말이라는 증거도 없었다.


“어른이라면 무리수를 두지 않는 법이야.”


흰 색의 원피스를 입은 그녀는 긴 머리를 손가락으로 꼬며 말했다.


“너 누구야?”


여자는 다시 한 번 생긋 웃는다. 조금 전까지 보았던 기분 나쁜 미소와 달리 이번엔 너무나도 해맑고 아름다워 보였기에 오히려 섬뜩했다. 소년은 시선을 아래로 떨구었다. 그녀가 입을 열었다. 대답이 아니었다.


“날개 내놔.”


제대로 듣지 못했다.


“네가 가져간 거 아니야?”


“몰라.”


“없어지기 전까지 내가 만난 사람은 너 밖에 없어.”


“이상한 소리 하지 마.”


여자의 오른손이 소년의 왼어깨에 올라갔다.


“알고 가져간 거 아니야?”


“무슨 소린지 모르겠어!”


“모르고 그랬어도 네가 가져간 게 확실해.”


이번엔 왼손이 오른어깨에 올라갔다. 검은 듯 보이면서도 가까이서 본 그녀의 눈은 붉은 색이었다. 그 색깔이 어렸을 때 본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그 기억이 너무 섬뜩했던 것 같아서, 그래서 그의 얼굴은 새파랗게 질렸다.


여자의 얼굴이 바로 앞에 다가왔다. 서로의 시선 사이 거리가 담배 한 개비도 안 들어갈 만큼 좁아졌다. 마치 소년의 홍채 속에 무엇이 있는지 살피는 것 같았다.


“이제 내 놔.”


“없어!”


“너한테 무슨 소용이 있을 거 같아?”


“없다니까!”


“큰 소리 내면 어머니가 올라오셔. 뭐라고 설명할 거지?”


여자가 한숨을 내쉬며 다시 상체를 들어올렸다. 가까이서 보니, 소년의 시선이 그녀의 입술에 딱 맞닿았다. 부드러운 입술이 보였다. 두근거린 것 같았다.


“진짜 모르는 것 같네.”


그러면서 힘없이 웃었다.


“날개?”


“그래. 너 때문에 없어진 건 확실해. 아침엔 너도 봤었지?”


소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소년의 침대 위에 걸터앉았다.


“뭐라고 생각했어?”


짓궂은 웃음이다. 하지만 소년은 대답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고 생각했다. 입술이 알 수 없는 마력을 뿜어냈는지도 몰랐다. 어쨌든 목소리는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새어 나갔다.


“천사…….”


“그래.”


대답과 함께 뒤로 누웠다. 침대가 들썩거렸다. 원피스 아래의 하얀 허벅지가 눈에 들어왔다. 의식적으로 소년은 고개를 돌렸다. 식은땀이 흐르는 듯한 느낌을 받으면서.


“나 옷 좀 사야 되겠는데 같이 안 갈래?”


여전히 시선은 다른 곳을 향한 채 소년은 대답하지 않았다.


“돈은 있어.”


 


어째서 따라나섰는지, 스스로 합리화를 해보려 노력했으나 도무지 대답이 나오지 않는 것이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 아마 다행이겠지만 여자는 두리번거리는 등의 눈에 띄는 짓은 하지 않았다. 그렇게 계속 거리를 걷다가 처음 나온 옷가게에 그녀는 후다닥 뛰어 들어갔다. 아무 할 일이 없었으므로 소년은 간이 의자에 앉아 번잡스럽게 옷을 고르는 검은 생머리 뒷모습을 한참 쳐다보았다. 옅은 붉은 색의 입술이 떠오르려 하는 것을 그는 계속 고개를 저으며 잊으려고 애썼다. 그러고 있을 때 그녀가 물었다.


“어때, 이거?”


아무래도 상관없는 청바지와 소매가 없는 군청색의 티셔츠였다. 그 어깨 아래로 없는 옷을 보며 그는 또다시 그걸 입은 여자를 떠올렸다. 하얀 피부가 특히 자극적이었다. 더 이상 생각하면 침착히 이대로 앉아 있을 수 없을 것만 같았다.


“난 여자 옷 몰라.”


여자가 조금 표정을 찌푸렸다.


“뭐라고 대답하든 살 생각이었어. 좀 맞춰 주면 안 돼?”


주인아주머니가 자신을 빤히 쳐다보는 것을 눈치 챘다. 아무래도 커플이라고 오해하는 것 같았다. 확실히 아무리 봐도 중학생 이상 쳐 줄 수 없는 자신과 또한 아무리 봐도 대학생 밑으로는 봐 줄 수 없는 저 여자의 연애라면 좋은 생각은 안 들겠지.


“대충 사. 얼른 가자고.”


계산을 하며 여자는 짜증스럽게 뭐라고 중얼거렸다. 하지만 전혀 듣지 못했다. 다시 생각해 보니 갈아입고 간다는 소리였던 것 같다. 직후 탈의실로 들어갔으니 말이다. 그리고 옷을 바꿔 입고 나온 그녀는 - 특히 그녀의 어깨는 너무나도 상상한 대로라서 소년은 붉어지는 얼굴을 어떻게 해야 할 지 알 수가 없었다.


“안경 사러 가자.”


가게를 나섰다.


“옷만 사자며?”


“나 눈 나빠.”


무슨 천사가 시력이 있냐, 하고 물어보려다가 그만두었다. 아무래도 ‘천사’라는 단어가 가지는 이미지 때문에 그녀를 그렇게 호칭하고 싶지 않았다. 그 전에 정말 천사인가 아닌가 하는 문제는 제쳐 놓고라도 말이다.


여하간 그리하여 들어간 곳은 스무 걸음 정도 가니 나온 안경점이었다. 역시 안경점 점원도 둘의 관계를 의심하는 것 같았다. 소년으로서는 그저 몸을 돌려서 바깥을 향해 앉는 것 외에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어떤 안경을 고르는지, 어떻게 고르는지, 고르면서 뭘 하고 있는지 전혀 보지 못했다. 계산하고 나오면서 소년의 등을 툭 치며 잡아끄는 그녀는 안경을 쓰고 있지 않았다.


“안 샀어?”


“바보. 안경은 주문하고 시간 걸리잖아. 좀 돌아다니면서 구경하다가 와서 찾아가면 되지.”


“어딜 또 돌아다녀. 혼자 해. 이제 갈 거야.”


여자가 씨익 웃는다.


“집에 가서 나 천사예요, 해 볼까?”


짜증의 외침이 혀뿌리까지 올라왔다가 들어갔다.


“애시당초 말이야. 진짜 그런 암시 같은 게 걸렸는지도 의심스럽단 말이야.”


“의심스러우면 해 보면 되잖아. 말하자면, 사람을 찌르면 죽는지 안 죽는지 찔러 봐서 실험하는 거랑 똑같은 거라니까.”


소년은 생각했다. 이게 인간이 아니라면, 분명히 천사 말고 악마일 것이라고.


“눈에 띄는 게 싫으면 어떻게 할까. 그래도 난 사람 많은 곳이 좋은데.”


“내가 쉴 때 가는 데가 있어.”


여전히 못마땅한 목소리로 그는 말했다. 분명히 내키지는 않았다. 하지만 길바닥에서 만날지도 모르는 누군가들에게 이 여자에 대해 뭐라고 설명하기는 너무 귀찮을 것 같았다. 일정한 거리를 두고 소년은 최대한 속도를 내서 걸었다. 여자가 다리가 더 길었기 때문에 느긋해 보여도 결국 거리는 더 벌어지지 않았다. 그것이 더 화가 나는 것이었다.


도착한 곳은 강변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강은 아니었지만.


바로 옆 표지판에 지방 2급 하천 어쩌고 하는 소리가 쓰여 있었다. 계단이 설치되지 않은 경사면을 걸어 내려왔기 때문에 흙이 좀 튀었지만 일단 사람 눈은 피할 수 있어 좋았다. 여자는 새 바지에 먼지가 묻는 것도 모르고 신나는 모양이었다. 어쩌면, 늘 날아다니다가 발로 걸어 다니니 기분이 좋은 걸지도 모른다.


“시원한 곳이네.”


“아무렴 어때. 시간이나 죽여.”


“그래도 너무 한적한데. 안 좋아.”


“뭐가?”


뒤따라오던 여자를 돌아보며 대답하려는데 체중이 실리는 게 느껴졌다. 부드러운 것이 등에 와 닿는 것 같았다. 얼굴이 붉어졌다. 그 직후 소년은 균형을 잃고 앞으로 넘어졌다. 자기보다 큰 여자의 무게가 짓눌렀다.


“이런 일이 벌어져도 아무도 모를걸.”


“웃기는 소리 마.”


“그리고 그것보다 더 위험한 일이 있는데.”


여자를 밀쳐내려 할 때 하늘에서 뭔가 보였다. 낙하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몸이 떠올랐다. 여자가 자신을 끌어안고 옆으로 뛰었다. 떨어지던 물체는 그들이 있던 지면에 그대로 부딪쳤다!


“이런 게 오거든. 근처에 사람이 없으면 골치 아파!”


사람 같았다. 하지만 또한 사람은 아니었다. 완전히 새까만 피부에 얼굴로 보이는, 목 위에 달린 구체 정면에 희번득대는 눈이 보였다. 뭔지 생각할 시간이 없었다. 여자는 왼팔로 자신을 마치 짐꾸러미처럼 허리에 껴안고 이리저리 뛰며 몸으로 부딪쳐 오는 사람 같으며 사람이 아닌 그것의 공격을 피하고 있었다. 솔직히 말해 조금 멀미가 났다.


“내가.”


여자가 말했다. 뒤로 뛰는 그녀 앞에 시꺼먼 그것이 쇄도해왔다.


“날개가 없다고 당할 거 같냐!”


두 발을 땅에 디딘 채 내지른 여자의 주먹이 미처 속도를 줄이지 못한 ‘그것’의 ‘얼굴’에 그대로 박혔다. 말 그대로 박혔다! 팔꿈치 밑으로는 소년에게 보이지 않았다. 구멍을 내면서 관통해 버렸으니까. 그리고 그녀가 소년을 뒤로 휙 집어던졌다. 땅에 부딪친 아픔이 느껴지려는 찰나 여자가 서 있는 곳에서 작은 폭발이 일어났다. 뭔가 소리를 지르려 했는데 목이 막힌 것인지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그 와중에도 저걸 보고 누가 오면 어떡할까를 생각했다.




“내가 천사면 저건 뭐, 악마겠지.”


“무슨 소리야.”


안경을 받아 들고 나오면서 한 여자의 말에 소년은 여전히 퉁명스럽게 반응했다.


“예쁜 건 천사고 못생긴 건 악마잖아.”


굳이 대답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고 그는 안경점을 나섰다. 여자가 촐싹대며 따라 나왔다. 냉정하게 생각해도 예쁘긴 했다. 뭐라고 해야 할까. 여자 어른은 저런 매력이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점심시간마다 자신을 귀찮게 하는 누구라고 하는 여학생을 떠올렸다. 한숨이 나왔다. 아니, 그는 한숨이라고 생각했지만 풋 하는 실없는 웃음이었다. 뒤에서 여자가 그녀의 어깨를 붙잡았다. 돌아보니 안경을 쓰고 있었다. 동그란 은테 안경이었다.


“안경을 써도 예쁜 것 같지 않아? ……왜 웃는 거야?”


“안 웃었어.”


“그런데 있잖아. 이거 정말 예의 없는 질문이란 건 아는데, 이제 와서.”


언제는 예의가 있었냐고 묻고 싶었을 것이다. 소년이라면 분명. 인상을 찌푸리고 있는 그에게 여자는 이어 물었다.


“너 이름이 뭐냐?”


“이름을 알고 싶으면 먼저 가르쳐 주는 게 진짜 예의 아냐?”


그러자 여자가 웃었다.


“라피스. 라피스라고 해. 통칭이지만. 본명은 말 못 해. 어머니는 세희라고 알고 있으니까 집에서는 그렇게 불러야 돼.”


“내 이름도 모르면서 용케 엄마랑 놀았군.”


“아무래도 좋아. 빨리 이름 불어.”


“민서현.”


우습지 않은 이름이었을 텐데 여자는 또 웃었다. 강변에서 불었던 바람처럼 시원한 웃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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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표지그림 제가 그렸습니다. 허접하다고 욕하지 맙시다. 원래 못 그립니다 ㅡ,.ㅡ.


Cercatori를 보신 분은 왜 또 민서현이냐 왜 또 소피아냐 그만 좀 울궈먹어라 그러지 마십시다 ㅠㅠ


슬퍼요.


 


사용 음악은 The Pillows의 Come Down입니다. 애니메이션 프리크리에서 사용된 음악입니다.


 


사실 본작은 프리크리를 보고 삘받아서 쓰는 겁니다.


프리크리를 그냥 정신나간 작품으로 보는 분들도 꽤 많지만 (저도 최근에 느낀 것이지만) 이 작품 확실히 성장 드라마를 정말 잘 그려내고 있더군요. 그런 관점에서 한번 보시길 추천드립니다. 정말 잘 만든 작품입니다. 가이낙스 만화같지 않게.


그래서인지 쓰면서 최대한 프리크리같지 않게 쓰려고 고생했습니다. ㅠㅠ 내용은 머리속에 다 있는데 쓰다 보면 그렇게 된다니까요. 그것 때문에 참.


하지만 결국 이런 소릴 했으니 프리크리를 보신 분이라면 비슷한 부분을 잡아내시고 말 테죠. 하지만 라피스가 작중에서 하루코같은 역할을 할 지는 몰라도 하루코는 아닙니다. 안심하시고 보셔도 좋습니다.


아마도 ㅠㅠ.


 


그리고 일러스트는 차치하고라도 표지그림 그려주실 분 구합니다 ㅠㅠ


: 쿠로님이 그려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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