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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도시 기록보관소

dest21c Cercatori

2007.01.17 04:26

Evangelista 조회 수:2561 추천:12

extra_vars1 방랑하는 유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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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카스파 하우저 사건 (4)



사제가 되고자 하는 후보자는 누구든 기존 사제를 살해해야만 했다.
그리하여 사제가 된 다음에는 자기보다 더 강하고 교활한 자에 의해
살해당하기 전까지 사제직을 수행하게 될 것이다.
이처럼 위험하고 불확실한 임기를 통해 그는 왕으로 칭해진다.


J. G. 프레이저 (1854~1941), 황금가지The Golden Bough; 제 1장 숲의 왕




뮌헨에서 버스를 타고 뉘른베르크에 도착했다.


인구 오십만. 유서 깊은 자유도시. 수공업과 상업의 번성지. 그리고 2차대전 후 국제군사재판이 열린 곳. 리나가 멀미를 해서 호텔에서 쉬는 동안 나는 유성연 씨와 함께 관광 아닌 관광에 나섰다. 우선 장크트 제발두스 교회Sankt Sebalduskirche를 보았다. 뉘른베르크 최대의 교회이다. 무려 11세기에 세워진 것이라고 유성연 씨가 설명해 주었다.


“저 파이프오르간 말야.”


그가 커다란 그 악기를 가리키며 말했다.


“파헬벨이 썼던 거라는군.”


“요한 파헬벨? 카논의 작곡가 말인가요?”


“그래. 파헬벨은 유명한 오르간 연주자였어. 뉘른베르크에서 태어나 각지를 여행하다가 1695년 이 교회 오르간 연주자로 취임해서 1706년 결국 뉘른베르크에서 죽었지. 바흐 좋아해?”


“그럭저럭요.”


“파헬벨은 바흐의 형인 크리스토프 바흐의 오르간 선생이었어. 그리고 크리스토프가 파헬벨에서 배운 오르간과 대위법이 제바스티안 바흐한테까지 전해져서 그 유명한 바흐의 대위법이 완성된 거지. 생각해 보면 다른 작곡가들만큼 우리나라에 안 알려져서 그렇지, 사실 생각할 것도 없이 거장이야. 그 사람은.”


조금 내려온 선글라스를 다시 치켜 올리며 그는 오르간을 바라보았다.


잠시 뒤 다시 교회에서 나왔다. 문득 서현 씨의 일기장에서 보았던 ‘선돌’이라는 말이 생각났다. 고딕 양식의 저 하늘을 찌를 듯한 첨탐 - 저것도 선돌일까. 성당기사단이 유럽으로 전해 온 고딕 건축. 혹시 거기에 비의적인 무언가가 숨어 있지는 않을까. 이 뉘른베르크……. 좁은 도시 안에 무려 열 개가 넘는 첨탑이 서 있다…….


“이 도시는 더러운 도시야.”


유성연 씨의 말이었다. 의아해하며 그 얼굴을 돌아보자 그는,


“나치의 1차 전당대회가 열린 곳이고, 나치 기념물이 도시 전체를 수놓았던 곳이고, 헤르만 괴링이 비겁하게 자살한 곳이고……. 카스파 하우저가 흔적을 남겼던 곳이니까.”



사실 그랬다. 명확히 환기해야 할 일로서, 우리는 단순히 관광 온 것이 아니라 카스파 하우저 사건에 대해 취재하러 온 것이었다. 표면적으로는.


유성연 씨가 장크트 로렌츠 교회Sankt Lorentzkirche 천장에 부조된 수태 고지를 보고 있을 때 난 잠시 둘러보고 오겠다면서 그에게서 떨어진 후 라피스에게서 받았던 쪽지를 펴 보았다. 삐뚤빼뚤한 한국어로, 주의 깊게 보지 않으면 알아볼 수 없는 말들이 쓰여 있었다. 역시 우리말을 잘 한다고 해도 외국인은 외국인이란 건가.


- 루덴 빌바흐 교회의 (작은 교회예요) 프란츠 퓌러 목사님을 만나 보세요. 한국어도 가능하실 거예요. 우리 편이니까요.


프란츠 퓌러 목사라. 한국어도 가능하다면 굳이 유성연 씨에게 알릴 필요는 없나. 하지만 역시 이건 라피스로부터 받은 공식적인 일이다. 독일어가 필요할 때를 대비해서 역시 함께 가는 게 좋겠지.


그나저나 ‘우리 편’이란 말이 굉장히 신경 쓰인다. 솔직히 겉으로 봐서는 전혀 모르겠는데 이미 편 가르기가 들어갔다는 거다. 그것도 이렇게 국제적으로 말이다.


돌아가서 유성연 씨에게 곧바로 이야기하려다 잠깐 멈칫했다. 아무래도 이러면 내가 그에게 뭔가 숨기고 있다는 인상을 줄 우려가 있었다. 혹시 니고데모 요서에 대해서 생각을 시작하기라도 하면 골치 아파질 것이다. 때문에 마치 지금 생각났다는 듯이 아참 하고서 주머니에서 쪽지를 꺼냈다.


“라피스가 준 거야? 퓌러 목사라니……. 뉘른베르크에 계셨나? 오랜만에 뵙게 생겼네.”


“아는 사람이에요?”


“알지. 라피스가 태어날 때 세례를 주신 분이야. 그 때 까지는 카톨릭이었는데 어느 샌가 개신교로 가셨더라고. 사연이 많은 사람이고……. 정말 많은 걸 알고 있는 분이고…….”


“지금 갈까요?”


“리나를 깨우지. 리나한테도 보여주고 싶은 게 있거든.”




약 한 시간 뒤, 우리는 리나와 함께 중앙 광장의 분수대 앞에 자리했다. 우리 뒤편으로 (장크트 로렌츠 교회에 비한다면) 귀엽게 생긴 프라우엔 교회가 아담히 서 있었다. 19미터 높이의 분수대는 황금빛으로 빛나며 물을 뿜어댔다.


“여기 금색 고리 보이지? 이걸 세 번 돌리면서 소원을 빌고 아무한테도 이야기 안 하면 소원이 이루어진대. 해 보자.”


“유치하군요.”


“그래? 난 괜찮을 거 같은걸.”


리나가 내 말을 받았다. 고리를 손가락으로 만지작대는 게 뭔가 빌 소원이 있긴 있나 보다.


“유성연 씨. 이거, 소원을 빌기 전에 다른 사람한테 얘기하는 건 상관없겠죠?”


“그렇지 않을까? 따져 보면 여기서 빌 소원이라도 언젠가 누군가에게 말한 적이 있을 지도 모르니까.”


역시 그는 상당히 논리적인 인간이다. 물론 그렇게 들어가면 이 장소와 다른 장소의 차이라던가 어쩌고저쩌고 하는 징크스적 논란이 야기될 수도 있지만 그래 본댔자 어차피 처음부터 미신이니까. 역시 상관없겠지.


“리나야. 무슨 소원인데 그래?”


“……천희랑 잘 되게 해 주세요.”


“그거 솔직히 감동인데.”


약간 쑥스러워진다.


“그럴 리가 있냐.”


그러나 그 쪽은 얼굴색 하나 안 바뀌고 툭 내뱉었다.


“아무리 소원이라고 해도 다른 사람 마음까지 조종할 순 없는 거야. 스스로 생각할 수 있으니까 인간이라는 거라고. 안 그래?”


아마 지금 내 면상은 관운장 얼굴처럼 빨간색일 거다. 기대감도 무너지고 설교 비스끄무리한 얘기까지 들어서인지 꽤 부끄러웠다. 어쨌든 리나는 예의 고리를 빙글빙글빙글 세 번 돌린 후 손을 모으고 속으로 뭔가 중얼거리는 듯 싶었다. 유성연 씨는 기지개를 한 번 켜고는,


“그럼 나도 주천희랑 유리나가 깨지게 해 주세요, 하고 소원이나 한 번 빌어 볼까.”


이 양반아…….


“남의 마음을 조종할 수는 없다는데요.”


“괜찮아. 나는 소원이 아니라 사념이거든. 집착이랄까?”


그리고 고리를 세 번 돌리고 손을 모았다. 나도 질세라 제발 깨지지만 말게 해 주세요 하고 사념을 바람에 실어 보냈다…….




루덴 빌바흐 교회는 구시가지 북쪽의 카이저부르크 근처에 있었다. 말 그대로 작은 교회였다. 20명이 들어가 앉으면 비좁아 보일 것 같았다. 뒤편으로 붙은 작은 건물이 하나 더 있었지만 이건 아무래도 주거용으로 생각된다.


교회 안엔 아무도 없다. 안쪽에 문이 보인다. 구조상 뒤의 ‘주거용 건물’로 통하는 문일 것이다. 유성연 씨가 다가가 문을 두드리며 불렀다.


“헤어 퓌러Herr Führer!(퓌러 씨!)”


문이 열렸다. 중키에 약간 마른 남자가 서 있었다. 머리는 하얗게 세어 있었지만 얼굴을 보아 하니 이제 갓 오십 대에 접어든 것 같았다. 검은 색 신부복이 카톨릭인지 개신교인지 조금 혼란스러웠다. 잠시 우리를 훑어보더니 반가운 듯이 그도 외친다.


“헤어 유! 에스 이스트 랑게 차이트Es ist lange zeit!(이거 오랜만이군!)”


“아아. 랑게 차이트. 건강하신 것 같아 다행입니다. 이 애들은 독일어를 모르니 한국어로 말씀해 주시겠어요?”


“안 돼. 한국어는 다 잊었다네.”


“상당히 당당하게 말씀하시는군요…….”


그리고는 둘이 웃었다. 아무래도 말한 것처럼 서로 굉장히 잘 아는 사이인 것 같았다. 저런 썰렁한 농담까지 웃으면서 할 정도라면 말이다.


“들어가면서 이야기하세. 어쩐 일로 찾아온 건가?”


우리도 그들을 따라 거실로 들어왔다.


“아무도 없습니까?”


퓌러 목사는 잠시 눈을 가늘게 뜬 채 유성연 씨를 응시하더니 방 쪽을 보며 “카츠!” 하고 불렀다.


“카츠는 무슨 뜻이죠?”


“사람 이름이다, 임마.”


유성연 씨의 대답에 조금 무안해졌다. 곧 방에서 "야, 파테르. Ja, Vater.(예, 아버지)" 하며 금발의 안경 쓴 소년이 걸어 나왔다. 목사가 우리에게 막내아들인 카츠라고 소개해 주었다.


“카츠. 손님이란다. 가스트Gast.”


“가스트? 안, 녕, 하세요.”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다네. 머리가 좋아서 그런지 잘 따라와 준다고. 카츠. 렌덴스튀크Lendenstück(안심 스테이크)를 만들 테니 쇠고기 좀 사 오려무나. 정육점에 가서.”


“필렛Filet?(안심; 쇠고기 부위명) 야Ja. 이히 빈 글라이히 비더 다Ich bin gleich wieder da.(금방 갔다 올게요)  정육……. 플라이셔Fleischer?”


“구트 게마흐트Gut gemacht!(아주 잘했어)”


이 쪽은 무슨 소릴 하는 건지 알아들을 수 없어 유성연 씨가 동시통역을 해 주었다. 어쨌든 어딘지 무뚝뚝해 보이는 소년 카츠 퓌러는 돈을 받아 밖으로 나갔다.


“카츠가 저렇게 컸군요. 몇 살이죠?”


“열여덟. 엄청나게 똑똑하지. 뭐랄까, 글 쓰는 걸 좋아해서 소르본 문학부로 유학 보내달라고 난리라네. 헤어 카프카처럼 죽어 버리면 곤란한데 말이야.”


“그거야 제 복이지요. 정말이지 프랑스엔 마력 같은 게 있나 보군요. 서현 씨도 그랬고.”


그러고 보면 서현 씨도 젊었을 때 (사실 지금도 젊지만) 파리에 유학 갔었지. 너무 신경을 써서 그런지 모로 가도 결론은 니고데모 요서다. 조금 마음을 가라앉힐 필요도 있을 것 같다. 옆에서 리나가 어깨를 짚었다. 돌아보니 작게 말한다. “독일어라고 너무 쫄지 마.” 아가씨야, 지금 한국어로 말하고 있는데.


“뭐, 짐작은 했었지만 여기까지 와서 헤어 민 에스트erst(1st) 얘기라니. 저 애들 앞에서 얘기해도 괜찮은 건가?”


“라피스가 허락했습니다. 선생님 말씀대로 하자면 ‘헤어 민 쯔바이zwei(2nd)’가 움직이기 시작했거든요. 게다가 드디어 본사에서 그 사람이 왔습니다.”


“라피스 혼자 에스트와 접촉하는 건 용납할 수 없다 - 뭐 그런 얘기겠구먼. 우스운 얘기일세. 솔직히 라피스가 에스트와 만난다고 해서 다스Das……(문맥상 거시기……. 정도의 의미로 쓰인다). 큰 일이 터지는 것도 아니지 않나? 연인을 갈라놓는 건 죄악일세. 헤어 비바체도 어지간히 신경질적이야. 하여간 에반젤리스타는 어떻게 지내나?”


“옛날과 다를 게 있나요. 여전히 뱃심 시꺼멓게 살고 있지요. 그나저나 진짜로 큰 일이 터져 버렸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시현 씨만 활동을 시작한 게 아니란 겁니다. 서현 씨가 한국 전국에 살인자로 지명수배 되어 버렸습니다.”


그 말엔 과연 침착하던 퓌러 목사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고 말았다.


“이스트 에스 바아Ist es wahr?(정말인가?)”


“에스 이스트 바아Es ist wahr.(그렇습니다)”


내가 듣기엔 둘이 비슷한 음절을 가지고 말장난 하는 걸로 밖에 안 들렸기 때문에 유성연 씨는 또 귀찮게 통역을 해 줘야 했다.


“진짜로 사람을 죽였나?”


목사는 턱을 덮은 하얀 수염을 쓰다듬으며 자리에 앉았다.


“모르겠습니다. 라피스한테도 얘기하지 않은 것 같아요. 일단 보도는 중년 남성을 칼로 찌른 것으로 되었습니다만……. 그 때 이 애들이 현장을 목격했습니다. 피해자는 남자가 아니었다고 하더군요.”


“그럼 누굴?”


“라피스.”


리나가 고개를 푹 숙인 채로 대신 대답했다. 무릎을 떨고 있었다. 그 때의 모습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어디서인지 피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라피스를 죽였단 말인가!”


그리고 목사는 입을 다물었다. 뭔가 생각하는 듯했다. 그러더니 잠시 후 손으로 무릎을 친다.


“지금 자네들을 보낸 건 '진짜' 라피스인가?”


“확실하다고 생각합니다. '가짜'라고 생각할 이유가 없습니다. 무슨 짓을 하더라도 외양이나 성격이 그렇게 똑같을 수는 없으니까요.”


“잠깐만요.”


내가 말을 끊었다.


“비슷한 라피스가 하나 더 있는 게 가능하다는 얘긴가요?”


그들은 대답하지 않았다.


“목사님. 하나 여쭤 봐도 될까요? 라피스의 눈은 무슨 색입니까?”


“무슨 소릴 하는 건가. 난 치매에 걸리지 않았어. 녹색이었던 걸로 기억한다네.”


“어렸을 때 세례를 주신 분이니 확실하겠죠?”


유성연 씨가 선글라스를 벗었다. 미간에 주름이 잡혀 있었다.


“무슨 소릴 하고 싶은 거냐.”


“알 건 알고 넘어가야겠어요. 유성연 씨. 라피스의 눈 색깔은 정말 녹색이 맞죠? 혹시 라피스와 함께 목욕탕에 들어간 적이 있으신가요?”


“그런 일이 있었다면 난 서현 씨한테 맞아 죽었을 거다. 하지만 이탈리아에서 풀에 함께 들어갔던 적은 있어. 컬러 렌즈에 대해 말하고 싶은 거지? 라피스 눈은 확실히 녹색이야.”


이걸로 궁금증이 해소되었다. 한 달 전부터 나를 짓누르고 있던 공포의 정체가 말이다.


뒤에서 누가 잡아당기는 느낌이 났다. 리나였다. 아까보다 심하게 무릎을 떨며 내 옷자락을 잡고 고개를 젓고 있었다. 이미 알고 있는 건가? 알면서도 어떤 이유에선가 억지로 숨기고 있었던 거냐. 제발 혼자서 고민하지 마…….


“저희로선 현장을 봤기 때문에 죽은 줄 알았던, 아니 확실히 죽은 것이 분명한 사람이 살아 있다는 것에 공포를 느껴서……. 저 같은 경우엔 방에 처박혀서 나오지도 못하고 있었어요. 그 때 라피스가 절 찾아왔습니다. 그 때 라피스의 눈은 분명히 붉은 색이었어요.”


유성연 씨의 얼굴이 심각하게 일그러지고 목사는 입을 쩍 벌린 채 아무 소리도 내지 못했다.


“아냐……. 적색일 리가 없어. 그게 컬러 렌즈였던 거 아냐?”


턱을 떨며 불분명한 발음으로 유성연 씨가 누구에게인지 알 수 없게 물었다. 옷자락을 잡은 리나의 손에 힘이 들어가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이미 벌어진 일이다. 멈출 수 있을 리가 있나.


“비행기를 타기 하루 전, 여기에서 말하려면 어제인지 그저께인지 몹시 헷갈립니다만 하여간 그 날 라피스가 절 사장실로 불렀습니다. 그 때 녹색 컬러 렌즈를 빼고 제게 붉은 홍채를 확실히 보여 줬어요. 렌즈 위에 렌즈를 덧씌운다는 건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데다가 설령 그렇게 했다고 해도 녹색 렌즈만 빼는 건 상당히 힘들죠. 하지만 라피스는 내 앞에서 양 쪽을 다 그냥 손가락을 몇 번 놀려서 쉽게 빼냈단 말입니다. 안구를 이식할 시간도 없었을 테니 - 제 입장에선 대체 그런 일이 가능한지 알 수가 없지만 ‘죽은’ 라피스와 지금 살아 있는 라피스는 다른 사람이라는 말도 틀리진 않을 겁니다.”


“붉은 눈이라니, 그럴 리가 없어.”


유성연 씨가 담배를 입에 물고 불을 붙이려 했다. 그러나 전신을 떨고 있어서 그런지 계속 애매한 불똥만 튀었다. 목사는 머리를 감싸 쥐고 가만히 앉은 채 가끔씩 숨소리만 낼 뿐이었다. 나도 다시 앉으려고 할 때 리나가 갑자기 거세게 잡아당기는 바람에 넘어지듯 의자로 떨어졌다.


“적안에 그렇게 떠는 걸 보니 헤어 유 자네도 대충은 알고 있는 것 같구먼.”


그 자세 그대로 흰 머리의 퓌러 목사가 목소리를 흘려 보냈다.


“자네 이름이 뭔가?”


“주천희라고 합니다.”


“소피아에 대해 알고 있나?”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헤어 유. 자네가 알고 있는 대로 녹색 눈 라피스는 가짜 소피아고 적색 눈 라피스는 진짜 소피아일세. 하지만 내가 거짓말을 했었어. 진짜 소피아는 안티크라이스트를 잉태하는 존재가 아니야. 그녀는 그렇게 두려운 존재가 아니란 말일세.”


드디어 담배에 불을 붙인 유성연 씨가 식은땀에 젖은 얼굴을 목사 쪽으로 돌렸다.


“에스트는 드디어 찾은 걸세. 진짜 아니마 문디Anima Mundi(세계혼)를. 그래서 대체로 놔두었던 '가짜'를 처분한 것일 게야. 그리고 아마 자신에게 말도 없이 '진짜 소피아'를 감춘 우리한테 악감정을 품고 있을 지도 몰라. 이 애들을 보낸 건 에스트가 소피아를 통해서 우리한테 보내는 증오의 메시지일 수도 있다는 것일세.”


그러면서 지친 듯한 퓌러 목사는 우리에게 2년 전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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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남의 입을 빌어서나마) 라피스의 정체가 조금씩 밝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게 사실인지 아닌지는 역시 독자 여러분이 생각하실 몫이니...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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