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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도시 기록보관소

dest21c Cercatori

2006.12.25 08:37

Evangelista 조회 수:2412 추천:15

extra_vars1 방랑하는 유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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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카스파 하우저 사건 (1)




1828년 5월 26일, 축제가 한창인 바바리아 뉘른베르크에서 한 소년이 발견되었다. 머리는 지저분했고 옷은 흙투성이였다. 사람들이 다가가자 소년은 봉투를 한 장 꺼냈다. 뉘른베르크 제 6기병대 제 4대 대위 폰 베스니히 앞으로의 편지였다.


폰 베스니히 대위가 봉을 뜯자 두 통의 편지가 나왔다. 한 편지엔 1812년 소년의 어머니로부터 맡아 키웠으나 기병이 되고 싶다고 하여 보낸다고, 또 다른 편지엔 1812년 4월 30일이라는 출생 일자와 함께 자신은 하녀로서 아이를 기를 수가 없으며 아이의 아버지는 죽었다고 쓰여 있었다. 대위가 소년에게 말을 걸었을 때 소년은 불분명한 단어를 띄엄띄엄 늘어놓을 뿐 대화가 통하지 않았다. 화가 난 그는 소년을 경찰에 넘겼다.


경찰관이 소년에게 펜과 종이를 주자 소년은 삐뚤빼뚤한 글씨로 ‘카스파 하우저’라고 썼다. 그러나 말을 제대로 하지 못했기 때문에 우선 감옥에 가두어 두었다.


카스파는 문명에 대해 지나치리만큼 무지했다. 마치 정글 북의 모글리처럼. 그러나 말을 배우자 이런저런 신상에 관한 것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뉘른베르크 시장 빈더는 다음과 같이 발표한다.


소년은 지금까지 빛이 들지 않는 구멍이라는 좁은 방에 갇혀 있었으며 매일 한 남자가 빵과 물을 갖다 주었다. 감옥 안에서 그는 하얀 목마 두 개와 놀았다. 어느 날 밤 남자가 소년을 ‘구멍’에서 끌고 나와 걷는 법과 이름 쓰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 그리고 뉘른베르크로 소년을 데려 온 후 혼자 가도록 하고 사라졌다.


독일 전체가 홀연히 나타난 ‘야성아’ 때문에 술렁거렸다. 바바리아 정부는 카스파를 뉘른베르크의 명사 다우머 교수에게 맡겼다. 소년은 단기간에 학습하여 읽기, 쓰기, 산수를 익혔으며 피아노도 연주했고 승마까지 배우게 되었다.


어느 날 소년은 꿈을 꾸게 된다. 어느 성 안의 침대에 누워 있었다. 한 여성을 따라가니 그녀는 옷을 입히고 별실로 데려갔다. 복도에는 초상화가 걸려 있다. 복도 밖의 마당에는 분수가 있다. 거실엔 금테가 둘러진 커다란 거울과 샹들리에가 매달려 있었다. 선반에 은식기가 보였다. 침대에 눕자 검은 모자와 프록코트를 걸친 남자가 다가온다. 여성이 하얀 손수건을 흔든다.


다우머 교수가 꿈에서 보인 것을 그리라고 하자 카스파는 생각나는 대로 스케치하기 시작했다. 큰 방패 오른쪽 아래 뒷발로 선 동물이 있고 왼쪽 아래에는 비스듬한 줄무늬가 쳐진 네모꼴이 있다. 방패 전면을 두 자루의 검이 엑스 자로 교차하고 있었다. 그리고 상단에 철십자가 달린 왕관이 있었다.


카스파는 1829년 상해사건을 당한다. 가해자의 행방은 묘연했다. 소년은 자신을 공격한 남자가 검은 복면을 쓰고 있었다고 했다. 그로부터 4년 뒤, 1833년, 그는 안스바흐에서 왼쪽 가슴을 찔려 사흘을 앓은 후 죽고 말았다. 푸른 망토를 걸친 사내가 출생의 비밀을 알려주겠다고 한 데에 따라간 것이 화근이었다.


공원에서 발견된 지갑 안에는 메모가 들어 있었다.


“하우저는 내가 누구인지, 어디서 왔는지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수고를 덜기 위해 내가 대신 말해 주겠다. 나는 바이에른 국경에서 왔다. 내 이름은 M. L. O.이다.”


직후 뉘른베르크 시장 빈더와 카스파를 진찰한 의사들이 변사체로 발견되었다. 이것이 소위 카스파 하우저 사건이다.




…….


피리아 - 라피스와의 기괴한 만남 이후로 사흘 동안 집 밖에 나가지 못했다. 그 와중에 이불 속에서 리나에게 전화를 했다. 이상하게도 휴대폰이 꺼져 있었다. 지금까지는 내 전화는 늘 받았었고 이런 경우도 없었다. 불안해졌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다고 생각했다. 리나, 미안. 지금까지 형식적으로 위로해서 미안해. 네가 두려워하는 것과 원인은 다르겠지만, 어쨌든 나도 비슷한 정도의 공포를 확실히 느끼고 있으니까 용서해 줘.


이틀 동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리나의 휴대폰은 여전히 전원이 나간 상태다. 집에 전화해도 아무도 받지 않는다. 대체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가 없다. 하지만 지금으로선 굳이 알고 싶지 않다. 이불 속도 편하지는 않다. 하지만 최소한 바깥보다는 나을 것이다.


전화가 계속 걸려온다. 무단결근이니 회사에서 하는 전화겠지. 하지만 전화 받는 일조차 두렵다. 꿈을 꾸었다. 피투성이가 된 채 눈을 부릅뜨고 죽어 있는 피리아 - 라피스가 기괴한 웃음을 지으며……. 비틀대며 일어서서 내게 사원증을 건넨다. 받지 않으려고 온 힘을 다해 뛰지만 그녀는 계속해서 피를 흘리며 쫓아왔다. 한없이 긴 에스컬레이터에 올라 뒤를 보자 쫓아오지 않았다. 숨을 돌리려 주저앉아 옆을 보니 유리로 가로막힌 같은 방향의 에스컬레이터에 그녀가 올라서 있다. 유리에 계속 손을 짚고 이쪽을 보고 있다. 그녀의 손의 궤적을 따라 유리에 선명한 피가 묻어난다. 그녀는 - 악마라고 생각했다. 남산 타워에서 보여 주었던 쓸쓸한 듯한 미소를 지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입을 열어 무언가 말한다. 하지만 유리 때문에 들리지 않았다. 그리고 잠시 후, 반응이 없는 내가 못마땅했던지 몸을 돌려 에스컬레이터에 역행해 밑으로 뛰어 내려갔다. 그리고 곧 내 뒤에서 무서운 속도로 달려 올라오는 - 아니다. 달리지 않았다. 그녀는 그저 걷고 있었을 뿐이다. 그런데도 굉장한 속도로 내 뒤를 쫓아오고 있었다. 겁에 질려 다시 달렸다. 그러다 걸려 넘어졌다. 내 위로 덮쳐 오는 그녀의 그림자 - 나는 잠에서 깨어났다.


7월 28일 새벽이다.


그렇게 가족으로부터 독립하고 싶었다. 간신히 원룸을 얻어 살게 되었다. 하지만 지금은 이 방에 나 혼자라는 게 무서워서 견딜 수 없다. 너무 많은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간다. 그러나 그 중 단 하나도 정리할 수가 없다.


단순히 죽는 게 무서운 게 아니다. 죽는 것도 무섭지만 그보다 더한 꼴을 당할 지도 모른다. 아니, 그 전에 이건 그저 본능적인 공포다. 결과를 예측할 수 없는 공포-


갑자기 벨이 울렸다. 지금은 오전 다섯 시. 누가 올 시각이 아니다. 순식간에 전신에 소름이 돋았다. 절대로 나가서는 안 돼. 나가면 죽는다. 아니, 그보다 더한 꼴을 당하게 된다. 본능이 그렇게 말하고 있다. 나는 그대로 이불 속에서 침대가 삐걱거릴 정도로 전신을 떨며 벨소리가 그치길 기다렸다.


한 스무 번 울리던 벨이 잠잠해졌다. 안심해도 될 것 같다. 그러나 곧바로 기계 움직이는 쇳소리가 들려왔다. 이 소리는 문에서, 문고리의 자물쇠에서 들린다. 누군가가 억지로 문을 열려 하고 있다! 누구인지는 불 보듯 뻔하다. 피리아 - 라피스! 실수했다. 체인을 안 걸어 놓았다. 자물쇠가 열리면 저 문을 통해-


그녀가 들어왔다. 맨 처음, 레코 씨와 함께 편집부실 문을 박차고 들어왔을 때와 입은 옷만 제외하면 완전히 똑같다. 아니, 표정도 다르다. 상냥하게 웃고 있었다. 그리고 어딘지 모르게 쓸쓸해 보이는 붉은 눈……. 경악했다. 원래 녹색이 아니었나? 그 전에 사람이 붉은 눈을 가질 수 있는 건가?


그리고 한 발짝씩 천천히 다가오는 그녀를 보고 아마도 나는 정신을 잃었을 것이다.




눈을 뜨자 그녀가 상을 펴고 도시락을 꺼내 펴고 있었다. 기절한 시간이 얼마 되지 않았던 것 같다.


“오해하고 있어요. 난 아무 짓도 안 해요.”


그녀가 말했다. 대답 대신 비명을 질렀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분명히 곧바로 그녀가 내 입을 막았던 것 같다. 부드러운 하얀 손가락 사이로 떨리는 목소리가 새어나갔다.


“누구야? 넌 누구야?”


나중에 그녀로부터 들은 얘기지만 난 이 때 누구냐고 수십 번을 되물었다고 한다. 지금 생각하면 꼴사나운 얘기다. 하지만……. 누구든 이 상황이 되면 태연할 수 있을까?


“정식으로 소개할게요. 피리아 데 비바체예요. 본명은 라피스 아일릭시스 데 비보. 라피스라고 불러 주세요. 하지만 다른 사람이 있는 곳에선 피리아라고 부르셔야 해요.”


“나가!”


라피스는 한숨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섰다. 천천히 걸어 문 앞에 다다랐을 때 돌연 몸을 돌려 이 쪽으로 다시 돌아오더니 내 앞에 쪼그리고 앉아 얼굴을 바싹 들이대고 입을 열었다.


“도시락, 먹어요.”



전신의 힘이 빠져나가는 게 느껴졌다. 압도적인 공포로 인해 손가락조차 움직일 수가 없었다. 불그스름한 눈이 기묘하게 빛을 내고 있었다. 이게 참을 수 없이 무섭다. 그렇다. 마치, 분명히, 뱀 앞에 선 개구리처럼.


“뭐가 그렇게 무섭죠?”


“눈이…….”


눈이……. 아름다웠다. 사람의 혈액도 필시 저렇게 아름다울 거라고 나는 생각했다. 라피스의 눈은 마법처럼 내 의식을 빨아들였다.


“도시락 먹어요. 내가 만든 게 아니에요.”


상 위에 놓인 흰색 도시락 통을 한참 바라보았다. 그리고 속으로 누가 만든 건지 물으며 자리를 털고 일어난 라피스를 올려다보았다. 그녀가 생긋 웃는다.


“리나 씨가 만들었어요. 그 분은 절 도와주시기로 했답니다. 그리고 당신이 아무것도 못 먹고 있을 거라면서 나한테 갖다 달라고 했어요.”


“거짓말. 자기가 오면 되잖아. 리나를 어떻게 했어?”


“곧 만나게 돼요. 걱정하지 말아요. 날 믿어도 되겠다고 생각하면 오늘은 출근하세요. 얘기는 그 때 할 테니까요. 하지만 절대로 민시현 씨나 그 망할 에반젤리스타 레코한테는 끝까지 모른 척 하셔야 해요. 안 그러면, 이건 제 예상이긴 하지만…….”


또다시 그녀가 내게 얼굴을 갖다댔다. 재채기라도 하면 곧바로 입술이 닿을 거리였다. 부드러운 입술이 시야를 자극했다. 그리고 그런 나를 경계하듯 붉은 눈이 예리하게 빛났다.


“당신은 죽어요.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아무도 모르게.”


그녀는 사뿐사뿐, 어린 소녀처럼 문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고개를 내 쪽으로 향하고 마지막으로 한 마디를 남긴 후 나간다.


“안 도와주시면 이번엔 나, 정말 죽을 지도 모르거든요.”


문이 닫혔다.




여러 가지 생각을 했다. 회사로 향하면서 젊은 혈기가 나를 죽이는구나 그런 생각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한참을 고민하다 내놓은 결론이 리나가 위험한 것 같으니 어쨌든 구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얼토당토않은 것이었기 때문이다.


난 만화 주인공이 아니다. 정의의 편은 더욱 아니다. 그냥 소시민일 뿐이다. 사서 사자 입 속으로 뛰어들고 있는 건 아닐까, 끊임없이 고민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어떻게든 될 거라며 서두르는 게, 한 달 전까지만 해도 귀찮았던 리나를 이젠 꽤 좋아하고 있지 않은가 싶기도 하다. 누가 그랬었다. 일정 조건을 충족시키는 스펙터클 상황 내에선 연애 감정이 배로 증폭된다고. 이거야말로 스펙터클이구나. 난 지금 죽으러 간다.


버스 정류장에 섰다. 길 건너에 정말 어디론가 치워 버리고 싶은 공원이 보였다. 버스가 와서 올라타 의자에 앉아, 하지만 사람은 공포를 느끼는 대상일수록 더욱 확인하고 싶어 하나 보다. 계속해서 공원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버스가 떠나는데도 난 놀란 눈을 한 점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서현 씨가 공원에서 여기를 바라보며 손을 흔들고 있었다. 그것도 엄청나게 밝은 표정으로.


이번에 살아 돌아올 수 있으면 저 인간을 반드시 죽이고 말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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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본편이 시작되었습니다>_<


카스파 하우저 사건 (2)를 기대해 주십쇼 ㅠ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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