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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도시 기록보관소

dest21c Cercatori

2006.12.17 05:55

Evangelista 조회 수:2134 추천:23

extra_vars1 Chapter I : D.M. 2006년 8월호 (통권 14호) 完 
extra_vars2 C1-#6 (1부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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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Cercatori



7월 23일, 8월호는 정상적으로 발간되었다. 판매량은 전과 그다지 다를 게 없다. 서현 씨는 사라진 닷새 째 새벽에 갑자기 전화를 걸어 와서 “알고 싶다면 텅 빈 공간에 스크래치를 해라! 살살 해!” 라고 술 취한 듯 소리치고는 끊어 버렸다. 이래서야 완전히 돌았다고밖엔 할 말이 없다. 진짜 범인이라고 해도 신고하기조차 싫어지는 멘트다.




민시현 씨는 서현 씨가 사라진 다음 날 이상할 정도로 동요하며 여기저기 전화를 걸어댔다. 그 레코 씨도 완전히 인상을 찌푸리고 형사들과 긴 시간 이야기를 나누었다.


누님은 완전히 넋이 나갔다. 예전부터 생각하던 대로였을지도 모른다. 그녀는 서현 씨를 어느 정도 마음에 두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8월호가 발간되자마자 누님은 양해를 얻어 2주간 무급 휴가를 얻었다.


‘피리아가 살해된 날 밤’ 이후 어쩌다 보니 나는 리나와 사귀는 사이가 되어 있었다. 상상 이상으로 충격적인 일을 만나 내가 결정을 서두른 모양이다. 제대로 기억이 나지는 않는다. 아무튼 당황했으니까. 리나는 지금 자기 방에 틀어박혀 졸업 논문 작성 이외에는 무엇도 하지 않고 있다. 가족 이외엔 가끔 찾아 가는 나 밖에는 만나 주지 않는다. 그 이유를, 나는 잘 알고 있다. 바로 옆에서 보았으니까.


‘피리아가 살해된’ 다음 날인 7월 3일, 집 근처에서 만나 출근하던 우리는 옅은 블론드에 녹색 눈을 가진, 매우 피곤해 보이는 라틴계 백인 여성을 만났다. 신장은 5피트 전후, 십팔 세 정도로 보이는 귀여운 아이였다. 그녀는 공원 벤치에 기대 앉아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다 우리를 보고는 비틀거리며 일어서서 생긋 미소 지은 후 어디론가 걷기 시작했다. 리나가 알 수 없는 공포에 쫓기며 집에서 나오지 않는 것은 그 이후 계속되고 있는 일이다.


편집부에 도착했을 때 말할 것도 없이 초상집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피해자가 중년 남성으로 보도된 것은 생각할수록 이상하긴 하지만, 어쨌든 상황만 놓고 보면 한 달도 안 되어 두 명의 사장이 죽어 나가는 흉흉한 일이 벌어지고 만 것이다. 뭐라고 말을 꺼낼 수가 없었다. 게다가 냉정히 생각해서 사실이라고 믿을 수는 없는 일이지만 피리아를 죽인 건, 서현 씨의 말대로라면 저 쪽에서 허둥대고 있는 레코 씨와 민시현 씨다.


사실은 사실이니까, 떠 보려는 의도로 출근하면서 피리아가 어디서 밤을 샌 건지 피곤한 기색으로 내 집 근처 공원에서 서성거리고 있었다고 말했다. 만약 정말로 어제의 살인 가해자가 그들이라면 분명히 뭔가 그에 상응하는 반응을 보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 바보는 뭘 하는 겁니까? 직원이 살인을 했다고요. 사장이 밤새도록 놀다가 아직도 나타나지 않고 있으면 대체 어쩌라는 건지.”


레코 씨가 굉장히 짜증을 내며 대답했다. 그리고 다시 경찰서로 전화를 거는 것 같았다.


……어떻게 된 거지?


“사장이 문제가 아닙니다. 그 바보가 상관도 없는 아저씨를 죽일 줄은 생각도 못 했어요. 무슨 생각을 하는 겁니까, 그 놈은? 아버지께선 들으신 것 없나요?”


민시현 씨가 전화통을 붙들고 쉰 목소리로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뭔가 꼬였다. 이 사람들은 피리아를 죽였다고 하기엔 그에 대해서 아무 것도 모르고 있다. 서현 씨가 거짓말을 한 건가? 하지만 그래도 이상한 점이 있다. 나와 리나가 어제 본 사체는 분명히 피리아의 것이었다. 체형도 도저히 50대 중년 남성의 것이라고 볼 수 없었고, 특히 얼핏 본 그 얼굴은 오늘 아침 공원에서 본 여성과 끔찍할 정도로 똑같았다. 서현 씨도 말했었다. 죽은 것은 피리아라고. 어떤 상황을 가정해 보아도 만족스러운 답이 나오지 않는다. 제일 그럴 듯한 답이 그것이다.


서현 씨가 피리아를 죽이고 내겐 거짓말을 한 후, 어떤 영향력 있는 기관에서 기사를 허위로 작성하도록 압력을 넣었다는 것. 그리고 피리아는 되살아났다.


이후 피리아를 볼 때마다 애써 웃고는 있지만 공포의 연속이다.


대체 그런 말도 안 되는 일이 생길 수가 있는 건가? 무엇이 진실인가?


Quid est veritas?




성당기사단 전설 편에 생 제르맹 백작 이야기가 실렸다.


생 제르맹 백작 혹은 미스터 웰던은 라모아 제르지 백작부인의 증언대로라면 1710년 50세 정도의 모습을 하고 있었으므로 1650년에서 60년 사이 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1737년에서 1746년 사이 페르시아, 영국, 오스트리아 등에서 목격되었으며 이후 여러 곳에서 모습을 나타냈다. 그리고 1784년 2월 27일 사망하였다는 비석이 독일 에케른푀르데에 존재한다고 한다 - 그러나 에케른푀르데에는 그런 비석이 없다. 공식 기록상으로는 120여년을 생존한 것이다.


놀라운 것은 1785년 모종의 프리메이슨 회합에 참가하였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는 것이며 1821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목격된 적도 있다.


그는 이따금씩 사람들 앞에서 일반적인 금속을 금으로 변성하는 실험을 해 보였으며 만능약이라면서 가루를 가지고 다녔다. 생명의 약Elixir를 조제하였으며 일체 송금 받은 기록이 없이 재산을 여기저기 뿌리고 다녔다.


공식적으로 그는 날염 기술자였으나 미술, 연금술, 화학 등 다방면에 방대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의 주변 인물들은 그를 위대한 철학자이며 결백한 영혼의 소유자,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자라 불렀으며 볼테르는 영원히 죽지 않는 사람이라고 평했다.




민시현 씨는 이 생 제르맹 백작의 능력을 성당기사단의 비의와 연결짓고 있었다. 줄곧 그가 하던 말이지만 그는 이런 류의 이야기를 믿지 않았다. 하지만 일은 일이니까 - 그렇게 말하면서 작업을 계속하고는 했다.


아사신단, 즉 니자리파 이스마일리야로부터 성당기사단이 전수받은 중동과 이집트의 비의는 단순히 악마 숭배 정도로 결론지을 일이 아니었다. 하나는 피라미드나 오벨리스크에 비교할 만한 하늘을 향해 삐죽 솟아 있는 고딕 양식의 첨탑. 유럽에 갑자기 나타난 건축 양식이었고 다른 하나는 바로 연금술이었다. 그것도 단순히 금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닌 영지학적인, 지극히 정신적인 연금술. 그러나 현자의 돌Philosophi Lapis을 만들 수는 없었다. 무엇인가 결정적인 한 가지가 모자랐다. 그런 그들의 앞에 한 남자가 나타났다. 그의 이름은 카타필루스.


방랑하는 유대인 카타필루스는 갈보리 언덕으로 올라가는 예수가 지쳐 앉아 쉴 때 얼른 걸으라고 떠민 유대인 로마군 병사로 알려져 있다. 그는 예수의 저주를 받아 그 메시아가 재림할 때까지 세계를 떠도는 형벌을 받았다고 전해진다. 순례자들로부터 13세기 중동에서 카타필루스를 자칭하는 유대인을 보았다는 증언이 잇따른 것을 민시현 씨가 적절히 이용한 것 같다.


그는 어떻게인지는 알 수 없지만 유랑하는 돌Lapis Exilis을 가지고 있었다. 성당기사단과의 사이에서 유랑하는 돌을 성당기사단이 가지고 있는 연금술적 지식을 가지고 연구하는 거래가 성립한 후 그들은 이윽고 현자의 돌을 만드는 방법을 알아내게 되었다. 이후 카타필루스의 목격 증언은 수 세기에 걸쳐 점차 서유럽 쪽으로 이동하다가 생 제르맹 백작이 나타난 즈음부터 사라졌다.


민시현 씨가 내린 결론은, 성당기사단의 행적을 보다 확실히 연구하면 카타필루스와 성당기사단의 회합 장소를 추정할 수 있을 것이라는 다분히 억지적인 논리였다. 레코 씨가 인쇄를 넘긴 후 민시현 씨는 다시 한 번 말했다. 어차피 책은 팔아먹기 위해 쓰는 것이라고. 저런 이야기는 아무도 믿지 않지만 믿을 수 없는 이야기이기에 판매고는 느는 것이라고 말이다.




이 즈음, 즉 8월 중순 즈음의 나는 아무도 믿을 수 없어 혼란스러워 하고 있었다. 결국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사태가 벌어졌기 때문에, 특히 피리아가 살아 돌아와서 예전과 다를 것 없이 생활하고 있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한 번은 리나와 통화중인 휴대폰을 빼앗아 피리아가 대체 어디가 안 좋은 거냐고 물었다. 리나는 질겁하며 적당히 둘러댄 후 전화를 끊었지만 그 때 피리아는 정말로 걱정이 되어 견딜 수 없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윽고 나는 내가 본 피리아의 사체가 사실은 어느 중년 남성의 것이 아니었는지까지, 가장 믿고 있던 내 오감까지 의심하는 사태에 이르렀다.


서현 씨의 책상은 보름 이상 누구도 건드리지 않은 상태로 있었다. 모두가 퇴근한 저녁, 어쩐지 한심한 생각이 들어 편집부실 내를 서성대던 나는 문득 그 책상 앞에 가 섰다. 뭔가에 이끌린 듯 서랍을 여니 서현 씨가 쓰던 펜과 빈 담뱃갑 등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그리고 페이지가 지저분하게 찢겨 나간 공책이라던가 쓸데없는 전단지들도 들어 있다. 확실히 멀쩡하다고는 말하기 힘들다.


어쩐지 도둑질을 하는 것 같아 의자를 빼기 싫어서 손을 서랍 안쪽으로 조심스럽게 밀어넣어 보았다. 역시 별 거 없는 것 같다. 그리고 손을 빼다가 뭔가 손등에 스치는 것이 느껴졌다. 손을 뒤집어 만져 보니 서랍 천장 쪽에 종이쪽지 하나가 붙어 있었다.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 살짝 떼어 보니 암호표 같았다. 첫 행과 첫 열에 1부터 26까지의 숫자가 쓰여 있고 다음 줄부터 A에서 Z까지, B에서 Z를 지나 A까지, C에서 Z와 A를 지나 B까지……. 총 676칸에 알파벳이 들어차 어지러워 보였다. 아래쪽에는 갈겨 쓴 글씨로 ‘131171020, p, →2’, 숫자 나열과 p자와 확연히 구분이 가도록 작은 글씨로 화살표와 숫자 2가 있다.


 



 


서현 씨가 심심풀이로 한 암호풀이 치고는 숨겨두는 방법이 너무 수상했다. 집에서 한 번 보자는 생각으로 쪽지를 살짝 접어 주머니에 넣고 도망치듯 사무실을 빠져나왔다.




131171020, 아마 이 암호표로 조립해 놓은 암호일 것이다. 그렇다면 숫자는 행 별로 알파벳을 나타내는 것이겠지만 이것만으론 어떻게 풀어야 할 지 난감하다. 그냥 생각나는 대로 쓴다면 acaaga……. 0은 대응하는 숫자가 없다. 그렇다면 뒤의 숫자들은 10과 20일까? 그렇다면 acaagajt……. 2행으로 써 봐도 bdbbhku…….전혀 말이 안 된다. 게다가 p는 무슨 의미일까? 단순히 p를 나타내는 숫자라면 암호표에서 볼 수 있듯 1부터 26까지의 모든 숫자가 대응한다. 그렇다면 아마 열쇠라고 봐야 할 것이다. plus? positron? pre? 떠오르는 게 없다.


plus?


저 숫자를 더해야 하는 건가? 더한다면 16이다. 물론 16에 대응하는 알파벳은 A부터 Z까지 모든 알파벳. 이것도 의미가 없다. 그렇다면 반대로 상단과 좌단에 적힌 숫자를 더해서 저 숫자를 만들어내라는 건가? 1억이 넘는 숫자를 만들어내게 더하려면 보통 일이 아니다. 게다가 그 때의 경우의 수는 천문학적인 수치이다. 인간이 할 짓이 아니다. 그런 멍청한 짓은 제아무리 서현 씨라도 했을 리가 없다.


만약 저 숫자가 사실은 단 몇 개의 알파벳으로 이루어진 단어를 조립해 구분 없이 숫자를 늘어놓은 것이라면 어떨까? 그렇다면 경우의 수가 나오긴 하더라도 상당히 범위가 압축된다. 이 때 너무 작게 쓰여 있어서 주의를 기울이지 못했던 화살표와 숫자 2가 떠올랐다. 아마 저 숫자들에 2씩 각각 더해도 여전히 어떤 단어가 성립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숫자를 2개씩 더하라는 이야기일까? 화살표는 암호표를 아래쪽이 아니라 오른쪽으로 읽으라는 이야기라고 보면 어떻게 될까? 어쩌면 오른쪽으로 늘어선 최초 행의 숫자를 2개씩 더하라는 이야기일 지도 모른다.


오랜만에 만난 ‘건전한’ 수수께끼에 이미 확실히 재미가 붙어 버렸다. 다른 건 다 잊고 암호 풀이에 열중하고 있었다. 하지만 약 십 분 후에 또 손을 들고 말았다. 이것도 이야기가 안 된다. 모두 합쳐 131171020을 만드는 것보다는 경우의 수가 적지만 이것 역시 만만치 않다.


갑자기 서현 씨의 얼굴이 떠올랐다. 이런 멍청한 암호를 남겨놓고 가다니 보통 사람이 아니다. 만나면 I빔으로 때려 줄 거다. 뇌수가 쏟아지도록! 그리고 돌로 얼굴을 박박 긁어서 신원을 알 수 없도록 한 후에…….


박박 긁어? ……알고 싶다면 스크래치를 하라고? 그것도 약하게.


급히 암호표를 돌아보았다. 분명 좌측 하단에 아무것도 쓰여 있지 않은 공간이 있었다. 테이프도 이 쪽에는 붙어 있지 않았던 것이 생각났다. 손가락을 대 보니 뭔가 울퉁불퉁하게 요철이 느껴졌다. 급히 필통에서 연필을 꺼내 천천히 약하게 칠해 보았다.


숫자가 쓰여 있었다. 제대로 보이지는 않았지만 분명히 쓰여 있었다.


1349127174310362046. 좌표.


장난하냐?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어서 창을 열고 담배를 꼬나물었다. 천천히 선 채로 표를 훑어보았다. 문득 보이는 것이 있었다. 13, 1, 17, 10, 20. 그리고 49, 27, 43, 36, 46. 원래 적혀 있던 숫자와 새로운 숫자가 겹쳐 쓰인 것이다. 자세히 보니 새로 나온 49, 27, 43, 36, 46에는 희미하게 괄호가 쳐져 있었다. 그렇다면 이전의 숫자와 새 숫자를 더하라는 것 보다는 더해서 13이나 26이 나오는 숫자……. 그것이 더 이치에 맞는다. 분명히 숫자는 상단과 좌단에 두 개씩 있으니 그것으로 좌표를 구하라는 이야기인 것이다. 아마 그럴 거다……. 양측 각 숫자의 차이는 26이니까.


놀라운 것이 또 하나 발견되었다. 더해서 13이 나오는 좌표의 알파벳은 무조건 L이었다. 49가 나오는 좌표의 알파벳 역시 L. 1이나 27인 좌표는 A. 17이나 43이 되는 좌표는 P. 10이나 36이 되는 알파벳은 I. 20이나 46이 되는 알파벳은 S. LAPIS.


돌? 무슨 돌?


생각을 해 보자. 서현 씨가 이걸 만졌을 법한 시기는 아마도 종이의 상태로 보아 그리 오래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마 전 사장의 죽음 전후였을 것이다. 아니 확실히 그 후였을 가능성이 높다. 손때가 거의 묻지 않았으니까. 그렇다면 성당기사단 문제를 맡고 난 이후이다. 그리고 성당기사단과 관련이 있는 돌은…….


Philosophi Lapis 혹은 Lapis Exilis. 현자의 돌 혹은 유랑하는 돌.


이번 호 Dialogare Mondo지에 실을 내용을 메모했나 보다. 이런 것까지 심심풀이로 암호화하는 서현 씨의 위대함에는 절로 경의가 표해진다. 이걸 위해서 난 약 두 시간 가량 헛수고를 한 건가? 정말로 화난다. I빔이니 돌로 얼굴을 긁는 얘기가 슬슬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시간은 오후 9시. 머리를 너무 썼더니 열이 다 오른다. 마침 열대야도 시작되려는 판이고 밤엔 바람이 조금 분다. 뭔가 잊어버린 게 있는 것 같은데 도무지 떠오르지 않는다. 공원에 가서 머리나 식혀야겠다.




공원으로 나오니 연인들이 도처에서 사랑을 지저귄다. 좋겠다, 당신들은. 난 지금 애인이라고 있는 녀석이 사귄 지 단 하루 만에 자폐증세를 보이며 방구석에 틀어박혔거든. 이러다간 서현 씨를 박살내기 전에 당신들을 해치울 지도 몰라.


벤치에 앉아 담배를 피우려니 모기떼가 성가셨다. 이걸 전혀 생각 못 했다. 투덜거리면서 일어서려는데 얇은 코트에 모자를 푹 눌러쓴 사람이 옆에 털썩 앉았다. 이건 또 무슨 도시의 바바리맨인가 하면서 얼른 자리를 피하려 할 때 낯익은 목소리가 불렀다. 그 사람에게서였다.


“그 때 리나 씨랑 같이 가다가 여기 앉아 있는 날 봤죠?”


이 정도면 한여름 밤의 납량특집으로는 아주 그만이다. 등줄기가 일어서다 못해 척추가 튀어나올 지경이다.


피리아였다!


“재미있는 거, 보고 싶지 않아요?”


발이 떼어지지 않는다. 서현 씨 말대로 민시현 씨와 레코 씨, 그리고 이 ‘피리아’ 앞에서는 수상한 모습을 보이지 않도록 각별히 신경 썼었다. 하지만 이런 상황이 되니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머리 한 쪽에서는 끊임없이 도망쳐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고 또 한 쪽은 태연하라고 지시하고 있으며 몸은 얼어붙어 움직이지 않는다.


“내 사원증이에요.”


그녀가 카드를 내밀었다. 어떻게 받아들었는지 모르겠다. 손이 너무 떨려서 잘 보이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똑똑히 보이는 게 하나. 잊고 있던 것이 생각났다. 피리아의 사원 번호.


03-131171020.


“일삼일일칠일공이공…….”


고개를 들어 피리아를 보았다. 남산 타워에서 보았던 것과 똑같은 서글픈 미소를 짓고 있었다.


“라피스…….”


그 말을 내뱉음과 동시에 몸이 움직였다. 정신없이 뛰었다. 집에 들어와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전신을 떨며, 어느 새 잠이 들었다. 꿈일 뿐이라고 끊임없이 자기 최면을 하면서.




아침에 일어나 보니 방 바닥에 피리아의 사원증이 떨어져 있었다. 전화가 왔다. 서현 씨였다.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아무 것도 알아듣지 못했다. 결국 감기를 핑계로 결근했다. 그리고 나는 리나와 같은 처지가 되고 말았다.






1부 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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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1부가 끝났습니다. 빠른 감이 없지 않지만, 뭐 어차피 1부는 좀 긴 프롤로그 형식이었으니까요.

5화를 보신 분들로부터 너무 이야기 전개가 빠른 것이 아니냐, 쑈킹아시아다 그런 얘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이야기 전개에 대해서는 '피리아 살해' 자체가 프롤로그적 성격의 사건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지만

확실히 초장부터 오피스 코미디로 위장하고 들어갔던 작가의 잘못이 맞긴 맞습니다-0- 여러분께 사죄의 말씀을-_-;


다음 업로드는 '2부 : 방랑하는 유대인'이 되겠습니다. 많은 성원 부탁드려요-0-/


성원 = 추천 >_

이러면 돌 맞아 죽겠지-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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