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창조도시 기록보관소

dest21c 변기

2007.04.27 23:02

Evangelista 조회 수:2687 추천:8

extra_vars1 121648-1 
extra_vars2
extra_vars3
extra_vars4
extra_vars5  
extra_vars6  
extra_vars7  
extra_vars8  
extra_vars9  
 

변기


그레고리 잠자




어느 날 아침, 프란츠 카프카가 불안한 꿈에서 깨어났을 때 자신이 침대 위에서 하나의 하얀 양변기가 되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는 순결해 보이는 하얀 두 날개를 위로 한 채 무엇도 하지 못하고 가만히 서 있었다. 머리를 들려 했으나 움직일 수가 없었다. 침을 삼키려 하자 기분 나쁜 큰 소리가 들렸다. 침이 넘어가는 소리는 마치 밑을 알 수 없는 심연으로 강물이 흘러가는 소리와 같았다. 침대 밑으로 내려가고 싶었으나 곧 팔과 다리가 전혀 붙어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다가 그는 자신에게 날개가 달려 있다는 것을 눈치챘다. 그는 잠시간 날개를 퍼덕거리면서 날아서라도 움직여 보려고 생각했으나 그것을 곧 포기했다. 왜냐 하면 두 날개 중 한 쪽이 대포를 맞은 듯 구멍이 뚫려 있어 바람을 탈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도대체 이것이 어찌 된 일인지에 대해 그는 고민했다. 눈앞에 있는 풍경은 자기 방이 맞았다. 테이블 위에는 도색 잡지들이 여기저기 잡다하게 흩어져 있었다 - 카프카는 백수였다. 테이블 위의 벽에는 그림이 걸려 있었는데, 얼마 전에 화보에서 오려내어 예쁜 금박 액자에 넣어서 걸어 놓은 것이었다. 그것은 한 소녀의 자태를 묘사한 것으로, 그녀는 공교육에 수영 수업을 편성하는 나라에서 학생들 용으로 만든 수영복을 입고 커다란 고양이 앞발 모양의 장갑 속에 푹 집어넣은 양팔을 앞으로 내민 자세로 경박하게 풀장 앞에 서 있었다.


프란츠는 창밖을 보았다. 화창한 날씨가 그의 기분을 몹시 우울하게 만들었다 - 창틀의 양철판을 흔드는 바람 소리가 들렸다. ‘좀더 잠을 자 두기로 하자. 그리고 이런 바보 같은 생각은 더 이상 하지 말자’ 라고 그는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전혀 불가능한 일이었다. 왜냐하면 프란츠에게 어떠한 잠버릇이 있었든지 그는 지금 누울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다시 생각했다. ‘너무 일찍 일어나서 이렇게 바보가 되어 버린 거야. 사람은 잠을 충분히 자지 않으면 안 되는데. 다른 사람들은 너무도 바쁘게 살고 있지 않은가. 예를 들면 내가 정오 쯤 깨어나서 PC의 전원을 올리려 할 때 그들은 벌써 점심을 먹고 있지 않던가. 만약 내가 그런 짓을 하려 한다면 사흘도 못 가서 그만두고 말겠지. 이런 생활이 부모님 보기 미안하기는 하지만 무언가를 하는 것도 귀찮아. 하지만 기다려 봐라. 어제 산 복권만 당첨되면 이런 생활도 끝이니까.’


그는 옷장 위에서 째깍거리는 자명종 시계를 쳐다보았다. 아직 오전 열한 시였다. 갑자기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프란츠. 밥 안 먹어도 되니?” 어머니의 목소리였다. 늘 그 질문에 대한 프란츠의 반응은 좋지 못했다. 하지만 오늘 더욱 틀린 점이 있다면 그는 대답조차 할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계속해서 어머니는 방문을 두드렸다. 밖에서 아버지와 여동생의 목소리도 들렸다. 틀림없이 프란츠의 대답이 없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한 것이다. 프란츠는 누군가 자신을 구해주길 바랬다. 그러면서 전날 밤 왜 문을 잠그고 잤는지를(언제나 그랬긴 하지만) 후회했다.


드디어 아버지가 몸을 부딪쳐 방문을 부수고 들어왔다. 그들 모두는 그 자리에 굳어지고 말았다. 그도 그럴 것이, 침대 위에 양변기 하나가 멀뚱히 서 있었기 때문이다. 잠시 그들은 아들의 실종과 그 변기 사이에 어떠한 관계가 있는지 해명하기 위해 고민했다. 그러나(당연히) 결론은 나오지 않았다. 그들에게 있어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언제나 방에 틀어박혀 있던 아들이 어떠한 연유에선가 방을 뛰쳐나갔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현실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 즈음 카프카 부부는 최근 오빠의 변덕스러운 투정과 수발을 들어내느라 안색이 무척 나빠졌던 딸이 대학까지 휴학할 정도의 근심과 고생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름답고 탐스러운 한 여성으로 성장해 있음을 동시에 깨달았다. 카프카 부부는 말없이 시선을 주고받으며 딸아이를 위해서 그녀가 하고 싶어 하는 모든 것을 지원해 주어야 할 때가 왔다고 생각했다.


모두 힘을 모아 변기를 쓰레기장에 내다 버리니 카프카 양이 제일 먼저 싱싱한 팔다리를 쭉 뻗었다. 카프카 부부의 눈에 그 모습은 그들의 새로운 꿈과 아름다운 계획의 보증처럼 느껴졌다.


 


 


---------------------------------


원문 『변신』(F. Kafka)의 텍스트는 이문열 세계명작산책 9권의 텍스트를 이용했습니다.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239 꿈꾸는 자들의 도시 [21] file Mr. J 2007.06.23 1278
238 꿈꾸는 자들의 도시 [17] file Mr. J 2007.06.22 1385
237 도외시의 확대 [4] Evangelista 2007.06.17 1478
236 다락위의소피아 [9] file Evangelista 2007.05.14 3604
235 어느 프랑스인의 전말 [1] Evangelista 2007.05.13 3742
234 어느 프랑스인의 전말 [3] Evangelista 2007.05.13 3650
233 어느 프랑스인의 전말 [2] Evangelista 2007.05.13 3623
232 다락위의소피아 [10] file Evangelista 2007.05.05 2755
231 다락위의소피아 [17] file Evangelista 2007.05.01 3162
230 다락위의소피아 [19] file Evangelista 2007.04.30 3485
229 다락위의소피아 [26] file Evangelista 2007.04.29 3440
» 변기 [7] Evangelista 2007.04.27 2687
227 Bacteria [7] Evangelista 2007.04.27 1857
226 Ab Cæsar 893 : Der Blaue Löbe [1] file Evangelista 2007.03.21 2544
225 백제장 304호실 [5] file Evangelista 2007.02.18 2178
224 Cercatori [6] file Evangelista 2007.02.17 1432
223 Cercatori [5] file Evangelista 2007.02.15 1725
222 백제장 304호실 [14] file Evangelista 2007.02.13 2096
221 Ab Cæsar 893 [5] file Evangelista 2007.02.12 2803
220 백제장 304호실 [20] file Evangelista 2007.02.11 23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