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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도시 기록보관소

dest21c Bacteria

2007.04.27 22:33

Evangelista 조회 수:1857 추천: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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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cteria




세계는 그 때를 전후해 공황 상태로 빠져들었다.


시베리아의 어느 숲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정되는 이 박테리아는 엄청난 속도로 확산해 가며 지구상의 종이를 해체하기 시작했다. 마치 대항해 시대의 매독처럼 그것은 자신의 희생물들에게 여타의 자비도 보이지 않은 채 무차별적인 살상을 계속해 나갔다.


모든 고전들이 사라져 갔다. 일각에서는 극심한 피해를 입은 지역에서는 셰익스피어의 대표 비극을 현재 남아 있는 것인 햄릿과 오셀로 두 편으로 규정지어야 한다는 이야기가 오가기 시작했다. 데카르트의 명제인 Cogito ergo sum은 대도서관의 사서가 책이 분해 되기 직전에 겨우 구해 내기는 했으나 앞 단어가 소실되고 말았다. 때문에 어째서 내가 존재하는지에 대해 학계에서는 격론이 벌어졌다. 물론 모두의 기억 속에는 생각하기 때문이라는 것이 당연히 남아 있었다. 그러나 증거가 사라진 이상 사람들은 새로운 명제를 창조해 내고자 했다.


학계의 전문가들이 자신들의 권위 상실 때문에 골머리를 썩이고 있을 때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무서운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책방이 모두 문을 닫았다. 대형 슈퍼마켓의 점원들이 아침에 출근해 보니 모든 상품이 사라진 격이었다. 장사로 얻어낼 이윤의 계산이 복잡했기 때문이 아니다. 그들은 뭘 팔아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또한 출판업도 붕괴했다. 여러 가지 문제가 재차 발생했다. 대도시의 주요 거리를 점령하고 있던 거대 서점들과 출판사들이 사라지면서 건물주들은 그 건물을 다른 사람에게 판매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그것조차 불가능했다. 종이가 사라지면서 계약서를 만들 수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아니, 그 전에 그 땅이 자신의 것이라는 증거가 소멸했다. 마피아들은 재빨리 목판을 이용해 위조 땅 문서를 만들고 그 땅을 집어삼켰다. 그리고 원하는 사람에게 목판 계약서를 내세워서 판매하고자 했다. 그러나 아무도 사지 않았다. 지폐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동전만 가지고는 엄청난 대금을 치룰 수 없었다. 중앙은행이 모든 지폐를 주화로 전환하는 작업을 처리하고 있을 때 마피아들은 새로운 방법을 생각해냈다. 은행을 통해 계좌 간에 송금을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 그 집단의 대부인 돈 꼬르네오가 호화로운 자기 저택에 들렀을 때 그는 통장은 당연하고 벽이 우중충한 회색을 띠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벽지가 모두 벗겨져 시멘트가 드러난 것이다.


결국 미국 정부는 세계사적으로 가치가 있는 책자들을 모아 직접 개발한 영구 무균실에 보관하자는 결론을 내렸다. 당연히 이제 그 책은 아무도 내용을 읽을 수 없는 것이 되겠지만 그들이 사라지게 하는 것보다는 나을 거라고 모두가 생각했다. 하지만 또 여기서 뜻하지 않은 문제가 생겼다. 수많은 전문가들이 자신이 쓴 책이야말로 인류사를 관통하는 것이라고 주장한 것이었다. 미국 대통령은 바보가 아니었기 때문에 어느 권위자에게 책을 선별하게 하는 것이 바보 같은 짓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왜냐 하면 그 권위자라는 사람들도 결국 어느 파벌에 끼어 있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결국 시간을 질질 끄는 동안 책들은 거의 사라졌다.


그러나 단 하나, 대한민국에서는 상당히 피해가 적었다. 이 극동의 반도국은 다른 나라에 비해 상당히 많이 남은 문화적 문자적 내용을 이용해 A.B.(After Bacteria) 원년 이후 강력한 문화 대국으로 떠오르게 되었다. 물론 시베리아에서 시작된 이 세계적 공포는 남극이라고 해서 남겨 두지 않았다. 그런데 어떻게 그 나라에서는 문자가 무사할 수 있었는가?


그 나라 국민들은 박테리아가 생겨나기도 전부터 이러한 일을 예상하고 있었던 것 같다.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의 페이퍼게이트 교수의 말에 따르면 그들은 진작부터 모든 책자를 웹상에 디지털화 하는 작업을 해 왔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처음부터 지난한 작업의 비효율성을 조금이라도 없애기 위해 저자들과 저작권에 대한 협의를 하지 않았다는 것 뿐, 그들의 그러한 작업은 결국 세계를 몽매에서 구한 것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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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Umberto Eco의 미네르바 성냥갑 1권 중 「넝마 종이의 페스트」를 패러디한 것입니다.


불법 복제 하지 맙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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