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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도시 기록보관소

dest21c 백제장 304호실

2007.02.13 09:55

Evangelista 조회 수:2096 추천:15

extra_vars1 제 1부 : Tower 
extra_vars2 C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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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안녕하세요. 이예희예요. 상엽 카운셀링은 보이는 이미지대로 손님이 잘 없답니다. 제가 입사한지 사흘째가 되는 금요일인데 아직까지 한 명도 못 봤어요. 일자리를 구하러 어떤 여학생이 왔었지만 사장님이 그냥 쫓아내 버리셔서 그 쪽은 계산할 필요도 없고요. 어쩐지 일 않고 멍하니 앉아서 책 보다가 퇴근하는 일이 이틀째 되니 꽤 좋은 직장에 온 게 아닌가 하고 마음이 풀어지더라고요.


하지만 그건 이제 별로 중요한 얘기가 아니니까 접어 두고, 어쨌든 오늘 손님이 하나 왔답니다. 수갑을 찬 게 범죄자 같았는데 데리고 온 사람은 여경관이었습니다. 윗 단추를 두개나 풀고 맨발에 면바지 차림으로 벽에 기대 앉아 담배를 피우던 사장님은 안 어울리게 반가워하며 친절하게 맞이해 주었습니다.


뭐랄까, 이번에 체포한 살인범이라고 하면서 사장님께 뭔가 부탁하는 것 같았어요.


“그런 일은 이제 싫어. 출소 예정자 대상 인생 상담이라면 해 준다니까. 이런 건 데려오지 마.”


어쩐지 아무 일도 하지 않아서 심심해져 있던 저는 슬쩍 끼어들었습니다.


“일이잖아요. 일 해야죠.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직원인가요?”


여경관이 물었습니다. 그렇다고 대답했더니 별안간 그녀가 사장님에게 다가가 어깨를 짚었습니다.


“구치소에 들어가고 싶어?”


“뭔 잡소리냐.”


“여직원은 고용하지 말라고 했잖아.”


“그거야 나랏님 사정이지. 내 회사 직원을 내가 뽑는데 왜 상관을 하나?”


“닥쳐, 9급 공무원.”


“누가 9급이래. 난 급수 없어. 너야말로 그렇게 높은 급수도 아니잖나.”


“사장님 공무원이었어요?”


분위기가 험악해지는 것 같아서 참견을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둘이 잠시 제 쪽을 쳐다보는 것 같더니 여경관이 이번엔 내게 다가와 얼굴을 바싹 들이대고,


“더 늦기 전에 해고해 줄 테니까 어서 떠나요.”


뒷편에서 어딘가 멍한 눈을 한 살인범의 붕 뜬 표정이 험악한 그녀의 표정에 오버랩되었습니다. 조금 무서웠습니다. 그 때 사장님이 다가왔습니다.


“필요할 때만 시켜 먹으면서 재량권 정도는 용인해 달라고. 이번엔 도와줄 테니까 쟤는 남겨 줘. 이제 직원 찾는 일도 지긋지긋해.”


여경관이 팔짱을 낀 채 잠시 허공을 응시하더니 한숨과 함께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리고는 예의 범죄자를 끌고 와 의자에 앉혔습니다. 저도 아차 하며 녹차를 준비하기 시작했답니다. 그나저나 왜 사장님은 녹차 티백만 박스째 들여놓은 걸까요. 가끔은 다른 것도 괜찮을 것 같은데. 커피라던가.


“과실치사라고 할 법한 일이긴 한데 말하자면 약간 복잡해.”


여경관이 입을 열었습니다. 물을 끓이면서 신경을 집중하고 뒤에서 들리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그저께 밤 열한 시 정도에 아파트 안방에서 부부싸움 중에 부인을 부엌칼로 찔렀어. 그런데 이상한 게 옆에서 목격한 딸의 증언으론 이 자가 아니라 전혀 다른 사람이 범인이라는 거야. 그리고 또 이 쪽에서는 부인이 칼을 들고 계속 휘두르며 바가지를 긁길래 칼을 빼앗으려다가 넘어지면서 그대로 가슴을 찌르고 말았다고 주장하고 있고. 대충 현장으로 봐선 그 말이 거의 맞는 걸로 보이는데 딸이 증언한 게 마음에 걸려서. 게다가 이 자도 넋을 빼고 있고.”


“이 사람 이름은?”


“정양석. 일용직, 사십 팔세.”


“정양석 씨. 이 경찰이 한 말이 사실인가요?”


사장님이 살인범에게 물었습니다. 드디어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하려나 봅니다. 원래 저는 이런 걸 본 적이 한번도 없어서, 앞으로 일하려면 잘 봐 두는게 좋겠다 싶어 흘끔흘끔 뒤를 돌아보기 시작했습니다. 스펙타클한 건 전혀 없었지만요. 그저 앉은 채 물어보는 것 뿐이었습니다. 평범하게 취조하는 게 더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했어요. 하긴 우린 경찰이 아니지만. 어쨌든 정양석이란 아저씨는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조금 마음이 두근두근해졌어요. 곧바로 사장님이 멍청한 질문을 하는 바람에 열기가 완전히 식어 버리긴 했지만.


“그래서 문제가 뭐야?”


“무슨 바보같은 소리예요? 증언이 서로 안 맞는다잖아요!”


저도 모르게 말이 나왔습니다.


“그건 내가 알 바 아냐. 해야 할 일은 그런 종류가 아니라고. 탐정도 아니고. 지금까지 한 얘기만 들으면 이 사람 상담을 받아서 진상을 캐낸다거나 하는 게 되겠지만 말이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내가 알 바 아니지.”


“아가씨는 조용히 있어요. 듣다 보면 알게 될 테니까.”


경관 언니가 어쩐지 조금 재수 없게 보이는 순간이었습니다.


“문제는 딸 쪽이야. 사건 당시부터 전혀 잠을 못 자면서 계속해서 뭔가를 두려워하고 있어. 때때로 이상한 말을 중얼거리면서.”


“어디지?”


사장님이 담배에 불을 붙였습니다. 녹차를 들고 가던 저는 재빨리 창문을 열었지요. 초봄 바람은 조금 쌀쌀했어요. 남청색 담배 연기가 창을 통해 흩어졌습니다. 여경관은 모 병원이라고 대답해 주었고 사장님은 녹차를 마시며 잠시 뭔가 생각에 잠긴 듯 보였습니다.


“뭐라고 했는지 대충 기억 안 나?”


“놀리지 말라고 했던가?”


“아마 그런 말은 아니었을 거야. 가서 만나봐야겠군.”


세 사람 중 녹차를 끝까지 다 마셔 준 사람은 정양석이란 아저씨 하나뿐이었답니다.




여경관이 가르쳐 준 주소로 사장님의 차를 타고 달렸습니다. 백제장 주위는 워낙 길이 좁고 해서 차를 주차한 곳까지 가는데 걸어서 십 분이나 걸렸어요. 게다가 기대조차 하지 않은 것 치고는 외제차! 물어보니 혼다 시빅Honda Civic이라고 대답해 주었습니다. 그래봐야 전 차에 대해서는 아는 게 없지만요. 연비가 20이 넘는다느니 어쩐다느니 말했지만 알아들었을 리가 없지요. 딱 하나 이해한 건 삼천 오백만원 일시불로 샀다는 것이었습니다. 어쩌면 사는 곳이나 인상과 다르게 꽤 돈이 많을지도 모르겠어요. 제 월급도 그렇고.


“그거? 집 구할 돈으로 차를 사서 그래. 벌이는 좀 되는 편이지만 그렇게 부자는 아냐. 304호실도 친구 부모님이 하시는 여관이라서 월세처럼 쓰는 거고.”


“차라리 차에 사시지 그러셨어요?”


“안 되지. 차 안에 히터 틀어 놓고 자면 질식사한다.”


모 병원에서 무뚝뚝한 접수계 간호사의 안내를 듣고 찾아간 4층, 아니 F층의 개인실에는 고등학생 정도로 보이는 여자아이가 누워서 멍하니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습니다. 여자아이는 우리가 들어오자 잠시 고개를 돌려 이 쪽을 보고는 다시 천장으로 시선을 돌렸습니다.


“경찰로부터 카운셀링 일을 맡아서 찾아온 사람들입니다. 저는 토키와 시게루, 이 쪽은 조수인……?”


“이예희라고 해요. 까먹은 거예요?”


“미안.”


처음 만났을 때처럼 전혀 미안해 보이지 않은 사과였지만 신경 쓰지 않기로 했어요. 이틀동안 이 사람이 얼마나 무신경한지는 잘 봤으니까.


“일본인이신가요?”


“재일교포 2세 출신입니다. 단도직입적으로 묻겠습니다만 환각이 보이시나요?”


“아뇨……. 네……. 네. 냉정하게 생각하면 환각이겠죠.”


소녀의 대답이었습니다.


“일단 부모님 일은 정말 유감입니다.”


“그런데 당신들이 경찰에서 나왔다는 걸 어떻게 믿죠?”


들은 대로 상당히 경계하는 인상이었어요.


“경찰 언니가 온 적이 있지요? 그 사람에게서 부탁을 받았습니다.”


“그렇군요. 뭘 묻고 싶으신데요?”


사장님이 잠시 뜸을 들이는 것 같았습니다. 아니, 잠시 뭔가 생각하는 듯한 눈치였습니다.


“환각이 어떤 종류인지 가르쳐 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꼭 말해야 하나요?”


“생각하기 싫으시면 말씀하시지 않아도 됩니다만 지금 이 상태에서 벗어나기는 힘들겠죠. 저흰 도와드리러 온 거니까요. 아가씨가 말씀하신 ‘다른 범인’ 때문에 수사가 혼란을 빚고 있습니다. 혹시 어머님을 살해한 범인이 그 ‘환각’으로 생각되는 무언가인가요?”


그녀는 끔찍했던 그 일이 생각나는 듯 양 팔로 몸을 감싸더니 고개를 숙이고는 무슨 말인가를 중얼거리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전혀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사장님이,


“놀리 투르바레 키르쿨루스 메오Noli turbare circulus meo. 방금 전에 이렇게 말씀하신 것 맞나요?”


“제가 그렇게 말했나요?”


힘들어 보이는 표정의 소녀가 오히려 되물어 왔습니다.


“말했습니다. 놀리 투르바레 키르쿨루스 메오, 아르키메데스가 한 유명한 말이죠. 내 원을 침범하지 말라. 결국 그 때문에 죽었으니 할 말이 없지만. 어쨌든 그 환각에 대해서…….”


갑자기 다시 온몸을 웅크리더니 똑같은 말을 반복했습니다. 조금 놀랐어요. 이건 마치, 단순한 카운셀링이라기보다는 작두를 타는 무당처럼 위태위태한 것이 느껴져서. 사장님은 입을 다물고 그녀를 가만히 응시했습니다.


“진정해 주세요. 환각에 대해서 제가 물어보는 일은 없…….”


“놀리 투르바레 키르쿨루스 메오…….”


사장님의 말에 또 한번 그녀가 몸을 떨며 그 알 수 없는 외국어를 내뱉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사장님은 슬며시 미소를 짓는 것 같았습니다.


“묻지 않도록 하죠. 아무래도 아가씨가 본 환상은 아버님에게 겹쳐 있었을 겁니다. 아버님이 집에서 어떤 분이었죠?”


“나쁜 사람이었어요.”


곧바로 대답이 튀어 나왔습니다. 마치 단정 짓기라도 하듯 강한 어투로, 그러나 여전히 힘이 빠진 표정을 지으며 그녀는 대답했습니다.


“집에서 폭력을 행사했나요?”


“네. 줄곧, 언제나 나와 엄마를 때렸어요.”


“술에 취해서 말입니까?”


“악마예요. 술 같은 건 필요도 없었어요. 술에 취해서 가족을 때린다면 그것만으로도 나쁜 짓이지만 아버지는 술을 마시지 않고도 늘 주먹을 휘둘렀어요. 여길 보세요.”


그러면서 소녀가 이불을 걷고 다리를 걷었습니다. 정강이에 푸르스름하게 멍이 들어 있었어요. 예전에 뛰다가 식탁 의자에 같은 곳을 부딪친 적이 있었던 저도 소름이 쫙 돋는 것 같았지요. 어쨌든 잘못 차이면 엄청나게 아픈 곳 아니겠어요?


“그 날 엄마와 싸울 때 말리다가 차였어요.”


“그날 두 분이 왜 싸웠는지 혹시 아십니까?”


“몰라요, 그런 건. 싸웠다기보다 일방적으로 때린 거죠. 언제나 그랬으니 소소한 게 기억나지는 않아요.”


사장님은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하는 것 같았습니다. 이런 정도로 벌써 끝인가 생각할 즈음 그가 다시 입을 열었습니다.


“내일 다시 오겠습니다. 마음 편히 먹고 잘 쉬고 계시기 바랍니다. 어쨌든 그 사람은 구속된 상태니까요. 그런데 아가씨, 이름이 뭐죠?”


“정미선이라고 해요.”


사장님이 웃으며 고개를 숙여 보였어요. 저도 황급히 따라 인사하고는 얼른 뒤를 따라 나섰습니다. 한동안 말없이 걷던 사장님은 차 문을 열며 입을 열었습니다.


“어떻게 생각해, 그 아가씨 말?”


“평범한 동네 아저씨라고 생각했는데 그런 사람이었군요. 전 부모님이 사이가 좋으셔서 그런 건 잘 모르지만 듣기만 해도 정말 나쁜 사람이란 거, 확실히 알 수 있겠어요.”


그러면서 저는 조수석에 올랐습니다. 그러자 사장님이 웃으며 시동을 걸었습니다.


“완벽한 거짓말쟁이라고 생각하는데, 나는.”


“네? 무슨 소리예요?”


“일단, 확실하다고까지 말할 수는 없겠지만 지금 그녀는 두려움에 떨고 있지 않아.”


제가 그저 고개를 갸우뚱 하는 것으로 질문을 대신했습니다.


“첫째로 우리들이 들어갔을 때의 반응이 생각보다 심각하지 않았다. 여기서 일단 의문이 들었어. 그리고 둘째, 처음 보는 사람이라면 강박적으로 두려움에 쫓기고 있을 때는 절대로 안심을 하지 않아. 그런데 그녀는 우리가 김 경위 소개를 받고 왔다고 하자 그냥 넘어가 버리고 말았어.”


“김 경위요?”


“아까 그 언니 말이다. 김경화 경위라고, 근처 경찰서 형사계장이야. 공석 임시이긴 하지만. 저래 뵈도 도합 칠 단이라니까. 어쨌든 그 뒤로 정미선 양이랬던가, 그 아가씨는 끝까지 크게 긴장하는 일 없어 우리와 이야기를 했어. 충분히 의심할 만 하지.”


“듣고 보니 그렇기는 하네요. 하지만 그것만으로 거짓말쟁이라고 단언할 수는 없잖아요?”


“그래. 말한 대로 확실하다고는 할 수 없지. 하지만 의심스러운 부분이 너무 많아. 특히 환각에 대한 부분인데 말하는 걸 극도로 꺼려하고 있어.”


“맞아요. 알 수 없는 소리를 하고. 혹시 자기 방어 본능이란 건가요? 무의식중에 말하는 걸 꺼린다던가?”


“그게 오히려 수상한 거다. 아마 그녀가 연기하고 싶었던 건 가정의 불행으로 정신에 문제가 생긴 불쌍한 소녀였을 거야. 나 같은 사람이 오는 걸 기다렸겠지. 최소한 착란 증세를 일으키고 있다는 인상을 심어 주려고 굉장히 노력했을 거야. 그 라틴어도 그렇고. 알아봐야겠지만 예전부터 주위 사람들에게 자신이 라틴어 공부를 하고 있다는 걸 어필하고 다녔을 테지.”


역시 이번에도 고개를 까딱 하며 눈으로 질문했습니다. 도통 알아들을 수가 없었거든요.


“사람이 한 가지에 깊이 빠지면 어느 정도 그에 관련한 행동 양식이 나타나는 경우가 있어. 직업병 같은 게 거기에 속해. 그런 메커니즘을 그녀는 알고 있었던 것 같아. 나 같은 사람을 기다렸다는 건 바로 그거다. 주위를 조사했을 때 라틴어에 빠져 있다는 걸 은연중에 호소해서 라틴어로 된 방어 기제가 작용하는 것처럼 꾸몄을 가능성이 있지. 게다가 그런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렸을 때 라틴어를 모르는 일반 경찰들이라면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카운셀러들에게 정신 감정을 요구하게 되어 있으니 그걸 이용했겠지. 내가 환각에 대한 얘기만 꺼내도 반응한 것도 그렇고. 슬쩍 시험해 봤는데 그대로 걸려들더군. 허술하기 짝이 없어. 보통 그런 경우엔 익숙한 언어를 쓰게 되니까 당연히 한국어로 말했어야 해. 심리학을 아는 사람을 끌어들여야 한다는 데에 집착한 나머지 자기가 심리학에 대해서 제대로 알지 못한다는 걸 잊고 실수한 거다.”


“그럼 사건 자체가 그 애가 계획한 거라는 얘긴가요?”


“아까도 얘기했지만 확실한 건 아니야. 증거가 없으니까. 그 조인트에 멍이 생긴 것도 의심스럽고, 결론적으로 정양석 씨가 가정 폭력을 휘두르는 사람이라는 것 자체가 거짓말일 가능성이 높아. 고개 좀 그만 흔들어 대. 가르쳐 줄 테니까. 이거다. 술에 취하지 않고도 언제나 가족에게 폭력을 휘두른다면 술에 취해서 그런 짓을 할 때보다 빈도가 높게 마련이야. 사실 당하는 입장에서 이 사람이 술에 취했는지 안 취했는지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만 별 구분 지을 것 없이 무조건 때린다면 피해자는 이 자가 무조건 폭력을 휘두르는 인간이라고 인식할 수밖에 없어. 그럴 경우는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어서 그 사람에게 상당히 공격 성향이 두드러진다고 볼 수 있지. 그런데 아까 우리가 본 정양석 씨는 어땠지? 그건 폭력성을 억누르고 있는 사람의 모습이 아니야. 녹차를 평온하게 끝까지 다 마신다거나 내 질문에 죄를 시인하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등 평범한 모습을 보여 줬어. 단 한 마디 변명도 없이. 가족에게만 이유 없이 폭력을 행사한다는 건 명백히 어색해. 주위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알 수 있겠지.”


“탐정은 안 하신다고 하지 않으셨나요?”


“프로니까 맡은 일은 확실히 해야지. 결과적으로 이렇게 된 거니까 별 수 있나. 하여간 그 조인트의 시퍼런 멍, 그건 누가 봐도 확실히 정양석 씨에게 차인 게 아니야. 사람에겐 발가락이 달려 있잖아? 그리고 발톱도. 신발을 신지 않고 차게 되면 발톱 때문에 까진다던가 대미지가 적어서 멍이 들지는 않아. 분명히 그 애는 싸움을 말리다가 그랬다는데 그 싸움이란 게 현관에서 가장 먼 안방에서 벌어졌어. 신발을 신지 않고 있었겠지. 정양석 씨는 일용직, 흔히 말하는 노가다잖아? 그렇다면 신발에 흙이나 먼지가 많이 앉아서 집이 더럽혀졌을 거야. 현장을 봐야 알겠지만 아마 경찰 쪽에서 외부인 타살 가능성을 전혀 신경 쓰지 않은 걸 보면 신발을 신고 집 안에 들어간 흔적은 없을걸.”


막힘없이 술술 나오는 사장님의 추리를 멍하니 듣고 있었습니다. 그냥 그런 사람인 줄 알았는데 머리가 이렇게 잘 돌아가는 사람이었구나, 약간 감탄이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그 때 그가 제게 질문을 하나 던졌습니다.


“이 사건 자체에 가장 수상쩍은 부분이 하나 있는데 맞춰 보지 않을래?”


3초 정도 생각했습니다.


“모르겠는데요.”


무슨 말을 해도 결국 이 사람은 알고 있을 테고 깊게 생각해 봐야 떠오르는 것도 없을 것 같았으니까요.


“그래선 월급 도둑이지.”


조금 화가 났지만 참았습니다.


“아파트란 건, 부엌이 거실에 바로 붙어 있는 경우는 있어도 안방에 붙는 경우는 없지?”


“아. 맞아.”


적당히 맞장구를 쳤습니다. 어차피 사장님이 또 술술 말해버릴 거 바보 취급을 받고 싶지는 않았거든요. 하지만 우리 사장님은 기대를 무참히 짓밟았습니다. 뭔데? 하면서. 정말이지, 그런 뒤로 돌아 들어오는 공격이 어디 있는 건지.


“모르는 걸 아는 척 하는 사람은 군자가 될 수 없다.”


“되고 싶지도 않네요……. 수상한 게 뭔데요?”


“거기까지 말해 줬는데도 모른다는 거야? 왜 우발적으로 벌어진 싸움인데 피해자가 굳이 부엌까지 가서 부엌칼을 가지고 다시 안방으로 돌아온 걸까? 그런 얘기.”


그러고 보니 그랬습니다. 분명히 김 경위님이 맨 처음 설명한 것에 그런 상황이 있었어요. 사람 심리란 게 참 묘해서 전혀 갈피를 못 잡다가도 이렇게 되면 대체 왜 몰랐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거 있죠?


“솔직히 경찰이 그것도 눈치 채지 못했을 거라고는 생각 안 해. 김 경위 정도면 벌써 그 애를 만나보고 내가 말했던 걸 다 추리했을 거야. 하지만 뭔가 꼬인 부분이 있어서 내가 그걸 풀어 줬으면 하는 거겠지. 지금부터 정미선 양의 학교와 최근까지 정양석 씨가 일하던 공사장, 그리고 아파트를 다 돌아봐야겠어. 그저 추리를 확인하는 정도로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사장님의 차는 병원 주차장에서 나오다가 옆에 주차한 차량을 아슬아슬하게 긁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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