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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도시 기록보관소

dest21c 백제장 304호실

2007.02.11 05:57

Evangelista 조회 수:2397 추천: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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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上. 토키와 시게루




안녕하세요. 이번에 간신히 취직자리를 구한 이예희라고 합니다. 올 2월에 대학을 졸업했으니까 이제 사회생활 2개월 차인 햇병아리예요. 제가 일하고 있는 곳에 대해 소개를 해 볼까 하는 마음으로 이렇게 자판을 두드리게 되었습니다.


사실 부모님과 싸우고 어렵게 들어간 미대에서 전혀 쓸만한 걸 못 배우고 나와서 걱정 많이 했었답니다. 졸업을 앞두고 급한 대로 아르바이트라도 구해 볼까 하고 거리를 돌아다니는데 전봇대에 달필로 인력 급구라고 해 놓은 게 보이더라고요. 종이에 써서 붙인 것도 아니고 붓 같은 걸로 직접 그 회색 기둥에 썼더군요. 뭔가 호기심이 동해서 전화를 해 봤더니 자다 일어난 듯한 목소리의 남자가 받고는,


“전연령 등급의 상담역이야.”


라고 말하더군요. 어리둥절해 되물었더니,


“아니, 12세 정도.”


라는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어쨌든 사람이 부족하다더군요. 무슨 일인가 해서 서울특별시 모 구 모 동 몇 번지 304호라는 주소를 받아서 가 봤는데 백제장이라는 여관이었습니다. 연령 등급을 들먹이는 것도 그렇고 어쩐지 엄청나게 수상한 느낌이 들었어요. 그래도 햇볕 쨍쨍한 대낮이었으니까 뭣하면 도망쳐 나올 생각을 단단히 먹고 조심스럽게 들어갔지요.


304호실 방을 노크하자 문이 열리며 말쑥한 정장 차림의 남자가 나왔습니다. 아까 전화를 받은 그 사람인가 생각하고 있는데 일단 들어오라며 뒷걸음질쳐서 간이 싱크 쪽으로 가더라고요. 의외로 여관 치고는 호텔방처럼 깨끗하게 꾸며져 있었답니다. 아마 원래 있어야 할 침대가 어디로 가고 없어서 더 넓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어요.


이리저리 두리번대고 있는데 남자가 녹차를 가지고 와서 마시라고 주었습니다. 뜨거운 건 잘 못 먹는 체질이기에 일단 테이블에 놓고 맞은편에 마주 앉는 남자에게 어떤 일을 하는지 물어봤죠.


“삶이 괴로운 사람들 카운셀링.”


그 때 전 이 여관방 자체가 더 괴롭다고 생각했습니다.


“카운셀링은 내가 하는 거고, 비서랄까 접객이랄까 그런 걸 해 줄 사람이 필요했거든.”


“이상한 업소 아닌가요?”


스스로 생각해도 조금 무례하다 싶은 질문이었지만 어쩐지 분위기상 확실히 해 두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습니다.


“돈 벌고 싶으면 더 쉬운 일도 많아. 구태여 봄을 팔 필요가 있나. 그러다 걸리면 내가 카운셀링을 받아야 할 판인데. 형사들한테.”


여전히 무덤덤하게 그는 대답했습니다.


“하기사 이런 어두침침한 공간에서 믿을 수야 있겠는가만.”


스스로 그런 말하기 민망하지 않나요?


“아르바이트건 정식 입사건 괜찮아. 이래 뵈도 코스닥에 상장까지 돼 있어.”


뻥은 좀 골라가며 치는 게 상대를 속이기 쉬울 텐데 - 주머니를 뒤적거리며 뭔가를 찾고 있는 남자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며 생각했습니다. 그 때 그가 주머니에서 종이쪽지를 하나 꺼냈습니다. KOSDAQ 상장 기업 운운하는 글귀가 쓰여 있었어요. 그래서 제가 웃으며 말했죠.


“사장님은 상장 기업 증서 본 적이 없죠?”


“미안.”


의외로 간단히 사과 한마디 하고 종이를 도로 주머니에 집어넣었습니다. 그리고 녹차를 한 모금 마시더니 말을 잇더군요.


“사람이 급하긴 해. 너까지 돌아가 버리면 벌써 아홉 명 째야. 다들 이 분위기에 떨다가 이상한 오해들을 하고 그냥 가더라고. 그래서 이번엔 나도 내 살을 잘라 먹는 심정으로 제안 하나 하겠다.”


이번엔 이라니 어디서부터 이번이고 저번인지 알 수 없었지만 일단 들어 보기로 했습니다.


“주급 육십만 원, 근무시간 평일 여덟 시간.”


“할게요.”


이렇게 해서 나는 엉겁결에 취직하고 말았습니다. 친구들이 말하던 대로, 역시 전 은근히 돈을 밝히나 봐요. 그가 너무 기뻐하는 바람에 어떻게 되물릴 수도 없는 일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럼 계약서에 서명을…….”


꽤나 촐싹대던 남자는 테이블 아래쪽에서 빳빳하게 펴진 종이를 하나 꺼내들어 재빠른 솜씨로 제 앞에 밀어 놓았습니다. 신문 대금 지로 용지였습니다. 그것도 삼 개월 전 치.


“농담이야.”


그러더니 다시 테이블 밑으로 손을 넣어 이번엔 제대로 된 계약서를 두 장 들어 내밀었습니다. 내용을 꼼꼼히 훑어 본 후 수상한 점이 없어서 믿어 볼까 하는 식으로 서명하려다가 문득 생각이 들어 한 가지 더 요구하기로 했습니다.


“뭔데?”


“제가 그만두고 싶을 때 그만둘 수 있도록 할 것.”


“너무하는구만.”


“아홉 번째라면서요?”


그러자 남자는 투덜대면서 맨 밑에 제가 말한 대로 한 줄씩 기입했습니다. 어쨌든 둘이 서명을 하고 저는 상당히 유리한 조건으로 취직하게 되었답니다.


“그런데 사장님 성함이 좀 특이하네요? 상엽수?”


常葉秀라고 된 서명이 이상해서 제가 질문했습니다.


“토키와 시게루라고 읽는 거야. 난 일본인이거든.”


그래서 전 테이블 한쪽에 놓여져 있던 그 사람의 사진이 들어간 주민등록증을 집어들었습니다. 어째서인지 이름이 수정 테이프로 지워져 있어서 수상쩍긴 했지만.


“……재일 교포 2세다.”


믿을 리가 있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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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下. 이예희




상엽 카운셀링 주식회사 - 사실 주식 같은 건 없다만, 하여간 그 회사의 사장인 토키와 시게루라고 한다.


그 날은 정말 피곤한 날이었다. 방에서 잠을 자고 있는데 전화가 와서 받아 보니 일자리를 구하고 있는 것 같았다. 벌써 열아홉 명이 못 하겠다고 걷어차고 나간 터라 이번에는 제대로 잡아야겠다 싶어서 친절하게 설명하려고 했는데 숙취 때문인지 머리가 아파서 대충 불성실하게 주소만 가르쳐 주고 뻗고 말았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그렇다면 지금 찾아오지 않겠나. 얼른 일어나서 대충 씻고 물을 끓인 후 구석에 처박아 둔 양복을 주섬주섬 주워 입으려는데 보니 마의 등 쪽에 담배 구멍이 뚫려 있었다. 에라 모르겠다 하고 그냥 입은 후 절대 등을 보여주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머리가 너무 아팠다. 이럴 줄 알았으면 어젯밤엔 술을 마시지 않는 건데.


물이 끓은 주전자에 녹차 티백을 넣어 젓고 있는데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예쁘장한 아가씨가 서 있었다. 적당히 안내해서 테이블에 앉히고 나는 뒷걸음질쳐서 - 최대한 등을 보이지 않도록 애써가며 녹차를 잔에 따라 건네었다.


잠시 방을 둘러보던 그녀는 조금 실망하는 눈치였다. 정리는 꽤 잘 해 놨지만 귀찮아서 형광등을 갈아 끼우지 않아 안 그래도 북향인 방이 더 어둑어둑했다. 하지만 그런 얘기를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게다가 녹차는 일찌감치 신경도 쓰지 않는 게 벌써 마음이 떠나간 듯, 불안했다.


“여긴 뭐 하는 곳이죠?”


그래서 나는 정직하게 카운셀링 업체라고 대답했다. 어쩐지 다시 한번 실망하는 눈치가 역력했다. 더 이상 혼자 일하기는 싫고 반드시 사원을 둬야 하는 마당에 부담을 줄 수는 없지.


“카운셀링은 내가 하는 거고, 비서랄까 접객이랄까 그런 걸 해 줄 사람이 필요했거든.”


“이상한 업소 아닌가요?”


대번에 물어 온다. 당연히 아니지만 이 놈의 방구석이 방구석이니만큼 뭐라 할 말이 없다. 적당히 횡설수설해 가며 어쨌든 그런 곳이 아니라고 어필했다. 절대 분위기를 바꿔야 한다. 이럴 때를 위해 숨겨 둔 코스닥 상장 증서(가짜)를 꺼내 내보였다. 그러자 그녀는 상큼한 미소를 지으며 이건 가짜가 아니냐는 식으로 비꼬았다. 체면이 말이 아니다. 미안하다고 짧게 말한 후 녹차를 마시며 숨을 돌렸다. 이렇게 된 이상 감정에 호소하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 현재 회사 사정을 간략히 말하고 도와줄 것을 간곡히 부탁했다. 단, 열아홉 명이 그냥 가 버렸다고 할 수는 없어서 대충 열 명 정도 줄여 말했다. 그런데 말 하는 동안에도 눈치가 심상치 않은 게 꼭 스무 명 째를 기록할 것 같은 분위기인 것이다. 하는 수 없이 마지막 카드를 꺼내기로 했다.


“주급 육십만 원, 근무시간 평일 여덟 시간.”


“할게요.”


감사한다, 자본주의. 돈이야 넉넉하게 벌리니까 문제는 없을 거다. 어쨌건 그 즈음은 술이 마구 올라와서 그런지 반쯤 착란 상태였던 것 같다. 계약서라고 내민 쪼가리가 연체한 신문 대금 고지서였던 걸 본다면 말이다. 재빨리 농담이라고 얼버무리고 진짜 계약서를 꺼내 내밀자 헐렁해 보이는 인상과는 달리 무진장 꼼꼼하게 살펴보는 것이었다. 노예계약이라던가 나중에 귀찮아질 만한 건 쓰여 있지 않으니 제발 빨리 서명하고 돌아가 다오. 더 이상은 몸이 못 버틴다. 머리가 지끈거린다.


“저기, 한 가지 더 추가해도 될까요?”


“뭔데?”


두통 때문에 신경이 날카로워져 있어 나도 모르게 거칠게 내뱉고 말았다. 하지만 다행히도 그다지 신경쓰지 않는 듯 하다.


“제가 그만두고 싶을 때 그만둘 수 있도록 할 것.”


“너무하는구만.”


그러자 자기가 아홉 명 째가 아니냐면서 숫제 협박하는 태도로 나왔다. 완전히 잘못 걸렸다. 술 냄새가 새어 나가도 좋다. 입맛을 쩍쩍 다시며 구토를 참았다. 그만두려고 하면 돈으로 막으면 되겠지, 하며 간신히 그 조항을 집어넣고 우리는 사인을 끝냈다.


이름이 이예희라고 하나? 이름도 예쁘장하니 좋구만. 이제 돌아가 줘, 제발 - 그런데 이 아가씨는 아직도 묻고 싶은 게 남았는지, 단순히 날 괴롭히고 싶었던 건지 이번엔 이름을 가지고 트집을 잡는다. 길게 설명하기 귀찮아서 대충 일본인이라서 그렇다고 말했더니 납득하기는 커녕 내 주민등록증을 들고 날 몰아세운다. 이름을 미리 가려 놔서 다행이지 안 그랬으면 두고두고 귀찮아질 뻔 했다.


이젠 목소리도 잘 나오지 않는다.


“……재일 교포 2세다.”


그러자 그녀가 싱긋 웃고 일어서서 자기 몫의 계약서를 가방에 집어넣고 돌아 나갔다. 나는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고 뒤로 넘어져 완전히 가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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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연재입니다-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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