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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도시 기록보관소

dest21c Automobile

2008.11.30 07:48

Evangelista 조회 수:1801 추천: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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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김 아무개 씨의 (여태까지의) 불행 경력




서양의 어느 훌륭한 사람이 말하길 행복한 가정은 다 똑같이 보이지만 불행한 가정은 그 불행의 종류도 제각각이라고 하더라. 지금은 가정이고 나발이고 없는 김 아무개 씨의, 그래도 가족이라는 범주 안에서 살던 시절의 불행에 대해서 따져 보자면, 그 불행의 유형이라는 것이 너무나도 유니크한 나머지 일반적인 사람들은 들어 봐도 단순히 얕고 표면적인 정도의 인식밖에 할 수 없다고 한다. 가령 이런 것 말이다. “아, 저 사람 정말 불행하구나.” 이게 다다. 혹은 술자리에서 오히려 재미있는 개그의 차원으로 전환되어 버린다. “그 녀석 진짜 불쌍하다니까.” 적당히 불행해야지 동정이라도 할 수 있겠는데 이 사람은 정말로 상태가 안 좋은 셈이다.


자세히 말해서 어땠는가, 지금부터 들려주겠다. 일단 김 아무개 씨가 세 살이 되던 해 회사에 출근하던 아버지가 희한하게도 복잡하게 차가 막히던 출근시간 서울 도심에서 차에 치어 죽었다. 결국 그는 편모 집안에서 자라나게 되었다. 그랬는데 그 편모가정이라는 것조차 오래 가지 못한 것이, 삼 년 뒤 여섯 살 때 어머니가 고층 건물 옥상에서 일하다 추락하여 하필이면 정차해 있던 버스 위에 떨어져 죽었다. 이로써 그는 홀로 외로이 살던 조부에게 맡겨지게 되었는데 이게 또 보통 일이 꼬이는 것이 아니라 열 살이 되자마자 할아버지가 골목길에서 갑자기 튀어나온 1톤 트럭에 놀라 심장 마비로 생을 마감했다.


일단 여기까지만 말해도 보통 맛 간 인생이 아니다. 듣는 사람에 따라서는 왜 이 이야기가 술자리의 농담 타임에 나오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솔직히 말해서, 쓰고 있는 나조차도 ‘이걸 정리해 보니 정말 대단하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어쨌든 이야기를 계속하도록 하자.


어영부영 하다 보니 졸지에 천애고아가 되어 버려 작은 고아원으로 가게 되었다. 그러나 이쯤 되면 불행이 그를 쫓아다니는 것인지 그가 불행을 불러들이는지 모르게 될 판이라, 열 세 살이 되고 보니 알코올 농도가 규정을 넘어선 운전자가 대형 레미콘을 몰고 고아원을 들이받는 바람에 건물 한 편이 아작나고 돈이 없는 고아원 사람들은 쫓겨날 수밖에 없었다더라. 이 때부터 김 아무개 씨는 거리를 전전하며 살게 되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내 입장에서는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그나마.) 그럭저럭 조직폭력단 밑에 들어가게 되어 일을 배우던 차에 어떤 선배 깡패가 조직 돈을 슬쩍 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그런데 웃기게도 이 자식이 자기는 절대 그러지 않았다고 발뺌을 하는 게 아닌가 말이다. 그러면서 김 아무개가 수상하다고 뻗대는데 신의 장난이라, 대수롭잖게 생각했던 김 아무개 씨의 짐 속에서 정말로 돈다발이 나와 버렸다.


이리하여 그는 열 여섯살이란 나이에 반쯤 고장나 배기 상태 불량, 엔진 상태 엉망인 봉고차에 짐짝처럼 실리게 되었다. 예전부터 이 차는 가급적이면 타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던 참이었다. 왜냐 하면 간혹 몰래 시체를 옮기는 데 쓰는 차였기 때문이다. 어쨌든 한 많은 인생이었다느니 (솔직히 정말 많았을 것이다) 이젠 자기도 시체가 되겠다느니 처량하게 엎어져 있는데 도착한 곳은 목포항이었다.


이 시점에서부터 이 불행한 청년은 원양어선의 선원이라는 새로운 지위랄까 뭐랄까, 하여간 그것을 얻게 된다. 무려 5년이었다. 5년 동안 태평양 해상에서 새우를 잡거나 참치를 잡거나 하며 지냈다. 나중에는 ‘신입’들을 관리하는 역할까지 맡게 되었다. 평소부터 그는 워낙 성실했기 때문에 위에서도 나쁘게 대우하지는 않았고 결국 그 자그마한 집단에 완벽하게 동화하게 되었다. 일이 그렇게 되고 보니 꽤 괜찮았다. 무엇보다 그의 마음에 든 것은 바다 위에는 자동차가 없다는 것이었다.


애석하게도 이 생활조차 그 어선이 수출용 자동차를 잔뜩 실은 어느 나라의 무역선에 부딪쳐 전복하면서 끝이 나 버렸다. 수면에서 헤메다가 간신히 구출되어 한국에 돌아온 그는 인신매매단에 붙잡혀 5년간 원양어선에서 중노동에 시달렸던 불행한 인물로 소개되어 어느 지방신문 8면 언저리에 하루 정도 실렸다.


육지 생활로 복귀한 지 3개월 후 김 아무개 씨는 작은 공장에 취직했다. 대기업에서 하청을 받아 자동차 문짝을 찍어내는 곳이었다. 그 곳에서 그는 프레스를 찍어냈다. 푸슉 쿵 푸슉 쿵 하면서.


푸슉 팍이었나? 하여간 그건 그다지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김 아무개 씨가 이로써 불행의 절정을, 불행의 최첨단을 달리게 되었다는 사실이 이 모든 이야기의 핵심이다 이거다.






#2. 변태라서 불행




처음 김 아무개 씨는 정말로 자동차가 싫었다. 그를 괴롭힌 모든 것의 중심에는 자동차가 있었다. 한밤중에 정차해둔 차가 헤드라이트를 켜고 엔진을 부르릉대는 걸 듣고 있자면 어떨 때엔 동굴 속에서 괴물이 쉰 목소리로 가래 걸린 한숨을 쉬는 것 같다고 느끼는 것이었다.


다행히 공장에서는 공포가 없었다. 오히려 그는 자동차의 분해도를 굉장히 좋아했다. 어느 정도냐면, 작업장 근처에 굴러다니던 어느 분해도는 왼편에 차량 사진을 붙여 놓고 우로 화살표를 그어 놓은 후 오른편에 부품들을 이름과 함께 잔뜩 늘어놓은 모양이었는데 슬쩍 주워다가 전세방 벽에 그 커다란 종이짝을 붙일 정도였다. 그 덕분에 그나마 방에서 가장 넓은, 빛 받기 제일 좋은 서쪽 벽에는 시계도 달력도 거울도 걸 수가 없었다. 책상조차 붙이지 않았다. 그 벽은 신성불가침의 영역이었다. 당시 그의 실없는 생각에 의하면, ‘죄 지은 차도 이 벽에 붙으면 죄 사함을 받는다.’


괴물의 해부도는 언제 봐도 짜릿했다.


자신이 자동차라는 공산품에 대해 병적으로 집착하게 되었다는 사실은 그 스스로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골초가 담배의 해로움을 알면서도 끊지 못하는 것처럼 그는 계속해서 네 바퀴 달린 그 기계에, 아니 정확히 말하면 그 기계의 부품과 부속들에 빠져들어갔고 결국 사랑하기에 이르렀다. 증오가 쌓이다 애증으로, 그리고 애정으로 변한 것이다.


무영탑을 만든 석공이라는 인간이 하도 일에 집중한 나머지 와이픈가 동생인가 나발인가가 물에 빠져 죽었다던가, 하여간 그것도 몰랐다더라. 김 아무개 씨는 그 정도로 미친 듯이 일에 빠져 들어갔다. 비쩍 말라버린 그는 이번엔 에밀레종 전설에, 소위 ‘필이 꽂혔다.’ 최고의 작품을 뽑아내기 위하여 모든 것을 희생할 수 있다는 메시지는 그를 충분히 감동시킬 수 있었다. (그런 그가 쇳물에 빠져 죽은 아이가 사실 경덕왕에 대한 슬픈 비유라는 설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면 아마 무진장 화를 냈을 것이다.)


열과 성과 혼을 다해 아름답고도 최고의 기능미를 가진 문짝을 만들어내겠다는 일념 하나로 말라깽이 김 아무개 씨는 엄청나게 노력했다. 물론 모던 타임즈 채플린마냥 단순작업밖에 하지 않았지만 완성되어 쌓여 있는 문짝들을 보면서 마치 대단한 일이라도 한 양 황홀경에 빠져들었던 것이다.


문제는, 휴식시간마다 상품 앞에 넋 나간 얼굴을 하고 쪼그려 앉은 그에 대해 다른 동료들도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물론 순진한 그들은 그 ‘문짝 마니아’의 과거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처음에는 아마 힘들고 피곤해서 그렇겠지 하고 대수롭잖게 넘어갔다. 누군가의 증언에 의하면 바다에 살던 사람이 육지에 사는 사람을 이기려면 3배의 힘이 필요하다더라. (나중에 알아본 결과, 이건 사실 ‘검으로 창을 이기려면 3배의 기량이 필요하다.’는 섬나라 쪽의 이야기였다.)


그런데 단 한 명, 공장에서는 용접을 주로 하는데, 안경 쓰고 키가 작고 뚱뚱하며 눈은 작고 콧구멍은 크며 짧게 자른 스포츠머리가 어색한데다가 여드름이 난, 그러니까 공포의 외인구단에서 스토킹하다가 장가까지 든 인간승리의 진수를 보여준 모 씨와 굉장히 닮은, 게다가 실제로 야구도 꽤 잘 하는 박 아무개 씨는 다른 사람들과 달랐다. (스스로 말하길) 사려 깊고 주의력이 뛰어난 그의 판단에 의하면, 들여다보니 ‘프레스 김’이 하고 있는 꼬락서니가 남들의 눈에 비치는 것보다 훨씬 심각하다는 것이었다.


사람들과 함께 지나가다가 쌓인 문짝들 앞에 이미 무아지경에 빠져 있는 김 아무개 씨를 보면서 그는 자주 이런 말을 했다.


“저 새끼, 도아 보고 딸 잡을 놈이라니까.”


그러면서 무신경한 건지 그런 상황을 즐기는 것인지 그걸 화젯거리가 된 본인에게 실제로 말하기도 했다.


이 쪽이야말로 웃기는 건지 바보 같은 건지, ‘프레스 김’은 오히려 자신을 보다 잘 이해해 준다고 생각했던 듯 하다. 그에 따르면 남들은, “내 겉모습밖에 보지 못하며 모두가 나를 불행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 쯤에서 확실히 하고 넘어가는 것이 나으리라 싶어 이야기하는 것인데, 분명히 김 아무개 씨는 좋게 말하면 자아가 강한 것이고 나쁘게 말하자면 머리가 살짝 돈 사회부적응자다. 사실 방금 전의 그의 발언으로 인해 눈치챈 분들도 많을 것이리라 생각한다.


여하튼 이 불행의 집대성 김씨는 그 외에도 이런저런 이유에서 (너무 사소해서 언급할 필요조차 느낄 수 없다.) 여섯 살 위엔 박 아무개 씨를 마치 친형처럼 따랐다. 이 용접공은 또 저대로 그런 동생 (같지도 않지만 일단 자신을 형이라고 부르므로)에게 귀찮은 일을 시키고 아이스크림이나 하나씩 사 주며 잘 데리고 놀았다. 중요한 것은 데리고 놀았다는 것이지, 가지고 놀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이 시점에서는 말이다. 막말하기 좋아하고 지나치게 활달한 박 아무개 씨로서는 희한한 인간관계가 발생한 것이다.






#3. 보편적이면서 신파적인 불행




골치 아픈 일이 드디어 발생했다. 사실 지금까지 발생치 않은 게 용하다. 하여간 대체 무슨 사태가 터진 것이냐 하면 어째서인지 몹시 흔하고도 상당히 비극적인 사건 - 즉 김 아무개 씨가 프레스기에 오른손 엄지손가락을 조공 삼아다 갖다 바치고 말았던 것이다. 일부러 그랬는지 실수였는지는 아무도 몰랐다. 제일 웃기는 건, 그 자신조차도 몰랐다는 것이다!


손가락이 날아가던 순간 그의 머리 속에 떠오른 것은 무엇이었던가. 지금까지 자동차에 얽힌 아픈 기억들이었을까? 아니면 이제 자기도 공장 노동자로서 손가락 한번 잘렸으니 역사의 중심은 아니더라도 변두리에 낄 자격은 얻었다고 생각했을까?


뭐가 어찌 되었건 신기한 것은 넓은 시선에서 살펴본다면 이 사건마저도 분명히 김 아무개 씨가 태생적으로 지니고 있었던, 머리카락에 붙은 껌처럼 떼어지지가 않던 자동차의 저주의 연장이었지만 오히려 이번엔 그런 것에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그 때 그의 뇌리에 울리던 것은 에밀레종의 종소리였다. 물론, 당연히 들어본 적도 없기는 하지만 대충 만들어낸 이미지로 그는 자신에게 있어 최상의 소리를 생산해 냈다. 베이스로 차 문 닫는 텅! 이 길게 늘여져 중저음으로 깔리고 프레스 찍히는 파악! 인지 콰앙! 인지가 메인, 용접음은 양념이었다. 그는 이것을 에밀레종 경음이라고 갑자기 믿어 버렸다. 정확히 말하면 믿고 싶다고 생각하자마자 그냥 믿어 버렸다.


손가락이 잘려나간 불행한 청년은 그 소리를 배경으로 자기 피를 받아먹은 프레스기가 드디어 궁극의 절대미를 가진 최상의 문짝의 요람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원래 붙어 있던 것이 없어진 후 약 10여초 간 공황 상태에 빠져 있다가 곧바로 히죽히죽 웃어대더니 병원에 실려 가면서도 히죽히죽, 급기야는 의사 앞에서도 히죽댄 것은 그것이 원인이었다.


어서 돌아가서 빨리 프레스기로 다시 금형을 찍어내고 싶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의사가 참 놀라운 환자라고 했다. 그 자리에 있던 모두가 곧바로 허연 의사가 김 아무개 씨를 미친 놈이라고 생각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지만 본인만은 건성으로 고맙다고 인사할 뿐이었다.


치료를 받고 공장에 돌아왔을 때, 그는 제일 먼저 공장 앞에 문짝을 쌓아 놓는 곳으로 달려갔다. 어떤 물건이 나와 있을지 몹시도 흥미진진했다. 그리고 금세 알 수 있었다. 이것들은 자신의 희생에 의해 아주 약간 멋져졌다. 하지만 아쉽게도 아주 약간 멋져졌다. 아주 약간, 그 뿐이었다. 역시 잘린 손가락에서 나온 피로는 이 정도가 한계인 것일까?


고민하기 시작했다. 일단 첫 결론은 빨리 나왔다. 희생의 양이든 질이든 그런 것들이 부족했다. 그렇다면 해결책은 납득할 수 있을 만한 새로운 희생을 바치는 거다. 하지만 역시 그건 조금 곤란하다. 아무리 그래도 목숨을 통째로 바치고 싶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분명히 그렇게 한다면 진리에 가장 가까운 것을 만들어낼 수는 있겠지만, 그 세상 다시 없을 미의 집대성이 될 문짝을, 만들어 놨다고 쳐도 죽고 나서 무슨 수로 확인하겠느냔 말이다.


진짜 에밀레종 얘기처럼 자기에게 있어 가장 소중한 걸 바치면 어떨까도 생각해 보았다. 하지만 그것도 무리였다. 그에게 있어 자동차 문짝들은 꽤 가치 있는 물건인 것은 분명했지만 희소성이 부족하기 때문에 그다지 효과가 있을 것 같지 않았던 것이다. 게다가 그건 말하자면 산에 사는 도깨비를 진정시키기 위해 산제물로 처녀 대신 도깨비를 바치는 격이다. 오히려 욕 먹고 두들겨 맞으면 모를까 답이 될 수 없다.


하여간 산제물이 필요한 것이다……. 라고 생각한 이 시점에서, 김 아무개 씨는 또다른 놀랄 만한 사실에 접근하게 되었다! 오죽하면 문짝을 바칠 생각을 했을까. 진정 소중한 사람이 하나도 없었던 것이다. 특히 가족들은 모두 자동차와 얽혀, 자동차가 저 세상에 보내 버렸다.


이번엔 여기서 또 다른 방향으로 상상을 폭주시키기 시작했다. 자신의 고민이 자동차의 신께서 부여한 성스러운 사명이라는 기상천외한 상황을 상정해낸 것이다. 그렇다. 이 퀘스트를 해결하면 분명히 더 높은 차원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떻게?


한 사나흘 혼자 머리 싸매고 끙끙대다 결국 그는 용접공 박 형을 찾아갔다. 자기의 이런 고민을 이해하고 진실된 조언을 해 줄 사람은 그 뿐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가는 길에 불현듯 그 키 작은 사람을 프레스기에 던져 주면 어떨까 생각해 보았다. 갑자기 오한이 느껴졌다. 역시 인간 가지고는 어려울 듯 했다. 전철을 기다리는 중에나 가끔 볼 수 있다는, 세상에서 가장 끔찍한 장면 중 하나가 연상되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아직 박 아무개 씨는 자기가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범주에는 들어가지 않았다.


그래도 예상대로, 그 박 아무개 씨는 마치 자기 일인 양 진지하게 고민해 주었다. (최소한 ‘도아 보고 자위하는 놈’에게는 충분히 그렇게 보였다.) 그리고 부드러운 눈으로 반쯤 정신 나간 ‘동생’을 바라보며 다음과 같이 작금의 현실을 정리했다.




1. 사람이 만드는 것과 기계가 만드는 것은 질적인 차이가 분명히 존재한다.


2. 공장에 쌓인 문짝은 기계가 만든 것이다.


3. 당연히 그에는 사람이 만든 것 만한 디테일함이 없다.


4. 그렇다고 해서 수작업으로 차를 만들기에는 자금도 시간도 능력도 부족하다.


5. 그렇다면 수작업으로 만들어진 차를 구해다가 그걸 궁극적인 아름다움으로 승화시키면 된다.




특히 결론 부분이 상당히 맛이 간 논리였지만 김 아무개 씨에게 있어서 이보다 더 명쾌한 해답도 없었다. 그만큼 프레스 사고 후의 그는 어떻게 하면 자동차 문짝을 멋지고 훌륭한 무엇인가로 재탄생시킬 수 있을까에 대해 광적으로 집착하고 있었던 것이다.


우선적으로 친절한 용접공은 수제 자동차의 입수 방법에 대해 알려 주었다. 일단 국내에 들어와 있는 물건은 손으로 꼽을 만큼 - 단순한 강조를 위한 수식어가 아니라 사실이 그랬다 - 적은데 그 중 하나가 이 근처 어느 저택에 들어와 있다고 한다. 당연히 저택 안에 들어가 훔치, 는, 것이 아니라 손에 넣는 것은 불가능하고 이하의 절차를 밟는 것이 좋겠다.




A. 차고 바로 앞에, 현재 공사중인 것처럼 꾸민다. 차가 밖으로 나올 때를 노려 그 때 시작해야 한다.


B. 차가 나와 무슨 짓이냐고 물으면 친절하게 공사중이라고 대답해 준다.


C. 사람이 차에서 내리면 정신 못 차리게 팬다.




여기서 김 아무개 씨는 대체 왜 멀쩡한 사람을 때려야 하는지 의문을 표시했는데 이에 대해 박 아무개 씨는 그만한 훌륭한 자동차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예술품을 잘 보관해 두지 않고 단순한 운송수단으로만 사용한다는 것이 극도의 무지의 소치이며 하늘에 대해 중차대한 죄를 짓는 것이라고 대답했다. 또한 세상에서 자동차의 진실된 멋을 아는 것은 너와 나 뿐이기 때문에 우리가 신을 대신해 천벌을 내려야 한다고 진지하게 설득하는 것이었다. 하여간 그래서, 결론은 이거였다.




D. 그리고 차를 끌고 내게 와서 그 자동차를 어떻게 가공할지 함께 생각한다.




스산하게 낙엽이 뒹구는 가을 밤, 김 아무개 씨는 행동에 나섰다.






#4. 말 많은 사람과 함께 있어서 불행




정신을 차렸을 때 그는 병원 침대 위였다.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있었던 일을 되짚어 생각해 보았다. 먼저 그 저택의 차고 문 앞에서 감시 카메라에 들키지 않도록 잘 숨어 있었고 차고 문이 열리자 챙겨 놓았던 곡괭이를 들고…….




멋도 모르고 있었던 일을 술술 분 멍청한 프레스 동생 덕분에 구치소에 들어가 있던 박 아무개 씨의 말에 의하면 바보인 줄은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에 잘만 하면 어마어마한 값의 외국산 수제 승용차를 손에 넣을 수 있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한다. 그런 그에게 형사는 바보가 바보를 다루려 했기 때문에 실패한 것이라고 핀잔을 주었다.




여하간 드디어 김 아무개 씨는 감옥신세까지 지게 되었다. 다행히 자신을 치었다가 찌그러진 차에 대해선 변상하지 않았다. 부자는 자신의 탈세 혐의를 알고 몰래 취재하러 온 기자로 착각해 당황해 하다가 입을 막는답시고 서둘러 합의를 본 것이다. 결국 두 바보의 취조 과정에서 자기 죄까지 드러나고 말았으니 말짱 헛고생이었지만 말이다.


또다시 김 아무개 씨는 새로운 법칙을 발견했다. 확실히 자긴 불행하기는 하지만 자동차에 의해 입는 피해에 비해 다른 쪽에 있어서는 꽤 운이 좋은 편이라는 것이다. 왜냐 하면 들어온 감방에는 열흘 전 먼저 입소한 자기 또래의 남자 하나 뿐이었기 때문이다. 교도소에서는 그리 자동차와 많이 관련될 일도 없었으므로 그는 어쩌면 잘 된 건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열흘 선배인 최 아무개 씨는 그를 가만히 놔두지 않았다. 이야기를 해 보니 최 씨 자신도 못지 않게 불행을 타고난 인간인데다가 너무도 외로웠던 나머지 누구에게나 스스로를 엄습한 불행의 일대기를 떠벌리지 않고는 견뎌 내질 못하는 성격이었던 것이다. 그 이야기는 엄청나게 길어서 모든 스토리를 듣고 파악하는 데에만 거의 한 달이 걸렸지만, 일단 요약하자면 이러하다. 이하는 최 아무개 씨의 시점에서 그의 일대기.




어머니는 나를 낳다가 죽었다. 세 살 때 한 살 위이던 둘째 형이 동전을 삼켰다 질식해서 죽었다. 다섯 살 때 할머니가 노환으로 죽었다. 할아버지는 내가 태어나기 전에 진작 죽어 있었다. 아홉 살이 되자 큰 형이 수학여행을 갔다가 물에 빠져 죽었다. 열다섯 살이 되고 보니까 이번엔 아버지가 죽었다. 그리고 스무 살 생일 내 동생도 죽었다. 그리하여 우리 가족은 누나와 나 둘 밖에 남지 않았다.


우리 집은 결코 가난하지 않다. 둘째 형과 동생을 제외하고는 모두 생명보험에 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다만 아버지의 보험금만은 타지 못했다. 그 사람은 새로 보험 계약을 갱신하고 며칠간이나 차례로 죽어나간 가족들 때문에 괴로워했다. 그리고 결국 술을 코나 눈이나 귀로 토할 정도로 들입다 마셔대고는 그 날 밤 자살했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누나를 위해서 모른 척 하고 있을 뿐이다. 아버지는 화장실에서 목을 매달지 않았다. 주어가 잘못된 것이다. 목을 매단 건 누나다. 정확히 다시 정리하자면 ‘누나가 아버지의 목을 화장실 천장에 로프를 이용하여 매달았다.’ 왜냐 하면, 그 날도 언제나와 마찬가지로 아버지가 술에 잔뜩 취한 채 그 불쌍하고 가련한 여고생 위로 올라탔고, 그녀가 더 이상 그것을 참을 수 없었던 이유에서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복합적인 원인이 겹친 거다. 그냥 그런 이야기다. 그 일로 인해서인지 누나는 대학 진학을 포기했다.


동생은 착하고 귀여운 아이였다. 나이는 나보다 세 살 어렸다. 그 애는 유치원도, 학교도 가지 않았다. 아무래도 꼴을 보아 하니 이 놈의 집안은 저주받은 것이 확실하고, 그러니까 바깥에 나돌지 않으면 죽을 확률도 적어지지 않겠느냐 하는 것이었다. 그 결정을 내린 것은 나였다. 동생은 내 말 밖에는 듣지 않는다. 무슨 말인가 하면, 동생을 집안에 반쯤 감금한 건…….




여기까지 얘기하는 데 한 달이었다는 것이다. 이 때 김 아무개 씨는 소박한 의문을 제시했다. 어머니가 당신을 낳다가 돌아가셨는데 어떻게 세 살 어린 동생이 있는 거죠? 최 아무개 씨는 입을 다물었다. 잠시 그대로 앉아 있다가 시선을 피하며 그는 작은 소리로 대답했다. 배다른 동생이야. 그리고 더 이상 과거에 대해 말하지 않게 되었다.


며칠 후 식사 시간에 옆 방 죄수에게 듣기를, 최 선배는 저래 보여도 벌써 서른둘이고 입소한 지는 십 년이 지났으며 사람을 죽여서 무기수라는 것이다. 그래서 다시 김 아무개 씨는 한 차례 더 소박한 의문을 내뱉기로 했다. 무기수가 저 같은 잡범이랑 왜 같이 있죠? 그러자 그 덩치 큰 죄수가 대답했다. 뻥이야!


그리하여 프레스 김, 아니 프리즈너 김은 남의 이야기를 함부로 믿으면 귀찮아진다는 것을 깨달았다. 결국 이리저리 물어보고 조사해서 엑기스만 추려내 겨우 최 아무개 씨의 진짜 신상에 대해 알아낼 수 있었다. 나이는 스물여섯이고 죄상은 특수폭행이었다. 지금 육 개월 째 복역중이고 또 육 개월 남았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자기에겐 사 개월 보름 정도 선배다. 그 때 다시 최 씨가 입을 열었다. 이번엔 거짓말이 아니니까 진짜 왜 여기 오게 되었는지 말해주겠다는 것이다. 앉아 있어 봤자 할 일도 없었으니 그냥 듣기로 했다. 믿지 않으면 그만이니까. 그리하여 이하는 그의 ‘진짜 인생담’ 이다.




몹시 어렸을 때, 아마도 독일 수도에 세워 놓았던 돌벽이 자국의 흥분에 찬 군중들에 의해 물리적인 붕괴를 맞았던 그 즈음, 손에 손을 잡으라는 코리아나의 선동에 대체 누구와 잡아야 하는지도 모른 채 호돌이 따라 상모 돌리기나 흉내 내고 있을 즈음의 이야기다.


요리 보고 조리 보다가 삿대질 한 방으로 생각대로 하면 되는 둘리가 국민학교 저학년까지의 학예회의 헤게모니를 쥐어잡고 있던 그 즈음의 이야기다. 나는 동네 꼬마 친구들과 땅따먹기를 하고 있었다.


어느 놀이가 그렇지 않았겠느냐만 이 땅따먹기가 동네마다 룰이 달랐기에 간단히 설명하자면, 우리는 커다란 네모를 그려 놓고 같은 크기의 땅을 한 켠에 잡은 후 그 네모꼴 안에서만 땅을 차지하는 룰을 가지고 있었다. 때문에 모든 운동장이 먹을 수 있는 땅이었던 상동 아이들은 우리 중동 아이들을 스케일이 작다 생각한 모양인데 그건 지금 중요한 이야기가 아니니 제쳐 두자.


여하튼 세세한 룰이나 취향은 언제나 달라져서 그 당시엔 자기 땅에 나라 이름을 붙이는 것이 유행이었다. 안중근을 굉장히 존경하여 장래희망란에 장군이라고 썼던 나시오날리스트 놈은 역시 한국을 골랐다. 한국은 인기가 많았다. 아무래도 모두가 상당한 패트리어트였던 모양이다.


그 다음으로 인기가 있는 것은 영원한 우방이며 꿈의 나라로서 어쩐지 올림푸스 산보다 더 정갈하고 아름다운 신의 국가, 즉 미국이었다. 나는 아이들과 싸우는 걸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마음 착한 아이였기 때문에 그들이 진정한 대한민국의 지배자를 가리기 위해 첨예히 대립할 때 얼른 미국을 골라 둠으로써 정의의 집단의 수장 - 슈퍼맨도, 배트맨도, 심지어는 가라데 사범을 스승으로 둔 네 마리 파충류 닌자들조차도 미국 시민권자였으니까! 그들의 헤드가 된다는 건 꽤나 기분 좋은 일이었다.


나머지 남은 한 명은 그렇다면 어느 나라를 선택했느냐, 그건 북한? 아니다. 그건 거의 터부였다. 누구도 혹부리 김일성과 그 아들 코부리 김정일이 통치하는 돼지들의 제국과 연관되고 싶어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프랑스와 영국은 애매했다. 일본은 우리 민족을 학살한 더러운 종자들의 나라였고 중국에 대해서는 인해전술 말고는 별로 생각나는 것도 없었다. 그나마 장개석은 다소 훌륭했다. 나는 자유중국 정부의 부패에 대해 들을 때마다 귀를 막았다. 그래도 장개석만은 깨끗하다고 믿었지만 그건 지금 중요한 이야기가 아니니 제쳐 두자.


강력한 국가를 원하던 우리에게 떠오른 대안은 소련이었다. 그들 역시 악의 제국이었지만 악당도 악당 나름인 법이다. 중간 보스는 “에잇, 두고 보자!” 라고 말하며 찔찔찔 도망치지만 라스트 보스는 어떤 대사를 읊건 간에 나름대로 풍류가 있기 때문이다.


언제나 한국을 두고 경쟁하다가 가위바위보 운이 십 년에 한 번 나올 정도로 없어서 늘 소련을 통치하게 되고야 말던 아이가 있었는데 먹을 가까이하면 검어지고 까마귀 노는 곳에 백로보고 가지 말랬다고, 유감스럽게도 늘 소련과 함께 하는 생활 와중에 결국 놈은 ‘간첩’ (우리가 당시 상상할 수 있었던, ‘개새끼’와 함께 사상 최강의 욕이었다)이 되고야 말았다. 이 녀석이 계속해서 ‘한국’과 ‘미국’과 그 친구들에게 소련 최강국 說을 주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납득할 수 없었다. 감정적으로!


그러다 결국 제 삼차 세계 대전이 터지고 말았다. 그 날 소련은 세계 지도의 삼분의 이를 차지하게 되었다. 말하자면 재수가 없어서 늘 착취당하다가 그 상황이 지속되다 보니 각성한 노동자가 드디어 프롤레타리아트 혁명을 완수한 순간이었다 이런 얘기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미국인 주제에 한국에게 당해도 자존심이 상하지 않았다. 하지만 소련에게 이 정도로 완패를 당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래서 비아냥거리느라고 한 마디 툭 던졌다. 미국이 소련보다 더 세다고.


그러자 녀석은 거 참 더럽네, 이런 생각을 한 모양인지 그래도 땅은 소련이 더 넓다고 응수해 왔다. 이해할 수가 없었다. 어째서 세계 최강 미국이 소련보다 땅이 좁다는 것인가? 우리의 세계지도에서 제일 국토가 넓은 국가는 미국이었다. 심정적 세계지도 말이다. 말하자면 대가리 속에 중세의 TO지도가 들어 있었던 셈이다.


뭐, 그래서 싸웠다.


나중에 실제로 소련이 더 넓다는 것을 확인했을 때, 의외로 나는 그다지 충격을 받지 않았다. 그것을 말해준 사람은, 아이들이 완장을 차고 전쟁놀이를 했더니 분노한 어르신이 “완장은 왜 차는 게야!”하고 통한의 눈물을 흘리셨다는 감동적인 반공 동화를 몹시도 좋아하는 지긋하신 선생님이었다. 그 분은 너털웃음과 함께 당연히 땅은 소련이 더 넓지만, 하지만, 그러나 그런 넓은 국토를 가지고도 미국보다 못 산다니 얼마나 한심하냐! 이렇게 이야기를 마무리했다. 우리는 모두 납득했다. 왜냐하면 북한도 남한보다 땅이 넓었기 때문이다.


몇 년 후 김일성이 죽었을 때 그 분은 드디어 조국이 통일이 되겠다면서 몹시 감격스러워했다. 그러나 그 이삼년 후 강릉엔 잠수함이 떴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육 개월 후, 비 오는 길바닥에 고급 차 끌고 가던 양아치가 물을 튀기길래 욕을 했더니 차에서 내려서 다가오더라. 어째 좋은 차 같아서 힐끔힐끔 쳐다보는데 이 놈은 뭔 욕을 하냐고 내게 덤벼들었다. 그래서 뒷통수를 붙잡고 옆 우체통에 몇 번 박아 버린 다음에 차를 끌고 도망쳤다가 붙잡혔다.




김 아무개 씨가 그게 다냐고 묻자 최 아무개 씨는 그 때 그 양아치가 입은 티셔츠 등짝에 성조기가 그려져 있었다고 했다. 김 씨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그것 봐요. 역시 자동차는 불행의 근원이야.


무슨 소리냐고 상대가 물었다. 그러자 김 아무개 씨는 이렇게 대답했다.


걸어서 도망쳤다면 잡히지 않았을 거예요.






#5. 이번 장은 마지막 장이며, 대사도 있습니다.




김 아무개 씨와 최 아무개 씨의 출소일은 희한하게도 같았다. 새벽에 교도소를 나서며 최 씨는 새로운 아이템이 있다며 그를 꼬드겼다. 무슨 이야기인고 들어 보니 자기가 아는 방면으로 단기 아르바이트 같은 일이 들어와 있다고 했다. 어제 누군가 면회를 왔다 싶더니 그 쪽인 것 같았다. 당장 일자리를 구하기 전에 생활할 돈이 수중에 있는 것으론 모자랐기 때문에 프리즈너 김은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이유가 뭐냐고 묻는다면 절반 정도는 ‘죽인 놈도 모르지’ 않을까 하고 나는 생각한다. 왜냐. 전쟁만 해도 그렇잖아? 하긴 자기가 살기 위해 죽인다는 어엿한 이유가 있을 지도 모르지만.


어째 복잡해지니까 전쟁은 제외하자. 국가 형법상으로 처리되는 범죄로서의 살인만 가지고 얘기해 보겠다. 그렇다면 이유는 어떻게 될까? 개인적인 원한이 꽤 많을 것이고 돈 문제도 있을 터이고……. 인터넷이라도 찾아 들어가 보면 알 수 있겠지만 현재로서는 도저히 모르겠다.


이런 소리를 주저리주저리 늘어놓는 이유는 (이 이유가 사람 죽이는 이유보다 더욱 중요하다!) 참으로 통한스럽게도 내가 쪼그려 앉은 이 앞에 시체가 하나 쓰러져 있기 때문이다.


솔직히 말해 이걸 내가 죽였는지 살렸는지 어땠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정신이 들어 보니 이랬다. 다만 아마 했겠지 하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지금 손에 골프채를 쥐고 있는데 이 여자 머리의 뭉개진 부분이 딱 골프채 들어갈 정도라는 점, 그리고 내가 평소에 꽤나 자주 이 여잘 골프채로 후려 패 버리고 싶다고 생각했다는 점 정도이다.


그래서 궁금한 거다. 대체 왜, 무엇 때문에 내가 내 비서를 죽였을까? 아무리 안 좋은 일은 금방 까먹는 나라지만 도통 기억이 나질 않는 게, 이건 좀 심한 것 아닌가?




하고 눈 앞의 아저씨가 말했다. 김 아무개 씨는, 혹시 몰라서 묻는 건데 요 며칠 사이에 차에 탔다가 안 좋은 일을 당한 적 있었나요? 라고 질문했다. 물론 나머지 두 사람은 그에 대해선 아무 말도 않았다. 최 씨가 이런 일이 벌어질 줄 알았다면서 시체는 잘 치워줄 테니 사무실 뒤처리나 잘 하시라고 말했다. 그리고 시체를 비닐봉지로 싸더니 커다란 여행 가방에 넣고는 후배에게 따라오라고 손짓했다. 그리하여 둘은 나가고 사무실에는 사장과 핏자국만 남았다.




일이 어떻게 된 거냐면, 이 사무실은 조폭들이 운영하는 사채 회사였는데 그 사장 비서가 최 아무개 씨가 몸담고 있던 조직의 오야 애인이었다. 그런데 항상 다른 남자들에게 꼬리 흔들고 다니더니 결국은 조직 돈까지 슬쩍슬쩍 빼다 썼다. 오야는 상당히 격정적인 사람이라서 이쯤 되자 참고 참았던 분이 한꺼번에 터져, 그 자신의 입을 빌리자면 ‘이 년을 한 번 눈까리를 뽑아서 탁구를 쳐 불랑게.’ 하는 상황까지 가고 말았던 것이다. 하지만 대 놓고 죽이기엔 좀 거시기하다 싶었는지 실적도 없고 깡도 없는 주제에 최근 많이 컸답시고 말 안 듣는 소속 사무소 사장을 좀 이용하기로 했다. 그리하여 기회를 봐서 수면제를 먹게 한 후 최 씨에게 ‘여자 머리에 골프 연습’을 하게 시킨 것이다. 이로써 죽일 년은 죽이고 청개구리는 닥치게 하는 일석이조의 결과를 얻어냈다.




김 아무개 씨는 우선 편의점에서 컵라면을 사 먹느라 범행 장면을 못 본 탓도 있고 해서 이번에도 이걸 믿어야 하나 의심부터 했다. 하지만 최 선배가 자기보다 훨씬 무서운 사람이었고 게다가 따로 신경 쓰이는 일이 있어 입을 열지는 않았다.


묘하게 익숙한 냄새, 묘하게 익숙한 흔들림. 지금 뒤쪽 좌석 부근에 여행용 가방을 놓고 털털거리며 신나게 달리고 있는 이 봉고차는 오 년도 더 전에 배 타러 떠났던 그 차가 확실했던 것이다! 미친 듯이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말을 꺼내기는 무서웠지만 지퍼 채우고 있기엔 공기가 너무 무거웠다. 결국 쓰잘데없는 질문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언제부터 여기서 일하신 거예요?”


“삼 년 쯤 전?”


그럼 내가 선배네. 하고 그는 생각했다. 물론 말하진 않았다.


“이런 일 자주 하시나요?”


“두 번째야.”


당연하지. 맨날 이 차에 타면 돌아버리고 말 걸. 하고 그는 생각했다. 물론 말하진 않았다.


“그런데 빵에 있을 때 한 얘기 있잖아요. 미국이랑 양아치를 팬 거랑 무슨 관계인 거예요?”


“그 때 얘기 안 했어?”


“안 했는데요.”


“그 삐까뻔쩍한 외제차가 포드 거였어.”


아무리 그래도 어렸을 때 땅따먹기 한 얘기나 갖다 붙이는 건 너무하다고 생각했다. 당연히 말하진 않았다. 게다가 이 대답을 듣고 보니 일방적으로 자동차 공포증에 시달렸던 자신이 너무 한심스럽게 생각되기도 하는 것이었다. 하기사 지금 이 차 안에 타고 있기 때문에 다리든 이빨이든 후들후들 떨리는 건 분명했지만.


“지금 어디로 가는 건가요?”


“서해 어디쯤. 공구리쳐서 던져버려야지.”


“그 다음엔요?”


“할 일 없어.”


“저는요?”


“나랑 같이 가.”


“진짜요?”


“사람 죽이는 거 본 놈을 풀어놓을 거 같냐? 내 시다로 뛰어.”


안 봤다고 속으로 외쳐 봐야 소용없었다. 속으로만 그랬지 겉으로는 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말해 봤자 받아들여지지 않을 거란 것도 뻔했고.


“저기, 만약 안 그러면요?”


“이 여자랑 결혼해야지.”


된통 꼬였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이 똥차가 팔려나갔다가 이 놈들에게 주워진 것이 아니었다. 원래 쓰던 물건이었다. 어쩐지 오야께서 눈알로 탁구 친다고 할 때부터 느낌이 안 좋더라. 자주 듣던 말이었으니 말이다.


어쨌거나 빨리 도망쳐야 한다. 지금까지는 어떻게 잘 버텨 왔지만 생각해 보니 자기 가족은 김 아무개 씨만 빼 놓고는 전부다 차와 관련돼서 죽었다. 몇 번 쯤 안 죽었다고 해서 목숨만은 안전할 거라고는 절대 생각할 수 없었다. 같이 가도 죽고 안 가도 죽을 판이다. 아직도 참치랑 씨름하고 있어야 하는 놈이 멀쩡히 나타나면 오야 성격에 가만히 내버려둘 리가 없으니까.


전전긍긍하는 판에 갑자기 차가 멈춰 섰다. 도로가 정체되고 있었다. 달아나려면 지금 뿐이다! 그런 심정으로 그는 문 손잡이를 마구 잡아당겼다. 하지만 삐걱대기만 할 뿐 문은 열리지 않았다.


“뭐야? 오줌 마려워? 잠겼으니까 그렇지. 그거 스위치 잡아당겨서 올려.”


속도 모르는 최 선배, 아니 최 후배? 그 자가 그렇게 친절히 말했다. 하지만 다급한 김 아무개 씨에게 그 소리가 제대로 들릴 리가 없었다. 그저 다그치는 것으로밖에 들리지 않았다. 그렇게 조급히 움직이다가 잠금장치를 풀었는지 어땠는지 갑자기 문이 열렸다. 아니, 정확히 말해서 문이 그대로 뜯겨 나갔다. 차를 어떻게 쓰면 이런 꼴이 되는지 궁금하기도 했지만 더 이상 고민할 때가 아니었다. 그는 문짝을 든 채로 고속도로변 갈대숲 사이로 사라져 갔다. 뒤에서 최 아무개 씨가 뭐라고 큰 소리로 떠들어댔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시체를 남겨 두고 갈 수는 없었기 때문에 쫓아오지는 않는 것 같았다.




밤이 되었다.


피곤해서 잠들었던 모양이다. 깨어 보니 문짝 안쪽의 푹신한 부분을 쿠션 삼아 벤 채 누워 있었다. 하늘에 별이 빛났다. 아니, 그렇게 생각했다. 실제로는 별이 그다지 많이 보이지 않았다. 잠시 주위를 둘러보니 어느 마을 뒷동산인 것 같았다. 마을로 내려갈까 하다가 그만 두었다. 아직 최 아무개 자식이 근처에 있을 듯 했기 때문이다.


문득 문짝을 내려다보았다. 당연히 베개로 쓰려고 이 무거운 걸 들고 헥헥대며 달려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대체 왜 그랬을까? 그는 턱을 괴고 앉아 가만히 생각해 보았다. 그렇게 세 시간 쯤 있다가 겨우 답을 냈다. 그것도 몹시 행정편의적인 발상이었다.


아마 자기는 그 때 도망칠 활로를 뚫어 준 그 문짝이, 자기를 완전히 파멸의 땅굴 속에 묻어버리려 하는 자동차 본체의 의지를 거스르고 스스로를 희생해 도와준 그 문짝이 너무나도 사랑스럽고 아름다워 보였기 때문에 차마 그 자리에 버리고 오지 못했기 때문일 거라고 말이다.




해가 뜨자 그는 마을로 내려갔다.


그리고 식당에서 밥을 먹고 택시를 타고 읍내로 나가 버스 터미널에 도착하여 버스를 타고 서울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