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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도시 기록보관소

yswichard *Fate / Battle Royal*

2008.06.03 16:17

◈ÐÆЯΚ◈찰드 조회 수:1648 추천: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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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출을 본 때가 몇시간 되지도 않은 것 같은데 태양은 벌써 서쪽 계곡 너머에서 손을 흔들고 있다.


기운이 다 빠진 치요는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그저 주저앉아 있을 뿐이다. 하도 울어서 이젠 기력이 없다. 눈은 벌게진체로 부어 있고, 눈물로 범벅이 된 얼굴은 엉망 진창이다.


뒤에서 그 모습을 그저 바라만 보고 있던 이오와 설하는, 하루종일 달래도 보고 다그쳐도 보았지만 소용이 없자 그저 치요 스스로 기운을 되찾기만을 바라면서 무료하게 또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더이상 눈물은 나지 않는것 같군요."


 


문득 설하가 몸을 일으켰다. 이오가 그를 돌아본다.


 


"뭐 하시게요?"


 


"마스터의 얼굴이라도 씻겨 드려야 겠습니다. 저대로 뒀다간 얼굴 피부가 상할겁니다."


 


그리고 설하는 치요에게 다가갔다. 치요를 일으키려고 손을 뻗자, 가만히 치요의 손이 올라와 설하의 팔을 잡았다.


 


"...마스터...?"


 


"제가 할께요... 미안해요."


 


그리고 힘없이 치요가 일어선다. 사방이 바다인 섬인데다 섬 자체에도 숲이라든가 산, 계곡, 언덕 등이 많은 터라 냇물이 흐르는 곳은 상당히 많은 편이다. 어렵지 않게 물 흐르는 곳을 찾을 수 있었다.


 


"마스터... 이젠 괜찮으십니까?"


 


설하가 조심스럽게 묻자, 흠뻑 얼굴을 적신 치요가 축축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하루종일 난리를 피웠잖아요. 그래놓고도 진정이 안돼면 큰일이죠."


 


"...."


 


그 말엔 더 할말이 없었는지 설하는 조용히 물러났고, 치요는 근처 흐르는 물가로 가 힘없이 세수를 하고 왔다.


지나간 일도 슬펐지만, 이제부터가 중요하다. 세수를 하고 얼굴을 정리한 치요에게 이오가 물었다.


 


"치요쨩. 카드를 한번 확인해볼래?"


 


"네..."


 


카드를 꺼내든 치요가 1개의 빛이 남아있는 모습을 이오와 설하에게 보여주었다.


 


"역시... 설하님 뿐이예요."


 


"예. 그러나, 아직 이오님이 남아있어 무슨 특별한 일은 일어나지 않는군요."


 


설하가 말하자, 이오가 당혹스럽게 웃었다.


 


"어... 그, 그러네요."


 


"하하... 당황하실것 없습니다. 이제 다 같이 빠져나갈 생각을 해봐야 겠지요."


 


"...."


 


별 말이 없던 치요가 슥 이오를 바라보았다.


 


"에도님도 있었으면 좋은데..."


 


"어쩔 수 없지. 싸움 중에 당한걸..."


 


설하가 우울하게 말했다.


 


"그러고보니 헤인이나 에도는... 아쉽긴 합니다. 그들이 있었으면 훨씬 더 괜찮은 탈출 방법을 생각해볼 수 있을텐데 말이죠."


 


"그러게요..."


 


이오가 거기에 대해선 더 말하고 싶지 않다는 듯이 화제를 본론으로 돌렸다.


 


"에, 그래서... 지금 상황에서는 어떤 방법이 가장 효율적 일까요?"


 


치요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일단 생각해볼 수 있는 것은... 괜찮은 배 한척을 만드는 일이죠."


 


"배라..."


 


설하가 주변의 나무들을 둘러보았다.


 


"그럴 목재를 만들려면 지금은 힘듭니다. 마법으로 만들어야 할것 같은데 지금 메모라이즈가 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렇군요."


 


이오가 다시 말했다.


 


"그럼 어차피 날도 저물어 가니까... 오늘은 쉬자. 연이어서 너무 큰 싸움을 계속 치뤘다고. 어차피 설하님도, 일단 한숨 자고 나서 메모라이즈를 해둬야 이야기가 돼겠죠."


 


"그렇습니다."


 


일단 한숨 자고 나서 뭔가를 시작해도 해보자는 데에 의견이 모아지고, 더이상 특별히 "적"이라 할 만한 존재가 모두 없어진 무인도에 더이상 불안감이 느껴지지 않음에 따라 일행 모두는 아무런 대비 없이 아무데나 드러누워 버렸다. 이오는 어쩐지 잠이 오지 않았으나, 하루종일 정신적으로 타격을 수차례 받았던 치요는 가장 먼저 잠이 들어 버렸다.


 


 


그러나 아무도 없는 것이 아님은 이미 치요 일행을 빼면 모두가 다 잘 알고 있는 사실. 멀찌감치서 일행이 잠드는 것을 확인한 보라색 단발머리의 소녀는 조용히 물러나 마법사에게 보고하던 동굴로 돌아갔다.


 


[마음 놓고 잠이 들었다 이거지.]


 


역시 그 동굴 전체가 울릴 것 같은 목소리. 소녀가 언제나 변함없는 그 무감각한 어조로 말했다.


 


"네. 더이상 이 섬에는 그들의 적이 없으니까요."


 


[물론 그들만의 생각이긴 하지만.]


 


마법사의 목소리가 몹시 교활해졌다.


 


[그건 참 다행이구나. 나도 아직 약간의 시간이 더 필요하던 참이었거든.]


 


"이제부터는 무엇을 하면 되겠습니까."


 


어디까지나 자신의 할일만을 듣겠다는 말투. 소녀는 아마 바로 근처에서 폭탄이 터져도 자신에게 직접적인 피해가 오지 않는 한 눈 하나 깜짝 하지 않을 것 같다.


 


[나야 그저 몇시간이 더 필요할 뿐이지만... 일단, 실험 대상이 만전의 상태를 갖출 시간 정도는 줘야겠지. 그래야 의미가 있으니까.]


 


소녀에게선 별다른 대답이 들려오지 않았다. 아직 자신의 할일을 듣지 못했기 때문일까. 그런 기색을 아는지 모르는지 마법사가 다시 말했다.


 


[내가 준비가 될때까지 잠시 대기다. 그 후에는, 내가 준비해주는 서번트를 데리고, 최후의 승자를 눌러버리면 된다.]


 


"알겠습니다."


 


소녀는 조용히 마법원이 새겨져 있는 벽에 기대어 앉았다. 그리고는 그저 무표정한 얼굴 그대로 벽에 등을 기댄 체 동굴 바깥을 응시하기 시작했다.


그런 무료한 시간을 보내기 시작하는 소녀에게 마법사는 전혀 관심을 두지 않는지 더이상 말이 없었고, 소녀 역시 그 자세를 잡은 이후 미동도 하지 않았다.


 


 


치요가 눈을 떴을 때는 이제 막 동쪽 수평선 위의 하늘이 붉게 물들기 시작할 시기였다. 때문에 아직 주변은 어두웠고, 이오도 설하도 아직 일어나지 않은 때였다.


모두 잠들어 있는데 혼자 깨어 있으려니 어쩐지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으나, 더이상 잠도 오지 않는 참에 그냥 일출이나 구경하기로 하고 주변에 적당한 바위 위로 올라가 주저앉았다.


평범한 일상을 보낼 때의 일출은 보기에 정말 아름다운 광경임에 틀림 없으나, 지금은 이 무인도에서 너무도 많이 봤던 탓인지, 아니면 서로 죽고 죽이는 잔혹한 게임을 치룬 직후라 그런지 전혀 아름다워 보이지 않았다.


여름철인 탓에 태양은 상당히 빨리 솟아오른다. 조금 전 까지만 해도 그저 동쪽 하늘이 붉게 물들기 시작하는 정도였으나, 벌써 태양의 첫머리가 수면 위로 고개를 내밀고 있다.


그리고 곧 눈이 부셔왔다.


치요는 살짝 눈을 감으며 고개를 숙였다. 태양이 그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삽시간에 주변이 밝아져 왔고, 어쩐지 바닷 바람이 더 강해지는 느낌도 받았다.


 


싸움이 끝났다. 라고 생각하니 자연히 이 무인도에 처음 올 때가 생각난다. 언제나 처럼 사카키, 토모, 카구라, 요미 등과 함께 바다 여행을 나온 치요와 아유무 일행. 때는 한창 피서철 이라 주변에 함께 나와있는 놀잇배는 치요 일행이 타고 있는 배 뿐만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때 일어났던 풍랑과, 여지껏 싸워왔던 생존자들. 사카키 등의 생사는 확인할 길이 없었고 함께 이 섬에 표류했던 아유무 마저 다른 표류자 들의 손에 죽음을 맞이했다.


그리고 남아있는, 이 섬에서 처음 만난 이오, 그리고 서번트라 불리는 자신을 보호해줬던 마술사, 설하. 이렇게 단 세명 만이 이 무인도에 남아 있다.


그때를 생각해보면, 서번트 까지 포함하여 24명이나 되는 대 인원이 섬 곳곳을 어슬렁 거리고 있을때는 꽤나 무인도가 시끌벅적 했었던것 같다. 곳곳에 남아있는 난투의 흔적, 그리고 죽어있는 마스터들의 시체. 가장 먼저 죽음을 맞이했던 카가미나 유노의 시체는 아마 지금쯤 강하게 내리쬐는 햇빛 아래 심각하게 썩어 있을 것이 분명하다.


 


그러한 생각을 하는 동안 주변은 완전한 아침을 맞이했고, 좀 전까지는 없던 안개 마저 뿌옇게 자리잡고 있었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느라 시간이 많이 흐른 것인가? 하지만 실제로 해가 수면 위로 완전히 모습을 드러냈을 뿐, 시간은 치요의 생각만큼 그리 많이 지나진 않았다.


 


"아... 치요쨩. 일찍 일어났네."


 


그 사이에 정신이 든건지 이오가 잠에 취한 얼굴을 들었다. 치요가 그를 돌아보며 힘없이 웃었다.


 


"일출을 보고 있었어요."


 


"그래? 후우... 일출도 이젠 지겨워."


 


이오가 터벅터벅 다가와 치요 옆에 앉았다.


 


"근데... 우리가 다시 돌아간다고 해도... 그때부터는 이 일출만 보면 지금 생각이 날것 같에."


 


"그땐... 어떤 느낌일까요. 난 무서울것 같에요."


 


"....그래. 확실히 좋은 경험은 아니니까."


 


이오와 나란히 감상 하는, 이제 막 일어난 태양. 지금이 몇시 인지 알길은 없지만, 어쨌든 태양을 포함한 이들 일행의 하루의 시작은 참 절묘하게 동시에 시작된다.


그 가설을 증명하듯 설하의 목소리도 들려왔다.


 


"대륙까지는 꽤 먼 거리입니다."


 


신기하게도 잠에 취한 목소리가 아니었다. 이오와 치요가 흠칫 놀라 설하를 돌아보았다.


 


"아... 어, 언제 일어나셨어요?"


 


"마스터께서 정신이 들때 비슷하게 일어났습니다. 메모라이즈를 바로 시작하느라 계속 누워있었을 뿐이죠."


 


"...그렇군요."


 


잠시 침묵. 이제는 별것 아닌 일에도 괜히 크게 놀라곤 한다. 설하는 고개를 갸웃 거렸지만 치요와 이오는 그냥 그렇게 멍 해진 눈으로 설하를 바라 보았다.


잠시 후 당황에서 깨어난 치요가 말했다.


 


"그... 그럼 이제 섬을 나갈 방법을 생각해보기로 해요."


 


"...마스터."


 


문득 설하가 은근한 어조로 치요를 불렀다.


 


"미리 인사를 드려 둬야 겠습니다."


 


"네... 네?"


 


"이 섬을 나간 이후, 언제 제가 사라져 버릴지 모르는 것이니까요."


 


"............."


 


치요의 동작이 굳는다.


어쩐지 오늘 일어난 이후 한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그러나 그 전까지는 너무나 잘 알고, 또 그만큼 걱정해오던 사실.


최후의 승자를 가리지 않고 마스터들이 이 섬에서 빠져나갔을 경우, 서번트는 제 2의 삶을 얻지 못하고 다시 사라져 버린다. 아니, 그 누구도 정확히 "그렇다"고 말하진 않았으나 상식적으로 생각해볼때 그렇잖겠는가? 그 가능성으로 치면 충분하고도 남을 것이다.


 


"서... 설하님..."


 


말을 더듬거리며 바위에서 내려선다. 그저 평온한 얼굴로, 잔잔한 미소 마저 띄운체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화가의 얼굴. 그는 제 2의 삶을 권고 받고, 치요를 지켜주기 위해 이 시대에 소환된 뒤, 치요를 무인도에서 탈출 시켜준 후 죽었던 그 때의 시대로 돌아갈 것이다. 아니, 어쩌면 치요가 무사히 원래의 육지로 돌아가는 것을 제대로 확인해 보지도 못할 것이다.


이오 역시 우울한 얼굴로, 조용히 치요와 설하를 지켜보는 가운데 치요는 한걸음 한걸음, 그 몇미터 되지도 않는 거리를 상당히 먼 거리처럼 그렇게 오래도록 걸어갔다.


 


"설하님...!"


 


팍! 그리고 치요는 설하에게 안겨들었다. 설하 역시 치요를 깊숙히 품어 안아주면서 등을 토닥였다.


 


"전 괜찮습니다. 제 아내의 어린시절을 쏙 빼닮으셨던 마스터를... 이렇게 마지막 까지 지켜드릴 수 있어서 기쁩니다. 죽어 없어지기 전에 멋진 추억 하나 가슴에 새겨둘 수 있어서 전 기쁘기 한량없습니다."


 


"으아앙! 설하님...! 나, 나, 평생 설하님을 못 잊으면 어떻게 해요...!"


 


얼굴을 씻고, 한숨 푹 자는 사이 그나마 좀 깔끔해졌던 치요의 얼굴이 다시 눈물로 얼룩져 갔다. 그러나 치요는 "사라지면 안됀다"는 식으로는 결코 말하지 않았다. 그래봐야 설하가 사라지지 않는 것도 아니며, 지금 일행들의 마음만 더 아파질 뿐이라는 것을 그녀 역시 잘 알고 있다.


그렇게 누구 하나, 더 입을 열지 못하고 단지 치요의 훌쩍훌쩍 거리는 소리만이 설하의 품 속에서 새어나오고 있을 때였다.


 


"그건 너무 성급한 판단이 아닐까 합니다만."


 


갑자기 이 자리에서는 절대로 들릴 수 없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설하의 품 속에서 울고 있던 치요, 그리고 그런 치요를 꼭 안고있던 설하, 치요와 설하를 보며 씁쓸한 표정을 짓고 있던 이오가 동시에 왕방울만 해진 눈을 돌려 저 멀리 나무들 사이에 서 있는 소녀를 바라보았다.


 


"......설마.... .........설마?"


 


치요의 눈이 흔들리고, 이오와 설하는 즉시 경계의 표정을 지으며 치요를 막아섰다.


 


"나가토...?!"


 


보라색 단발머리와 무표정한 눈을 가진 소녀. 나가토 유키였다. 이오가 나가토를 노려보며 물었다.


 


"살아있었나...?! 버몬드는 분명히 죽었을 텐데!"


 


"그래요. 버몬드는 늑소에게 당했습니다. 하지만 서번트가 죽었다고 해서 마스터 까지 죽지는 않죠."


 


"빌어먹도록 잘 알아! 나가토! 설마, 이제와서 함께 섬을 빠져나가자는 헛소리를 하러 나타난 건 아닐테지?"


 


그리고 뒤이어 설하가 무시무시한 얼굴로 씹듯이 말했다.


 


"나 역시... 당신을 용서할 생각은 없습니다. 나가토님."


 


나가토는 살기를 마구 뿜어내기 시작하는 이오와 설하를 그저 무심한 눈으로 바라만 보고 있었다. 그러다 슬쩍, 그녀의 눈동자가 치요를 향해 고정되었다.


 


"이오 오빠. 설하님. 잠시만요... 제가 이야기 해볼께요."


 


치요가 한발 앞으로 나섰다. 설하와 이오는 잠시 놀란 눈으로 치요를 바라보다 살짝 양 옆으로 비켜섰다.


 


"...이야기를 들어주실 마음의 준비는 되신 모양이군요, 치요."


 


"이야기... 라뇨?"


 


먼저 뭔가 말해보려 했는데 뜻밖에 나가토가 선수를 쳐서 이상한 소리를 하자 치요를 비롯한 일행 모두가 고개를 갸웃 거렸다.


 


"무슨 말씀이세요?"


 


"최후의 승자를 마저 가려내지 않으실 생각인가요."


 


그 말에 이오가 버럭 큰 소리를 쳤다.


 


"아직도 그따위 소리를! 우리는 다 같이 섬을 빠져 나가기로 약속한 친구 사이라고 몇번을 말해야 알아듣겠나!"


 


"저는 치요에게 물었습니다. 패배자는 조용히 해 주세요."


 


나가토의 그 말은 이오로 하여금 '기가 막혀서' 입을 다물게 만들어버렸다. 그러자 이번엔 설하가 나섰다.


 


"새삼스럽게 그걸 물어보는 이유가 뭡니까."


 


"...치요의 서번트라서 말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시는 모양입니다만, 아마도 내 질문은 치요 본인이 아니면 대답하기 힘든 질문이라 생각됩니다. 이왕이면 치요가 직접 대답해주지 않겠어요?"


 


"........."


 


그러고 보니 정작 치요는 아무말도 못하고 있었다. 설하와 이오가 그러한 기색을 눈치채고 당황해서 치요를 바라보았고, 나가토가 다시 말했다.


 


"치요. 당신은 이제 와서는, 당신의 서번트가 사라지는 것을 크게 슬퍼하고 있습니다. 싸움의 초반이야 함께 나갈 것을 약속한 친구가 많았으니 '함께 나가자'는 주제가 어느정도 설득력이 있었으나... 지금 당신의 주변엔 대체 누가 남아있나요? 함께 살아 나갈 친구란 누구를 말하는 거죠?"


 


"......!"


 


순간 치요의 입이 딱 벌어졌다. '천재'라 불리던 그녀의 두뇌. 그녀는 벌써 나가토의 말에 담긴 의도를 깨닫고 있었다.


 


"당신의 주변에 남은 사람은 이오 라는 패배자와, 설하 라는 당신의 서번트 입니다. 최후의 승자를 가린다 해도 사라지는건 한명, 그리고 다같이 섬을 빠져나간다 해도 사라지는건 한명이죠."


 


"그... 그만...!"


 


치요의 턱이 부들부들 떨리며 신음 비슷한 소리를 내었으나 나가토는 가차없이 분명한 현실을 내뱉었다.


 


"이오 라는 패배자 보다는 설하 라는 서번트 쪽이 치요의 입장에서는 더 아쉬울 거라 생각됩니다만... 차라리 이오를 마저 처리하고 설하와 함께 육지로 돌아가는 것이 훨씬 치요에겐 이득일텐데요."


 


"그만!!"


 


기어이 치요가 주저앉았다. 설하는 꼼짝도 못하고 혼란스러워 하는 그의 마스터를 내려다 보았으나, 이오는 바득바득 이를 갈며 나가토를 죽일듯이 노려보았다. 냉큼 몽둥이 하나를 주워들었다.


 


"더이상 지껄이지 마! 그러는 너 역시 서번트를 잃은 패배자인 주제에!!"


 


이성을 잃은 듯, 이오는 그대로 나가토에게로 달려들며 몽둥이를 휘둘렀다.


순간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난데없이 거대한 방패 하나가 나가토 바로 앞에 생겨나, 이오의 몽둥이를 막아낸 것이다. 이오는 눈이 튀어나올 듯이 놀라서 비척비척 뒤로 물러섰다.


 


"거......."


 


놀라버린건 치요 역시 마찬가지였다. 분명, 비슷한 광경을 얼마전 본 기억이 있는 탓이다.


 


"거짓말......."


 


사라락... 방패가 사라지고, 다시 모습을 드러낸 나가토가 주저앉아버리려는 이오를 싹 무시한체 치요만을 보며 말했다.


 


"치요의 입장에선... 최후의 승자의 자리를 마저 차지 하는 것이 훨씬 이득이예요."


 


"거짓말이야...!"


 


치요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거... 거짓말... 그럴리 없어...!"


 


"치요."


 


나가토가 여전히 그 무표정한 기색으로 명령하듯 말했다.


 


"이오를 죽이세요."


 


"아아아아악! 닥쳐!"


 


이오가 다시한번 고함을 지르며 일어나 나가토에게 몽둥이를 휘둘렀다.


바우웅! 이번엔 방패도 생겨나지 않았고, 이오 역시 풀스윙 으로 나가토의 몸을 팔의 궤적 안에 넣을 수 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몽둥이가 사라져 버렸다는데에 있다.


 


".......?!"


 


여전히 나가토는 이오를 무시하며 말했다.


 


"이오를 죽이고, 최후의 승자가 되세요. 당신의 서번트와 함께 육지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크아악!!"


 


맨손으로라도 나가토를 목졸라 죽이려고 이오가 달려들었다.


차라랑!


순간, 허공에 날카로운 칼날이 마구 생겨나더니 이오의 주변을 둘러싸버렸다. 삽시간에 수많은 칼날 속에 갇혀버린 이오는 그야말로 꼼짝도 할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결단을 못내리겠다면 제가 도와드릴께요."


 


나가토의 전혀 변동도 없는 목소리. 치요의 눈이 다시 거대해졌다.


 


".....안돼!!"


 


푸슉! 푹! 푸바박! 푸팍!


 


이오는 그대로 허공에 뜬 체 칼꽂이가 되었다.


비명도 못지르고, 전신에 칼이 꽂힌 체 두 눈을 부릅뜨고 죽은 이오의 모습은 두번은 절대 보지 못할 만큼 참혹했다. 당장 피가 폭포처럼 칼날을 타고 내려와 바닥을 적신다.


 


".....이.... 이오... 이오 오빠......!"


 


치요의 눈은 눈 앞의 광경을 절대로 믿을 수 없다고 외치고 있다. 왕방울만 해진 눈을 제대로 수습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설하 역시 마찬가지였다.


 


"굴러들어온 기회를 내버리다니... 당신들이 어떻게 최후의 승자가 되었는지 의문이네요."


 


나가토가 천천히 다가오기 시작했다. 허공에서 온몸에 칼을 꽂은체 죽어있는 이오에게는 눈길 한번 주지 않고, 그녀는 그저 산책이나 하듯, 여유 있게... 그러나 표정만은 살벌함마저 느껴지는 무표정을 유지한체 걸어왔다.


 


"당신들을 만나보고 싶어하는 분이 계세요."


 


그리고...


나가토의 바로 오른쪽에는 어느샌가 조금씩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아니, 조금이 아니다. 그 검은 연기는 은근히 빠른 속도로 그 영역을 넓혀갔다.


치요와 설하의 바로 앞까지 다가온 나가토의 얼굴엔 드디어 처음으로 한가지 표정이 생겨났다.


 


"유감이예요. 당신들이 진작에 최후의 승자 자리를 차지했었더라면..."


 


차가운 미소. 달리 설명할 말이 없다.


 


"이 분을 만날 필요가 없었을 텐데 말이죠."


 


화아악! 그 사이에 사람만한 크기로 커진 검은 연기 속에서, 뭔가가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검은 로브...


그리고 붉은 장발 머리.


이지적이고 엄한 분위기를 가진 눈매.


 


"거짓말이야...!!"


 


치요가 온몸을 사시나무처럼 떨기 시작하고, 설하는 한발 앞으로 나서 치요의 앞을 막아섰다.


연기가 완전히 걷히고, 확실히 설하 보다는 조금 더 큰 신장을 가진 검은 로브의 청년이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안녕하신가..."


 


그리고 나가토의 입이 열렸다.


나가토의 목소리가 아니다. 그녀의 눈은 마치 전구라도 된듯 안광을 내뿜고 있고, 목소리 조차 나이 지긋한 노인의 목소리로 변해 있었다. 그 목소리를 듣는 순간, 치요가 비명처럼 말했다.


 


"그... 그 마법사!!"


 


설하가 놀란 눈으로 치요를 바라보다 다시 나가토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낮게 물었다.


 


"네가 바로 마스터들에게 이 잔인하기 짝이 없는 게임을 시킨 그 마법사로군. 확실히 강력한 마나력이 느껴진다."


 


부드럽게 고개를 끄덕인 나가토는 차분하게 말했다.


 


"우선... 축하 한다는 말 부터 해야겠지? 그 마스터는 12명의 꼬마들 중에서도 특히 기억에 남는군. 나에게 헛소리 말고 모두를 다 살려내라고 외치던 몇 안돼는 꼬마 중 하나였지. 거기다 마스터 중 최 연소자 이기도 하고."


 


".........."


 


두려운 눈으로 나가토를 바라보던 치요는 덜덜 떨리는 동작으로 고개를 돌려 조용히 서서 이쪽을 노려보고 있는 검은 로브의 청년을 바라보았다.


 


"차... 찰드님......"


 


치요나 설하의 예상과는 달리 찰드는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오랜만이다, 치요. 반가운 자리가 아니라서 유감이군."


 


"어... 어째서 나가토 언니, 아니... 저 마법사랑 함께...?"


 


나가토가 얼른 말했다.


 


"큭큭큭... 오랜 동료의 상봉을 방해해서 미안하네만... 이제부터 내가 하는 말에 그 설명도 포함되어 있을테니 일단 진정하고 이야기를 듣게."


 


치요가 당장 나가토를 보며 외쳤다.


 


"지, 지금 진정하게 됐어요?! 어째서 당신은 이런 엄청난 일을 꾸민거예요! 당신 때문에 죽은 사람이 몇명인지 알기나 하는건가요!"


 


"나약하게 살려달라고만 외치던 꼬마가 제법 패악스러워 졌군."


 


낄낄 거리는 나가토에게서 시선을 돌린 설하가 치요에게 물었다.


 


"찰드라면... 그 염력술사를 말하는 것입니까. 저자가 그 염력술사 인지요?"


 


"....네."


 


설하가 다시 고개를 들어 찰드를 바라보았다. 찰드는 설하와 마찬가지로 적의와 침착함이 두루 담겨있는 눈으로 그렇게 설하를 마주보았다.


 


"이 모든건... 나의 실험이지."


 


나가토가 갑작스럽게 말했다.


 


"실험...?"


 


"그렇다. 난 마나를 다루는 마법사지만... 그래. 어찌보면 마도사에 가까운 위치지. 그러나 난 마나 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었다. 세상에는 자연력, 신력이 가장 넓게 발달되어 있고, 드물게는 영력을 연구하는 사람도 있지."


 


나가토... 이젠 이렇게 부르지 말자. 마법사는 어쩐지 체념이 느껴지는 어조로 말했다.


 


"이 세상에 사람들이 관심을 두는 분야는 단지 그것 뿐이다. 하지만 과연 그것 뿐일까?"


 


"무슨 말을 하고 싶은거냐?"


 


설하가 다그치자, 마법사가 곧장 대답했다.


 


"우리는 초능력 이라는 힘을 안다."


 


치요와 설하는 흠칫, 하더니 반사적으로 찰드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초능력... 그래. 어떻게 들으면 유치한 단어로 들리지. 하지만 그게 왜 인줄 아나? 어린아이들 만이 아주 잠깐, 나이 먹기 전에 잠깐 발휘했다가 금방 사라져 버리는, 그 어떠한 만물의 원리로도 설명이 불가능한 비과학, 비마학, 비신학, 비영학 적인 힘이기 때문이다. 단지 어린애들의 장난 쯤으로 여겨지고, 금방 잊혀지는 힘에 불과하지."


 


".........."


 


"그러나..."


 


마법사의 어조가 살짝 높아진다.


 


"초능력이 단지 그것 뿐일까."


 


마법사가, 나가토가 허리를 꼿꼿이 펴며 뒷짐을 지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난 그 힘을 '의지력'이라 칭하고 전문화 시키려 한다."


 


"전문화?"


 


마법사의 미소가 교활해져갔다.


 


"이 힘은 절대 풀리지 않는, 사용자의 강력한 의지력으로 발동된다. 자연력, 신력, 영력 따위는 의지력을 따라갈 수 없지. 사용자의 의지 만으로, 있을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되는 괴기현상과 기적을 일으키는 힘... 다른 모든 힘을 짓밟아버리고, 자칫하면 세계의 파멸로 이어질 수 있는 절대적인 힘... 활성화 될 수도, 활성화 되어서도 안되는, 순도 100%의 의지력을 가진 자만이 발휘할 수 있는 힘."


 


마법사는 그 이상 목소리를 높이진 않았으나 뭔가 형용할 수 없는 힘이 섞여 있다.


 


"그것이 바로... 현대 술사들이 무시하고, 관심갖지 않던 초능력이다."


 


"그러면..."


 


설하가 입을 열었다.


 


"그때 날 보낸 저승사자가 염력술사는 따로 짝이 정해져 있다고 한 것도... 지금 이 자리에 의지력이 어쩌니 헛소리를 지껄이고 있는 네놈과 찰드가 함께 있는 것도... 모두 네놈의 그 건방진 계획 때문이었군."


 


"후후... 그 단어 사용은 심히 불쾌하네만, 의미를 말하라면 그렇군."


 


"한가지 의문이 생기는데... 물어보면 대답 할텐가."


 


설하의 말에 마법사는 두 팔을 펼치며 즐겁게 말했다.


 


"실험 대상과 담소를 나누는 것도 좋은 경험이지. 무엇이든 물어보게."


 


"과거 인물이 소환되어 오는 서번트와... 현대를 살아가는 마스터들을 연결시켜내는 것은 마나력 만으로는 절대 불가능 하다. 그런데 어떻게 그것이 가능했던 것이냐. 그리고, 날 보낸 저승사자는 너에 대해 아는 것 같은 기색이던데... 네놈은 현대를 살아가는 인간으로서 어떻게 저승사자들이 이쪽으로 서번트를 파견할 것을 알수 있었지?"


 


"흠..."


 


마법사는 흥미로운 표정으로 설하를 바라보다가 곧 입을 열었다.


 


"날카로운 질문이군. 최후의 승자에겐 그 정도 질문은 물론 대답을 해주마."


 


다시 차분한 말투로 돌아간 마법사는 조용히 이야기를 시작했다.


 


"너희들, 서번트 들을 뽑아 이 시대로 보낸 저승사자는 한두명이 아님을 알 것이다."


 


"그래. 저승사자 한명당 한명씩 뽑아 보낸것 같던데."


 


"후후... 그것 까지는 내가 알바 아니라서 모르겠네만 그럴거라고 나도 추측 중이네. 아무튼, 의지력에 관해 관심을 갖고 관련 기록들을 찾아보던 나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아 어떤 이계(異界)의 술사를 만날 수 있었지."


 


"...이계의 술사?"


 


"그래. 그쪽은 혼령술사 였지. 그는 나에게 솔깃한 제안을 했네. 혼령술사 답게, 우리가 살아가는 피아 차원의 12명 분의 영혼을 구해 달라는 것이었지. 그러면 그 댓가로, 내가 그토록 밝혀내고 싶던 의지력의 비밀을 찾을 수 있도록 해주겠다는 게야."


 


그 입가에 미소가 지어진다.


 


"한마디로..."


 


그의 시선이 살짝 옆에 있는 찰드를 향했다.


 


"이 찰드를 뽑아 보낸 자는 저승사자가 아니라 바로 그 이계의 혼령술사 였던 것이지."


 


"뭣....!"


 


치요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찰드를 바라보았고, 마법사는 계속 말했다.


 


"복잡한것은 없다. 그 혼령술사와 나는 상호 협력을 약속했을 뿐이지. 나는 그에게 우리 차원의 12명의 영혼을 넘겨 주고, 그는 나에게 의지력을 다룰 수 있는 비법을 전수 해 주기로 한 거지. 그리고 그렇게 알게 된 비법을 곧장 실험해 보기 위해 이 배틀로얄 게임 속에 섞어 넣어본 것이 바로 여기 있는 찰드인 것이다."


 


"........."


 


설하와 치요는 기어이 할말을 잃고 말았다. 찰드가 왜 그토록 무적에 가까운 힘을 발휘했었는지, 왜 3명이나 되는 서번트가 한꺼번에 달려 들어도 소용이 없었는지, 지금은 왜 이 게임을 시작한 마법사와 함께 있는지... 그 모든 것이 밝혀진 것이다.


바로 주최자인 이 마법사가 직접 투입한 서번트 이기 때문에!


 


"이계의 소환술사가 나에게 힘을 전수한 것이기 때문에 이것은 당장 이계력의 균형에 작은 파장을 불러온 사건 중의 사건이었다. 그 때문에 저승사자 들은, 애초에 내가 불러일으킨 해일에 의해 죽게 되어 있었던 11명 보다 많은 12명의 영혼 건을 해결해야 했고, 부랴부랴 너희 서번트 들을 파견한 것이다. 적어도 1명은 살아 남아야 이 세상의 균형이 지켜질 것이거든. 물론 급하게 하느라 저승사자 간의 일 처리 사이에 실수가 생겨서 저마다 한명씩 다 뽑아서 보내게 된 것이겠지만... 뭐, 덕분에 이런 재미있는 게임판이 만들어 졌으니, 실수를 저지른 저승사자 녀석들에게 감사해야 할 일이야. 으하하하..."


 


즐겁게 웃는 마법사에게 치요는 생전 처음으로 살의를 느꼈다. 눈앞의 이 정신나간 마법사는 지금 시대의 사람들과 과거의 사람들, 그리고 저승사자 들을 동시에 농락한 용서받지 못할 죄를 저지른 미치광이에 불과했던 것이다.


모든것은 오로지, "의지력"의 활성화를 위해서. 이 마법사가 아니면 그 누구도 관심 갖지 않을, 말하자면 이기심 때문에 이 수많은 사람들을 농락해온 것이다.


치요는 굳은 목소리로 물었다.


 


"그럼... 나가토 언니는... 누구인가요."


 


"나가토? 이 아이야 당연히 내가 만들어낸 내 부하지. 큭큭... 수고했다고 한마디 해주게. 이 게임판을 위해 섬에 카드를 뿌려둔 것도 이 아이고... 기타 등등 원활한 게임 진행을 위해 성실히 내조를 해왔으니 말이야."


 


"......."


 


치요는 살기어린 눈으로 마법사를 바라보다가 찰드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염력으로 의도를 깨달은 건지, 찰드가 먼저 말했다.


 


"이젠 내가 대답할 차례인가."


 


"마법사를 죽이세요."


 


"넌 카가미가 아니다."


 


"저런 정신나간 헛소리를 하고 당신마저 농락한 미친 마법사를 가만히 놔둘 생각이예요?! 죽여버리세요! 당신이라면 할수 있잖아요!"


 


"나에게 명령을 할수 있는 사람은 카가미 뿐. 넌 나에게 명령 권한이 없다."


 


"아앗! 내가 명령을 하는게 아니잖아요! 당신은 화도 안나요?! 카가미 언니, 그래요! 카가미 언니 마저도 저 마법사의 말도 안돼는 짓거리 때문에 죽은 거라고요!


 


"후우..."


 


찰드의 표정이 우울해졌다.


 


"넌 나에 대해 무엇을 알고 있지?"


 


"....네?"


 


"내 전생이 무엇이었는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한번이라도 얘기한 적이 있었나. 어떻게 내가 이 마법사의 말에 너희들과 비슷한 느낌을 받을 거라고 생각한단 말인가."


 


"무슨... 뜻이예요?"


 


치요의 말문이 막혀버리자, 설하가 다시 나섰다.


 


"염력술사. 너와 난 만난 적이 없었다. 이야기를 많이 듣고 꼭 만나보고 싶었는데. 네 말대로 반가운 자리는 아닌듯 하군."


 


"...그런가. 치요의 서번트 로군. 반가운 자리가 아닐지라도 일단 반갑다는 말은 해두겠다."


 


"나는 마술사 서번트, 설하다. 네 말을 들어보니 만만찮게 불행한 삶을 살아온 것 같은데... 일단 이렇게 물어보지. 어째서 저 마법사의 말을 따르는 거지."


 


"질문이 잘못되었다. 말에 따르는 것이 아니라, 한가지 제안에 응한것 뿐이니까."


 


"제안?"


 


"이 싸움."


 


배틀로얄 이라는 마법사가 만든 싸움. 그저 염력술사의 힘을 시험해보려는 목적 하나 만으로 11명의 아이들에게 강요했던 최후의 승자를 가리는 싸움. 그 싸움을 이야기 하면서도 찰드는  별 표정의 변화도 없이 말했다.


 


"녀석들의 염력, 그러니까 의지력을 가지고 싸워봐 달라는 제안이었지. 후... 그러고 보면 난 죽어서도 용병의 길을 걷게 되는군."


 


"용병...? 전생이 용병 이었나."


 


"그런 셈이지. 직업 용병은 아니었지만... 남이 할 싸움박질은 모조리 대신 해주고, 고용주 한테서 마저 언제나 배신을 당했었지."


 


"....."


 


설하는 깊은 눈으로 찰드를 잠시 조용히 바라보다가 다시 물었다.


 


"싸움을 해주는 대신 네가 받기로 한것은 뭐냐."


 


"하나는, 물론 너도 알다시피 제 2의 삶이다."


 


"하나는? 그럼 또 뭐가 있단 말인가."


 


"난 이미 한번 당했었다. 그건 거기 치요를 통해 들어 알고 있겠지. 따라서 더이상 이 싸움은 하지 않으려 했지. 전생도 배신만 죽어라 당해온 내가, 서번트가 되어 싸움을 시작했는데도 또다시 배신으로 인해 최후를 맞이했으니까..."


 


준의 배신. 충분히 최후의 승자가 되어 제 2의 삶을 얻을 수 있었던 찰드는 또다시 배신으로 인해 서번트 중 가장 먼저 퇴장해야 했었다. 그러나 그 이야기를 하면서도 찰드는 즐거운듯 했다.


 


"뭐, 그래서 더는 삶 따위 흥미도 없고, 또 언제 누구에게 배신을 당할지 몰라 안하려고 했는데... 이 마법사 녀석이 생각지도 못한 조건을 걸더군."


 


"......무슨 조건이지?"


 


찰드가 지금, 즐거운 이유가 되는 바로 그 조건. 뭔가 대단한 이유를 말할 줄 알았는데.


 


"카가미를 되살려 주기로 했다."


 


".........."


 


과연, 생각지도 못한 조건이다. 치요가 당장 크게 놀라 소리쳤다.


 


"이... 이미 죽은 카가미 언니를 어떻게 되살린다는 거죠!"


 


그 말에는 마법사가 코웃음을 쳤다.


 


"한심하긴. 너는 너 주변에 있는 서번트 들이 어떻게 해서 이 자리에 서 있는지 모른단 말인가."


 


".......!"


 


치요가 다시 할말을 잃는 순간, 설하가 찰드에게 말했다.


 


"카가미...? 내 마스터께서 알고 있는걸 보니 너의 마스터 였던 모양이구나."


 


"아. 전생에서 하도 배신질을 당하다 보니... 그리고 그건 여자들 한테서도 마찬가지였지. 그런데 이런 싸움판에 불려와서, 내 마스터로 그런 아이를 만나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다."


 


찰드가 서서히 설하를 향해 손을 뻗었다.


 


"난 마법사의 제안에 의해, 널 없애버리고 제 2의 삶과 카가미를 받아 낼 것이다."


 


"결국 목적은 그건가."


 


설하가 웃음섞인 한숨을 내쉬었다.


 


"의지력의 컨트롤을 위해 싸움판을 만들어 놓는 놈이나... 여자 한명을 얻기 위해 남을 죽이려 드는 놈이나... 끼리끼리 아주 잘 만났구나, 네놈들."


 


"닥쳐라!"


 


찰드의 표정에 처음으로 노기가 섞였다.


 


"너 따위, 평화롭게 그림질이나 해대던 화가 녀석이 어떻게 내 기분을 안다고 지껄인단 말이냐. 일생 내내 배신을 당하고, 서번트끼리의 싸움에서까지 배신으로 생을 마감해야 했던 내 기분을 네가 어떻게 안다고 입을 놀리는 거냐!"


 


"네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따위는 관심 없어. 전생은 어땠는지 내가 알바 아니고, 이번 싸움에서조차, 넌 다른 서번트에게 자신의 마스터를 안심하고 내맡겼다가 처발린 멍청한 서번트에 불과하다."


 


설하의 눈에 독기가 서렸다.


 


"모두가 최후의 승자를 꿈꾸고 있던 이 싸움에... 어떻게 함부로 자신의 마스터를 남의 손에 맡긴단 말이냐. 그건 배신따위가 아냐. 카가미를 죽인건 바로 너다."


 


"......"


 


찰드의 눈이 커졌다. 딱딱 끊어지는 턱의 움직임. 상당히 충격적인 말을 들었을때 치밀어 오르는 화가 억제가 안되는 듯한 표정이었다.


 


"네... 네놈은..."


 


그 말을 막고 설하가 계속 말했다.


 


"우리들 중 그 누구도 그런 멍청한 짓은 하지 않았다. 테오 역시 네놈을 알던데... 넌 전투를 위한 특수 능력이 전혀 없는 성직자 테오를 우습게 생각했었겠지? 아니라면 할말 없지만. 어쨌든 아유무님의 서번트였던 테오도 그런 멍청한 짓은 하지 않았다. 넌 서번트의 자격이 없는 놈이다."


 


"네놈은......!"


 


찰드가 살기등등한 눈으로 설하를 노려보았다.


 


"최후의 승자가 되더니... 기고만장해진 꼴이 가관이로군... 네가 날 이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인가. 난 무적의 염력술사, 찰드다."


 


차라랑! 당장 찰드의 몸 주변에 수십자루나 되는 칼과 창이 생성되었다. 치요는 숨 넘어가는 소리를 냈지만 설하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널 죽여버리고 난 카가미를 되찾겠다. 내 실수로 죽은 카가미에게... 내가 책임지고 천국을 보여줄 수 있다면. 그렇게 된다면...!"


 


확! 찰드가 설하를 가리켰다.


 


"난 뭐든지 할수 있다!!"


 


차라라랑! 수십자루의 칼날이 그대로 설하와 치요가 있던 땅을 덮쳤다. 설하는 급히 치요를 안아들고 그 자리를 피했다. 치요가 잔뜩 겁에 질린 목소리로 외쳤다.


 


"서... 설하님.....!"


 


"마스터."


 


그러나 설하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두려워 마십시오. 마스터께서 굳은 마음을 가지시고... 절 도와주셔야 합니다."


 


"네... 네?"


 


서번트끼리의 싸움에 자신이 도와줄 것이 뭐가 있는가 하는 생각에 멍 해지는 치요를 땅에 내려놓은 설하는, 다시 일어나 찰드를 마주 노려보며 말했다.


 


"저에게 명령해 주십시오. 입으로 하는 말이 아니라, 당신의 의지로."


 


".........."


 


설하의 눈은... 아까 전 찰드가 처음 나타났을 때와 맞먹는 적의와 침착함이 담겨 있었다.


 


"찰드를 죽이라고."


 


".......!"


 


콰지직! 옆에 있던 나무가 뿌리채 뽑혀 날아들었다. 다시 치요와 함께 몸을 날려 나무를 피한 설하가 숨찬 기색도 없이 곧장 몸을 일으켜 찰드를 노려보며 다시 말했다.


 


"저는... 이전까지의 싸움에 찰드를 본적이 없으니 그의 힘을 잘 모릅니다만... 이것 하나는 알 수 있습니다. 염력이란, 사용자의 의지력을 사용하는 힘 입니다. 그 힘의 발동은 어떠한 힘 보다도 빠를수도 있고, 말도 안될 정도로 강할수도 있습니다."


 


슬쩍, 설하가 고개만 돌려 치요를 돌아보았다.


 


"그러나... 마법의 스피드로 친다면 전 최강입니다. 승률도 높지 않고 적을 일거에 끝장낼 수 있는 거대한 위력은 낼 수 없습니다만... 적어도 염력 만큼은..."


 


그리고 다시 찰드 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난 전혀 대단해 보이지 않습니다."


 


"......!"


 


그의 마스터에게 보내는, 절대적인 신뢰를 담은 한마디.


 


"저는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치요의 어린 마음엔, 그것이 세상의 그 어떤 것보다도 믿음직 해 보였다.


그 때문일까.


치요의 표정인 어느새 두려움이 사라져 있었다. 아니, 오히려 미소를 짓고 있다.


가만히 팔을 들어 설하의 허리를 끌어안는다. 단지 그의 등에 볼을 기대고 있을 뿐인데, 이제껏 안겨봤던 것 중에 가장 따스하다.


 


"설하님... 나... 설하님을 만나서 너무 좋아요."


 


"......."


 


치요의 더없이 평온한 말투. 설하 역시, 그러한 치요의 마음에서부터 전해져 오는 평화로우면서도 표현하기 힘든 어떤 "힘"을 느낄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부탁드릴께요."


 


치요가 살짝 설하에게서 몸을 떼었다.


 


"찰드님을... 죽여주세요."


 


치요의 말이 끝나기가 무서울 정도. 설하는 이미 그 자리에 없었다.


 


"응?"


 


갑자기 무서운 기세로 돌격해오는 설하에게 찰드는 어이가 없다는 듯 설하가 딛을 땅을 가리켰다.


 


"아직 정신을 못차렸군...!"


 


쿠과과과! 땅이 통째로 내려앉았다. 그 자리에 있던 흙과 바위, 나무들은 갑자기 밑고 끝도 없이 꺼져드는 구덩이를 따라 보이지도 않을 만큼 떨어져 갔다.


그런데 정작 설하가 보이지 않는다.


 


"뭐...?!"


 


사삭!


눈 깜짝할 사이. 설하는 이미 구덩이 건너편에 내려서고 있었다.


 


"뭐... 뭐야!"


 


차랑! 당장 찰드의 바로 앞에 날카로운 창이 생겨났다.


 


"끝까지 건방진 짓을! 네가 날 이길 수 있을것 같냐!!"


 


"염력술사 라면 의지력을 써라... 주둥이 힘만 쓰지 말고."


 


"닥쳐!"


 


화아아악! 창이 그대로 날카로운 굉음을 내며 설하에게로 똑바로 날아들었다. 그러나 설하는 엄청난 속도로 팔을 당긴 후 휘둘렀다.


 


"에어 어택(Air Attack)!"


 


퍼벙! 강력한 공기의 충격을 견디지 못한 창이 옆으로 튕겨져 나가고, 설하는 그대로 찰드의 바로 앞 까지 육박해 들어갔다.


찰드는 급히 설하의 코 앞에 칼날을 만들었으나 설하는 그 칼에 찔리기 직전... 도대체 어떻게 알았는지,


 


"블링크(Blink)..."


 


라는 짤막한 한마디로 칼 건너편의 찰드 앞에 딱 멈춰 섰다.


 


"파이어 볼(Fire ball)!"


 


푸화하학! 거대한 불덩어리가 그대로 찰드를 집어삼키고, 괴로워하던 찰드가 간신히 정신을 차리자 곧장 불은 사라졌다. 그러나 이미 설하는 찰드의 뒤로 돌아가 있었다.


 


"에어 어택!"


 


설하의 마법은 정말 단순한 잔마법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찰드는 그 잔마법이 발휘되는 속도를 미처 따라가지 못하고 계속 얻어맞고만 있었다.


 


"찰드?!"


 


나가토가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소리쳤다. 절대, 절대로 밀리지 않을 줄 알았던 염력술사가, 저 흔하디 흔한 마술사 에게 이렇게까지 상대가 안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탓이다.


 


"이렇게 되면 나도 진지하게 응해주마!!"


 


에어 어택에 정통으로 등을 가격당한 찰드가 아픔을 추스르고 뒤돌아 설하를 노려보며 몸 주변에 어마어마한 칼날을 생성시켰다. 그의 입 끝이 올라갔다.


 


"어디 이번에도 피해보시...."


 


"라이트닝 다운(Lightning Down)!"


 


때를 놓치지 않은 캐스팅. 콰과광!! 순간 찰드가 서 있던 땅에 벼락이 쳤다. 벼락 자체는 그다지 큰 규모가 아니었으나, 문제는 지금 찰드 주변엔 그가 만들어 낸 수많은 칼날이 존재하고 있다는 점이다.


 


"크억?!"


 


찰드 역시 그 사실을 깨달았으나, 칼날을 타고 그 한가운데에 있는 찰드를 노리는 뇌력의 파도는 그에 대처할 시간을 주지 않았다.


 


"크어아라라라라라락!"


 


찰드가 사정없이 감전되는 동안, 설하가 격정적으로 두 손을 펼쳤다.


 


"매직 미사일(Magic Missile)!!"


 


감전에 이어 찰드를 덮쳐드는 수십개의 빛의 화살. 그리고 찰드는 참혹하게도 사지가 부숴지며 나가떨어졌다.


 


"찰드으으으!!"


 


나가토의 비명. 그러나 그 비명 역시 오래 가지 못했다. 푸슉!!


어느새 나가토의 앞에 나타난 설하가 그대로 대거를 들어 나가토의 배를 찔러버린 것이다.


 


"......!"


 


나가토는 힘없이 쓰러지고... 설하는 그렇게, 찰드와 나가토의 시체 사이에 서 있게 되었다.


 


싸움이 시작된지 불과 약 2분만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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횟수를 "마지막 회"라고 쓰려다가... 엔딩편도 따로 있고... 그리고 마지막 회의 마무리 로는 좀 아니다 싶어서 ㅡ.ㅡ;


 


그냥 35회 라고 썼습니다 ㅎㅎ


 


그리고 엔딩편이 아니라 그냥 그걸 마지막 회 라고 쓰게씸 ~_~


 


후우... 또 작품 하나가 끝나는 군요. 비록 보는 사람은 없지만 ㅜㅡ


 


그냥 나 혼자 주절 주절~ 아햏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