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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도시 기록보관소

mirpia 피아니스트

2005.07.17 18:12

세이니 조회 수:586 추천:9

extra_vars1 솔직히 난 후회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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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과 후 집에 돌아와 내 방에서 수학문제를 깨작거리고 있던 나는 공부가 하나도 눈에 들어오지 않아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시계를 보니 짧은 바늘이 여섯시를 가리키고 있는게 보였다. 어느샌가 하늘도 조금씩 어둑해져 가고 있었다.  

나는 내방에서 천천히 걸어 나와 마루에 놓여져 있는 피아노의 앞에 털썩 앉았다. 기분이 좋지 않거나, 기분이 좋거나, 심심하거나, 할일이 없거나, 그냥 피아노를 치고싶거나 할때 언제나 나와 함께 해주었던 유일한 내 진짜 친구인 피아노가 보였다. 나는 피아노의 덮개를 열고 하얀 건반과 검은 건반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왜 그런 표정이냐며 피아노가 내게 말을 거는 것 같았다. 나는 피식 미소를 지으며 건반에 손을 얹었다. 그리고 천천히 연주를 시작했다. 곡명은... 쇼팽의 녹턴. 야상곡(夜想曲)...

‘ 쇼팽의 야상곡...이었죠? 정말 좋았어요. ’

문득 그 애의 목소리가 내 머릿속에 울려 퍼졌다. 나는 고개를 휙휙 저었다. 그러고 보니 그 애의 이름이 뭐였더라. 기억이 나지 않았다. 나는 한숨을 내쉬며 천천히 건반을 눌렀다. 마치 시냇물 소리나 한밤중의 나뭇잎 우는 소리를 연상시키는 음률이 피아노에서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이 곡은 몽환곡(夢幻曲)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나는 솔직히 야상곡이라는 이름보다 몽환곡이라는 이름이 이 곡과 더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이 곡을 치고 있으면 꼭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이 일거든. 그 꿈에 홀릴 것 같은 느낌과 함께 말이다.

천천히, 천천히 피아노를 치며 나는, 미친 듯 이 곡을 쳤었던 어젯밤을 떠올려 보았다. 그때의 야상곡이야 말로 야상곡이라는 이름과 어울리는 곡이었다. 어둠에 취해서, 오로지 피아노에 취해서, 다른 생각은 하지 못하고, 학교에서 피아노를 치면 누군가에게 들킬지도 모른다는 그런 생각 따위도 하지 못하고 그냥 피아노를 쳤다.

아마 그건 내가 다른 사람의 앞에서 피아노를 칠 수 없다던가, 그러면서도 왜 피아노를 치냐던가, 어째서 그렇게 되어 버렸냐던가 그런 여러 가지 이유들 때문에 감정이 격해졌던 것 때문이리라. 문득 내가 피아노를 치지 않았더라면 난 무얼 하고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이렇게 감정이 격해질 필요도 없었을까. 주체할 수 없는 그 격렬함을 난 느낄 수 없었을까.

‘ 선배님 말이 이상해요. 그건 분명히 가짜 같은게 아니었어요. ’

그녀와의 대화가 자꾸 내 머리를 떠나지 않고 머릿속을 울려댔다. 문득 내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그건 분명히 가짜가 아니었다고... 단지 격렬한 감정을 주체하지 못해서 연주...아니 그건 연주도 아니었다. 그냥 건반을 때려댔던 그 행위를 그녀는 가짜가 아니라고 말해주었었다.

왠지 부끄럽고, 또 기뻤다.

딩동, 딩동딩동.

갑자기 울려 퍼진 벨 소리에 나는 피아노를 치던 손을 문득 멈추고 현관 쪽을 쳐다보았다. 누구지? 이런 시간에 우리 집에 올 사람은 없을 텐데.

딩동. 딩동!!

“ ...? 네! 나가요 ”

나는 갸웃하며 현관으로 달려가 현관문을 벌컥 열었다. 그리고 현관 앞에는...

“ 선배님... 아하하. 안녕하세요. ”

콰당.

나는 나도 모르게 다시 문을 닫아버리고 말았다. 등 뒤로 식은땀이 주룩 흘러내리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현관 앞에는 어떻게 찾아 왔는지 그애... 아, 이름이 생각났다. 그 아미라는 여자아이가 서 있었다.

어째서?? 왜 여기에 온 거지? 혹시 내가 잘못 본건가? 나는 당황스럽기도 하고 어이없기도 해서 조심스레 다시 문을 열었다. 그러나 역시나 였을까, 문 앞에는 난처한 미소를 짓고 있는 아미가 서 있었다. 작은 키에, 검고 긴 머리카락... 그 애가 맞았다. 나는 훗, 하는 미소를 지으며 다시 문을 닫아버렸다.

“ 자아, 이제 슬슬 다시 수학문제를 풀어볼까나 ”

그런 알 수 없는 현실도피와 함께 말이었다. 그러나 현관문 너머에서 그 아이가 문을 콩콩하고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선배니임!! 제발 문열어 주세요!!’라던가 ‘으앙!! 잘못했어요!! 함만 문 열어 줘요~!!’라는 외침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 ...대체 어떻게 된 거야 이거 ”

문을 두드리는 소리와 고함소리가 섞여 들려오고 있는 현관문을 바라보며, 나는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서 잠시의 시간을 소비해야만 했다. 그러나 곧 ‘알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려버리곤, 이대로 그 애를 놔둘 수도 없고 해서 문을 열어 주었다.

“ 선배님 제발...!! 아!!! ”

(나름대로 있는 힘껏)문을 두드려대고 있던 그녀는 내가 갑자기 문을 열자 균형을 잡지 못하고 몸을 휘청 하더니, 꿏꿏하게도 다시 균형을 잡고는 주먹을 꽉 쥐고 나를 쳐다보았다.

“ 저 선배님!!! ”

왠지 엄청난 의지가 느껴지는 눈빛. 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걸까. 오늘 낮에 있었던 일에 대한 말을 하려는 걸까. 어쩌면 대인공포증 따위는 해결해 가면 되잖아요!!라는 말을 할지도 모르겠다. 같은 상상들을 하며 나는 그녀를 쳐다보았다. 그러나 그녀는 그 뒷말을 잇지 못하고 머뭇머뭇 거리고 있었다. 이애는 항상 어처구니없는 말을 내뱉기 전에는 항상 이렇게 뜸을 들였던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 그녀를 주시하고 있자니, 그녀는 뺨을 빨갛게 물들이며 입을 열었다.

“ 저... 길 잃어버린 것 같아요 ”

“ ....... ”

저런.

나는 역시 낭패감을 느끼며 손가락으로 이마를 짚으며 괴로워하다가 그녀를 힐끔 쳐다보며 말했다.

“ 근데 어쩌다가 그렇게 되어버렸는지 물어봐도 될까? ”

“ ...저... 그게 그러니까... ”

역시 또 머뭇머뭇 뜸을 들이는군. 솔직히 이젠 저 입에서 무슨 소리가 튀어나올까 좀 기대를 하면서 그 애를 쳐다보고 있는데, 그녀는 이제 완전히 새빨갛게 익은 얼굴이 되어서 겨우겨우 입에서 말을 꺼내었다.

“ 스... 스토...킹... ”

“ 뭐? ”

“ 선배를 스토킹 하다가 선배 집은 알아냈는데 저희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모르게 되어버렸단 말이에요!!! ”

“ ...풉! ”

“ ......!!”

“ 프..프흡!! 푸하하하핫!!! ”

으아아!!! 나 죽네!!! 푸하하하핫!!! 스토킹 하다가 길 잃어버렸데!!

진짜 웃겨서 죽을 것 같았다. 제정신인가? 스토킹을 하다가 길을 잃어버리고, 결국엔 그 스토킹을 하던 사람네 집에 찾아와서 길을 찾아달라며 자신이 스토킹한 사실을 불어버리다니. 나의 웃음소리에 그녀는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른 채로 입술을 꽉 깨물고 부들부들 떨면서 죽어라 웃고 있는 나를 쳐다보더니, 곧 눈물이 글썽해선 ‘씨이!!! 선배 미워요!!!’라며 달려가려 했다.

“ 푸하!! 큭큭큭... 큭... 야, 지금 뛰쳐나가서 어쩔라고. 푸훕. 길 가르쳐 줄테니깐 거기 서봐라. 큭큭... ”

나는 겨우겨우 웃음을 참으며, 달려가려는 그녀의 팔을 잡고 말했다. 그 애는 뺨을 잔득 부풀리곤 씨근덕거리며 내 앞에서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아~ 진짜 귀여운 스토커네.

“ 그런데 집이 어디... 풉!! ”

“ 그만 좀 웃어요!!! ”

그애가 내 팔을 콩콩 때려대며 외쳤다. 솔직히 전혀 아프지 않은 일격 이였지만.

“ 그래그래. 알았어. 그만 웃을게. ”

“ ...우우 ”

“ 아하하. 진짜로 안 웃는 다니까. 그건 그렇고 집이 어디야? ”

“ 그러니까... ”

그녀는 자신이 살고 있는 곳에 대한 단어를 찾는 것인지 잠시 말을 멈추고 무언가를 생각하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 경혜 종합병원. 거기 어딘지 알아요? ”

“ 경혜 종합병원? 거기라면 알지. 그 근처에 살아? ”

“ ...네. 그 근처에서 살고 있어요 ”

그녀의 목소리가 순간 움찔거리며 떨렸지만, 나는 그것까진 눈치 채지 못하고 손가락으로 머리를 톡톡 두드리며 경혜종합병원으로 가는 길을 떠올려 보았다. 분명히...

“ 여기서 나가면 오른쪽으로 가는 길이 있단 말이야. 그쪽 길로 다른 길로는 새지 말고 쭉가다 보면 5분정도 뒤에 4차선 도로가 나오거든. 거기서 오르막쪽 도로를 따라서 또 5분정도 걸어 올라가다보면 종합병원 건물이 보일 거야. 그때부터는 그냥 보이는 쪽으로만 가면 되니깐 쉽게 길을 찾을 수 있을 거야. 별로 안 어렵지? ”

“ 아!! 그런 거였군요!!! ”

그녀는 무언가 아주 큰 것을 깨달은냥 눈을 동그랗게 뜨고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픽 웃으며 입을 열었다.

“ 데려다줄까? ”

“ 아... 아뇨!! 스토킹 같은 엄청나게 무례한 짓을 한 주제에 염치없게 그럴 순 없어요!! 감사합니다!!! ”

...미묘한 부분에서 염치를 따지는군.

그녀는 몇 번이고 허리를 숙여 인사를 했고(미안해요, 고맙습니다, 죄송해요, 감사해요) 나는 하하..하고 난처한 미소를 흘릴 수밖에 없었다.

“ 그럼 가볼게요 ”

나는 그녀의 인사에 웃으며 손을 흔들어 주었다.

“ 그럼 잘 가라. 앞으로는 스토킹도 주의해서 하고 ”

“ 윽... 선배도 참!!! ”

그녀는 다시 얼굴을 붉히며 바둥거렸다. 아, 진짜 어린애 같다. 왠지 놀리는 것도 재미가 있는데. 큭큭.., 습관 들리겠어. 아무튼 그 애는 마지막 내 인사 때문에 조금 뾰롱퉁해진 표정으로 돌아섰다. 나는 이제 가려나 하고 그 애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그 순간 이었다.

꼬로록!!!

“ ....... ”

“ ....... ”

나는 힘겹게 웃음을 참으며, 도망치려하는 그녀를 붙잡았다. 귀까지 빨개진 그녀의 뒷모습이 보였다. 얼마나 배가 고팠으면 배에서 저런 엄청난 소리가 나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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