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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도시 기록보관소

mirpia 피아니스트

2005.07.16 21:14

세이니 조회 수:611 추천:11

extra_vars1 선배님의 피아노 연주가 듣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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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 걔 누구야? 누구냐?? ”

심장 떨릴 것 같은 영어 시간이 지나가고, 드디어 쉬는 시간이 되었다. 그리고 쉬는 시간이 되기가 무섭게 빌어먹을 친구놈들이 내게 득달같이 달려들며, 내가 벌서는 동안 내 오장육부를 다 타들어가게 만들어놓고 사라진 그 애가 누구냐고 물어보기 시작했다. 나는 한숨을 내쉬며 초월한 표정으로 저 먼 하늘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 내 스토커... ”

“ 우우우우~!!!! 미친놈!! 죽어라 죽어!!! ”

“ 야야~ 진짜라니깐!! ”

나의 반항에 놈들은 눈을 가느다랗게 뜨고 내 주장에 반론을 펼치기 시작했다.

“ 그렇지만 일단 네녀석에게 스토커가 생길 리가 없으며... ”

“ 걔 무진장 이쁘던데 ”

“ 보호 욕구를 자극하더라~ 조그마한 체구, 하얀 피부, 새카맣고 긴 머리칼~ 캬아~~ ”

“ 아~ 진짜 요정 같은 이미지였어~~ ”

그리고 어느덧 그 알수 없는 토론회는, 그렇게 예쁜 애는 스토커일 리가 없다는 결론으로 치닷아가고 있었다. 진짜 이놈들 보게. 대체 언제 복도까지 내다 보고 그 애를 그렇게 자세히 살펴본거냐? 거기다 거기에 왜 나한테 스토커가 생길 리가 없다는 근거도 섞여 있는거고!

“ 발육불량인 애가 네놈들은 그렇게 좋냐? 다들 로리콘? ”

내 퉁명스러운 말에 다들 ‘네놈은 여자배가 처불렀다’며 발광을 해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발광의 도가니 사이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필사적이던 나는 문득 교실 앞문에 서있는 한 사람을 보곤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 컥 ”

때마침 앞문 쪽에 서있던 한 녀석이 내 쪽으로 손을 흔들며 외쳤다.

“ 김유현!! 면회 왔다~!! ”

그랬다. 불과 몇 십 분전, 내 혼을 다 빼놓고 사라졌던 그녀의 재등장이었다. 내 주위의 녀석들도 순식간에 발광을 멈추고 눈을 반짝이며 앞문의 그애를 쳐다보기 시작했다. 아, 미치겠네. 우리 학교는 공학이긴 하지만 여학생반과 남학생반이 따로 나뉘어져(심지어는 건물도 틀리다.) 있었기 때문에 여자에 익숙지 못한 우리 반 모든 남학생들의 시선은 그 여자애한테로 순식간에 모여들었다. 그녀는 40여명 가까이 되는 남정네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는 것이 쑥스러웠는지 고개를 푹 숙인채로 손가락을 꼼지락거리고 있었다. 이 먼 거리에서도 양 뺨이 발그레하게 물들어 있는게 보였다.

진짜 낭패스러웠다. 나는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주춤주춤 그녀에게로 다가갔다.

“ 선배님!! ”

그녀가 나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이미 눈물 자국 같은건 보이지도 않았다. 나는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 여긴... 또 왜 왔니...? ”

“ 선배님 피... 읍!! ”

나는 하얗게 질린 얼굴로 급히 그녀의 입을 턱 막았다. 찌르는 듯한 시선들이 순식간에 내 등짝으로 꼴아 박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나는 식은땀을 흘리며 그대로 그녀를 질질 끌고 복도로 나왔다. 그러나 복도까지 따라 나오는 반 녀석들의 눈길 때문에 나는 결국 그녀를 데리고 학교 현관까지 나올 수밖에 없었다. 우리 교실과 가까운 곳에 위치한 현관은 연결되어 있는 특별실도 없고, 교문과도 멀리 떨어져 있어서 학생들의 왕래가 드문 곳이었다. 거기다 공간도 개방되어 있어서 이곳에서 말하고 있는 대화를 딱히 엿들을 수도 없었다.

“ ??? ”

현관까지 끌려온 그녀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만 보고 있었다. 이 녀석은 눈치도 없는 건가. 그 정도로 정색을 했으면 내가 피아노에 대한 화재는 학교에서 꺼내기 싫어 한다는 것 정도는 알아 채 달란 말이다!!!

“ 있잖아. 그러니까 이름이... ”

“ 아미예요. 진 아미 ”

“ 그래... 아미야. 이 선배는 지금 수험생이고 말이야, 아니 그런 문제가 아니고서라도 질풍노도의 시기를 열심히 거쳐 나가면서 여러 가지 문제로 마음이 좀 심란한 상황이거든? 그러니까... 제발 날 곤란하게 좀 하지 말아주렴. ”

“ 제가 뭘 곤란하게 했는데요? ”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진짜로.

“ ...정말 몰라? ”

내 한마디에 그녀는 까만 두 눈을 반짝이며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씩씩하게 대답했다.

“ 네 ”

“ ....... ”

미치겠네. 이쯤 되면 눈치가 초특급으로 없던가, 바보던가, 일부러 저러는 거다. 나는 한숨을 내쉬며 다시 입을 열었다.

“ 미안한데, 잠시 실례좀 할게 ”

그리고 나는 주위에 누가 없는지 확인한 뒤에, 허리를 굽혀 그녀의 귀에 작게 속삭였다.

“ 내가 피아노 친다는 거 말이야 ”

간지러웠는지 몸을 움츠리며 한걸음 물러선 그녀는, 곧 눈을 동그랗게 뜨며 되물었다.

“ 그게 왜요?! ”

“ 아니, 학교에선 비밀이거든. ”

“ 어째서...? 그렇게 잘하시면서... ”

진짠가? 조금 귀가 솔깃한 소리였지만 나는 이내 고개를 설래설래 저으며 대답했다.

“ 아무튼, 그런 거니까... 비밀을 지켜줬으면 좋겠어. 학교에서 알려지지 않았음 하거든... ”

그녀는 멍하니 나를 쳐다보더니 이내 눈에 힘을 확 주며 말했다.

“ 싫어요! ”

“ 어이. 대체 뭘 들은 거야! ”

“ 하지만 전... 그러니까 그거... 또 듣고 싶단 말이에요!!! ”

“ ...뭐? ”

“ 또.. 듣...고 싶다고 그랬어요! ”

점점 그녀의 뺨이 빨갛게 물들어 갔다. 하아, 순간 엄마한테 장난감 사달라고 졸라대는 초딩의 모습이 떠올랐다.(그것도 저학년) 그녀는 그래도 자기가 쪽팔리는지는 아는지 얼굴이 새빨갛게 물든 채로 마구 생떼를 쓰기 시작했다.

“ 그러니깐 나한테 한번만 더 들려 달란 말이에요! 안 그러면 학교고 동내고 소문 다 퍼트려 버릴거에요. 비밀 안지킬거예요! 거짓말 아니에요. 나 한다면 한단 말이에요!! ”

그래... 한다면 한다는 거 다 알지. 오늘 있었던 일련의 사건들로 그녀의 그 ‘한다면 한다는’성격에 대해서 뼈저리도록 느낀 나는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그녀의 어깨를 꽉 잡았다. 그녀는 깜짝 놀라며 그제야 입을 다물고 나를 쳐다봤다.  

“ 있잖아... 하나 물어보자 ”

“ ...에? ”

“ 어젯밤에, 정말로 음악실에서...들은 거냐? ”

내 질문에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 네. 확실히. 쇼팽의 야상곡...이었죠? 정말 좋았어요. ”

좋았다는 그 말에 나는 나도 모르게 이 말을 되묻고 말았다.

“ 정말...좋...더냐? ”

“ ...네? ”

“ 그렇게 좋았냐고 ”

그녀는 얼굴 가득히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 네, 진짜 많이 엄청 좋았는걸요 ”

가슴이 순간적으로 욱신 아려왔다. 좋았다고..? 다른 사람 앞에서는 피아노를 치지도 못하는, 그래서 사람들 앞에선 입에 피아노라는 말조차 담지 못하는 바보 겁쟁이가 친 곡이 좋았다고? 고맙다는 기분과 미안하다는 기분이 순간 교차했다. 나는 그녀의 어깨에서 손을 때며 중얼거렸다.

“ ...그거 나 음정 박자 무시하고 혼자 흥에 겨워서 친 가짜 야상곡이었는데도..? ”

“ 선배님 말이 이상해요. 그건 분명히 가짜 같은게 아니었어요. 선배가 친 곡은 제 여기를 울렸는걸요. ”

그녀는 웃으며 자신의 가슴을 가리켰다. 순간이지만 가슴이 두근 뛰었다. 이 애는 진심이었다. 진심으로 나의 피아노를 좋아하고 있다고 느꼈다. 그래서 나는 이 아이에게만큼은 진실을 말해 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아니 그래야만 한다고 느꼈다.

하지만 막상 말을 꺼내려니 망설여져서, 잠시 머뭇거리던 나는 이내 곧 용기를 내어 입을 열었다.  

“ 그렇게 말하니까 미안한데... 난... 미안, 나 피아노 칠 수 없어 ”

“ 예..? 어째서... ”

그녀의 눈이 커졌다. 나는 그 눈을 피하지 않으려 노력하면서 말을 이어갔다.

“ 대인 공포증. 바보 같게도 다른 사람이 보는 앞에선 무서워서 피아노를 단 한소절도 치지 못해. ”

그녀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갔다. 그 순간 수업을 알리는 종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미안하다’라고 작게 중얼거리며 그녀를 스쳐 지나갔다. 그녀는 나를 따라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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