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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도시 기록보관소

mirpia 피아니스트

2005.07.13 07:49

세이니 조회 수:623 추천:10

extra_vars1 그 눈물의 의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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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아~!! 너 이 자식~! 피아노 친다며?? ”

진규놈이 ‘클클클 너 따위 놈이 피아노를 친다니. 어울리지 않게스리’라는 표정으로 낄낄대며 말했다. 나는 깜짝 놀라며 대꾸했다.

“ 헉?! 그... 그걸 어떻게?? ”

“ 전교에 소문 다났어~ 너 피아노 신동이었다고. 감정 묘사가 적절하면서 기교가 뛰어난 음색을 표현한다며? 음감도 뛰어나고 말이야~ ”

“ ...우째서 그런 구체적인 것까지...? ”

꽤나 구체적으로 난 소문에 당황하고 있는데, 이번에는 옆 반의 여자애들이 꺅꺅거리며 나한테 몰려들었다.

“ 유현아~ 너 피아노 짱 잘 친다며?? ”

“ 피아노로 상도 타고 막 그랬다며?? ”

여자애들은 초롱초롱 눈을 빛내며 말했고, 나는 그 알 수 없는 소문들에 식은땀을 흘리며 고개를 절래절래 저었다.

“ 아니 난... ”

“ 꺄악~!! 피아노 잘치는 남자라니 넘 로맨틱~!! ”

...역시 무자비한 녀성 동무들에게 나의 변명 같은건 통하지 않았다. 내 대답 여부와는 상관없이 그 애들은 넘멋져~를 난발하며 자기들끼리 난리 부르스를 떨어대다가 다시 눈을 초롱초롱 빛내며 말하기 시작했다. 이번엔 여자애들이 꽤 늘어나서 열명 가까이는 되어 보였다.

“ 그럼 음악실에서 피아노 쳐주라~~ ”

“ 아냐 아냐, 집에도 피아노 있겠네~~ 놀러가도 되?? ”

“ 상탔을 때 얘기해줘~~ ”

“ 음대 갈 거야?? ”

“ 그럼 인문계로 왜 온거야아~? ”

정신없는 질문의 도가니 사이에서 난 질문에 압사해서 죽어버릴 것만 같다는 불길한 예감을 느끼며 덜덜 떨었다.

“ 그런데 너 임마 지금까지 왜 피아노 치는걸 숨겼던 거냐? ”

문득 현진이가 팔짱을 끼며 뿌룽퉁하게 물었고, 다른 애들도 그녀석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왜 그랬어?? 그렇게 잘 친다면서~’라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나는 그런 아이들의 질문에 아무런 대답도 해줄 수 없었다.

‘ 그게 난 피아노 앞에만 앉으면 대인 공포증에 걸려서, 다른 사람 앞에서는 피아노 못 치거든~ 아하하. 이걸 어쩌나 ’

...라고 어느 누가 맨 정신으로 말할 수 있겠는가. 내가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하자 애들은 ‘왜 아무런 대답도 못하냐’며 내게 다가왔고, 나는 주춤주춤 뒤로 물러났다. 어째서 일이 이렇게 되어 버린 것이냐. 몰려드는 아이들 사이에서 숨이 콱 막히는 것 같았다.

이래서 싫었어. 피아노를 한다고 밝히는 거. 어차피 다른 사람 앞에서 치지 못한다면 못 치는 것이랑 다름이 없잖아. 아, 제기랄. 가까이 오지마. 가까이 오지 마란 말이야. 내가 난처해하는 모습이 그렇게 보기 좋냐? 오지 마. 저리가. 저리 가란 말이야!!!

“ 가란 말이야!!! ”

“ 어머, 선생님보고 가란 말인가요?? ”

...엉? 나는 멍하니 눈을 깜빡이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수업 중인지 교과서를 펴놓고 책상 앞에 앉아 있는 우리 반 녀석들의 모습(다들 억지로 웃음을 참느라 책상에 머리를 박는다던가, 허벅지를 꼬집는다던가 하는 필사적인 모습이었다)과, 내 바로 앞에서 화사하게 웃고 있는 우리학교 최고의 노처녀 영어 선생님이 보였다. 그리고 나는 그런 교실의 한 가운데에서 의자를 박차고 벌떡 일어나 있는 상황이었다.

맙소사... 이제야 겨우 상황 파악이 되는군. 꿈이었냐. 휴~ 다행...이 아니잖아?!! 잠깐!! 지금 나 뭐한 거야?! 히스테리 심하기로 소문난 영어선생님의 시간에 실컷 졸다가 벌떡 일어나서 소리까지 지른 얼간이짓 한거야??

순간 턱하는 소리와 함께 나는 한쪽 뺨을 선생님에게 잡혀버리고 말았다. 그녀는 생글생글 웃는 낯짝으로 내 뺨을 무자비하게 돌려대기 시작했다.

“ 우..우아아악!! ”

“ 호호, 수업시간에 졸다가 소리까지 지르다니이~ 우리 유현이~ 너어~무하는 거 아냐?? ”

수업시간이 아니라 선생님의 시간이겠죠. 어흑. 그렇게 오 분여 가량을 선생님에게 달달 볶이던 나는 결국 교실 밖으로 쫓겨나고 말았다. 차디찬 복도 한쪽 구석에 무릎을 꿇고 양손을 든 채로 앉아있자니 왠지 내 자신이 비참해지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선생님에게 꼬집힐 때로 꼬집힌 뺨도 무진장 아팠다. 우씨.

곧 교실 안에서 나지막한 수업소리가 다시 들려오기 시작했다. 별로 할 일도 없는 나는 그 소리에 귀 기울이며 머리를 복도 벽에 기대었다. 차가운 벽의 감촉이 느껴졌다. 뭐, 제법 복도에서 혼자 벌 받는 것도 나쁘진 않은데? 왠지 어딘가에서 일탈한 듯한 기분이 들어서 조금은 유쾌하기도 했다.(정확히 말하자면 일탈 당한 거지만)

문득 머릿속에 하나의 음률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나른하고 한가로운 느낌의 가벼운 소나타였다. 나는 나 혼자만 들릴 정도의 소리로 작게 콧노래를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지금 피아노가 내 앞에 있다면 진짜 최고일 텐데, 라는 생각과 거의 동시에 나란 놈은 이런 순간에도 피아노 생각을 하냐,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난 어쩔 수 없는 피아노 오타쿠 인가봐~ 대인 공포증에 빠졌지만. 제기랄..

내 머릿속의 소나타가 좌절의 음색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흑.. 이거 왠지 방금 전 선생님에게 쫓겨 났을 때 보다 더 비참해 지는구만...

“ ...좋은 곡 ”

손가락 장난을 치면서 소나타를 흥얼거리고 있던 나는 문득 앞에서 들린 목소리에 고개를 들었다가 기절 초풍할 뻔 했다. 나한테서 네발자국 정도 떨어진 곳에서, 오늘 아침에 보았던 그 여자애가 서서 나를 쳐다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그 아이를 쳐다보았다.

“ 야, 너 수업시간이잖아. 어떻게 온 거야 ”

물론 목소리는 모기소리만큼 쬐그마한 목소리였다. 그런데도 그 아이는 용케 내 목소리를 듣고는 역시 자그마한 목소리로 대꾸했다.

“ 그치만...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단 말이에요 ”

“ 하아? ”

그녀는 잠시 머뭇하더니 주먹을 꽉 쥐며 말을 이었다.

“ 역시 어제 밤에 음악실에서 피아노를 치던 사람은 선배님이죠? 그렇죠? 선배님인거죠? ”

“ 뭐... 뭔소리를 하는 거야 ”

방금 전의 꿈의 영향이었는지 나는 다른 때 보다 더 정색하며 그녀의 시선을 스리슬쩍 피해버렸다. 그러자 그 애는 당돌하게도 성큼성큼 다가와 들고 있는 내 한쪽 손을 덥석 잡는 것이 아니겠는가? 난 깜짝 놀라서 손을 빼려고 했지만 그 애는 있는 힘을 다해서 내 손을 꼬옥 잡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 그렇지만 이손... 피아노를 치는 사람의 손이잖아요. 그것도 무진장 오랫동안 피아노를 친 사람의 손이요 ”

“ 이봐! ”

“ 맞잖아요. 선배님이잖아요. 그렇잖아요... 어젯밤에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속에서 혼자 피아노를 치던 사람은 선배님이 맞잖아요. 제발 맞다고 말해줘요.. 네? 선배죠? 그렇죠? ”

그 여자아이는 내 손을 잡은 채로 훌쩍훌쩍 울기 시작했다. 솔직히 말해서 그 순간 난 정말로 간담이 서늘해 지는 기분을 느꼈다. 오늘 아침에 넘어트리고 기절시켰던 그때보다 더 난처했다. 벌 받는 나한테 찾아와서, 어젯밤 일이 맞다고 시인하라면서 때를 쓰더니, 아니라고 하니깐 이번엔 울기 시작한다. 그것이 그렇게나 중요한 일이었을까. 아니 솔직히 그런 것 보다는 지금 바로 저 교실 문을 열고 선생님이 나온다면 난 죽었다는 생각이 조금 더 내 머릿속을 좀 더 많이 차지하고 있었다. 이런 순간에 미안하지만 저 문을 열고 선생님이 나오면 정말로 난 죽는다고...

“ 어... 어이. 울지 마. "

일단은 어떻게든 울음이라도 그치게 만들어야 겠다는 생각에 나는 필사적으로 그녀를 달래려고 노력해 보았다. 하지만 그녀는 훌쩍거림을 그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점점 초조해져 왔다. 노처녀 선생님이 문을 열고 나왔더니 벌서라고 내보냈던 학생이 훌쩍거리고 있는 여학생이랑 노닥거리고 있었다는 사실을 목격이라도 해봐라. 그건 상상도 하기 싫은 상황이었다.

“ 일단 울음을 그치고~ 그러니까 좀 감정을 가라앉히고 말이야. 나중에 쉬는 시간이 되면 인간대 인간으로 좀더 진취적인 대화를... ”

“ 흑... 그치만... ”  

“ 아하하하. 그래 그래. 내가 대답해 줄 수 있는건 뭐든지 해줄테니까. 응? 이 오빠도 그리 나쁜 사람은 아니에요~~ ”

“ ...그럼 선배님이 피아노 치신 거 맞죠? ”

“ ... 그... 그 문제는 좀... ”

“ 으앙~!! ”

“ 맞다!! 맞다, 맞아, 나다, 나야~!! ”

오로지 두려움에 찌들려 감당하지 못할 것이 분명한 대답을 해버린 나는, 돌연 드르륵!!하고 열리는 교실문 때문에 기겁을 하면서 그 애를 잡아 당겨 내 뒤로 숨겼다. 이건 마치 타조가 천적이 온다면서 숨는답시고 자신의 머리만 숨기는 행동과 다를 바 하나 없는 행동이었지만, 너무 당황한 나머지 어떤 다른 방법을 떠올릴 수가 없었다. 아니 실상 다른 방법도 없었다.

“ 밖이 왜 이렇게 소란 스럽... ”

두근두근두근두근두근두근두근X9999999999

심장이 입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았다. 나는 덜덜덜 떨리는 손으로 그 애를 숨기면서도, 마음속으로는 유언 같은걸 생각하면서, 마지막으로 한번만이라도 부모님의 얼굴이 보고 싶다고 느끼며(아니 그러고 보니 이런 식으로 만난다면 선생님한테 죽기 전에 부모님한테 먼저 죽을지도...), 열린 교실문을 쳐다보았다. 언제나 미니스커트를 즐겨 입으시는, 하지만 결코 늘씬하다곤 볼 수 없는 선생님의 다리가 교실문 밖으로 나오는게 보였다.

“ 선생님, 그런 것 보다 조동사에 대해서 좀더 질문하고 싶은게 있는데요 ”

그때, 교실 안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고 선생님은 그래? 라면서 다시 교실 문을 닫고 교실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하느님 부처님 알라신님!!! 만세!! 살았다!!! 정말로 십년감수했다는 감정이 절실하게 느껴지는구만.

“ 저기... ”

내 등 뒤에서 그 애가 고개를 내밀며 작게 말했다. 으으... 이 모든 악의 원흉인 소악마 녀석! 나는 가느다랗게 눈을 뜨고 그 애를 노려보았다.

“ 이제 됐냐? 만족하냐? 알았으면 빨랑 너네 교실로 돌아가! 우씨... 너랑 계속 있으면 간이 쪼그라들어서 없어져 버릴지도 모르겠다. ”

투덜거리는 나를 쳐다보던 그녀의 커다란 눈망울에 갑자기 글썽하고 눈물이 맺혔다. 아~ 왜 또 우는 거야!!

“ 야~ 울지 마. 좀 ”

그러자 그녀는 손가락으로 눈물을 닦으며 방긋 웃었다.

“ 네... 고마워요. 진짜 고마워요. ”

“ ? ”

뭐가 고맙다는 거지? 그녀는 훌쩍이면서도 웃으면서 일어서더니 허리를 굽혀 꾸벅 내게 인사를 했다. 다시 몸을 일으키는 그녀의 웃고 있는 뺨에 선명하게 나있는 눈물자국이 보였다. 왠지 그녀의 그런 모습이 지독스럽게 슬프다고 느꼈다. 왜 그런 감정을 느꼈는지는 알수 없었지만.

그녀는 그대로 뒤를 돌아 아무도 없는 복도를 달려갔다. 나는 그런 그녀의 뒷모습을 잠시 쳐다보다가 한숨을 내쉬며 다시 앞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눈물의 의미를 알게 된 것은 훨씬 더 오랜 시간이 지난 뒤였다. 혹시 그날 내가 그 눈물의 의미를 알아챌 수 있었더라면 그녀에게 조금은 상처를 덜 줄 수 있었을까. 하는 바보같이 비참한 후회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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