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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도시 기록보관소

mirpia 피아니스트

2005.07.10 06:11

세이니 조회 수:530 추천:10

extra_vars1 어젯밤 일을 기억하냐며 그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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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는 친절하게도 우리학교 교문 앞까지 우리를 태워다 주곤 정확히 사천 오백 원을 받아 챙겨 붕~하니 떠나가 버렸다. 그리고 당연한 소리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여자아이와 나는 나란히 지각을 하고 말았다.

" 학번 이름 불러!!! "

덩치가 크고 살벌하게 생긴 외모 때문에 '살인 곰탱이'라는 별명을 가진 학주가 이따~만한 몽둥이를 들고 위협하듯이, 막 교문을 들어선 나와 그 아이에게 외쳤다. 우리는 피눈물을 흘리며 살인 곰탱이 선생님의 옆에 서있는 선도 학생에게 학번을 불러 주어야만 했다.

" 3학년 2반 9번, 김유현 "

" ...1학년 7반 28번 진아미..요 "

이렇게 지각을 하고 이름까지 적혔으니 며칠 뒤에 벌점이 친히 강림하시겠군...이라고 중얼거리며 나는 내 옆의 그 여자애를 힐끔 쳐다보았다. 일학년이라... 어쩐지 작다 했다. 이렇게 서서 보니 그 아이는 키가 150cm도 되지 않을 것 같았다. 조금 헐렁헐렁해 보이는 교복과, 허리까지 길게 내려오는 머리카락에 가려지긴 했지만 바짝 마른 가느다란 몸과 어울려 안 그래도 작은 그녀를 더욱 작아보이게 만들고 있었다.

문득 방금 전 저 여자애를 들었을 때 무진장 가벼웠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흠... 살이 잘 찌지 않는 체질인가. 그래도 여자라면 엉덩이랑 가슴에 적당히 살집이 붙어야...

딱!!!

" 아야!!! "

갑자기 머리에 느껴진 따끔한 충격에 나는 비명을 지르며 머리를 부여잡았다. 내 앞에 나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살인 곰탱이가 있는게 보였다. 나는 볼멘소리로 투덜거렸다.

" 왜 때려요 "

" 이 노옴~!! 운동장 다섯 바퀴를 돌라는 내 말을 못 들었느냐!! "

" 에엑?! 언제 그랬어요!!! "

" 텔레파시로 말했다아~!!! 그런거 정도는 알아 차려!! "

" 그런 억지가... 아.. 아뇨!! 죄송합니다!!! "

역시 이따~시만한 몽둥이를 들고 열정을 불태우시는 곰탱이님의 눈길에, 그저 비천한 학생일 뿐인 나는 식은땀을 흘리며 뒤돌아 운동장으로 달려갔다. 곧 나를 따라 그 여자애도 달려왔다. 뒤를 힐끔 돌아보니 긴 머리카락을 바람에 날리며 그 여자애가 열심히 달리고 있는게 보였다. 키가 작아서인지 아장아장 달리는 꼴이 꼭 어린애 같았다.

나는 손목의 시계를 힐끔 쳐다보았다. 어느새 시계는 8시 25분을 막 넘어가고 있었다. 이대로 30분까지 교실에 돌아가지 못하면 이번엔 담탱한테 한소리 들을 것이 뻔함으로, 나는 더욱더 빨리 달리기 시작했다. 훗, 이래봬도 지각 상습범이라 달리는데는 자신이 있다고. 뭐... 자랑스럽게 말할 만한 일은 아니지만...

모래가 풀풀 날리는 학교 운동장을 달려 나가던 나는 곧 헥헥거리며 열심히 달리고 있는 그 애의 뒷모습을 볼 수 있었다. 나는 킥 웃으며 그 애를 추월했다. 그리고 또 곧 나는 그녀의 뒷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고, 또 잠시 뒤에 그녀의 뒷모습을 또 보았으며, 또 잠시 뒤에...

' ...잠깐 '

이제 막 네바퀴째를 달리고 있던 나는 뭔가가 이상하다는 기분에 머릿속으로 저 여자애의 뒷모습을 보았던 횟수를 셈해 보였다. 지금 보이는 것 까지 포함하여 네 번. 지금 네바퀴를 돌고 있는 중이니까... 헐, 쟤 지금 한 바퀴째 돌고 있는 건가? 아니면 천재적인 속력으로 나를 네 번 추월한 뒤에 날 비웃으며 내 앞에서 달리고... 있을 리는 없겠지.

나는 좀더 속력을 올려 그녀의 뒤에 따라 붙었다. 엄연히 말하자면 운동신경이 뛰어나게 좋다고 말할 수 없는 나는 그저 달리는 것에 익숙하다 일 뿐, 그리 빨리 달리지는 못한다. 이건 저 여자애가 비정상 적으로 느린 것이다. 그 애의 뒤에 가까이 가니 무진장 거칠어진 숨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겨우 한바퀴를 달리고 있는 주제에 무슨 한 서너 바퀴 달린 것처럼 다리가 풀려서 비틀비틀, 그녀는 보는 내가 안쓰러울 정도로 힘겹게 달리고 있었다.

정말 두 눈 뜨고 볼 수 없는 처참한 관경이었다. 아, 뭐 그러니까 좀 순화시키자면 무진장 신경 쓰이는 관경 정도겠지. 그리고 그런 그녀의 모습이, 방금 전의 가벼웠던 체중과, 뼈밖에 없었던 일자 몸매 같은 것들에다가 나 때문에 한번 기절했던 것들이랑 아무튼 이것저것 섞여서 내 머릿속에서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고, 결국 나는 그녀의 손을 덥석 잡아끄는 무례한 짓을 저지르고 말았다.(뭐 진짜로 무례한 짓이라면 방금 전에도 더 많이 잔득 저질러 버렸지만)

" ...에? "

왠지 창백해 보이는 그 애가 의아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남은 한손으로 브이를 그려 보이며 말했다.

" 좀더 힘내서 달리자고 "

" 헥..헥헥... 예..에에 "

그녀는 숨을 헐떡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녀의 손을 더욱더 꽉 잡았다. 마치 인형의 손이 연상되는 그런 자그마한 손이었다. 그때 저 멀리서 몽둥이들 든 채로 곰탱이가 이쪽을 향해 달려 오는게 보였다. 나는 그 시점으로 운동장 다섯 바퀴를 모두 달려 버렸기에, 그대로 멈춰 서서 곰탱이가 달려오는걸 물끄러미 지켜보았다. 여전히 내게 손을 잡힌 채로 내 옆에 서 있던 그 애는 신입생이라 그런지 눈을 깜빡이며 잔득 겁에 질린 표정으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그러나 역시 다시 달릴 생각은 없었는지 내 옆에 꼭 붙어 서있었다.)

“ 이녀서어어억!!! ”

거의 내 앞까지 달려온 곰탱이가 돌연 그 무지막지한 몽둥이를 휘두르며 외쳤다. 나는 기겁하며 그 몽둥이를 간발의 차이로 피하곤 어이없는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후웅 하는 소리와 함께 바로 내 코앞을 스쳐 지나간 묵직한 몽둥이는, 적어도 직격 했으면 나를 저세상으로 보내기에 모자람이 없는 것이었다.

“ 서.. 선생님!! 왜이러십니까?!! ”

나는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외쳤고, 선생님은 크워억 소리를 질렀다.

“ 신성한 교내에서 누가 여학생이랑 손잡으라고 그랬나!!! ”

...뭐야. 그 얼토당토 않는 법칙은... 교내에서 여학생 손을 잡는 것이 금지라니. 하지만 (부당한 권력에 항전할 똥배짱과 힘이 없는)나는 그 말을 입 밖으로 내지 못하고 쓸쓸히 선생님의 두 번째 공격에 대비해야 했다. 그러고 보니 저 선생님 이상하게 학생들의 이성교제에 민감하더라.

그리고 (아마도 짐작일 뿐이지만) 선생님의 입에서 엎드려 바쳐라는 말과 함께 엉덩이를 맞아야 할 위기에 처했을때, 내 옆에 잠자코 서있던 여자애가 불현듯 운동장 바닥으로 풀썩 쓰러져 버렸다.

“ 이놈!! 엎드려바...!! 엉? ”

“ 선생님 한번만 선처를...!! 엥? ”

실랑이를 벌이고 있던 선생님과 나는 갑자기 쓰러진 그 애 때문에 하던 말을 멈추고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걔를 쳐다보았다. 정말로, 마치 드라마의 한 장면처럼 그 아이는 운동장 바닥에 힘없는 몸짓으로 쓰러져 있는게 아니겠는가? 때마침 이번엔 버스 팀인지 수가 제법 되는 또 다른 지각생 무리가 우르르 운동장으로 들어왔고, 나는 이때다 싶어서 ‘아무튼 전 다섯 바퀴 돌았으니까 가요! 앞으로는 주의할 테니깐 넘 그러지 마세요~!!’라고 외치며 그 아이를 들어 어깨에 짊어지고 달려갔다.

“ 이 녀석!! 그 애는!!! ”
  
“ 걱정 마세요~! 양호실 까지 잘 데려다 줄 테니깐!! ”

나는 뒤에서 외치고 있는 곰탱이에게 하하 웃으며 이렇게 외쳐주었다. 그러자 곰탱이는 별수 없다는 듯 고개를 설래설래 저으며 새로 들어오는 학생들에게 태클을 걸기 시작했다. 사실 콤탱이 선생님이 저런 포악한 성격임에도 학생들에게 그런대로 인기가 있는 이유는 그의 저런 행동 때문이었다. 시비는 잘 걸지만 뒤끝이 없고, 잘못된 일에 혼을 내지만 그래도 덮어주고, 막상 학생들이 힘들어 지면 자기가 불리해질게 뻔 하면서도 학생들 편에 서주고... 요즘 세상에 보기 드문 선생님이지. 고럼 고럼.

나는 곧, 운동장을 가로 질러서 1층의 동쪽 현관으로 들어가면 바로 자리 잡고 있는 양호실에 도착할 수 있었다.

“ 선생님~ ”

나는 그 애를 들고 있지 않은 다른 쪽 팔로 양호실의 문을 드르륵 열며 말했다. 그런데 웬일인지 오늘따라 양호 선생님이 보이지 않았다. 두리번거리며 양호실로 들어가서 양호 선생님의 책상 위를 살펴보니

‘ 선생님 새로 나온 게임 소프트 사러간다~ 문제 있는 학생은 알아서 약 잘 챙겨 먹으렴. 물론 뭘 썼는지는 확실하게 기입해 둘것! ’

이라는 메모가 휘갈겨 써져 있는게 보였다. 이래도 되는 거냐...

나는 한숨을 내쉬며 한손으로 어깨에 들러매고있던 그 여자애를 조심스럽게 침대로 내려놓았다. 뭘 제대로 먹기는 먹는지, 역시나 평범한 애들 보다 훨씬 가볍다. 안쓰러운 마음이 들 정도로 가녀린 몸이었다.

“ ...그나저나 얘 괜찮은건가. 혹시 내가 아침에 부딪친 것 때문에 어디가 잘못 된 건 아니겠지? ”

으음... 혹시 내가 평생 책임져야 되는 몸이 되어버렸다던가 하는건... 곤란한데... 따위의 소리를 중얼거리며 나는 그 아이의 검은 구두를 벗기고 이불을 덮어 주었다. 구두도 어린애 구두처럼 무진장 작았다. 이거 230도 안되겠는데, 앗 새신발이다~

‘ ...내가 뭘 하는 거야 ’

혼자서 자그마한 신발을 보며 좋아하고 있던 나는 순식간에 몰려오는 자괴감에 식은땀을 흘리며 벌떡 일어났다. 이씨, 진짜 민망하네. 진짜 내가 여기서 뭘 하는 거냐...

나는 머리를 긁적이며 잠들어 있는 그 애를 힐끔 쳐다보았다. 그 애는 얼굴이 좀 창백해 보인다는 것 빼고는 그리 큰 문제는 없어보였다. 시계를 보아하니 슬슬 수업 시작 시간도 다 되어 가고, 여자애도 그리 아파보이는 것 같지 않아서 나는 빙글 돌아 양호실을 나가려 했다. 더 이상 늦었다간 대한민국 인문계 고교생으로써 씼을수 없는 상처가...(사고지각)

“ 저어... ”

막 나가려던 나는 내 교복 자락을 덥석 잡는 손길과 목소리에 발걸음을 멈추어야 했다. 돌아보니 막 깬 건지 아직 몽롱해 보이는 눈을 깜빡이고 있는 그 애가 이불 밖으로 얼굴만 빼꼼히 낸 채로 내 옷을 꼭 잡고 있는게 보였다.

놓아라~ 서방님은 사고지각이 끄이지 않도록 가야 한다~!

라고 외쳐야 하나. 라는 고민을 좀 진지하게 하면서 그 애를 쳐다보자니, 그 애는 잠시 머뭇머뭇 거리며 입을 열었다.

“ 혹시요... 혹시... 어젯밤에... ”

“ .......? ”

“ 그러니까 어젯밤에... 학교 음악실에서 피아노... ”

“ ?! ”

순간 표정 관리가 안되었다는 걸 깨달으면서도 난 화들짝 놀라는 표정을 지으며 그 애의 손에서 내 옷을 확 잡아 뺐다.

“ 아니, 무슨 소린지 잘 모르겠는데 ”

그리고 왠지 변명처럼 들리는 이 말을 입 밖으로 급히 꺼낸 뒤, 그대로 뒤로 돌아 양호실에서 나와 버렸다. 마치 나쁜 짓을 하다가 들킨 것처럼 가슴이 쿵쿵 뛰었다. 내가 학교에서 밤중에 피아노를 치고 있었다는 걸 어째서 저 애가 알고 있는 거지? 분명히 학교엔 아무도 남아있지 않았을 텐데...

아니, 그건 둘째 치고 이건 너무 티나잖아!! 마치 ‘하하하 당연하지. 내가 거기서 피아노 치고 있던 사람이야. 역시 피아노 치는 남자는 낭만적으로 보이지?’라는 말을 그 애 앞에서 지껄인거 보다, 더욱더 확실하게 대답해주고 온 것과 마찬가지였다.

제길...피아노 치는 사실은 학교에서 비밀로 해두고 싶었는데

[ 띠리리~ 띠롱띠로롱~~ ]

“ 헉!! ”

그때 수업의 시작을 알리는 종소리가 학교 내에 울려 퍼졌다. 나는 일순간 그 여자애고, 피아노고 모두 잊고 소스라치게 놀라며 교실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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