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창조도시 기록보관소

mirpia 피아니스트

2005.07.08 08:21

세이니 조회 수:840 추천:10

extra_vars1 그날 아침에, 날씨는 어땠더라 
extra_vars2
extra_vars3 1017-1 
extra_vars4
extra_vars5
extra_vars6
extra_vars7  
extra_vars8  
extra_vars9  


나는 피아노 앞에 앉아 뿌루퉁한 표정으로 피아노를 노려보았다. 분명 피아노에게 눈이 있다면 그 녀석도 나를 노려보고 있을게 분명하다. 그렇게 얼마나 피아노를 노려보았을까, 나는 검은 피아노 뚜껑을 열고 피아노 건반에 손을 얹었다. 그리고 숨을 한번 들이켠 다음에 피아노를 치기 시작했다.

리스트의 초절 기교 연습곡.

경쾌하고도 빠른 피아노곡이 내 손가락이 움직임에 따라 재현된다. 나는 손가락을 좀더 빨리 놀렸다. 느낌 탓일까, 피아노의 소리가 점점 더 커지며 내 귀를 울려댔다. 숨이 찼다. 하지만 나는 연주를 멈추지 않고, 더욱더 빨리 빠르게 빠르게 건반을 두드렸다. 더욱더 숨이 찼다. 내 뺨을 타고 땀방울이 주룩 흘러내리는게 느껴졌다. 피아노 소리는 더욱더 크게 내 귀를 울려댔다. 마치 귀 울음 같았다.

그리고 그 피아노 연주가 절정에 다다랐다고 생각했을 때, 나는 그대로 피아노에서 손을 때 버렸다. 순식간에 고요가 내려앉았다. 나는 숨을 몰아쉬며 고개를 푹 숙였다.

" 아아~!! 제기라아아아아알 "

그리고 피아노의 덮개를 내리고 그 위에 이마를 가볍게 박았다. 이마에 피아노의 차가운 감촉이 느껴졌다. 나는 차가운 피아노에 달아오른 내 뺨을 문지적거리며, 나의 손을 바라보았다. 오랫동안 피아노를 쳐서, 뼈마디가 굵고 울퉁불퉁한 손이 보였다.

" ...미치겠구만 "

나는 그런 나의 손을 바라보며 투덜거렸다. 내 손은, 오늘도, 문제없이, 피아노를 친다. 아주 조금의 문제도 없다. 나의 이 못생기고 투박하며 큰 손은 피아노를 치기에 매우 적합한 손이라고 한다. 또 나는 음감이 뛰어나며, 감정의 표현 능력도 뛰어나다고 누군가가 그러더라. 옛날에는 몇 번인가 신동이라는 소리를 들어본 적도 있다.

하지만 나는 어느 날엔가부터 피아노를 칠 수 없는 몸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지금 친 피아노는 무엇이냐고? 그래... 정확히 말하자면 '다른 사람의 앞'에서 피아노를 칠 수 없게 되어 버렸다고 말해야 겠지. 일종의 '대인 공포증'이라고 해야 할까. 나는 사람들의 앞에서는 피아노를 단 한소절도 쳐내지 못한다.

그래, 인정하지. 이런 내 자신이 바보 같고 정말 한심하다는 거 말이다. 나도 알고 있다. 다른 사람에게 들려주지 못하는 피아노 따위 아무짝에 소용없다는 것을. 이대로 대인 공포증을 계속 가지고 있을 수밖에 없다면 내 '피아니스트'로써의 생명은 이대로 끝이라는 것을.

" 후우... "

나는 한숨을 내쉬며 의자에서 일어났다. 이런 건 오래 생각해 봤자 아무런 소용이 없다. 그런 것 보다 이제 학교에나 가야지. 이제 고 삼이기도 하고 수험 공부도 슬슬 착실히...

" ?!! "

중얼거리던 나는 곧 벽에 걸린 시계를 발견하고는 헉 하고 숨을 들이켰다. 벽에 걸린 시계가 여덟시를 가리키고 있었던 것이었다. 등교시간은 여덟시 이십분까지인데?! 나는 눈을 부비고 벽시계를 다시 보았다. 그러나 냉정하게도 역시 시간은 정확히 여덟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이런 제기라알~!! 피아노 치는데 정신이 없어서 시간 가는지 몰랐잖아!! 그런데 내가 몇 장까지 쳤더라?? 아니 몰라 몰라~!!

나는 허둥지둥 웃통을 벗고 욕실로 직행했다. 아직 봄이라 좀 춥긴 했지만 차가운 물으로 확 머리를 감은 뒤에 급하게 양치를 했다. 그리고 달려 나와 수건으로 머리를 말리며 가방을 챙기고 교복을 껴입은 뒤에 거울을 보고 대충 머리를 빗었다. 제길 삐쳤잖아. 아니, 지금은 그런걸 신경 쓸 때가 아니지. 아아~ 미안하지만 아침은 오늘만 패스. 크으.. 난중에 매점이라도 가야겠다.

" 아참 "

가방을 메고, 대충 운동화를 신고 집에서 뛰쳐 나가려던 나는 문득 멈춰 서서 뒤를 돌아 우리 집을 바라보았다. 방이 두 개 딸린, 그리고 커다란 거실이 있으며 피아노가 있는 우리 집. 나는 눈가를 찡긋 하며 씩씩하게 말했다.

" 다녀오겠습니다! "

물론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집에는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아아~ 뭐 천애고아라던가, 부모님이 아프셔서 병원에.. 같은 낭만적인 이유는 아니고, 그냥 우리 아버님 어머님은 오지에서 봉사 활동 중이시라... 으이구!! 정말 자기 하고 싶은걸 잘도 하고 사시는 분들이야! 내가 고등학교에 들어가자마자 두 분은 사이좋게 오지로 떠나 버리셨지. 덕분에 나는 혼자서 쓸쓸히 이 넓은 집을 지키는 꼴이 되어 버렸고 말이다. 그런데도 인사를 하는 이유? 그냥 습관이랄까.

" 헉. 지각하겠네 "

나는 내 손목시계를 확인하고는 깜짝 놀라며 집 밖으로 달려 나갔다. 무려 여덟시 십분, 아슬아슬한 시간이었다. 이대로 열심히 달려서 바로 버스를 탄다면, 약간의 승산은 있을지도. 오월이라 그런지, 제법 따뜻한 바람이 내 뺨을 스쳤다. 음~ 제법 느낌이 좋았다.

" 앗싸! "

약 백 미터 앞의 버스 정류장을 향하여 버스가 달려오는 것이 내 눈에 보였다. 이대로 달린다면 무난하게 이십분 까지 버스를 타고 학교까지 갈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더욱더 발에 박차를 가했다. 대충 동여맨 넥타이가 바람에 날렸다.

그러나 인생지사 새옹지마라고 누군가가 말했던가. 갑자기 내 눈앞에 무언가가 불쑥 튀어나오는 것이 아니겠는가? 마치 신나게 자동차를 달리다가 도로로 달려 나온 꼬맹이를 발견한 운전자처럼, 나는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그것을 피하려다 그만 균형을 잃고 넘어지고 말았다.

" 으악?!! "

" 꺄악!!!! "

[ 부르릉~ ]

그리고 울려 퍼지는 세 개의 각자 다른 소리... 나는 바닥에 엎어진 채로 하염없이 떠나가는 버스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일어서서 따라갈 시간적 여유도 없이, 버스는 기다리는 사람이 없자 그대로 붕~하니 버스정류장을 지나쳐 버린 것이었다...

" 으..으... "

피눈물을 흘리며 이젠 거의 점이 되어버린 버스를 쳐다보던 나는, 문득 내 밑에서 들린 자그마한 신음소리에 화들짝 놀라며 몸을 일으켰다. 등 뒤로 식은땀이 주룩 흘러내리는 것 같았다. 너무 정신이 없어서 방금 전의 상황 파악을 못했는데... 나는 나도 모르게 내 앞의 그 수상한 물체를 피하려다가 균형을 잃고 그 물체와 함께 앞으로 넘어졌었나 보다. 그리고 그 수상한 물체의 정체는... 우리 학교 교복을 입은 쬐그마한 여자아이였다.

그 애는 바닥에 쓰러진데다 나한테 한번 깔린 충격 때문인지 정신을 하나도 차리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기분 탓인지 마치 만화의 한 장면처럼 눈 부분에 소용돌이 모양으로 빙글빙글 돌아가는 무언가가 보이는 것도 같았다.

" 야.. 야. 일어나!! "

나는 그 애의 어깨를 흔들며 외쳤다. 하지만 그녀는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엄마.. 오늘 도시락에 왜 계란말이 안 넣은 거야...' 따위의 소리를 웅얼거릴 뿐이었다. 이거 사고 쳤네... 나는 어찌 해야 될 바를 몰라서 잠시 허둥거리다(순간적으로 버리고 가버릴까 하는 생각도 떠올렸다. 미..미안해요) 결국 그녀를 조심스럽게 안아 들었다. 마치 중학생처럼 조그마한 그 아이는 생각했던 것 보다 훨씬 가벼웠다.

' ...? 진짜 뼈밖에 없네. '

뭐 본의 아니게 그 애를 안아들다 보니깐 여기 저기가 만져져서.. 아니 정말로 본의가 아니라니까. 아무튼 나는 그 애의 가방까지 짊어지고 도로로 나와서 택시를 잡았다. 다행이 이 근처를 지나가던 택시가 내 앞에 멈춰 섰다.

" 안녕하세요. 아... 이건 요 앞에서 여러모로 사정이 있어서.. 아하하!! "

정신을 잃은 여자애를 안아들고 택시에 타는 나를 택시기사 아저씨께서 무척이나 친절하시게 도 수상쩍다는 눈길로 쳐다봐 주셨기에, 나는 하하..하고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이런 변명 같은 몇 마디를 입 밖으로 꺼낼 수밖에 없었다. 정말로 등 뒤가 식은땀에 축축이 젖어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 그럼 학생, 어디로 갈까? 병원? "

겨우겨우 기절한 애와 함께 택시 뒷좌석에 타자 기사아저씨께서 백미러를 힐끔 쳐다보며 물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 말에 대답하려 했으나, 나보다 내 옆에서 튀어나온 목소리가 더 빨랐다.

" 아저씨! 금현 고등학교!!! "

곧 택시는 출발했다. 그리고 나는 얼떨떨한 표정을 지으며 옆을 돌아보았다. 내 옆에서 그 여자애가 언제 정신을 차렸는지 미간을 찡그리며 이마를 짚고 있는게 보였다. 그녀는 양손으로 이마를 짚은 채로 고개를 숙이며 끙끙거리다 곧 고개를 휙 돌려 나를 쳐다보았다. 그녀와 나의 눈이 마주쳤다. 나는 순간적으로 그 애의 눈이 정말로 새카맣고 크다고 생각했다.

" 죄송해요!! "

" 미안!! "

그리고 우리 둘의 시선이 마주친 순간, 둘의 입에서 동시에 이 말이 튀어나왔다. 잠시 복잡한 침묵이 흘렀다. 나는 이 어색한 침묵을 참을 수가 없어서 뭐라도 말을 꺼내야겠다고 다시 입을 열었다.

" 몸은 괜찮... "

" 저기 몸은 괜찮... "

" ....... "

" ....... "

또다시 뭔가 말로 형용하기 힘든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그 침묵은 택시 기사 아저씨가 학교에 도착했다고 입을 열 때가지 계속됐다.

-------------------------------------------------------------------------

피아니스트는 꽤 오랫동안 생각해오던 글 입니다.
원안은 피아노를 좋아하는 조그마한 여자아이가 나오는 글 이었죠.
언젠가는 써봐야지...라고 묵혀두고 있었는데,
어느날 연애물을 적어야지 라고 생각한 순간 이 묵혀두었던 스토리가 떠올랐달까...

사실 제 머릿속은 상당히 난잡합니다.
분명히 처음 소설이란것을 쓰기 시작했을때가 초등학교 6학년 때.
지금까지로 치자면 꼬박 육년이 넘었군요.
그런시간동안 상상하고 글을 쓰고 상상하고 글을쓰고...하던 것이 머리에 배여서
제 머릿속은 어질러진 방 같은 구조로 변해 버렸다고 할까요.
제 머릿속을 이미지화 해보면, 아마 책이고 연습장이고 연필이고 이것저것 모두 뒤섞여서 잔득 엉망이 되어버린 조그마한 방이 나옵니다.
그 방에서 뒹굴뒹굴 거리면서 놀다보면 이것저것 소재거리가 생겨나서 재법 재미있기는 한데...
뭐, 하지만 대신 뭔가를 던져 넣으면 다른 것이랑 뒤섞여 버려서... -_- 말 그대로 무진장 정신이 없죠.
이런 머릿속 세상이 싫은건 아니지만,
그래도... 조금은 정상적인 삶을 살아가야 할까나;;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9 피아니스트 [3] file 세이니 2005.07.17 586
18 피아니스트 [6] file 세이니 2005.07.16 611
17 Necromancers [6] file 세이니 2005.07.16 736
16 Necromancers [9] file 영원전설 2005.07.14 1214
15 피아니스트 [5] file 세이니 2005.07.13 623
14 [공지] Necromancers [9] 세이니 2005.07.10 698
13 피아니스트 [10] file 세이니 2005.07.10 530
» 피아니스트 [10] file 세이니 2005.07.08 840
11 피아니스트 [12] file 솔비 2005.07.07 670
10 미녀와 야수 [12] file 세이니 2005.07.04 651
9 미녀와 야수 [7] file 세이니 2005.07.03 680
8 미녀와 야수 [13] file 세이니 2005.07.02 639
7 미녀와 야수 [8] file 솔비 2005.06.28 717
6 미녀와 야수 [11] file 솔비 2005.06.26 735
5 피아노 [8] file 솔비 2005.06.26 959
4 정령 [10] file 솔비 2005.06.25 743
3 정령 [7] file 솔비 2005.06.25 755
2 정령 [12] file 솔비 2005.06.24 1076
1 한 소년이 있었습니다. [31] file 솔비 2005.06.22 10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