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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도시 기록보관소

mirpia 미녀와 야수

2005.07.04 01:49

세이니 조회 수:651 추천:9

extra_vars1 죽으러 온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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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그날, 내가 그를 이겼던 날엔 비가 내리고 있었다. 모든것을 씻겨 내리려는듯 질척질척하고 차가운 비가 내려, 나와 그녀석을 적시고 있었다. 나는 숨을 몰아쉬며  내 눈앞의 '키엔'을 바라보고 있었다. 빗물과 피에 젖어 붉은 갈기를 늘어트린 그녀석은, 더이상 저항할 힘도 없는지 쓰러져서 그르렁대고 있었다.

나의 목표였던, 나의 목적이었던, 그리고 나의 라이벌이었던, 그 녀석이 이렇게 무기력하게 내 앞에 쓰러져 있었다.

하지만 나는 이상하게도 그리 기쁘지 않았다. 강했던, 전설로 전해져 오던 괴수였던 키엔.. 그녀석을 이 손으로 이겼는데도 기쁘지 않고 오히려 슬픈 감정만이 내 가슴속에 가득 차올라 왔다.

그래서 였을까. 난 그에게서 검을 거두었다. 그리고 돌아서려던 그 순간, 놈의 입이 열리며 나지막한 목소리가 세어 나왔다.

[ 왜... 날 죽이지 않는거지....? ]

그 순간, 나는 오기였을까. 겨우 녀석을 이겼던 주제에, 자칫 잘못하면 이자리에 누워있는건 내 자신이 되었을수도 있었던 주제에, 미소를 지으며 그녀석에게 말했다.

[ 너같은건 죽일 가치조차 없어. 더 강해진다면, 너에게 더 가치가 생겼다고 생각이 된다면, 그때 날 찾아오렴. 그럼 그땐 내가 확실하게 너의 목숨을 거두어주지. 그때까지.. 네 목숨은 내가 가지고 있을께... ]

그래. 그랬었어. 그런 약속을 한건 나였어. 네 목숨을 가지고 있겠다고, 죽음을 원한다면 다시 나를 찾아오라고. 그랬었지...

하지만, 이젠 알것같았다. 그때 그녀석을 죽이지 못했던 이유도. 그런 말을 했던 이유도.

그냥.. 오랜시간동안 나의 목적이었던 것이 사라지는게, 아니 더이상은 키엔과 만나지 못하는것이 그냥 섭섭해서.. 그리고 다시한번 만나고 싶어서. 그래서, 그래서였어.

그랬... 었어.....

" .... 키엔 "

그 순간 나의 온 몸에 모든 감각이 돌아왔다. 카이넬에게 달려가던 몸이 멈추었으며, 단단히 쥐고있던 검도 땡그랑 하는 소리와 함께 바닥에 떨어져 내렸다. 내 눈에 다시한번 죽어있는 키엔의 모습이 비치었고, 허리의 긴 검을 뽑아 내게로 공격자세를 취하고 있는 카이넬의 모습이 보였다. 나는 그를 노려보며, 주먹을 꽉 쥐고, 숨을 크게 들이쉰뒤 소리쳤다.

" 키에에에엔!!! 이 바보같은 놈아! 빨리 나타나!! 넌 이렇게 곱게 죽을놈이 아니잖아! 이렇게 쉽게 포기할 놈도 아니잖아!! 2년 넘게 나를 따라 다녔던 너는 어디있냐! 그렇게 오랜 시간동안 내 목표였던 너는 어디있냐!! 더 강해졌다고, 내 손에 죽을 가치가 있다고 그렇게 생각했으니 나를 찾아온것이 아니었냐?!! 이 바보같은놈아!!! 내가 위험하단 말이야!!! 너의 목숨을 쥐고 있는 내가 위험하단 말이야!!!! "

나는 목청이 터져라 외쳤다. 그리고 나의 머릿속에는 오랫동안 잊혀져 있던 그와의 추억이 하나 하나 스쳐지나가기 시작했다. 언제였는지, 그곳이 어디였는지, 날씨는 어땠는지, 내 옷차림이 어땠는지 그런 자세한 것들은 기억나지 않았지만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웃음도 나고 울음도 나오는.. 지금까지 잊고 있었던것이 억울해 지는, 그래. 추억같은 기억들이 나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 죽고싶으면 빨리 나와아아아아아아!!!! "

쨍그랑!!!!

나의 외침과 동시에 창문이 와장창 부서지며 한 남자가 구르듯 뛰어 들어왔다. 무언가와 싸우다 왔는지 온몸이 생체기 투성이에, 옷은 흙탕물 투성이인, 눈도 피곤에 지친듯 흐려져 있었지만, 거칠게 숨을 내쉬고 있는, 살아있는..

" 키엔!! "

갈기도 없고, 동물형의 몸도 아니었지만, 더없이 익숙하고 그렇게도 보고싶었던 그녀석이 내 앞에 나타났다. 키엔.. 그는 그 붉은 눈동자로 나를 힐끔 쳐다보곤 무슨 죄라도 저지른듯 시선을 내리깔더니 변명하듯 중얼거렸다.

" 아, 티엘. 저... 그러니까. 미안하다. 다시는 눈앞에 나타나지 않겠다고 했는데... 이상한 녀석들이 잔득 나타나서 나를 공격하고.. 또 네가 위험한것 같고.. 그래서... 저기 성가시다면... 그러니까... "

" 이.. 이 바보!!! 그럴리가 없잖아!!! 성가실리가 없다고!!! 저 나쁜놈이 네가 죽었다고 거짓말치고, 너의 가짜 시체까지 만들어서 나를 겁주는데.. 내가... 내가 얼마나... 무서웠는데!!! "

내가 빽 소리를 지르자 키엔은 바닥에 굴러다니는 자신의 머리를 힐끔 쳐다보고는 상황을 파악하고 카이넬을 노려보았다.

" 이놈 잘도... "

" 쳇. 잘 속여넘길수 있었는데 "

카이넬이 손가락을 튕기자 키엔의 머리는 연기가 되어 사라졌다. 키엔은 조용히 허리에서 검을 뽑아들었다. 나는 키엔의 등 뒤에 서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몸에서 풍겨나오는 살기에 온 몸이 찌릿찌릿 거리는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 잘 들어라. 앞으로는 이런 방법을 쓰지 않는게 좋을꺼야. 왜냐하면 나를 죽일수 있는건 이 여자 뿐이니까 "

키엔은 지금까지 들어본적 없는, 잔득 화가난 목소리로 카이넬에게 검을 겨누며 외쳤다. 그러자 카이넬은 어깨를 으쓱하며 자신의 검을 거두었다.

" 그래. 명심해 두도록 하지. 그리고 이번에는 너무 허술하게 준비를 한것 같으니 이만 물러가겠다. 아마 다음번엔... "

" 닥치고 빨리 꺼져!!!! "

나는 내 근처에 있는 의자를 집어던지며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카이넬 자식은 의자를 가뿐히 피하더니 한숨을 내쉬며 그대로 허공에서 녹아내리듯 사라져 버렸다. 어느샌가 그를 호위하던 사람들도 사라졌는지 보이지 않았다. 나는 그제야 한숨을 놓고 그대로 털썩 주저 앉았다. 머리가 어질거렸다. 갑자기 너무 많은 일이 일어나서. 또 너무 많은 기억들이 떠올라서...

" 저... 그럼 난... "

그리고 어느샌가 아까의 기세가 다 가신채로 뻘쭘하게 내 앞에 서있던 키엔은 슬슬 내 눈치를 살피며 자신도 이 자리에서 사라지려 했다. 하지만 나는 그에게 강한 어조로 소리쳤다.

" 멈춰!!! "

내 목소리에 그의 몸이 멈칫 멈추었다. 나는 그에게서 눈을 때지 않고 소리쳤다.

" 아까부터 순 네멋대로로군. 내 말은 듣지도 않고 말이야! 지금이라도 똑똑히 들어! 아까 내가 널 죽이지 않겠다고 했던건 무효야!! 왜냐하면 나는 기억이 없었으니까. 앞뒤 사정을 모르니 그럴수도 있는거잖아? "

" ......그럼 "

키엔이 천천히 나를 뒤돌아 봤다. 나는 힘을 내어 자리에서 일어나고 옷을 탁탁 턴뒤, 멍해져 있는 키엔의 앞으로 가 씩 웃으며 주먹으로 그의 가슴을 툭 쳤다.

" 그래. 네 목숨이 내꺼라는건 여전히 유효야. 하지만, 지금 당장 내가 널 죽이겠다는건 아니야. 사실, 아직까지도 영~~ 너를 죽이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거든 "

그리고 용기를 내어 그때는 하지 못했던, 그 말을 미소와 함께 입밖으로 꺼내었다.

" 그러니까 내가 널 죽이고 싶어질때까지 나와 함께 있어줘. 언제라도 너를 죽일수 있도록 나를 지켜줘. "

그는 멍하니 나를 바라보다 이내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더없이 따스한 어조로 나의 말에 대답했다.

" 응. 네가 원하는 언제까지라도 "




7.
그리고 나와 키엔은 당장 짐을 쌌다. 물론, 나의 기억을 찾기위한 여행을 떠나기 위해서였다.

어째서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이 싸움엣 키엔과 관련된 기억 말고는 아무런 기억도 찾지 못했다. 어쩌면 그것은 나의 예전 기억으로 부터의 선물일지도 모르는 노릇이었다. 그리고, 또한 더이상의 기억은 돌려줄수 없음에 대한 사과같은 것일지도 몰랐다.

키엔의 죽음을 알고, 찰나일 뿐이지만 나의 모든 기억이 돌아온 순간에 마치 다른 인격이 나의 몸을 조종하는것 같은 느낌을 받았을때의 그 느낌.. 어쩌면 기억을 잃기전의 나와, 기억을 잃고 나서의 나는 다른 존재가 아닐까 하는 사실 말이다. 하지만 하나의 마음을 공유하는.. 그래, 기억을 잃기 전의 내가 되고 싶었던 그저 평범한 여자아이.. 그게 내가 아닐까 하는 어렴풋한 예상.

하지만 나는 내 기억을 찾는 여행을 그만둘 생각은 없다. 왜냐하면.. 모든것을 알수는 없더라도 나라는 사람을 알기위해서, 그리고 나라는 사람을 위해서 그 어떤 노력이라도 하고싶은 마음이 들기때문에 였다. 그러기 위해서 내 앞에 어떤 위험이나 슬픔이 도사리고 있더라도 괜찮다. 그리고 나의 기억을 찾을수 있더라도, 혹은 찾을수 없더라도 나는 상관 없다. 분명히 그러하게 될때까지의 과정이 나에게 더욱 더 커다란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나는 믿고있으니까.



" 키엔. 내가 왜 자꾸 나를 집요하게 따라 다니냐고 물었을때, 자꾸 대답을 못했었잖아? 그거.. 나한테 졌다는걸 다시한번 말하자니 쑥쓰러워서 그랬던거지? 그치? "

" 음.... 그건... "

" 아하핫. 또 얼굴 빨개졌데요~ 아, 그런데 나 계속 이해가지 않는게 있는데. 음.. 그러니까 일주일동안이나 집요하게 나를 따라 다녔었잖아. 왜 그랬던거야? 내가 기억을 잃은 그 시점에서 그 약속은 성립이 되지 않았던건데.. "

" ...그건 아마도 네게 괜히 투정을 부리고 싶었던 거겠지. 나는 그렇게 열심히 너를 찾아 헤맸는데, 너는 모든걸 까맣게 잊고 즐겁게 지내고 있었으니까 "

" 에이! 심술이 심하다니까!! "

" 그리고.. 옛날에 너는 사냥꾼인 주제에 아무것도 죽이지 못하는 맘 좋은 녀석이었지. 아마 몇번이고 내가 쓸대없는 살생을 하려 하는것도 막아주었었다. 그게.. 실은 너무 좋았었어. 그래서 네게 '죽이고 싶지 않다'는 말을 잔득 듣고 싶었던 것 뿐이었다. 아마.. 어쩌면 날 죽일 맘따위 없었다는걸 난 알고 있었던 걸지도.. "

" 아... 그... 그랬구나... 아!! 그런데 너 옛날에는 몬스터였잖아? 그런데 왜 느닷없이 인간이 되어 나타난거야? "

" 역시 괴물인쪽이 더 나을뻔 했나.... "

" 이봐 이봐 "

" 후후.. 사실 나는 원래 인간이었다. 아주 어린시절이라 기억이 잘 나지 않긴 하지만, 그 먼 옛날에 나는 악질적인 마법에 의해서 괴물이 되어 버린 것이었지. 그런데 너와 헤어지고 얼마되지 않아 우연히 마법이 풀렸다. 그래서 다시 인간이 된것 뿐이야. "

" 헤에. 우연히 마법이 풀렸다고? 진짜로 우연이야? "

" 그.. 그렇다니까! "

" 왜그렇게 당황하는거야? 뭔가가 있는거지? 그치? 에이~ 말해봐~!!

" 진짜 우연이였다!! "



아니, 나의 기억을 찾는 것이 분명 나에게 큰 의미가 될 것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내일 해가 뜨면 나는 또다시 길을 떠난다. 나의 기억을 찾기 위한.. 아니 나의 기억을 더듬기 위한 여행이다.

그리고 난 알고있다. 나에게 죽으러 온 사람이, 영원히 죽지 않고 나와 함께 할 것임을...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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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일단은 가볍게 써보자고 시작한 로맨틱코미디..(?)였으나 결국 제식대로 어설픈 액션과 함께 조금은 심각해지다가 공익광고처럼 끝나버렸습니다 -_-;

그래도 쓰는 줄곳 즐거웠습니다.^^ 음.. 하지만 뭔가가 역시 이상한...??

에, 그건 그렇고 이거 복선이 잔득 깔려 버렸네요. 티엘의 정체랑 정체불명의 집단과 그 수수깨끼. 그리고 키엔의 정체도^^; 거기다 그 팔찌랑, 티엘의 피묻은 검은 대체 어떻게 된 것일까요? 또 왜 티엘은 기억을 잃어야만 했는지? 스스로 봉인한건지?? 라는 의문은 갈수록 커져갑니다 -_-; 사실 후속편도 생각해 두고 적은 글이라는 말을 넌지시 흘리며, 이걸 연재한다면 꽤 재미 있을지도 라는 생각도해봅니다. 아하핫.


ps.
본 소설은 '미녀와 야수'에서 모티브를 따 온거라죠. 그러니까 야수의 마법이 풀릴수 있었던 이유를 아신다면 키엔의 마법이 풀린 이유도 아실수 있을지도?(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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