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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도시 기록보관소

mirpia 피아노

2005.06.26 02:13

솔비 조회 수:959 추천: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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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직업은 일러스트레이터. 아니, 정확히 나가자면 잘 나가지 않는 초보 일러스트레이터다. 오늘도 나는 회사에서 그림과는 상관없는 잡일을 마치고 지친 몸을 이끌고 집으로 향하고 있다. 지긋지긋하다는 생각도 조금 한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오기와, 또 이 일을 사랑하는 마음도 내 속에 존재한다.

아마 내일은 더 나아지겠지. 몇 년 후의 내 모습은 지금과 다를 거야. 그런 자그마한 희망들을 되내이며 나는, 포기하고 싶은 나에게 지지 않도록 노력하며 이렇게 살아가고 있다.

갑자기 세찬 바람이 불어왔다. 겨울을 눈앞에 둔 지금의 바람은 차라리 겨울보다 더 차가운 느낌을 주었다. 나는 옷깃을 여미며 발걸음을 더욱더 빨리했다. 그런데 그때였다. 어디선가 나지막한 피아노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너무나도 아름다운 음색이었다. 나는 그 소리를 찾기 위하여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골목 한 귀퉁이에 자리 잡은 작은 음반점이 보였다. 그곳의 스피커에서 이 피아노 소리가 울려나오고 있었다.

나는 그 순간 바람이 부는 것도 잊고 그 자리에 서서 그 가계를 바라보았다. 문득 그 피아노 소리를 듣고 있자니 옛날, 나의 유년시절의 추억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무척이나 그리운.. 그리고 절대 잊을 수 없을 내 어린시적의 기억이었다.

그래. 그날도 이렇게 추운 늦가을의 어느 날이었다...




어두운 밤의 거리를 헤매고 있는 내 몸에 차가운 비가 떨어져 내렸다. 이미 빗물에 젖을 대로 젖어버린 나의 교복은 내 몸에 차갑게 달라붙어 나의 체온을 빼앗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비를 피하려고도 어쩌려고도 하지 않은 채 그냥 밤거리를 힘없는 발걸음으로 헤매고 있을 뿐이었다.

오늘.. 예술 고등학교의 실기 시험이 있었다. 하지만 나는 부모님의 반대로 시험을 치러 갈수가 없었다. 나는 그림을 그리고 싶었다. 나에게 있어서 그림은 내 모든 것을 던져서라도 쟁취하고 싶은 삶의 목적이자 이유였다. 하지만 부모님은 내가 그런 길을 걷기보단 평범하게 공부를 하여 평범하고도 안정된 직장을 얻기를 바라신다.

어째서 그래야만 하는 것일까. 내가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며 살아간다는 건 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일까. 그렇게 하면서까지 살아야 하는 것일까.. 그렇게까지 생각하니 한없이 우울해져서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져 버렸다.

자꾸 눈물만 났다.

나는 바보같이 훌쩍이며 앞을 보지도 않고 걸어가다가 다리에 힘이 풀려 그냥 아무 곳에나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추웠다. 몸도, 마음도, 모두 다 추웠다.

그리고 바보같이, 이런 생각도 했다. 여기서 그냥 비를 맞으며 잠들어 버린다면, 이렇게 추운 계절이 비까지 내리고 있으니 잠들 듯 비에 얼어서 죽어버릴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그렇게까지 해서 죽어야 할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살아야 되는 이유도 없다는 생각도 들어다.

어차피 내가 이렇게 사라져 버린 다해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을 것만 같았다. 세상에 변하는 것도 하나 없을 것 같고, 나를 아는 몇 사람들도 잠시 슬퍼하다 금방 나를 잊어버릴 것 같았다. 그냥 내 존재가 그런 존재일 뿐인 것 같았다. 나는 먼지 하나보다도 작고 하찬은것만 같았다.

그래서 더욱더 서글퍼졌다. 나는 내 무릎을 감싸 안고 천천히 눈을 감았다. 정말로.. 난 이렇게 사라져 버린다 해도 괜찮은 걸까... 그런 걸까... 하는 생각도 서서히 희미해져만 갔다.

그리고 그대로 잠이 들어버린것만 같았다.

나는 꿈속에서도 어둠속을 해매고 있었다. 앞이 보이지 않아 컴컴한 그 길을 비명을 지르며 달려가고 있었다. 앞이 보이지 않아 무서웠다. 이곳이 어딘지, 내가 어디로 달려가야 할지 몰라 너무나도 무서웠다.

그때였다. 어디선가 나지막한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것은... 그래 바람소리였다. 바람의 소리라는게 존재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분명히 그것은 바람의 소리였다. 맑고 투명하며 한없이 부드러운.. 바람의 노랫소리... 그 순간 어둠은 사라졌다. 그리고 그 대신 넓고도 밝은 초원이 내 앞에 나타났다. 그리고 바람소리가 나의 몸을 감쌌다.

묘하게 안심이 되는 느낌이었다. 그 소리는 나를 괜찮다고 다독이며 울려 퍼지고 있었다. 그러자 핑하니 내 눈에 눈물이 돌았다. 분명히 지금의 이 눈물은 아까 밤거리를 헤매며 흘렸던 그 눈물과는 달랐다. 어떻게 다른지는 모르겠지만 분명히 달랐다. 모든 것을 녹여내는듯한.. 나의 감정을 모두 녹이는 것 같은 그런...

그리고 나의 눈이 뜨였다.

나는 몸을 벌떡 일으켰다. 분명히 바람의 노랫소리는 아직도 내 귓가에 남아있었지만, 지금은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고 있었다. 꿈에서만 들은 소리였을까.. 나는 아쉬움에 고개를 숙이고 중얼거리다 문득 이곳이 처음 보는 곳이라는 생각에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나는 하얀색의 시트가 깔린 침대에 누워있었다. 그리고 이 침대가 놓인 방은 베이지색 벽지와 원목 바닥이 잘 어우러진 방이었다. 원룸인지 방은 무척이나 넓었고, 방안에 옷장이나 식탁 같은 웬만한 가구는 모두 있었다.

여기가 대체 어디일까.. 나는 멍하니 두리번거리다 창가에 자리 잡은 새하얀 피아노를 발견하곤 그곳으로 다가갔다. 피아노의 의자에는 방금 전까지 누군가가 앉아있었는지 온기가 아직도 남아 있었다. 나는 그 의자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았다. 창문 밖으로 새파란 바다가 보였다. 한동안 그렇게 창밖을 바라보다 나는 다시 피아노로 시선을 돌렸다. 무심코 피아노의 덮개를 열고, 그리고 하얀색과 검은색이 어우러진 건반을 바라보다 손가락을 들어 피아의 건반을 눌러보았다.

피아노의 소리가 울려 퍼졌다. 은은하고 아름다운 소리였다. 그리고 그 순간 나는 아... 하는 소리를 흘릴 수밖에 없었다. 그래... 이 소리였다. 꿈속에서 들었던 그 바람의 소리는 분명히 이 피아노 소리였다. 그럼 꿈속에서 들었던 그 연주는 날 이곳으로 데려온 사람이 쳤던 것일까

너무나도 아름다운 소리였는데...

정말로 부럽다고 생각하며 나는 피아노의 악보를 놓아놓는 곳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러나 그 곳에 악보는 없었고, 단지 누군가가 갈겨놓은 것 같은 편지 한 장만이 놓여있을 뿐이었다. 나는 그 편지를 들고 읽어보았다.

그 편지에는 빗속에서 쓰러져있던 나를 이곳으로 옮겨왔다는 이야기와, 내 교복을 베란다에 널어놓았다는 이야기, 그리고 교복이 덜 말랐으면 그냥 내가 입고 있는 이 옷을 입고가도 상관이 없다는 이야기(여기까지 읽었을 때 내 옷을 내려다보니 나는 헐렁헐렁한 하얀티와 베이지색 츄리링 바지를 입고 있었다)같은 것들이 적혀 있었다.

그리고 그 마지막에, 추신인 듯 위의 글들과 조금 떨어지게 나의 손이 무척이나 예쁘다는 말이 적혀있었다. 그림을 그리는 손이냐고, 무척이나 예쁜 손이라고.. 그런 말들이 적혀있었다. 나는 멍하니 내 손을 내려다보았다. 연필을 너무나 오랫동안 잡아서 여기저기 굳은살이 밖히고 거뭇거뭇하게 물이 든 나의 손이 보였다.

마치 지금까지의 내 모든 것을 증명하는 것 같은 거칠고도 투박한 손이었다. 그 손을 보니 눈물이 핑 도는 것만 같았다. 나의 모든 것이 담긴, 내 모든 것을 증명하는 증거인, 나의 손..

나는 천천히 그 손을 들어 피아노 건반에 얹었다. 그리고 꿈속에서 들었던 그 소리를 흉내 내어 나도 피아노를 치기 시작했다. 사실 나는 꿈속의 그 소리를 제대로 기억도 못하는데다 그런 소리를 흉내 낼 재주도 없었다. 하지만.. 나는 정성을 다하여 그 소리를 흉내 내어 쳤다. 그래서 내가 치는 피아노곡은 젓가락 행진곡이었다가, 유행이 지난 가요였다가, 아기공룡 둘리나 캔디캔디같은 만화곡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그런 소리가 싫지 않았다. 무척이나 즐거웠고, 또 행복했다. 그 말도 되지 않는 서툴고 엉망인 피아노곡에 심취해 갈수록 나의 이마엔 땀이 송글송글 맺혀갔고, 이 하얀 방은 내 연주로 가득 차올랐다. 즐거웠다. 또 행복했다. 이 방을 내가 무언가로 가득 채운다는게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었다.

그리고 나의 머릿속에는 내가 그림을 그려왔던 날들이 하나하나 떠오르기 시작했었다. 그림을 그리며 행복했던 것들, 그리고 슬펐던 것들, 즐거웠던 것들, 서러웠던 것들.. 그 모든 것들이 한 덩어리가 되어 나의 가슴속을 가득 채워갔다. 아아.. 그래. 나는 그림을 그리며 행복했었다. 지금 서툰 피아노곡에 행복해 하는 것처럼, 그저 그림을 그리는 것만으로도 행복했었던 때가 있었다. 잘 그리진 못했지만, 지금 이 연주보다 더욱더 엉망일 때도 있었지만.. 그래, 나는 그 아무것도 없는 하얀 도화지에 무언가를 그려나간다는게, 그 모든게 행복했었다.

그뿐이었다.

그저 하얀 도화지에 내가 무언가를 그려서 창조해낸다는게 그렇게도 행복하고 신기할 수가 없었다. 그건 예술 고등학교에 들어가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냥 그림을 그리는 그 자체가 나는 즐거웠었다.

어느 순간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는 울고 있었다. 난 눈물을 닦지도 않고 피아노에서 손을 땠다. 그리고 방을 뒤져 종이와 연필을 찾아냈다. 그 연필로 종이에 난 이 방을 스케치하기 시작했다. 내가 잠들어있던 침대와, 피아노와, 악보와, 피아노 너머의 하늘과 바다와... 그 모든 것들을 하나하나 정성들여 그리기 시작했다. 마치 처음 그림을 그렸을 때처럼 너무나도 행복하게 그 모든 것들을 그렸다.

그림을 모두 그리고 나니 벌써 하늘은 석양에 물들어 있었다. 나는 멍하니 석양이 진 하늘을 바라보다 베란다에 나가서, 약간 덜 말라 눅눅한 감이 있는 내 교복을 걷어 주섬주섬 챙겨 입었다. 그리고 내가 입고 있던 옷을 정성들여 갠 다음 침대를 정리했다.

어느덧 하늘에는 별이 하나 둘 보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 집의 주인은 그때까지도 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신발을 신고 뒤를 돌아 그 방을 둘러보았다. 하루 종일 그림을 그렸기에 익숙해진 방의 풍경과, 테이블 위에 놓여있는 내 그림들이 보였다. 나는 미소를 지으며 그 그림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집을 나와 택시를 잡아타고 집으로 향했다.

물론 하루 외박에 학교도 하루 무단결석했기에 나는 집으로 돌아가 무척이나 혼이 났다. 하지만 어제처럼 슬프지는 않았다. 도리어 홀가분하기까지 했다. 그리고 한동안 나는 일반계 고등학교의 입학 준비와, 중학교의 마지막 생활, 그리고 학교 축제 같은 것 때문에 정신없이 겨울을 보내었다.

그렇게 몇 달의 시간이 흘러, 겨우 다시 그 집을 찾았을 때는 벌써 봄이 다가오는 계절이었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다시 교복을 입은 채로 찾은 그 곳은, 마치 내가 하루 동안 묵었다는 것이 거짓말이었던 것처럼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철썩이는 바다를 배경으로 그 집이 있었던 자리엔 그저 집이 있었다는 흔적만이 남아있을 뿐이었다.

곧 근처의 사람에게 이 집의 주인이 어딘가로 이사를 갔으며, 얼마 지나지 않아 집도 철거가 되었다는 소리를 들었다. 나는 왠지 센티맨탈해 지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그리고 석양이 질 때까지 그 집터를 떠날 수가 없었다. 왜 그랬었는지는 모르겠다.

그 뒤 고등학교에 입학하기까지의 열흘 동안 나는 그 집이 있었던 터에 하루도 빠짐없이 나가서 하늘이라던가, 풀꽃이라던가, 바다 같은 것들을 스케치했다. 그 열흘 동안 그집의 주인을 만날수도 없었고, 뭔가 특별한 일도 일어나진 않았지만..

아마 내가 그곳에서 느끼고, 보고, 그렸던 그 모든 것들은 어떤 말로도 설명할 수 없을 것이며, 그 누구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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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황1.
요즘 새로운 단편을 쓰고 있습니다. 무려 호러로맨틱익사이팅스토리 -_-; 시험이 끝나고 올려볼 생각입니다. 제법 마음에 드는 스토리라 가슴이 두근두근 하네요.

근황2.
저는 영어를 무척이나 싫어한답니다♡ 그래서 모의고사를 치면 상당히 다른 과목과 영어라는 과목의 점수차가 극적으로 벌어지곤 하죠. 그리고 얼마전 모의고사에서 엄청난 차이가... 다른 과목은 죄다 1,2등급인데 어머나 영어가 7등급이 나왔지 뭐에요~~ 큰일이다(콰광)

근황3.
별것아닌 이야기이지만 아바타 바꿨답니다. 괜찮나요?? 주제는 영어공부에 지친 세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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