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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도시 기록보관소

mirpia 한 소년이 있었습니다.

2005.06.22 07:44

솔비 조회 수:1028 추천: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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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소년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 소년에겐 무척이나 희귀한 병이 있었습니다. 그 병은 너무나도 희귀해서 치료할 방도도 없었습니다. 소년은 남들의 삼분의 일도 살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처음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소년은 너무 슬퍼서 엉엉 울음을 터트렸다고 합니다.

그 병은 사람의 생명을 야금야금 갉아먹는 병이라고 했습니다. 더구나 유전이며 전염성이 있다고 합니다. 아이를 낳는 것만으로도 병은 이어지고, 타인과 접촉을 하는 것만으로도 병은 확산된다고 했습니다. 소년은 처음으로 자신의 부모를 원망했습니다. 이미 병 때문에 돌아가신 부모님을요. 왜 자신을 낳았냐고, 왜 이렇게 괴로울걸 알면서도 자신을 낳았냐고. 소년은 슬펐습니다.

그렇게 얼마간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소년의 슬픔은 겨우 진정되었고, 그는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이기로 결심했습니다. 어차피 울며 슬퍼해 보았자 바뀌는 건 없다는 걸, 차라리 그 시간에 다른 일을 하는게 훨씬 낫다는걸 깨달은 것입니다. 그렇게도 슬픈 진리를.. 깨달은 것입니다. 소년은 그 때문에 또다시 아주 조금 슬퍼졌지만 이내 그 슬픔도 떨구어 버렸습니다. 슬퍼할 시간조차 없으니까요.

그리고 소년은 남들의 두배로 바쁘게 살아가기 시작했습니다. 너무 너무 바빠서 소년은 자신의 병에 대해 생각할 시간도, 슬퍼할 시간도 가질 수 없었습니다. 소년은 그 생활이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리고 당당히 '인생은 양이 아니라 질입니다' 라고 외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이었습니다. 소년은 한 소녀를 만났습니다. 소녀는 너무나도 아름다웠고, 소년은 그 소녀에게서 눈을 땔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 날부터 소년은 매일같이 그 소녀의 생각만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상한 일이었습니다. 자신의 병이나 슬픔은 열심히 일하면 잊혀졌지만 소녀의 얼굴, 목소리, 미소, 그 모든 것들은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잊혀지지 않았습니다. 아니, 바쁘면 바쁠수록 잊으려 하면 잊으려 할수록 소녀의 얼굴은 더욱더 또렷해지며 소년의 가슴 한켠을 채워 갔습니다.

소년은 결국 인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소녀를 사랑한다고요. 하지만 소년에겐 병이 있었습니다. 만약 소녀와 조금의 접촉이 생긴다 해도 소녀는 소년과 같은 병을 앓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소년은 사랑하는 소녀가 그런 고통을 겪는게 싫었습니다. 그래서 소년은 소녀를 만나지 않았습니다. 그저 멀직이서 소녀를 바라보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그리고 소년의 가슴속 깊이 뭍혀있던 슬픔이 다시 자라나기 시작했습니다. 원망과 아픔이 뒤섞인 슬픔은 매일같이 소년을 괴롭혔고, 소년은 혹여라도 소녀가 눈치챌까봐 그때마다 몰래 고통의 신음을 삼킬 수밖에 없었습니다. 소년은 슬프고 괴로워 미칠 것만 같았습니다. 소녀와 입맞추고, 안아주고, 그 작은 손을 꼬옥 잡아주고 싶은데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이 미웠습니다.

하루는 소년은 소녀에게 모든 것을 털어놓을까 생각도 해 보았습니다. 하지만 이내 포기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모든 것을 털어놓았을 때 소녀가 보일 반응.. 그러니까 동정, 혐오, 슬픔 같은 감정들이 어여쁜 소녀의 얼굴에 떠오르는 것이 싫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렇게 소년은 살아갔습니다. 슬픔을 가슴에 묻고 그저 멀리서 소녀를 바라보는 것만을 만족하며 그렇게 살아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소녀가 소년을 찾아왔습니다. 소년을 놀랐으나, 소녀는 담담히 말했습니다. 네가 날 지켜보는거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어. 처음엔 조금 언짢았는데 시간이 가면 갈수록 호기심이 일더라? 너, 날 좋아하니? 조금은 당돌한 질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소년은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습니다. 좋아한다고 대답하고.. 그리고 그 다음은? 대체 어쩌란 말인가요. 한참 동안이나 대답이 없는 소년을 까만 눈으로 물끄러미 바라보던 소녀는 웃으며 말했습니다. 대답하기 곤란하면 다음에 말해도돼...

그러나 소년은 끝내 말하지 못했습니다.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대신 소년은 열심히 일하며 소녀를 잊어보려 노력했습니다. 평소보다 더욱더 바쁘게 일하며 잊혀지지 않는 소녀의 얼굴을 억지로 잊었다 자기합리화 시키며.. 그렇게 노력했습니다. 겨우 한 발짝인데, 그 한 발짝을 옮길 수 없는 소년은 자기 자신이 그리도 비참하고 불쌍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매일매일 울었고, 매일매일 슬펐습니다.

그렇게 하루가 한달이 되고, 한달이 일년이 되고, 일년이 십년이 되어 소년은 청년이 되었습니다. 소년은 청년이 되었지만 여전히 슬펐습니다. 십년전과 전혀 변하지 않은 가슴은 비어버린 듯 아팠고, 곧잘 눈물을 떨구곤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이었습니다. 우연히, 정말로 우연히 소년은 소녀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녀는 이미 여인이 되어 있었지만 여전히 그때처럼 아름다웠습니다. 그리고 어쩔 줄을 몰라하는 소년에게 소녀는 퉁명스레 말했습니다. 여자를 언제까지 기다리게 할 참이야? 바보같이.. 시도도 해보지 않고 포기나 하고 말이야.

뾰롱퉁한 소녀의 모습을 본 소년은 무척이나 놀라고 말았습니다. 예전.. 십년전의 소녀와 전혀 변한 것이 없는 소녀의 표정 때문이었습니다. 아니, 그녀의 표정이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라 십년전의 소녀를 똑똑히 기억하고 있는 자신에게 놀란 것이었습니다. 분명 잊었다고 생각했는데.. 그랬는데 잊혀진건 하나도 없었고 변한 것도 하나 없었습니다.

같은 상황. 같은 마음...

결국 소년은 그 날과 같이 돌아서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등뒤에서 소녀의 외침소리가 들려 왔습니다. 이 바보야!! 포기할 참이냐니까!!!! 시도도 않해보고!!!!!! 소년의 발걸음이 멈췄습니다. 그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가슴이 뛰었습니다. 그래서 그만 말해버렸습니다. 우는 자신의 모습을 보이기 싫어서.. 계속 뒤돌아 선채로 하나 하나 다 말해 버렸습니다. 고해 성사를 하듯.. 소년은 모든 것을 고백했습니다. 그리고 고백을 이어나가면 이어 나갈수록 소년의 가슴은 편해졌지만 한편으로는 너무나도 무서워 졌습니다. 그리고 모든 것을 다 고백했을 때 소녀는 아무런 대답이 없었습니다. 소년은 눈을 꽉 감고 눈물을 닦지도 못한 채 도망치듯 달려가려 했습니다. 그런데.. 돌연 등뒤에서 따스한 감촉이 느껴졌습니다.

소녀였습니다.

소년의 눈이 커졌고 소녀는 계속 말이 없었습니다. 소년은 다시 한번 울었고 소녀는 웃었습니다. 그리고 그 두사람은 결혼을 하고.. 얼마 되지 않아 죽어버렸다고 합니다.

그 두분은 저의 부모님입니다. 그리고 저도 같은 병을 앓고 있습니다. 저 역시 아버지와 같이 혼자고, 외롭고, 쓸쓸합니다. 아버지처럼 불쌍하고, 아버지처럼 바보 같습니다. 하지만 가끔 생각합니다. 두분은 행복하셨을까. 이별이 예정된 사랑이었을텐데.. 정말로 행복하셨을까. 어머니는 왜 아버지를 선택하셨을까, 아버지는 왜 어머니를 받아들이셨을까. 또.. 그렇게 부모님을 원망하셨으면서 왜 날 낳으셨을까. 할아버지와 할머니도 같은 심정이었을까.

저는 모르겠지만, 어쩌면 조금을 알것것같기도 하다는 생각을 종종 하곤 합니다. 어쩌면 그 조금을 알 것 같다는 생각도 잘 모르겠지만요. 전 가끔 하늘의 별을 바라보며 부모님이 나에게 남겨주신 편지를 되새깁니다. 몇 번이고 읽어서 머릿속에 외워진 편지입니다.


비록 우리 이것이
운명이라 해도
슬퍼한 적은 없습니다
그것은 지금까지의
시간이 행복하였듯
앞으로의 시간도
행복할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진짜 행복이란 것은 그 시간이 얼마나
길었느냐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행복하였느냐 겠지요.
그러니까........


두분은 정말로 행복하셨을까요. 그리고 나도.. 행복해 질 수 있을까요. 왠지 그 편지의 내용이 가슴이 아프도록 슬프다는 생각을 종종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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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족한 실력이지만 뭔가 착오가 있었는지, 심사위원님들께서 저를 어여삐 봐주셨는지 작가가 되어버렸습니다^^;
일단 작가 게시판이 활성화 되었다길래, 시험삼아 예전 적었던 단편을 한편 올려봅니다.
창도 데뷔작(?)이었던 단편이죠; 그러고 보니 창도에 눌러앉은지 어엿 반년이 넘어가는군요...
하아. 참 많은 일들이 있었는데...(아련)
뭐, 앞으로도 꽤 오랫동안 여기에 눌러 앉을 생각이니까요.
다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꾸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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