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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도시 기록보관소

dest21c Cercatori

2006.12.11 03:38

Evangelista 조회 수:97486 추천:18

extra_vars1 Chapter I : D.M. 2006년 8월호 (통권 1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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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개인사(個人事)




“유리나 양이 언제 올까 생각하는 거야?”


유월 이십사일, 점심시간 조금 지나 커피 자판기 앞에서 서현 씨가 물었다.


“생각이라면 하고 있죠. 엄청나게 네거티브한 쪽이라서 그렇지.”


“그러면 피리아 데리고 밖에 좀 나갔다 와 줄래? 서울 구경을 하고 싶다고 난리야. 난 일이 꽉꽉 막혀서 나갈 수가 없거든. 운전할 줄 알면 내 차 빌려줄게.”


“면허야 있고 몰 줄도 알긴 하지만……. 서현 씨 차 있었어요?”


“주차를 좀 멀리 하거든. 아무래도 직원들 보여줄 물건은 아니라서 말이야.”


서현 씨라면 분명히 포 뭐시기라던가 티 뭐시기라던가 하는 초 구형차를 타지 않을까 하는 이미지. 그게 부끄러워서 회사 앞에는 주차하지 않는 모양이다. 그 전에 이 사람에게 부끄럽다는 신경 회로가 있는지가 의문이기는 하지만. 하긴 그런 차라면 나로서도 마음 놓고 몰기 편하고 좋다. 자칫 잘못해서 찌그러트린다 해도 비교적 큰 문제는 일어나지 않을 테니까 말이다.


“피리아란 애는 딱히 마음에 안 들지만 할 일 없는 아르바이트가 봉사해야죠. 어디에 있는데요?”


“골목 빠져나가서 대로에 있는 주차장 있지? 거기 들어가면 삼 층에 올려놨어. 번호는 구육삼칠.”


“모델은요?”


“사실 이번에 새로 뽑았지. 벤츠 마이바흐 62.”


심장이 멎을 뻔했다! 그거 팔억 원 짜리 차 맞지? 기억이 온전하다면 분명 V12 트윈 터보 엔진에 리터당 5.3킬로미터의 허접한 연비를 자랑하는 초 고급 외제차의 전형. 그런 걸 나 같은 서민이 맨 정신으로 타고 다녔다간 킬로미터당 5.3킬로그램씩 살이 빠질 거다. 아니, 내가 잘 몰고 간다 해도 어느 재수 없는 사람이 잘못 와서 부딪치면 그 사람한테 너무나 죄송한 일이다. 보험처리가 된다면 보험사에도 지극히 유감스러움을 표하는 바이다.


“못 타요, 그런 거. 그런데 진짜예요?”


“당연히 뻥이지. 사실 뉴 비틀 중고를 헐값에 구했어.”


이 양반아.


“그것도 새 걸로 사면 삼사천만원 깨지는 물건 아닌가요?”


“아. 괜찮아. 팔백에 샀거든. 이런저런 사정이 있어서 말야. 그리고 사고 나도 아무 말 안 할게. 나 이래 뵈도 돈 꽤 모아 뒀다고. 피리아 태우고 나가 줄 거야, 안 해줄 거야?”


이제 숫제 강요하는 분위기다. 마이바흐고 뉴 비틀이고 외제차란 건 똑같은 거 아닌가.


“늘 안 하던 거 이제 와서 한대도 오늘 하루 좀 쉰다고 어때요? 서현 씨가 나가세요. 나도 운전 많이 해 본 건 아니라고요.”


“안 돼. 일 해야 돼.”


“정말로 그게 진짜 이유입니까?”


“달리 뭐가 필요해?”


“진짜 이유가 필요하죠. 쿠이드 에스트 베리타스Quid est veritas?"


“문자 쓰는데. 인 레미씨오넴 페카토룸In remissionem pecatorum. 내가 그 애를 차 안에서 덮쳐 버리지 않을 거라고 누가 장담하냐?”


“플루스 라티오 쿠암 데시라티오Plus ratio quam desideratio. 괜찮을 거예요.”


“계속 라틴어 지껄일래?”


“하여간 안 가요. 덥기도 하고.”


“놀리떼 아 말리스 프라이키피, 수스티네 에트 카르페 디엠. 이타 시크 테 디이 아멘트. 아크타 에스트 파불라Nolite a malis praecipi, sustine et carpe diem. Ita sic te dii ament. Acta est fabula!”


“죄송합니다. 다녀오겠습니다.”


결국 나는 서현 씨에게 차 키를 받아 들고 말았다.




해석하겠다. Quid est veritas? 무엇이 진실이냐? In remissionem pecatorum. 죄를 용서받기 위하여. Plus ratio quam desideratio. 이성은 욕망보다 강하다. Nolite a malis praecipi. 악인으로부터 배우려 들지 말라. Sustine et carpe diem. 참아라, 그리고 오늘을 즐겨라. Ita sic te dii ament. 네게 신의 가호가 임하기를. Acta est fabula. 연극은 끝났다.


백주 대낮부터 이런 미친 것 같은 대화나 나누다니 갈 때가 됐나 보다. 5배속으로 머리를 굴려 있는 말 없는 말 다 끄집어냈지만 역시 서현 씨는 이길 수 없었다. 이 사람은 대체 머리 속에 아카식 레코드를 집어넣고 사는 건지 왜 이리도 아는 게 많은 걸까.




사장실엔 피리아가 없었다. 그저 누님이 엄청나게 아슬아슬한 포즈로 소파에 뻗어 자고 있었을 뿐이다. 아무리 날이 덥다 해도 보는 사람을 생각해서 옷 정도는 확실히 제대로 입어 주기 바란다. 게다가 사장실에 사장은 어디 가고 비서가 오침중이란 말인가.


서현 씨도 문제다. 피리아를 덮치니 마니 하는 건 베리타스고 나발이고 또 뻥일 게 뻔하다. 단순히 귀찮았을 뿐이리라.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최소한 피리아가 어느 구석에 처박혀 있는지는 가르쳐 줄 수 있는 거 아닌가 말이다. 벌써 건물을 이십 분 동안 돌아다녔다.


“한 사오십 분 쯤 전에 주차장 간다고 나가던데요. 사표라도 내시게요?”


레코 씨가 상큼한 미소와 함께 말했다. 역시 원흉은 서현 씨 그 사람이다. 애초에 날 보낼 생각이었던 거다. 나와 투닥대는 현장이 들키기라도 하면 골치 아파지니까 가서 기다리라고 하고 먼저 보낸 것일 테지. 정말 지식수준과 비례하는 엄청난 잔머리다. 안 좋은 쪽으론 열 수 이상 앞서 생각한다니까. 그리고 사표는 안 낸다. 애초에 정직원도 아니잖은가 나는.




처음부터 올림픽대로를 달리는 지금까지 피리아는 계속 불만에 가득 찬 표정이다. 기사가 맘에 안 들면 바꿔 달라고 해라. 갑자기 쓸데없는 소리나 안 할지 무섭다. 벌써 한 삼십 분간 대화가 전혀 없다. 이런 분위기는 참을 수가 없다.


“사장.”


“뭐야?”


매뉴얼에 없는 이상한 질문 하면 죽여 버릴 태세다.


“한국에 온 특별한 이유라도 있어?”


“인사명령이었어요.”


“와 보니까 어때?”


“당신 빼곤 다 괜찮아요. 특히 어제 이후로.”


유리나 그 언니는 왜 멀쩡히 잘 사는 사람을 찾아 와서 괴롭히냔 말이다.


“그런데 서현 씨는 뭐 하고 당신이 온 거예요?”


“그 양반, 일이 바쁘다고 나보고 가라는데 정규직에게 아르바이트가 당해? 나도 싫어.”


입이 어디까지 튀어 나온다. 앞 차창에 닿겠다. 적당히 해라.


차가 좀 막힌다. 브레이크를 밟고 기다리려다 보니 갑자기 생각이 스친다. 이 녀석 설마?


“사장.”


“뭐야?”


매뉴얼에 없는 이상한 질문을 하겠지만 양해 부탁한다.


“서현 씨는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해?”


“제멋대로인 사람. 그 외에 달리 표현할 방법이 있나요?”


“그것보다, 네가 보기에 어떤 것 같냐고.”


“왜 그런 걸 물어요?”


급히 시선을 조수석 창 밖으로 돌린 그녀 쪽에서 내게 되묻는 대답이 들려왔다. 내 생각이 거의 맞는 것 같다. 하지만 어째서? 대체 어째서 만난 지 며칠밖에 안 된 사람을…….


“사장.”


“계속 그렇게 부를래요?”


“너 서현 씨 좋아하지?”


피리아의 동그란 눈이 다시 시야에 잡혔다. 표정은 사뭇 다르다. 굉장히 난감하고 또, 당황한 듯한 얼굴.


“개소리에도 정도가 있어요.”


그러나 돌아온 대답은 전혀 예상 외.


다시 침묵 상태로 돌아온 차는 넓은 8차선 도로를 미끄러져갔다.


“이상한 질문 하지 말아요.”




남산 타워 최상층에서 내려다본 서울 시내는 조금 뿌옇고 어두웠다. 그녀가 조금 피곤한 눈으로 내게 시선을 돌렸다. 그 눈이 너무 맑아 보여서 서로 눈을 마주친 채 계속 들여다보았다. 얼마 뒤 피리아는 뺨을 붉히며 몸을 돌려 다시 창 밖을 향했다.


“서현 씨는 프랑스에 있을 때부터 알고 있었어요.”


어째 담배가 피우고 싶은데 이 곳은 금연이다.


“그 때부터야?”


“아마도요. 하지만 내가 아니었을 지도 몰라요.”


서현 씨가 좋아했던 여자는 말인가? 이 애, 이렇게 쓸쓸해 보이는 모습은 평소에 보던 것과 너무 달라서 신선하달까, 어딘가, 마음이 찌르르 울리는 것 같다.


“나도 하나 물어볼게요.”


웃는다고 노력한 것 같지만 여전히 쓸쓸한 웃음이다.


“나는 어떤 여자라고 생각해요?”


열이 조금 있는 듯한, 아니 더운 대기 때문이겠지만, 그것도 아니면 에어컨을 너무 쐬어서 감기에 걸린 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약간 상기된 뺨은 붉으면서도 너무 희어서 눈으로 만든 벨벳 같았다.


“귀여워.”


피리아가 생긋 웃었다.


 



 


 


 


요즘 페이스가 무지 늦춰지고 있지만


하여간 다음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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