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창조도시 기록보관소

hwarang102 꿈꾸는 자들의 도시

2007.08.17 04:11

Mr. J 조회 수:1112 추천:12

extra_vars1 예언 
extra_vars2 13 
extra_vars3 121642-1 
extra_vars4
extra_vars5
extra_vars6
extra_vars7
extra_vars8  
extra_vars9  

 


 


 


 


 


 레기의 제왕은 말없이 남자를 내려다보았다. 홀쭉한 남자 역시 아무런 말 없이 노인과 눈을 맞추었다. 정적이 흐르고 들리는 소리는 구정물이 흐르는 소리뿐이었지만 아무도 그런 것엔 신경 쓰고 있지 않았다. 엘은 그 침묵 속에서 자기 소리가 새어나갈까 더욱 숨을 죽였다. 자세를 좀더 낮추곤 싶었지만 얼굴이 곰팡이에 닿는 것만큼은 피하고 싶었다.


침묵을 깬 것은 정크 로드였다.


 


사실 나도 내가 늙어간다고 생각은 하고 있었네만.


그가 신음소리를 내며 자신의 어깨를 주물렀다.


 


몸이 예전 같지 않다네. 늙으면서 잠도 나이만큼 늘어버린 모양이로군.


그가 크게 하품을 하였다. 그런 왕의 반응이 조금은 뜻 밖이었는지, 홀쭉한 남자는 조금 당황한 얼굴을 하고 있는 것이, 대답 할 말을 찾고 있는 듯 했다.


 


안 그래도 자네에게 임시로 이 지하수도의 왕 자리를 맡길 생각이었다네. 허나 나도 욕심이 있지 않은가. 오랜 시간 동안 써 왔던 왕관을 내어주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네. 내 갈팡질팡한 마음을 가르고 그대가 제 발로 찾아 왔으니, 이것이 지하의 은총 아니겠는가?


정크 로드가 그의 길쭉한 팔을 벌렸다. 이제 반란의 무리들은 혼란에 빠져버린 듯 했다. 수를 모아서 습격을 한다면 정크 로드가 저항하여도 보기 좋게 혼내 주어 내쫓을 수 있는 것인데, 지금 왕의 태도는 반란군들을 증오하기는커녕 환영하고 있지 않은가. 홀쭉한 남자는 뭔가 할 말을 계속 찾고 있었다.


 


, 말 하지 않아도 전부 알고 있다네. 자네의 마음쯤 오랜 세월 동안 자네를 돌봐주었던 내가 가장 잘 알지 않겠는가. 자, 이리로 오게, 내가 자네에게 이 왕관과 왕좌와 왕권을 전부 주도록 하겠네.


정크 로드 옆에서 뚱보 남자가 그의 망토를 마구 잡아당기며 필사적인 제스처를 취했지만 쓰레기의 왕은 이미 결심이 굳어진 듯, 그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홀쭉이 남자는 처음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망설였지만, 그의 전우들이 그를 밀어 주는 바람에 결국 머슴적은 발걸음으로 언덕을 올라 왕좌로 다가갔다. 정크 로드는 그를 인자한 눈으로 내려다 보고 있었다.


 


내 손수 왕관을 씌워 줄 테니 가까이 오게.


관대한 정크 로드가 말하였고, 황홀경에 빠진 홀쭉이 남자는 한발 더 가까이 다가가 제왕의 앞에 섰다. 그리고 나선 천천히 맨질맨질한 그 머리를 내 밀었다.


순간, 왕의 눈동자가 휘까닥 놀아가며 분노의 불꽃을 튀기더니, 정크 로드는 왕관대신 그의 주먹을 쳐들어 앞에 선 홀쭉이 남자의 정수리를 내리쳤다.


얼마나 세게 쳤는지 홀쭉이 남자는 곰팡이 가득한 바닥으로 가슴께 까지 꺼져 들어가 버렸다. 게거품을 물고 있는 것이 기절한 듯 했다.


 


이 멍청한 것들이……! 쓰레기들은 모여봤자 쓰레기들일 뿐이다! 모이지 않은 쓰레기랑 모인 쓰레기의 차이가 뭔지 아느냐? 냄새가 얼마나 냐느냐이지!


노인은 외침과 함께 껑충 뛰어올라 반란군 사이로 날아들었다. 그가 눈을 빛내며 한번 팔을 휘두를 때마다 쓰레기 인간들이 세 넷씩 나가 떨어졌다.


 


쓰레기면 쓰레기답게 살아라!


반란군들은 이제 전부 패잔병들이 되어선 아픈 곳을 감싸 쥐고 저 멀리 통로 어두운 곳으로 도망쳤다. 지하세계에서는 힘이 모든 것을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저렇게 백발이 성성한 노인임에도 불구하고 쓰레기의 왕이라 불리는 것은 저런 괴력이 있기 때문인가.


 


왕이 몸을 풀며 언덕을 올라오자마자 뚱뚱한 남자는 얼른 왕의 갑옷이 더럽혀지진 않았나 확인하였다. 구정물이 튀긴 부분을 발견할 때마다 그의 내복으로 열심히 닦았다.


 


오랜만에 힘을 썼더니 피곤하구나. 다시 자야겠어.


그가 말하며 왕좌에 앉았다. 엘은 그때까지도 기척을 숨기려 노력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곰팡이가 콧구멍으로 들어와 버렸다. 으레 이런 긴급한 순간이면 재채기를 참을 수 없지 않던가. 엘은 요란하게 재치기를 해 버렸다. 그리고 역시나, 정크 로드는 그 소리를 들었다.


 


아직도 쓰레기가 남아 있는 것인가. 귀찮구나. 네가 가서 쫓아내고 와라.


왕이 뚱뚱한 남자에게 명하였다. 그는 정말로 내키지 않는 표정을 지었지만 피곤한 듯, 턱을 괴는 왕에게 뭐라고 대꾸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는 조심스럽게 엘이 있는 쪽으로 다가왔다. 엘은 어떻게 대처할지 몰라 그저 멍하니 엎드려 있었다.


엘을 발견한 뚱보 남자는, 엘이 어리다는 것을 보곤 안심한 듯 했다.


 


정크 로드! 쓰레기는 아니고 웬 애가 있는데요?


그가 엘을 부둥켜 잡아 끌어 올렸다. 지금껏 보여주던 자신 없던 태도와는 다르게 그는 무서운 힘으로 엘을 잡아서 허공에 들어 올렸다. 어쩌면 그는 강한 자에겐 한없이 강하고 약한 자에겐 한없이 약한 자인지도 몰랐다. 그런 족속들일수록 잔혹하기는 더욱 잔혹하였기 때문에 엘은 두렵지 않을 수 없었다.


 


알아서 해…….


귀찮아진 왕은 턱을 괴고 눈을 감은 채 다른 한 손을 내저었다.


 


히히히…….


뚱뚱한 남자는 음흉스럽게 웃더니, 엘을 들어올린 채로 구정물의 강으로 다가섰다. 유독 물살이 세찬 곳이 있었는데, 아래쪽으로 흘러 들어가는 구멍인 듯 했다. 저 곳으로 빠져들어가면 다시는 밖으로 나올 수 없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뚱보 남자는 엘을 그곳에 집어넣을 생각인 듯 했다.


 


히히, 신나는 물놀이 하라고.


그가 엘을 물살 가까이 내려놓으려 했고, 그제서야 정신을 차린 엘은 손을 뻗어 남자의 안면에 가져다 대고 재빨리 주문을 외웠다. 새빨간 불꽃이 남자의 머리통을 휘감았다.


 


우우가아아악!


남자가 요동을 치며 엘을 집어 던졌다. 운 좋게도 강물 쪽이 아닌 곰팡이 언덕 쪽으로 던져서, 엘은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다. 뚱보 남자는 고통스러운 듯, 마구 굴러다니며 불을 끄려 하다가 결국 구정물 속에 머리를 처박았다. 새카맣게 얼굴이 탔지만 치명상은 입지 않은 듯, 남자는 단단히 화가 났는지 엘에게 성큼성큼 다가왔다. 주저앉아 있던 엘은 다시 양 손을 들어 시전을 준비했다.


 


그만!


정크 로드의 목소리였다.


어느새 엘의 뒤로 다가온 그는, 뚱보 남자에게 손을 저었다. 뚱뚱보는 조금 분한 듯 했지만, 아무런 말대답 없이 씩씩거리며 물가로 다시 내려갔다.


 


, 불꽃을 쓸 줄 아는구나.


왕이 엘에게 말했다. 가까이서 본 정크 로드는 키가 더 커 보였다. 주저앉아 올려다 보는 정크 로드는 키가 엘의 세배는 될 듯 했다.


 


……. 예……. 마법사니까요…….


흐음…….


갑자기 정크로드가 손을 뻗어 엘을 들어올렸다. 뚱보 남자가 그랬던 기억이 나서 조금은 불쾌했지만, 쓰레기의 왕에게 파이어 볼을 먹일 만큼 엘은 실력에 자신이 없었다. 게다가 적의도 없어 보였고 말이다.


 


그는 엘을 들고 가 왕좌에 앉고, 그를 무릎에 앉혔다.


 


꼬마, 내가 갑자기 이런 말을 하면 이상할 진 모르겠지만 일단 들어보길 바란다.


그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고, 엘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쓰레기의 왕답게 조금 심각한 냄새가 났지만 그런 것을 따질 때가 아니었다.


 


나는 점괘 같은 자잘한 미신을 좋아한다.


제왕이 말을 시작했다. 엘은 가만히 앉아 그의 말을 경청하였다. 왕의 허벅지는 철봉 같아서 조금 불편했다. 엘은 왕의 미간에 박혀있는 그 은빛 물체를 자세히 살펴보려 했는데, 뿔 같기도 하고 단순한 장신구 같기도 한 것이 요상한 느낌을 풍기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 전에 이 지하에서 가장 용한 점쟁이가 나에게 예언을 하나 해 주었지.


왕은 말을 이어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