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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도시 기록보관소

hwarang102 꿈꾸는 자들의 도시

2007.08.12 21:33

Mr. J 조회 수:1043 추천: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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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있으면 그림자가 있듯이, 창조도시라는 그 화려한 문화의 장 속에도 정반대의 세계가 존재한다. 창조도시의 지하수도가 바로 그 곳이다. 도대체 어찌하여 그런 구조가 만들어 졌는지는 알 수 없지만 지하수도는 그 깊이가 무한대라고 알려져 있었으며 그 어둠의 깊이 역시 무한대였다. 창조도시에 존재하는 시커멓고 기분 나쁜 것들은 전부 그 어두움과 더러움 속에서 숨어 살고 있었다. 지하의 그렇게 깊지 않은 곳엔 흉악범, 사이코들이 판을 쳤고, 그 보다 깊은 곳엔 입에 담기도 역겨운 것들이 존재하고 있었다.


 


엘이 떨어진 곳이 바로 그 지하수도였다. 꽤나 깊숙이 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푹신한 바닥 덕택에 크게 다치지 않았다. 온몸이 쑤시긴 했지만 그게 전부였지 뼈를 다치거나 한 것 같진 않았다. 어디선가 새어 들어오는 희멀건 불빛이 전부라 어두워서 잘 보이진 않았지만 엘은 푹신한 꽃밭 따위에 있는 듯 했다. 손에 부들부들한 감촉이 느껴졌다.


엘은 자리를 털고 있어났다. 이상하게도 이 꽃밭은 향기는 나지 않고 썩은 내가 진동하고 있었다. 천천히 어둠에 눈이 익어 주변 풍경이 보인 엘은 악 소리를 질러 버렸다. 그가 서 있던 곳은 꽃밭이 아니라 커다랗고 털 같은 것들이 북실북실하게 달린 곰팡이 밭이었다.


 


엘은 역겨운 마음에 발작하며 마구 손을 털고 온몸을 털어대며 주변의 곰팡이를 마구 걷어찼다. 그러나 걷어 채인 곰팡이들은 새하얀 가루를 날리며 더욱 상황을 악화시킬 뿐이었다. 곰팡이가 입으로 들어올 듯 하자 숨을 참으며 마구 손을 내저어 그것들을 날려 보내었다.


곰팡이가 깔려 있어서 크게 다치진 않았겠지만 역시 기분 나쁜 건 기분 나쁜 것이다.


 


엘이 있던 장소는 곰팡이로 가득한 언덕이었다. 원통 모양의 방이었는데, 이끼 가득한 돌 벽이 방을 둘러싸고 있었다. 엘은 위를 쳐다보았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분명 저 위에서부터 떨어진 것이리라. 벽을 타고서 올라가기엔 너무 높은데다가 미끌미끌해 보여 무리일 듯싶었다. 심한 냄새로 보아선 하수구 안에 있는 것은 분명했다. 하수구라면 통로가 이어져 있어 분명 시내 거리위로 통하는 통로도 있을 것이다.


 


주변을 둘러보던 엘은 곰팡이 언덕의 정상에 무언가 거대한 것이 놓여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디선가 들어오는 빛 줄기가 한데 모여 그곳을 가장 밝게 비추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눈에 잘 띄지 않았던 것은 그것이 그냥 돌덩이처럼 이끼에 뒤덮여 칙칙한 색으로 되어 있었기 때문이리라. 그것은 커다란 돌 의자였다. 의자라기 보단, 사실 왕좌와도 같은 모양에 가까웠다. 그 위엔 왕 대신 새카만 이끼 덩어리가 올려져 있었는데, 언덕 주변을 돌고 있는 오물의 강보다도 냄새가 지독한 것이, 죽은 지 오래된 시체 같았다.


 


엘이 그 지독한 냄새에도 불구하고 왕좌 가까이로 간 이유는, 그 이끼 더미 안에서 뭔가가 반짝이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이런 지하수도 아래에 왕좌가 있다는 것도 이상하고, 어쩌면 위로 빠르게 올라갈 수 있는 장치일 수도 있었다.


 


엘은 손으로 코를 쥐어 잡고선 다가갔다. 확실히 축 처진 이끼더미 속에서 뭔가가 빛나고 있었다. 도저히 내키진 않았지만 일단 이끼를 흩어내야만 했다. 엘은 눈을 질끈 감고, 시커멓고 끈적끈적해 보이는 이끼로 손을 뻗었다.


 


정크 로드!


누군가가 저 멀리서 외치는 소리에 놀란 엘은 서둘러 피하려다 그만 언덕 아랫배기까지 굴러 떨어져 버렸다. 굴러 넘어지며 입에 곰팡이가 조금 들어갔지만 기침을 할 수도 없었다. 그저 소리 죽여 헛구역질을 할 수 밖에.


 


오수가 흘러 들어오던 큰 통로에서 뚱뚱한 대머리 남성이 달려들어왔다. 지저분한 코트에 얼굴이 꾀죄죄한 남자는, 상의대신 내복 비슷한 것을 입고 있었는데, 그나마 그도 닳고 구정물에 얼룩져서 매우 보기 좋지 않은 모습이었다. 하의는 그 과거의 존재가 고무줄 바지였다는 것을 증명하듯 허리 둘레가 터져 있었다. 고무줄이 없었어도 그의 둥글둥글한 배 덕분에 흘러 내리지 않는 듯 했다. 그는 손가방을 한 개 들고 있었다.


 


정크 로드!


그가 또 외쳤다. 그는 허겁지겁 곰팡이 언덕 위의 왕좌로 달려가고 있었다. 혹시 그 반짝이던 것은 저 남자가 숨겨놓은 노획물 따위였을까. 실망 반 기대 반으로 엘은 엎드린 채 그를 살폈다.


 


일어나세요!


그가 외치며 이끼 덩어리를 붙잡고 흔들었다. 엘은 문득 그가 그저 정신이 나간 사람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시끄럽게…….


순간 엘은 자신의 귀를 의심하였는데, 갑자기 이끼가 낮고 소름 끼치는 소리로 중얼거리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 이끼가 길쭉하게 솟아나오며 뚱보 남성을 저 아래까지 걷어 차 버렸다. 구정물에 빠진 남자가 호들갑을 떨며 기어 나오는 동안, 이끼는 천천히 왕좌에서 일어섰다. 거대한 이끼였다.


 


정크 로드! 정크 로드!


뚱뚱보가 흠뻑 젖어 허겁지겁 달려가 이끼 앞에 무릎을 꿇었다.


 


이렇게 오랫동안 주무시고 있으면 어떡합니까!


으음…….


이끼가 다시 중얼거렸다.


 


도대체 얼마 동안 주무시고 있었습니까!


글쎄…….


이끼가 을 움직여 자신을 한번 둘러 보았다.


 


이끼가 이렇게나 쌓인걸 보면 몇 주일은 잔 모양이군.


그가 젖은 짐승처럼 마구 몸을 흔들며 오물들을 털어내었다. 더러운 것들이 뚱보 남자에게 튀기자 그는 히익, 하며 고개를 숙였다.


오물들이 벗겨진 이끼덩어리는 키가 커다란 노인이었다. 확실히 노인인지는 가까이서 확인해야만 알겠지만 마구 뒤엉킨 허연 머리카락과 수염, 구부정한 자세가 마치 늙은이 같아 보였다. 얼마 전 엘이 이끼더미 속에서 보았던 반짝이는 그것은 정크 로드의 이마에 박혀있던 작은 은빛 물체였다.


 


개운하군.


그가 말하였다.


그때까지도 엎드려 있던 남자가 헐레벌레 가지고 있던 손가방을 열었다. 정크 로드가 양팔을 벌리고 서 있는 동안 뚱보는 가방에서 갑옷, 망토 따위를 꺼내어 노인에게 입혀주기 시작했다. 마치 시종이 주인의 옷을 입혀 주듯. 좀 전의 꾀죄죄했던 차림과는 다르게 검정색 돌로 치장된 갑옷과 망토를 갖추어 입자 꽤나 근사한 모습이 되었다. 뚱보는 마지막으로 가방에서 갑옷과 어울리는 색의 관을 꺼내 정크 로드의 머리에 씌워주었다. 물론 키가 큰 노인의 머리에 관을 씌워주기 위해선 왕좌위로 올라서 발돋움을 해야만 했다.


 


그래, 무슨 일로 내 잠을 깨운 것이냐?


치장을 마친 정크 로드가 물었다.


 


, 그게 쓰레기들이 쓰레기의 제왕인 당신에게 불만을 토로하고 있습니다.


뭣이라.


그러니까…….


별로 말 하고 싶지 않은 듯, 뚱뚱한 남자는 말을 흘렸다.


 


말해 봐.


그러니까……. 정크 로드 보고 평생 잠만 자는 무능력한 늙은 퇴물이라고 했습니다.


뭣이라!


다시 한번, 홧김에 걷어 채인 뚱보가 저 아래로 굴러 떨어졌다.


 


이 자식들……! 당장 녀석들을 불러와라!


그럴 필요 없습니다.


통로에서 한 무리의 남자들이 나타났다. 죄다 뚱뚱한 남자처럼 쓰레기 같은 옷들로 꿰차고 있어, 사람인지 쓰레기인지 알아 볼 수가 없었다. 대충 서른 명은 될까나, 여기저기서 주은 듯한 방어구와 무기들로 무장하고 있는 그들은 언덕 위의 정크 로드와 허겁지겁 달려 올라가 그의 다리 뒤에 숨는 뚱보 남자를 노려보고 있었다.


 


우린 당신을 더 이상 왕으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무리의 맨 앞에 서 있던 홀쭉이 남자가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