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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도시 기록보관소

dest21c 다락위의소피아

2007.07.18 08:21

Evangelista 조회 수:2762 추천: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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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무에선 유를 만들어낼 수 없다




서현이 무언가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을 무렵, 시현은 라피스가 어디에도 보이지 않음에 놀랐다. 그리고 시간이 흐른 상태에서, 그들은 그녀와 만나지 못한 채로 4년이나 지났음을 알고 불안에 젖었다. 그와는 별개로 시현은 갑자기 사라진 토키와가 어디로 갔을까를 궁금해 했으나 곧 생각하지 않기로 하고 잊어버렸다.




“내후년에 정말로 지구가 멸망할까?”


“설마.”


시현이 형의 질문에 대답했다.


“앙골모와는 엥겔스라고 말하는 놈이 있던데.”


“누구?”


동생의 말에 서현이 물었다.


“옆반에, 그. 있잖아. 이름도 기억 안나네.”


“아, 그거?”


“응. 그거.”


“그 분 참 잘났지.”


자취방 한구석, 벽에 등을 대고 앉은 둘의 머리 위로 짙은 담배연기가 피어올랐다.


“웬만하면 담배 끊어라, 형.”


“지가 먼저 피우기 시작해놓고.”


“그러니까 형은 끊을 수 있을 거야.”


“넌 한 십년 피웠니?”


“내가 궁금한 건 말이야. 지금까지 말은 안 했는데…….”


서현이 시현을 힐끔 쳐다보았다.


“왜 라피스는 지민이와 함께 사라졌을까?”


“알 수 없지.”


“시끄러웠어, 그때.”


“여중생 실종이니까.”


“대체 언제 4년이 흐른 걸까?”


“우리가 의식하는 사이에 흘렀지.”


“수능은 어떻게 할까.”


“고민중이야.”


“중학교 땐 핸드폰도 있고, 참 우리 집 부잔줄 알았는데 말야.”


“부자 맞아. 아들들한테 자취하라고 24평짜리 아파트를 주는 집이 어디 있냐. 그것도 1층을.”


“생각해 보면 정말 안 터졌지. 당연하다고 생각했는데.”


“너무 잘 터져, 요즘은.”




“라피스가 없어지고 나서 말이야. 난 확실히, 그걸 깨달았어.”


“뭘?”


“사람이 사람이 아닌 ‘생물’도 그렇게 좋아하게 될 수가 있구나. 간지러운 얘기지만, 사랑하게 될 수가 있구나. 그게 쭉빵한 라피스든 어린애같은 라피스든.”


“어떤 여자라도 커버할 수 있다는 거로군.”


그리고 시현은 키득대며 웃었다. 서현도 웃었다.


“사람이 아닌 생물이라고 해서 옆집 개 같은 거 건드리면 신문에 난다.”


“내가 너냐.”




1997년 8월 2일, 시현이 솔로인 형을 놀리며 여자친구와 놀러 나간 토요일, 서현은 멍하니 창을 열고 밖을 내다보며 담배를 피우다가 순간 뭔가에 놀라 급히 슬리퍼를 신고 밖으로 뛰어 나갔다. 그리고 잠시 후 환각인가 고개를 저으며 돌아왔다.


약 10초 정도 후, 그는 현관에 웃으며 서 있는 소녀를 끌어안았다. 나오지 않는 목소리를 최대한 끌어내며 어디 갔었냐고 말하면서. 옅은 금발의 소녀는 붉은 빛이 도는 눈을 감고 맨 처음 만났을 때보다 머리 하나가 더 커진 소년을 마주 안았다.


그리고 그대로 둘은 움직이지 않았다.


4년 전, 사라지기 직전과 전혀 다를 게 없는 소녀가 서현을 살며시 밀어냈다.


“오랜만이네.”


서현이 오른눈에서 눈물 한 방울을 흘려냈다.




“누구야?”


“……우리 형 애인.”


질린 어조리 시현이 대답했다.


“애인 없다며?”


“옛날 애인.”


“언제 옛날?”


“4년 전.”


“쟤 중학생 같은데?”


“형 취향이야. 자, 내일 보자.”


미심쩍은 얼굴로 문 밖으로 나서는 여대생을 배웅하는 시현에게 완전히 풀어진 웃음을 지은 채 밥그릇에 밥을 담으며 서현은 말했다.


“놀다 가라고 하지, 왜?”


철문이 큰 소리를 내며 닫혔다.


“웃기고 자빠졌네! 이거 뭐야? 언제 들어온 거야?”


그러자 라피스가 해맑은 웃음을 지으며 대답한다.


“너랑 저 언니가 어느 여관에 들어갈까 고민하기 한 4분쯤 전에.”


서현이 동생을 돌아보며 한숨을 쉰다.


“아버지 어머니 괴롭게 하지 마라.”


“좀 닥쳐줘. 얼굴에 화색이 돈다? 빤쓰만 입고 머리 긁으면서 밥 짓는 인간이 앞치마는 다 뭐야? 신혼살림 차려? 내가 나가 줄까?”


“너무 과민 반응이다. 진정해라.”


밥그릇을 내밀며 서현이 말했다. 표정은 여전히 풀어진 채였다. 시현의 얼굴이 시뻘개졌다. 극도의 긴장감에 뭐라고 외치려 하는 순간, 그 순간 라피스가 재빨리 일어서 그의 명치께를 손바닥으로 가볍게 쳤다. 그는 맥이 풀린 듯, 쓰러질 것처럼 비틀거리다 간신히 균형을 잡았다.


“토키와는 죽였어.”


“뭐?”


“내가 죽여 버렸어. 둘 다 그 자식이 쓴 보고서 읽었지? 무슨 생각 하고 있었는지 알아?”


그러더니 왼손 검지손가락으로 시현을 가리키면서,


“너도 죽이고,”


혀를 차는 그를 두고 오른손 검지손가락으로는 반대편의 서현을 가리켜


“너도 죽이려고 했어.”


“보고서엔 날 죽인다고는…….”


“원래부터 저희 대장하고는 의견이 안 맞는 놈이었어. 말은 그렇게 하고 사고로 위장해서 죽일 생각이었겠지. 증거 없애는 건 특기니까.”


서현도 심각한 표정이 되었다.


“4년 동안 줄창 토키와만 죽이고 있었던 건 아니겠지?”


“비밀. 어쨌든 토키와 일은 이제 걱정 안 해도 돼.”


“비밀 같은 거 만들지 마.”


앞치마 두른 고등학생 남자가 오른손바닥으로 식탁을 한 번 탁 쳤다. 그리고 쓸쓸한 웃음을 지었다. 시현은 아- 하고는 어깨를 으쓱하며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자리를 피해준 셈이다.


“너는 비밀로 하고 싶을지 모르겠지만 난 알고 싶어. 그동안은, 4년 동안은 그저 막연한 생각이라고만 생각하고 포기하고 있었지. 하지만 오늘 다시 만나니까 확신이 들어.”


그는 일어서서 라피스의 어깨를 잡고 억지로 식탁 의자에 앉혔다. 벗어나려고 했지만 어째서인지 뿌리칠 수가 없었다. 그녀의 힘으로는 당연히 빠져나올 수 있어야 하는데.


“나는…….”


심호흡을 하려 헀지만 오히려 숨이 가빠왔다. 말을 잇기 힘들었다. 두통이 찾아오는 것 같았으나 결국, 간신히 그는 말했다.


“네가 좋아.”


라피스는 대답하지 않았다.


“사랑…… 한다고.”


조금 자신 없는 어투로, 시선을 피하며 서현은 말했다. 그러나 대답은 냉정했다. 라피스는 상대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잘라 말했다.


“난 널 사랑하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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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시작입니다 ㅡ,.ㅡ


아 쓰기 귀찮다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