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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도시 기록보관소

dest21c 다락위의소피아

2007.07.14 03:58

Evangelista 조회 수:1578 추천: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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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이야기를 이어주는 여섯 번째 화




세상의 어른들이란 멍청하지 않으면 나쁜 놈들이고 나쁘지 않으면 멍청한 놈들이다. 서현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토키와 시게루는 나쁜 놈인데 상당히 똑똑한 놈일 게다. 그 초현실적으로 등장하고 사라지는 건 제쳐 두고라도 이 나라 사회에서 보기 힘든 권총 같은 걸 태연히 쏘고 다니는 것이다.


피로한 의식 속에서 침대 밑에 앉아 책을 읽고 있는 라피스가 보인 것 같았다. 눈의 착각이 아니라면 확실히 작아졌다. 하지만 곧 다시 잠들었다. 피가 부족하다는 느낌이 이런 것이라는 걸 알았다.


몸이 붕 뜨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라피스가 작아졌다. 머리색이 바뀐 이후로 또 하나 특징적인 ‘변신’이다.


서현은 더 이상 의문을 갖지 않기로 했다. 오히려 받아들였다. 상식에서는 벗어나지만 일어나선 안 될 일도 아니니까.


미리 손을 써 둔 듯 부모님은 라피스의 변화에 대해서 아무 것도 느끼지 못했다. 사촌 누나였던 그녀가 이제는 사촌 동생으로 탈바꿈했다. 요전에 사 두었던 옷들이 쓸모없게 돼 버려서 서현의 헐렁한 티셔츠를 걸치고 맨 처음 들렀던 옷가게에 가 귀여운 옷을 몇 벌 샀다.


돌아오는 길에 토키와를 만났다. 오늘은 정장이 아닌 추리닝을 입은 채였다. 그는 멈춰 서서 인사하더니 자기 가슴에도 미치지 못하는 라피스에게 다가와 머리를 톡톡 치며 웃었다. 그녀는 굉장히 화가 난 것 같았지만 길거리에서 싸움이 붙지는 않았다. 그리고 기분 나쁜 청년은 한 마디를 남기고 가 버렸다.


“어린애가 그렇게 염색하고 다니면 어르신들 보기 안 좋다.”




“네가 여기 있는 것에 대해서.”


물음표를 던질 생각은 없다고 서현이 말했다. 창가에 앉아 담배를 문 채 라피스는 콧방귀를 뀌었다.


“하나만 가르쳐 줘. 넌 대체 뭐야?”


“천사.”


심드렁한 어조의 대답이 돌아왔다.


“사실대로 말해.”


“나도 몰라. 말하자면 너무 판타지적이라서 스스로 언급하기에도 민망해.”


“그래도 듣고 싶어.”


“……천사.”


그리고 그녀는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방문이 열렸다. 시현이 재빨리 들어와 문을 닫았다. 그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지민의 문제 때문인지 서현 입장에서는 동생에게 뭐라 할 말이 없었다. 떳떳할 순 없지만 부끄러울 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괜시리 미안한 생각이 드는 것이었다.


시현이 라피스에게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 그녀는 인상을 찌푸리더니 바지 주머니에서 담뱃갑을 꺼내 내밀었다. 동생은 한 개비 뽑아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


“엄마가 보면 거품을 무실 거다.”


“토키와한테서 소포가 왔어.”


“탄저균이라도 들었나?”


창 밖으로 담배꽁초를 튕겨 버리며 라피스가 킥킥댔다.


“문서야. 작성자는 토키와 시게루. 수신자는 시뇨르 데 비바체, 시뇨르 레코. 보고서 같은데 이탈리아어로 쓰여 있어서 본문은 하나도 모르겠어.”


“거짓말. 토키와란 인간이 그런 의미 없는 짓을 할 이유가 없어. 너, 그거 읽었지?”


시현이 입을 다물었다.


“야, 민시현. 담배 꺼.”


그러나 재떨이에 재를 한 번 털고는 다시 입에 물었다.


“끄고 나랑 얘기 좀 해.”


“형이랑 할 얘기 없습니다.”


그렇게 너스레를 떨더니 창틀에 앉은 라피스 아래에 가 벽에 등을 대고 미끄러지듯 쪼그려 앉아 버렸다. 허공에 모인 담배 연기 때문에 숨이 막혔다. 서현이 벌떡 일어나 동생 앞에 섰다. 그리고 그 정강이를 걷어찼다. 시현이 담배를 떨어트리고 웅크린다.


“장판이 타잖아.”


라피스가 생긋 웃으며 흘린 담배를 주워들고 재떨이에 비벼 껐다.


“그럼 환담들 나누세요.”


그녀는 그대로 방문을 열고 나갔다. 서현은 그녀의 옆모습이 어쩐지 슬퍼 보인다고 생각했다. 아니, 분명히 슬픈 표정이었다.


“형이 변하긴 변했어. 절대 주먹질은 안 했는데.”


“발로 찬 거지.”


시현이 조금 절뚝거리며 일어나 침대에 앉았다.


“저 여자 뭐라고 생각해?”


“알 게 뭐야. 죽어도 안 가르쳐주는데. 너야말로 토키와란 인간은 뭐라고 생각하냐?”


“뭔가 꾸미고 있는 인간.”


서현은 한숨을 내쉬었다. 머리가 지끈대며 아파왔다. 라피스나 동생 놈이나 하는 소릴 들어보면 멀쩡한 대답이 돌아오는 꼴을 못 봤다.


“정확히, 뭔가 꾸미고 있는 인간 밑에서 뭔가 꾸미고 있는 인간.”


“구체적이라서 좋군. 모르면 모른다고 말해.”


“사실이야.”


습한 날씨에, 그러나 날씨 탓으로는 보이지 않는 땀이 시현의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알고 싶으면 그 보고서, 읽어 봐.”


그는 들고 온 문서 뭉치를 제 형의 옆에 내려놓고 일어났다.


문을 열고 나가려다 시현은 말했다.


“나, 내가 아니게 될 지도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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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화는 오늘안에 올라갑니다. 연결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