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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도시 기록보관소

mirpia 내가 떠난 뒤의 넌.

2006.12.20 21:24

솔비 조회 수:2715 추천: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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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강변에 앉아있자니 등 뒤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나는 무릎을 끌어안으며 작게 말했다.

“ 고마워. ”

“ 뭐가? ”

무뚝뚝한 그 목소리에 나는 작게 웃었다.

“ 옆에 있어줘서. 너는 의무였다고 해도, 누군가가 옆에 있어서 다행이야. 아마 혼자였다면 나는 견딜 수 없었겠지. ”

“ ...... ”

“ 있잖아, 가는 길이 급하지 않다면 잠시 얘기 좀 하지 않을래? ”

잠시 후 그는 유현이가 앉았던 곳의 반대쪽 옆에 다리를 펴고 앉았다. 눈발은 꽤나 굵어졌지만, 다행히도 우리는 추위같은 것을 느끼지 않았기에 그리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 내 이름은 우지연인데. ”

그가 자리에 앉고 잠시의 시간이 흐른 뒤 나는 계속 앞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나를 돌아보는 그의 시선이 느껴졌다. 나는 조그마한 돌멩이를 집어 강을 향해 던지며 말을 이었다.

“ 네 이름을 듣고 싶어서 이러는 거잖아. 눈치 없긴. 계속 저기, 있잖아, 하는 식으로 부를 수도 없잖아. ”

참방.

내가 던진 돌이 설 얼은 빙판을 뚫고 물결을 일으켰다. 내가 또다시 하나의 던질 즈음 내 물음에 대한 그의 대꾸가 돌아왔다.

“ 그냥 사자라고 불러. ”

“ 그거 저승사자의 줄임말이야? ”

“ 응. ”

“ 이름은, 대답해 줄수 없는 부분인거야? ”

“ 아니 그저.. ”

그도 돌멩이를 하나 집어 들고 강을 향해 던졌다.

“ 잊어 버렸어. ”

“ 그래.. 그렇구나. 그럼 나도 잊어버리게 될까? 내 이름. ”

“ 글쎄... ”

나는 세 번째 돌멩이를 집어던지려다, 그만두고 그 돌멩이를 꼭 쥐었다.

“ 어렸을 때, 유현이랑 나는 여기서 매일같이 놀았지. 여러 가질 많이 했었는데.. 늘 내가 그 애를 끌고 다니는 식이었지만 말야. 사고를 자주치고, 그때마다 혼나고, 유현이는 울고, 하지만 그애는 울면서도 항상 나와함께 벌을 받아주곤 했었어. ”

“ ...... ”

“ 정말 재미있었는데. 참 좋았어. 고등학교에 들어와서 다른 학교에 가게 되고, 만나는 날도 줄어들었지만 나는 언제나 그때를 잊지 않고 있는걸. ”

“ ...... ”

“ 하하. 왜 자꾸 그애 얘기만 하게 되지? 그래도 너무 걱정돼. 계속... 남매처럼 지내왔으니까. 고등학생이 된 지금까지도 그 애는 울보고, 겁쟁이였으니까. 바보같이... ”

나는 손등으로 눈가를 훔쳐야 했다. 입술을 꽉 깨물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늘은 무척 흐렸다.

“ 사자님, 역시 죽는다는 건 슬프구나. 자꾸, 눈물이, 나네. 별로 나 정말 잘 안 우는데, 꼭 유현이가 된 것 같아... ”

내옆에 줄 곳 말없이 앉아있던 사자님이 몸을 일으켰다. 내가 의아한 눈으로 그를 올려다보자, 그는 손을 뻗어 내 손을 잡았다.

“ 그럼 보러 가지. ”

“ 어...? 뭘? ”

“ 걱정이 된다면, 유현이라는 애가 지금 어떻게 지내는지 보러가자. ”

나는 두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 그래도 되? ”

“ 미련이 남은 채 저쪽으로 가 보았자 좋을 게 없으니까. 잠시 정도라면야 나쁘지 않지. 왜, 혹시 싫은 거냐? ”

나는 몸을 벌떡 일으켜 사자님의 손을 꽉 맞잡았다.

“ 아니! 갈래! 보러가고 싶어! ”

사자님은 입술을 움직여 미소를 지었다. 나는 멍하니 그의 얼굴을 바라보며 그제야 하나의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사자님의 얼굴은 무척이나 유현이와 비슷했다. 아까, 그의 얼굴을 보았던 순간 유현이를 떠올렸을 만큼.

“ 사자님, 유현이랑 많이 닮은 것 같아. ”

나는 나도 모르게 이 말을 내뱉곤 당황해 한손으로 입을 막았다. 얼굴이 화끈거렸다.

“ 아, 미..미안. 이런 말 실례지? ”

사자님은 유현이를 닮은 검고 깊은 눈으로 나를 바라보다 앞으로 시선을 돌리며 낮게 말했다.

“ 네가 그렇게 느낀다면, 그게 맞을거다. 나는 영을 인도하는 존재니까. 내 외모는 생전 네가 가장 강하게 생각하고 있던 사람의 것을 닮을 가능성이 제일 높다. ”

나는 의외의 사실에 놀라 두 눈을 깜빡였다. 생전 가장 강하게 생각하고 있던 사람이라...

“ ....... ”

어째서인지 복잡한 기분이 들었다.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그 기분때문인지 가슴이 무척 아팠다. 사자님은 그런 나를 돌아보지 않았다. 대신 내 차가운 손을 잡아끌며 앞으로 걸어갔다. 그렇게 몇 걸음이나 옮겼을까. 분명 그리 걷지 않은 것 같았는데 나와 사자님은 한낮의 학교에 도착해 있었다. 그것도 학교안의 복도에.

“ 어..어엇. 여긴 분명 유현이가 진학한 고등학교... ”

내가 어리둥절해 주위를 둘러보자 사자님은 내 어깨를 톡톡 치며 바로 옆의 교실을 가리켰다. 교실의 문패엔 1-2라는 숫자가 적혀 있었다. 유현이가 공부하는 교실이었다.

때마침 쉬는 시간을 알리는 종이 울려퍼지며 교실에서 학생들이 와르르 뛰쳐나왔다. 날 알아보지 못하는 학생들 사이에서, 나는 히죽 웃으며 교실 문 안으로 고개를 빼꼼 밀어 넣었다.

“ 유현이는 교실 구석탱이에 앉아서 멍하니 하늘이나 보고 있을게 분명해. 응? 근데 유현이 자리가 어디지? 사자님, 사자님도 찾아... 어? ”

사자님을 재촉하려 뒤돌아보는 사이 한 사람이 나를 스쳐 지나갔다. 나는 처음엔 그를 인식하지 못했지만, 조잘거리는 목소리를 듣고 나서야 나를 스쳐지나간 그 사람이 유현이임을 알수 있었다.

“ 저기 네 친구가 가는군. ”

사자님의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나는 그 목소리에 대답조차 하지 못하고 걸어가는 유현이의 뒷모습을 바라만 보았다. 그는 친구들 사이에 둘러싸여, 즐겁다는 듯, 웃고, 있었다.

웃고 있었다.

“ 따라가 볼래? ”

유현이가 모퉁이 너머로 사라져 갈 때까지 멍하니 서있던 나는 사자님의 말에 간신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이후 사자님과 함께 지켜본 유현이의 하루는, 지극히 평범했고, 심지어는 행복해 보이기까지 했다.

친구와 웃었다. 점심을 맛있게 먹었다. 체육시간에는 농구를 했다. 수업시간에 꾸벅꾸벅 졸다가 선생님에게 혼나기도 했다. 방과후엔 친구와 어울려 거리를 돌아다녔다. 집에 와서 가족들과 즐겁게 이야기를 했다. 그 모든것은, 행복해 보였다.

유현이가 늦은 밤 침대에서 잠이들때까지, 그의 하루일과를 모두 지켜본 나는 어째서인지 망연자실한 기분이 되에 그의 집 지붕에 앉아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 다행이다. 네 걱정과는 달리 잘 지내는 것 같아서. ”

멍하니 지붕에 앉아있는 나의 옆에서 사자님이 말했다. 나는 유현이를 닮은 그 얼굴을 한참이나 바라보다 입술을 깨물며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 분명 내가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잘 지내는 것 같지만... 그렇지만... 뭐지? 이상해. 저건 마치... ”

“ 네가 없어져서 더 행복한 것처럼 보인다? ”

내가 차마 입밖에 꺼내지 못한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대뜸 꺼내버린 사자님을 나는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노려보았다. 하지만 반론은 할 수 없었다. 그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으니까.

나는 양 무릎을 끌어안으며 고개를 푹 숙였다.

“ 왜지? 내가 뭘 잘못했던 걸까? 사실은 나같은거 지긋지긋 했던 걸까? 친구라고..도 생각하지 않았을지도. ”

“ ...... ”

“ 하하.. 뭐 됐어. 설령 그렇다 해도, 잘, 지내는 것, 같으니까. ”

나는 마른 눈가를 손바닥으로 두어 번 쓱쓱 비비고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곤 사자님께 손을 뻗으며 힘껏 미소를 지었다.

“ 고마워. 마지막으로 유현이를 볼 수 있게 해줘서. 이젠 맘편이 갈수 있을 것 같아. ”

하지만 사자님은 나의 손을 맞잡지 않고, 물끄러미 내 얼굴을 올려보기만 했다.

“ 정말 된 건가. ”

사자님의 그 한마디에 나는 순간 나도 모르게 얼굴을 딱딱하게 굳혔지만, 곧 다시 미소를 지었다.

“ 에- 뭐 보다만 드라마의 다음 내용이라던가, 미은이랑 지혜랑도 보고 싶고, 우리 반 교실도 보고 싶고, 여름에 바다에도 한 번 더 가보고 싶기도 하고... 그런 것들, 잔득 남아있지만, 모두 보려거든 한도 끝도 없잖아? 우리 집과 가족들은.. 헤헤, 미안하기도 하고, 보게 된다면 이젠 정말 못갈 것만 같으니깐 됐어. 괜찮아. 이젠... 정말로 갈수 있을 것 같아. ”

하지만 사자님은 그 검고 깊은 눈으로 나를 한참이나 더 바라보더니 작게 한숨을 내쉬며 자신도 일어섰다. 그리곤 내 손을 잡았다. 사자님의 손을 잡자 내 몸이 가벼워지며 붕 떠오르는 느낌이 들었다.

“ 참 신기해. 사자님의 손을 잡았을 뿐인데 어떻게 날수 있는 걸까? 아, 그런데 나 혼자서는 날수 없는 거야? ”

유현이네 집 위로 떠오른 나는 헤죽헤죽 웃으며 최대한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사자님은 그런 내 말에 나지막하고 딱딱한 목소리로 대꾸했다.

“ 미련은 중력과 같다. 살아생전의 너는 중력의 힘으로 대지를 걸었지만, 혼만이 남은 너는 미련의 힘으로 대지를 걸어. 널 대지에 묶어두는 미련이 사라진다면 너도 너 혼자 날수 있겠지. ”

나는 입을 다물었다. 미련... 어쩐지 복잡한 심정이었다. 하지만, 나더러 어쩌라는 거야? 어쩌라는 건데.

입술을 깨물고, 아래를 내려다보던 나는 문득 유현이네 방의 창문이 열려 있음을 발견했다. 바람에 커튼이 펄럭였다. 바보, 칠칠맞긴. 감기 걸릴 텐데...

“ 창문 닫아주지 그래? ”

사자님이 내 마음을 읽은냥 내게 말했다. 나는 순간 얼굴이 화끈 달아오르는 듯한 느낌에 사자님을 쳐다보지 않고 소리만 질렀다.

“ 아.. 안 그래도 닫아주려고 했어! ”

사자님의 손을 끌고 나는 유현이의 방 창문으로 날아갔다. 그리고 펄럭이는 커튼을 걷고 창문을 닫기 위해 손을 뻗는 순간, 나는 창문 안쪽에서 이쪽을 바라보는 한 쌍의 눈동자와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 힉! ”

“ 유현이야. 자기도 창문을 닫으려 했나 보군. ”

깜짝 놀라 창문에서 손을 땐 나는, 뒤에서 들려온 사자님의 목소리에 안심하며 가슴을 쓸어 내렸다. 뭐, 어차피 날 볼 수 없을 테니 괜찮겠지, 라고 생각하며.

하지만 잠시의 시간이 흐른 뒤까지도 유현이는 창문을 닫을 생각도 하지 않고 계속 멍하니 이쪽을 바라보기만 했다. 뭔가가 이상하다고 느낄 즈음, 창문너머 유현이에게서 믿기 힘든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 설마... 지연이니? 거기 지연이야? ”

“ 공유현! ”

나는 두 눈을 번쩍 뜨며 창틀에 발을 딛곤, 당장이라도 방안으로 뛰어 들어갈 기세로 외쳤다.

“ 내가 보이는 거야?! 그래? 나야. 나 우지연! 유현아! ”

“ 으... ”

“ 으? ”

“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악! 귀신이다아아아악!! ”

“ ...... ”

나는 순식간에 말문을 잃고 말았다. 유현이는 멍하니 서있는 나를 내버려 두고 귀신이 나타났다며 방방 뛰다가 침대에 발이 걸려 바닥으로 나뒹굴었다.

“ 기절했군. ”

내 뒤로 고개를 내민 사자님이 방안의 참상을 본뒤 이 짧은 한마디로 방안의 상황을 정리했다. 그리고 그 순간, 지금까지 나를 지탱하고 있던 인내심과 자제력, 그 외 기타 등등의 끈이 처참한 소리를 내며 끊어졌다.

“ 이 머저리가아악!! ”

나는 당장이라도 유현이를 찍어버릴 기세로 근처의 의자를 집어 들었다. 아마 사자님이 나를 억지로 지붕 위까지 끌고 올라오지 않았더라면 나는 그 의자뿐만 아니라 방안의 모든 물건을 유현이에게 집어 던졌을 것이다.

“ 너무해! 너무해, 너무해, 너무해, 너무해! 아무리 내가 귀신이라고 해도 13년지기 친구인데, 아무리 겁이 많다고 해도, 그래, 내가 아무리 말괄량이라고 해도, 사고를 많이 치고, 사납고, 전혀 여자답지 않고, 귀엽지도 않고... 그렇다고 해서... 날 잊을 수가 있어?! 어떻게, 어떻게 나한테 그래?! 으... 우우... 우아앙!! ”

나는 그만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살아생전 그 언제 느겼으랴 싶을 정도로 나의 가슴은 너무나도 아팠다. 한참이나 펑펑 울며 코트 손목을 눈물 콧물으로 축축히 적셨을 즈음 하늘이 밝아지며 동이 트기 시작했다. 나는 퉁퉁 부운 눈으로 하얗게 밝아오는 하늘을 바라보며 훌쩍거렸다.

“ 바보, 멍청이, 이젠 나도 몰라. 나도 너 따위 깨끗이 잊어버릴 거야. 절교야! 절교! ”

“ 유현이 밖으로 나왔는데. 새벽부터 어딜 가는 거지? ”

하늘을 올려다보며 바락바락 소리를 지르고 있던 나는, 내 옆에서 들려온 느긋한 목소리에 사자님을 노려보며 더 크게 소리를 질렀다.

“ 내 말 못 들었어?! 절교라고 했잖아! 저자식이 새벽부터 어디를 가든 무슨 상관이야? ”

“ 그래? 정말? ”

“ 그..그래! 그러니깐 빨리 가버리자. 한시라도 여기 더 머물기 실어! ”

나는 사자님의 손을 확 움켜잡았다. 사자님은 나를 바라보며 미소 비슷한 것을 짓더니 허공으로 날아올라 유현이를 뒤를 따라 날기 시작했다. 나는 두 눈을 휘둥그렇게 뜨며 사자님을 바라보았다.

“ 왜 저자식을 따라 가는거야! ”

“ 네가 싫다면 당장이라도 돌아갈 수 있어. 나는 일개 사신일 뿐 너의 의지를 어기는 일은 할 수 없으니까.

나는 그의 말에 아무런 대답을 할 수 없었다. 유현이가 어떤 행동을 했던, 설령 그가 정말로 날 잊었다 하더라도, 내가 사라져서 행복하다 해도, 그 녀석과 내가 친구라는 사실에 변함은 없었으니까.

정말로 그 녀석을 미워할 순 없었으니까.

“ ...마지막이야. 마지막으로 유현이가 어딜 가는지만 보고... 돌아가자. ”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저공비행을 하여 유현이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다행히 지금은 나의 모습을 보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래, 내 모습을 본다면 겁이 많은 넌 또 달아나버리고 말겠지..

나는 다시 높게 날아올랐다. 거리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 주먹만큼 조그마하게 보이는 유현이는 분명 우리의 비밀 장소로 향하고 있었다. 나는 어제 새벽, 강변에 앉아 멍하니 강을 바라보고 있던 유현이의 모습을 떠올렸다. 혹시, 내가 그러했듯 유현이도 나와의 약속을 지키고 있었던 걸까.

지금까지 주욱...

왠지 또 눈물이 날 것 같아 손으로 눈가를 비비려던 나는, 문득 유현이가 걷고 있는 길의 모퉁이 너머에서 무언가가 빠른 속도로 달려오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것은 소형트럭이었는데, 달리는 모양이 비틀비틀한게 어딘지 이상했다.

“ 저건 설마.. 사자님! ”

사자님은 내 외침에 고개를 끄덕이며 빠른 속도로 나를 트럭 근처까지 데리고 가 주었다. 트럭에 타고 있는 중년의 남자는, 이럴 수가. 반쯤 잠이 들어 핸들을 잡은 상태로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 아..안 돼. ”

나는 급히 다시 높은 곳으로 날아올랐다. 빠르게 달리고 있는 트럭과 유현이가 점차 가까워지고 있었다. 설상가상으로 유현이 또한 깊은 생각에 잠겨있는 듯 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또다시 내가 죽었던 상황이 떠올랐다. 그 끔찍한 경험을 유현이에게까지 시킬순 없었다. 그래. 없었다. 없었다. 결단코 그건 내가 허락 못해!

“ 유현아! ”

유현이에게 가려는 나를 사자님이 붙잡았다. 하지만 나는 그의 손을 뿌리쳐 유현이에게 돌진했다. 내가 혼자서 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을 텐데, 나는 그 순간 그조차 생각하지 못할 정도로 급박했다.

“ 공유현! ”

내 온 힘을 다한 고함소리를 들은 것일까. 유현이는 멈칫 발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나는 지금은 유현이를 만지지 못한다는 사실조차 망각한 채, 그의 손을 꽉 잡고 내 쪽으로 끌어 당겼다.

제발, 제발 부탁합니다. 유현이를 살려주세요. 나처럼 죽게 하지 말아주세요. 살아서, 내 대신이라도 좋으니까, 살아서 재미있는 일 즐거운 일, 더 많이 겪게 해주세요. 날 잊어버려도 되니까. 내가 없어졌기 때문이어도 좋으니까! 제발! 제발!!

부우우웅-

내가 정신을 차렸을 때, 나는 유현이의 손을 꽈 잡은 채 울고 있었으며, 간발의 차이로 트럭은 유현이의 뒤를 스쳐지나갔다. 그리고 내 눈 앞에서 나에게 손이 잡힌 채 자리에 주저앉은 유현이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날 쳐다보고 있었다.    

“ 지연...아? ”

“ 이 바보!! ”

유현이의 입에서 내 이름이 나오기가 무섭게 나는 소리를 빽 지르며 주먹으로 그의 어깨며 가슴을 마구 때렸다. 하지만 나의 주먹은 힘없이 그의 몸을 통과해 허공을 칠 뿐이었다. 그래도 나는 계속 울며 그를 때리고 욕했다.

“ 바보! 멍청이! 꼴불견... 세상 최고의 꼴불견 바보야! ”

유현이는 당황한 듯 내 하는 냥을 바라보다 허둥지둥 손을 뻗어 내 뺨을 만지려 했다. 하지만 그의 손도 날 만지지 못하고 허공을 훑을 뿐이었다.

“ 울지마. 왜... 우는 거야. ”

유현이에게서 떨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나는 내 눈물을 닦느라 정신이 없어 그의 얼굴을 보지도 못한 채 계속 소리를 질렀다.

“ 너는... 널 만나고 싶어서 왔는데, 넌 나를 무서워나 하고 기절까지 하고.. 우..으흑.. 내가... 내가 싫어진 거야? 사실은 내가 싫었던 거야? 나랑 놀았던게, 조금도 재미없었어? 내가 없는 편이 더 좋았어? 그래서 그렇게 웃으면서 아무렇지도 않게 지내는 거야? 그런 거야? 그런...거야? ”

“ 그럴 리가 없잖아! ”

유현이가 내게 소리를 지르는 것은 처음이었기 때문에, 나는 하던 말을 멈추고 유현이를 멍하니 쳐다보았다. 유현이의 뺨엔 눈물방울들이 흐르고 있었다.

“ 나는 계속 너한테 바보 같은 꼴만 보이고, 남잔데도 널 한번도 제대로 지켜주지 못하고, 질질 짜다가 널 불러내서 죽게 만들고.. 그래서, 적어도, 적어도 네가 떠나버린 다음부터라도 다시는 울지 말자고, 강해지자고, 울고 싶은것도 참고 참았는데, 최고로 멋지게 보이고 싶었는데... 그런데... 왜 나타난 거야! 또 울어버렸잖아. 다시는 이런 모습, 네게, 보이고, 싶지.. 않았는데... ”

우리들은 그렇게 골목길에 주저앉아 정말 펑펑 울었다.

“ 우..우흑. 바보오... 흐윽... 난 단 한번도 그런 널 한심하다고 생각 한적..없는데... 나야 말로 미안해에. 상냥하게 대해주지도 못하고, 매일 사고만치고, 싫다는 널 끌어들이고, 입도 험하고... ”

“ 흐윽... 괜찮아. 그런 점을 모두 통틀어서 좋아 했으니까. 전부- 좋아했으니까. ”

그 말을 듣는 순간 내 마음속에 엉켜있던 응어리가 모두 풀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 친한 친구가 귀신으로 나와도 기절할 만큼 겁이 많고 눈물도 많은 여린 너. 하지만 나도, 그런 모습까지 모두 포함해 너를 좋아했었다. 그것만큼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 너의 단점을 많이 알고 있는 대신, 너의 장점은 더 많이, 아주 많이 알고 있었으니까..

그래, 너도 나와 같았었구나.

지금까지 바닥을 딛고 있던 내 두 다리가 허공으로 떠올랐다. 지금까지 내 몸을 붙잡고 있던 무계가 모두 사라진 것처럼 내 몸이 가벼워 졌다.

“ 지... 지연아! ”

울고 있던 유현이의 얼굴이, 그 하얗고 작은 얼굴이 눈물로 흐려진 내 시야 너머로 보였다. 나는 최대한 열심히, 내가 지을 수 있는 가장 멋진 미소를 지어보이며 손을 흔들었다.

“ 이젠 정말 가야 될 시간인 것 같아. 유현아, 그런데 이젠 억지로 울음을 참지 않아도 돼. 울보라도, 겁쟁이라도, 너는 충분히 멋지니까. 걱정이 조금 되긴 하지만, 그래도 넌 분명 혼자서도 잘 해낼걸 믿으니까. 그리고 나도... ”

눈물에 가려져 더 이상 유현이의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 나도 너의 그런 모든 걸 포함해서, 정말 널 좋아했어. ”




그래. 내가 떠난 뒤의 넌.

혼자서도 잘 지낼 거야.

하지만 가끔은 날 생각해 줄래?

나는 욕심이 많아서, 네가 행복해지는 것만큼

날 추억해 주었으면 좋겠어.





혼자서 날아오른 하늘.

그 하늘은

너무나도 넓고 또 아름다웠다.

나는 물속을 유영하는 인어처럼 하늘을 헤엄쳐

유현이와 나의 비밀장소인



강변으로 향했다.

강변에는 유현이가 아닌 사자님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사뿐히 사자님의 앞에 내려앉았다.

“ 고마워요. 이젠 정말로, 갈수 있을 것 같아. ”

더 이상 유현이의 얼굴을 하지 않은 사자님은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내게 손을 내밀어 주었다.

“ 별로. 무거운 것 보단 가벼운걸 데려가는게 편했을 뿐이다. ”

나는 웃으며 사자님의 손을

맞잡았다.

2006년. 12월. 12일.

쌓인 눈이 새하얗게 빛나 아름다웠던 날 밤.

나는

세상과 작별했다.



- 내가 떠난 뒤의 넌.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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