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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도시 기록보관소

mirpia 내가 떠난 뒤의 넌.

2006.12.19 22:35

솔비 조회 수:2736 추천: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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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12월 2일.

저녁 여덟시.

눈이 내려서인지 유난히도 조용했던 날 밤.

전화가 한통 걸려왔다.

“ 지연아... ”

잔득 쉰

당장이라도 울음보가 터질 것 같은

내겐 너무나- 너무나도 익숙했던 그 목소리를 듣는 순간

나는

습관처럼 소리를 빽 질렀다.

“ 뭐야! 또 무슨 일 있어? 바보같이 질질 짜지 말고 말해봐! 공유현! ”

하지만 돌아오는 것은 훌쩍이는 숨소리 뿐.

나는 그런 그를 다그쳐 어디인가를 묻고

옷장에서 코트를 꺼내 입은 뒤

밖으로 뛰쳐나갔다.

가느다란 눈송이와 함께 차가운 바람이 내 뺨을 스쳤다.

나는

가로등과

수많은 창문들이 밝히는 차갑고도 긴 거리를 있는 힘껏 달렸다.

숨이 차올랐지만 멈추진 않았다.

울보 공유현과 말괄량이 우지연.

우리들의 관계는 늘 이런 식이었다.

우리가 처음 만났던

네 살

그때의 겨울날부터 언제나 늘..

그래.

2006년 12월 2일.

저녁 여덟시.

눈이 내려서인지 유난히도 조용했던 날 밤.

그날까지도

줄곧, 계속, 당연하단 듯이...






내가 떠난 뒤의 넌.






“ 이봐, 이봐! ”

어깨를 마구 흔드는 손길에 나는 힘겹게 눈꺼풀을 밀어 올렸다. 흐릿한 시야 너머로 나를 빤히 바라보는 까만 눈동자가 보였다.

“ 휴, 드디어 일어났군. ”

눈가를 가릴 정도로 조금 긴 검은 머리칼. 상복을 연상케하는 검은 슈트와 와이셔츠. 그의 등 뒤로 휘황찬란하게 떠올라 빛나는 달의 빛 때문에 그의 얼굴은 잘 보이지 않았지만, 그의 귓가를 스쳐 떨어져내리는 하얀 눈송이만은 내 눈에 똑똑히 보였다. 차갑고도 차가운..

아, 그러고보니 나는 왜 이런 곳에 누워있는거지?

“ 눈떴으면 그만 뜸들이고 일어나. 어서. ”

길게 생각을 할 여유도 없이 나는 그의 재촉에 따라 몸을 일으켜야 했다. 체크무니 치마와 검은색의 마이로 이루어진 교복위에 대충 걸친 감색코트에서 마른풀이 파스슥 소리를 내며 떨어져 내렸다.

“ 그럼 이제 가자. 서둘러. ”

내가 일어난 것을 확인한 그는 곧 내 손목을 잡고 성큼성큼 걸어가기 시작했다. 나는 엉겁결에 그를 따라 잔디위를 걸었다. 이상하게도 더 이상 달을 등지고 있지 않은데도 그의 얼굴은 여전히 잘 보이지 않았다. 달빛에 비쳐 콧날만이 파리하게 빛났다.

주위는 밤인데도 꽤 밝았다. 그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넓디넓은 들판. 풀잎 하나하나가 달빛에 비쳐 신비로운 빛을 냈다. 문득 뒤를 돌아보니 설탕가루같은 가는 눈송이가 풀잎위에 조용히 내려앉는 것이 보였다.

나는 발걸음을 멈추었다.

“ 이봐, 왜그러는거야? ”

나보다 앞서 걸어가고 있던 그 남자는, 내가 발걸음을 멈추자 나를 돌아보며 다그쳤다. 하지만 나는 그를 보지 않고 손을 들어 허공을 유영하는 눈송이를 움켜잡았다.

“ 왠지 더 이상 갈수가 없어. ”

남자는 입을 다물고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눈송이를 움켜진 손을 꽉 쥔 채로 더듬더듬 말을 이어나갔다.

“ 이상해. 슬퍼. 뭔가를 잊고 있는 것 같아. 아주 중요한걸, 잊어버린 것, 같은데, 기억이 나지 않아. ”

“ ...... ”

“ 그게 뭐지? 그것 때문에 도저히 앞으로 갈수가 없어. 갈수가..없어. ”

뜻 모를 소리를 중얼거리고 있던 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 내가 울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런 나를 계속 말없이 바라보고 있던 그 남자는 손을 뻗어 손끝으로 내 눈물을 닦아주었다.

이상하게도 그 순간, 지금까지는 아무리 노력해도 볼 수 없었던 그 남자의 얼굴을 나는 볼수 있었다. 달빛 아래에서 보았기 때문인지 하얀 얼굴. 여자아이의 것처럼 가느다란 턱선과 가는 목덜미. 처진 눈매에 동그란 콧날과.. 일자로 꽉 다문 입술.

나는 그의 얼굴을 본 순간 또 다른 하나의 얼굴을 떠올릴 수 있었다.

“ 유현..아. 공유현! 그래, 약속했어. 난, 내가, 그래 내가 갈 테니까 기다리고 있으라고.. ”

안개가 낀 것처럼 흐릿하던 머릿속이 점차로 맑아져 갔다. 눈이 내리던 저녁, 그래, 유현이에게 전화가 왔었지. 내가 간다고 기다리라고, 맞아, 교복도 갈아입지 못하고 그 위에 코트를 하나 걸친 채로 유현이를 찾아 뛰쳐나갔었어.

왜 내가 그걸 지금까지 잊어버리고 있었을까?

“ 지금 몇 시지? 기다리고 있을 거야. 빨리 가야해. ”

나는 황급히 뒤를 돌아보았다. 빨리 약속장소로 가야한다는 생각만이 내 머릿속에 가득했다. 유현이는 분명히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고. 빨리 그곳으로 가야 한다고. 그래서 내가 달래주어야 한다고. 그래야 한다고.

“ 기다려. ”

앞으로 달려 나가려던 나는, 나를 붙잡는 손길 때문에 멈춰서고 말았다. 줄곳, 내가 눈을 뜬 순간부터 내 손을 잡고 있던 검은 옷의 남자였다. 나는 그를 노려보았다.

“ 이거 놔. ”

“ 왜? ”

“ 왜냐니? 가야 하니까. 유현이가 기다린단 말이야! ”

“ 그게 어딘데? ”

“ 어디..냐니? ”

“ 유현이가 기다리는 곳이 어디지? ”

나는 그 질문에 아무런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저 못 박힌 듯 계속 그 자리에 서서 그 남자를 노려볼 뿐이었다. 어째서인지 목덜미를 타고 뜨거운 땀방울이 흘러내렸다. 심장이 두근거리고, 숨이 가빠왔다.

그게 어디냐니? 왜 그런 바보같은 질문을 하는거야? 당연하잖아. 항상 유현이가 훌쩍이고 있는 곳은, 거긴, 거기는...

아아- 왜 이렇게 더운 거지?

“ 잘 생각해봐. 그 약속장소가 어디인지. ”

“ 어디.. 유현이와 나의 비밀장소... ”

“ 구체적으로 말해봐. 예를 들자면, 너의 집에서 어떻게 가야하느냐던가. ”

“ 그야, 우리집에서 나와서 곧장 뻗은 길을 따라 주욱... ”

말을 이어나가던 나는 어떤 기묘한 감각에 사로잡혀 입을 다물었다. 그것은 생각이 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닌, 기억을 떠올리면 떠올릴수록 어떤 종류의 불쾌함이 몰려왔던 것이었다. 아니, 그것은 불쾌함과도 약간 달랐다.

그래, 그건...

“ 곧장 뻗은 길을 따라 죽? 그 다음은? ”

나는 남자의 질문에 대답을 하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심장이 점차로 세게 뛰어 가슴이 터질 것만 같았다. 그는 내가 대답을 하지 않자 자신도 입을 다물고 내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만 보았다.

그 검은 눈동자엔 하얗게 질린 내 얼굴이 비치고 있었다.

“ 보지..마. ”

“ ...... ”

“ 보지마! 그런 눈으로 날 보지 말란 말이야! 나는... 나는! ”

“ ...... ”

“ 보지마! ”

나는 그의 손을 확 뿌리쳤다. 두 눈이 뜨거워지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양손으로 내 양팔을 감싸 안았다. 지금까지 줄곧 쥐고 있던 주먹에서 차갑고도 가느다란 눈송이 하나가 흘러나와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우리집에서 곧장 뻗은 길을 따라 주욱. 그 길을 따라 걷다보면 사차로가 나오고, 그 사차로를 꺾어 왼쪽으로 걸어가다 보면 인적이 드문 강가가 나온다. 갈대밭이 무성한 그곳. 유현이를 처음 만났던 그곳은 그와 나만의 비밀 장소였다. 그래. 그랬지.

“ 우.. 우읍. ”

속이 울렁거리고, 메슥거웠다. 기억을 더듬어 갈수록 강해지는 그 감정의 정체는, 불쾌감이라기 보단 두려움에 가까운 것임을 그 순간 깨달을 수 있었다. 온몸이 뜨거워 숨조차 쉴 수 없었다.

그래, 조금 더 빨리 눈치 채야 했어. 이런 겨울철에 이렇게 덥다니. 그게 정상일 리가 없잖아?

“ ...유현이를 만나려고 뛰어 나오다가, 그래, 모퉁이를 도는 곳에서 갑자기 눈부신 빛이 비쳤고, 무언가 단단하고 큰 것에 부딪치는 감촉과... ”

“ ...... ”

“ 아팟..던가? 모르겠어. 그때, 몸이 아주 오랫동안 허공에 떠있었는데? 그리고, 눈앞이 까매지고, 난.. 나는... ”

“ ...... ”

“ 하..하하. 설마. 아니지? 그런거 아니지? 아니지? 내가.. 나는 죽... ”

“ 됐어. 그만해. 그만하면 됐어. ”

그 남자가 다시 내 손을 잡고 나를 잡아 당겼다. 나는 힘없이 휘청거리다 그만 바닥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가느다란 풀잎위에 앉아있던 눈송이들이 내 옷자락에 휩쓸려 바닥에 흩어졌다.

눈앞이 순간 어지러워 흐려졌다. 나는 한참동안 숨을 고르다 간신히, 힘겹게, 이 한마디를 꺼내었다.

“ 네가.. 날.. 데려가기 위해 온 사람이야? ”

“ ..응. ”

“ 있잖아, 그럼 여긴 어디야? 벌써 저세상인거야? ”

“ 아니. ”

나는 고개를 들어 그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그는 내 손을 잡아끌어 일으켜주진 않았지만, 차분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천천히 말을 이었다.

“ 잘봐. 여기가 어디인지. ”

“ 아... ”

어느샌가 동이 트기 시작해 나의 주위는 꽤나 밝아져 있었다. 나는 나도 모르게 한손으로 입을 가렸다. 밤이라 알아보지 못했던, 나의 주위 넓은 들판은 사실 언제나 보아왔던 익숙하디 익숙한 강변이었다. 멀리 갈대들이 흔들리고 있었고, 그 너머 가루눈이 흩날리는 아래 새하얀 빙판. 눈이 시렸다.

“ 너는 약속을 어기지 않았어. ”

그는 내 손을 놓았다. 그리고 그 손을 들어 어딘가를 가리켰다. 그가 가리키는 손가락 끝에는 강변에 쪼그리고 앉아있는 한명의 소년이 있었다. 차가운 새벽안개 사이로 드러난 그의 검은 머리칼과 어깨에는 눈송이가 몇 개 내려앉아 있었다.

“ 너는 죽어, 영혼이 된 이후에도 무의식적으로 이곳을 향해 왔어. 그를 만나기 위해서. ”

난 그의 목소리를 들으며 몸을 일으켜 세웠다. 다리에 힘이 풀려 양손을 사용해야 했고, 몇 번이나 넘어질 뻔 했지만 나는 끝내 내 두발로 섰다.

“ 유현아, 날 기다려 준거야? ”

나는 검은 옷의 남자가 가르치는 방향을 향해 비틀비틀 걸어갔다. 유현이는 그 하얀 얼굴로 무표정하게 계속 강변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 공유현. ”

유현이의 바로 옆에서 나는 그 애의 이름을 불러보았지만 유현이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나는 손을 뻗어 그의 검은 머리칼을 만져 보았다. 내손은 그의 머리를 뚫고 허공을 훑어 아무것도 만지지 못했지만, 좀 전처럼 그리 슬프지는 않았다.

오히려 웃음이 나왔다. 너는 지금 내가 옆에 있는지도 모르겠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니?

“ 바보. 그래도 삐지진 마? 약속은 지켰으니까. ”

나는 그의 옆에 함께 쪼그리고 앉아 작게 중얼거렸다. 아마 내 목소리가 들리진 않았겠지만, 유현이도 무언가를 작게 중얼거렸다. 나또한 그의 목소리를 듣지 못했다. 유현이는 곧 다리와 어깨에 묻은 눈을 탁탁 털더니 일어나 가방을 들고 걸어갔다.

나는 멀어져가는 그를 따라가지 않고 그저 그가 앉아있던 옆자리에 앉아 계속 앞만을 바라보았다. 눈물이 날 것 같아 두 눈을 부릎뜬채로. 계속. 앞만을 바라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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