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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도시 기록보관소

mirpia 끝의 끝에서

2006.12.10 04:21

솔비 조회 수:1844 추천: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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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이곳 달에서는 언제 어느 때라도 지구를 바라보는 것이 가능하다. 세어보는것조차 아득한 태고의 시간때에서부터 지구를 묵묵히 바라보곤 했던 달처럼, 그 푸르게 빛나는 아름다운 행성을 바라보는 것이 허락되어 있는 것이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일은 지구를 바라보는 것이다.

나는 달이라는 존재가 나와 무척이나 닮았다고 생각한다. 뒷모습 따위는 보이지 않고 언제나 지구만을 바라보는 달이라는 존재는, 언제나 지구를 바라보고 있는 나의 모습과 같았다. 지구의 중력 때문에 달이 도망치지 못한다는 그런 생각보다는, 달은 지구의 중력에 매달려 지구를 바라보고 있다고, 사랑하고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렇게 믿고 있다. 나는. 나는. 나는 지구를 바라보며. 사랑하고 있는 것이다...

가끔 저렇게 아름다운 행성에 사람들이, 아니 그 수많은 생명체들이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이 가끔 신기하게도 느껴진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내가 저곳에 살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기묘한 감공과 환희로 나를 깜짝깜짝 놀래키곤 한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일은 지구를 바라보는 것이다. 지구를 사랑하는 것이다.

그랬기에 나는 더욱 절망하고, 또한 슬퍼하고, 더욱더 깊은 나락으로, 그렇게 빠져들었던 것일지도 몰랐다. 그 마지막의 마지막에서.

끝의 끝에서.



1.

꿈을 꿨다. 내가 지구로 돌아가는 꿈이었다. 꿈속에서 어머니를 만났다. 친구들도 만났다. 지금까지 근무하였던 장소인 하얀 달도 보았고, 바다를 보았으며, 하늘을 보았다. 파란 하늘과 맞다은 지평선 근처에서 희끄무리하게 빛나는 달은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나는 그 달을 바라보며 지구를 떠올렸던 것 같다.

그리고 나는 무척이나 슬퍼하고 있었다. 어머니와, 친구와, 바다와, 하늘과, 달을 보며 나는 분명히 슬퍼하고 있었다.

그 순간의 나는 어째서 내가 슬픔에 젖어있었는지 알수는 없었지만, 아마도 추측하기에 나는 다시는 지구를 볼 수 없다는 사실에 슬퍼하고 있었던 것이다. 지구에서 가장 가까운 그곳에서 나는 슬퍼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마도 그러한 이유였으리라.



2.

그런 꿈을 꾸었기 때문이었을까. 나는 오늘따라 이상하게도 일찍 눈을 떴다. 아니 멀리서 들려오던 무언가 시끄러운 소리를 들었기 때문이었던 것도 같았다. 무언가가 부딪치는 듯한 소리, 사람들의 고함소리, 발자국소리...

왠지 서늘한 느낌이 드는 것도 같다.

하지만 이곳에는 들쑥날쑥한 달의 기온차 때문에, 늘 온도를 적정온도로 유지하는 시스템이 존재하고 있다. 아마도 그것은 느낌 탓일 것이다, 라고 생각하며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이불을 개고 세면대에서 세수를 한 뒤 안경을 찾아서 꼈다.

사실 달에 오기 전까지는 달에서의 생활은 지구에서의 생활과 달라도 어떻게든 다르지 않을까 막연히 생각을 하기도 했었다. 유치한 생각이긴 하지만 지금의 생활은 지구와의 생활과 별반 다를 것이 하나도 없었고, 그것을 두고 아이러니라고 해야 하나. 무척 우습다.

아니, 단 하나 바뀐 것이 하나 있기는 하다. 언제나 잠에서 깨어나면 커튼을 열고 지구의 모습을 멍하니 바라본다는 것. 지구를 인간으로 비유한다면 아침나절부터 무척이나 실례되는 행동이긴 하지만, 이상하게도 나는 지구가 날 바라보며 화를 낸 다기 보다는 미소를 지어주는것처럼 느끼곤 한다.

챙그랑!!

막 커튼을 열려던 나는 멀리서 들려온 소음에 미간을 찌푸렸다. 아까보다 더욱 커진 소음들이 나의 귀를 괴롭히고 있었다. 뭐, 어디선가 싸움이라도 난 모양이겠지. 나는 나의 아침을 방해받은 것에 대한 불쾌감을 느끼며 커튼을 천천히 열었다.

그리고




아아...




3.

지금에서야 고백하는 것이지만 나에게도 애인이라는 것이 있었다. 무척이나 통속적이고 짧은 만남이었지만 나도 사랑이라는 것을 할 때가 있었다. 사랑한다고 속삭이기도 하고, 손을 맞잡기도 하고, 같이 밤하늘을 바라보며 많은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어째서 내가 그때를 떠올리고 있는 지는 나도 모른다. 하지만 창문으로 하늘을 보았을 때 나는 나도 모르게 지구에 남겨두고 온 나의 애인이었던 사람을 떠올렸다.

아마도 언제인가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았지만, 이런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만약 이 세상이 끝나게 된다면, 그때 그 마지막의 순간에 함께 있자는, 서로의 손을 꼭 잡아주자는 그런 이야기를...

......

나는 천천히 걸어 옆방으로 통하는 문을 열었다. 나는 나의 일터인 관측실 바로 옆의 방에서 지내고 있었다. 나의 방은 관측실과 바로 통하는 문이 있었고, 마음만 먹으면 언제라도 관측실에 들어가 하늘 높이 솟은 지구를 바라볼 수 있었다.

지구와 천체를 관측하는 것이 목적인 관측실은 의외로 심플하다. 천체와 지구를 관측하기 위해 존재하는 대형만원경과, 지구를 항해 반원 모양으로 천장까지 투명하게 만들어 놓은 벽이 전부인 장소. 태양의 강렬한 빛을 막기 위해 특수 제작된 유리벽 너머로 보이는 지구의 모습은, 손이 닿지 않기 때문이었을까. 가끔 그것이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닌 책속의 사진처럼 느껴질 때가 있었다.

아마도 그래서였겠지. 그래서 나는 무덤덤하게 하늘을 올려다 볼 수 있었던 것이리라. 그렇게 한참이고 관측실의 중심에 서서 하늘을 바라만 볼 수 있었던 것이다. 아무런 감정도 느끼지 못한 채로.

그래, 조금의 현실감도 느껴지지 않았던 것이다.

나는 그렇게 바짝 마른 눈으로 하늘을 바라보았다. 더 이상 지구가 존재하지 않는 달의 하늘을.



4.

아마도 내가 정신을 차린 까닭은 주위가 상당히 추워져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입에서 입김이 나올 정도는 아니었지만, 얇은 옷차림으로 견디기에는 제법 쌀쌀했다.

나는 반사적으로 양팔을 끌어안으며 그만 털썩 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 얼마나 서 있었던 것인지 나도 모르게 다리에 힘이 풀렸던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눈은 하늘에서 고정된 채 떨어질 줄을 몰랐다. 어제까지 지구가 존재하였던 장소에는 휑하니 검은 구명만이 뚫려있을 뿐이었다. 대체 어떻게 된 것인지 나는 도저히 이해할 수도 납득할 수도 없었다.

벽 너머의 소음은 점차로 커져갔고, 관측실의 온도는 점차로 낮아졌다. 언제부턴가 온몸이 부들부들 떨리고, 소름이 오싹하게 돋아 있었다.

지구가 하룻밤 사이에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그것은 결코 일어날 수도, 일어나서도 안 되는 일이었다. 아니, 이것은 어쩌면 일시적인 현상일지도 몰랐다. 호들갑 떨만한 일도 아닌 사소한 해프닝.

아아, 그리 어찌된 일인지 만원경으로 관측해 보면 되겠구나. 그것이 나의 일이니까. 관측해서, 분석하고, 그것을 알리고, 그리고, 그리고...

만원경으로 다가가는 나의 발걸음이 멈칫 멈추었다. 왜서인지 더 이상 그곳을 향해 걸어갈 수가 없었던 것이다. 대신 가슴속에선 기묘한 어떤 감정이 부글부글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그것은 지금까지 살아오며 단 한순간도 느껴보지 못한 감정이었다.

두려움과 닮았으면서도 무서움과는 다르고 불안함인 것 같은데 슬픔과 비슷하면서도 가슴이 아프지 않은...

“ 아아아아아아아악!! ”

나의 입에서 비명이라는 것이 튀어나왔다. 만원경의 앞에서 부들부들 떨고만 있던 나는 뒤돌아 도망을 치기 시작했다. 다리가 꼬여 넘어지고, 일어설 수 없어 팔로 기는데도, 나는 필사적으로 만원경에서 멀어지려 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관측실에서 나가려 하지도 않았기 때문에, 결국 관측실 안을 빙글빙글 도는 꼴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마치 청체불명의 살인마가 나를 꽂기라도 하는 듯 나는 필사적이었다.

아마도 나는 너무나도 무서워서 무엇에든지 도망을 치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었던 것이다.

달의 공기는 희박하다. 아직은 직접 공기를 만들만한 기술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늘 지구에서 만들어 운송해온 공기를 재사용하는 이곳의 공기는 희박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곳에서 죽기 살기로 달려댔으니 내 몸이 버텨낼 리가 없었다. 나는 얼마의 시간이 지나지 않아 벽을 끌어안은 채로 기절을 하고 말았다.



5.

다시 눈을 떴을 때 내 주위는 암흑이었다. 아마도 전기가 끊어진 것이겠지. 게다가 지금은 주위가 무척이나 더운 것으로 보아 온도 조절장치도 맛이간게 분명했다.

그렇게 시끄러웠었는데 지금은 이상하리만큼 주변이 조용했다. 그래서 였을까. 이 고요하고 고요한 암흑 속에서 나는 어쩌면 지구가 사라져버린 그 사실이 꿈이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흐릿한 눈 너머로 보이는 텅비어버린 하늘은 잔인한 현실을 내게 다시 한번 선고하고 있었다.

차라리 마지막의 순간을 내 눈으로 보기라도 했더라면 나았을 텐데.

자고 일어나니 사라져 버린 지구는 야속하리만큼 내 가슴을 아리게 만들고 있었다. 모든 것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여전히 가슴속엔 알지 못할 감정들이 부글부글 끓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것의 정체를 조금은 알수 있을 것도 같았다. 나는 두려웠던 것이고 무서웠던 것이고 불안했던 것이고 슬펐던 것이고 아마도 허탈했던 것이다...

갑자기 왈칵 눈물이 났다. 이제 다시는 지구를 볼 수 없다는 것이, 그곳에 있는 모든 것을, 어머니, 친구들, 옆집 아주머니, 키우던 강아지, 시냇가, 자동차, 그 모든 것들을 볼 수 없다는 것이, 홀로 남겨진 것이 서러움에 복밭혀 올라왔다.

사실은 알고 있었다. 지구는 이제 두번 다시 돌아오지 않는 다는 것을. 그 마지막을 이곳에서 지켜보는 것이 나의 임무라는 것도...

계속 보아왔던 지구이기에

나는 알 수 있었다. 이제 지구는 끝장이라는 것을.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6.

온몸의 수분이 모두 사라질때까지 멈추지 않을 것만 같던 눈물도 결국은 멈추었다. 울다 지쳐 멍하니 하늘을 바라만 보고 있던, 그즈음의 난 제법 현실적인 문제에 봉착해 있었다.

식량도, 물도, 공기도, 달 자체에서 만들어지는 물자는 하나도 없었다. 모두 지구에서 보내어지는 물자로 이곳의 사람들은 생활하고 있었던 것이다.

지구가 사라진 지금, 그 모든 물자를 공급 받을 길은 사라지고 말았다. 남은 것은 아주 약간의 물자와 시간 뿐. 그리고 그 끝의 죽음뿐이었다. 살아남을 길 같은 것은 전혀 없을 터였다.

문득 달의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애초에 탐사를 위해 달에온 우리들의 인원자체는 몇 되지 않았지만, 그래도 두 자리 수에 육박하는 인원이 이곳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분명 방금까지는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러왔었는데, 지금은 그러했던 것들이 모두 거짓이었던 냥 조용하다. 대체 그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다는 것일까.

모르겠다.

하지만 그게 무슨 상관이랴. 조금뿐인 자원을 가지고 싸웠든, 모두가 한마음이 되어 어딘가의 장소에 모여 있든, 실낱같은 희망을 품고 지구로 향했든, 모두 나와는 상관없는 일처럼 느껴졌다.

어차피 이곳의 자원은 한정적이었다. 늦든 빠르든 죽음은 예견되어 있는 일이었다. 아니, 지구가 사라졌는데 살아있든 죽어있든 무슨 상관이랴.

이제 돌아갈 곳 따윈 없는데.

거기까지 생각하고 나니 모든게 허무해져 아무런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다. 희망조차 존재하지 않는 다는 것이, 죽음을 기다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 현실이었으니까.

차라리 편해지는 것도 같았다. 끝이라는 것은, 그런 것일까...



7.

나의 어렸을 적 꿈은 지구수비대였다.

그 촌스러운 쫄쫄이를 입고 알 수 없는 괴생명체들과 열심히 싸워 지구의 평화를 지키는 그들 말이다. 그 시절의 난 조그마한 나의 마을이 지구의 전부였고, 내가 이 지구를 지킬 수 있을 것이라는 사실에 추호의 의심도 품지 않았었다.

사실 나는 이렇게나 무력한데...

나는 나도 모르게 픽 미소를 지었다. 어느새 온도는 제법 많이 내려가 한겨울을 방불케 하는 추위가 내 주위를 감싸고 있었다. 온몸이 퍼석퍼석하게 얼어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는 느낌이었다. 산소도 점차 옅어져 숨을 쉬면서도 기묘한 이질감에 가슴이 답답해져 갔다.

이제 이대로 죽어가는 것일까.

아마도 눈을 감고 잠이라도 든다면 다시는 깨어날 수 없겠지. 하지만 그것도 그것 나름대로 나쁘지 않을지도 몰라.

나는 눈을 천천히 감았다. 눈을 감고 어린시절 보아왔던 영웅들의 애니메이션 주제가라도 떠올려 보려 했다.

덜컥! 끼이이익...

그때 눈을 감은 내 귀에 익숙한 소리가 들려왔다. 이것은 이 관측실의 문이 열릴 때 나는 소리였다. 나는 나도 모르게 두 눈을 뜨며 몸을 벌떡 일으켰다. 방금 전까지는 손가락하나 까딱할 수 없을 것 같다고 축 늘어져 있던 주제에 우스운 일이었다.

하지만 문이 열리는 소리를 이어 더 이상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주위는 어둠으로 가리워져 있었기에 누군가가 그곳에 있는 것인지도 알수 없었다. 나는 한참이고 문이 있을 방향을 노려만 보다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 누구... 있어요? ”

한참을 울고 늘어져 있었기 때문인지 내 목에서는 나도 깜짝놀랄만큼 쉬고 탁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내 목소리에 놀라 잠시 입을 다물고 있자니 밖에서 발소리 같은 것이 울려 퍼지며 멀어져갔다. 분명히 사람이었다.

“ 저기요! 잠깐만!! ”

나는 나도 모르게 벌떡 몸을 일으켰다. 몸을 움직이자 더욱더 한기가 확 몰려와 온몸에 소름이 오싹 돋았다. 나는 내가 부르는 목소리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도망쳐가는 그 사람을 향해 걸어갔다. 하지만 이미 멀리로 가버린건지 더 이상 발자국 소리조차도 들리지 않았다.

들리는 것은 내 숨소리뿐이었다.

나는 자리에 멈칫 멈춰서 문이 있는 곳을 바라보았다. 어둠에 익숙해진 나의 눈은 관측실의 내부는 희끄무리하게나마 형태정도는 알아볼 수 있었지만, 문의 밖은 말 그대로 한치 앞도 볼 수 없는 새까만 어둠이었기에 더 이상 나아가기가 두려웠던 것이었다.

하지만 그 어둠을 바라보고 있자니 그곳의 상태를 확인하고 싶어졌다. 방금 전의 그 사람이 누구인지도 궁금했다. 지구가 사라졌다는 것에 대해 공포심을 느끼고 허탈해하던 나의 감정에 눌려있던 호기심들이 하나둘 톡톡 고개를 내밀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결국 나는 손을 더듬어 관측실의 구석에 있는 손전등을 찾아내었다. 비상용이라 단 한번도 사용하지 않았으니 꽤 사용할 수 있을 터였다. 그리고 내 방으로 찾아 들어가 두툼한 겉옷과 담요를 찾아서 뒤집어썼다. 사실은 추워서 견딜 수가 없었던 것이다.

나란 녀석도 별 수 없는 인간인가 보다는 생각을 하며 나는 관측실의 출구로 향했다.



8.

문밖으로 나가 손전등으로 밖을 비추자 익숙한 동료가 떨어트린 기자재를 주으며 내게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그녀는 전력원에 문제가 생겨서요. 다들 비상사태에요- 라며 기자재를 엉성하게 안아들곤, 우주의 기상이변으로 지구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다나 봐요. 지구에서 연락이 왔어요. 너무 놀라지 말아요, 라는 말을 남긴 채 복도를 허둥지둥 달려갔다... 는

문을 나서며 그런 상상을 해보았다. 쓸모없는 일인 줄은 아는데, 기대를 하고 마는 것은 나도 어쩔 수가 없었다.

하지만 문 밖의 복도는 어둠과 고요로 잠식되어 있었고, 손전등으로 비춰본 바닥은 엉망진창으로 변해 있었다. 난장판이 되어버린 복도는 이곳 사람들의 혼란을 고스란히 말해주고 있었다.

나는 손전등으로 오른쪽과 왼쪽을 번갈아 보다 오른쪽으로 방향을 잡고 걸어가기 시작했다. 딱히 이유는 없었지만, 그래도 이유를 대라고 한다면 이쪽 방향에 중앙 사무실이 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처음 관측실의 문이 열려 깨어난 호기심은, 이제는 제법 커져서 이곳의 사람들은 어떻게 되었을까라는 호기심까지도 불러일으키고 있었다. 지구의 마지막엔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에 대한 호기심 까지도...

덜컹.

걸어가던 나의 귀에 어떤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는 내가 향하고 있는 방향 저편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나는 발걸음을 더욱더 빨리했다.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도 느껴졌지만 그것이 나의 발을 묶어두지는 못했다.

내 발소리가 유난히도 크게 울렸다. 검게 어른거리는 복도와 지저분한 바닥은 어쩐지 오랜 세월이 흐른 폐허를 연상케 했다.

참방..

걸어 나가던 나는 무언가 물웅덩이 같은 것을 밟음을 느끼고 발걸음을 멈추었다. 그것은 무언가 진득진득하고 질퍽한 느낌의 액체였는데, 꽤나 양이 많은 것 같았다. 나는 손전등으로 바닥을 비추어 보았다. 불그스름한 손전등의 빛 때문에 처음에는 무엇인지 잘 분간이 가지 않았지만, 점차 시간이 흐름에 따라 그것의 색이 선명해져 갔다.

붉은... 검붉은 색의...

“ 흡... ”

나는 나도 모르게 한손으로 입을 막았다. 그것은 피였다. 다량의 피가 복도 저편에서부터 점점 퍼져나가 여기까지나 흘러나와 있었다. 아직 굳지 않고 이렇게 흐르고 있다는 것은 이 피가 흐르기 시작한지 얼마 지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했다. 나는 급히 손전등으로 앞을 비추어 보았다. 그리고 복도 저편에서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두 명의 사람을 발견할 수 있었다.

한명은 컸고, 한명은 작았다.

나는 더 이상 깊은 생각을 하지 못하고 급히 그 두 사람에게로 달려갔다. 그리고 나와 가까운 곳에 쓰러져있는 남자의 앞으로 달려가 피투성이인 그의 손목을 잡아 올려 맥을 짚어 보았다. 불행히도 그에게서 맥이 느껴지지는 않았다. 나는 엎어져 있는 그의 얼굴을 확인하려 했지만 도무지 그럴 용기가 나지 않아 머뭇거렸다.

그리고 그때였다.

“ 으음... ”

남자보다 몇 걸음 더 떨어진 곳에 쓰러져 있던 작은 사람에게서 신음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벌떡 일어나 그쪽으로 달려갔다. 손전등으로 비춰본 작은 사람은 머리칼을 단발로 자른 여자로, 비쩍 마른 몸에 얇은 옷만을 걸치고 있었다. 남자에 비해 몸에 묻은 피는 적었고, 왼쪽 팔목에서 계속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오른손에는 짧은 단도가 단단히 쥐여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 순간에는 그리 깊이 생각을 하지 못하고, 거의 본능적으로 그녀를 살려야겠다는 생각에 배운 데로 지혈을 하고 담요로 그녀의 몸을 감쌌다. 팔목을 베이기는 했지만, 다행히 동맥은 아슬아슬하게 피해간 것인지 지혈을 하자 피는 곧 멈추었다.

나는 한숨을 내쉬며, 그녀를 어디 쉴 수 있는 곳에 데리고 가야겠다는 생각에 그녀를 들쳐 엎었다. 그리고 그녀를 엎은 순간 잠꼬대인 것인지, 아니면 희미하게나마 정신이 들어온 것인지 그녀의 입에서 웅얼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조그마한 목소리였지만 주위가 조용하였기에 내 귀에 똑똑히 그녀의 목소리가 박혀 들어왔다.

“ 죽고... 싶어. ”



9.

그녀를 엎고 다시 관측실로 항하며 나는 알 수 없는 기묘한 감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나는 어째서 죽음을 원하는 그녀를 살린 것일까. 어차피 죽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으면서, 나조차도 그렇게 생각했으면서 왜 다른 이를 살린 것일까.

방금 전까지만 해도 죽으려고 했던 주제에.

그것은 알 수 없는 기묘한... 느낌이었다. 논리적으로 설명 따위는 할 수 없었지만, 왠지 그래야만 했을 것 같은 기분. 내가 한 행동이지만 나조차도 이해할 수 없는... 그런 느낌.

얼마 지나지 않아 관측실에 도착할 수 있었다. 관측실도 충분히 추웠지만, 그래도 복도보다는 덜 추웠다. 조심스럽게 그녀를 내려놓고, 더 덮을 것이라도 찾으러 나는 내 방으로 향하려 했다. 하지만 등 뒤에서 자그마한 신음소리와 몸을 뒤척이는 소리가 들려와 나는 다시 뒤를 돌아 손전등으로 그녀를 비추었다.

그녀는 정신이 드는 것인지 미간을 찌푸리며 눈을 뜨려 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제야 그녀가 누구인지를 그제야 생각해 낼 수 있었다. 분명히 굉장히 최근에 들어온 사람이었다. 이름까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 이봐요! 이봐요! 정신 차려요! ”

나는 그녀의 뺨을 가볍게 탁탁 치며 그녀의 정신을 돌아오게 하려 애썼다. 나의 노력이 닿은 것인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는 눈을 완전히 떴다. 그녀는 멍한 표정으로 나를 올려다보며 중얼거렸다.

“ 당신은... ”

“ 정신이 들었어요? 다행... ”

“ 왜 날 살린 거야... ”

그녀의 차가운 목소리에 나는 나도 모르게 입을 다물었다. 그녀는 생기가 없는 눈으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가느다란 손이 나의 왼손을 붙잡았고, 핏기 없이 하얀 입술이 빙긋이 호선을 그렸다. 나는 그 순간 알 수 없는 섬뜩함에 사로잡혀 몸을 벌떡 일으켰고, 그와 동시에 하얀 섬광이 나의 팔을 스쳤다.

“ 악!! ”

얕은 상처였다. 하지만 팔뚝을 타고 핏물이 줄줄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나는 그녀의 손을 뿌리치고 몇 걸음 뒤로 물러났다. 손전등이 바닥에 떨어져 빛을 흩뿌렸고, 그 빛을 받아 희미하게 빛나는 그녀는 오른손에 단단히 칼을 쥔 채로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그 순간 그녀의 옆에 쓰러져 있던 피투성이의 남자를 떠올리곤 나도 모르게 한걸음 주춤 물러섰다. 그녀는 그런 나를 바라보더니 활짝 미소를 지었다.

“ 그러니까 이번엔 날 살리려고 하지 말아. ”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그녀는 양손으로 칼을 움켜쥐곤, 칼날이 자신에게 향하도록 한 뒤에 손을 높이 치켜올렸다. 나는 그 순간 그녀의 뺨에 눈물방울이 한줄기 흘러내리는 것을 보았고, 그 다음순간에는 그녀를 향해 앞으로 달려 나가고 있었다.

어째서 그러한 행동을 했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있는 힘을 다해 그녀를 밀쳐 쓰러트렸다. 그녀의 손에서 칼이 벋어나 바닥으로 떨어졌다. 챙그랑, 커다란 소리가 났다. 그녀는 두 눈을 크게 치켜뜨며 나를 보았다.

“ 뭘 하는 거야! ”

“ 그러지 말아요. 죽지 말아요! ”

그녀는 나를 뿌리치고 칼이 있는 곳으로 기어가려 했다. 하지만 나는 있는 힘을 다하여 그녀를 막았다. 바닥을 몇 바퀴나 뒹굴고, 할퀴고, 넘어지고, 일어섰다가, 주먹으로 때리고, 쓰러지고, 발로 걷어차고, 뿌리치고...

언제부턴가 그녀는 울부짖고 있었다. 그리고 나 또한 울부짖고 있었다.

그녀는 몇 번이고 죽겠다고, 어차피 이곳에서는 죽을 수밖에 없다며 울부짖었고, 나는 안 된다며, 죽지 말라며 울부짖었다. 다시는 눈물같은건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어떤 때보다 나는 펑펑 울고 있었다. 눈물에 가려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나는 악을 쓰고 소리를 지르며 울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달의 공기는 희박하다. 우리 둘은 얼마 지나지 않아 거의 동시에 서로가 지쳐 바닥에 쓰러지다시피 드러누웠다. 우리의 난동 때문에 고장이 난 것인지 어느샌가 손전등의 빛은 사라지고 없었다.

우리의 거친 숨소리만이 어둠속에서 계속 울려 퍼지고 있었다.




10.

얼마간의 시간이 흘렀을까. 우리들은 숨이 제법 평안해 졌는데도 그대로 멍하니 바닥에 누워 하늘만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녀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이상하게도 아까처럼 비관적인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분명히 아까와는 상황이 전혀 달라지지도 않았는데, 같은 장소에 누워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신기하게만 느껴졌다.

“ ...왜 내가 죽지 못하게 말린 거야? ”

나의 귀에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여전히 하늘에서 눈을 때지 않은 채로 대꾸했다.

“ 그냥요. ”

나의 대답에 그녀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렇게 얼마간의 시간이 흘렀을까, 그녀는 다시 작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 나랑 같이 쓰러져 있던 사람... 죽었...어? ”

“ 네. ”

“ ...있잖아... 그 사람 내가 죽였어. ”

“ ...네. ”

뒤척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녀의 목소리는 악을 쓰고 소리를 지른 탓에 쉬고 갈라져서 결코 예쁘다고 할 수는 없었지만, 나는 그녀의 목소리에 어느 순간부턴가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 지구가 사라졌어. 난 죽고 싶다고 생각했어. 그런데 그 사람이 날 죽이려고 했을 때... 어차피 이곳은 끝이라고, 날 죽이고 자신도 죽겠다고 했을 때, 죽고 싶지 않다고... 그렇게 생각했어. 살고 싶어서... 그 사람을 죽여 버렸어. 하지만 그러고 나니깐... 왜 내가 그랬는지... 알...수가 없었어... 그러면 안 되는 거잖아. 그래서 난... 내 자신이 너무 증오스러웠어... 그래서 죽으려고 했어... 어차피 남은 것이 죽음뿐이라면... 적어도 내손으로... ”

“ 하지만 그러지 못했잖아요. 정말로 죽으려고 했으면 나도 막지 못했을 거라고 생각해요. ”

나의 담담한 말에 그녀의 입에서 웃음소리인지 울음소리인지 모를 것이 흘러나왔다. 그리고 잠시 후 그녀는 조금 커진 목소리로 이 한마디를 내뱉었다.

“ 배고파. ”

나는 잠시 눈을 감았다 떴다. 지구는 사라지고 없었지만 하늘에는 수많은 별들이 휘황찬란한 빛을 내뿜으며 나를 비추고 있었다.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속에서 그 별들을 보고 있자니 마치 나조차도 우주에서 부유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나는 방금 전처럼 이렇게 별빛에 휩싸인 채로 잠들고 싶은 기분이 들지는 않았다.

나는 천천히 몸을 일으키곤 그녀의 목소리가 들리는 곳을 바라보았다. 그리곤 마치 사랑고백이라도 하듯 몇 번이고 마음속으로 이 말을 연습하고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 살아있으니까요. ”

지구는 달을 떠나버렸다. 달은 홀로 남겨졌다. 사랑하고 있었는데, 정말로 사랑했는데 이렇게 헤어져 버렸다. 그러니까 이제 더 이상은 남은 것이 없다. 희망조차도, 미래조차도 남은 것이 없는 것이다. 그래, 이제는 마지막. 마지막의 마지막인 장소. 하지만 그 끝의 끝에서 나는,

살아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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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그것이 어떤 영화였는지, 어쩌면 꿈이었던 것 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달에서 한 남자가 사라져가는 지구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모습을 본 적이 있습니다.
그 장면을 바라보며 저는
만약 내가 지구의 마지막을 바라본다면 어떤 기분일까 라는 생각을 하게되었고,
이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런식으로, 먼 옛날의 스쳐지나간 기억이나 꿈속에서 영감을 얻는 경우가 많거든요.  

이 글은 제 2회 창도 단편제에서 감사하게도 인기상을 받은 작품입니다.
사실 심사평가에서는 순위권에도 들지 못하는 점수였기 때문에 상을 받을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했었는데, 이런식으로 상을 받아서 뛸듯이 기뻤었지요.
문제는 수상 사실을 너무 늦게 알게되어서, 감사인사고 코멘트고 뭐고 아무것도 하지 못했었다는...
으으;;
그당시 제가 좀 바쁜시기였거든요.

어쨌든~!!
제 글을 읽고 즐거우셨으면 좋겠습니다.
제 글이 당신의 가슴에 조금이라도 의미를 가지게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제 글에서 무언가를 얻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정말 이기적인 사람인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다들 행복하셔야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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