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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도시 기록보관소

mirpia 나르실리온

2006.11.28 23:32

솔비 조회 수:2554 추천:6

extra_vars1 3장 - 도망쳐라. 행복해지고 싶다면.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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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레이나는 자신이 누워있던 야전침대의 이불과 시트를 깨끗이 정리했다. 막사 한구석에 배치되어있는 조그마한 거울을 바라보며 흐트러진 옷매무새를 똑바로 가다듬고, 긴 머리카락도 단정하게 빚어 내렸다. 그렇게 자신의 흐트러진 모습을 모두 감춘 그녀는 분명 아직도 고통의 잔재가 남아있을 터인데도 성큼성큼 막사 밖으로 나갔다.

막 아침 해가 떠오른 하늘은 밝았다. 지금 병사들은 훈련 중인 것인지 멀리서 우렁찬 남자들의 함성이 들려왔다. 그 함성 소리를 들으며 산책이라도 할 요량으로 막사사이의 길을 거닐고 있던 레이나는 주둔지의 구석에 자리 잡은 커다란 우리를 하나 발견했다.

“ 냥... 냥. ”

우리 안에서 가느다란 목소리가 들려왔다. 별 생각 없이 우리를 지나치려던 레이나는 그 소리를 듣고 발걸음을 멈추었다. 굵직한 철장으로 가득한 어두운 우리 안에는, 자신이 제압했던 어린 수인이 몸을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 냥! ”

어린 수인은 레이나를 발견하자 반색을 하며 철장 쪽으로 다가왔다. 그리고는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레이나에게 무어라 말을 걸려 했다. 하지만 수인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레이나로서는 수인이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알 길이 없었다.

“ 편안해 보이는 얼굴이구나. ”

레이나는 죄책감이 가득한 얼굴로 수인을 내려다보았다. 수인은 맑고 커다란 갈색 눈을 깜빡이며 레이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레이나는 그런 수인의 모습에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손을 뻗어 철창을 잡았다. 차가운 감촉이 손안 가득 느껴졌다.

“ 아직도 모르겠는 것이 있어. 네 기억을 지운 것이 옳은 일이었을까? 너의 증오를 지워 버릴 자격이 나에게 있는 것일까. 나도 너처럼 기억을 지워 버린다면 괴로워하지 않아도 좋을까.. ”

“ 냥? 냥냥. ”

“ 네게 고해를 하고 싶지만 그것조차 옳은 것인지 모르겠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무엇이 옳고 그른 것일까. 모르겠어. 지금까지 내가 하고싶은데로 살아본 적이 단 한번도 없었으니까. 정말로 모르겠어... ”

자조였을까? 레이나는 입가에 미소를 띄우며 철장을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그녀의 메마른 눈동자에 수인의 가녀린 몸이 비치었다. 앙상하게 말라 뼈만 남은 수인의 몸에는 수많은 상처들과 흉터들이 가득했다.

어째서였을까? 레이나는 수인의 모습에서 자신의 어린 시절을 연상했다. 상처로 얼룩진 삶과, 타인에 대한 불신, 분노, 두려움... 그 표출의 방식이 달랐을 뿐 둘의 모습은 지독스레 닮아 있었다.

세상에 상처 입은 피해자라는 점까지.



17.

“ 망할 땡중... ”

엘은 눈을 뜨자마자 이 말을 중얼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모리스라는 그 작자에게 얻어맞은 목 뒤가 아직도 욱신욱신 아려오고 있었다.

레이나를 돌보러 가게다고 이 막사 안에서 고집을 부리다 정신을 잃기전, 그의 마지막 기억에는 모리스의 웃는 얼굴이 있었다. 자신이 아무리 상처를 입은 몸이라고는 해도, 그는 날렵한 수도 솜씨로 자신의 의식을 잃게 만들었었다. 그것은 무척이나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었지만, 한편으로는 의아함이 느껴지는 부분이기도 했다.

그의 몸놀림은 승려의 것이라기엔 지나치게 야성적이었다.

“ 이야, 벌써 일어나시다니 대단한 체력이군요. ”

부스럭거리는 소리와 함께 막사의 문을 열고 한명의 인영이 들어왔다. 그의 등 뒤로 햇살이 역광으로 비치고 있었기에 그의 모습은 잘 보이지 않았지만, 커다란 키와 그 목소리로 짐작하건데 모리스가 틀림이 없었다.

“ 덕분에 아주 푹 잤수다. ”

잔득 뒤틀린 엘이 으르렁거리자, 이윽고 느긋한 모리스의 회답이 돌아왔다.

“ 별 말씀을. 조금 더 주무셔도 됩니다만. ”

엘은 눈을 치켜뜨며 모리스를 올려다보았다. 막사의 문을 닫고 안으로 들어온 모리스의 모습이 이젠 또렷이 보였다. 학자풍의 단정한 얼굴, 길지도 짧지도 않은 녹색 머리칼, 크고 곧게 뻗은 상체, 교단의 승려임을 증명하는 의복. 그 모든 것이 엘의 눈에 들어왔다. 엘은 잠시 동안 말없이 그가 치료 도구를 챙겨 늘어놓는 것을 지켜보다가, 대뜸 입을 열었다.

“ 어이. ”

“ 왜 그러십니까? ”

“ 이쪽으로 와봐. ”

모리스는 의아한 표정으로 치료도구를 내려놓고 엘에게 걸어왔다. 엘은 시큰둥한 눈으로 모리스를 계속 빤히 바라보다, 그가 자신의 사정권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꽉 쥔 주먹을 날렸다. 그 불의의 기습에 모리스는 두 눈을 휘둥그렇게 뜨며 상체를 급히 뒤로 젖혔다.

후웅-

위협적인 소리와 함께 엘의 주먹이 모리스의 코끝을 스쳤다. 동공이 크게 벌어진 모리스의 녹색 눈동자가 엘에게 가 닿았다. 엘은 침대를 박차고 빠른 속도로 자신의 검을 잡아들었다. 그의 검이 긴 녹색 궤적을 그리며 모리스의 가슴을 베어 들어왔다.

“ 큭! ”

모리스는 이를 콱 물며 간발의 차이로 엘의 검을 피해냈다. 하지만 좁은 방안에서의 행동은 한계가 있는 것이라 엘의 검을 완전히 피하지는 못했기에, 모리스의 사제복이 찢어져 나가며 그의 가슴에 붉은 선이 그어졌다. 하지만 엘은 그만둘 생각이 없는 것인지 한바퀴 몸을 돌려 모리스의 목을 향해 다시 한번 검격을 날렸다.

또다시 엘의 검을 피하려던 모리스의 등이 벽에 닿았다.

하지만 엘의 검은 여전히 모리스의 목을 노린 채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모리스는 자신도 모르게 자신의 입술을 꽉 물었다. 그리곤 도리어 앞으로 달려 나갔다. 모든 것은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기기기기기긱!!!

듣기 거북한 소리와 함께 엘의 검이 두꺼운 천을 뚫고 찢어 모리스의 목 바로 옆에 멈추어 있었다. 낮고도 거친 숨소리가 막사 속에서 울려 퍼졌다. 얼마나 입술을 꽉 깨문 것인지 모리스의 입술에서 붉은 핏줄기가 가늘게 흘러 나왔다.

순식간에 땀으로 젖은 금빛 머리칼 사이로 형형히 빛나는 엘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는 두꺼운 막사에 꼽힌 자신의 검을 놓고, 그 손으로 자신의 모리스의 손목을 콱 움켜잡았다. 절제절명의 순간 도리어 앞으로 튀어나온 모리스의 주먹은 엘의 목젖 바로 앞에서 멈추어 있었던 것이다.

“ 네놈에게서 계속 나던 냄새가 무엇인지 이제야 알겠군. 피냄새다. 그것도 아주 진한. 너 정체가 뭐야? ”

모리스가 정말로 평범한 승려라면 이런 반응이 나올 리가 없었다. 애초부터 승려의 체술은 살해가 아닌 제압에 근거를 두고 있는 법. 막무가내로 급소를 노리고 들어오는 모리스의 공격법은 오히려 자신 같은 용병 놈이나 배워먹는 주먹질과 흡사했다.

“ ...... ”

모리스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조금의 웃음기도 남아있지 않는 녹색 눈으로 엘을 바라볼 뿐이었다. 엘의 입술이 씰룩거리며 미소 비슷한 것을 그렸다.

“ 나는 레이나의 기사다. 그녀가 어떤 놈을 데려오든, 그놈의 정체가 무엇이든 그런건 상관하지 않아. 하지만 네놈이 그녀를 상처 입힌다면, 만약 그녀를 배신한다면- ”

엘이 벽에 꼽힌 자신의 검을 뽑아 들었다.

“ 명심해라. 너를, 죽이겠다. ”

그것은 단순한 협박이 아니었다. 살기로 번들거리는 엘의 금빛 눈동자가 그 말을 증명하고 있었다. 엘은 검을 자신의 검집에 거칠게 검을 집어넣고는, 막사 밖으로 나가버렸다. 모리스는 막사의 문이 닫힐 때까지, 아니 그 문이 닫히고 나서 한참이 지날 때까지도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 ...피냄새...라고. ”

얼마간의 시간이 지났을까. 모리스는 자신의 맨손을 내려다보며 더듬더듬 입술을 움직였다. 승려의 것이라기엔 단단하고 거칠며 커다란 그의 손은 힘없이 주먹을 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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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솔비의 관심사 : 다이어트
현재 보름동안 2Kg 감량에 성공했습니다.
노력할게요.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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