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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도시 기록보관소

mirpia 열여덟 살의 나에게.

2006.10.21 18:41

솔비 조회 수:1294 추천: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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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열여덟 살의 나에게.(b)

고등학생.

열여덟이라는 어정쩡한 나이.

어른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아이도 아닌- 세상에 나가는 건 겁내하면서도 어린애 취급받기는 죽기보다 싫어하던, 그때의 나는 그랬다.

그런 녀석 이었다.

나이차가 많이 나지 않는 여동생이 한명, 그리고 어머니 아버지는 모두 맞벌이를 하시는 평범한 가정의 맏아들.

지지리도 말 안 듣는 녀석.

학교고 집이고 무엇이고, 아무것에도 흥미를 붙이지 못한 채 그저 되는대로 살아가던 빌어먹을 고등학교 2학년생.

집은 들어가는 날보다는 들어가지 않는 날이 많았고, 학교에서도 조퇴나 결석은 밥 먹듯이 행했으며, 술과 담배는 기본이었고, 가끔은 도둑질이나 싸움도 했다.

딱히 그런 생활이 재미있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규칙 따위를 지키거나, 멍하니 학교를 다닌다거나, 공부를 한다거나, 운동을 하는 것보다야 그편이 덜 지루했기에

나는 그냥 그저 그렇게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는 그런 생활도 조금은 지루해 졌다고 느낄 무렵.

그 사건이 일어났다.

그것은 지금부터 이야기할 이야기의 내용이기도 하다.

제법 짧고 별로 대단할 것도 없는 매우 평범한 이야기 이지만.



1. 오전 10시경.  

“ ...심심하다. ”

나는 햇볕이 잘 드는 베란다에 누워 멍하니 창밖을 쳐다보며 중얼거렸다. 우리 집은 강변에 자리 잡고 있는 아파트 4층으로, 앞을 가리는 건물이 없었기에 오전이면 볕이 제대로 집을 향해 쏟아지곤 했다. 참고로 오늘은 토욜일이나 일요일이 아닌 수요일이다. 아, 물론 공휴일이나 개교기념일도 아니다.

그런데 이런 날 왜 집에 있냐고?

아- 얘기하자면 긴데, 그냥 압축해서 한 보름정도 정학 먹었다. 간신히 퇴학은 피하는 형식으로. 하아.. 평상시에는 나한테 관심도 없던 우리 아버지께서 이번만큼은 정말 열이 받치셨는지, 돈이고 옷이고 죄다 싸그리 끌어다가 압수해 버리셨다. 그리하야 현재 나에게 있는 물건은 교복 한 벌과, 지금 입고 있는 츄리링한벌이 전부다.

한마디로 외출금지지. 진짜 좆같네.

“ 어차피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그 씨발 개새끼 완전 조져놓는건데.. ”

나는 입맛을 쩝쩝 다시며 습관처럼 바지 주머니에 담배를 찾아 손을 집어넣다가, 없다는 것을 깨닫고는 한숨을 내쉬며 윗몸을 벌떡 일으켰다. 진짜 심심하네.

열 받으신 아버님께서 텔레비전이랑 컴퓨터를 때려 부셔 놓으셔서(동생이 그것 땜에 좀 화난 듯 했다. 쩝.) 집에서 딱히 할일도 없고.. 아~ 심심해, 심심해, 심심해라...

정말 한심한 꼴로 햇볕이나 쬐이며 이리 뒹굴 저리 뒹굴 하던 나는, 문득 벼란다 끝에 자리 잡고 있는 창고를 발견하고는 잠시 생각을 하다 벌떡 몸을 일으켜 창고를 향해 걸어갔다. 사실 가족들이 집을 나간 직후부터 집안에 혹시 돈이 없나 온갖곳을 다 뒤져봤지만 돈다운 돈이 없었기에 (침대 밑에서 백원찾은게 전부다.) 혹시 창고안에라면 뭔가 돈 되는 물건이 없을까나, 하는 생각에서였다.

별 망설임도 없이 창고 문을 벌컥 열자, 퀴퀴한 냄새와 함께 묵은 먼지가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선반 몇 개로 이루어진 반평정도 크기인 그 작은 공간 안에는, 안 쓰는 가전제품이나 별 시덥잔은 잡동사니들이 곤히 잠을 자고 있었다. 언뜻 보기에도 전혀 돈이 되지 않을 것 같은 물건들뿐이었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손과 옷에 먼지를 뭍혀가며 발굴작업에 착수한지 어엿 한 시간. 예상대로 돈이 될만한 물건은 손톱만큼도 나오지 않았다. 으아아아아아!~~ 우리 집은 왜 이렇게 가난한거야!!

“ 아~ 진짜 되는 일이 없냐. 짜증 지대다. ”

창고 문을 열어놓은채로 투덜거리며 바닥에 덜렁 들어 누운 나는 그냥 멍하니 창고를 쳐다보다, 무언가 창고 바닥쪽 끄트머리에서 반짝거리는 금속성의 물질을 발견하고는 미간을 찡그리며 다시 몸을 벌떡 일으켰다. 그리고는 엎드린 채로 손을 뻗어 가전제품 틈사이, 깊숙한 곳에 끼이다시피 들어있는 그 금속제질의 물건을 꺼내려 했다.

생각보다 깊숙한 곳에 끼여 있는 것인지 손이 잘 닿지를 않아, 낑낑거리며 창고와 실랑이를 벌인지 십분 가량의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나는 그 물건을 꺼낼 수가 있었다. 내 주먹 두개정도 크기인 그 물건은 제법 묵직했고 까만 가죽 커버에 단단히 쌓여 있었다. 내가 본 반짝이는 금속은 그 가죽커버의 버클부분 이었는데, 내가 발견했다는 것이 신기할 정도로 그 버클은 낡고 닳아 껍질이 많이 벗겨져 있었다. 하지만 가죽커버 자체는 매우 고급스러운 광택이 나는 것으로, 왠지 돈이 될 것 같다는 느낌이 확확 나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어떻게 벋기는 것인지 몰라, 잠시 실랑이를 하며 간신히 가죽커버를 벋기고 나니 그 안에서는 대충 커버의 모양을 보고는 짐작했었지만 새카만 금속으로 만들어진 카메라가 하나 나왔다. 약간 기스가 나있긴 했지만, 제법 그럴싸해 보이는 물건이었다. 버튼이 여러개 있었고, 앞쪽에는 커다란 렌즈가 하나 달려있는, 늘 디카만 보아왔던 나에게는 매우 생소한 느낌의 아날로그식 필름 카메라였다.

“ 펜... 탁스? "

카메라의 본체위에 커다랗게 적힌 영어를 짧은 실력으로나마 읽어보니 펜탁스라는 발음이 나왔다. 정말로 이렇게 읽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이 카메라는 펜탁스라는 명칭의 카메라인 듯 했다. 그 펜탁스라는 것이 제법 값이 나가는 브랜드인지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래도 팔면 돈이 나오지 않을까 싶어 나는 카메라를 한손에 들고 재빨리 일어섰다.

일단 나에게 하나 남은 교복으로 얼른 옷을 갈아입은 뒤에, 세수를 하고 머리에 가볍게 왁스를 칠한 다음 나는 카메라를 든 채 얼른 집에서 뛰쳐나갔다.

하지만 너무나도 들떴던 내가 간과하고 있던 사실이 하나 있었으니, 이 빌어먹을 촌동내에는 카메라집이 단 한곳도 없었던 것이다. 카메라를 팔만한 곳은 버스나 지하철을 타고 조금 나가야 있을 텐데, 지금의 나에게는 그 차비조차 없었다.

나는 그 사실을 뒤늦게야 깨닫곤...



2. 아마도 오후 2시쯤.

“ 아휴... ”

나는 우리 집 근처의 강변에 드러누워 이마를 콩콩 때리며 혼자 자괴감에 빠져 있었다. 카메라가 있으면 뭐하니, 팔지를 못하는데. 못하는데~~

나를 놀리려는 듯 내 머리 바로위에서는 뜨거운 햇살이 나를 항해 내리 쬐이고 있었다. 또 가을의 하늘은 왜 이렇게 높고 맑은 건지. 정말로 더 열 받는 일이 아닐 수가 없었다.

게다가 이놈의 카메라는 나를 놀리는 건지 셔터를 눌러도 반응을 보이지도 않고.. 뭔가 위쪽에 달려있는 화면에는 아무런 문자도 뜨질 않고... 혹시 이거 가져다 줘도 고장난거라 팔리기는 거녕, 수리비만 나오는거 아냐? 하는 불길한 생각마저 내 머릿속을 맴돌고 있었다.  

진짜 되는 일이라곤 하나도 없다. 나는 귀찮다는 듯 카메라를 머리춤에 대충 내팽개쳐 놓고는 오른쪽 팔뚝으로 눈을 가렸다. 이젠 슬슬 배도 고프고... 휴, 집에는 먹을 것도 없지 참. 어쩌다 내가 이렇게 된 거냐...

아휴...

정말...

짱...

...나......

......

......후암

...... ...... ......

...... ...... ......

“ ...기종이...... 아... 잖아. ”

...응? 잠시 졸았나. 제법 가까이에서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에 잠을 깬 나는 멍하니 두 눈을 떴다. 두 눈을 뜨자 제일 먼저 누렇게 변색되어있는 잔디위에 늘어져있는 새카만 교복치마 끝자락이 내 눈에 들어왔다. 잠이 덜깬 상태로 이게 뭔가 싶어 고개를 들어 좀더 위를 올려다보니 까만색 교복 재킷이 보였고, 좀더 위를 보니 까만 단발머리칼과, 그 머리칼에 가려 자세히 보이지는 않지만 일단 동그란 모양의 얼굴이 보였다.

한마디로 웬 처음 보는 여자애가 내 머리맡에 겁도 없이 앉아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내 허락도 없이 카메라까지 만지작거리고 있는 형태로. 뭐냐, 얜...

“ 너.. ”

내가 몸을 느릿느릿 일으키며 입을 열자 그 여자애는 그제야 내가 깼다는 걸 눈치 챈 것인지 화들짝 놀라며 내 쪽을 쳐다보았다. 통통한 뺨이 인상적인 동글동글한 얼굴에, 동그란 외커풀의 눈, 몽톡한 콧날과 작은 입.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결코 미인상이라고는 할 수 없는 얼굴이 당황한 듯 나를 계속 응시했다. 여전히 카메라는 양손에 꽉 쥔 채로.

머리위에서는 조금 기운 태양이 여전히 반짝반짝 내 어깻죽지를 태워대고 있었다. 사람이 다닐만한 시간이 아니라 쥐 죽은 듯이 조용한 강변에서 웬 낮선 여자애랑 몇 분인가 눈싸움을 하고 있는 상황이 연출되었고, 결국 나는 이런 내가 왠지 모르게 한심해져 한손을 뻗어 내 카메라를 낚아챘다.

“ 내 카메라야. ”

“ 어? 아, 응. 어? 그렇지. 아, 그래. ”

그제야 말문이 트인 그 여자애는 배시시 웃으며 이제는 빈손이 되어버린 손으로 자신의 머리칼을 가볍게 긁적거렸다. 뭐, 웃으니깐 아주 못쓸 얼굴은 아니군. 그나저나 지금 몇 시지? 내가 얼마나 잔건가...

“ 저기, 그런데 그 카메라 네 거야? ”

카메라를 내 옆에 내려놓고, 몇 시인가 싶어 하늘을 올려다보며 한차례 하품을 하고 있던 나는 옆에서 들려온 조그마한 질문에 살짝 미간을 찡그리며 대꾸했다.

“ 그럼, 여기에 나 말고 누가 또 있냐? ”

“ 그렇구나. 그럼 카메라 배우는 중? ”

“ 뭐, 건 아니고. ”

대충 하늘을 올려다보니 한 오후 두시쯤 된 것 같아, 나는 카메라를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 옆에서 말똥말똥한 눈으로 날 올려다보는 여자애에게 대충대충 건성으로 대답을 하며. 그리고 이제 다시 슬슬 집으로 돌아갈까 생각을 하고 있는데, 문득 옆의 여자애가 내 카메라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던 것이 생각이나 그애를 돌아보며 입을 열었다.

“ 근데 너, 카메라 볼 줄 아냐? ”

“ 응? 음..조금은. ”

“ 이 카메라, 얼마쯤 나올 것 같냐? ”

내 질문에 그 여자애는 잠시 당황한 듯 어안이 벙벙한 눈으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그리곤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싶더니, 갑자기 나를 향해 한쪽 손을 불쑥 내밀었다. 뭔가 싶어 그애의 손을 쳐다보니, 그애는 뭔가가 불만인지 조금 굳은 얼굴로 말했다.

“ 카메라. ”

아, 카메라 좀 보게 달라는 얘기였나? 나는 그애에게 카메라를 건네주었고, 그애는 여전히 바닥에 주저앉은 채로 심각한 표정이 되어 카메라를 살피기 시작했다.

“ 이 카메라는 펜탁스 P50형이야. 수동카메라 치고는 제법 편리한 조종방식과 튼튼한 본체가 특징. 초보자들이 많이 찾는 카메라지. 하지만 그 자체의 색감도 매우 좋은 편이라 이 카메라를 메인 카메라로 삼아도 무리가 없는 물건이기도 해. 보아하니 이 카메라도 한 20년은 된 물건인 것 같네. 하지만 보존 상태도 양호하고, 배터리만 갈아 끼워주면 무리 없이 사용할 수 있을 것 같아. 응. 사용을 해봐야 알겠지만. ”

그애의 입에서 반은 알아들을만하고 반은 알아듣지 못할만한 말들이 마구 쏟아져 나왔기에 어디쯤에서 말을 끊어야 할지 모르고 멍하니 그 말을 계속 경청하던 나는, 대충 그애가 말을 멈췄다 싶을 때 즈음에 재빨리 입을 열었다.

“ 그래서 값이 얼마냐고. ”

그애는 나를 힐끔 올려다보더니 대꾸했다.

“ 가격은 대충 20만 원 선에서 요즘 팔리고 있는 카메라야. 하지만, 보아하니 이 카메라는 중형이고 꽤 오래되어서.. 기껏해야 이삼만 원 정도밖에 못 받겠네. ”

많이 받아봐야 삼만 원..인 것인가. 아~ 진짜. 팔아봐야 차비랑 밥값밖에 안나오겠네. 어쩌지. 그냥 그래도 팔아 치울까..

“ 너 이 카메라 팔 거야? ”

양손을 바지 주머니에 넣고 상당히 심각한 고민에 빠져있던 나는, 그애를 쳐다보았다. 그애는 여전히 카메라를 단단히 쥔 채로 말을 이었다.

“ 어차피 팔꺼면 나한테 팔지 않을래? ”

어? 뭐라고? 내가 당황하여 그애를 쳐다보자, 그애는 단호한 목소리로 쐐기를 박았다.

“ 값은 잘 쳐줄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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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 말씀드리지만 단편입니다ㅇㅅㅇ!
그럼 재미있게 즐겨주세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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