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창조도시 기록보관소

polarbearjmg 바하카프 5회

2006.11.21 23:49

영원전설 조회 수:2170 추천:3

extra_vars1 05 
extra_vars2 257-1 
extra_vars3
extra_vars4
extra_vars5
extra_vars6
extra_vars7  
extra_vars8  
extra_vars9  






  밤이 되면 이곳은 이제 슬슬 한가해 진다.  물론 완전히 어두워지면 문을 닫는 보통 상점들에 비해 여관은 거의 새벽까지 불을 키고 있다가 잠이 든다.  그것도 그럴 것이 이곳엔 항상 사람들이 시도 때도 없이 술을 마시러 오거나 숙박을 하러 오기 때문에 문 닫는 시간이 그만큼 느려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문을 늦게 여는 것도 아니고.  다행이 이런 말도 안 돼는 취침과 기상시간이 그녀에게 강요되지는 않았다.  늦잠을 자면 가차 없지만 적어도 잠이 모자라는 법은 없다고 생각한다.  여관 문을 닫고 여는 것은 언제나 쟈브로 아저씨의 몫.  이거 하나만큼은 정말 대단하다 할 정도로 잘해낸다.  기합으로 버티는 거지, 라는데 솔직히 아저씨의 수면시간을 보면 인간이라기 보단 짐승의 그것과도 비슷한 듯하다.  아니, 그의 여러 행동가지와 모습으로 유추해 볼 때 애당초 인간이 아닌 웬디고같은 걸지도(가령 온 얼굴을 덮는 듯 하는 저 수염이라든가).

  부웅 하며 봉이 바람을 가른다.  지금은 특히 사람이 적은 10시 이후.  그녀가 그다지 도와주지 않아도 쟈브로 아저씨 혼자서 충분히 접대를 할 수 있는 시간이다.  게다가 그리 일 할 기분도 아니라고.

  한 번 더 허공을 향해 봉을 휘두른다.  한 번, 또 한 번.  시원한 소리를 내며 봉을 휘두른다.  일 때문에 예전보다 연습량이 줄어들었지만 그렇다고 빼먹을 리 없다.  무엇보다 자신이 때를 써서 할 수 없이 가르쳐준 거다.  자신이 그다지 성실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그렇게까지 해놓고 게을리 한다면 체면이 안 선다.  결심을 꺾는 것도 마음에 안 들고.  하고자 한다면 끝을 봐야 한다는 게 그녀의 생각.  그리고 봉술 연습은 솔직히 그녀 마음에 든다.

  특히 꿀꿀한 날일 때는 더욱이.

  한 점을 향해 강하게 봉을 찌른다.  부드럽게, 하지만 날카롭게.  그대로 몸을 돌려 뒤를 휘두르고 내려친다.  단지 그것 뿐.  봉을 돌리는 것 따위, 고수라면 모를까, 그녀 수준에선 그다지 도움이 된다 할 수 없다.  보기에 멋있기는 하나, 기본이 안 되어 있다면 태풍처럼 보일지언정 그 실체는 산들바람조차 되지 않는다.  

  두 손으로 봉을 잡고 몸을 낮추며 땅을 내려친다.  솔직히 어디서 봉술을 구체적으로 배우는 사람에게 있어 그녀의 봉술은 어딘가 체계가 잡혀있지 않은, 그저 때리기 위한 봉술, 한마디로 무술로 보이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것도 그럴 것이 그녀의 스승인 쟈브로 아저씨의 봉술이 바로 그것만을 위한 무기술이기에.  

  이제는 거의 20년 전 일인, ‘흑혈광전’이라고도 불리는 그 대전쟁 안에서 그의 몸에 새겨진 봉술.  그것은 상대의 공격을 막고 상대적으로 약한 곳을 찌르거나 휘두르는 것이 다이다.  찌르는 것은 일격필살이요, 휘두르는 것은 공수를 다함이라.  점에서 원으로, 원에서 점으로.

  그러기에 그에게 봉술을 배울 때 했던 것은 기초체력단련, 기본기, 대련 이 3가지뿐이다.  품세라든지 초식이라든지 그런 거 가르쳐주고 싶어도 애초에 지식이 없기에 가르쳐 줄 수 없었지.  하지만 그다지 불만은 없었다.  자신이 택한 길이고, 애초에 그다지 선택의 여지란 것이 없었다.  받아줄지도 의문이지만 병사나 기사가 되고 싶은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무술 스승을 찾는다고 산지사방을 돌아다닐 맘은 없고, 도시엔 쟈브로만한 실력자가 있을 리 만무하다.  적어도 자신이 아는 바로는 없지.  게다가 만약 그 때 그의 봉을 보지 못했더라면 지금까지 봉술 대신 책을 어떻게든 구해서 마법을 독학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실제로 그 쪽으로 재능이 있다고 생각하는 바.

  왼손의 손목을 움직여 봉 끝을 돌리는 찰나에 다시 한 번 내지른다.  마음이 시원한 것도 잠시, 오후에 본 것이 생각나자 마음 속 묵은 상처가 다시 피를 뿜는 듯 해 숨을 들이 쉰 뒤 봉을 계속 휘두른다.

  공포에 찬 눈빛은 많이 보았다.  뒷골목 생활을 하면서 ‘그’를 뺀 그녀의 나머지 동료들에게서 많이 보았던 눈이다.  

  무언가 동기라든지 목적의식 따위 없이 정말 우연히 만나서 우연히 인정받고 자연히 그들과 어울려 다녔다.  동질감이라면 조금 느꼈을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들에 비한다면 그녀는 유복한 편이겠지.  그렇기에 그들이 언제나 쓰고 다니는 가면 뒤의 불안감을 그 일이 있을 때 까지 공유하지 못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들이 살기 위해 하던 일들을, 단순히 유희정도로가 아닌, 생활의 한 부분으로서 살아왔고 또한 살아가던 그들에게 있어,  일을 할 땐 언제나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자신 있게 전문가처럼 행동했을지라도 언제나 그들의 내면엔 불안감이 숨겨져 있었던 거다.  그리고 그것은 일이 잘못 되었을 때 순식간에 뿜어져 나오는 용암처럼 불거져 나와 공포라는 감정으로 자신을 변화시켰던 것이다.

  하지만 누구도 자신들의 눈에 슬픔 따윈 담지 않았다.




  [꼴불견이잖아, 그런 거.]




  피로 이어진 자들에게 마저 버림받고 배신당한 그들의 영혼에 슬픔이 존재할 자리는 이미 지워져 버렸다.  마음속엔 뜨거운 분노와 복수심뿐만이 존재했기에 슬프다는 감정에 호소할 그들의 눈물샘은 이미 그 열기에 의해 증발해 버렸던 것이다.  게다가 하루하루 살아가기가 힘든 그들에게 신세타령은 시간낭비.

  아아, 그래서 그 따위 눈을 하고 있는 놈들을 보면 이렇게 속이 나빠지는 건지도 모르겠다.  

  물론 사는 동안 그런 감정 담을 때가 없는 인간은 없을 거다.  자신도 쟈브로 아저씨의 집에서 처음 발을 들여놓았을 때도 그랬고 그 일 후에도 몇 달간은 그런 썩은 눈을 하면서 돌아다녔으니까.  

  하지만 그녀가 본 눈은 그런 성질의 것이 아니다.

  슬프다, 라는 묘사는 생각보다 너무 간단하고 포괄적인 것일지도 모른다.  그녀가 보았던 눈은 슬프고 비극적이지만 단편적인 일들, 그런 것들을 슬퍼하는 것이 아니다.  그건 만성적인, 삶을 반쯤 포기한 눈빛.

  한 대 때려주고 싶은 마음이 너무 커서 대신 애꿎은 땅바닥을 다시 내려친다.  아, 정말, 기분 좀 풀려고 휘둘렀는데 그다지 나아지는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한 숨을 내쉬며 털썩 주저앉는다.  이렇게 화를 낸다 한들, 솔직히 그녀가 무슨 힘으로 무엇을 바꾼다는 말인가.  짐을 호위하는 병사들은 둘째치더라도 짐 위에 앉아있던 그 인영, 정-말로 심상치 않았다.  그런 사람들을 모두 해쳐나가고 우리를 나갈 마음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를 사람을 구출할 힘이 있을 리 없다.  있을 리 없지만...




  “제길, 너무 찝찝해.”




  봉 끝을 쥐고 있는 왼손에 힘을 준다.  못 봤다면 또 모르지만, 이미 그런 걸 본 이상, 어떨까, 한 번 판을 벌려야 할까.  하지만 애초에 저 사람이 왜 저렇게 실려 가는지 사정 같은 거 알지 못한다.  노예일 수도 있고, 또는 길드에서 수배한 흉악범일지도.  그런 눈으로 천벌 받을 짓 따위 할 수 없을 것 같지만.  어쨌든 이렇게 아는 게 전무한 상태에서 도와주러 가는 게 과연 옳은 일일까...  그런데.

  애초에, 자신은 왜 이런 걸 가지고 고민하고 있는 거지?  

  갑자기 그녀의 행동이 태엽나간 인형마냥 딱 하고 멈춘다.  눈이 커지면서 정신이 맑아진다고 할까, 무언가가 쏴아 하면서 빠져나가는 듯 한 느낌.

  에, 그다지 생판 모르는 남 눈빛이 애처롭다고 철저하게 감시되고 있는 곳에서 과연 구해낼 수 있을까, 라는 터무니없는 가능성을 생각할 정도로 호인이 아닐 텐데, 아니, 물론 그 녀석의 눈은 열 받는 것이지만..

  누군가가 살짝 땅을 짚는 소리.  피넬은 소리가 난 쪽에 고개를 돌리자마자 지면을 박차고 일어선다.

  무언가 거대한 것이 그녀 앞에 포복하고 있다.

  여관 쪽에서의 불빛 덕분에 어두운 밤이라도 대략적인 윤곽이 보인다.  하지만 그 윤곽이 너무 터무니없기에 그녀는 잠시 얼어붙는다.  

  사람이라기엔 너무 크고 긴 머리.  마치 뱀..  보다는 좀 더 우직한 면이 있다.  그것의 긴 꼬리는 땅을 천천히 흩으며 흔들리고 땅을 짚었던 앞발은 들어 올려진다.

  크기는 거의 피넬의 두 배.  모습은 둘째치더라도 그 크기만으로도 그녀를 압박한다.

  그것이 갑작스럽게 고개를 돌려 피넬을 노려본다.  




  세로로 찢어진 날카로운 눈.  그녀를 바라보는 노란 빛의 안광.  그것은 분명.




  “너..?”




  그녀가 말을 걸려 하자 그것은 바짝 몸을 긴장시키더니 이내 여관에서 반대방향으로 뛰기 시작한다.




  “아?!”




  무서울 정도로 빠르다.  저 체구에 저 말도 안 되는 속도는 무엇이란 말인가?  아, 게다가 아까 땅에 착지한 듯 했을 때 무슨 소릴 들었지?  사뿐?  자기 귀로 들은 거지만 정말 터무니없다.  모습부터 그 행동거지까지 모두가.  

  따라 달리려다 멈춘다.  만약 정말로 저 녀석이 그 짐에서 도망쳐 나온 것이라면 이 곳 지리를 잘 알 리가 없다.  게다가 저 상태를 봐선 아무래도 쫒기는 중이겠지.  아니면 쫓긴다 란 강박관념을 가지고 있다든가.  하여튼 간 그냥 이대로 아무 준비도 없이 쫓을 순 없다.  추적자도 위험하지만 지금의 저 녀석과 친절한 대화를 기대하는 것은 어리석은 생각이다.  저 녀석이 이곳을 빠져 나갈 때 까진 아직 약간의 시간이 남아있다.  녀석도 멋대로 정문을 이용할 순 없을 테니.  그러니..




  “장갑.  장갑만 가지고 잽싸게 나와야지.”




  피넬은 중얼거리며 여관으로 뛰어 들어간다.  그래, 그 장갑만 있다면 어느 정도 커버가 된다.  추적자가 검은 인도자지만 설마 같은 사람이 짐짝이나 호송하고 있지는 않겠지.

  아마도.



--------------------------------------------------------



  리뉴얼 기념 =ㅅ=b  어, 근데 이러다간 정말 비축분 다 나가겠다.. OTL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22 바하카프 10회 영원전설 2009.11.08 800
21 바하카프 9회 [2] 영원전설 2009.10.21 794
20 바하카프 8회 [8] 영원전설 2007.08.08 2229
19 바하카프 7회 [6] file 영원전설 2006.12.31 3205
18 바하카프 6회 [4] file 영원전설 2006.12.10 2523
» 바하카프 5회 [1] file 영원전설 2006.11.21 2170
16 바하카프 4회 [2] file 영원전설 2006.11.14 2821
15 바하카프 3회 [3] file 영원전설 2006.10.31 1771
14 바하카프 2회 [5] file 영원전설 2006.10.10 1962
13 바하카프 1회 [6] file 영원전설 2006.09.18 1514
12 Tialist [8] file 영원전설 2006.08.29 1190
11 Tialist [4] file 영원전설 2006.07.04 868
10 Tialist [4] file 영원전설 2006.06.19 719
9 Tialist [8] file 영원전설 2006.05.07 718
8 Tialist [4] file 영원전설 2006.04.17 957
7 Tialist [8] file 영원전설 2006.03.30 748
6 Necromancers [3] file 영원전설 2006.03.22 825
5 Necromancers [7] file 영원전설 2006.01.21 937
4 이 세계의 마법의 구조 [5] file 영원전설 2005.09.30 984
3 Necromancers [5] file 영원전설 2005.08.11 1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