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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도시 기록보관소

polarbearjmg Necromancers

2006.03.22 03:38

영원전설 조회 수:825 추천: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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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령술사란 존재는 본래 일을 하는데 에 있어서 협동심이란 눈곱만큼도 없는 놈들이다.  그나마 그거라도 있으면 좀 좋을까.  그것은 강령술사의 급이 높으면 높을수록 심해지면 심해졌지 더 하지는 않았다.  집단이란 것은 순전히 그 날 이후, 늘어나는 버그의 위협 때문에 만들어진 것일 뿐.  
  집단의 변화는 버그이식을 감행한 강령술사들이 등장하면서부터이다.  어렸을 적부터 훈련 받았고, 오로지 버그가 이식되어 집단에 충성하는 강령술사가 되기 위해 자라온 그들의 숫자가 점차 많아지자, 집단은 곧 체계적인 조직을 갖춘 그룹으로 승화되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이미 말했듯이, 강령술사란 나쁘게 말하면 협동심 같은 건 개뿔도 없는 놈들, 좋게 말하면 자유분방한 무리들이다.  게다가 오로지 힘만을 추구하는 버그 이식이란 방법에 상당수의 강령술사들은 반발했다.  하지만 집단의 힘은 막강했고, 반발을 한 강령술사들은 추방내지 죽음을 당했다.  
  본래부터 추방자란, 집단의 일이 자신의 이익과 맞지 않아 탈퇴하곤 은밀하게 자신이 하고 싶은 것 다 하고 사는, 어떻게 보면 강령술사의 양아치 같은 존재들이다.  하지만 집단이 대대적으로 물갈이를 하고 난 후에는, 이 추방자들의 대열에 집단에 반하는 사상을 가진 강령술사들 역시 포함되었다.  이 계열의 추방자들은 훗날 집단의 위협과 강령술사들의 이런 내분에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시시각각 다가오는 버그의 위협에 맞서기 위해 그들만의 집단을 설립했으니, 그것이 바로 네이 알시온인 것이다.  네이 알시온은 집단, 그러니까, 알시온 과는 달리, 한 곳에 거대한 집합소같은 것을 지을 수 가 없다.  그런 짓을 그들이 그저 눈 크게 뜨고 바라보기만 할 리가 없으니까.  그래서 대부분의 네이 알시온들은 세계 곳곳에 흩어져 있는 상황이다.  그 편이 발각 당할 확률이 적고 이런 식으론 그들이 일망타진 당할 확률이 없어지니까 말이다.  한 곳에 수시로 모이는 사람들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 신음소리를 내며 척 봐도 돈을 처바른 듯 한 소파에 앉아 있는 선글라스를 낀 회색 머리의 중년의 남자도 그 중에 하나이다.  그가 머무르고 있는 곳은 세계의 대재벌 중 하나인 영국의 베르도 라이벨슨경의 집.  일찍이 부터 부호였던 아버지의 재산을 물려받아 대단한 수완으로 본래 있었던 자산을 갑절로 만들어버린 그는, 네이 알시온의 돈을 대주는 후원자중 하나이다.  그들이 뭐가 미쳤다고 돈을 대주나.  그것은 이 라이벨슨 가문 자체가 본래 오랜 옛날부터 전해 내려온 강령술사의 가문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베르도 라이벨슨경은 집단이 두 개로 분열된 당시에 있었던 독의 강령술사이자 네이 알시온의 창시자중 하나.  그와 네이 알시온은 땔 레야 땔 수 없는 사이 일 수밖에 없다.  
  그런 그의 집에서 이 남자는 왜 한숨을 쉬고 있는가.  참고로 라이벨슨경의 집에 그가 부족한 것은 절대 없다.  2010년대의 집안 치곤 좀 고풍스러운 면이 있지만, 푹신하고 럭셔리한 소파, 적당히 따뜻한 공기, 탁 트인 공간, 깨끗한 유리 탁자.  티비가 다른 방에 있다는 것이 아쉽다면 아쉬운 거지만 조용한 휴식을 취하기엔 정말 최적의 장소인 것이다.  하지만 이런 휴식의 장소마저도 그의 근심을 덜어내기엔 역부족인 듯하다.

  “그렇게 앉아 있으면 생각이 잘 나요?”

  그 남자는 느릿한 동작으로 목소리의 주인공을 바라본다.  새빨간 적색의 머리카락, 날카로운 눈매.  완벽한 허리라인.  무릎까지 오는 갈색 스커트.  청색 세로 줄무늬의 블라우스 위에 갈색 조끼를 껴입은 매력적인 그녀는 지금 그를 매섭게 노려보고 있다.

  “너를 보고 있으면 생각이 잘 날 것도 같은데.  아, 네가 옆에 앉아 있다면 아주 비상한 아이디어가 떠오를 지도 몰라.  오, 아니면 아예 그냥 다른 방에 가서 침..”

  그녀는 그대로 옆에 있던 쿠션을 우악스럽게 잡아 그에게 집어 던졌다.  그의 고개는 무려 회전하는 쿠션에 얼굴이 정통으로 꽃이면서 세차게 뒤로 젖혀진다.  
  
  “남의 집을 아주 당신 집처럼 여기는 것은 둘째 치고, 무슨 이상한 소리를 지껄이는 겁니까!  게다가 그 태도도 영 마음에 안 들어요.  무지하게 편한 소파 위에 무지하게 편한 자세로 한숨 셔봤자 씨알도 안 먹힌다고요.”

  “..  마치 자기 물건인양 쿠션 던지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고?”

  “당신 입 닥치게 하기 위해 치러야 한 작은 희생이죠.”

  아, 그래요.  납득이 가요.  납득이..  갈 리가 있냐?!  솔직히 말해서, 이곳에 이렇게 앉자있는 것이 뭐가 어때서?!  어차피 이 집안 물건들은 다 그런 거 아니야?!  뭐야, 지붕 위에 올라가서 자중이라도 할까?!  게다가, 여긴 원체부터 우리가 마음대로 지낼 수 있도록 베르도 영감이 배려해준 곳이라고?!  도대체 뭐가 어때서?! 물론 자신의 발언에 다분히 문제가 있기는 하였지만 그건 그저 농담..  아니, 정말로 실현되면 환상적이지만..!!
  ..  이 모든 것들은 소용돌이치는 그의 머릿속 투덜거림의 일부분일 뿐이다.  겉으로 이렇게 대놓고 말할 수는 없지 않나?  얼굴엔 쿠션을 얹어놓고 그녀의 일격에 당한 그 자세 그대로 소파에 누워있는 네르 마쿠스경, 30세 초반의 남자. 아직 그는 정신머리가 존재한다.  

  “아하하, 농담이라도 좀 심하네, 테레나양.  아무리 그래도 일단은 존경을 받아야 할 자리에 있는데..”      
  
  “당신과 몇 년간 같이 일하면서 존경심이라곤 이미 나락으로 떨어진지 오래입니다, 네르님.”

  생긋 웃으며 독설을 퍼붓는 그녀의 모습에 네르는 기가 찼다.  상관에게 정말 이래도 되는 거야?  물론 그가 좀 나이에 비해 혈기왕성하고, 겉은 중년이라도 속은 결단코 청춘이니까, 다른 장로들보다 그 위엄이 떨어질지도 모르지만, 이렇게 신랄한 말을 들을 이유는 없는 것이다.
  ..  아니, 생각해 보면 없는 것은 아니구나.  하지만 존경심을 이 정도 까지 깎아내리는 일은 없는데 말이지.  예를 들어서 제 작년 캐나다에 머무르고 있을 때, 그러니까 7월 1일, 캐나다 데이때 들뜬 마음으로 무심코 심지에 불을 붙였더니 몇십개의 폭죽들이 한꺼번에 터져나갔다던가.  아니, 그러니까, 난 붙이라고 해서 붙인 죄 밖에 없다고.  음, 확실히 그때 너무 많이 마셔서 어느 심지에 불을 붙였는지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작년에 했던 일 중 가장 인상 깊은 일이라면 또, 그래,  야구장에서 경기를 관람하다 날아오는 홈런 볼을 줍기 위해 소수의 사람들을 병원에 보낸 적이 있었지.  하지만 가벼운 타박상이었으니까.  병원에 2주 만 누워있으면 다 낫는 거였는데 뭐.          
  아, 그리고 최근에는 네스 호의 괴수를 찾기 위해 단신으로 그룹을 이탈한 결과 일주일 정도 실종된 일도 있었군.  아니, 이렇게 말하니까 마치 남의 일 같은데?  핫핫핫핫핫...
  
  ”..  벤군이 그를 쫒는 것이 역시 걱정되죠?“

  갑작스런 테레나의 물음에도 그는 태연하게 쿠션을 옆으로 치워버리며 그대로 누워있는다.

  “그런 빌어먹을 놈 걱정을 누가 한다고.”

  “네이 알시온의 정보요원들을 이용해 그의 정보를 최대한 모으고 있으시면 서도 그런 말을 태연하게도 하시는 군요.”

  그녀의 말에 네르는 조금 무안한 듯한 기색이다.

  “..  그 녀석이 그토록 집착하니까, 일이 이렇게 돼 버린 이상, 그 녀석에게 도움 되는 일이 없을까 생각해서 말이지.  뭐, 그 바보 같은 놈의 신변은 그리 문제없어.  그리 쉽게 당할 놈도 아니고, 더구나 채림이도 보냈으니까.”

  “..  누굴 어디로 누가 어떻게 보냈다구요?”

  의심의 눈초리로 그를 바라보는 테레나에 네르는 의아해 한다.

  “채림, 유채림.  모르나?”

  “아니, 그녀는 알지만, 어디로 누가 어떻게?”

  “당연히 내가 동행해서 아침 8시 55분 비행기로 태워 보냈지.  그 녀석, 워낙 벤을 좋아하잖아?  들뜬 마음으로 냉큼 타버리더라구.”

  “..  네르님.”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며 그녀는 침울한 목소리로 그에게 말한다.

  “한국행 비행기는 저녁 8시 5분입니다만.”

  네르의 얼굴이 잠시 굳는다.

  “그럴 리가.  분명 아침 8시 55분 비행기라고.  분명 Czech Republic이라고..”

  네르는 말문이 막혔다.  그의 전신을 감싸 안는 불안감.

  “..  한국을 Corea라고 쓰지 않던가?”

  그의 조심스런 물음에 테레나의 표정은 딱딱하기만 하다.

  “어제까지만 해도 아직까지는 K를 쓴다고 알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그것만이 문제는 아닌 것 같군요.  앞에 이니셜은 무시하더라도 뒤에 글자가 영 아니지 않습니까, 뒤에 글자가.”

  “.......”

  “.......”

  너무나도 어이없는 이 상황에 쌍방은 침묵을 고수한다.  도대체 이 인간은 눈이 삔 것인가.  채림이야 독일에서 막 건너와 영어가 아직 그리 익숙지 않다고 치자.  명색이 장로란 작자가 체코와 한국 철자법을 헷갈려 애를 엉뚱한 곳에 보내버리다니!  게다가 자신의 실책을 깨닫고서도 저런 태연한 표정이라니!  아니면..  자신이 모르는 임무가 있기에 그녀를 체코에 보낸 것인가?  상황을 정리해 봤을 때 그녀의 이성은 그건 절대로 아니라고 소리를 쳐댔지만 그녀는 왠지 믿고 싶었다.  그가 괜히 장로가 되었겠는가?  분명 무슨 꿍꿍이속이 있기에, 그렇기에 그녀를 체코로 보낸 것이다!  분명 그럴 것이다!  아니, 그래야만 된다!  제발 한번만이라도 당신이 장로라는 직책에 어울릴 사람이라는 것을..!
  
  “..  뭐, 알아서 연락이 오겠지.  눈치가 빠른 애니까 금방 전화가 올 거야.  그래서 말인데, 테레나양, 체코에서 한국으로 가는 비행기 표 좀 알아 봐 줄 수 없을까?”

  이 남자는 가망이 없는 것일까.  테레나의 마음은 절망감으로 소용돌이친다.

***************************************

  어젯밤의 소동이 마치 꿈이였는 듯, 재중고등학교의 하루는 평범하게 흘러간다.  새 학기, 새 학년의 흥분은 어디로 갔는지, 수업시간에는 적막만이 흐를 뿐이다.  게다가 수능을 준비해야 하는 3학년은 그 정도가 심하다.  
  허나, 유독 3학년 3반은 오늘 시끌벅적하다.  그 이유는 바로..

  ‘3학년에 전학이라니..“

  ‘게다가 3반...’

  ..  뭔가, 상당히 암울한 쪽으로 시끌벅적하다.  왠지 이번에 온 전학생을 동정이라도 하는 듯 한 분위기.

  “이번에 우리 학급으로 전학생이 편입되었다.  모두 진심 어린 환영으로 맞이해 주도록.”

  메마른 목소리가 교실 안을 쩌렁쩌렁 울린다.  이런 분위기를 주도하면서 ‘진심 어린 환영’ 어쩌구 라니.  
  목소리의 주인공은 이 3학년 3반의 담임 한제후교사, 일명 마스터 한이라고도 불리 우는 사회과 선생, 올해로 40세 중반에 들어서는 이 분은 학교의 축복이요, 학생의 재앙이라 알려졌다.  그가 맡는 반은 항상 최고의 점수를 유지하며 학교생활을 하였기에, ‘한 교사가 없는 재중고는 팥 없는 찐빵, 안테나 없는 보라돌이’라는 이상한 풍문이 지금도 하염없이 전국을 돌고 있다.  하지만 결과만을 따지는 이 사회에서 묵인되는 사실이 있으니, 그것은 한교사의 무자비한 교육방침.  말쑥한 정장을 입고 책상에 앉아 깍지를 낀 손으로 턱을 받친 체 햇빛에 반사되어 차갑게 빛나는 안경 안쪽의 더욱 더 차가운 눈으로 교실을 바라보는 그의 모습은 영락없이 모 일본의 애니메이션에서 출현하신 사령관의 그것과 너무나도 닮았다.  얼마나 닮았으면 한 때 학생들 사이에서 겐도 빠돌이라고까지 불렸겠는가.  이 사람은 그 겉모습에 걸맞게도 학생들을 육체적으로 심신 적으로 거의 고문이라 가까운 수업을 하는데, 그 정도가 얼마나 심하냐 하면 이제까지 말로만 들어온 한교사를 처음 만난 3학년 3반 제군들이 성적, 성격, 남녀에 관계없이 단 몇 주 만에 수업 시간엔 수업에만 충실한 바른 생활 어린이들이 되어버렸다.  이 얼마나 무서운 세뇌인가.  학생의 미학은 수업시간의 달콤한 낮잠 내지 딴생각이 아니었던가?

  “전학생.  들어와라.”

  무미건조한 그의 말과 함께 교실 문이 열리면서 한 남자가 조심스럽게 들어온다.  재중고의 교복인 검은색 조끼, 교표가 왼쪽 가슴에 붙어 있는 하얀 블라우스, 청색 넥타이와 반듯한 검은 색 바지를 입은 그는 복장만으로는 전혀 문제 될 것이 없었다.  하지만 그의 얼굴을 본 학생들은 어째서 그가 3학년 3반에 올 수 밖에 없었는지 알 듯 했다.  

  ‘..  강적이다.“

  학교에 와있는 주제에 고집스럽게 눌러쓴 벙거지 모자, 흘러내린 색 안경, 턱까지 내려오는 금발머리.  교칙을 철저히 개 무시한 그의 차림새에 처음 선생들은 어찌할 줄 몰랐을 것이다.  하지만 편입시험 전 과목 만점의 괴물을 이 정도로 놓칠쏘냐.  그래서 그들이 고민한 끝에 내린 결정은 한 교사에게 그를 맡기는 것.  이것은 어떤 의미로서는 양자택일인 것이다.  한 교사와 1년을 보내던지 학생에 걸맞게 행동하던지.  실제로도 대다수의 3반의 학생들은 그러한 사정으로 이 반에 들어온 것이다.

  “오늘부터 우리와 같이 3학년을 보낼 벤군이다.  독일출신이고, 한국에 아는 지인을 통해 이곳으로 전학을 왔다고 한다.  그 이유야 우리가 알 필요는 없는 것이고.”

  그의 낮지만 날카로운 목소리, 그리고 쥐 죽은 듯이 조용한 교실에 벤은 황당함을 애써 감춘다.  한국의 교실은 원체 이렇게 무거운 곳이었단 말인가.  본래 전학생이 왔으면 아무리 조용한 반이라도 조금은 들떠있어야 하는 게 아닐까?  

  “저기가 좋겠군.”

  “네?”

  갑작스런 그의 말에 벤은 화들짝 놀라며 되묻는다.  그런 그의 반응에 그는 무표정한 표정으로 그를 쳐다본다.

  “너의 자리는 저기 창가 쪽의 비어있는 자리다.  가서 자리에 앉도록.”

  ..  이건 뭔가 일방적이다.  너무나도 일방적이다.  아무리 한국의 학교가 학생의 자유를 외국에 비례해 어느 정도 제한한다지만 이건 정도가 너무 심하다.  물론 그야 어디에 앉든 크게 문제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어디에 앉고 싶으냐. 정도의 질문은 해 줄 수 있지 않나?  아니, 그리고 자기소개는?  학생의 의사를 이렇게 철저히 개 무시해도 되는 건가(교칙을 철저히 개 무시한 그에게서 나올 소리는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이건 너무 제멋대로 이지 않나?!

  “..  뭔가 할 말이 있는 건가, 벤군?”

  갑자기 배로 무거워지는 주위의 공기에 벤은 숨조차 제대로 쉴 수가 없다.  한 교사는 그런 그를 차가운 눈으로 노려보기만 한다.  

  “아니..  없습니다.”

  “그럼 지정한 자리에 앉도록.  수업을 속행하겠다.”

  “네.”

  외국에서 온 전학생이라는 화려한 배경을 가졌는데도 불구하고 정말 조용하게 시작되는 그의 첫 수업.
  거기서 그가 처음 느낀 것은 한 교사에 대한 강한 불만이었다.

***********************************************************

  숨 막히는 1교시가 끝나고 휴식시간이 오자 한 교사가 나간 3반은 마치 빙산이 녹듯이 왁자지껄하기 시작했다.  그래, 아무리 3학년이라지만 그래도 사람이 사는 곳이 이래야지.  암.  이래야 되고말고..

  “우와아, 이거, 진짜 금발?!”

  “응..”

  “오옷!  너 한국말 할 줄 아는 거야?!”

  “아, 조금..”

  “꺄!  너무 신기하다!  조금 더 말해봐!”

  ..  이건 도대체..

  “정말, 전학생이 왔으면 몇 마디 하게 하는 것도 좋은데 말이야.  이러니까 우리가 집적 이런 걸 물어볼 수밖에 없는 거잖아.”

  “정말 너무 딱딱하다고, 그 인간.  하지만..  지금 놓고 보면 꽤 좋은 소재가 될 것 같은데?!”

  “오옷, 그와 그의 사이?!”

  “아, 상상만 해도 쓰러질 것 같아~”

  휴식시간이 시작하자마자 이 모양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한 교사가 반을 나갈 때부터 인가.  본래 교칙을 따르지 않는 무리들이 우글거리는 소굴이다 보니 다양한 머리 색깔을 가진 여인네들은 벤의 주변에 모여 별 말을 다하고 있다.  마치 굶주린 늑대 때 마냥.  소외되어버린 남성들은 피눈물을 뿌리며 분노와 질투가 한데 뒤섞인 눈으로 그를 태워죽일 듯이 노려본다.
  이거야 원, 피곤하기는 수업시간이나 휴식시간이나 마찬가지 아닌가.
  이런 와중에 겸겸이 펼쳐진 그녀들의 포위망을 맹렬히 뚫고 들어오는 한 남자가 있었으니.

  “자, 자, 여자들.  추태는 그만 부리고 나를 위해 비켜주는 게 어떠한가?  나는 우매한 그대들과는 달리 아주 중요한 얘기를 지금 그와 해야 되거든.”

  이 오만함이 물신 풍겨오는 말투는 설마?  벤의 인상이 확 구겨진다.  하긴, 3학년이자 학교에서 그런 머리를 하고 선글라스를 끼는 놈이 올 대가 어디 있겠나?  물론 벤은 이 반이 그런 사람들만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을 아직 모르지만.
  여자들은 예의는 가져다가 씹어 먹은 그의 말투에 기분이 무진장 나빴지만 그 할 말이란 것이 무지하게 궁금한지라 순순히 그를 위해 자리를 피해준다.  물론 그는 자기가 잘나서 그녀들이 비킨 줄 알겠지만.  
  뭐 어찌되었든 진우는 자신의 선글라스를 올리며 잠시 동안 가만히 벤을 쳐다보기만 한다.  도대체 이놈이 할 말이 무엇일까.  설마 이 자리에서 버그가 어쩌구니 강령술이 어쩌구니 하는 미친 소리를 지껄이는 것은 아니겠지?  설마, 정신이 제대로 박힌 놈이라면야..
  
  “이름이 벤이라 했나, 네놈.”

  그의 얼굴엔 예의 오만함이 없어지고 진지한 눈빛으로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야말로 무언가가 터져도 지대로 터질 듯 한 일촉즉발의 상황!  두 남자를 주시하는 사람들은 침을 삼키며 진우가 할 말을 참을성 있게 기다린다!

  “어젯밤의 일..”

  ...  에?

  “물론 기억하고 있겠지?  기억 못한다고 하지마라.  내 몸이 기억하고 있으니까.”  

  “...”

  “...“

  잠시 동안의 지독한 침묵.  그리곤 함성.

  “어..어어어어어어억?!”
  
  “꺄아아아아아악?!”

  남자와 여자가 서로 엮어 비명을 지르므로 서 교실은 단숨에 흥분의 도가니가 되어버렸다.  당연한 결과다.  저런 오해 소지 200%의 말을 부가 설명도 없이 진지한 표정으로 해버리다니.  당연하다면 당연하다.  

  “어젯밤!!  그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두 남남이?!”

  “어..  어떡해, 어떡해!!  사..  상상만 하던 일이 실제로, 실제로오~!!!”

  “이.. 이건 카타스트로피!!  정체성의 카타스트로피다!!”

  “아아..  아름다워!  너무나도 아름다워!  이루어지지 않을 사랑에 나는 눈물을 뿌린다!!”

  ..  이런 상황에서는 도대체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까.  벙찐 얼굴 그대로 얼어붙은 벤은 상황을 해명할 기회조차 얻지 못한 체 오해의 소용돌이로 휘말려 들어간다.

**************************************

  그 어느 것이든 그 단편만을 보고 모든 것을 알았다라고 하는 것은 분명 억지겠지만, 지금 벤의 머릿속에서는 한국이라는 나라와 학교 내내 있었던 일들(재수 없는 한 교사, 그리고 어느 얼간이 놈 때문에 어이없는 오해를 뒤집어쓴 일.  요즘 애들답지 않게 외국인이라니까 전 교생이 점심시간 때 그의 반 앞에서 그를 동물원 하마 보듯 구경한 것 등등)이 하나로 겹치고 있다.  그 정도로 그의 심신은 지칠 대로 지친 것이다.  마치 다른 세상을 관람하고 있는 듯 한 눈을 하며 천천히, 하지만 은밀하게 하교하는 그의 모습을 보면서 유경은 고민했다.  물어보고 싶은 말이 너무 많지만, 벤의 상태는 도저히 그녀에게 말을 해줄 상태가 아닌 것이다.  봐라, 또 전봇대에 부딪힌다.  이번이 벌서 3번째다.  
  하지만..  역시 알아야 겠어.  그것도 오늘 당장!  뭘 망설이는 거야, 민유경!  겉은 저래도 벤 선배는 분명 맨 정신일 거야!  아니, 비록 제정신이 아니더라도 자신의 질문에 답할 정신머리는 분명히 있겠지!  물론!  이건 절대 내 희망사항이 아니다 이 말씀이야!  이건 이성적인 결과다!  그러므로 가라, 민유경!  너의 욕구를 채워!
  뭔가 요상한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그녀는 결심한 듯 주먹을 굳게 쥐고 막 자신이 숨고 있던 골목길에서 나와 그에게 쏜살같이 달려가려던 참이었다.

  - 퍼어억!

  “으아?!”

  그녀는 갑자기 눈앞에 나타난 인영에 부딪혀 뒤로 넘어져 버렸다.  주위도 보지 않은 채 무작정 큰 길로 튀어나오니 그럴 수밖에.  유경은 찡그린 얼굴로 두 쪽이 되어버린 그녀의 엉덩이를 어루만지며 그와 부딪힌 사람을 올려다보았다.

  “..  괜찮으십니까?”

  흑색의 머리카락이 산들바람에 가볍게 흔들린다.  그 긴 머리카락은 그의 얼굴을 조금 가렸지만 그것이 지닌 날카로움 마저 가리지는 못했다.  하지만 그 날카로움과는 대조적으로 그의 입가엔 작은 미소가 걸려있었고 그의 흑색 눈동자는 부드럽다.  검은색 조끼를 껴입은 그는 그의 왼손을 그녀에게 내민다.

  “다치신 데는?”

  유경은 그 큰 눈을 더 크게 만들어 그를 바라보다 이내 허둥지둥 그의 손을 잡고 일어선다.

  “아..  아..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아니, 전 괜찮습니다.  그 쪽은?”

  “아! 괜찮습니다!  전 괜찮아요!!  항상 부딪히며 살아가는 인생이라.  그것은 저의 마마와 파파의 영향이 크디큽니다!!”

  ..  민유경, 넌 지금 이 남자에게 무슨 헛소리를 하는 것이냐.  속으로 자책하며 그녀의 얼굴이 새빨개진다.

  “괜찮으시다면 다행입니다.  그럼 전 이만 실례.”

  “아, 네!  안녕히 가세요!!”

  그녀에게 빙긋 웃으며 그는 몸을 돌렸다.  고개를 숙이고 필사적으로 발그레를 숨기느라 그녀는 그의 행동을 보지 못했지만.  그때 그녀에게 발견된 땅에 떨어진 의문의 쪽지!

  “저기..!”

  말만으로도 충분히 슬 것을 유경은 무의식적으로 그의 오른 팔을 잡는다.  그리고 동시에 느낀 위화감.

  ‘오른팔이..  없어?!  하지만 분명 그는 양팔을..?!’

  “왜 그러시죠?”

  그는 의아한 표정으로 유경을 바라본다.  그녀는 화들짝 놀라며 얼른 자신이 주은 종이를 그에게 건네준다.

  “이거..  떨어뜨리셨어요!”

  건네주는 종이쪽지를 본 그의 얼굴이 살짝 굳어지지만 이내 그녀에게 미소를 짓는다.

  “대단히 감사합니다.  하마터면 중요한 것을 잊어버릴 뻔 했군요.”

  “뭐..  뭘요!  당연한 일을 한 건데요!”

  그는 종이쪽지를 주머니 안에 넣으며 잠시 고민하다 이내 입을 연다.

  “왠지 이대로 헤어지기 아쉽군요.  이름을 물어도 괜찮을 까요?”

  “제..  제 이름은 유경..  아, 민유경입니다!”

  치..  침착하자, 민유경!  침착해!  이건 절대 반해서가 아니야!  네 마음은 일편단심 카레경이잖아?!  정신 차려라!!

  “전 이제민이라고 합니다.  인연이 있다면 다시 한 번 뵙고 싶군요.  그럼 안녕히.”

  그 말을 끝으로 그는 등을 돌려 그녀에게서 멀어졌다.  유경이 정신을 차리고 주위를 둘러보니 벤군을 어디서도 찾을 수 없더라, 라는 것은 그 조금 뒤의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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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는 지친 몸뚱이를 이끌며 간신히 자신의 집에 도착했다.  옷을 갈아입지도 않은 채 그대로 침대에 누운 그는 큰 한숨을 쉰다.

  ‘힘든..  하루였다.’

  정말, 그의 피로 수치는 그 때 그 끔찍했던 휴식 시간 이후로 끊임없이 올라갔었다.  그런 엄청난 파란을 불러왔는데도 불구하고 그 녀석은 끊임없이 그에게 기억이 나냐면서 발광을 해대고, 결국엔 여학생들의 도움을 얻어 그 놈을 양호실로 보내는 데에 성공.  이제 좀 한숨 돌릴까 했더니만 점심시간이 시작되자마자 엄청난 숫자의 사람들이 몰려와 그를 노려보고, 또한, 그가 담임이기에 당연한 거지만, 마지막으로 그 보기 싫은 한 교사의 상판을 끝으로 학교를 끝내다니.  정말 어떻게 집으로 왔는지도 모를 지경이다.
  
  ‘하지만..’

  하지만 아직 일과가 끝난 것이 아니지.  그는 다시 한숨을 쉬며 자리에서 일어나 그의 책상에 다가가 반듯 하게 접혀진 작은 쪽지를 펴본다.

  - 레밍턴스 -

  그 글 아래에는 누구의 싸인 과도 같은 필체가 적혀있다.  벤은 그 쪽지를 잠시 유심히 본 후 다시 접어서 그의 바지 주머니에 넣는다.  그 다음 그는 그 옆에 있던 빨강색 사인펜으로 그려진 선이 난무하는 지도마저 접어 주머니에 넣는다.  

  ‘아직 나의 하루 일과는 끝난 게 아니란 말이지.’

  벤은 자신의 벙거지 모자를 좀 더 눌러쓰며 집을 나선다.  이미 바깥은 노을로 노랗게 물들어지고 있다.

  ‘조금만 더 있으면 너와 다시 만날 수 있는 건가.’

  “루도.”

  누군가의 이름을 내 뱉는 그의 목소리엔 애절한 그리움이 담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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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랜만에 쓰는군요.  그 동안 슬럼프에도 빠져나오려 애쓰고 또 강령술사의 전체적인 스토리 윤곽을 잡느라 고생했습니다.  그나저나..  요즘 오라전대 피스메이커에 흠뻑 빠져버렸습니다.  아무래도 이제 강령술사의 많은 학교생활 파트는 피스메이커와 상당수 유사해 질거라 사려되옵니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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