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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도시 기록보관소

말로만 민주공화국, 실제로는?

2006.06.20 18:47

misfect 조회 수:356

얼마 전에 지하철을 타고 가던 중이었습니다.
사람이 꽤 타고 있었기에 앉지는 못하고 서서 가던 길이었는데, 어떤 아주머니께서 목발을 짚고 지하철에 오르시더군요.
물론 그때 아무도 자리를 비켜드리지 않은 것은 잘못이었습니다. 거기에 대해서 누군가 한 소리 했다 한다면, 저도 별로 의의를 갖진 않았을 겁니다.
그런데 몇 분 정도 지나자 그 모습이 마음에 안드셨던지 한 아저씨께서 앉아있던 학생더러 자리 좀 비켜드리라고 말씀하시더군요. 아주머니는 물론 체면상 괜찮습니다, 라고 말은 하셨지만 그런 건 물론 자리를 비켜드리는 게 당연한 겁니다. 다리도 불편하신데...거기까지는 아무래도 좋다 이겁니다.
그런데 학생이 어쩔 수 없이 자리를 비켜드리자 그 아저씨가 이렇게 말씀하시더군요.

"요즘 빨갱이 --들이 많아가지고, 애들이 다 물들었어. 안그래요? 우리때는 안그랬잖소. 참, 어떻게 된 세상이, 교수 40%가 빨갱이래. 원."

따지고 싶은 것이 한 두가지가 아니었지만, 제가 소심한 탓에 그 아저씨 내리실때까지 한 마디도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참, 시험보는 날 아침부터 기분이....

대체 교수 40%가 빨갱이란 건 어떤 통계에서 나온 거랍니까? 자리 양보 안해주면 빨갱입니까? 대체 어떤 논리 전개를 펼치면 그런 상황에서 그런 결론이 나올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보시기에 좋지 못해서? 그러면, 남의 밭에서 서리해먹던 추억을 종종 이야기하는 어르신들은 전부 빨갱입니까? 학교에서 컨닝하거나 선생님께 대들거나, 심부름 잘 안하면 전부 빨갱이라던가, 그런 논리일까요?
아니, 이런 감정적인 것들 전부 제외하고서 이야기해 봅시다. 우리나라는 민주공화국입니다. 사실 헌법에도 민주공화국이라고만 적혀 있을 뿐, 뭐가 민주공화국인지는 전혀 언급된 바가 없습니다. 하지만 지금
까지 우리나라에 대해서 논의된 몇몇 이야기들을 보면, 그것이 개인의 능력을 믿고, 개인의 자유로운 의지를 존중하는 것 정도로 정리할 수 있지 않나 싶습니다. 그에 부응이라도 하듯, 우리나라는 전반적으로 괜찮은 수준의 자유를 누리고 있습니다. 경범죄 등의 규제에 대해서는 싱가폴보다는 낫고, 길거리에서 대통령을 욕해도 문제가 없는 나라는 별로 없을 것입니다. 심지어 종교적인 부분에 있어서는 다른 선진국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 자유를 누리고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사상적 자유를 누리고 있는가 하면, 그렇지는 않은 듯 합니다. 월드컵만 하면 거리로 쏟아져나오는 몇 만이 될지 모르는 인파가 전부 빨간 옷을 입고 있는데, 굳이 '빨갱이'라는 용어를 구분해 쓰는 저의를 알 수 없습니다. 빨간 옷을 입으면 애국자인데, 빨간 정신을 뒤집어쓰면 매국노처럼 봅니다. 하지만 그건 상당한 편견으로밖에 보여지지 않습니다.
식견있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공산주의와 사회주의는 다릅니다. 그 기반은 비록 같지만, 방향에 있어서 이미 둘은 서로 다른 방향으로 갈라져 버렸습니다. 게다가 근현대에 이르러서는 공산주의 역시 정치적 문제들을 통해 소련식 공산주의, 중공식 공산주의, 북한을 포함한 일부 국가의 독자 노선 공산주의 등으로 갈라졌고, 민주주의 틀 내에서 사회주의의 이상을 이루어보겠다는 일부 사람들에 의해 사회 민주주의가 형성되었습니다. 현대에 들어선 경제적 자립정신과 결합해 남미를 중심으로 각국에 전파중인 좌파라는(이게 어떤 주의인지는 솔직히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것까지 생겨났습니다.
구소련 멸망 이후 역사가 처분한 사상은 '공산주의'와 '전통적인 민주주의'였습니다. 양자에게 모두 모순이 있었기 때문에, 냉전 시대의 사상들은 모두 알게모르게 폐기처분되었고, 그 쓰레기 위로 태어나 오늘날까지 전 세계적으로 퍼져나간 사상은 '수정된 민주주의'와 '민주주의에 대한 민주주의적 대안들', 그리고 '민주주의에 대한 사회주의적 대안' 이 세가지 정도일 것입니다.
솔직히, 저 역시 사회주의가 마음에 들지는 않습니다만, 그건 적대국의 사상이라던가, 불합리적인 사상이라던가 하는 것과는 거리가 멉니다. 사회주의가 산업화의 기반에서 태어난 사상이고, 따라서 반생태주의적인 사고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들지 않을 뿐입니다.(사회주의를 최종목표로, 그리고 공산주의를 선행목표로 생각한 레닌은 미국의 테일러가 주장한, 과학적 경영을 통한 생산 증대 주장을 찬양한 바 있습니다. 이는 생산은 최대한 효율적이어야 하며, 이를 위해서 작은 동작 하나하나까지 효율화시켜야 한다는 초보적인 자본주의 경영사상입니다.)

하지만, 적어도 이 나라가 민주공화적인 나라라면, 사회주의 논의와 발전, 그리고 적절한 수용을 두려워하거나 거부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민주공화국이기 때문에 개인의 자유로운 사상을 피력할 수 있으며, 그것을 듣고 비판하고 수용하는 것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봅니다. 개개인의 다양성을 최대한 보장하는 것이 민주공화국이라고 생각합니다. 정치적 이슈는 정치적으로 해결되어야지, 법적으로 해결할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고로 저는 이렇게 결론내리고자 합니다. 개인의 자유로운 의지를 꺾는 독재, 정치적 무관심, 제약 따위는 민주공화정인 우리나라에서 거부해야 하지만, 개인의 자유로운 의지와 사상, 정치적 관심과 대안의 제시, 국익에 도움을 줄 수 있는 갖가지 방법들에 대해서는 정치적 토론 무대에 올려놓고 활발히 논의될 수 있어야 한다고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