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60가지의 미스테리
2006.05.27 02:12
한국사 미스테리 60가지
1. 19C 독일인 '에른스트 폰 헤쎄 - 봐르테크'와 영국인 '존 로스'는 현재 중국영토인 '하북성'이 근대 조선의 강역에 포함되어 있다고 설명하였다.
2. 중국의 '중국고금지명사전' 마저도 '하북성'이 근대 조선의 강역에 속한다고 하고 있다.
3. 몽고가 좋은 말을 얻기위해 제주도까지 와서 말을 사육했다는 것은 다시 되새김질해보면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는다.
4. 삼국지의 위,촉,오 가 병력을 모두 합해도 실제로는 20만명 안팎이었다. 고구려나 백제의 전성기 병력은 100만명이었다.
5. 같은 해의 같은 달에 백제에선 가뭄이 들고 신라에선 홍수가 난다. 한반도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6. 삼국시대를 비롯해 고려, 조선 시대에 이동성 메뚜기떼에 의해 입은 피해기록이 무수히 나온다. 한반도에는 이동성 메뚜기가 존재할 수 없다.
7. 청나라가 건국되고 청 왕의 명령으로 씌여진 '만주원류고' 라는 역사서에는 신라가 만주에 있다고 기록되어있다.
8. 삼국사기, 삼국유사를 비롯 각종 지리지나 고문헌에 나오는 지명을 종합하여 보면 한반도에서 찾을 수 있는 지명보다 찾을 수 없는 지명이 더 많다. 각종 문헌에서 나오는 모든 지명이 현재 중국에는 있다.
9. 김부식은 살수가 어디인지 모른다고 하였다. 고려시대의 김부식도 모르는 지명이 아무 근거없이 현재 청천강이라고 알려져있다.
10. 현재 내몽골 지역에서 고구려성터가 발굴되었다.
11. 바이칼 호수 주변의 부족들은 생긴 것부터 풍속이나 문화까지 한국인과 많이 닮아있다. 그들은 아직까지도 고구려칸이라고 불리는 동명성왕을 모시고 있다.
12. 치우천황에 대해 중국에서는 고리국 황제이며 묘족의 선조이고 동이민족이라고 설명한다. 또한 한단고기등의 사서를 보면 치우천황은 분명히 한민족의 선조이다. 묘족도 우리와 같은 민족이다. 바이칼 호수 주변엔 고리족이 지금도 살고있었으며 고구려 고려 등이 모두 고리 족에서 파생되었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치우를 부정한다.
13. 백제의 유명 8대 성씨는 한반도에는 남아있지 않다. 모두 현 중국대륙에 있다.
14. 박혁거세의 무덤은 중국에서 발굴되었다.
15. 고려, 조선등의 무역 내역을 보면 한반도에서는 생산할 수 없는 것들을 수출하고 있다.
16. 서울대 천문학과 박창범 교수의 연구에 의해 삼국사기의 천체관측기록이 한반도가 아닌 현 중국대륙에서 이루어진 것임이 증명되었다.
17. 한단고기는 우리 민족의 역사가 반만년이 아닌 일만년이라고 주장하는 고문헌이다. 현재 학계에서 무시당하고 있지만 박창범 교수에 의해 한단고기의 천체관측기록이 정확하다고 밝혀졌다.
18. 백제의 인구가 고려나 조선초의 인구보다 많다.
19. 고구려 수도를 묘사한 부분을 자세히 살펴보면 지금의 평양으로는 턱없이 작다. 현 중국대륙의 장안(시안)과 완벽하게 일치한다.
20. 당 13만 군에 의해 백제 수도가 함락된 후에도 백제 장군 흑치상지는 200여개의 성을 기반으로 당에게 저항해 당은 40만군을 증원한다. 만약 백제가 한반도에 있었다면 한반도 전체가 성으로 뒤덮여있어야한다.
21. 조선 초 인구가 37만명인데 1000년전의 국가인 백제나 고구려의 군인만 100만이었다.
22. 현재의 요동 요서 개념과 과거의 요동 요서 개념은 완전히 틀린다. 요동이 고구려 영토라 함은 현재의 요동반도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현 중국 대륙 내륙의 요동을 이야기한다.
23. 18~19c 외국인 선교사 또는 탐험가들이 작성한 지도에는 조선이 만주는 물론 중국대륙의 일부까지 지배하고 있다.
24. 현 중국대륙의 강소성 숙천과 산동성 즉묵시의 향토사학자들이나 향토지에 따르면 연개소문이 이 곳들에서 연전연승을 거두었다고 한다.
25. 현 중국대륙의 강소성 숙천 근처에는 성터가 있는데 이 곳 주민들은 고려성이라고 부른다.
26. 현 중국 대륙의 베이징 근처에는 고려영진이라는 지명이 있다.
27. 고구려 고씨가 아직도 중국 대륙에 살고있다. 특히 장수왕 후손인 사람은 고구려 유리왕의 묘가 베이징 근처에 있다고 주장했으며 실제로 베이징 근처에 유리왕묘가 있다. 중국에서는 제후국 유리국의 왕의 묘라고 주장하고 있다.
28. 중국대륙에 있는 수많은 성들이 현지인들에게 예로부터 지금까지도 고려성, 또는 고구려성이라고 불리고 있다.
29. 백제의 의자왕, 흑치상지에 관련된 지명들이 중국대륙에만 존재한다.
30. 백제가 패망할 당시 지명이 한반도에는 없다. 그러나 중국대륙에는 모두 있다.
31. 삼국사기에 나오는 지명중 김부식이 모른다고 한 지명이 359개나 된다. 이들 모두가 중국대륙에는 존재한다.
32. 한단고기외에 한민족 일만년 역사를 주장하는 '규원사화'는 위서라고 알려져왔다. 그러나 규원사화 진본이 국립중앙도서관에 보관되어있다.
33. 중국의 고문헌에 나와있는 발음법으로 정확하게 한자를 읽는 민족은 우리민족밖에 없다.
34. 신라 수도에 있다는 토함산의 이름은 화산이라는 뜻이다. 또한 삼국유사, 삼국사기등에도 토함산의 화산활동이 기록되어있다. 그러나 현 경주의 토함산은 공교롭게도 화산이 아니다.
35. 한국 국사에서는 고조선이 망한 후 漢나라에서 한사군을 설치했다고 가르친다. 그러나 중국의 문헌에서는 한사군을 설치하려다가 고구려 동명왕에게 참패해서 漢군의 수장들이 모두 육시(몸을 6등분하는 참형) 당했다고 기록되어있다.
36. 청나라 황제들의 성씨인 애신각라 는 신라를 잊지않고 사랑하겠다는 뜻이다.
37. 애신각라를 몽골어로 읽으면 아이신 지료 라고 발음된다. 아이신은 금(金)을, 지료는 겨레(族)를 의미한다. 신라의 왕족은 금(金)씨이다. 청나라의 원래 이름은 금(金)나라 이다.
38. 임진왜란 때 청나라 태조 누르하치가 조선 선조에게 '부모님의 나라를 침략한 쥐 같은 왜구들을 해치우겠다'는 요지의 편지를 썼다.
39. 금나라 역사서인 금사 를 보면 금 태조는 고려에서 왔다고 기록되어있다.
40. 청나라 황실 역사서인 만주원류고에는 금 태조가 나라 이름을 신라의 왕의 성씨에서 따왔다고 기록되어있다.
41. 송나라때의 역사서 송막기문에는 금나라 건국직전에 여진족이 부족국가 형태일때의 추장이 신라인이라고 기록되어있다.
42. 현재 우리나라 부안 김씨의 족보에 금 태조의 이름이 나와있다.
43. 백제 온조왕 13년 (BC 6), 5월에 왕이 신하들에게 이르기를 "우리나라의 동편에는 낙랑이 있고 북에는 말갈이 있어 영토를 침노하여 오므로 편안한 날이 적다."고 하였다. 지금 국사에서 배우는 상식으로는 백제 북쪽은 고구려로 막혀 있어야한다.
44. 1976년 평남 대안시 덕흥리의 무학산 밑에서 발굴된 고구려 고분벽화에는 유주자사 진에게 보고하는 13명의 태수의 그림이 그려져있는데 그 뒤에 관명이 새겨져 있다. 그 이름은 다음과 같다. 연군태수(하북성 보정부 서쪽의 완현부근), 광령태수(하북성 탁현의 군치), 상곡태수(보정부, 하문부 및 순천부 서남경계), 어양태수(하북성 밀운형 동쪽), 범양태수(북경의 서쪽), 대군태수(산서성 대동현 동쪽), 북평태수(북경지방), 낙랑태수(북경 동쪽의 하북성), 창려태수(산해관 남쪽), 요동태수(하북성 영정하 동쪽), 요서태수(하북성 영정하 서쪽), 현도태수(하북성 북경 서남쪽), 대방태수(창려,금주일대)이다. 유주는 북경일대를 말한다.
45. 중국의 역사서인 남제서에는 북위가 백제를 치려고 수십만의 기병을 파견했다가 패배했다고 기록되어있다. 우리가 국사교과서에서 배운대로라면 북위에서 백제를 치려면 바다를 건너야한다. 기병은 바다를 건널 수 없다.
46. 고려도경에는 '고려의 강역은 동서 너비가 2천여 리, 남북 길이 1천 5백여리, 신라, 백제를 병합하니 고려의 동북(東北)쪽이 넓어졌다 라고 쓰고 있다. 송사(宋史),. 삼국사기 지리지, 고려사 지리지, 세종실록 지리지, 신증동국여지승람 들을 보더라도 역사서 원전에 의한 조선의 선조 국가들이 존재했던 곳은 모두 동서(東西)가 넓고 남북이 짧은 지역을 통치 영역으로 하였다는 것을 알게 된다. 북송인이자 외국(外國)인 서긍이 직접 고려로 가서 보고 온 고려의 통치 영역의 지형구조가 동서(東西)가 넓은 구조였다고 했다. 현재의 한반도는 동서가 짧고 남북이 긴 지형이다.
47. 몽고에서는 징기츠칸의 어머니와 아내가 모두 고구려 사람이라고 전해진다.
48. 임진왜란 당시의 기록들(명사, 선조실록, 난중일기, 이순신전서, 임진전란사, 은봉야사별록 등) 을 자세히 살펴보면 지명, 상황전개, 위치, 방위, 거리 및 전후사정이 한반도에서는 전혀 들어맞지 않는다.
49. 임진왜란 당시의 기록들에 나오는 지명들은 중국에는 모두 존재한다.
50. 난중일기의 원문을 직접 번역한 현역 해군 중령 최두환씨(해군본부 충무공수련원 연구실장)는 난중일기 번역을 하며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많았다고 한다. 이러한 문제는 지명을 추적하여 임진왜란의 무대를 중국 본토로 옮겨놓자 쉽게 풀려나갔다고 한다.
51. 임진왜란 당시 기록을 보면 왜가 침입해오자 조선의 왕은 서쪽으로 피신했다고 기록되어있다. 상식적으로는 북쪽으로 피신해야 옳다.
52. 어제신도비명 에 보면 임진년에 왜적이 침입하여 부산 동래를 함락하고 여러길로 나눠 서쪽으로 진출했다고 기록되어있다. 한반도라면 당연히 북상 하는 것이 옳다.
53. 지도는 측량학, 수학, 천체학, 광학 등을 두루섭렵하고 있어야 제대로 만들 수있다. 한반도 전역을 3차례 둘러보고 정교한 대동여지도를 김정호가 만들었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54. 김정호는 일제시대에 일제가 만든 교과서에 의해 알려지기 시작했다. 대동여지도가 공개된 것 역시 일제시대이다.
55. 대동여지도에 씌여있는 글에는 분명 조선의 강역이 1만 9백리에 달한다고 씌여있다. 글옆의 지도, 즉 한반도와는 전혀 부합되지 않는다.
56. 조선의 중심지는 낙양이라고 쓰고있다. 한반도에는 낙양이라는 지명은 단한번도 존재하지 않았다. 낙양은 중국의 천년고도의 도시이다.
57. 세스페데스라는 포르투갈 신부가 16c 에 쓴 책에 의하면 꼬라이 또는 꼬리아라는 왕국은 일본에서 10일정도 걸리며 왕국의 끝은 티벳까지 달한다고 씌여있다. 또한 조선의 북쪽에 타타르가 있었는데 그것도 조선땅이다 라고 씌여있다. 타타르는 내몽고에서 활동하는 종족이다. 그리고 조선대륙의 강들은 수량이 풍부한데 강의 폭이 3레구아에 달한다고 씌여있다.
58. 루이스 프로이스 라는 신부가 쓴 조선의 강역에 대한 글에는 수량이 풍부한 강과 거대한 사막이 존재한다고 씌여있다.
59. 일제시대에 일본에서 불태운 우리 역사서가 약 20만권이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딱 두 권만 남겨두었다.
60. 한국의 국사의 기초와 체계는 모두 일제시대때 일본에 의해 세워졌다. 현재 고등학교의 국사 교과서 역시 일제시대에 일본에 의해 씌여진 '조선사' 라는 책과 내용이 거의 똑같다.
마지막으로 우리 민족의 일만년 역사를 주장하는 '규원사화'라는 고문헌의 한 구절을 소개한다.
"슬프다! 후세에 만약 이 책을 붙잡고 우는 사람이 있다면 나 죽어 넋이라도 한없이 기뻐하리라!"
-北崖子의 <규원사화> 서문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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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신 - 안다x로님 말씀>
실제로 이 글의 출처지에 가보면 황당한게 많아요.
아직도 국사책 및 사회책을 사실로 믿는 순수한 아이들은 오히려 이 글을 쓴 사람에게
상식도 모르냐며 나무라죠.
이 글은 지극히 사실인데, 밝히기란 힘들듯.
게다가 외국조차도 수메르민족, 몽골민족(현재 최초 문명이라고 새롭게 재기되는 민족)
이 한민족과 흡사하다는 결과도 있구요.
일단 진실은 저 너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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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네이버 뜨는 이야기에서 소개된 '최초로 피라미드를 만든 것은 한국이다. ' 라는 것이 있었죠.
쨋든 엄청난 반전.
1. 19C 독일인 '에른스트 폰 헤쎄 - 봐르테크'와 영국인 '존 로스'는 현재 중국영토인 '하북성'이 근대 조선의 강역에 포함되어 있다고 설명하였다.
2. 중국의 '중국고금지명사전' 마저도 '하북성'이 근대 조선의 강역에 속한다고 하고 있다.
3. 몽고가 좋은 말을 얻기위해 제주도까지 와서 말을 사육했다는 것은 다시 되새김질해보면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는다.
4. 삼국지의 위,촉,오 가 병력을 모두 합해도 실제로는 20만명 안팎이었다. 고구려나 백제의 전성기 병력은 100만명이었다.
5. 같은 해의 같은 달에 백제에선 가뭄이 들고 신라에선 홍수가 난다. 한반도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6. 삼국시대를 비롯해 고려, 조선 시대에 이동성 메뚜기떼에 의해 입은 피해기록이 무수히 나온다. 한반도에는 이동성 메뚜기가 존재할 수 없다.
7. 청나라가 건국되고 청 왕의 명령으로 씌여진 '만주원류고' 라는 역사서에는 신라가 만주에 있다고 기록되어있다.
8. 삼국사기, 삼국유사를 비롯 각종 지리지나 고문헌에 나오는 지명을 종합하여 보면 한반도에서 찾을 수 있는 지명보다 찾을 수 없는 지명이 더 많다. 각종 문헌에서 나오는 모든 지명이 현재 중국에는 있다.
9. 김부식은 살수가 어디인지 모른다고 하였다. 고려시대의 김부식도 모르는 지명이 아무 근거없이 현재 청천강이라고 알려져있다.
10. 현재 내몽골 지역에서 고구려성터가 발굴되었다.
11. 바이칼 호수 주변의 부족들은 생긴 것부터 풍속이나 문화까지 한국인과 많이 닮아있다. 그들은 아직까지도 고구려칸이라고 불리는 동명성왕을 모시고 있다.
12. 치우천황에 대해 중국에서는 고리국 황제이며 묘족의 선조이고 동이민족이라고 설명한다. 또한 한단고기등의 사서를 보면 치우천황은 분명히 한민족의 선조이다. 묘족도 우리와 같은 민족이다. 바이칼 호수 주변엔 고리족이 지금도 살고있었으며 고구려 고려 등이 모두 고리 족에서 파생되었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치우를 부정한다.
13. 백제의 유명 8대 성씨는 한반도에는 남아있지 않다. 모두 현 중국대륙에 있다.
14. 박혁거세의 무덤은 중국에서 발굴되었다.
15. 고려, 조선등의 무역 내역을 보면 한반도에서는 생산할 수 없는 것들을 수출하고 있다.
16. 서울대 천문학과 박창범 교수의 연구에 의해 삼국사기의 천체관측기록이 한반도가 아닌 현 중국대륙에서 이루어진 것임이 증명되었다.
17. 한단고기는 우리 민족의 역사가 반만년이 아닌 일만년이라고 주장하는 고문헌이다. 현재 학계에서 무시당하고 있지만 박창범 교수에 의해 한단고기의 천체관측기록이 정확하다고 밝혀졌다.
18. 백제의 인구가 고려나 조선초의 인구보다 많다.
19. 고구려 수도를 묘사한 부분을 자세히 살펴보면 지금의 평양으로는 턱없이 작다. 현 중국대륙의 장안(시안)과 완벽하게 일치한다.
20. 당 13만 군에 의해 백제 수도가 함락된 후에도 백제 장군 흑치상지는 200여개의 성을 기반으로 당에게 저항해 당은 40만군을 증원한다. 만약 백제가 한반도에 있었다면 한반도 전체가 성으로 뒤덮여있어야한다.
21. 조선 초 인구가 37만명인데 1000년전의 국가인 백제나 고구려의 군인만 100만이었다.
22. 현재의 요동 요서 개념과 과거의 요동 요서 개념은 완전히 틀린다. 요동이 고구려 영토라 함은 현재의 요동반도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현 중국 대륙 내륙의 요동을 이야기한다.
23. 18~19c 외국인 선교사 또는 탐험가들이 작성한 지도에는 조선이 만주는 물론 중국대륙의 일부까지 지배하고 있다.
24. 현 중국대륙의 강소성 숙천과 산동성 즉묵시의 향토사학자들이나 향토지에 따르면 연개소문이 이 곳들에서 연전연승을 거두었다고 한다.
25. 현 중국대륙의 강소성 숙천 근처에는 성터가 있는데 이 곳 주민들은 고려성이라고 부른다.
26. 현 중국 대륙의 베이징 근처에는 고려영진이라는 지명이 있다.
27. 고구려 고씨가 아직도 중국 대륙에 살고있다. 특히 장수왕 후손인 사람은 고구려 유리왕의 묘가 베이징 근처에 있다고 주장했으며 실제로 베이징 근처에 유리왕묘가 있다. 중국에서는 제후국 유리국의 왕의 묘라고 주장하고 있다.
28. 중국대륙에 있는 수많은 성들이 현지인들에게 예로부터 지금까지도 고려성, 또는 고구려성이라고 불리고 있다.
29. 백제의 의자왕, 흑치상지에 관련된 지명들이 중국대륙에만 존재한다.
30. 백제가 패망할 당시 지명이 한반도에는 없다. 그러나 중국대륙에는 모두 있다.
31. 삼국사기에 나오는 지명중 김부식이 모른다고 한 지명이 359개나 된다. 이들 모두가 중국대륙에는 존재한다.
32. 한단고기외에 한민족 일만년 역사를 주장하는 '규원사화'는 위서라고 알려져왔다. 그러나 규원사화 진본이 국립중앙도서관에 보관되어있다.
33. 중국의 고문헌에 나와있는 발음법으로 정확하게 한자를 읽는 민족은 우리민족밖에 없다.
34. 신라 수도에 있다는 토함산의 이름은 화산이라는 뜻이다. 또한 삼국유사, 삼국사기등에도 토함산의 화산활동이 기록되어있다. 그러나 현 경주의 토함산은 공교롭게도 화산이 아니다.
35. 한국 국사에서는 고조선이 망한 후 漢나라에서 한사군을 설치했다고 가르친다. 그러나 중국의 문헌에서는 한사군을 설치하려다가 고구려 동명왕에게 참패해서 漢군의 수장들이 모두 육시(몸을 6등분하는 참형) 당했다고 기록되어있다.
36. 청나라 황제들의 성씨인 애신각라 는 신라를 잊지않고 사랑하겠다는 뜻이다.
37. 애신각라를 몽골어로 읽으면 아이신 지료 라고 발음된다. 아이신은 금(金)을, 지료는 겨레(族)를 의미한다. 신라의 왕족은 금(金)씨이다. 청나라의 원래 이름은 금(金)나라 이다.
38. 임진왜란 때 청나라 태조 누르하치가 조선 선조에게 '부모님의 나라를 침략한 쥐 같은 왜구들을 해치우겠다'는 요지의 편지를 썼다.
39. 금나라 역사서인 금사 를 보면 금 태조는 고려에서 왔다고 기록되어있다.
40. 청나라 황실 역사서인 만주원류고에는 금 태조가 나라 이름을 신라의 왕의 성씨에서 따왔다고 기록되어있다.
41. 송나라때의 역사서 송막기문에는 금나라 건국직전에 여진족이 부족국가 형태일때의 추장이 신라인이라고 기록되어있다.
42. 현재 우리나라 부안 김씨의 족보에 금 태조의 이름이 나와있다.
43. 백제 온조왕 13년 (BC 6), 5월에 왕이 신하들에게 이르기를 "우리나라의 동편에는 낙랑이 있고 북에는 말갈이 있어 영토를 침노하여 오므로 편안한 날이 적다."고 하였다. 지금 국사에서 배우는 상식으로는 백제 북쪽은 고구려로 막혀 있어야한다.
44. 1976년 평남 대안시 덕흥리의 무학산 밑에서 발굴된 고구려 고분벽화에는 유주자사 진에게 보고하는 13명의 태수의 그림이 그려져있는데 그 뒤에 관명이 새겨져 있다. 그 이름은 다음과 같다. 연군태수(하북성 보정부 서쪽의 완현부근), 광령태수(하북성 탁현의 군치), 상곡태수(보정부, 하문부 및 순천부 서남경계), 어양태수(하북성 밀운형 동쪽), 범양태수(북경의 서쪽), 대군태수(산서성 대동현 동쪽), 북평태수(북경지방), 낙랑태수(북경 동쪽의 하북성), 창려태수(산해관 남쪽), 요동태수(하북성 영정하 동쪽), 요서태수(하북성 영정하 서쪽), 현도태수(하북성 북경 서남쪽), 대방태수(창려,금주일대)이다. 유주는 북경일대를 말한다.
45. 중국의 역사서인 남제서에는 북위가 백제를 치려고 수십만의 기병을 파견했다가 패배했다고 기록되어있다. 우리가 국사교과서에서 배운대로라면 북위에서 백제를 치려면 바다를 건너야한다. 기병은 바다를 건널 수 없다.
46. 고려도경에는 '고려의 강역은 동서 너비가 2천여 리, 남북 길이 1천 5백여리, 신라, 백제를 병합하니 고려의 동북(東北)쪽이 넓어졌다 라고 쓰고 있다. 송사(宋史),. 삼국사기 지리지, 고려사 지리지, 세종실록 지리지, 신증동국여지승람 들을 보더라도 역사서 원전에 의한 조선의 선조 국가들이 존재했던 곳은 모두 동서(東西)가 넓고 남북이 짧은 지역을 통치 영역으로 하였다는 것을 알게 된다. 북송인이자 외국(外國)인 서긍이 직접 고려로 가서 보고 온 고려의 통치 영역의 지형구조가 동서(東西)가 넓은 구조였다고 했다. 현재의 한반도는 동서가 짧고 남북이 긴 지형이다.
47. 몽고에서는 징기츠칸의 어머니와 아내가 모두 고구려 사람이라고 전해진다.
48. 임진왜란 당시의 기록들(명사, 선조실록, 난중일기, 이순신전서, 임진전란사, 은봉야사별록 등) 을 자세히 살펴보면 지명, 상황전개, 위치, 방위, 거리 및 전후사정이 한반도에서는 전혀 들어맞지 않는다.
49. 임진왜란 당시의 기록들에 나오는 지명들은 중국에는 모두 존재한다.
50. 난중일기의 원문을 직접 번역한 현역 해군 중령 최두환씨(해군본부 충무공수련원 연구실장)는 난중일기 번역을 하며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많았다고 한다. 이러한 문제는 지명을 추적하여 임진왜란의 무대를 중국 본토로 옮겨놓자 쉽게 풀려나갔다고 한다.
51. 임진왜란 당시 기록을 보면 왜가 침입해오자 조선의 왕은 서쪽으로 피신했다고 기록되어있다. 상식적으로는 북쪽으로 피신해야 옳다.
52. 어제신도비명 에 보면 임진년에 왜적이 침입하여 부산 동래를 함락하고 여러길로 나눠 서쪽으로 진출했다고 기록되어있다. 한반도라면 당연히 북상 하는 것이 옳다.
53. 지도는 측량학, 수학, 천체학, 광학 등을 두루섭렵하고 있어야 제대로 만들 수있다. 한반도 전역을 3차례 둘러보고 정교한 대동여지도를 김정호가 만들었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54. 김정호는 일제시대에 일제가 만든 교과서에 의해 알려지기 시작했다. 대동여지도가 공개된 것 역시 일제시대이다.
55. 대동여지도에 씌여있는 글에는 분명 조선의 강역이 1만 9백리에 달한다고 씌여있다. 글옆의 지도, 즉 한반도와는 전혀 부합되지 않는다.
56. 조선의 중심지는 낙양이라고 쓰고있다. 한반도에는 낙양이라는 지명은 단한번도 존재하지 않았다. 낙양은 중국의 천년고도의 도시이다.
57. 세스페데스라는 포르투갈 신부가 16c 에 쓴 책에 의하면 꼬라이 또는 꼬리아라는 왕국은 일본에서 10일정도 걸리며 왕국의 끝은 티벳까지 달한다고 씌여있다. 또한 조선의 북쪽에 타타르가 있었는데 그것도 조선땅이다 라고 씌여있다. 타타르는 내몽고에서 활동하는 종족이다. 그리고 조선대륙의 강들은 수량이 풍부한데 강의 폭이 3레구아에 달한다고 씌여있다.
58. 루이스 프로이스 라는 신부가 쓴 조선의 강역에 대한 글에는 수량이 풍부한 강과 거대한 사막이 존재한다고 씌여있다.
59. 일제시대에 일본에서 불태운 우리 역사서가 약 20만권이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딱 두 권만 남겨두었다.
60. 한국의 국사의 기초와 체계는 모두 일제시대때 일본에 의해 세워졌다. 현재 고등학교의 국사 교과서 역시 일제시대에 일본에 의해 씌여진 '조선사' 라는 책과 내용이 거의 똑같다.
마지막으로 우리 민족의 일만년 역사를 주장하는 '규원사화'라는 고문헌의 한 구절을 소개한다.
"슬프다! 후세에 만약 이 책을 붙잡고 우는 사람이 있다면 나 죽어 넋이라도 한없이 기뻐하리라!"
-北崖子의 <규원사화> 서문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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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신 - 안다x로님 말씀>
실제로 이 글의 출처지에 가보면 황당한게 많아요.
아직도 국사책 및 사회책을 사실로 믿는 순수한 아이들은 오히려 이 글을 쓴 사람에게
상식도 모르냐며 나무라죠.
이 글은 지극히 사실인데, 밝히기란 힘들듯.
게다가 외국조차도 수메르민족, 몽골민족(현재 최초 문명이라고 새롭게 재기되는 민족)
이 한민족과 흡사하다는 결과도 있구요.
일단 진실은 저 너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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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네이버 뜨는 이야기에서 소개된 '최초로 피라미드를 만든 것은 한국이다. ' 라는 것이 있었죠.
쨋든 엄청난 반전.
댓글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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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C(虎)
2006.05.27 04:30
그러니까 고구려는 중국의 역사가 맞군요(응?)|+rp2+|10563|+rp3+|main_sibal -
무동
2006.05.27 05:04
무슨 소릴 하는거요 ㅡㅡ; |+rp+|10563|+rp2+|10564|+rp3+|main_sibal -
로안
2006.05.27 06:39
4번은 틀렸네요. 다 합치면 100만을 상회합니다.
총체적으로 합쳐 보세요.|+rp2+|10565|+rp3+|main_sibal -
문학소년 쉐르몽
2006.05.27 08:47
조선 인구가 37만? 그거 나라? 장난하나. 조선 초기 서울에 밀집한 인구가 37만이다. ㄱ-;; 그리고 고구려가 100만 대군을 가졌다고 누가 그래. 꼭 수나라 쳐들어와도 쩔쩔매면서 30만씩 만들어낸 나라인데. 고로, 이 주장은 분명 별 미친놈이 썼다고 볼 수 있음. 퀘안습임.|+rp2+|10569|+rp3+|main_sibal -
misfect
2006.05.27 09:47
하나하나 상세적으로 따져보기 전에, 과연 역사가 그렇게 무 자르듯 단절될 수 있는 것인지부터 생각해 볼 문제라고 봅니다. 아무리 일제의 점령기가 길었다 하더라도 겨우 두어 세대를 못넘는데 그 짧은 시기 동안 과연 그런 거창한 역사가 그렇게 쉽게 잊혀질 수가 있을까요?
인위적으로 전 국민의 기억을 조작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히틀러와 그 휘하 대중선동의 천재들이 있다 하더라도 짧게는 35년에서 길어야 100년이 안되는 기간 동안(서구열강강점기를 임의로 포함해보자면) 한 나라의 역사를 그렇게까지 말살하는 건 불가능이라고 생각합니다. |+rp2+|10575|+rp3+|main_sibal -
Fim
2006.05.27 10:30
다읽어 보지는 않았습니다만은 일제시대때나 여러가지 사정상 확실히 날조된것들이 많아서 이러는경우도 많습니다. |+rp2+|10581|+rp3+|main_sibal -
무동
2006.05.27 19:11
-카일러스님 말씀-
무동님이 재기하신 항목들은 대부분 사실입니다.(이것은 예비 재야사학자인 제가 보장합니다.)
아틀란티스, 무제국이 망한 직후 우리가 아는 대부분의 문명들은 북방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그 출발지는 바이칼 호수와 파미르 고원입니다. 여기서 출발한 첫 북방제국이 삼국유사로 익히 들어보았을 환인이 다스리던 환국입니다. 환국에는 12개의 분국이 있었고, 그 분국 중에 수밀이국이라는 곳도 있었습니다.(수메르 문명) 이후 열국시대의 패자로 나타탄 고구려는 이들 12분국 가운데, 동북에 있던 '고리국'에서 유래합니다.(coree, golia라는 옛 한국명칭의 유래는 여기에 있습니다.) 환국은 약 BC 7700 ~ BC 4400 년대까지 번성하다가 기후변화와 더불어 대대적인 이동을 시작했는데, 우리가 아는 개천절은 지금부터 약 6000년 전에 옛 환국에서 이주한 유민들이 장백산 일대에서 동북지방의 첫 국가를 세운 날입니다. 단군이 세운 4330년의 조선이 아니고요.|+rp2+|10582|+rp3+|main_sibal -
-H-
2006.05.27 22:23
중국이 우리 나라 역사죠 |+rp+|10563|+rp2+|10586|+rp3+|main_sibal -
Elf@peter
2006.05.28 04:50
이런글은 조심해야합니다.
물론 더 확실한 근거로 고구려가 한국땅이라고 증거할수있지만.
이런건 거꾸로보면 우리나라가 중국땅이였다는 역설이 생길수
있습니다. 조선이라는나라가 중국의 작은 땅중 하나였다는 역설이 생기면
지금 고구려일은 아무것도 아닐만큼 일이 커지지 않을까합니다.
그리고 다른생각이있다면
마르코폴로나 마젤란 같은 사람들같이 많은 사람들이 실수를 합니다.
인디언(Indian)의 유래가 인도사람(Indian) 인 이유가 마젤란(였던가?)이
아메리카를 인도로 잘못 알고있었던거죠
마르코폴로가 쓴 동방견문록에도 틀린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그 틀린이야기로 인해 조선이며 중국일본의 개화나 침략현상이
일어나게 되고,
그로인해 지금 근대화가 된겁니다,
그런일도 있었으니 유럽이나 서양사람들이 조선과 몽골을 착각했다는 설도
마냥 아닌건 아닌것같습니다.
그러므로 미스테리만 갖고는 전혀 이기기 힘듭니다.
우리는 우리역사로 그들을 이겨야합니다.
우리역사로 이기지 않는다면
고구려를 다시 손에 넣는다해도 더 큰일이 생길겁니다,
|+rp2+|10591|+rp3+|main_sibal -
Elf@peter
2006.05.28 04:52
그리고 고구려는 최근에 붙혀진 이름이고
고려나 고구려 모두 국명은 고려입니다,
단지 구별하기위해 구 자를 붙인거라고 합니다.
조선과 고조선도 같은 이야기고요
|+rp+|10591|+rp2+|10592|+rp3+|main_sibal -
무동
2006.05.28 06:23
중국의 '중국고금지명사전' 마저도 '하북성'이 근대 조선의 강역에 속한다고 하고 있다.
삼국지의 '위,촉,오' 가 병력을 모두 합해도 실제로는 20만명 안팎이었다. '고구려나 백제'의 전성기 병력은 100만명이었다.
|+rp+|10591|+rp2+|10595|+rp3+|main_sibal -
무동
2006.05.28 06:31
내용추가 52번에서는, 곡창지대인 전라도를 확보함으로써 군량을 확보하려는 의도가 있었습니다. 중국+한국 vs 일본의 전쟁에서 일본은 장기전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으며 그에 따라, 육군의 신속한 진격에 맞춰 해군의 전라도지역장악이 필요했던것이죠|+rp2+|10596|+rp3+|main_sibal -
마그나
2006.05.28 09:06
ㅇㅇ.. 37만이 400년후에 2000만 가까이 되는게 말도 안되는 ㅋㅋ |+rp+|10569|+rp2+|10601|+rp3+|main_sibal -
사의DeaTH
2006.05.28 09:38
여기중 의견중 한 반은 확실하지도 않은 끼워 맞추기 식이군요|+rp2+|10604|+rp3+|main_sibal -
Elf@peter
2006.05.28 16:02
아 마젤란이 아니라 콜럼버스였나? |+rp+|10591|+rp2+|10608|+rp3+|main_sibal -
디르
2006.05.28 17:46
제 생각엔 일제가 만든 역사에 빠져 저러한 의견들을 막무가내로 무시하기 보다는
모든 상황을 염두해 두고 역사를 연구해 나가야 제대로 된 역사가 밝혀지지 않을까 싶네요.
'우리 민족이 옛날 옛날엔 중국 대륙을 지배했다고? 우리 민족이 전 문명의 시작이라고? 미친 별 개 말도 안되는 소리-_-;; 그럼 지금은 왜 이런 좁은 반도에 박혀있는거냐? 헛소리 즐즐'
이런 생각으로 그냥 무시해 버리시면 안된다는 소립니다.
지금도 중국과 일본은 별 되지도 않는 역사를 정설로 만들어서 우리의 영토를 빼앗으려 하고 있습니다.
중국의 동북공정과 일본의 독도 도발을 말하는 겁니다.
게다가 지들 중·일 끼리도 무슨 섬을 갖고 싸우고 있습니다.
근데 우리만 글 내용과 같은 의혹(혹은 가설)이 충분히 있는데도 저런 것을 미친 놈 소리로 치부하고
저런 것이 적혀 있는 책을 위서로 만들어서 모든 가능성을 없애버리고 있습니다.
저 내용들을 정설로 만들어서 중국 대륙을 되찾아 같은 거창한 소리가 아닙니다.
다만, 우리 역사에 존재했을 수도 있는 모든 가능성을 단순한 '현대의 상식'으로 무시해버리지 말아주셨으면 하는 겁니다.|+rp2+|10610|+rp3+|main_sibal -
사의DeaTH
2006.05.28 19:10
그러면 우리가 독도를 자기땅이라 우기는 일본인들이랑 똑같은 수준이 되는겁니다.
악을 악으로 제압하는건 올바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말도 안되는 것은 확실히
지워버리고 남들에게 인정 받을 만한것만 주장하는게 더 옳다고 생각합니다.|+rp2+|10611|+rp3+|main_sibal -
문학소년 쉐르몽
2006.05.28 23:59
이 말대로라면 한국이 세계를 지배했다는 뜻이 되는데..? 이봐요. 그 당시 세계 최강국이었던 이란도 저 정도는 아니걸랑요? 그렇게 치자면 이 글에 나오는 한국은 당시 최강국인 이란을 속국 삼았단 이야기잖수 ㄱ- |+rp+|10610|+rp2+|10614|+rp3+|main_sibal -
문학소년 쉐르몽
2006.05.29 00:08
그렇게 되려면 애를 적어도 하루에 10만명 정도는 낳아야 하지 않을까요.. ㅠㅠ |+rp+|10569|+rp2+|10619|+rp3+|main_sibal -
팔라스나인
2006.05.31 20:13
마그나 / 안됐지면 지금 세계의 인구구조는 100년내지 200년 전쯤에 과학 및 의료, 풍부한 식량을 바탕으로 수십, 수백, 수천배나 가까이 늘어난 것입니다 ^^ 37만의 인구가 400년 후 2000만이 된다는 것은 오히려 상식적으로 가능한 일이지요. |+rp+|10569|+rp2+|10657|+rp3+|main_sibal -
팔라스나인
2006.05.31 20:16
문학소년 쉐르몽 / 위에서도 누차 말했지만 37만명의 인구가 400년사이 2000만명이 되는것은 가능한 일입니다 ^^ 한국의 인구는 지금으로부터 100년전만해도 1000만명이 넘을까 말까한 인구였습니다.
또한, 하루에 10만명씩 낳으면 한달이면 300만, 1년이면 3650만입니다 ; 과장법이신것은 알겠으나 좀더 논리적으로 생각하여 주세요. |+rp+|10569|+rp2+|10658|+rp3+|main_sibal -
팔라스나인
2006.05.31 20:23
당시 위,촉,오의 군인의 수를 합한 수가 20만명이었다는 것은 조금의 과장이 있을지도 모르나, 실제적으로 위,촉,오 합쳐서 병력이 100만이 넘지는 않았습니다. 50만이 될까 말까한 병력이었죠...
지금 우리가 알고있는 '삼국지 연의'라는 책으로 인해 그때당시의 사실을 잘못 이해하고 알고있는 사람이 태반입니다. 실제로 따져보면 '삼국지 정사'도 그렇게까지 신뢰할 만 하지는 않고요.
삼국지에서 위나라가 100만에 육박하는 군사를 여러번 움직인다고 나오나,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이야깁니다. 한 나라의 인구의 1/5을 병사로 쓴다면 그 나라는 망하고 맙니다. |+rp+|10565|+rp2+|10659|+rp3+|main_sibal -
창조자
2006.06.01 08:24
일본인들이 임나일본부설을 믿고싶어하는 이유가 이런것이 아닐까요..
괜히 이게 맞았으면 하네요 ㅎㅎ
저도 이거에 대해 찾아보니까 전항목 반박의견이 있더군요,,
한번 찾아보세요,,|+rp2+|10676|+rp3+|main_sibal -
우주연방
2006.06.01 21:52
우리나라가 강대국이면 이주장들이 다 맞다고 국가에서 한다.........
한마디로 이런 주장이 이렇게 논파당하는건 우리나라의 힘이 적다는 말밖에 안됨
중국은 염제신농, 황제같은 신화까지 역사로 만드는데...........
미국도 인디언학살그런것다 개뻥치고 미화한다........
영국같은 유럽열강도 상당히 식민지 착취 그런것 감추고
일본도 망언 소리듣지만 꾸준히 그런 망언을 할수있다
근데 우리나라는 강하지 못하서 이런 말도 안되는 주장을 주장할수 없다...|+rp2+|10682|+rp3+|main_sibal -
크레시스
2006.06.02 06:14
개인적으로 이것들이 사실이였으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증거가 없죠.. 자료의 손실이 불가피한 것이였다고 해도..
......저런건 자료가 없으면 믿어주질 않으니 큰 문제죠..
..........으흑...슬프다.|+rp2+|10698|+rp3+|main_sibal -
FoM
2006.06.11 03:34
ㅋㅋㅋㅋㅋㅋ 나참내.. 주위에 임진왜란끼고 환난에 곡식도 없고 그런데 인구증가라니 ㅋㅋ.. 다른 유럽나라 인구 증가표라도 보여드릴까요? -ㅅ-........ 어딜봐도 그런나라는 없습니다. |+rp+|10569|+rp2+|10837|+rp3+|main_sibal -
FoM
2006.06.11 03:39
그리고 100년전 인구는 3.1 운동 전후에서 2000만이었답니다 ^^.. 37만이 2000만 되려면 인구 증가가 곱절로 되고 곡식공급이 그만큼 되야하는데 종자 부족하고.. 곡식이 자랄수 있는 토양이 되기에 시간이 걸리고 잦은 전쟁에.. 특히 계속 말했지만 곡식의 순식간적 공급이 가능합니까? 150년쯤 후 임진왜란으로 거의 반이 사망. ㅋㅋㅋ 이제 조선 초기인구가 되나요? |+rp+|10569|+rp2+|10838|+rp3+|main_siba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