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의 말씀이 중요합니까? 사람이 정한 무언가가 중요합니까?
2006.11.06 08:36
벌금형을 선고받은 수잔은 판사에게 한마디를 던지고 법정을 나갔습니다. "저는 그 벌금을 낼 수 없습니다. 이제 곧 법률이 바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서기가 판사에게 물었습니다. "붙들어서 벌금을 내게할까요?" "그냥 두시오. 나는 그녀의 말대로 법이 바뀔까 두렵소."
님을 비롯한 기독교인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님께서는 하느님의 말씀이
중요합니까? 사람이 정한 무언가가 중요합니까?
곰곰히 생각해 보십시오.
물론 현재를 살아가는데 있어서는 사람이 정한 무엇인가를 따르지 않으면
여러 피해를 받게 됩니다. 때문에 사람이 정한 무엇인가에 반하는 행위를
한다는 것은 정말 쉽지 않은 일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것입니다. 사람이 정한 것이라 따르지 않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이 정하신 것에 반하는 내용이라면 따르지 않는다라는 것입니다.
물론 이런 것에 대해서 여호와의 증인들은 많은 탄압을 받습니다.
이런 탄압을 받으면서도 하느님의 뜻을 따르려는 이 종교를
그렇게 '저주'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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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두 글은 참고 자료입니다.
전자의 경우는 여성의 권리를 주장하여 벌금형을 받은 경우입니다. 거부하였으나, 법정모독죄가 적용되지 않았습니다.
후자의 경우는 종교의 자유를 주장하는 경우입니다. 많은 여호와의 증인들이 병역을 거부하여 감옥에 갑니다.
저는 두가지 경우 모두 잘못이라고 생각합니다. 전자의 경우도 후자의 경우도, 하느님이 만드신대로 의무를 하고 있었기에 법을 지키지 못했다는 허울좋은 핑계가 있습니다.
전자의 경우는 벌금을 냈어야 합니다. 법이 잘못되었다면 그에 대한 보상은 나중에 하느님께 직접 가서 벌금으로 낸 돈을 돌려받았어야 할 문제입니다. 법이 고쳐지기 전까지는 현행법이 적용되는 것입니다. 물론 벌금을 대신 내주는 경우도 있긴 합니다만, 그것은 벌금을 대신 내주는 타인이 권리를 행사하는 것입니다.
후자의 경우 역시 군대에 가야 합니다. 이 경우 역시 법이 잘못되었다면 그 역시 나중에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면 하느님께 직접 판결해달라고 할 문제입니다.
성서에는 분명 "카이사르의 것은 카이사르에게,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에게 돌려야 한다"고 쓰여 있습니다. 그들의 구세주, (그리고 저의 구세주이기도 합니다만) 말 중에서 가장 훌륭한 말입니다. 카이사르의 지배하에서는 카이사르의 법을 지키라는 뜻이고, 하느님의 지배하에서는 하느님의 법을 지키라는 뜻입니다.
하느님의 지배하. 이것은 곧 자신을 지배할 사람이 하느님밖에 없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그러면 하느님은 무엇을 지배하십니까? 하느님은, 사람의 양심을 포함하는 모든 것을 지배하십니다.
카이사르의 법에 의해 의무가 있는 경우가 아닌 자신이 자유롭게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상태가 바로 하느님의 지배하에 있는 상태입니다.
그러나 카이사르 역시 하느님의 지배하에 있습니다. 카이사르를 판단하는 것은 하느님의 권한이지, 사람의 권한이 아닙니다.
따라서 여호와의 증인은 사람의 권한으로 카이사르의 법을 판단해서는 안되었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따른다고 하느님의 입 행세를 한다는 것은, 하느님이 사람에게 맡겨 주신 달란트 이내에서 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종교인들에게도 자유를 주셨으나, 카이사르에게도 법을 만들 자유를 주셨습니다. 민주사회에서는, 이 법을 만들 자유라는 것의 원천은 바로 종교인들의 자유를 포함하는 국민의 자유입니다.
카이사르가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것을 하느님을 위해 최선을 다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카이사르가 종으로서 하느님 앞에서 대답해야 할 문제입니다.
따라서 하느님이 종교인들에게 주신 자유라는 것은 합법적인 범위 내에서의 자유입니다. 하느님은 그들에게 법을 어길 자유를 주시지는 않았습니다.
하느님은 오히려 종교인들에게 법을 지킬 것을 요구할 자유를 카이사르에게 주셨습니다. 카이사르 역시 하느님의 지배를 받으므로, 잘못된 법을 만들 자유는 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잘못된 법을 만들고도 그것을 지키도록 요구할 자유는 필요하기에 받았습니다. 그것이 없으면 사람들은 법이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 법이 잘못되었다고 판단하고 그로 인해 잘못되지 않은 법조차도 "자신이라는 사람"이 정한 무언가대로 마치 "하느님의 말씀"인 듯이 행세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카이사르는 자신의 능력범주 안에서 최선을 다해 법을 만들어야 합니다. 능력이 부족하면 능력이 있는 사람을 고용해야 합니다. 능력이 되지 않아서 못한다면, 그것은 그에게 달란트를 허용하지 않은 하느님의 책임이 됩니다.
그렇기에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릅니다. 큰 힘을 쓰는 자는 그만큼 하느님 앞에 많은 대답을 해야 하고, 대답을 하지 못하면 하느님은 책임을 묻고, 죄를 묻는 것이 당연한 것입니다.
법학은 무신론을 토대로 하지 않습니다. 법학은 우선 나라의 법이 사람이 만드는 법이라는 것을 인정합니다.
나라의 법은 사람이 하느님께 받은 달란트를 사용해서 만든 법입니다.
하느님을 믿는다면, 사람과 사람도 서로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느님께 받은 달란트로 최선을 다해 만든 법이 하느님의 말씀에 반하는 법이라는 발상은 하느님이 법을 만들 사람에게 그에 맞는 달란트를 주지 않았다는 말이며 따라서 하느님에 대한 모독입니다.
그러나, 달란트를 충분히 받은 사람이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면? 그 사람이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면 그것은 하느님이 그 사람을 벌하셔야 할 문제입니다. 성서에 죽은 사람들의 장례는 죽은 사람들에게 맡기고 너는 나를 따르라고 하셨습니다. 그 사람이 하느님에게 받은 달란트를 정당하게 나누어주지 않아서 자신의 법적 권리가 그만큼 줄어들었다면 그것을 갖고 다른 사람이 받은 몫의 법적 권리를 침해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국민은 여호와의 증인으로부터 국방의 의무를 요구할 법적 권리를, 하느님이 각자에게 주신 달란트를 사용해서 뽑은 국회로부터 적법절차를 통해서 받았습니다.
하느님이 주신 "자유"라는 이름의 달란트를 써서 국회를 선출했고 국회에 그만큼의 "권력"이라는 이름의 달란트를 넘겨주었고, 국회는 다시 "최선을 다해" "국가보안의 권리"라는 이름의 달란트를 국민에게 돌려주었습니다.
법은 사람의 것을 사람의 것이라고 말하고 따를 것을 요구합니다.
여호와의 증인에서 법을 어기는 것은 하느님의 말씀을 따른다고 포장은 해놨지만, 오히려 "사람의 것을 하느님의 것인양 가르친다"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입니다. 그것이 신성모독입니다.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이 알고 계신 것이고, 하느님이 직접 쓰신 것은 사람의 양심입니다.
법이라는 것은 국민의 양심을 대표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법을 어기면서 "양심적 병역거부"라는 말로 법을 지키는 국민의 양심을 기만하는 행위, 그것을 하느님의 말씀을 따른다고 할 수 있을까요? 군대가는 다른 국민은 양심이 없어서 군대를 가는걸까요? 전쟁행위에 동참하는 것이 아니라, 평화를 지키기 위해서 가는 것입니다.
물론 유승준씨처럼 합법적으로 병역을 면제받는 예외의 경우가 있습니다. 만약에 유승준씨가 합법적으로 병역을 면제받은 것에 죄가 있다면, 그 죄를 물을 권한은 오직 하느님만이 갖고 있습니다. 그는 법을 어기지 않았습니다. 유승준씨의 양심이 바로 하느님이 지배하시는 영역입니다.
따라서 유승준씨같은 경우는 면제를 받은 기간동안 돈을 더 많이 벌어서 사회에 환원하는 수도 있는 것이며, 감히 사람이 사람의 권한도 아닌 사견으로 하느님을 대신해서 판단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사람의 법은 사람이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권한의 결실로 사람에게 있는 권한입니다. 따라서 하느님의 모습대로 만들어진 사람이 사람의 권한으로 만든 법에는 하느님의 말씀에 반하는 내용이 있을 수 없습니다. 여호와의 증인에서 하느님의 말씀이라고 하는 것이 하느님의 말씀이 아닌 것입니다.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이 지배하는 사람의 양심에 있고, 사람의 양심은 사람의 권한을 지배합니다. 따라서 각자 자신의 권리 한도 내에서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데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입니다. 카이사르는 카이사르의 권한 이내에서 최선을 다해야 하고, 국민은 국민의 권한 이내에서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카이사르가 최선을 다하지 않아서 악법이 만들어진다고 하여 국민이 국민의 권한을 넘어서서 카이사르의 권한을 침범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카이사르의 양심 역시 하느님의 지배를 받는 하느님의 영역입니다. 카이사르가 잘못하면 그 벌은 오직 법과 하느님으로부터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은 사람을 만들었고 사람에게 사람의 법을 만들 수 있는 권한을 주었습니다.
사람의 법의 힘이 닿는 영역은 사람의 것이니 사람에게 돌려야 합니다. 물론 이 사람도 저 사람도 다 하느님의 것인 것은 맞는 말씀입니다만 자신이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것과 타인이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것은 구분해야 합니다. 타인의 자유는 타인이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자유로 존중받아야 합니다.
성서에도 부모의 몫을 "하느님께 바쳤다"고 하지 말라고 되어 있습니다. 부모의 몫은 하느님께서 부모를 위해 정해주신 몫입니다. 하느님이 아닌 "여호와의 증인"이라는 종교인이 "평화와 안전"이라는 국민의 권리를 단 한명의 군인의 몫만큼도 빼앗아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그들이 안가면, 누군가 다른 사람이 머릿수를 채우기 위해서 가야 하고, 국방이 약하면 전쟁이 일어나게 됩니다. 이론적으로는 돈만 벌면 자주국방 포기하고 아무도 군대 안가고 미군에 전적으로 의존할 수도 있습니다만, 그 세금은 누가 내야 할까요? 법을 어긴다는 것은 그만큼 다른 사람의 법적권리를 침해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자유로 만들어진 법입니다.
평화와 안전의 법적권리를 누리는 대신, 그로 인한 값은 각자 알아서 각자에게 똑같이 주어진 기회라는 합법적인 권리 이내에서 하느님의 법대로 치러야 할 문제이지, 구약에도 "자신의 그 많은 양 중 한마리를 잡기가 아까워서 옆집 사람의 새끼양을 훔쳐다 잔치를 치르는" 행위에 대해 다윗왕은 일곱배로 변상을 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다윗왕도 하느님을 모독하는 골리앗을 죽였습니다.
법은 모든 사람의 위에 있고, 법 앞에 모든 사람은 평등한 것입니다. 법을 어기는 것은 곧 다른 사람의 법적 권리를 침해하는 것입니다. 개인이 아닌 국가를 상대로 하는 형법을 어기는 것 역시 국가를 통해서 존재하는 다른 사람의 간접적인 법적 권리를 침해합니다.
죽일 때와 살릴 때는 분명 하느님이 판단할 문제입니다. 군대에 간다고 해서 반드시 사람을 죽이는 것은 아닙니다. 가서 사람을 죽일지 안죽일지는 각자 하느님께 법을 통해서 받은 자유대로 알아서 결정해야 하는 것입니다.
일단 가고 총쏘기 싫으면 총맞아서 죽으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느님이 정당방위를 하지 말라고 하실까요? 막상 가보면 양심에서 하느님이 총쏘라고 하는 것이 느껴질지도 모릅니다. 군인은 전쟁이 날 경우 다른 아군을 살리기 위해 적군을 쏘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군대를 가지 않는다면 이 다른 아군을 적군의 손에 죽게 놔두는 간접적인 살인방조죄에 해당되는 것입니다.
스스로 사람을 죽이지 말라는 계명을 세우셨음에도 하느님은 사람의 수명을 정해서 굳이 죽지 않아도 될 사람을 태초부터 무수히도 많이 죽게 하셨습니다. 죽일 때와 살릴 때. 하느님이 직접 쓰신 양심대로 한다면, 전장에서 그것을 가려내는데 어려움은 없을 것입니다. 군인에게는 적을 맞아 싸울 의무가 있지만 죽여야 할 의무는 없습니다. 국제 협정에서도 항복하는 자는 살려주는 것이 법이고 죽이는 게 아닌 가능하면 전투불능상태로 만드는 것입니다. 자신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서만 죽일 "권리"가 허용되며 (따라서 양심에 따라 죽이지 않고 죽임을 당해도 됨), 군인의 경우는 자국민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필요할 경우에 한해서 죽일 "의무"가 부여됩니다. (누군가는 죽을 수밖에 없는 경우로, 자국민의 생명권 우선)
법은 하느님께 받은 양심으로 사람들이 투표를 통해 함께 쓴 것입니다. 법이 군대를 가라고 하면 하느님이 직접 쓰신 타인의 양심을 존중하고 법적인 의무를 우선적으로 해야 하는 것입니다. 자신이 하느님의 말씀이라고 생각하는 걸 따르는 의무는, 법적인 권리 이내에서 해야 하는 것입니다. 법은 국가가 말하는 것이지만, 하느님의 말씀에 대한 국가라는 전문가의 객관적인 의견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따르기 위한 사람들의 노력의 산물로서 정해진 것이 법입니다. 법을 따르지 않는다는 것은 곧, 그 법을 만든 사람들이 자신보다 하느님의 말씀을 따르는데 게으르다는 "사람의 교만한 판단"입니다. 성서에도 분명히 타인을 판단하지 말라 하였습니다.
그러나 타인이 "하느님의 것에 근접하다고 믿고 있는" 법이라는 것이 잘못되었다고 "스스로 생각된다면" 그것을 고치도록 의견을 낼 헌법상 권리가 있습니다. 종교의 자유는 이 헌법적인 권리에 포함이 됩니다. 권리의 범위 안에서는 당연히 하느님의 뜻을 추구해야 합니다. 헌법적인 권리 안에서는 각자 믿는 하느님의 정의를 따라야 합니다. 국가가 지우는 법적인 의무는 국가가 국민을 대표해서 믿는 하느님의 정의입니다.
민심(民心)이 곧 천심(天心)입니다. 사람이 정한 무언가도 사람이 하느님의 말씀이라고 믿는 것으로부터 나온 것입니다. 사람이 "하느님의 말씀"이라고 부르는 것도 역시, 사람이 하느님의 말씀이라고 "믿는 것"일 뿐입니다. 법은 그 믿음의 "합리성"을 사람이 하느님께 받은 능력으로 연구해서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성녀 잔다르크는 여자의 몸으로 군인이 되어 몸소 군대를 이끌고 전장에 나가서 싸웠습니다. 모든 군인들이 마음에 담아두어야 할 성인입니다.
(참고로 정작 이 말을 하고 있는 저는 합법적으로 군대를 가지 않습니다. 법에 의해 제게 추가로 주어진 권리에 대한 책임의식은 갖고 있습니다.)
댓글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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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토
2006.11.06 11:12
다른 건 다 좋지만 정말 종교 문제만은 토론 안했으면 합니다. 편이 갈릴껀 뻔하고 아무리 좋은 말과 이해하기 쉬운 말로 설명해도 안듣는 사람은 죽어도 안 듣습니다. 답이 안나와요. 이 글에선 이단 종교, 여호와의 증인에 대한 이야기를 언급하셨지만요. 그리고 협객님은 정통 기독교 신자이십니까 아니면 여호와의 증인이십니까? 또 하나 묻자면 맨 아래 괄호 안에 쓰신 글의 의미가 군대 대신 대체 근무(또는 공익근무)를 하신다는 의미 입니까 아니면 합법적으로 군대에 가지않고 법에 의해 추가로 주어진 권리로서 영창에 간다는 의미 입니까? 정말 진지하게 궁금해서 묻는 것입니다. |+rp2+|13830|+rp3+|main_sibal -
HelenKiller
2006.11.06 16:32
협객님께서는 '하나님의 법은 이렇기에 나는 인간의 법을 지킬 수 없다'라고 핑계대지 말라는 말씀이신 것 같은데요. |+rp+|13830|+rp2+|13834|+rp3+|main_sibal -
misfect
2006.11.06 17:27
기독교를 믿는 건 아니지만, 협객님의 생각엔 동의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란 인물은, 비록 급진적인 유대인들에게는 절충주의자 정도로 비추어졌을지 모르지만 자신에게 주어진 삶에 순응하고 최선의 방향을 찾으려 노력한 인물이니까요. 소위 '그리스도의 뒤를 따르는' 사람들이라면 주어진 삶에 대해 정신적으로 무장한 채 최선을 다하는 게 옳지 않나 합니다.|+rp2+|13835|+rp3+|main_sibal -
misfect
2006.11.06 17:31
어떤 토론도 편이 갈리기는 마찬가지고, 듣는 사람은 듣고 안듣는 사람은 안듣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토론엔 답이 없는 거라고 들었습니다.
종교도 우리의 삶의 일부인데, 그것을 논하지 않겠다는 건 그 일부를 무시하는 것밖엔 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종교 문제로 유혈 사태를 일으키는 일이 그다지 없는 우리나라에선, 당연히 우리가 자유롭게 종교에 대해 이야기하고 서로를 조금이나마 이해하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는 거겠죠. 개인적인 생각이었습니다. |+rp+|13830|+rp2+|13836|+rp3+|main_sibal -
아란
2006.11.06 17:46
솔직히 밑에 괄호 치고 넣은 글은 빼버리는 게 좋을 거라고 생각합니다만.
그나저나 제가 다니는 교회에서는 국가가 정한 법을 존중하라고 합니다.
p.s 사실 인간이 제일 간악해요. 원래 주어진 계시를 자기들 좋은 쪽으로 멋대로 해석하고 왜곡해서는...|+rp2+|13837|+rp3+|main_sibal -
dr_쟈칼
2006.11.06 20:13
그리스도의 사상은 처음이 잘못되었죠, 결국 자연파괴를 초래했습니다 오직 인간주의적인 그 사상이 현대의 오염된 사회를 만들었죠. 하나님이 인간을 만들었고 인간이 최고라는 쓰레기사상 결국 나중에 사상을 개정해서, 다른종교에서 말하는 자연친화적을 모방하고있습니다. 그리고 종교라는것은 믿음이지만 천주교는 모르겠습니다만 기독교는 광적이 심한경우가 많이 나오고있습니다. 저는 기독교를 싫어해서 단점만 이야기하고있습니다만 물론 장점도있겠죠. 개혁에 도움이되고 사람들 친목관계에는 교회만한것도 없다고 생각합니다만, 그걸 남에게 강요하는건 모하자는 플레이인지.. 전철타면 10번중 2번은 교회신자들이 소리치고다닙니다. 수능공부하느라 피곤해서 지하철에서 잠들때마다 꺠우면 얼마나 짜증이나던지.. 그냥 닥치고있으면 안될까요. 믿는건 좋습니다만 남에게 전파하려하지 마십시요. |+rp2+|13838|+rp3+|main_sibal -
dr_쟈칼
2006.11.06 20:17
불교도 너무 가난한 사회를 만들고, 기독교는 먹고살기엔 윤택한사회를 만들지만 미국처럼 성윤리나 자연환경은 개쓰레기같게 변해버리죠. 한국적 토속종교가 차라리 낫다는 생각이드는군요 성윤리도 좋고, 한해의 작물을 감사해서 조상에게 감사하다고 기도드리는거 얼마나 좋습니까. 기독교는 제사도 못지내게 한다는데 저는 이해가 안갑니다. 제|+rp2+|13839|+rp3+|main_sibal -
혼연무객
2006.11.06 20:36
좀 길어서 생략하고..
하고자하는 요점을 간단히 설명하면
성서에는 분명 "카이사르의 것은 카이사르에게,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에게 돌려야 한다"고 쓰여 있습니다. 그들의 구세주, (그리고 저의 구세주이기도 합니다만) 말 중에서 가장 훌륭한 말입니다. 카이사르의 지배하에서는 카이사르의 법을 지키라는 뜻이고, 하느님의 지배하에서는 하느님의 법을 지키라는 뜻입니다.
국가가 지우는 법적인 의무는 국가가 국민을 대표해서 믿는 하느님의 정의입니다.
겠군요.
음... 저는 여호와의 증인이라는 종교를 믿지않으니
글쓰신 의견에 동감합니다..|+rp2+|13841|+rp3+|main_sibal -
협객
2006.11.06 20:45
해외거주 관계로 합법적으로 군대를 면제 받았고, 외국시민권 획득 관계로 국적이 상실되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천주교 신자입니다. 천주교에서도 판단하지 않는 것을 우선으로 삼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무신론자 친구도 많습니다.
법률에서 자선 신탁의 정의가 "종교, 교육, 건강"의 목적에 한정되어 있고 "무신론"을 추구하는 자선단체에 대해서는 절세 혜택이 없다는 것이 사상의 자유에 대한 억압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본 적이 있습니다. |+rp+|13830|+rp2+|13842|+rp3+|main_sibal -
협객
2006.11.06 21:10
전도는 헌법상의 권리로 알고 있습니다. 지하철 이용에 대한 법에 따라 다를 것이라고 봅니다.
하느님께서 힘들게 수능공부를 마치고 피곤해서 지하철에서 잠들어 계신 것을 종교인들이라는 사람들이 시끄럽게 해서 깨울 권리가 있는가, 아니면 하느님께서 지하철에서 말씀하시는데 침실도 아닌 지하철에서 잠들어 있을 권리가 있는가.
누가 더 하느님을 닮은 사람인지는 사람마다 믿는 가치관이 다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국가가 믿는 것을 기준으로 삼는 것입니다.
그 사람들의 양심에 하느님은 외치고 계실지도 모릅니다. "그만 좀 해라. 너가 나도 깨웠잖아." |+rp+|13838|+rp2+|13843|+rp3+|main_sibal -
협객
2006.11.06 21:28
과거 천주교에서도 그 제사를 반대한 관계로 조선의 법이 천주교를 금지했고 그로 인해 순교성인이 102명이나 나오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지금은 어떻게 되었는가. 천주교에서도 문화의 차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제사를 지내라고 하게 되었습니다.
탈무드에 보면, 로마 황제가 유대신앙과 로마신앙 중 어떤 것이 더 우수하냐고 랍비에게 물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랍비는, 로마인에게는 로마신앙이 유익하고, 유대인에게는 유대신앙이 유익하다고 답했습니다. 그에 로마 황제는, "나는 신앙 자체의 우월성을 묻는 것이오."라고 했고, 랍비는 다음날까지 시간을 달라고 했습니다.
다음날 랍비는 얼굴에 붕대를 감고 왔습니다. 로마황제는 대체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물었습니다.
이에 랍비는, "제가 아는 두 형제가 와서 자신들이 가진 두 개의 보석을 서로 교환할 것이니 두 보석 가치의 차액을 감정해달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버지가 보석상이 아니십니까? 아버지께 가서 여쭤보십시오.'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그 두사람이 화를 내며 저를 때렸고 이 지경이 된 것입니다."
그에 황제는 노기를 띠며, "그 두사람을 당장 여기로 데려와라. 내가 죄를 물으리라" 그러자 랍비는 얼굴의 붕대를 풀며, "폐하, 신앙의 우월성은 오직 그것을 만드신 신만이 알고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신께 직접 물어보셔야 할 것입니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이에 황제는 랍비의 지혜를 칭송하고 상을 내렸습니다. 신앙, 사상은 각자 갖고 있는 보석과도 같고, 그 보석의 가치는 그것을 내려주신분이 아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은 각자 믿는 바에 최선을 다해야 하고, 동시에 다른 사람이 믿는 것을 최선을 다해 존중해주어야 합니다. 법은 사람이 그렇게 할 수 있게 하는 기준입니다. |+rp+|13839|+rp2+|13844|+rp3+|main_sibal -
협객
2006.11.06 21:39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천주교에서 막상 제사를 지내라고 하니까 이제는 제사가 더 이상 한국에서 법적인 의무가 아니게 되었습니다. 법과 종교의 갈등 속에서 순교성인분들이 한편으로는 억울하고 그분들의 믿음 속에서는 억울한 것이 아니라 영광스럽게 된 것입니다.
제사지내기 싫은 여성들은 의도적으로 개신교 중 제사 안지내는 곳으로 가기도 한다고 합니다. 거기에서 만나는 남자의 집안은 천주교와는 달리 제사를 안 지내니까요.
부모님도 생각하고 조부모님도 생각하고 그 위 조상님께 감사하는 것도 좋지만, 제사 준비하느라 고생하시는 여성분들도 생각을 해주어야 합니다.
그래서 요즘에는 며느리 고생시키지 않겠다고 내 선에서 끝내겠다는 분들도 있고, 제 경우도 어머니께 "나는 해도 며느리는 이 고생시키지 말라"는 이야기를 듣고 자랐습니다.
지하철에서 잠못드는 게 고생이듯이, 제삿상 차리느라 힘든 종가집 며느리들 생각도 해줄 필요가 있습니다. |+rp+|13839|+rp2+|13845|+rp3+|main_sibal -
아크라온
2006.11.07 00:06
'안식일은 사람을 위해 존재하는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 존재하는것은아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셨죠.바꿔서말하면'종교는 사람을 위해 있는것이지 사람이 종교를 위해서
있는것은 아니다'라고 말하고 싶네요.우리나라 종교인들을 보면 정말 역겨울 따름입니다.|+rp2+|13846|+rp3+|main_sibal -
협객
2006.11.07 01:54
의도는 파악이 되지만 표현에서 틀렸다고 말씀드려야겠습니다. 아주 위험한 표현을 사용하셨습니다.
성서에는 "사람"을 위한다고 되어있지 않고, "사람의 아들"을 위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이는 구세주 자신을 뜻하고, 구세주가 의미한 것은, 바로 안식일이 "사람"이 아닌, "하느님"을 위해 존재한다고 말한 것입니다.
종교가 사람을 위한다고 한다면, 사람이 하느님의 목적이 아닌 사람의 목적을 위해 종교를 도구로 이용해도 그것이 옳다는 뜻이 됩니다. 사람의 목적이란 반드시 "정의"는 아닙니다. 모든 사람은 신성과 동물성을 함께 갖고 있기 때문에, 사악한 목적을 위해서 종교를 사용하기도 하지만, 그것이 옳다고 하실 수 있습니까? 물론 그 선악은 하느님께서 판단할 일이고, 자신의 판단은 자신 안에 가두고 타인을 판단하는 잣대로 써서는 안됩니다.
진실을 말씀드리자면 사람이 하느님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지 하느님이 사람을 위해 존재하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은 한낱 먼지일 뿐입니다. 60억이 넘어가는 인구 앞에서 "나는 사람이다"라고 하여 종교가 자신을 위한 것이라는 발상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dr_쟈칼님의 말씀에서는 오히려 그리스도 사상이 "오직 인간주의적인 그 사상"이라고 표현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말씀은 휴머니즘이 아닙니다. dr_쟈칼님도 "인간이 최고라는 쓰레기사상"이라고 했듯이, 인간은 최고가 아닙니다. 하느님이 만드신 셀 수도 없을만큼 많은 피조물 중 단 하나에 불과한, 한낱 먼지일 뿐입니다. 먼지가 다른 먼지를 알아봤자 얼마나 잘 알겠습니까?
따라서 종교가 사람을 위해 존재한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종교는 사람이 아니라, 사람 안의 정의를 위해서 존재합니다. 사람 안의 정의란 무엇인가, 바로 사람의 양심이고, 바로 사람 안에 양심으로 있는 하느님의 말씀입니다.
링컨도 말했지만 하느님이 사람의 편에 서야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하느님의 편에 서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에게 사람의 편을 들어달라고 하게 되면, 일부 극단종교인들처럼, 사람이 하느님을 이용하려고 들게 됩니다. 예를 들면 자신들의 사리사욕을 위해 "사찰이 무너지게 해주시옵소서."라는 저주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종교는 사람의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종교는 사람 안에 있는 하느님의 말씀을 위한 것이며, 따라서 하느님을 위한 것입니다. 따라서, 사람 역시 종교를 위해 존재한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여기서 제가 말하는 하느님의 개념은, "모든 비밀을 알고, 모든 것을 할 수 있고, 절대 선한 정의로운 존재"를 뜻합니다. 사람이 정의로워야 하는 것이지 사람의 편의를 위해 정의와 진리가 존재하는 것은 아닙니다. 따라서 종교인들을 판단해서도 말아야 한다고 말씀드려야겠습니다.
종교는 사람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의 도덕적 허영심을 채우기 위해, 타인을 비방할 목적으로 전도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지하철에서 잠자는 시간도 하느님을 위해서 존재한다고 봐야 합니다. 하느님을 위해서 존재하는 시간이기 때문에 법으로 방해하지 말라고 하면 방해받지 않을 권리가 있습니다. 항상 일한다고도 하지만 구약에는 쉬기도 하셨다고 되어 있고, 쉬는 것조차도 하느님을 위한 것이기에 존중을 받아야 할 일이라는 뜻이 들어 있습니다. 한낱 먼지에 불과한 사람도 하느님이 하느님을 위해 만드신 것이기에 존중받아야 하듯이 말입니다. 여기 좋은 글에도 "잡초"에 대한 이야기가 있던데, 농사를 힘들게 하는 것 같은 잡초도 나름대로 밭을 지킬 책임을 타고 만들어진 것이라고 읽었습니다.
전도는 사람으로서 갖는 의무로서 하느님(정의)에 대한 자신의 믿음을 나눔으로서 함께 정의로워지기 위한 노력입니다. 전도는 그 진정한 의미를 빛바래게 해서는 안됩니다.
그러면 전도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봉사와 선행을 통해서 해야 하는 것입니다. "참 좋은 분이시네요"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제가 카톨릭 신자거든요"라는 한마디 해주는 것이 전도라고 배웠습니다. 사랑, 용서, 선행이 곧 전도이고 최선을 다하는 생활이 곧 온몸으로 바치는 기도이기 때문입니다. 기도는 입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하는 것입니다.
먼지와 친구가 될 수 있는 하느님.
여기서 이야기 한토막 해드리겠습니다. 다윗왕이 거미와 말벌과 백치를 보고, "대체 저런 것은 어디다 써먹으라고 만드신걸까? 거미는 집을 더럽힐 뿐 제 옷조차도 만들지 못하고, 말벌의 침은 아픔을 줄 뿐 제 먹이조차 모아오지 못하고, 백치는 주위 사람을 불쾌하게만 하지 않는가?"
이에 하느님은, "내가 만든 것 중에 쓸모없는 것은 없다. 너는 그것들로 인해 다시 한번 나를 찬양하리라."고 하셨습니다.
다윗이 적군에게 쫓기어 동굴에 숨자, 거미가 동굴 입구에 거미줄을 쳤습니다. 적군이 동굴에 들어가려 하자 동료가 거미줄을 보고, "이봐! 자네는 다윗왕이 이 거미줄 사이를 비집고 동굴에 들어갔다는건가? 바보같은 짓은 그만두라고."하여 적군은 동굴을 확인하지 않았습니다.
다윗이 적진에 들어갔다가 다시 빠져나오려는데, 잠들어 있는 적장 아브넬의 다리가 갑자기 펴져서 다윗을 밟아 누르고 말았습니다. 아브넬의 힘센 다리 밑에서 움직이지 못하게 된 다윗을 구하기 위해 하느님은 말벌을 보내셨고, 말벌이 아브넬의 다리를 쏘자, 아브넬은 다리를 다시 구부렸습니다.
그러나 결국 다윗은 적군에 붙들리고 맙니다. 이 때 다윗은 적국 왕의 딸이 백치라는 소문을 들었기에 스스로 백치 흉내를 냅니다. 그러자 왕이 부하들에게 "네 이놈들! 내 딸이 백치라 하여 짝을 찾아왔다는게냐!"하고 화를 내었고, 부하들은 설명조차 할 기회도 얻지 못하고 다윗을 풀어주게 됩니다.
이 일을 겪은 후 다윗은 "하느님이 만드신 것 중에 쓸모없는 것은 없다"고 다시 한번 하느님을 찬양하였습니다.
지하철에서의 잠도 사람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지 사람이 지하철에서 잠을 자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으로서 하느님의 일을 하기 위한 잠이 아니라 단지 사람의 욕심을 위한 잠이라면 합법적인 범위내에서 행사되는 타인의 헌법적인 권리 역시 존중해주어야 할 것입니다. |+rp+|13846|+rp2+|13849|+rp3+|main_sibal -
협객
2006.11.07 02:18
신약의 4대복음에서 가장 불쌍하게 표현된 사람은 빌라도가 아닌가 싶습니다.
빌라도는 스스로도 "이 사람은 어떤 법도 어기지 않았다."라고 증언했고, "이 사람의 피에 대해 나는 책임이 없다"고 하여 물에 손을 씻는 의식을 행했습니다. 법을 어기지 않은 사람을 죽이는 것은 빌라도에게도 불법이었습니다. 빌라도가 준법정신이 정말 투철한 사람이었다면 손을 씻을 것이 아니라 무죄판결을 내리고 그리스도를 풀어주어야 했습니다.
따라서 그리스도는 사람이 정한 무언가를 어기지 않았다고 빌라도는 증언한 것입니다. 사람의 법을 어기지 않은 그리스도의 이름을 사람의 법을 어기는데 써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법, 진리는 마땅히 하느님께 심판을 맡겨야 합니다. 성서에도 새 술은 새 부대에 담는 것이고, 헌옷에는 헌 천조각을 대고 깁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렇기에 구세주도 그들이 "사람의 법을 하느님의 법인 양 가르친다"고 표현했습니다. 하느님의 법의 주인은 사람이 아니라 하느님입니다. 사람의 법의 주인은 사람입니다. 따라서 사람은 사람의 법, 사람들의 이해관계에 의한 "약속"을 논해야지 하느님의 법인 "진리"를 사칭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rp+|13835|+rp2+|13850|+rp3+|main_sibal -
아란
2006.11.07 03:45
이러나 저러나 역시 종교에 관련된 토론은 역시 무서워...
(딴 것보다도 종교때문에 박터지게 전쟁한 나라도 있으니.)|+rp2+|13853|+rp3+|main_sibal -
죄인 괴수
2006.11.07 05:44
영국,일본 빼고 <일본은 기독교 박해 딱 한번있었다. 도쿠가와 에이야스 말년쯤이었나?ㅋ> |+rp+|13853|+rp2+|13855|+rp3+|main_sibal -
misfect
2006.11.07 08:24
괴수님, 일본 기독교는 현재 침몰 직전이고, 영국 기독교는 국교회로 대치되면서 스페인과 전쟁까지 치뤘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네들의 기독교도 만만찮은 희생을 한 거죠.
어쨌건 협객님 이야기처럼 기독교는 자신 안에 이미 사회와 균형을 이루는 논리를 포함하고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아니었다면 지금까지 생존하고 번성하진 못했겠지요. 기독교 세계관이 아니라 일반 세계관으로 이야기한다면, 모든 이론은 사회와 영향을 주고 받으며 현재에 가장 합당한 방향으로 성장한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 과정에서 비록 반사회적인 경향이 잠시 등장한다 하더라도요. 물론, 어느 게 반사회적이냐는 건 사람마다 다르게 생각할 수 있기에 제가 감히 논하긴 어렵다고 생각합니다.|+rp2+|13856|+rp3+|main_sibal -
또또님
2006.11.08 20:21
에초에 여호화의 증인은 기독교에서도 이단 취급 받습니다. 누구 한사람을 하나님으로 추앙하고 그러니까요. |+rp2+|13859|+rp3+|main_sibal -
아르킨
2006.11.09 06:28
전 협객님이 '하느님'이라고 호칭하는 것이 오히려 걸리는 군요.
천주교에서는 하나님을 그렇게 표현하는 것 같은데, 하느님이란 것은 다른 종교에도 많이 쓰는 것으로 하늘을 뜻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 민족의 토속 신앙의 영향을 받은 단어 아닙니까?
반면 하나님은 하나의 유일한 하나님, 즉 우리를 창조하신 창조주이십니다.
단어의 뜻이 그러하지요. 하느님이라고 호칭하는 것은 정말 아니라고 봅니다.
혹 다른 종교와 싸우지 말자니 뭐니 하면서 다른 종교와 같은 맥락의 단어를 사용하자 라고 하는 것이라면 정말 안된다고 봅니다. 또 요즘 신부나 목사님들이 절간에서 중들이랑 뭐 하거나 같은 집회를 열거나 하는 것을 자주 볼수 있는데 정말 이해가 안되는 군요.
다른 종교와 굳이 싸우지는 않아도 자신의 신념을 지켜야 합니다. 다른 종교를 인정하니 뭐니 하면서 다른 신들한테 절하거나 하면 그것이 우상숭배이니깐요.
어쩄든 하느님은 절대 아니라고 봅니다. 또 천주교 하니까 말나오는 건데 천주교는 연옥을 왜 주장하는 건가요? 성경책에 연옥은 한글자도 안나오고 천주교에서 연옥이 나오는 책은 다른 곳에서는 위경이라고 나와있습니다. 또 예전에 교황 누군가가 연옥이 없을 수도 있다고 했고요.
저는 기독교 신자입니다만 정말 천주교는 의문투성이입니다.|+rp2+|13862|+rp3+|main_sibal -
협객
2006.11.11 04:55
애써 답을 썼으나 지워지고 말았으니, 이것 또한 하늘의 뜻. 하느님은 명사이고 하나님은 대명사입니다. |+rp+|13862|+rp2+|13889|+rp3+|main_sibal -
HelenKiller
2006.11.12 07:59
제가 자유게시판에 예전에 썼었는데요-_-; 하느님은 하늘+님에서 ㄹ이 탈락한 것이고 하나님은 오직 하나이신 분이라는 뚯입니다. |+rp+|13862|+rp2+|13897|+rp3+|main_sibal -
협객
2006.11.13 01:49
저도 오직 하나인데요.
"하느님"이라는 말이 오히려 "하나"로 통용되고 있는 말입니다.
"하나님"이라는 말은 특정 종교에서는 오직 "하나"일지 모르나, 다른 종교에서는 "알라"나, "증산상제", "옥황상제" 등의 이름일 뿐입니다.
그럼에도 저는 "신"이라는 말보다는 "하느님"이라는 말이 더 정확한 의미라고 해야겠습니다.
한글 "어원"은 분명 "하늘"입니다만, 어원은 통용되는 의미와는 다른 것입니다.
제가 말하는 하느님은, 법적 개념의 하느님입니다. 만인이 "하느님"이라고 부르기로 약속한 "전지전능하고 완전히 선하신,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을 말합니다.
|+rp+|13862|+rp2+|13902|+rp3+|main_sibal -
협객
2006.11.13 02:42
천주교에서 "천주"는, 天主, 하늘의 주인을 말합니다. 이는 물론 토속신앙에서 부르는 "하느님"과 같은 뜻입니다. 왜 "하늘"인가?
우선 성서에,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고 되어 있습니다.
토속신앙이라고 하여 무조건 배척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아테네인들이 "이름을 모르는 신"에게 바쳤던 제단이 바로 이 하느님에게 바쳐졌던 제단이기 때문입니다. 사도신경에서 바오로 사도는 이것을 보고 기뻐하며 그 "제단의 주인"이 누구인지 가르쳐 주었습니다.
하느님이 하나라는 것은 바로 이 뜻입니다. 아테네인들이 섬기던 그 "이름도 모르던 신"이, 바로 사도 바오로가 섬기는 신과 "하나"라는 뜻입니다.
왜 "하늘"인가?
하늘은 모든 사람에게 "하나"이며 결코 두쪽나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의 하늘이 내가 보는 하늘과 붙어 있는, 같은 하늘입니다.
하느님이 어디에나 계시는 것은, 바로, 북극에 있는 하늘과, 남극에 있는 하늘이 같은 하늘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토속신앙의 하느님과 천주교의 하느님은 궁극적으로 같은 하느님입니다. 하느님이 무엇인가는 사람이 규정짓는 것이 아니며, 사람의 생각으로 판단하려고 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느님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은 단지, "전지전능하고, 정의롭다는 것" 뿐입니다. |+rp+|13862|+rp2+|13903|+rp3+|main_sibal -
협객
2006.11.13 02:54
인간이 감히 하느님을 판단하려고 해서는 안됩니다.
성서에, "너희는 내가 목마르다 하였을 때 마실 물을 주지 않았고, 내가 배고프다 할 때 먹을 것을 주지 않았다"고 하였습니다.
"언제 목마르다 하셨고, 언제 배고프다 하셨습니까?"라고 물으면, "너희가 본 형제 중에 가장 미천한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다"라고 할 것이라고 쓰여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하나"가 바로 하느님이 "하나"라는 의미와 같은 의미의 "하나"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라고 부를 때는, "우리 형제 중에서 가장 미천한 하나"님을 생각해야 합니다.
성서에, "1등이 꼴찌가 되고, 꼴찌가 1등이 되리라"고 하였으니, 가장 미천해 보이는 사람을 섬겨 그 사람보다 자신을 더 미천하게 낮추지 않으면 결코 하느님 곁에 갈 수 없습니다. |+rp+|13862|+rp2+|13904|+rp3+|main_sibal -
협객
2006.11.13 05:19
성서에서 바리사이파 사람들도 "구세주는 이래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구세주를 배척하였습니다.
하느님이 아니라 "하나님"이어야 한다는 생각때문에 하느님이 인간에게 배척받는 것입니다.
성서에 "너도 가서 그 사마리아 사람처럼 하여라"하고 쓰여 있습니다.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을 만들 수 있다"고 하였으니,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이 바로 "이 돌들의 하느님"이기도 한 것입니다.
|+rp2+|13905|+rp3+|main_sibal -
호박기사잭
2006.11.18 09:07
예수님이 십자가의 못박히시고 믿는 자들에게 남겨진 계명은 두 가지
"하나님 사랑 그리고 이웃사랑"
이것으로도 충분합니다. 잘 생각 해보시기 바랍니다. |+rp2+|13918|+rp3+|main_siba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