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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도시 기록보관소

일본의 천재 화가는 조선인?

2007.02.08 02:55

-H- 조회 수:752 추천:3

東洲齊 寫樂
(生沒年不詳)筆

江戶時代 寬政 6年(1794年)

三代目佐野川市 松노
祈園町노白人오나요

三代目坂東彦三郞노
驚坂左內

동경의 우에노(上野)공원 안에 있는 국립박물관에 전시돼 있는 도슈사이 샤라쿠의 그림 2점 밑에 붙어 있는 설명이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쟎은가?
에도시대때 3대화가 중의 한사람인 그가 언제 태어나고, 또 언제 죽
었는지도 모른다니, 말이나 되는 소리인가?

1794년(간세이<寬政> 6년) 5월 어느날, 에도의 극장가에 28점의 오쿠비에(大首繪:얼굴에 테포르메를 가해 그린 그림)를 들고서 홀연히 등장하여 10개월 남짓 140여점의 작품을 제작하는 왕성한 활동을 보이다가 또 어느날엔가 자취를 감춰버려서 행적이 묘연해진 화가가 있었다.

혜성처럼 왔다가 사라져 버린 도슈사이 샤라쿠(東洲齊 寫樂).

그의 생몰년은 아무도 알 수 없다. 오늘날 일본을 대표할 수 있는 우키요에 작가로 알려져 있지만 그가 누구에게 그림을 배웠었는지 어디서 왔었는지 또 어디로 가버렸는지는 지금도 미스테리로서 알 길이 없는 것이다.

심지어 자료를 파고드는 데는 나름데로 선수인 일본학자들 조차도 여지껏 밝혀내지 못하니 그가 사라져 버린지 200년이 지났건만 우리에게 남겨진건 알다가도 모를 그의 아이러닉한 작품들과 그를 둘러싼 난무한 추측들일 뿐이다.

일본에서는 샤라꾸를 연구하는 학자들만큼 샤라쿠가 많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그의 정체에 대해서는 설이 분분하다.

그런데 최근에 이영희(한일비교문화연구소장)에 의해 <또 하나의 샤라쿠>가 토쿄의 하출서방신사에서 발간되었다.

이영희 교수는 그가 바로 조선의 풍속화가인 단원 김홍도라는 학설을 주장해서 관심을 끌었지만 설득력 있고 명쾌한 답변은 나오지 않는게 현실이다.

그의 주장으로는 단원이 1794년에 정조의 신임으로 연풍현감으로 있다가 일본으로 건너가 정조의 밀명을 수행하는 한편, 도슈사이 샤라쿠란 이름으로 활약했다는 것인데, 실제로 이 기간동안 단원의 국내 활동이 알려지지 않아서 샤라쿠가 단원이라는 설에 한 몫을 거든 것이다.

이렇게 되면 단원 김홍도의 그 시기의 행적을 알아보지 않을 수 없쟎은가?

1791년/47세 (정조 15년) 

9월 22일, 정조의 어진 초상작업에 동참화사로 참여함. <內閣日曆>에 장원서 별제라는 직함이 보임.
9월 28일, 어진 도사 작업에 따른 전임 조치로 장원서 별제에서 氷庫 별제로 직책이 바뀜. 
10월 7일, 어진 도사의 공으로 相常職에 제수할 것을 명함.
12월 22일, 충청도 延豊 縣監에 제수됨. 

1792년/48세 (정조 16년)
연풍 현감으로 재직함. 이 해에 연풍에 가뭄이 들어 기우제를 지내기 위해 鳥嶺山 上菴寺에 올랐다.

1793년/49세 (정조 17년)
畢賑狀啓에 의하면 충청도의 기근구제는 정월부터 5월 24일까지 실시했는데, 연풍은 2급 재해를 당한 고을에 속했음. 
김홍도는 公穀에 의지하지 않고 재량껏 곡식을 나누고 죽을 끓여 먹여 굶주린 백성을 살려냈으나 그 공적은 대단한 것이 아니었다고 평함.

1794년/50세 (정조 18년)
이 해에 크게 가물어 기근이 극심했음. 연풍은 전년과 마찬가지로 2급 재해 지역으로 분류됨.

1795년/51세 (정조 19년)
정월 4일, 湖西慰諭使 洪大協이 김홍도는 중매나 일삼고 下吏를 늑탈하며 사냥을 빌미삼아 租稅를 더 거두는 등 백성을 혹독히 다룬다고 보고함. 
7일, 정조는 연풍 현감을 교체하라고 口傳함.

8일, 홍대협이 遞職된 김홍도를 義禁府에서 다시 엄벌할 것을 주장해 윤허함. 
18일, 정조는 의금부에서 미쳐 잡아 오지 못한 죄인을 사면하는 單子를 내어 김홍도 등을 놓아주라고 傳敎함. 
봄에 貞純王后 望六, 景慕宮, 혜경궁의 환갑과 정조 즉위 20년을 맞아 대대적인 축하행사를 가짐.
윤2월 28일, 이 해의 園幸 사실을 儀軌로 편찬키 위한 儀軌廳을 설치했는데, 이 날 전 현감 김홍도를 兵曹에서 軍職에 붙이게 하여 상근토록 해서 <園幸乙卯整理儀軌>의 도설 삽화를 제작케 함.
8월, 金漢泰에게 <乙卯年畵帖>을 그려 줌. 이즈음에 김홍도가 주관해 <園幸乙卯儀軌圖> 여덟 폭 병풍을 완성했음.
또 화성(속칭 수원성)과 화성 행궁 영건 작업과 관련해 <華城春秋八景圖> 열여섯 폭 및 倭畵 移模作 <金鷄畵屛> 連幅을 그린 사실이 확인됨.
 
어떠한가? 1792년에 연풍 현감에 제수되어 연이은 가뭄으로 굶주리는 백성들의 구휼에 힘쓰던 김홍도가 1795년 정월에 갑짜기 중매나 일삼고, 下吏를 늑탈하며, 사냥을 빌미삼아 세금을 더 거두는 등 백성을 혹독하게 다루다니 말이나 되는가? 

그리고 의금부에서 잡아 드리려 했으나 십여일 동안 잡지를 못했고, 또 정조는 어째서 사면하라는 전교를 내렸을까?

이영희 교수는 이 시기가 바로 김홍도가 일본에 건너가서 그림을 그리는 아르바이트를 해서 돈을 벌어다가 백성들을 구휼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요즘이라면 모를까, 200여년 전에 일본 밀항이라니 과연 말이나 되는 소린가? 

그러나 김홍도에게는 일본이라는 나라가 그다지 낯설지만은 않은 땅으로, 1789년 8월에 冬至使行의 일원으로 淸나라를 갔다가 이듬해 2월에 돌아오는 등 이미 외국 물을 먹었으며, 또 
김홍도는 어명으로 對馬島에 가서 몰래 지도를 그려 왔다고 한다.

이와같은 정황으로 미뤄볼 때, 도슈사이 샤라쿠가 김홍도라는 사실이 점점 명확해 지는게 아닌가?

심증만 있고 물증이 없다고...? 
그가 남긴 그림, 140여점의 그림이 있쟎가? 

그 당시 에도의 대표적인 야쿠샤에 작가는 우타가와 토요쿠니(歌川豊國:1769~1825)로 그의 인기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였다.
그런데 어느날 도슈사이 샤라쿠의 등장으로 그의 인기에 위기가 닥쳤다면 과연 우타가와 토요쿠니는 어떤 행동을 했을까?

둘은 굉장한 라이벌이 되었을 가능성이 있으며 어쨌든지간에 이 두 화가의 그림은 주제부터 표현기법에 이르기까지 유사한 점을 많이 보이고 있다.

<오오타니 오니지(大穀鬼次)>는 샤라쿠의 대표작으로 상대방의 돈을 빼앗으려는 자세를 묘사하고 있다.

벌겋게 달아오른 눈에 잔뜩 힘을 주고서 치켜 떴지만 가운데로 모인 눈동자의 우수꽝스러움 때문에 치켜뜬 눈이 민망하고, 오기창창함을 보이면서 한일자로 꽉 다물어버린 입술, 돈을 받아 내고야 말겠다는 의지로 쫙 벌려 내민 손은 상황의 긴박함이나 두려움을 전달하기 보다는 해학적일 수밖에 없다.

정확한 관찰로 개성을 강조하는 것, 배우의 단점까지도 그대로 드러내고야 마는 것이 샤라쿠만의 개성적인 특성이었다. 

당시 가부끼의 인기배우를 그린 우키요에 판화는 지금으로 말하면 인기 연예인의 부로마이드로서 당시 모델들의 모습은 아름답거나 혹은 늠름한 것이 보통이었다.

그러나 샤라쿠의 오쿠비에는 인기배우에서 단역에 이르기까지 그 모델의 내면을 파헤치는듯한 리얼리즘으로 일관되어 있으며 예리한 시선이 담겨 있다.

샤라쿠의 그림에서 보이는 것은 결코 아름답다고 할 수 없는 인간의 얼굴이고, 거기에 드러나 있는 것은 그 얼굴을 통해서 엿볼 수 있는 인간의 감정이다.

말하자면 그는 배우라는 인간의 얼굴을 통하여 이면에 숨어 있는 진실을 그리려고 애썼던 것이다.

이야말로 바로 조선의 풍속화가 김홍도가 추구하던 일이 아니던가?
도슈사이 샤라쿠는 단원 김홍도임이 틀림없다.


 


출처 : http://blog.naver.com/adkim1947?Redirect=Log&logNo=15788411


 


 


 


그림 속에서 샤라쿠(寫樂)와 김홍도가 동일 인물로 추측하는 가지 특징


 


(1) 샤라쿠(寫樂)의 그림 중에는 일본어로 해석하기 한시(漢詩)가 있는데, 이것을 이두(吏讀) 식으로 해석해야 뜻이 통하는 경우가 있고, 또 글 속에 자신의 호인 '단원(檀園)'을 가르키는 의미가 숨겨져 있다는 점


 


(2) 김홍도의 그림 중에는 발가락 6개의 부처가 많은데, 샤라쿠(寫樂)의 부처 그림에도 발가락 6개의 부처가 있다는 점


 


(3) 샤라쿠(寫樂)와 김홍도의 필선(筆線)의 특징으로 붓 끝이 꺾여 올라간다는 점 등등


 


출처 : http://www.mediamob.co.kr/nobori/frmView.aspx?list=board&id=67192&page=1


 


 


 



도슈샤이 샤라쿠의 그림들


 


 


 


읽기 귀찮으신 분들은 굵은 글씨만 읽으셔도 됩니다.


 


서프라이즈 재방송을 봤는 데, 개인적으로 김홍도를 존경하는 사람으로 흥미를 가지지 않을 수 없군요.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p.s. 여기 내용은 가설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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