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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도시 기록보관소

SF [테창-릴레이완결] Tialist

2006.12.21 07:59

아란 조회 수:70 추천: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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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창-릴레이소설 완결]
제목(팀명) : Tialist
장르 : SF
총화수 : 전 25화 완결
팀장 : 아란
팀원 : 다르칸, 영원전설, 높새바람(핏빛노을.), 카에데
연재기간 : 2004년 10월 24일부터 2005년 4월 9일 전 25화 완결

[Tialist] 14 : 화이트 크리스마스, 파티!
글쓴이 : 영원전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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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남자가 검은 조끼를 단단히 껴입은 체 예전엔 공원이었을 듯 한 곳을 지나 가까운 곳에 보이는 유라시아 지부를 향해 차곡차곡 쌓인 눈밭에 발자국을 남기며 걸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천성이 조금 산만한 것인가.  부드럽게 내리는 눈들을 손으로 잡아 본다던 지 자신의 주체하지 못 할 정도로 사자 갈기 마냥 양옆으로 퍼진 검은머리를 긁적인다던 지 여러모로 딴 짓을 하며 느릿느릿 걷는 그를 보면 누구든지 저 사람은 이곳에서 노숙하러 온 것이다, 라고 할 판이었다.
  그러든지 말든지, 그는 양손을 쭉 펴 기지개를 하며 입을 열었다.

  "..  아, 화이트 크리스마스란 거지."

  12월 25일.  티아리스트의 강림 후 만신창이가 된 세계라지 만, 아직도 그전의 세계가 만끽했던 그 날의 향기는 남아 있는 듯했다.  이젠 반짝거리는 거대한 크리스마스 트리라던 지, 길가에 널려있는 반짝거리는 네온사인으로 '자신의 소중한 사람에게 선물을 사주세요~!'라는, 상업성 짙은 광고들도 과거의 추억이 되 버린 지 오래이지만.

  "딱, 이럴 땐 애인이라도 하나 끼고 그저 돌아다닌 것도 좋을 텐데 말이야.  소원도 빌고..  아니, 그건 새해였던가.  음..  상관없나.  어차피 소원이래 봐야 애인이 없는 이상은 '이번 해도 죽지 않고 살 수 있게 해주세요'정도 이니.  어쨌든 이런 날엔 맥주가 적격일 텐데.  그저 일 같은 거 다 놓고 마음껏 즐기는 거지.  용들도 그 정돈 알아주었으면 하는데 말이야.  그 자식들은 휴일도 없나보지?  옛날에 아버지가 그때마다 사주신 선물이 아직도 눈에 훤하군.  뭐였지, 내 8살 때 크리스마스 선물이?  무슨 로봇 이였는데..  비행기로도 변했지, 아마?  아, 비행기로 변신시킬 때 망가뜨린 것 같군.  그러고 보니 참 많이도 망가뜨렸네.  옛날에 시즈미 인형가지고 레슬링 하다가 솜털덩어리로 만들어서 울린 때도 있었지.  참, 시즈미도 그땐 정말 어렸었는데 말야.  울긴 또 많이도 울었지.  언제나 눈물 방울을 눈언저리에 달고 다닌 놈이었는데.  역시 세월이란.."

  "유우키 대위님!!"

  유우키라 불린 그 남자는 천천히 자신의 뒤를 돌아보았다.  그의 진한 갈색의 눈동자에 오렌지 머리를 짧게 자른 소녀 한 명이 눈에 불을 킨 체 달려오고 있었다.

  "여어."

  "'여어'가 아니에요!!  도대체가, 용에 습격..  아니지, 용을 본 것만으로도 흥분해서 멋대로 트론을 조종해 박살을 내놓고선 그렇게 내빼는 게 어디 있어요?!  다른 사람들은 다시 정비시키느라 정신이 없는 판국에, 유라시아 지부엔 통신만으로도 연결 할 수 있잖아요?!"

  유우키는 조금 난처한 표정으로 그녀를 보다 입을 열었다.

  "이봐, 셰나, 내가 뭐 그렇게 멀리 간 건 아니잖아.  그리고, 너야말로 다른 사람 시키면 될 것을."

  이번엔 그녀가 난처해질 차례였다.

  "아.. 아니..  저기 그러니까..  급해서 그랬죠!!  대위라는 사람이, 아무 생각도 안하고 그렇게 가버리다니.  저흰 레이카비크에 12월말까지 가야 된다 구요!!  또 츠라 대령님께 한 소리 들으려고 작정했어요?!"

  "아아, 혼나는 건 나니까 걱정하지마."

  "그러니까.."

  갑자기 건물이 무너지는 소리와 총격소리가 저 멀리서 들렸다.  발자국 소리만이 들리던  조용한 환경(물론 셰리가 오기 전까지)에 익숙해졌던 유우키의 귀는 저 거대하고 불쾌한 소리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후..  이젠 누구에게나 휴일은 없는 건가?"

  잠시 소리가 나는 방향을 쳐다보고 있던 유우키는 셰나를 향해 고개를 돌리더니 말했다.

  "셰나.  이만 가볼까."

  "네?  아..  네."

  마치 강아지 이름 부르듯 '셰나, 셰나'하는 것에 그녀는 조금 불쾌했다.  그냥 '소위'라고 하면 될 것을...

  "아니, 잠깐만요!!"

  "음?"

  아주 태연하게 오히려 무슨 말을 하느냐는 듯이 그녀를 쳐다보는 그를 보며 셰나는 결국 분통이 터지고 말았다.

  "그 쪽은 유라시아 본부 쪽이잖아요!!!  우리가 대기하고 있는 곳은 저쪽이라고요!!"

  손가락을 마구 휘저으며 회색의 건물이 있는 곳의 반대쪽을 열심히 가리키는 셰나를 향해 유우키는 살짝 웃어 주었다.

  "나도 알아."

  "지금 대위님이 걸어가고 있는 방향을 보고 말씀 하시라고요!!"

  "카렌티어스에게 인사정돈 하고 가야지."

  "아까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저희에겐 이미 임무가.."

  "어차피 여기에 불시착한 이유도 설명해야하니까."

  "그런 건 본부가 알아서 해 줄 거잖아요!"

  "미리 해두는 것도 나쁘지 않지.  자, 가자."

  "이봐요오.."

  더 이상 말을 듣지 않고 걸어가 버리는 골칫덩이 상사로 인해 셰나는 자신의 신념을 굽히고 일단 따라 갈 수밖에 없었다.

***********************************************

  - 적 코어 소멸.  본부로 귀한 하겠습니다.

  - 에, 뭐야, 에릭, 그런 말투.  딱딱해.

  - 음?  하지만 비행기 파일럿이라던 지 같은 사람들은 역시 이렇게 말하던걸.

  - ..  혹시 그거보고 따라하는 거야?

  - 지수도 봤어?

  - 응.  나도 빌려봤어.

  - 에이, 뭐야, 뭐야?  그게 뭔데?

  카렌티어스는 그들의 대화를 들으며 왠지 모르게 편안함을 느꼈다.  마치 보통의 생활을 살아가는 사람들처럼.  그들의 생활이 결코 평범한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유리카가 도착하는 대로 코어 컨트롤 링크를 종료시키려는 그의 귀에 에릭의 목소리가 들렸다.

  - 괴물들 다 죽여버렸어, 오빠~!  이제 곧 갈게~!

  카렌티어스의 온몸에 닭살이 처참하게 돋아났다.  한참동안 이 갑작스런 정신공격에 뭐라 할 말을 찾지 못하고 그저 앉아 있는 그의 귀에 다시 에릭의 목소리가 들렸다.

  - 봐봐, 유리카.  반응이 없잖아.  애초에 '오빠'라는 걸 집어넣은 게 말이 안 되는 거라고.

  - 하지만 난 그렇게 말하는 걸?

  - 생각을 해봐.  에릭한테 카렌티어스는 일단 '오빠'가 아니잖아?

  - ..  지나.  그건 당연한 거구.  일단 문제는 에릭의 말투라고 생각해.  너무 느끼하잖아.

  - 그럼 이상한가?

  - 애초에 남자 목소리에 그런 여자들이나 쓰는 대사를 말한 게 잘못이야.

  무슨 말을 하나 귀를 기울이던 카렌티어스는 이내 웃어버리고 말았다.  보통 저 나이대의 애들이 생각할 만한 것이 아니었지만, 그들의 실제 나이가 네다섯 살 정도 인 것을 생각한다면 저런 것을 가지고 열띤 토론을 한다는 것이 이상하지는 않았다.  그들은 아직 많은 것이 새로우니까.    
  유리카가 귀한 한 것을 확인한 뒤 카렌티어스가 자리에서 일어나는 동시에 방문에서 노크소리가 들렸다.  왠지 뒷골에서부터 별로 안 좋은 기분을 느끼며 방문을 연 카렌티어스의 눈에 싱글싱글 웃고있는 유우키의 모습이 들어왔다.

  "여어."

**********************************************

  "..  그렇게 됐다는 거지.  커텔님에게도 비슷하게 말해 두었어."

  카렌티어스는 한 손은 찌푸려진 미간을 마저 피고 또 한 손으론 카페의 탁자를 손가락으로 두들기며 상황정리를 하려 애썼다.  
  하지만 저렇게 유유하고 편안한 표정으로 방금 뽑은 커피를 마시는 유우키를 보면서 그런 게 될 리가 없다.  일단 화부터 날 수 밖에.

  "..  그런 건 우리가 처리할 수도 있었지 않았습니까?!  도대체, 듣자듣자 하니 애초에 육지를 기어다니는 놈을 하늘에서 덮쳤다는 소리가 '용이 당신들을 습격했다'가 아니라 '당신들이 용을 습격했다'로 되지 않습니까?!  안 그래도 원래가 국가연합은 알트 아이젠을 곱게 보질 않는데 말이죠, 그냥 조용하게 지나가면 될 것을, 왜 굳이 이런 사고를, 그것도 우리 지부에 내시는 겁니까?!"

  유우키는 정말 태연하게, 아무 문제도 없다는 듯 말했다.

  "크리스마스잖아."

  "크리스마스는 사람이 회까닥 가버리는 날이랍니까?"

  "제 개인적인 소견으로도 확실히 오늘 대위님 맛이 간 듯 합니다."

  카렌티어스의 말에 맞장구쳐주는 셰나에게 눈을 흘기며 유우키는 입을 열었다.  

  "그런 뜻이 아니고 말야.  그저 네 녀석들을 만나고 싶어서 말이지.  구실로서 딱 좋잖아.  '유라시아 지부를 구하기 위해 용과 사투를 벌여 끝내는 승자로 군림, 다음엔 잠깐의 휴식'.  뭐, 이런 거랄까?"

  그는 카렌티어스에게 몸을 기울이며 마치 속삭이듯 말했다.

  "그리고 놀러온 건 아니라고.  이번에도."

  무슨 소리를 하나 조금 심각해진 카렌티어스에게 유우키는 다시금 황당한 얘기를 했다.

  "파아티?!  아니, 요즘 세상에 무슨 얼어죽을..?!"

  마치 때 쓰는 어린아이를 상대하듯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흔들며 유우키가 말했다.

  "이봐, 카렌티어스.  네 녀석도 너무 정서가 메말랐군.  오늘은 크리스마스라고.  게다가 아무리 북쪽이라도 타이밍이 맞아 떨어져야만 이루어지는 화이트 크리스마스야.  이런 날에 크게는 못해도 적어도 이제까지 잘 싸워준 그들에게 뭐라도 해줘야 되는 거 아니야?  어른도 아니고 말이야.  너희들은 너무 차갑게 굳어가고 있어.  더 이상 가다간 동상에 걸릴 거야."

  "..  정말로 그 것 때문에 그 상공에서 트론을 타고 뛰어내리신 겁니까?"

  그는 팔짱을 끼며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난 더한 이유로도 뛰어내릴 수 있어."

  "예를 들면?"

  "예를 들면 아래에서 섹시한 여자가 보였다 라든지."

  거의 무의식적으로 뱉은 유우키의 말에 잠시 차가운 침묵이 돌자 그는 수초 후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곤 재빨리 상황을 수습하려 했다.

  "아, 물론 이미 가까운 곳에 있으니 그건 일단 일어나지 않겠군.  안 그래, 셰나 소위?"      
  
  "물론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겠죠.  왜냐하면 그땐 대위님의 그 썩어빠진 정신에 시원하게 구멍을 뚫어 드렸을 태니까요."

  *****************************************

  본래 케이지란 말처럼 간단한 건물이 아니다.  아니, 이젠 건물이라고 말하긴 힘들지도.  예전의 아카라의 첫 출전때 출몰한 용에 의해 케이지는 일부분을 제외한 모든 시설은 지하에 다시 재 건설되었다.  새롭게 태어난, 본부완 조금 떨어진 이곳은 직접 유전자 조작이 완료된 아이들의 생산을 하는 방, 아이들을 수용하는 넓은 몇 개의 방에 그들을 먹여주는 급식소, 그리고 불량품을 처리하는 방까지 꽤나 크고 넓은 시설이다.  유리카, 에릭 등이 머무르고 있는 곳은 그 중에서도 Cage 1번 시설.  트론을 움직이는 파일럿들만이 쓸 수 있는 곳이다.  이 말은 즉 미래의 파일럿들이 머무르고 있는 Cage 2 등에 그들은 자유자재로 들어갔다 나왔다 할 수 있지만 그 반대 경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뭐, 그렇다고 Cage 1의 시설이 특별히 더 좋다거나 그런 것도 아니다.  다른 케이지 보단 조금 작은 방에, 특정한 시간대에만 시청할 수 있는, 바퀴가 달린 책상 위에 올려져 있는 18인치 TV와 비디오 플레이어, 곳곳에 아무렇게나 놓여져 있는 슬리핑 백, 그리고 나머지는 소량의 책이라던 지 그림도구 등 어쩌다가 한번씩 그들의 요구에 응해 주어지는 놀이도구들이 하얗게 칠해진 시멘트벽의 한 구석에 쌓여있는, 다른 케이지완 별 다를 바 없는, 어떻게 보면 극히 '평범'한 방이었다.  굳이 말하자면 단지 그저 분류하기 좋게 방을 나눈 것일까 나.  마치 한 서랍에 들어가 있는 많은 양의 서류들을 디바이더로 정리한 것처럼 말이다.  

  "크리스마스?"

  지수 옆에 꼭 붙어있는 지나가 자신의 투명한 갈색 눈동자를 굴리며 가장 먼저 유우키에게 물었다.  

  "글쎄.  특별한 날이야?"

  유우키는 에릭의 질문에 픽 웃으며 말했다.

  "특별한 날이지."

  "그러니까 무슨 날인데?"

  카렌티어스는 잠시 자신의 턱을 문지르며 크리스마스가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연설하려고 입을 열었다.

  "음.  그러니까 크리스마스는 본래 교회에서 예.."

  "먹고 노는 날이다."
  
  자신의 말을 가로막은 유우키를 따가운 눈초리로 바라보는 카렌티어스를 무시한 체 그는 유리카의 질문에 귀를 기울였다.

  "먹고 놀아?  정말?  그런 날이 있어?"

  "그럼, 그럼.  있고 말고."

  "근데 왜 이전엔 없었지?"

  에릭의 날카로운 질문에 카렌티어스가 우물쭈물하며 뭔가 변명을 자아내려 하였다.  아무래도 갑자기 이런 날을 만든다는 건 역시 어색한 법이다.  이것은 마치 친구의 생일을 여태까지 신경도 안 쓰고 있다가 어느 날 갑자기 그의 생일날 나타나 생일 빵을 때리며 '생일 축하해'라고 헛소리 해대는 것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유우키가 애초에 그런 것을 신경 썼더라면 파티 어쩌고 얘기는 꺼내지도 않았을지라.  

  "그거야 네녀석들이 몰랐으니 지나친 거지."  

  너무나도 잔인한 대답이었다.  모른 게 죄였단 말인가.  잠시 멍하니 유우키를 쳐다보는 그들을 둘러보며 카렌티어스는 한숨을 내쉬었다.  셰나만이라도 있었다면 상황수습이 되었을걸.  하지만 그녀는 볼일이 있다며 어딜 나간 상태.
  얼어붙을 것 같은 썰렁한 공기에 유우키는 멋쩍게 웃으며 자신 있게 말했다.

  "하지만 걱정 마시라.  이제 내가 왔으니.."

  "여기서 애들 모아놓고 뭘 하고 있는 겁니까, 시라카와 대위."

  방문을 열고 안경을 한 손으로 지긋이 올리며 유 박사가 차갑게 물었다.  얘기에 열중한 나머지 방문이 열리는 소리조차 듣지 못한 그는 두 눈을 크게 뜨며 그녀를 쳐다보았다.

  "..  아.  아아-!  이거 안녕하십니까, 유 박사님."
  
  "안녕 이고 뭐고 말이죠.  레이카비크에 갔다고 들었건만, 여긴 또 언제 들린 거죠?"

  "이 아저씨가 오늘 파티를 한 대요~!"

  유우키가 뭐라고 대답하기도 전에 유리카가 유 박사를 향해 밝게 말했다.  처음 인상이 좋지 않았지만, 거동이 불편한 자신을 그녀의 불평 불만을 다 들어주며 계속 옆에서 도와준 유 박사를 일부러 싫어하기가 힘든 것이었다.  그리고 일부러 무엇인가를 한다는 것은 유리카가 하지 못하는 일 중 하나였다.  
  한마디로, 거짓말이나 눈치를 보는 것에 서툴렀다.

  "이봐, 유리카.  난 아저씨가 아니야.  훨씬 젊고 또 아직 미혼이란 말이다."

  유리카는 잠시 보이지도 않는 그를 쳐다보다 카렌티어스에게 말했다.

  "오빠.  눈 좀 열어 줘."

  물론 카렌티어스를 뺀 누구도 그 말이 무엇을 뜻하는 지 몰랐다.  본래 하는 행동을 봐서 유리카는 장님이라고 그들은 생각하고 있었고 트론을 조종할 땐 그저 그녀에게 사람들이 무언가 특별한 조치를 취했기 때문이 아닐까, 정도로 생각했었기에 카렌티어스가 한숨을 쉬며 유리카와 함께 눈을 감고 다시 떴을 때 그들 모두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  아저씨 맞잖아."

  그녀의 초점 없던 회색 눈동자는 탐스러운 적색의 눈동자로 바뀌어 유우키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 눈은 비록 살기는 없었지만 무척이나 깊은 붉은 색을 내고 있어서 그는 자신도 모르게 대량의 침을 목구멍으로 넘기며 말했다.

  "..  그래.  나 아저씨 맞아."

  유우키의 대답을 끝으로 잠시 공기를 맴돌았던 침묵은 카렌티어스의 웃음소리에 의해 깨어졌다.  처음엔 끅끅거리는 소리로 참으려 애쓴 것 같았지만 이내 봇물이 터지듯 배를 잡고 웃어대기 시작했다.

  "푸하하하!!  천하의 시라카와 대위님이 자신을 아저씨라고 인정하다니!!  정말이야, 예전엔 수염을 덥수룩하게 기르고 와서도 절대로 자신은 아저씨가 아니라고 하더니..  푸하하하!!"

  "너..  안 닥칠래?"  

  "아, 저번엔 또 뭐라고 했더라.  그때 그 상태로 어떤 여자를 붙잡고 느끼한 목소리로 오빠가 뭐해줄게 어쩌고 하다가 '아저씨가 주책이야'라는 소리 듣고 한동안 방안에서.."

  "이 새끼, 너 정말 안 닥칠래?!"

  뭔가 좀 황당하기도 하고 분위기 파악이 제대로 안돼 그저 그 자리에 서있는 다른 일행들을 놔두고 그들은 서로를 뒤집어엎기 시작했다.  확실히, 카렌티어스의 이런 모습은 그들에게 전혀 상상조차 가지 않는 것이었다.  물론 유 박사야 시즈미가 죽기 전의 카렌티어스의 모습을 이미 봤으니 그렇게 놀라지는 않았지만.  
  자신의 손으로 용에게 침식당한 어머니를 죽이고 피범벅의, 그때엔 흉측한 모습을 지녔던 유리카를 끌어안은 체 그들에게 나타난 아이.  그런 깊은 아픔을 가지고 어렸을 때부터 고뇌와 슬픔에 젖어 빛을 피하고 어둠을 쫓던 아이.  시즈미는 카렌티어스를 그런 괴로움의 늪에서부터 건져 올린 사람이었다.

  ‘아이는 아이답게 놀아야지, 벌써부터 궁상떨면 못 쓴다고.’

  하지만 시즈미의 죽음은 다시 카렌티어스를 죄책감의 사슬에 결박시켰고, 그 결과 그는 마치 잘 훈련된 군인처럼 차갑고, 정에 이끌려지지 않는 소년으로 탈바꿈했다.  마치 이제 다른 생명들은 자신과 상관이 없다는 듯.
  언제부터였을까.  그의 마음을 둘러싸고 있던 얼음 장벽이, 마치 점점 뜨거워지는 대기에 의해 서서히 녹아 가는 거대한 빙산처럼, 금이 가기 시작한 때가.  
  유 박사는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비록, 유리카에 의해서든 아니면 저기서 카렌티어스의 목을 장난스럽게 조이고 있는 유우키에 의해서든, 비록 이것이 하루밖에 가지 않는, 그리고 그 하루가 지나면 금새 다시 그의 마음이 얼어붙어 버릴지라도, 아직 저렇게 장난을 칠 정도의 마음이 허가되었다면 인간은 최소한의 인간다움을 지금 같은 시대에도 지니고 있는 것 같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이봐.  A..  아니, 지수, 지나. 유리카.  그만 가볼까?"

  자신들의 눈앞에 놓인 난장판에 억지로 웃지 않으려고 괴상한 표정을 짓고 있던 지나는 그대로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에?  어디 가게요?"

  "물론 요리 할 재료를 구해보러 가야지.  파티 안 할 꺼야?"

  "할 꺼야, 할 꺼야!"

  유리카가 몸부터 먼저 움직이려 하자 가까이 있던 지수는 황급히 그녀의 휠체어를 잡고 천천히 밀어 주었다.  그때 다급한 듯 에릭이 말했다.

  "아..  전.."

  "응.  넌 저기서 뒹굴 거리고 있는 두 남자들과 잘 해봐."

  "에?!  잠깐, 저도.."

  "빠이, 빠이 ~ !"

  매정하게 방문을 닫고 나가는 유 박사 일행에 허탈해진 에릭의 목덜미를 유우키가 붙잡으며 말했다.  

  "그럼 우리는 '그걸' 사러 가볼까?"

  "네?  그것?"

***********************************************

  용과 싸우기 위해 철옹성 마냥 우뚝 서 있는 유라시아 지부의 본부는 많은 사람들을 수용하고 있다.  전문적인 기계 오퍼레이터와 트론 담당 기술자, 과학자서부터 음식을 만드는 카페의 주방장, 청소부까지 아주 폭 넓은 직업 군을 형성하고 있는 곳이기에 어쩔 수 없이 그들이 살기 위한 주택 등이 본부 주위에 건설된다.  어느 곳이나 그렇지만, 한 곳이 인구밀도가 집중되면 될수록 사회 안에서 개개인의 역할이 점점 분명해지기 시작한다.  여기서 역할이란 방금 말한 여러 직업들이기도 하지만, 사람들의 요구로 인해 저절로 생겨난 역할도 있다.  '딜러'는 그 새로운 역할들 중하나이다.
  딜러란, 국가 연합에서 지급 해주는 의복과 식량, 소량의 가전 제품 등을 소비자와 직접 연결 시켜주어서 그 중간에서 이익을 보는, 한 마디로 예전 시대의 소매상이다.  그들은 여러 단체로 나뉘어져 각각 여러 지급된 물품들을 나누어서 여러 곳에서 돈을 받고 팔고 있는데, 초기엔 배급된 물품들을 동시에 여러 곳에 지급하기 위해 이런 것이지만 지금은 예전처럼 많은 소매상들이 자신들만의 가계를 열어 서로 경쟁하는 처지가 되었다.
  그 많은 소매상들과 인파들을 뚫고 시장 지부를 빠져 나온 유 박사는 조금 씩 빛을 잃어 가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항상 직면하는 위험을 무시하는 듯 한 저 투명한 하늘.  그 곳에서 빛나는 별은 영원하건만, 왜 그 아래에서 많은 사람들이 갈망하는 평범하고 평화로운 일상들은 그렇게나 짧고 일시적인 것일까.

  "아..?"

  누군가의 목소리에 유 박사는 자신의 시선을 앞으로 향했다.  그 곳엔 오렌지 색 단발머리의, 17살쯤 되어 보이는 소녀가 그녀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음?  누구야?"

  유리카는 마치 상대방을 보려고 하듯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물었다.  그러자 그녀는 우물 쭈물 하면서도 유 박사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저기..  유 이리 박사님이시죠?"

  유 박사는 자신의 안경을 고쳐 잡으며 유심히 그 소녀를 바라보았다.  누군가를 연상시키는 얼굴.  하지만 바로 바로 생각나지 않았다.  마치 뿌옇게 먼지가 쌓인 거울을 바라보는...
  거울?

  "제가 유 이리입니다만..  당신은?"

  "전 알트 아이젠 소속의 셰나 소위입니다."

  "..  알트 아이젠이라면 유우키의..?"

  셰나는 다행이라는 듯 조그마한 미소를 지었다.  어쨌든 대위님을 저런 식으로 부른다면 그와 어느 정도 친분이 있는 사이라는 소리가 된다.  비록 대위라 부르기엔 무리가 있을 정도로 어눌한 행동을 많이 하시지만, 타인에겐 절대로 약점을 잡히지 않는, 어떻게 보면 용의주도하고 치밀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렇습니다.  그 분과 함께 왔죠.  박사님을 만나고 싶은 이유는.. 이..  에...  어?"

  셰나는 자신의 주머니 곳곳에 손을 찔러봤지만, 정작 자신이 원하는 것이 그녀의 손 긑에 느껴지지 않았다.  유 박사일행의 따가운 눈초리를 받으며 그녀는 자신의 온 몸을 뒤져보았지만 나오지 않았다..

  "저를 만나고 싶은 이유가..?"

  "아, 저, 그게.."

  그녀는 마치 망치에 세게 머리를 얻어맞는 듯한 충격을 느끼며 오늘 아침의 일을 기억해냈다.  유라시아 지부 근처를 지나갈 때 그 문제의 사진을 뚫어져라 보다 유우키 대위의 돌발적인 출격 때문에 사진을 그녀의 방에다 내 팽개치고 나온 것이 그녀의 머리 속에 생생하게 방영되면서 그녀는 이를 갈았다.  어떻게 만난 사람인데..

  '그 남자 평생에 도움이 되는 일이 전혀 없잖아!!'

  "저..  죄...  죄송했습니다!  그럼 이만..!"

  얼굴이 빨개지면서 황급히 자리를 뜨려는 그녀를 잡은 것은 지수였다.  정확하게는 옷자락을 잡은 것이지만.  

  "어디 가세요.  유우키 오빠는 저 쪽에 계시는데."

  "아저씨라니까."

  끝까지 아저씨라 우기려는 유리카에게 살짝 눈을 흘기며 지수는 셰나에게 말했다.

  "저기, 어차피 만나야 하실 텐데 저희와 같이 가요.  크리스마스 파티를 한다는데, 한 사람이라도 더 있으면 좋잖아요?"

  셰나는 잠시 얼어붙어 있다 그대로 고개를 돌리며 황당한 표정으로 지수를 바라보았다.

  "파아티 라구요?"

**************************************************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거지..'

  셰나는 자신의 앞에 그들이 만든 음식과 음료를 앞에 놔두고 그저 멍하니 자신의 주위를 바라보았다.  별로 볼 것도 없고 밋밋한 방의 중앙에서 처음엔 조금 어색했지만 이내 먹고 마시며 얘기를 나누고 무엇이 그렇게 재미있는지 웃기도 하는 그들을 보며 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눈썹을 찌푸렸다.  유 박사는 어딜 나갔는지 보이지 않으니, 더욱 더 자신이 앉아 있는 곳이 불편할 수밖에 없었다.

  "왜 그러세요?"

  그녀는 뒤에서 자신에게 말을 거는 지수를 바라보며 무덤덤하게 답했다.

  "아니..  그냥."

  지수는 셰나의 옆에 자리를 잡고 앉으며 말했다.

  "어디 아프신 건가요?  잠깐 밖으로 나가도 괜찮을 것 같은데."

  "아니야, 아니야.  신경 쓰지마."

  셰나가 고개를 저으며 젓가락으로 부침개로 추정되는 음식을 집어먹었다.  바로 그 다음 그녀의 얼굴은 한층 더 일그러졌다.

  "..  아프시죠?"

  "..  아니.  아픈 건 아니지만...  사탕이 필요한 것 같아."

  "네?"

  셰나는 손가락으로 문제의 부침개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거..  쓰다고."

  "아..  아무래도 유리카가 만든 걸 드셨나보네요.  그래도 전 보단 나은 편인데."

  "전 보단?"

  "전엔 음식이라기 보단 독약이었죠."

  지수는 살짝 웃으며 셰나를 바라보았다.  

  "아..  근데 셰나 언니는 왜 머리 색깔이 주황색이에요?"

  그녀의 질문에 셰나는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렸다.  별로 신경을 안 쓰던 점이라 생각조차 안하고 있었는데 그렇게 물어오니 자신도 궁금해진 것이다.  언제부터일까.  이런 머리를 가지게 된 때가.  자신이 동양인인 점을 생각해 볼 때 태어났을 때부터 가진 머리는 아닐 것이다.

  "글세..  왜 일까."

  "..  언니도 모르는 거예요?"

  "..  응.  기억이 안나."

  "기억이 안 나면 한번 마시고 봐봐!!"

  유우키가 뒤에서 셰나를 잡은 다음 원통형의 모습을 한 물체를 그녀의 입에 갖다 데었다.  갑자기 뜨거운 액체가 목구멍을 타고 내려가자 놀란 셰리는 그의 팔을 잡아 몸을 젖히며 ...  던져 버렸다.

  "무헥?"

  원통형의 물건은 짙은 노란색의 액체를 사방으로 뿌리며 날아가고 유우키는 인형들이 쌓여있는 벽 구석에 요란하게 착지했다.

  "에구구.."

  "으웩, 퉤, 퉤!!  이거 뭐야?!  당신 뭐야?!  무슨 짓을 한 거야?!"

  유우키는 머리가 아픈 듯 뒤통수를 문지르며 안타까운 눈빛으로 사방에 흐트러진 액체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아아..  맥주가 쏟아져 버렸네."

  '맥주'란 소리가 나오자마자 셰리가 발광하기 시작했다.

  "아니, 맥주라고요?  이 인간이 정말 머리를 어따 두고 오셨나?!  어쩐지 무슨 파티 타령을 하나 했어!!  그렇게 대충 애들 꼬신 뒤 자기가 술 처먹고 싶어서 그런 것이겠지!!  도대체 나이를 헛먹은 거야?!  미성년자들에게 술 마시는 걸 보여주는 것도 모자라서 아예 마시라고 입에 갖다 데다니!!  당신이 정신이 있는 사람이야?!  그나저나 그 맥주들은 어디서 난 거야?!  어디서 그런 걸 파는 거야?!  도대체가 요즘 같이 발 잘못 디디면 죽는 세상에 그런 쓰레기들을 팔 생각을 하다니!!  다 미쳤어!!  세상이 잘 못 돌아가고 있는 거야!!  내가 여기서 대체 뭘 하고 있는 거지?  원래는 그저 일본에서 호출 받아 본부로 돌아가는데, 빌어먹을 대위가 멋대로 일을 벌려놔서 술이나 처먹고!!  나 죽어야 되는 거야?!  맛이 이상했어!!  아니, 어떻게 보면 관계없을지도 몰라.  죽었으면 벌써 몇 번이나 죽었지!!  이런 걸로 죽을 리가 없지!!  암!!  그나저나 이 누런 액체들은 뭐지?  더럽잖아!!  역시 사람들이란 자신들의 주위를 항상 자각하면서 살아가야 되는 거야!  안 그러니까 이 꼴이 나지!!  솔직히 말해서 난....."

  셰나는 처음엔 정말로 화가 난 듯 야자타임에나 감히 입에 담을 여러 가지 탐스러운 욕과 함께 맛이 가긴 했어도 엄연한 상사인 유우키를 몇 분 동안이나 질책하다 알코올이 몸에 돌기 시작하면서 헛소리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그러는 사이 그녀의 얼굴은 점점 붉어지기 시작했고, 유우키가 지루한지 하품을 하는 동시에 앞으로 엎어져 버리고 말았다.

  ",,  헤에.  짜식.  몇 모금 마셨다고 저렇게 쓰러지긴."

  유우키는 득의 양양한 표정으로 자고 있는 듯한 셰리의 얼굴을 손가락으로 쿡쿡 찔러댔다.

  "..  아저씨.  우리 오빠 왜 안 일어나요?"

  유리카가 카렌티어스를 계속 손으로 흔들어 보며 유우키 '아저씨'에게 물었다.  카렌티어스는 어지러운 듯 신음소리를 내며 죽은 듯이 엎어져 있었다.
  
  "아. 그 녀석, 피곤해서 자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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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쎄, 잠시 후 돌아온 유 박사가 방의 상태를 본 직후의 마음속을 어떻게 표현하면 좋을까.  웃기긴 하는데 황당해서 웃지는 못하겠고, 저런 것을 마셔댄 유우키 등에게 화가 나긴 하지만 하고 있는 꼴들이 너무 웃겨서 제대로 화도 안 나고, 그렇게 좀 어중간한 기분일 것이다.
  한 마디로, 이 상황을 어떻게 대처할 지 상상이 가질 않는다 랄까.

  "..  아, 박사님 오셨군요."

  눈을 가늘게 뜨며 유우키가 그녀에게 말을 걸자 유 박사는 일단 화부터 내기로 했다.  도대체가, 이십 몇 살이나 먹은 사내놈이 애들을 데리고 이런 짓을 해도 되는 건가.  진짜로 애들이 마시고 자는 건지 피곤해서 자는 건지는 둘째 치더라도, 이 술 냄새는..  아무리 크리스마스라도 언제어디서 용이 나타날지 모르는 이 판국에!

  "유우키..  도대체 이게 뭐죠?!"

  그는 태연하게 손으로 방을 훑으며 말했다.

  "보시는 대로."

  "저도 눈은 달려 있어요!!  아니, 도대체 맥주 같은 것은 어디서..."

  유우키는 두 손을 휘휘 저으며 그녀의 말을 잘랐다.

  "아, 설교는 제 부하 놈에게 충분히 들었어요.  이제 그만 들어도 될 듯 싶은데.."

  "이게 그 정도로 넘어갈 문제 에요!!  파일럿들을 이렇게 만들어 버렸으니 만약 용이 쳐들어오면 누가..?!"

  갑자기 전 구역에서 사이렌의 비명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것이 뜻하는 것은 단 한가지.

  "..  타이밍 정말 좋네.  어떡할 거죠, 시라카와 대위님."

  그녀는 차갑게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  동시에 지나가 낮게 신음 소리를 내며 천천히 일어났다.  

  "에..?  무슨 소리?"

  유우키는 지나의 머리에 다정하게 손을 얹으며 말했다.

  "크리스마스의 끝을 알리는 종소리지."

  유우키는 다시 유 박사를 쳐다보았다.  그의 눈은 도저히 술을 마신 사람이라곤 생각하지 못할 정도로 맑았던 지라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났다.

  "박사님.  여기서 방 좀 치워주고 애들에게 이불 좀 덮어주세요.  추울 것 같은데."

  "뭐..?  잠깐.."

  "잠시 다녀오겠습니다...  아차."

  그는 황당한 표정을 짓고 있는 유 박사를 무시한체 한 손으로 셰나를 번쩍 들어 어깨에 짊어졌다.

  "참 내.  어떻게 이렇게 깊이 잔담.  한 캔도 안 마신 주제에.  누가 잡아먹어도 모를 것 같네."

  투덜거리며 방문을 나가기 전, 유우키는 유 박사에게 말했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적어도 이 하루만은 애들이 좋은 꿈을 꿀 수 있게 해주어야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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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좌표 0, 3, 42에서 용 서서히 접근!!"

  오퍼레이터의 다급한 외침에 커텔은 물었다.

  "파일럿들은 아직 인가."

  "보고된 바론 아직 대기실에도 가지 못한 듯 합니다."

  커텔은 얼굴을 찡그렸다.  도대체 왜 이렇게 늦는 것인가.  죽은 것도 아니고, 다친 것도 아닌데 이렇게 늦을 수가 있나.

  "..  저기..."

  20대 중반의 짧게 자른 갈색 머리를 지닌 남자 오퍼레이터가 조심스럽게 커텔에게 말했다.  커텔은 마치 뼈로 만든 가면을 쓴 것 같은 얼굴을 가진, 두발로 활보하는 건물 크기의  용의 영상을 보여주고 있는 스크린에 눈을 떼지 않은 체 응답했다.

  "뭔가."

  "사실 위협적인 요소가 아니라 말씀드리지 못했지만..  알트 아이젠의 트론이 케이지 부근에 대기하고 있습니다.  파일럿들의 대기 상태 지연과 무언과 관련이 있을지도..?"

  "알트 아이젠의?"

  커넬이 말을 체 끝내기도 전에 한 오퍼레이터가 외쳤다.

  "정체불명의 기체가 용을 향해 빠르게 접근!!"

  "추정 결과 알트 아이젠 소속의 트론 메가세리움 베타(Beta)로 판명!!"

  동시에 치직 거리는 소리와 함께 커텔의 옆에 있는 스피커에서 유우키의 목소리가 들렸다.

  - 아..  아..  마이크 테스트.  아, 아.  들립니까, 커텔 지부장님?

  "..  시라카와.  도대체 뭘 하고 있는 건가."

  - 보시다시피 용을 처리하기 위해 나선 겁니다.

  "지금 보고 있네.  파일럿들은 어디 있나?"

  - 케이지 안에서 쉬고 있죠.

  "..  무슨 꿍꿍이야?"

  유우키는 난처한 듯한 목소리로 통신을 보내왔다.

  - 크리스마스이지 않습니까.

  "그게 어쨌다는 건가."

  - 아직 애들인 그들에겐 잠시 현실에서 눈을 돌릴 수 있는 날이 필요한 것입니다.

  커텔은 조금 황당한 한 듯한 말투로 물었다.

  "오래 살다 보니 별 일을 다 보겠군.  시라카와 대위.  그들에게 도대체 그런 날이 왜 필요하단 거지?  그들은 병기이네.  우리들을 보호해줄 병기.  용과 싸우는 것이 그들의 임무이고 그들의 삶이며 그들이 살아가는 목적이야."

  - 그들은 인간이기도 합니다.

  "인간인가?  그들이?"

  - 똑같은 피와 살을 가지고 있고, 똑같이 말을 할 수 있으며, 똑같이 웃을 수 있고 눈물도 흘릴 줄 아는, 감정 있는 '인간'입니다.  이것이 인간이 아니라면, 당신이 생각하는 '인간'의 정의는 무엇이지요?

  "..  내가 그것까지 자네에게 말해 줄 필욘 없을 것 같군."

  - ..  염려 붙들어 놓으시죠.  용은 확실히 처치해 드리겠습니다.

  "나도 자네가 그리 했으면 좋겠네.  서로에게 해가 끼치지 않도록."

  - ..  라져.

  무언가가 잠기는 소리와 함께 통신은 끊어졌다.

  **********************************************

  "후."

  유우키는 잠시 한숨을 쉰 뒤 능숙하게 다시 트론을 조종하게 시작했다.  그가 망가뜨린 트론 메가세리움 알파 대신 베타를 타 느낌이 조금 달랐지만 기본적인 것은 모두 비슷해 그는 무리 없이 그것을 조종할 수 있는 것이었다.

  - 대위님.  무리한 짓은 하지 말아 주시길.

  그의 앞에 붉은 색 영상이 나타나며 말했다.  색깔 때문에 어떻게 모습을 판별하긴 불편했지만 짧게 자른 머리를 지닌 20대 중반의 남자인 듯 했다.

  "언제 내가 무리하는 것을 봤나?"

  자신만만하게 말하는 유우키를 향해 그는 조소를 띄며 한마디 던졌다.

  - 오늘 아침에 아주 자세히 봤죠.

  "시끄러.  네 녀석이 내 집중을 흐트러뜨린다."

  유우키의 트론은 트론의 팔목크기정도의 어설트 건을 들어 용에게 난사하기 시작했다.  용은 괴로운 울부짖음을 내면서도 조금씩 그에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 코어 서치 아날리시스 완료.  

  "그렇게 보고만 하지 말고 어딘지 가르쳐 주지 그.."

  갑자기 용이 괴성을 지르며 자신의 두 팔을 트론에게 쭉 뻗었다.  믿을 수 없게도 그것의 팔은 말도 안되게 늘어나더니 그를 감싸 안기 시작했다.

  "칫..  젠장."

  - 그것의 코어는 머리에 위치해 있습니다.

  "대충 예상은 하고 있었어.  어떤 놈들은 꼭 딱 튀는 데에다 코어를 걸어 놓는단 말이야.  근데 저게 꽤 단단하더군."

  - 편하게 말만 하고 계실 때가 아닐 터인데요.  그러다가 침식당하시겠습니다.

  "그렇게 되면 나 대신 츠라 대령의 면상에다 가운데 손가락을 들이밀어 주겠나, 히르첼 중위?  죽기 전에 그걸 꼭 한번 해보고 싶은데."

  - ..  사양하겠습니다.  

  "그렇겠지."

  유우키는 자신의 손을 빠르게 놀렸다.  동시에 가죽이 찢기는 소리와 함께 용은 괴성을 지르며 자신의 몸을 뒤로 내뺏다.  그것의 앞엔 날카로운 날들이 단정하게 솟아 나온 양팔을 가진 유우키의 트론이 서있었다.

  "근접전 전용의 베타답구먼.  별개 다 있어."

  그의 트론은 오른 손의 날들을 자동으로 집어넣고 뒤로 손을 뻗어 무언가 거대한 것을 잡았다.  사슬이 풀리는 듯한 소리를 내며 유우키가 뽑아 들은 것은 듀거 란스.  그 거대한 무기가 표출하는 위압감에 질린 것인지 용은 비명에 가까운 괴성을 지르며 다시 재생된 팔을 뻗었다.

  "이런.  그 공격밖에 없나보지.  다행이구만.  쉽게 끝날 것 같아서."

  유우키의 트론은 용의 손이 다시 자신을 휘감기 전에 듀거 란스를 조준해 힘껏 던졌다.  일직선으로 날아간 란스는 그대로 용의 얼굴에 박혔지만, 그것으론 모자랐는지 아예 용과 함께 날아가 근처의 건물에 그대로 꽂혔다.  동시에 끈쩍한 소리와 함께 용의 머리가 터지더니 머리 없는 몸은 힘없이 땅으로 곤두박질 쳤다.

  "다행히도 만만한 상대였어.  이것도 어찌 보면 크리스마스 선물이라고도 할 수 있을까?"

  - 만일 그렇다면 세상에서 가장 끔찍한 선물이 되겠군요.

  눈은 대지에서 방금 일어난 격렬한 전투와 살육을 무시한체 계속 하늘에서부터 내려왔다.  한 해의 피날레가 가까워짐을 알리는 메센저 마냥.

  ***********************************************

  "으음..."

  카렌티어스는 눈을 게슴츠레 뜨다가 케이지 1번 방 슬리핑 백 안에서 자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곤 벌떡 일어서다 금새 후회했다.  엄청난 두통이 그의 머리를 강타한 것이다.  자신의 미간을 손가락으로 누르며 고통스러워하고 있는 카렌티어스는 손끝으로 자신의 머리맡에 놓여있는 편지를 발견했다.

  "..  음?"

  카렌티어스는 편지를 주운 후 용안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마치 어제의 일은 꿈에 불과한 것처럼 잘 정리 돼있는 방안엔 에릭, 지나, 지수, 유리카와 유 박사가 슬리핑백에서 자고 있었고 셰리와 유우키만이 어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  갔나?  그럼 이건 유우키 형이 쓴 것이겠군."

  혼잣말로 중얼거리며 카렌티어스는 이내 편지를 펼쳐 읽어 내려갔다.  

  - 크리스마스는 본래 기쁨의 날이지.  그때 넌 아주 어려서 기억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난 그렇게 알며 살아왔어.  그 날은 또 시즈미의 생일이기도 하니까.  잊을 수가 없지.  
  기뻤다, 네가 아직도 시즈미의 생일을 기억해 주는 것에.  어떻게 알았냐고?  시즈미의 무덤 위에 있는 새 꽃을 보고 단숨에 알았지.  너에게 가기 전에 잠시 들렸거든.  하, 오빠란 사람도 제대로 선물을 못 챙겨주는 판인데.  
  크리스마스 선물 같은 걸 챙겨주지 못해서 미안하게 생각한다.  본래 주머니가 가벼워서 말이지.  그때 파티 생각이 난 거다.  뭐, 조잡하다고 생각한다면 할말없다.  내 머리가 어딜 가겠냐.
  파티라고 부르기엔 너무나도 조촐한 분위기였지만, 난 어쩔 수 없이 느껴버렸다.  그들의 인간성을.  웃고 울고 화내고 미소짓는 그들을.  그리고 그들과 어울리는 우리들을.
  카렌티어스.  이거 하난 말해주고 싶다.  사람들은 안전을 위해, 인류를 위해 그들을 찍어내고 마구 부려먹지만, 그들 또한 인간이란 것을 인정하지 않지.  이것은 역사를 배워 알겠지만, 백인이 흑인을 노예로 부려먹었을 때와 같은 원리야.  그들을 인간으로 대접해주면, 부려먹을 수 없으니까.  
  웃기는 얘기지.  그들을 지켜주는 자들을 그렇게 잔인하게 대하다니.  그렇게 자신들의 몸을, 자신들의 목숨 하나 하나를 너무나도 소중히 여기기에 우리들의 미래는 불투명할 수밖에 없는 거다.  진보 같은 게 존재할 리가 없어.  
  이런 사건이 있었지.  사람이 많은 버스에서, 남에게 해를 주는 행동을 한 사람들에게 어떤 청년이 나서서 주의를 주다 총을 맞아 쓰러지고 가까이 있던 흑인 소녀도 다쳐서 다시는 세상의 빛을 보지 못한 체 살아가게 만든 사건.  많은 버스 안의 사람들은 그 청년을 욕했지.  쓸데없는 일에 끼여들어서 일을 자초했다고.  어리석은 놈이라고 욕했어.
  네 생각에, 어리석은 쪽은 누구라고 생각하니?
  네가 어떻게 생각 하냐에 달렸지만, 난 그 청년 같은 사람이 될 거다.  물론 그 와중에 많은 관계없는 사람들이 다칠 수 도 있어.  나에게서 소중한 사람일 수도 있고, 정말 아무 관계도 없는 사람일 수도 있지.  많은 사람들이 날 비웃거나 욕할 수 도 있어.  
  하지만 난 내가 옳다고 생각한 길로 갈 거다.  그 어떤 것이 나를 잡아끈다 해도.
  내가 너에게 이런 것을 말하는 것은 전적으로 유리카 때문이다.  저번에도 그 건에 대해 우리가 서로 말다툼을 한 적이 있었지.  난 너를 믿지만, 그래도 여동생이란 존재는 누구라도 나에게 시즈미를 떠올려 주기에 조금 우울할 때가 있어.  그리고 무언가를 해주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그녀가 살아 있을 때 해주지 못한 많은 것을.
  절대 유리카를 울리게 하는 일은 하지 마라.  어떤 길을 걷던, 결코 그녀를 울리지마.  그것이 오빠로서의 너의 책임이다.
  나처럼 다 늦은 다음에 후회하지 마라.
  ..  뭐, 딱딱한 얘기는 이쯤에서.  이렇게 쓰다보니 시간이 꽤 가는군.  도대체가 말이야, 사내녀석이 맥주 한 캔 마시고 그렇게 가냐.  몇년만 있으면 어른이 될 놈이.  아직도 알갱이는 꼬맹이란 말이야.  
  나중에 다시 만나면 그땐 부디 어른이 되 있기를.

                                                                                   유우키 시라카와 -

  "..  편지 좀 잘 쓰지.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가잖아.  어른이 되라 라는 게 맥주를 잘 마시라는 거야 뭐야?  정말이지.."

  투덜거리며 편지를 다시 접고 자신의 바지 주머니에다 넣는 카렌티어스.  그의 눈시울은 조금 젖어있었다.